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201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문종 세배 드립니다.


(2011. 1. 1)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딸 이야기

딸 이야기

딸아이가 훌쩍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스물일곱 나이에 공부를 하겠다고 집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을 했다. 딸아이에게서 오래 전의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눈에 밟히는 딸아이 생각에 자꾸만 서성거리는 마음이 된다. 무슨 청승인지 비어있는 딸의 방을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딸의 체취가 남아있는 물건들을 만져보며 허전함을 달래고 있다.
이런 게 부모 마음인가 싶다.

딸아이 出家(?)에 가장 큰 자극을 받으신 분은 어머니이신 것 같다.
혼기를 놓칠 지도 모를 손녀 딸 걱정이 부쩍 많아지신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엔 별 관심이 없는 손녀가 유학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큰일이다’ 싶으신 모양이다.
덕분에 진작부터 손녀 딸 시집보내기 프로젝트를 일생일대의 관건으로 삼고 백방으로 뛰시던 어머니의 움직임이 한층 바빠지셨다. 돈 잘 벌고 신체 건강하고 가정환경 좋은 손녀사위 감을 외치시면서 중매 전선을 누비고 계신다. 마치 손녀 딸 중매를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양 맹렬한 의지로 집중하고 계신다.

그런 어머니께 중매가 능사는 아니라고 말씀 드려 보지만 역부족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중매시장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중매시장을 통해 무수히 많은 선을 보고 고르고 골라 결혼을 결정해도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난 주위의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하게 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2011년에는 기필코 손녀딸을 시집보내고 말겠다는 전의를 다지고 계시는 어머니께 통할 것 같지는 않다.

최소한 손녀사위 후보 직업에 대한 어머니의 기준은 확고하시다.
정치가와 목사 직업만큼은 싫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신다. 정치가인 남편과 큰아들, 그리고 목사인 막내아들을 둔 어머니의 사적 경험을 근거로 한 결론인데 기도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당사자인 딸이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고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손녀사위 기준과 딸이 원하는 배우자감의 조건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세대는 물론 인생관이 다르고 삶의 행태가 다르니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건 뭐 간장 게장과 피자 정도의 갈등이 아니라 인도인 생각과 우주인 생각 정도의 기호 차이다.
어떻게 하든 손녀딸을 시집보내서 4대를 이루고 싶은 어머니와 그런 할머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나름의 인생 가치에 치중하는 딸내미 사이에서 또 다시 ‘끼인 남자’가 되어 엉거주춤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자꾸만 성급해지는 어머니의 마음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딸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중매가 됐건 연애가 됐건 내 딸이 진정한 인생의 반려자를 찾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결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나로하여금 절박하게 매달리게 만드는 간절한 화두라는 사실을 딸아, 너는 알고 있니?


(2010. 12. 28)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민란보다는

민란보다는

인터넷에서 ‘100만 민란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배우 문성근씨의 근황을 접했다.
‘100만 민란’은 시민 혁명을 통한 야권대통합으로 반한나라당 세력을 결집해서 말하자면 시민 정권을 세우자는 취지였는데 문씨는 이 일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는 듯 했다.
물론 그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그를 좋아했던 터라 그가 남긴 이런 저런 자취에 저절로 관심이 갔다. 무엇보다 뚜렷한 신념을 세우고 그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높이 평가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적장을 칭찬한 셈인데 이런 나의 사고가 이분법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의 서바이벌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고 충고하는 지인도 있지만 하지만 천성이니 어쩌랴.)

그의 열정이 어떤 성과물을 내게 될지 판단하고 싶은 의도는 없다.
그렇지만 피력하고 싶은 개인적 생각이 있다.
문씨가 말하는 ‘혁명’은 통합이 화두로 대두된 21세기 정치현실에 안착하기 힘들다. 누군가를 원천적인 취약점이 있다. 누군가를 배제해야 하는 원천적 취약점 때문에 화합과 소통의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언어 구사 방식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다.
주장하는 건 좋은데 왜 굳이 순화되지 않은 언어가 동원돼야 하는지 설득되지 않는다.
문씨의 말솜씨는 일품이다. 우리 사회의 아프고 힘든 대목을 지적하는 그의 주장은 구구절절 옳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말투나 거친 언어구사는 유감이다.
듣는 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현실에 둔감한 듯 싶다.
지나치게 적대적이어서 선동 정치의 폐해가 부담으로 남는다. 다른 이념이나 가치 대상에 대한 성토는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타도와 전투대상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역시 무리가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르더라도 포용을 전제로 한 극복이나 상호이해 정도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대 진영 말살로 정권을 획득하려기보다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 여론을 설득하는 게 진정성 측면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극단적인 반목과 갈등은 사회적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정권 교체를 목표로 삼는 ‘민란 운동’의 운영방식은 수정돼야 한다.
실제로 그의 계획들은 ‘통합’의 명제 외에는 구체적인 가치와 정책 비전이 보이지 않고 아직 숙성되지 못한 허점이 있다. ‘민란’을 정당민주화, 대의 민주주의 안착,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세부적인 실천 안이 빠져있다.

좀 더 많이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할 것을 설익은 채 세상 밖으로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2011년이 며칠 안남은 시점이다.
서서히 정치가 열리면서 대권이 됐건 소권이 됐건 정치 DNA의 활동 재개 움직임이 역력해졌다.
정치현장의 소모적인 경쟁 구도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고민이 있어야겠다.
정치 현장엔 경쟁자와 상대가 상수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매번 적대적 관계로 대립의 극한을 달리다 보면 심각한 사회적 분열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폐해 역시 만만치 않다. 극한대립은 극한투쟁을 낳고 돌이킬 수 없는 적대감을 양산시킨다. 회복하는데 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 국가적 자원낭비가 아닐 수 없다.

정치 현장에서 겨룰 땐 겨루더라도 포용하고 인정할 수 있는 관계 설정으로 새로운 정치 문화의 지평을 열었으면 한다. 선거 국면에서의 경쟁과 대립도 좋지만 대결이 끝난 이후 현명한 뒤처리를 함께 모색하는 것도 기존 정치의 폐단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별히 남북통일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뒀을 때 정치현장에서 승자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할 명제는 더욱 확실해진다.
어느 대선전에서도 폭발적인 국민 지지를 등에 업었던 정권은 없었다. 고작해야 50% 안팎이었다. 만일 대선 과정에서의 서운했던 앙금이 가슴 속에 독한 불씨로 남게 될 경우 국론 분열은 더 심각한 지경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치적 승자가 왜 좀 더 겸허해져야하는지 그 이유가 자명해 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민란'을 외칠 시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갈등과 분열 보다는 화합과 통합을 매개로 한 사회적 치유 능력자를 찾아야 한다.

PS: 굳이 문성근씨의 도전이 아니더라도 정부와 한나라당이 처한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다.
위기임에 틀림없다.
이대로 독불장군식 노선을 고집하다간 문성근씨나 야당이 아닌 국민들에 의해 퇴출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체감하는 감지기능은 작동능력을 상실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한 걸음만 내딛어도 벼랑 끝인 절대 절명의 처지인데도 미몽을 헤매며 엉뚱한 방향에 집착하고 있다. 착각에 빠진 건지 마취에 취한 건지 여전히 지상 천국이다.
도대체 뭘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2010. 12. 28)
...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간장게장 vs 피자


간장 게장 VS 피자

모처럼 가족 외식을 결정했는데 출발부터 난관이었다.
메뉴 결정이 관건이 된 것이다.
간장게장을 드시고 싶다는 아버지 말씀에 따라 간장게장을 잘하는 단골 식당을 목적지로 정하려고 하자 아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간장 게장은 먹기 싫다며 피자를 먹자는 주장이었다.
가족 중 부모님과 나만 간장 게장을 선호할 뿐 모두들 피자 쪽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싫다는데 일방적으로 강요할 사항도 아니어서 절충에 나섰다.
그 결과 부모님은 간장게장, 아이들은 피자 쪽으로 메뉴를 이원화 했다. 부모님과 함께 간장게장 식당에 갔다가 아이들이 가 있는 피자집으로 이동해서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부모님을 따로 모시려니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모두들 부모님이 식사하시는 곳으로 가되, (식당 측에 양해를 구하고) 피자를 주문해서 함께 식사를 하자는 수정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역시 상황에 적합한 제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손님이 붐비는 게장 집에서 피자를 먹는 모양새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다 나머지 식구들이 간장게장이 아닌 다른 메뉴를 골라 같은 장소에서 식사를 하자는 새로운 안이 제시됐고 모두의 동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피앤딩이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한 식탁에서 간장게장과 매운탕을 메뉴로 해서 외식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가족들의 입맛 하나도 통일 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보다는 부쩍 연로해지신 부모님과 이제 품을 떠나야 할 자식들이 마음에 걸렸다. 점점 기운을 잃어 가시는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천방지축 어디로 향할게 될지 모를 자식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노파심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렇게 부모님과 자식들 가운데에 끼인 채 양 세대를 바라보니 내 인생의 지나간 시절과 다가오는 미래가 한꺼번에 보였다. 그리고 내가 처한 현실과 가장으로서 내가 맡은 역할의 중요성이 새삼 감지됐다. 더불어 家和萬事成의 가르침으로 가족 간의 소통을 큰 가치로 강조했던 선인들의 속뜻이 헤아려졌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른 말씀이라면 무조건 복종을 미덕으로 알았던 우리 시대의 가치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엄청난 변화였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랬듯 자식들과 나 역시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 직시됐다. 비단 부모 자식 관계에서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개성에 따라 달리하는 생각들을 쉽게 드러내고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권이 지극히 당연하게 존중되고 있었다.

외식 일정 하나만 해도 가족 전체를 배려하고 모두의 행복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최선의 답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결국은 절반 밖에 충족시키지 못한 미완의 결말이었다. 메뉴 하나 선택하는 과정도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데 나머지 사안들은 얼마나 어려운 절차를 감내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데 동의한다.
성공적인 가장이 되려면 가족 구성원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도 공감한다. 가족 단위의 소통 단절은 대번에 불신이 판을 치는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게 리더의 역할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다.
개인의 영향력이 극대화 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가 됐건 CEO가 됐건 교육자가 됐건 같은 맥락의 역할이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결국 21세기 리더십의 주요 명제는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리더의 자기희생적 실천의 선행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다.
대통령이나 CEO가 자기 입지만 염두에 둔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누구도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따른다고 해도 자발적 동기가 결여된 복종은 면종복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참여의식은 물론 감동도 없이 강요당하는 구성원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명제는 더 더욱 확실해진다고 할 것이다.

갈수록 가족 해체 위기에 대한 걱정이 넘친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기에 가벼이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연말연시의 시간들이 가족 구성원 간의 반목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동안 서로에게 무엇이 부족했던 가도 반성하고 또 앞으로 무엇을 더 노력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못할 바도 없다.
모든 걸 ‘나’ 위주로만 생각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공통 명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그렇게만 된다면 절반의 성공은 이미 거둔 셈이 된다.
그런 식으로 가족간 균열도 치유하고 한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근간을 다지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


(2010. 12. 26)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Merry Christmas!!

Merry Christmas!!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담겨있는 진정한 의미를, 아니 하나님이 무슨 의미로 인간에게 내려주신 선물인지는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성자의 탄생지가 말구유인 것은 낮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그의 사명을 상징하는 의미가 크다.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우리들의 현실은 하나님의 그 깊은 속내를 잘 헤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대형 백화점은 흥청망청 활황기를 맞고 있고 고급 레스토랑들은 예약이 안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작 헐벗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이웃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 축제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생을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의미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속의 문화를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만큼은 낮고 초라한 구유로 오신 예수 탄생의 의미를 가슴 깊이 음미해 보는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
주위를 살펴서 삶을 힘들어 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그런 크리스마스를 우리 모두가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하자.

Merry Christmas!!

(2010. 12. 24)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감기 단상

감기 단상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30년 만의 최저 기온이란다.
갑자기 밀어닥친 한파에 화들짝 놀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나 역시 온종일 강추위에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그동안의 겨울은 겨울답지 않았다. 한겨울 동장군의 매운 기억을 잊게 할 만큼 포근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니 모처럼 찾아든 추위에 허둥지둥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애초부터 추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번 한파로 겨울이 추운 계절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한 분위기다. 방한복이나 장갑, 목도리 등의 효용성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기습적인 공격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로는 북한도 다르지 않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북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부쩍 커진 건 사실이다.
북한을 대하는 국민인식이 확실히 달라졌다. 그동안의 무관심을 거두고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막연한 동포애로 호의를 보이던 국민감정이 많이 격해졌다. 분개 차원을 넘어 적대감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동족’이라기보다 물리쳐야 할 '적군‘의 개념으로 인식하게 됐다.
순전히 북의 책임이다.
몇 차례 도발로 우리에게 노렸던 꿍꿍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북한은 실수를 한 게 틀림없다. 얻은 것 보다 잃을 게 훨씬 많은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
싸늘해진 민족 간 화해공조 분위기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감기는 정말 추울 때 보다 춥다가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 더 많이 걸리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외부의 자극을 이겨낼 수 있는 배경도 저마다의 극한심이 작용한 바 크다는 분석이다. 내성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주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 외적 요인보다는 일시적으로 나약해진 심신이 결정적인 발병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신자세’가 우리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새삼 알겠다. 최근 곤욕을 치루고 있는 실세 인사들의 근황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게 된다.


대통령 최측근 인사로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이나 이런 저런 설화로 전 국민 뒷담화의 단골메뉴가 되어 조롱거리로 전락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얘기다.
여당 대표, 건실한 기업가로서의 입지만으로도 능력이나 세상 처세에서 부족한 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분들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부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당대표이니까 말을 더 가려서 하고 대통령 친구이기에 행동거지를 더 조심했어야 했다. 주목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영향력이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잘 살아오셨던 분들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한다.

감히 훈수를 둔다면, 전후사정을 잘 살펴보고 다소 수정이나 재충전의 필요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방만해지고 복잡해진 주위 환경에 휩쓸려 주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도 살펴보았으면 한다. 야당과의 어려움(?)을 잘 극복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른바 정치적인 봄날을 맞이하여 곤욕을 치르고 있으니...
오랜 시간 공들여 온 삶의 궤적에 오점을 남기게 된 그들의 허둥거림이 안쓰럽다.
소 잃고 뒤늦게 ‘고친’ 외양간이라도 이후 그들의 삶을 잘 인도하는 길잡이로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기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추워진 날씨만이 감기 원인인 건 아닐 것이다. 위축되거나 해이해진 정신상태가 결정적일 수도 있다. 문명의 발달이 인간에게 모두 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건 우리가 익히 경험한 바다.
난방기구의 발달은 인위적인 온도 조절을 가능하게 했다. 덕분에 우리 인간은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을 만큼 계절의 특성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추위 뿐 만이 아니다. 휴대폰이나 네비게이션 등 원하기만 하면 필요한 정보를 척척 내주는 문명의 편익은 우리로 하여금 기기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정능력 퇴화라는 무서운 굴레를 쓰고 만 꼴이 된 것이다.

이쯤이면 인간이 문명의 이기를 부리는 주체인지 조차 알쏭달쏭해진다.
역설적이게도 문명의 발달이 '마음의 감기' 환자를 양산하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는 겨울에 나이테를 늘리지 않는다.
부족한 영향 상태를 고려해서 성장보다는 숙성에 비중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자연의 놀라운 생태 적응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이 겨울을 외적 확장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공 단련의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예전에 읽으려다 미처 읽지 못하고 밀쳐둔 책을 찾거나 결론을 내지 못한 생각의 고리를 다시 풀어보는 것도 들뜨기 쉬운 연말 시즌을 현명하게 보내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실을 기하지 않으면 꽃피고 새우는 봄날, 설 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부터 위기의식을 마음에 새겨넣고 ‘거듭나도록’ 하자.
그렇게 마음의 감기를 치유하자.
놀라운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2010 .12.24)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돌아보자

돌아보자


고구려 역사를 보면 고구려 멸망 이유가 자명해진다.
후백제 등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여타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 또는 형제간의 후계 다툼이 결정적 화근이 되어 권력 승계 과정에서 갈등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공통점이 있다.
백척간두에 놓인 북한의 현실에서 고구려의 마지막 모습이 보이는 건 지나친 예민함일까?
너무 흡사해서 고구려 역사가 우리의 통일 국면에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개소문의 아들들은 후계구도를 놓고 다퉜고 급기야 그 중 하나가 중국으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일종의 망명정부를 세우게 되는데 그 와중에 고구려는 패망하고 만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중국 어딘가에 도망가 있는 지금의 북한 형편과 엇비슷한 점이 많다. 중국은 그런 김정남을 나중에 조커로 쓰겠다는 음흉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고,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김정은 체제는 불안정한 기류 속에서 북한의 붕괴를 재촉하는 모습이다.
김정남의 도전이라도 받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모두들 북한의 운명을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북한의 붕괴를 뒷받침하는 징후들이 드러나고 있는 판이다.
그렇다고 한들 북한의 멸망이 곧바로 흡수통일로 연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하게 될 것 같지도 않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고구려 영토가 당나라 지배권역으로 귀속됐고 수습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붕괴로 통일 기회가 온다고 해도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대가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호재라고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카스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우리가 짊어져야 했던 오욕의 역사를 돌이켜봐야 할 시점이다. 그 옛날 미국과 일본이 그랬듯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한반도를 담보로 한 모종의 딜이 형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래는 한 나라였는데, 영국의 수월한 중동 분할 통치를 위해 위성국 형태로 갈라져 나간 이란과 쿠웨이트의 운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힘의 논리로 지배되는 국제사회의 위계질서와 정의 구현의 실체가 거기 있다.
제대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국익과 무관하게 모든 상황들이 전개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주창한 ‘비핵. 개방 3000’ 정책만 해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크게 반대하진 않지만 통일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보면 약간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관이 주도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당초의 좋은 의도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한계점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 약간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반관반민 형태의 단체 형태로 정치권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된 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나간다면 어떨까 싶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대한 관심(=흑심)이다.
그 관심들을 우리의 의도대로 몰고 갈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일본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 일변도의 현 외교 정책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 정국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주도권 상실로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 하는 과오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볼 때 우리 현실도 북한 못지않은 위기 국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은 그 위기 상황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더구나 통일을 전후해서 벌어질 한반도의 여러 가지 부족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통찰력 있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부단한 노력들이 필요한 시기라 하겠다.
한반도 정세를 놓고 저마다의 국익에 따라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열강의 탐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특히 중국의 속셈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 같다.
사안마다의 코멘트들도 그렇지만 최근 서해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의 전복사고를 둘러싸고 안하무인으로 적반하장인 중국 정부의 억지를 보면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늘 반복되고 있는 역사, 결코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가끔은 호흡을 늦추고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로움을 가져보자.
때론 바로 그 순간을 통해 역사의 발전이 이뤄질 수도 있음이다.

( 2010. 12. 22)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말의 독성

말의 독성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예전에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함께 했던 신성일씨였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악플의 폐해와 해악을 말하면서 자제를 호소하고 있었는데 악플에 시달린 경험자의 토로여서인지 꽤나 설득력 있게 들렸다.




달갑진 않지만 악플은 우리처럼 공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숙명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결정적 빌미가 되기도 한다.

사사로운 감정 해소나 이익을 위한 불순한 동기로 악플을 가동하는 건 죄악에 가깝다. 그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악플의 횡포를 극복하지 못한 공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다. 그야말로 사람을 퇴로 없는 궁지로 몰아넣는 가공의 위력이다.

악플이 인터넷 공간을 통한 사회악이라면 마타도어는 오프라인에서 공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마타도어의 덫에 걸리면 법원 판결 등으로 무고가 입증되기 까지는 낙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선거판에서 정치적 라이벌에 의해 악용되는 경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잔인함으로 아프게 한다는 건 나 역시 익히 경험한 바다.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식 역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경우엔 어떻게 저렇게 저런 유형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인생에는 딱 떨어지는 ‘모범답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피하고 끝까지 심사숙고하고자 하는 배려가 있어야겠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는 직종의 사람일수록 더 큰 배려의 보호가 필요하다. 아무리 나와 생각이 다르고 미워도 상대방을 충고하거나 비판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금도를 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악플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형틀에 매인 형국이라 하겠다. 애증과 복수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환하다. 결국 중동에서의 분쟁이 911 사태를 야기하는 것처럼 3차 대전의 발단도 크게 이목을 끌지 못하는 소소한 일에서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복의 역사는 돌고 도는 속성 때문에 단절이 쉽지 않고 계속해서 구원으로 돌게 될 확률이 크다.

무엇보다 남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의 악의적 코멘트는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극단적인 반목으로 치닫게 만든다.

악플이나 마타도어 역시 십중 팔구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역지사지 정신을 우리의 의식세계를 주도하는 귀한 가치로 삼기를 권하는 바다.

어떤 상황이 됐건 한번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그나마 살만한 세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전의 역사에서도 역지사지가 가능했다면 많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은 링컨이나 김구, 간다, 마틴루터 킹 등 시대적 영웅들이 남기고 간 미완의 삶을 회한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됐을 터이고 서로 간에 죽고 죽이는 끔찍한 역사의 서술을 통째로 편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신념에 대한 확고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각에서는 죽이고 싶도록 싫거나 반대하고 싶은 ‘악’의 영역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당시 ‘살인’ 감행을 사회정의 구현 차원으로 받아들이던 집단의 정서를 심정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살인이고 범죄행각일 수 밖에 없겠다.

그러나 그 어떤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런 분들의 수명이 좀 더 길었다면 우리는 좀 더 살만한 세상을 소유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최소한 인간의 기본적인 룰과 원칙 위에 모든 소통과 화해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필요이상의 거짓과 과장으로 타인을 아프게 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때론 아픔이 사람을 성숙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 주변의 가족 친지, 친구들이 느끼게 될 고통을 헤아려 달라고.

말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의 삶을 마감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희망과 격려가 넘치고 에너지를 주는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가까운 이들의 따뜻한 이해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명심하도록 하자.



누가 그랬다.

비난은 적게, 격려는 크게 하라고.

(2010.12.20)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새 하늘 새 땅

새 하늘 새 땅


점입가경이다.

정치권이 국회 집단난투극에 이어 엇갈린 ‘고소고발전’으로 2라운드를 펼치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민주당 관계자들을, 민주당은 한나라당 관계자들을 각각 고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한나라당대로 당 홈페이지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국회폭력 현장'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야당의 대응수위에 따라 고소 고발 방침을 정하겠다고 으름장이다.

오로지 당리당략과 이전투구만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구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국회를 유린한,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판단 하에’ ’이 땅에 의회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고 실질적인 법치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고소를 하는 거라는데, 끌어다대는 이유가 참 현란하기도 하다.

자숙한다며 머리를 조아리던 며칠 전 모습이 과연 진실이기는 할까 싶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민 앞에 증거라고 내 놓은 동영상도 저마다의 의도대로 ‘손질한’ 상태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다. 국민을 어떻게 보고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염치도 없이 저마다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목소리 높이고 떼를 쓰면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김질이다.

치고 들어가야 할 쪽이 있고 막아야 하는 쪽이 있다면 피해자를 가리는 일은 너무나 쉽다. 국회 예산안 처리과정에서도 예산처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 측이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거의 상식선이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물리적인 ‘가해’를 통해서라도 일을 성사시키려는 여당 측 행보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범주였다.

그런데도 이런 저런 수상쩍은 ‘꼼수’로 비상 정국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여당 일각의 ‘바람’과 '시도'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뜻대로 되기가 슆지 않을 텐데.



물론 여야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상황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에겐 가해자와 피해자의 영역이 구분된 마당이다. 더구나 여당의원들이 다시는 날치기를 안하겠다며, FTA 추가 협상안도 여야 합의 없이는 처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함으로써, 가해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해 놓은 정황이다.

그런 것을 책임 소재를 미루며 다투고 있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국민은 가만히 있는데 ‘가해자’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며 ‘보상’요구로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을 한참 비껴간 몰염치가 아닐까 싶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로 반성하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정치권의 의지를 보고 싶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며 너나 없이 싸잡아 보기싫다고 야단치고 있는 마당에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까 짐작이나 해봤는지.



뜻밖의 돌발적 변수가 상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뒤집힐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정치판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성 정치인들에게 있어 다음 선거판은 그 어느 선거보다 재앙에 대응하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크기와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 인위적으로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부담이 그저 걱정스럽기 만한 그런 정황 말이다.

방송 등 언론 매체에 노출 빈도가 많았거나 당내 중책을 맡았던 다선의원일수록 긴장 모드가 필요하다. 만일 그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현실정치 감각이 그만큼 둔하다는 것이고 뒤쳐져 있다는 뜻이다.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하면 분명 성난 민심의 질책 앞에 초라한 낙오자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성경에 절묘한 우연이 있다.

40년 동안이나 광야를 헤매며 오랫동안 준비했던 모세는 정작 젖과 꿀이 흐른다는 새 땅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을뿐 밟아보지 못했고, 여호수와와 광야에서 새로이 태어난 사람들의 몫이 됐다.

정치권 역시 하늘과 땅이 새롭게 열리는 시점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땅과 하늘은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새롭게 준비한 지도자의 몫이 될 것이다.


(2010.12.17)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6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트로이 목마?

트로이 목마 ?

날치기 정국의 여진이 위기감에 빠진 여권을 연일 코너로 몰아넣고 있는 모양새다.

급기야 여당의 초재선 23명 의원들이 의원직을 걸고 국회를 바로 세우겠다며 나서기에 이르렀다.

예산안 강행처리를 반성하고 다시는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길 시에는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뭐 이런 내용의 ‘자성과 결의’가 담긴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장한(?) 각오는 생각보다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은 그저 냉소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등 돌린 민심을 사로잡을 만큼의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 23명의 거사에서 트로이 목마를 떠올린다.

이미 패를 다 까 보인, 그래서 실패하게 돼 있는 트로이 목마.

백기를 들고 투항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지금 또 다른 내심을 다른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현실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들이 들어가 앉아있는 목마가 사실은 나무가 아니라 투명한 속살을 내비치고 있는 유리재질인 현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멍청하던지 무심하던지.

트로이 목마의 묘미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략 구사에 있다. 상대방이 수를 읽지 못했을 때만이 진가를 보여줄 수 있다. 상대에게 수를 들키는 순간부터 아무 짝에도 쓰임새가 없는 나무토막이 되고 마는 것을.

그런 점에서 해피앤딩으로 끝난 트로이 목마 원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트로이 목마는 패색이 짙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이 들고 나온 카드는 그동안 너무 많이 남용돼 낡고 식상해진 상태다.

요란한 시작에 비해 늘 흐리멍텅하게 매듭짓기 일쑤였던 마무리의 반복도 국민신뢰를 잃게 한 일등공신이라 하겠다.




이러다간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다.

민주당이라고 형편이 더 나은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분열과 동요를 추스르지 못한다면 민주당 역시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새벽까지 정권퇴진과 잘못된 예산 수정을 외치고 형님과 영부인 예산 물리라고 목청을 높여도 준비없이 조악하게 대응하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없다면 민주당의 미래 역시 암흑일 수 밖에.

화력과 전력전술이 부족한 민주당이 승기를 잡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적잖은 실망과 낙담을 안겨준 한나라당 역시 돌아앉은 국민 마음을 쉽사리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국민이 화가 많이 났다.

정치를 새로 갈아엎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느낌이다. 정치판을 새롭게 짜겠다는 국민적 각오가 강력한 엔진이 되어 시동을 걸고 있는 마당이다.

그 뜨거운 열기가 관전자인 내게로까지 전달되는데 이번에야말로 정치판 대수술이 감행될 것 같은 기세다.

이대로라면 때마다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정작 가장 개혁이 시급한 정치권은 늘 사각지대 속에 숨어버리곤 했던 근본적인 문제점이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정치판에 필요한 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 같은 진정성이다.

말로 때워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의원직이라도 내던질 수 있는 용기와 각오를 보여야 할 때다. 지도부 사퇴 등의 용단으로 특단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상황인데 어영부영 눈 그치기를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사고는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앞으로 정치인이 되려면 도장에 가서 태권도 부터 배워야할지도 모를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젊은 의원 중에서 재도약을 하고 싶다면 모든 권리를 백지위임하고 내 한 몸 던지겠다는 각오 하에 희생정신을 갈고 닦기를 권하는 바다.

밖에서 훈수를 두고 있으니 수가 더 잘 보이는 관계로,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크게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국민 마음을 아우를 수 있는 것, 그것이 정치력이다.

힘자랑 보다는 정치력이 고수로 대접받는 정치판 풍토를 만들자.


(2010.12.16)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인구가 경쟁력이다

인구가 경쟁력이다


중국이 그랬듯 인도가 세계를 평정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순전히 인도가 보유하게 될 세계 최대 규모의 인구가 발휘하는 저력이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지만 바야흐로 인구가 국가 경쟁력인 시대적 상황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정삼각형 형태로 펼쳐진 인구분포도가 탄탄한 인도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2025년이면 5억9000만 명이 된다는 (15세에서 35세까지의) 노동인구 현황에 확실히 그 답이 나와 있다는 생각이다. 이 노동력이야말로 인도를 세계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에너지의 원천이고 조만간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고 전망하는 미 CIA의 시나리오나 유엔의 미래 보고서가 설득력을 갖는 배경이기도 하다.



반면, 2009년 현재 OECD 30개국 회원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다.

실제로 우리의 미래는 연 5000만 명 출산으로 1인당 1.15 출산율로 심각한 저출산 기조에 위협받고 있다. 이대로 저출산 파고를 넘지 못한다면 2800년 무렵이면 ‘종족 소멸’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산아제한을 독려하던 국가 정책이 성행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예비군 훈련 면제를 미끼로 정관수술을 유도하거나 셋째 아이는 의료보험 혜택을 제한하는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출산을 막으려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마음이 무겁다.

인구문제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우리가 그 직접적인 대상으로 지목되고 보니 충격이 크다. 더군다나 저출산 현상이 고령화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도임을 감안한다면 사안은 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격변을 ‘인구지진(Agequake)’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던 언론인 폴 월리스는 "투표권을 무기로 부양의무를 강요하는 노인들과 이에 반발하는 젊은이의 대결이 불가피 할 것"으로 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우선 당장 노인 대상 ‘Medicare’ 효율화로 건강보험의 재정난을 해결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오바마 정부가 성난 노인들을 등에 업고 ‘노인홀대론’으로 맞서는 보수야당의 저항에 직면해 있는 양상도 비슷한 모양새다. 물론 노인들의 과도한 연명치료 대신 아이들의 예방접종을 늘리자며 오바마를 편들고 나서는 세력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 어떤 자율적 기능이나 자연 현상이 고령 인구를 억제시키고 젊은이들의 부양책임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이 형성될 가능성이 대두되기도 한다. 노인 살해 등의 극단적인 수단이 동원될 가능성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식량이나 땔감 등이 부족했던 고대사회에서는 노인봉양 자체가 사치였다.

고령자는 굶어 죽게하는 풍속 등이 만연했다. 한정된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젊은이들에게 쓰는 게 집단 전체의 이익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공공연히 형성됐다.

실제로 고대 카스피 족은 70세가 넘으면 굶겨죽이거나 시체를 벌판에 버렸고 아프리카 대륙 원주민의 경우는 노인들을 고된 노동으로 혹사시켜 진이 빠져 죽게 하는 풍습이 횡행했다. 북극해 일대 에스키모들은 늙어서 스스로의 먹거리를 구하지 못하면 목을 졸라 죽이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버리고 갔다. 운신을 못하게 된 노부모를 자루에 넣은 뒤 나뭇가지에 매달고 활을 쏘아 죽게 했다. 한 발에 목숨을 끊으면 효자로 칭송하는 독특한 문화도 있었다.

우리의 고려장과 유사하게 노인들의 잔여 생명이 비정한 방법으로 처리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듯 하다.



고령화 사회의 심각성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수렁에 발목을 붙잡힌 일본이나 그리스의 사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는 퇴직자 연금 때문에 재정이 파탄됐고 일본은 노인복지의 과도한 지출로 인한 부채비율 증가로 경제대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려야 했다.

생산연령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의 어두운 그늘이 우리라고 비껴갈 리 만무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에 태어난 40∼50대)의 대거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노인세대의 양적 팽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반해 정부의 정책적 고려는 여전히 답보상태니 큰일이다. 국민연금 개혁과 공무원 연금 지급 방식 수정을 통해 대비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기금 고갈과 막대한 적자에 대한 우려까지 해소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현상이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부 차원의 현실적인 복지 정책이 시급하다.

19세기부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프랑스나 스웨덴의 경우 한 때 저조한 출산율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으나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 덕분이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식하고 공공보육 지원 확대를 비롯해 출산휴가 연장, 가족 수당 지급 등의 발빠른 정책적 대응으로 위기 국면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인구사회학자 듀크대 필립 모건교수의 해법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녀 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교육체계를 저출산 현상의 주요 요인이라고 지목했다. 관련 세미나 등을 통해 대가족 제도의 강화와 적극적인 이민 수용을 저출산 문제 해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세대 간 동거를 통해 부모는 정서적 부양과 보살핌을. 자식들은 육아 도움으로 서로 윈윈하게 됨에 따라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지였는데 충분히 동의하는 바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삶만 들여다보는 이기심을 벗는 일이 시급하다. 교감을 통한 세대 교류가 가능해야 대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다산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물쭈물 미봉책으로 꼼수를 부릴 여유도 없다.

자기 위주의 생각들이 만들어 낸 부작용을 극복하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국민대각성 범사회적 운동이라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지막지한 선택을 강요당하기 전에 미리미리 대처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먼 미래의 일이 아니기에.

(2010. 12.15)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혈액형이 문제라고?

혈액형이 문제라고?

인터넷을 둘러보는데 혈액형을 소재로 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가 화합하지 못하는 건 두 분 다 주관이 강해서 양보와 타협을 모르는 B형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담긴 기사였다. 전 현직 대통령들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성격을 혈액형별로 분류해 놓기도 했다.
10명의 대통령 중에서 A형(박정희, 최규하, 김대중)과 O형(이승만, 윤보선, 노무현)이 각각 3명이었고, B형(전두환, 이명박)과 AB형(노태우, 김영삼)은 각각 2명이었다.
그러나 이들 대통령들의 통치 스타일이나 성격 등이 -혈액형이 같건 다르건- 제각각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바다. 미국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낼 수 있다. 똑같이 O형인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 경우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과 같은 AB형인 오바마를 보더라도 이들 사이에 두드러지는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소재 빈곤을 넘기 위한 고육책의 기미가 엿보이는 기사라는 판단이다. 무엇보다도 혈액형으로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스스로의 지면으로 입증하고 있다. 불과 10명의 데이터를 통해 대통령의 직위나 리더십에 맞는 특정 혈액형을 판단하려는 시도 역시 선정성 혐의를 벗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일반적으로 혈액형이 화제에 오를 때가 많다. B형이니까 어떻고 AB형이니까 어떻다는 등 혈액형이 사람의 특질을 규정하는 정보가 되고 더 나아가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더라도 혈액형이 인간의 특질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나 특정 리더십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게 하는 기준치에 있어서 더 그렇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부모와 가정환경을 가졌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또 어떤 혈액형인지 등은 참고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성공적 ‘리더십’ 인자의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선천적인 기질보다는 양성되는 경로와 과정은 물론 리더가 된 이후 리더십이 발휘되는 과정까지도 포함돼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소신이다.

늘 그렇듯이 리더의 주변부가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주변부 특히 측근 인사들이 리더를 망가뜨리는 경우는 실패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화려한 시작에 비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고 패자의 낙인 속에 스러져 간 리더가 한 둘이 아니다.
국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경험한 바지만 특히나 ‘용비어천가’ 관리만 잘해도 리더십의 기본은 한다는 생각이다.
권력의 중심이 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위치의 권력이든-주변의 달콤한 아부가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려도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아부가 없을 때 섭섭해지고 불쾌해지는 심리변화를 경계해야 한다. 마치 ‘교황 무오설’처럼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확신하게 만들어 ‘치명적인’ 오류의 빌미가 된다는 게 경험자들의 일관된 토로이고 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혈액형조차 아부의 도구로 쓰였다는 믿지 못할 얘기도 전해진다. 권력의 당사자가 무슨 혈액형이었기 때문에 리더가 되는 게 당연하다는 류의 아부가 넘치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감언이설에 대한 경계심을 독려한 선인의 가르침이 유난히 많은 현상도 그 해악의 정도가 어느 정도 인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달콤할수록 더 치명적인 것이 아부의 생리다. 특히 인의장벽은 리더의 오류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권력의 전환기 때마다 제고돼야 할 필수 명제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날치기 예산 정국으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국회의 모습이 부끄럽다. 민생 예산이 무더기로 잘려나가는 와중에 특정지역 예산은 몇 배로 뻥튀기됐다는 분노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 몸둘 바를 모르겠다.
뭐가 문제일까 싶다. 특별한 능력으로 국회의원이 됐다고 생각하는 건지, (도달하기까지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그 자리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심판의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건지.
최소한 위임받은 권력의 유한성을 생각했다면 벌릴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다는 후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지만 현실을 보면 아직도 미몽을 해메고 있는 게 틀림없다.

모든 것이 순간에 지나지 않은 것을.

(2010.12.12)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딜레마

딜레마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카르멘 갈라 콘서트를 관람했다.

역시나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다는 명성답게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이었다. 투자한 시간이나 노력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잘 정제된 무대와 주연배우의 뛰어난 기량이 '투우사의 노래'를 비롯해서 '하바네라', '집시의 노래' 등 귀에 익은 주요 아리아와 중창의 선율을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인간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갈등구조를 선율만으로도 생각의 고리를 이어주며 흥미를 부각시키는 데 손색이 없는 무대였다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지만 그 반면 죽여서라도 사랑을 쟁취하려는 돈 호세의 욕망. 상대의 헌신적인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다가 속박을 거부하고 차라리 목숨을 포기하고 마는 카르멘의 선택.

카르멘과 돈 호세의 비극적인 운명은 매번 강렬함으로 나를 자극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잔영으로 남아 머릿속을 지배하던 ‘마지막 장면’이 급기야 꿈으로까지 재현될 정도니 가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가는 정치 현장 곳곳에 ‘카르멘’의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에게서 우리 인간의 원형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이고 누구에게도 통제받고 싶지 않은 자유를 향한 본능과 원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용의가 있는 극단성이 카르멘 주인공들의 역할에 오버랩 되면서 머릿속이 혼란해진다.

무책임과 무절제가 판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영락없는 여주인공 카르멘이고 전략부재로 실익없이 우왕좌왕하는 민주당에게서는 돈 호세의 답답함이 읽혀진다. 안하무인으로 방종을 일삼는 재벌 2세와 그런 재벌 2세를 응징하겠다고 나선 국민에게서 또 다른 카르멘과 돈 호세를 보게 되는 것 자체가 비극이 아닐까 싶다.

분명한 건 인간의 모든 가치 기준이 상대적으로 가동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역할을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합과 소통으로 하나가 될 여지보다 분열과 반목에 익숙한 집단적 속성에 비추더라도 인간은 성선설보다는 성악설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인간을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이런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그나마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돈하려면 제대로 된 현실 인식으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들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무한대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 상수로 존재하는 한 폭력과 강압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고질적 병폐로 자리답게 될 공산이 크다.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처 방안이 더 없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시스템 구축 차원의 고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자유로우면 된다는 무책임은 무정부 상태가 되기 쉽고, 원하는 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은 폭력 지상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두 근본 원리를 잘 연구하면 100% 만족은 아니더라도 근사치에 근접할 수 있는 모범답안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은 현실이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그렇더라도 공연은 좋았다.

눈이 내리고 음악은 흐르고 좋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어서 유쾌한 시간이었다.


(2010. 12. 10)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9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명인, 앙드레김

명인, 앙드레김


앙드레김, 세상을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난 그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타인을 위해 기꺼이 온정을 베풀던 생전 행적이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이 그를 새삼 돌아보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그를 추모하고자 열린 자선기금 마련 패션쇼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식이다. 안성기, 이병헌, 김희선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해서 고인의 ‘따뜻한 마음’을 되새겼다는 후문이다.
이번 패션쇼의 수익금은 유니세프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라는데 이 역시 생전에 유니세프 대사를 맡아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던 앙드레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한 취지란다.
디자이너로 40년 외길을 사는 동안 세계 평화를 염원했던 그는 가는 곳마다 ‘나눔’의 실천으로 소통과 화해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우한 이웃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끊이질 않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기부로 그늘진 곳을 보듬던 그의 손길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로 인해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 되짚어 생각하게 된다.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고 있는 종교간 갈등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봉착한 느낌이다.
급기야 정부의 불교계 예산 대폭 삭감에 반발,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전국 사찰 출입금지한다는 조계종 선언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대치를 비롯, 지역갈등, 계층 갈등, 정치권 갈등 등 산적한 분열 양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종교간 반목까지 더해져 퇴로가 안 보일 정도로 혼미한 형국이다.
이제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 할 것 없이 종교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이 사회 전체가 수많은 다양성 속에서 편안하게 국민적 에너지를 통합할 수 있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이 사회에는 다양한 종류의 종교가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생존이나 영역확장을 위해 투쟁을 선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종교 영역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공격이나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 일 역시 이제는 멈춰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진리를 통해 영생을 지향한다는 종교 본연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포용력이 아쉽다.
다문화 가정이 우리의 현실이 된 지 오래건만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에게 다문화 가정은 더 이상 이질적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개성과 장점을 살려 우리 속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수용해야 할 의무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수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다른나라, 특히 우리보다 후진국가의 문화 형태를 배척하는 국수주의적 요소가 폭력의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미국을 패권국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모든 것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던 ‘멀팅 폿’ 정신이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포용력이야말로 우리가 21세기 선진국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선결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식석상에서 몇 번 스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앙드레김을 잘 알지 못한다.
백색의 패션, ‘김봉남’이라는 본명, 특이한 억양과 화장한 얼굴 등의 정보가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아, 앙드레김 티셔츠를 2벌 갖고 있다)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그의 사후 평가들이 나 자신이 품고 있던 기존의 관념까지도 재점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와는 분명 다른 삶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됐든 그의 삶에 존경받아야 할 이유와 또 다른 절대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각자의 박제된이미지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 앙드레김의 총체적인 삶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또 존경할 부분은 존경해야겠다는 일종의 궤도 수정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인 일관되게 타인과의 소통을 자신의 삶의 목록에 첨부하고 나눔과 수용의 형식으로 실천했던 앙드레김의 인생철학에 대한 존경의 의미일 것이다.

명인의 생전 궤적이 제대로 된 삶의 흔적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각성을 내게 줬다.
놀라운 영향력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용과 나눔의 삶을 고찰해보는 이 밤이다.


(2010 . 12. 9)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3대 세습에 부쳐


3대 세습에 부쳐


삼성이 오너 일가의 전진배치를 통해 본격적인 3세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장남 이재용과 장녀 이부진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젊은 삼성‘ 구현‘에 나선 것이다.
40세 안팎인 이들 3세들의 경영 능력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LG나 두산 등 앞서 3대 세습이 이뤄진 기존의 회사들도 새삼 주목을 받는 분위기다.
주가가 일제히 뛰었다니 출발부터 나쁘지 않은 조짐이지만 부의 대물림을 바라보는 세간의 정서는 다른 것 같다. 김일성의 3대 세습과 비교하면서 이런저런 문제점을 제기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일본이나 유럽에 가 보면 한 집안의 가업이 몇 대에 걸쳐 이어지는 현상이 드물지 않다. 가업에 자부심을 갖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일의 종류와 무관하게 고상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재벌기업의 대물림을 이런 경우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방대한 조직의 규모나 국가전체에 미치는 적지 않은 영향력 등 근본적인 점만 놓고 봐도 그렇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세금이 전제된다면 부의 대물림은 경원시되거나 견제받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권장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한민국 재벌가의 납세 의식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 기준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심심하면 몰상식한 행실로 물의를 일으키는 재벌가의 사건사고 소식 역시 재벌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결국 구속으로 처리되긴 했지만 이번 ‘최철원 사건’만 해도 재벌가의 현실 인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라 하겠다. 대부분이 재벌가에 호의적이지 않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사리 재벌을 존경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인지 평소 재벌가의 젊은 2세 경영이 어딘가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2세라는 단어보다 젊다는 단어가 더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물론 우리나라 2세 경영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건희, 정몽구 회장을 보면 일반적인 예상치보다 훨씬 잘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선대보다 훨씬 더 도약적으로 가업을 안정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선대의 성공이 모든 긍정적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이번 삼성의 파격 행보 역시 알 수 없다. 재벌가의 무모한 모험기로 끝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결국 모든 문제는 부의 대물림 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당사자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자기 할 탓이고 운용할 그릇의 문제인 것이다.

원론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지만 성공적인 부의 대물림을 위한 주의사항을 짚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부의 대물림이 ‘특혜’로 인식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후계자 수업도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는 관점에서 진행시켜야 한다.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건 양보할 수 있는 인내심과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길러야겠다.
대인의 풍모를 가진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할까, 그래야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방대한 조직을 탈 없이 이끌어 갈 수 있다.

재벌가의 후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CEO가 된다고 자동으로 정돈된 자질이나 인격 등이 부록으로 따라오게 돼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계자의 완성된 인격을 위한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젊은 나이에 오너가 된 재벌 2,3세들이 빚어내는 반사회적 행태들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무모한 부의 대물림이 초래한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파생시키는 위화감이나 불쾌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고 그것이 고스란히 재벌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이 생겼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의 부자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은 뿌리가 깊다. 그리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결자해지라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 재벌에게는 좀 더 적극적인 노력으로 해명하거나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원천적 의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재벌가의 재화를 위해 많은 국민들이 희생의 땀을 흘려야 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 기업이 회사의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 경영체제를 달리하는 건 사적 선택일 수 있지만 결코 자유로운 영역이 될 수 없다.

더 이상의 반목과 불화는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우리에게도 존경받는 재벌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의 국격을 재는 진정한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2010. 12.8)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국익엔 모두 하나로

국익엔 모두 하나로



한미 FTA 재협상 후폭풍이 정치권을 긴장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훌륭한 업적’이라며 반기는 여당과는 달리 야당 측은 “퍼주기 굴욕 외교”의 전형이라며 비준을 반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FTA 재협상 타결 이후 사전 합의한 발표시간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신나’하는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을 보면서 우리 측이 뭔가 크게 바가지 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살펴보니 미국 자동차 업계나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어려움을 배려한 흔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야당의 반발이 마냥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명확한 진상을 알고 싶어서 2박 3일을 움직였다. 주변 인맥을 가동해 (외무부와 대사관, 그리고 자동차와 농수산물 업계 관련인이나 국회의원, 기자 등과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한미 FTA’를 나름 취재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이번 재협상 과정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황에 지배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염두에 두고 해석돼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우리의 당면과제로 떠오른 '안보'가 우리 측 입지를 좁혀버린 불가피성을 감안하자는 것이다.

한미 간의 긴밀한 협조와 공동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진 시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협상결과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미국과의 유대관계를 결속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한 측면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불이익’ 국면이 아니라 일정 정도 ‘소득’ 개념으로 정리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가 독자적인 방위력을 갖췄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안보가 최대 화두가 되어버린 현 시점에서 최고 우방국과의 교감을 위한 배려는 지극히 당연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 관계가 소원해진 중국은 결정적인 순간 북한 편을 들 공산이 크고 일본이나 러시아는 캐스팅보트를 쥘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가깝게 접촉할 대상은 미국 뿐이다.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득 생전에 한미 FTA가 대한민국 국가 안보에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역설했던 황장엽씨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떠올려진다.



게다가 이번 재협상의 최대 이슈인 자동차 문제만 해도 생각보다 타격이 크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내가 접촉했던 자동차 업계 최고위층 인사는 '실질적으로는 잃은 것이 별로 없다'고 까지 반응했다. 어차피 상용트럭 시장은 기술력 한계 때문에 불이익이 추가될 상황이 아니고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자국 자동차 업계에 생색을 낼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의미가 더 크다는 판단이었다.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 시장을 개방해도 품질 경쟁에서 손색이 없는 우리가 영향받을 일이 없고 BMW나 아우디 등 독일과 일본의 등쌀에 미국 자동차가 설 자리가 쉽지 않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다만 아직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쇠고기 협상과정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미국과의 재협상이 다른 나라들의 재협상 요구로 확대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내부적으로 더 많이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국회 인준 과정에 있어서도 여당처럼 고분고분하기보다 절대 인준불가를 외치는 야당의 완강함이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코 녹록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홍역을 치루는 정부의 모습이 이후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방패막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기준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권의 당리당략 차원의 접근은 조금 불편하다.

국익 앞에서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할 일이다.


(2010. 12. 6)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4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용이 되다

용이 되다


12월 4일, 오늘은 유난히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된 하루였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오늘의 벅찬 스케줄을 걱정했고 당일인 오늘 아침에는 이른 시간 일어나 동선 처리를 구상하고 연구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일과였다.
서로 반목하던 지인들을 화해시키는 일과를 필두로 사촌과 친구 아들의 혼사가 치러지는 2곳의 결혼식장을 찾았고 외빈으로 초대받은 의정부 중.공고 동문회와 경민고 동문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했다. 그리고 연이어 일정이 잡힌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와 미 8군 샤프사령관이 주관하는 송년모임, 죽마고우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거의 살인적인 일정이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보니 그 어느 때보다 마무리가 잘 됐다는 생각이다.
포만감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사촌동생이 아들을 장가보내는 식장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지들과 안부를 나눌 수 있었고 아들 결혼식에서는 오래된 인연들이 진정성을 담아 건네는 정겨운 덕담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지역 동문회 모임에서는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사회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에서는 이국 땅에서 고충을 나누며 열정을 쏟던 동무들과의 젊은 날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있던 절친들과의 만남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기까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오늘 아침만 해도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무거운 마음이었다. 개운하지 않은 뭔가에 짓눌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나 둘 모임이 진행될수록 가슴 속 먹구름이 걷히면서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그리고 사명들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모임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보이며 기대감을 보여줬던 정황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말 오늘은 가는 곳 마다 유난히 내게 집중하는 분위기였고 고스란히 에너지가 되어 나의 의욕을 자극하고 독려했다. 그리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만하게 채워줬다. 덕분에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나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설레기까지 했다.
역시나 내게는 못 말리는 정치적 DNA 인자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연말연시가 되면 갖가지 형태로 많은 모임이 진행된다.
그 모임들을 통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비디오를 돌려보듯 지난 시간을 현실에 비춰보며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생각처럼 모임이 좋은 결말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지나친 망년회 음주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사고로 이어지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번만큼은 무탈하게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술에 취해 과거를 잊자는 그런 취지의 송년 모임도 카타르시스를 위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망년회를 하는 그 순간조차도 곧바로 과거로 편입되는 게 인간사임을 감안할 때 차라리 미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는 송년모임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모임을 통해 어려워진 경기에 풀죽은 이들을 기운 차리게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없는 성공이라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임을 주도하는 이들의 철학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좌중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각 모임을 주재했던 회장단 여러분께 감사하고 싶다.
내게 참으로 큰 행복을 줬다. 용이 되어 승천하는 기세를 느끼게 했다.




(2010. 12. 4)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용이 되다

용이 되다

12월 4일, 오늘은 유난히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된 하루였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오늘의 벅찬 스케줄을 걱정했고 당일인 오늘 아침에는 이른 시간 일어나 동선 처리를 구상하고 연구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일과였다.
서로 반목하던 지인들을 화해시키는 일과를 필두로 사촌과 친구의 혼사가 치러지는 2곳의 결혼식장을 찾았고 외빈으로 초대받은 의정부 중.공고 동문회와 경민고 동문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했다. 그리고 연이어 일정이 잡힌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와 미 8군 샤프사령관이 주관하는 송년모임, 죽마고우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거의 살인적인 일정이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보니 그 어느 때보다 마무리가 잘 됐다는 생각이다.
포만감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사촌동생이 아들을 장가보내는 식장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지들과 안부를 나눌 수 있었고 아들 결혼식에서는 오래된 인연들이 진정성을 담아 건네는 정겨운 덕담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지역 동문회 모임에서는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사회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에서는 이국 땅에서 고충을 나누며 열정을 쏟던 동무들과의 젊은 날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있던 절친들과의 만남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기까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오늘 아침만 해도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무거운 마음이었다. 개운하지 않은 뭔가에 짓눌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나 둘 모임이 진행될수록 가슴 속 먹구름이 걷히면서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그리고 사명들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모임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보이며 기대감을 보여줬던 정황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말 오늘은 가는 곳 마다 유난히 내게 집중하는 분위기였고 고스란히 에너지가 되어 나의 의욕을 자극하고 독려했다. 그리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만하게 채워줬다. 덕분에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나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설레기까지 했다.
역시나 내게는 못 말리는 정치적 DNA 인자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연말연시가 되면 갖가지 형태로 많은 모임이 진행된다.
그 모임들을 통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비디오를 돌려보듯 지난 시간을 현실에 비춰보며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생각처럼 모임이 좋은 결말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지나친 망년회 음주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사고로 이어지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번만큼은 무탈하게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술에 취해 과거를 잊자는 그런 취지의 송년 모임도 카타르시스를 위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망년회를 하는 그 순간조차도 곧바로 과거로 편입되는 게 인간사임을 감안할 때 차라리 미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는 송년모임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모임을 통해 어려워진 경기에 풀죽은 이들을 기운 차리게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없는 성공이라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임을 주도하는 이들의 철학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좌중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각 모임을 주재했던 회장단 여러분께 감사하고 싶다.
내게 참으로 큰 행복을 줬다. 용이 되어 승천하는 기세를 느끼게 했다.


(2010. 12. 4)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메세나 운동

메세나 운동



10초의 중요성이 오늘처럼 절실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0.17분도 채 안되는 시간 때문에 초대받은 대한민국 미술축전 개막식 테이프 커팅을 놓쳤다. 식장에 들어서긴 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식이 이미 시작돼 버린 것이다.
그래도 모처럼 만난 김영선 국회의원의 반가운 얼굴과 차대영 미술협회 회장님의 진심어린 환대가 테이프 커팅을 놓친 아쉬움을 덜어줬다.
경민대학 학생들의 활약상도 기쁨에 일조했다. 행사장 내 마련된 부스에서 경민대학 주관으로 캐리커쳐 그려주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인파가 몰리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정창균 작가님이 이번 미술축전에서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식이었다.
정 작가님과는 5년 전 작품을 구매하면서 시작된 인연을 나누고 있는 사이다. 실례일지 모르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솔직히 그의 예술적 자질까지 알아봤던 건 아니다. 그저 성실히 작품에 임하는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탐구와 변화를 통해 작품의 질적 가치를 승화시켜 온 그를 지켜봤다. 경민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화려하기 보다는 과묵한 모습이 맘에 더 들었었다.
그동안 일관되게 소재로 삼았던 원 대신 최근 들어 사과나 꽃 등을 소재로 화풍으로 바꾼 것도 그가 추구하는 변화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얼마 전 그와 만난 자리에서 ‘예전의 작품은 약간 형이상학적이어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느낌이었는데 요즘 작품은 생동감이 느껴져 개인적으로 훨씬 더 좋은 느낌“이라고 감상을 전한 적이 있는데 그의 최근작 중 하나가 수상작으로 선정돼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전문적인 콜렉터도 아니고 뛰어난 예술에 대한 심미안이 있는 것도 아닌, 단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뿐인 나로서는 그저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작품을 골랐는데 결과적으로 1등 작가의 작품을 고른 것이어서 덩달아 인정받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작품 구매를 통해 미력하나마 예술인들을 조력하고자 했던 나의 진심이 보상받는 기분이어서 기쁨이 배가되는 것 같았다.




진짜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굉장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작품활동에 임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렇다고 우리 작가들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이번 미술 대전에 출품된 작품들만 해도 눈에 띄는 작품성으로 작가들의 우수성을 입증할 만한 작품들이 많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재에 밝지 못해 정당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환경이 어려움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어차피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 시점에 국가가 나서서 작가들에게 세계를 향할 수 있는 둔덕이 되어 준다면 우리 역시 세계 유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를 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골프에서도, 피겨스케이트에서도, 수영에서도 ‘일등’을 해내고 있는 우리다. 하물며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데 예술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뉴욕이나 런던의 경매장에서 천억대의 진가를 가진 대한민국산 예술 작품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문화 예술을 사랑받고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진정한 의미의 일등 국가, 일등 국민이 될 수 있다.
유럽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의 피렌체만 해도 그렇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뒤덮일 정도로 중세 예술의 보고가 되어있는 이 도시 역시 메디치 가문의 예술후원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술 관련 학과 개설에 관심을 갖고 수목원 수튜디오나 예술문화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에 열정을 쏟는 이런 과정 모두가 우리 문화 예술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한 충정이
라고 할 수 있다.



이참에 우리 모두 주변의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전역에 메세나의 물결이 차고 넘치게 만들어보도록 하자.
적은 걸음이라도 개개인이 대한민국 예술 확산의 전령사를 자처하고 나선다면 대한민국이 세계 예술의 선두로 자리매김하게 될 날이 멀지않았다는 생각이다.
여러분 모두가 메세나 운동의 선두주자로 나서면 뭐든 할 수 있다.
더불어 일산 킨텍스에서 6일까지 전시되는 대한민국 미술축전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 있으시길 바란다.

(2010. 12. 2)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경민 상아탑에 초대합니다.


경민 상아탑에 초대합니다.


12월, 진학 시즌이다.
저마다의 진로를 놓고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가는 계절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로는 학교 측 역시 만만치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학생은 학생대로 좀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싶어서, 학교는 학교대로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를 향한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왜 ‘경민’이죠?”
가끔씩 주변 사람들이 경민대 총장 직위를 가진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아마도 경민학원의 우수성을 말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럴 때 마다 제법 의기양양하게 내놓는 대답이 있다.
“저는요, 제 세 아이들 모두를 경민에 보냈습니다”
사실이다. 나는 내 아이들을 모두 ‘경민 동문’으로 만들었다.
위장전입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식을 강남 8학군에 보내는 열혈부모가 되겠다는 뜻은 없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기준으로 치자면 어느 부모 못지않은 나다.
그런 내가 주저없이 아이들을 경민에 보낼 수 있었던 건 어느 학교보다 질 좋은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는 교육자로서의 자부심이 아버지로서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경민학교에 갖는 나의 자부심은 크다.
민족정신 함양과 인성교육을 우선시 하는 설립이념이 있는 한 경민의 꿈과 희망은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이런 자부심이 경민인들이-학생이 됐건 교직원이 됐건-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근원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도를 넘는 청소년 관련 범죄나 학원 문제가 어제 오늘의 고민거리는 아니다.
학생 개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동안 인성을 도외시하고 성적 만능만 외치던 학교 교육의 병폐가 초래한 후유증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경쟁교육만이 능사인양 점수벌레로 내몰았던 학교 교육이 오히려 학생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됐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 대목에서 신앙교육과 효충 교육을 근간으로 인간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전인교육에 정성을 쏟고 인성 강화를 강조하는 경민학원의 교육방침이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다.
조금은 진부해 보일지 모르지만 '인간이 된 후에 학문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경민의 슬로건이야말로 퇴로를 잃고 궁지에 몰려있는 이 시대 교육 현장에 필요한 사표가 아닐까 싶다. .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예의와 도덕을 근간으로 한 인성교육을 중시한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기약 할 수 있었고, 쇠퇴 일로에 놓인 현실이 인성교육을 소홀히 한 탓이라며 자책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봐도 틀리지 않은 추측이다.
경민학원의 가치는 예견되는 문제점에 일찌감치 대비한 남다른 선견지명에 있다고 감히 자부한다.
학생들에게 성적에 치중하기보다 그에 앞서 인간이 될 것을 주문했고 또 비중을 두고 교육했다. 인간이 되어야 부모님을, 더 나아가 조국과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품격있는 일등국민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민족학교로서의 차별화된 교육방침을 위해 애쓴 흔적이 적지 않다.

학생들의 자존감 고양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점도 경민학원 만의 강점이다.
신앙교육을 통해 저마다 하느님 섭리에 의해 세상에 온 위대한 피조물임을 강조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개념으로 학생들 스스로에 대한 자존의식을 고양시켰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저버리지 않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는 교육을 지향했다. 이 역시 경민학원 만의 차별화된 교육방침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선생님과 학생이 한마음이 되어 학생들로 하여금 저마다 타고난 달란트를 바탕으로 각자의 인생에 꿈과 목표를 갖게끔 힘을 모았다. 침체된 경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달란트를 찾아내서 희망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다며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통해 기를 불어넣었다.
꿈과 목표를 갖되 개인적인 관심사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가치관이 형성되도록 기도로 최선을 가르치는 게 경민대학의 교육목표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아무 것에도 발목 잡히지 않고 세계 시민이 되어 마음껏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경민학원이 그 역할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리더를 키우려는 경민대학에서 저마다의 자신의 미래를 찾기를 권하는 바다.
학생 저마다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개발, 접목시켜 ‘특별한 대한민국 인재’로 길러낼 수 있다는 교육적 확신이 경민대학에 있음이다.
21세기 세계 속 대한민국의 견인차 역할을 감당할 경민대학의 다양한 학과와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국제적인 프로그램의 가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새롭게 부상하는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함으로써 국제화 시대를 철저히 대비하기 위하여 한발짝 더 다가섰다. 이제 시작하는 대학이지만 전직 국회의원, 고위관료, 성공적인 기업가, 전 육,해사관학교 교장, 전 교육감 출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던, 존경 받으시기에 충분한 분들을 교수진으로 모셨다.
무엇보다도 학교의 리더십과 공유된 비전으로 학생들의 무한경쟁을 뒷받침하겠다는 빛나는 신념을 주목해 주길 바란다.

경민대학이 젊은 그대들과 미래를 함께 하기 위해 그동안 준비해 왔던 모든 기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줄 기회를 주기 바란다.
경기도 의정부 가능동 언덕배기에 있는 경민대학에 여러분의 미래를 실어보시라.

분명 함께 빛나게 될 것이다.

(2010. 12 .1 )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3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


미국 외교의 ‘불편한 진실’을 온라인에 폭로하고 나선 위키리크스의 이번 ‘한방’은 간단치 않은 듯하다.
이번만큼은 단순히 미국의 체면을 구기는 선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조짐이 역력하다.
이들이 입수한 ‘최근 3년 동안 대한민국을 포함한 270여개국에 주재하고 있는 해외 공관과 주고 받은 미 국무부의 외교 전문 25만 여건을 통한 ‘생생한 역사(?)’ 전달 작업은 당분간 멈춰지지 않을 듯하다. 각종 압력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창업자 줄리언 어샌지는 폭로작업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은 죽을 맛이겠지만 역사의 현장을 날 것 그대로 접하게 된 입장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비밀의 성찬 - 역사가의 꿈이고 외교관의 악몽이다. 앞으로 몇 주간 독자들은 현재진행형인 역사를 코스요리로 즐기게 될 것“이라고 평하며 위키리크스의 행보를 두둔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폭로를 통해 반기문 유엔총장을 비롯한 유엔고위 관계자에 대한 일상적 사찰과 해킹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려는 힐러리 클린턴의 지시가 드러나 국제사회의 이목을 모았다. 특히 반기문 총장과 관련해서는 의사결정 방식과 유엔사무국에 대한 영향력 파악은 물론 DNA, 지문, 홍채 스캔 등 생물학적인 신체정보들, 그리고 신용카드 번호, 이메일 주소, 전화 등 각종 통신 번호 등도 파악하라는 지시가 포함됐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사무총장 사찰은 불법’임을 분명히 한 유엔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지침을 지시한 미국의 이중성이 국제사회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 셈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로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 생명이 문제시되고 있고 미국이 숨겨진 치부의 실상을 드러냈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각국에 대한 미국 외교적 시각이 적나라하게 표출돼 있는 문건 공개로 인해 전 세계 외교가가 술렁이면서 일부에서는 심각한 외교분쟁이 염려되는 상황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버린 후유증으로 미국이 입게 될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놀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런 일들은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관행적이거나 전략적이거나-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범주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이번 일로 스타일이 구겨지긴 하겠지만 국익을 위한 업무 수행이라는 대명제임을 내세워 그다지 자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가끔 미국인들과 다른 미국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대체로 술수도 잘 모르고 규율과 규범을 잘 지키는 순박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같은 미국인의 모습으로 미국을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 미국을, 미국인들이 모인 공동체 개념 보다는 외부의 환경과 무관하게 스스로를 위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독특한 캐릭터의 거대한 집단 개념으로 파악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미국의 몇 개 얼굴만으로도 알 수 있다.
1905년 가즈라 태프트 조약으로 필리핀과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었고 6.25 때는 한국전쟁을 도맡아 해결사를 자처했고 1945년 이후엔 일본과 한국의 국방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우방국으로서 양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월남전, 한국전, 이라크 전쟁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현장이 미국의 아젠다에 따라 운명이 엇갈린 희비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주도하에서 한국이건 필리핀이건 일본이건 월남이건 이라크건 그 때 그 때 주어진 조연의 역할에 충실했고 어쩌다 타이밍이 잘 맞으면 서로가 최대의 이익을 나눈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 역사가들도 많이 있다. 오직 미국의 관심사는 그들의 행복과 번영이라고 혹평하면서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위키 리크스 폭로 파동을 충격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고 우리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본 명제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수 많은 변수들 중에서 과연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이고 그 길이 어디에 있는건지 하는 것들을 우리 나름대로 알아내고 판단해서 결정짓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있어야겠다.
존경하는 반기문 총장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소 내가 알고 있는 반 총장의 (외교적 역량 등)‘내공’ 대로라면 그는 이번 사건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이 도청하고 있다면 그 상황을 이용해서 역으로 도움이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어차피 점점 단조로워지는 ‘정의’ 보다는 정글의 법칙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시점이다.
고정된 틀에 갇혀 옛노래로 권리 주장에 매몰되다간 밥 굶기 딱 좋은 시대적 상황에 우리가 살고 있다. 세계적 조류를 질서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면서 살 궁리를 잘 해야 그나마 자기 밥그릇을 챙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전시 상황임에랴.

(2010.11.24)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뭐하고 있었는가

뭐하고 있었는가


연평도 참사에 희생된 두 젊은 병사의 영결식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과연 우리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국가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헝클었기 때문이다.

시중 민심을 보면 결코 가벼운 상황이 아니다.

북 한 도발 당시 정부의 미온적 대응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한 국민 불만이 팽배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엊그제 청와대를 다녀간 중국의 다이빙궈도 국민의 불편한 심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오만한 중국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다는 불만이 정부불신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국민 마음이 떠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공 자는 나라를 지킬 수 있는 3대 요소로 식량, 국방,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꼽고 그 중에서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신뢰 부분이 문제시 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국가를 위해서나 이 정부를 위해서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 한명의 자국민이라도 위기에 처하면 전직 대통령이 직접 움직일 만큼 자국민 보호에 투철한 미국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70년 대 북한군 도끼만행으로 미군병사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이례적으로 김일성이 사과를 하고 나선 배경에도 분노를 감추지 않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북을 압박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폴 케네디 교수는 오래 전 자신의 명저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상대적 쇠퇴기에 직면하게 될 미국 등 당시 일등국가의 미래를 경고해 주목 받은 바 있는 세계적 석학이다. 일등국가가 패권국 역할 유지를 위해 투입한 막대한 군비가 종국에는 경제적 도전에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거라는 주장이었는데 20여년이 지난 현재를 보면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 책에서 군대의전과 의식 등 외형을 중시하면 효율성이 저하되고 로 전투력을 치중하는 중시로 을 중시하는 군대는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군대는 전투력을 상실하고 군은 물론 국가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골치덩어리로 전락하고 해당 국가 역시 퇴조의 길을 걷게 된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지금 우리 현실에 필요한 조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차원에서 신임 국방부장관의 역할이 중차대한 시점이다.

과 거 합참의장 취임식에서 강군론을 폈고 행정조직처럼 보고위주로 움직이거나 진급에만 신경쓰는 무기력한 군의 모습에 일침을 가했다는 등의 김관진 신임 국방부장관 내정자 행적이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와 5억원 정도의 금융자산, 15년 된 크레도스 승용차가 재산의 전부이고 무엇보다 위장전입 경력이 없는 ‘청백리’라고 한다.

우선은 다행스럽다. 그 정도의 가치관을 가진 분이라면 앞으로 달라질 수 있으려나 기대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미 항모 조지 워싱턴함이 서해에 진입하는 등 사상 최대의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된 지 이틀째인 현재 북한은 서해 전방 지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실시하거나 미사일을 비롯한 전력을 전진 배치하는 대응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솔직히 국민 중에는 이렇게 막강한 미국의 전력이 우리를 받쳐주고 있으니 국방걱정 덜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으로 이번 합동훈련을 바라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속셈을 간파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미국이건 중국이건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정책도 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갈수록 자국 이익에 충실한 모드가 세계 정의로 재편되는 추세다.

더구나 미국, 북한. 중국, 일본 등의 노림수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우리의 특수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합동훈련 과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 의존하기보다 실속있는 합동훈련이 되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는 얘기다.

우리의 안보를 남의 손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선 안된다.

그 때 그 때 상황마다 우리 국익에 맞게 이끌어야 한다는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더 이상 국민의 무고한 죽음을 무위한 희생으로 만들어서는 안되겠다.

국가는 뭐하고 있었느냐는 힐난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추태를 보여서는 안되겠다.

국민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

그것이 21세기를 주도할 대한민국 정부의 최우선적인 당면 과제임을 잊지 말자.

자립, 자조, 자결의 정신 무장으로 온 국민이 결집했던 그 때의 결기를 되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2010.11.29 )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눈이 오네







눈이 오네

- 홍문종 -







까만 하늘에
텅빈 가슴에
하얀눈이 내리네


별도 달도 숨은 까만 하늘에
숨도 힘도 쉬는 텅빈 마음에
하얀 눈이 내리네


아스라히 춤추는
밝그레한 불빛조차
외로워 잠 못이루는 밤에


내가 거기에 있고
그대가 또한 여기에 있음을
알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눈부시게 까만 하늘에
더 커져버린 텅빈 가슴에
하얀 눈은 계속 내리 앉을뿐


텅빈 가슴을 연다
그리고 기도한다
까만 하늘을 하얗게 수 놓으라고


까만 하늘을 연다
그리고 무릎을 꿇는다
텅빈 가슴 까맣게 채우라고


태양의 따스함도
사랑의 즐거움도
잊은 듯한 새벽에


까만 하늘의 찬 공기에
텅비어 아쉬워하는 가슴에
하얀 눈이 내려 주시니


야속하지도
슬프지도
아니한


춥지도
아프지도
아니한


하얀 눈이 내리네
까만 하늘에서
텅빈 가슴에....


(2010.11.29)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행복하지?

행복하지?


동생 원종이의 5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눈물로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동생의 몇 몇 친구들이 모여 생전의 그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강건했지만 건강을 잃고 유난히 힘든 삶을 살다가 떠난 동생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던 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부모님께는 물론이겠지만 내게도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동생이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애잔한 울림이 가슴 한 켠을 적신다.

동생과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나눌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는 스스로에 대한 회한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요양 중이던 동생에게 찾아간다고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게 그만 마지막 기회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치의 중심에서 공인으로 활동하던 그 때, 나의 일상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무 분주했다. 동생이 보고 싶어 만나러 가다가 1시간 거리를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그 때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

동생이 그 때 출장 이발사까지 동원해 머리를 깎는 등 몸단장을 하며 형을 만난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는 얘기를 동생 사후에 전해 듣고 가슴 찢어지는 통증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사랑으로 형을 기꺼워하던 동생에 비하면 나는 참 무심한 형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를 온전히 동생에게 할애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동생은 연년생의 박한 나이터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타박없이 깍듯이 형으로 예우하고 정성을 다했다. 그런 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추도식을 마치고 동생 친구들과 식사 자리를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생전의 ‘동생’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위해 나서기를 즐겨했던 동생에 관한 추억담들이 그들의 기억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또 동생이 생전에 형인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동생과 내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잘 생긴 동생이 지하에서 노여워한다’는 농으로 넘기기는 했지만 한참동안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래도 동생이 친구들에게 상당히 괜찮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건재하게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우정을 나누고 있는 듯 했다. 실제로 그들은 매 기일마다 빠지지 않고 동생을 찾아와 주었다.

문득 나의 사후에는 동생처럼 생전의 정을 잊지 못하고 찾아줄 지인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줄 걸, 세심하게 살펴줄 걸...

나날이 연로해지시는 부모님과 형제, 친지들, 그리고 지인들, 또 지금 당장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부질없이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고 누구도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는 이 엄연한 현실이 나로 하여금 인생의 각오를 숙연하게 간구하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특히 인간관계에서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세우게 됐다. 혹시 내가, 혹시 그들이 세상을 떠나 만나게 되지 못하게 된다면 그 때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 있을 때 잘해야겠다.
더불어 저 세상에서는 원종이가 자신의 꿈을 활짝 펼치며 살고 있길 바란다.

원종아, 행복하지? 부디 행복해라.


(2010. 11. 26.)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4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연평도 비극

연평도 비극


북한이 그동안 단골메뉴로 읊조리던 불바다 협박을 실전에 옮겼다.

연평도 일대의 민간이나 군사 시설물을 170여 발의 무차별 포격으로 아수라장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처참하게 유린된 시가지 전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온 종일 만나는 사람마다 불바다가 된 연평도 걱정이지만 속수무책이어서 안타까웠다.

그 와중에 두 젊은 병사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2명의 민간인 희생도 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글로벌 시대, 국제적 협력체계를 주도할 만큼의 성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 내내 이어지고 있는 낡은 이념과 체제의 대립으로 아까운 청춘들이 산화한 어처구니없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단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소임을 다하거나 묵묵히 삶의 터전을 지켜오던 평범하고 무고한 생명들이었을 뿐이다. 그런 이들이 백주 대 낮 날벼락에 속절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대한민국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가장을 잃어버린 유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이번 일로 당국의 미숙한 행보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북한의 공격을 받고도 교전수칙 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늑장대응 등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확전 방지’ 초기 지시 발언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종국에는 그런 발언읗 했느니 안했느니 진실게임 국면으로까지 접어드는 양상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지난 1976년, 휴전선 비무장지대 판문점에서 미류나무를 절단 중이던 미군중위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카투사 4명에게 부상을 입힌, 북한의 도끼만행 사건 당시 초강경 대응으로 김일성에게 사과를 받아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래 전 행적이 새삼스럽게 회자되고 있다. 그 때의 박 대통령은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며 즉각적인 보복은 물론 휴전선 일대를 전시체제로 돌입하는 등의 압박으로 김일성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었다.

현재의 미온적인 군 대응과 비교하면 분통이 터질 만하다.

거기다 작전통제권 소재를 놓고 뒤늦은 갑론을박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불난 집에서 불을 끌 생각은 안하고 누가 불질렀는지 범인 색출에만 열을 올리는 꼴이다. 이렇게 하다간 언제 이 심란한 ‘도발 정국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루종일 국방부장관이 국회 국방위에 불려나가 매섭게 추궁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자꾸만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보는 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이 연상된다. 사후 약방문이다. 당하고 나서 경계를 강화하고 초강력 대응 운운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고한 생명이 , 무너진 마을이 재건되기라도 하면 모를까.

사안이 간단치 않은 만큼 책임의 소재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이 그 때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북한과 대치국면인데 내부의 갑론을박으로 에너지를 낭비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은 당면한 과제부터 풀어나가는 게 시급하다. 그 다음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시시콜콜 따져볼 일이다. 신상필벌 역시 한 점 의혹 없이 깨끗한 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6.25 이후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하다. 당일 하루 요동을 치던 주식시장도 제자리를 찾으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매시간 속보형태로 긴박하게 상황을 보고하는 국내 언론이나 외신 보도, 그리고 정치권과 정부만 떠들썩하고 다급한 분위기다.

내가 만난 청년 A는 “매일 벌어지는 일 아니냐”며 심드렁한 표정이었고 중년주부 B씨는 “사재기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어차피 전쟁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사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특별히 피난할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라고 일갈하는 무심함을 보였다.

동요가 없으니 다행으로 여기기보다 오히려 전쟁 불감증이 우려되는 건 기우일까?

하긴 지난 60년 동안 무려 800여차례나 북한의 위협이 반복돼 왔으니 만성이 될 만하다. 문득 우리의 현실이 마치 재미삼아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일삼다가 정작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땐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양떼를 모두 잃어야했던 양치기 소년의 불운과 닮게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이러다가 또 다시 우리 역사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 기록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말도 안되는 일인데 명백한 현실로 전개되고 있으니 외면만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념이나 체제 유지의 기 싸움을 위해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 구태가 존재하는 우리의 특수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다. 더구나 대한민국 미래의 소중한 자원인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있는 국면이다. 그 어떤 큰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사수해야 할 우리의 자원을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각오와 다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사태를 놓고 신나게 주판알을 굴리고 있을지도 모를 국제사회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 솔직히 우리에게 질시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주변국이 노리는 먹이감이 될까봐 늘 불안한 게 사실이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놀림감이 되거나 타국의 이익을 위해 국운을 함몰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대한민국 국운의 융성 가능성이 실기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할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말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특히 책임있는 위치의 위정자 발언은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나 청와대 각료들의 정제되지 않은 코멘트 남발이 걱정이다.

의도하지 않은 간단한 말실수 하나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고 목숨을 건질 만큼 희망을 주는 빛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뜻이어도 국민과 유리된 정책은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자. 자칫 국민의 싸늘한 시선 속에 고립될 수도 있음이다.

그나저나 오는 28일부터 서해상에서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참가한 가운데 한미간 연합훈련을 실시한다고 소식인데 더 사후약방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2010.11.24)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후회없는 그리고 아름다운

후회없는 그리고 아름다운

상가 두 곳을 다녀왔다.

현역 시절 많게는 하루에 열세 군데까지 조문을 다닌 경험으로 치자면 의례적인 일과로 치부할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오늘의 조문은 평소 때와는 다르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다. 조문을 마치고 난 이후 꽤나 긴 시간 동안 나의 생각을 이끄는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측면에서 대조적이었던 양쪽 상가 분위기가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찾은 상가는 대한민국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고위 공직자 집안이었는데 근래 보기 드문 규모의 조화 행렬과 장사진을 이루는 조문객들로 북적였다.

그에 비해 나중에 조문한 곳은 앞서의 상가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격조있는 분위기에서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있는 대부분의 조문객들이 서로 친밀한 사이인 듯 했고 진심어린 애도로 상주를 위로했다. 상주 측 역시 각별하고 성의있는 응대로 각각의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염을 전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는 상가 풍경이 됐다.



상가에 가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유난해 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장 모호해지는 상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이렇게 문상을 왔거나 조문을 받는 입장이지만 언제 어떤 형태로 서로의 운명이 갈리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정말 아무리 잘났어도 또는 못났어도 언젠가는 칠성판에 누운 채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하는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급기야 앞자리에 앉은 지긋한 연배의 조문객에게 삶과 죽음에 관한 견해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귀찮은 표정을 짓던 그 분은 이내 나름의 ‘가치관’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삶과 죽음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을 뭐라고 단정짓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삶 자체가 언젠가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한계점이 분명한데도 인간이 스스로의 죽음을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죽음에 대한 경험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봉쇄된 환경 때문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누구도 죽음에 대한 체험을 주위와 나눈 적이 없으니까”

평소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백 번 공감이 가고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홀로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고독한 인간의 숙명.

그것을 생각하면 늘 뜨거운 무엇인가가 뭉클 치솟는 기분이 든다.

어느 누구도 삶과 죽음에 대해 수학 문제 풀어내듯 정교한 답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되돌아보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삶에 대해서는 ‘후회없는’을, 죽음에 대해서는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덕분에 ‘후회없는 삶’과 ‘아름다운 죽음’이 거의 내 인생의 모토가 되다시피 했다.

후회없는 삶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별히 사회적 공간에 삶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놓고 살아야 하는 나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클수록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해야 할 분량이 많을수록 구조적으로 후회할 일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후회없는 삶의 영역을 어떤 기준으로 국한시켜야 할지도 문제다. 공적 영역으로 제한할지 아니면 사적 영역까지 포함할지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후회하지 않는 삶의 가치 판단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단기적인 삶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장기전에서는 성공의 결과로 도출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는 만큼 후회 여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안목이어야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 수 있을지 면밀한 관찰과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겠다.

문제는 인간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멀리 내다보기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어린아이 같은 속성이 발달돼 있다는 점이다. 그 같은 속성이 후회없는 삶의 진행과정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다른 명제인 아름다운 죽음은 생전에 당사자 확인이 불가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내가 죽고 난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아쉬움으로 기억되는지가 아름다운 죽음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설혹 화려하고 멋있고 호쾌한 삶을 살지는 못했더라도 배려깊은 말 한마디나 행동거지가 주위의 평온을 주도하는 의미있는 삶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판단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말은 쉽지만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다.

이탈된 치아, 어두워진 시력 등의 상황이 오래 누적된 삶의 시간을 입증하는 요즘이다.

하루 종일 토해내는 열변에 혹사당한 목구멍은 따끔거림으로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제 그만 점검 대열로 들어가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순응이 미덕임을 알아야겠다.

'후회없는 삶', '아름다운 죽음'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나의 소망이 남아있는 시간을 통해 더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블로그 독자 여러분들도 화두로 삼아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다.


(2010. 11. 21)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잔추단가

잔 추 단 가
 - 홍 문 종-



서글픈 마음이야
어쩔수 없다해도
달래는 마음만은
어찌좀 해보시오
야속한 그대일세
머언길 가는동안
손잡고 가잔길을
이처럼 야속하게
서럽다 사래치면
속울음 참는가슴
그무엇 싸매려고
삭풍이 모아치고
낙엽도 떨구는데
그대여 어루만져
주소서 주우소서

(2010.11.21)

홍문종 생각 - 弔齒文

弔齒文

오호, 통재라.
나의 앞니들과의 별리를 애통해하노라.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을 환송하노라
부디 저 세상에 가서
나와의 인연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기를.

근 오십 여년을 동고동락했던 앞니 두 개를 떠나보냈다.
오래 전부터 유난히 부실해서 치근만 남은 상태로나마 간신히 지탱되던 인연이 끊겨 버린 것이다. 지난 번 광릉 내 입구에서 발생했던 자전거 사고가 원인이었다. 넘어질 때만 해도 별 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잇몸에 입은 타격이 앞니의 상태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웬만하면 그 연을 이어보려고 점점 심하게 흔들리는 앞니를 달래가며 석 달을 버텼다.
그러다 끝내 사망선고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래된 인연의 부재는 우선 당장 현실의 불편함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엊저녁, 예술의 전당에서 의정부 혼성 합창단 공연에 찬조출연 차 색소폰을 연주할 때도 절실히 아쉬웠다.
앞니를 대신한 의치에도 불구하고 색소폰 공연 내내 잇몸에 피가 날 정도로 고통이 심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야채와 과일을 좋아하는 식성인데도 제대로 씹지 못해서 소화가 안되고 위가 더부룩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심지어 발음이 자꾸 새는 것 같다는 딸아이의 놀림에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게 앞니의 부재로 인한 비극(?)이라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곁에 있을 때는 모르고 살았는데 없어지니까 비로소 앞니의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실감난다.
살아가면서 곁에서 사라져서야 새삼 소중했던 그 역할을 되새기게 되는 게 어디 앞니의 경우뿐이랴. 부모님이나 친구 등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고 물이나 공기를 비롯한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 역시 사소한 일상이라는 생각 때문에 지나치기 쉽지만 사실은 모두 다 우리에게 있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잃고 난 다음에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공통점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날로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아무리 애달프고 속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좀 더 잘 해 드릴 걸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자연환경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비슷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뜨거운 공방으로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한번 훼손된 자연은 되돌릴 수 없는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자연을 망가뜨리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렇지만 후대에게도 씻을 수 없는 해악을 끼치는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어차피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자연과 더불어 개발하고 개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얕은 판단이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져 역사와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결과로 남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평소 세심한 양치질로 치아보호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자전거 탈 때 다른 사이클 선수들처럼 마우스피스 등의 안전장비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이런 저런 아쉬움과 후회가 있다.
그렇다고 한들 지금에 와서 떠나버린 앞니들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연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현실의 편익만 내세운 결과라면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기우로 단정짓고 외면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지금 이익이 된다 해도 후대에 망가진 국토를 물려줄 수도 있다는 우려는 피아로 나뉘어 힘겨루기로 어물쩡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의 공동 관심사로서 의혹이나 우려가 해소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내 앞니만 해도 지금은 기술이 좋아 인플란트를 하면 오히려 원래 치아보다 모양도 좋고 불편하지 않게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본래 치아만은 못하다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 보다는 치아가 그렇게 망가지는 게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이 더 중요하게 들렸다.

치아 간수에 공을 들여야겠다는 이 다짐을 앞으로 얼마나 잘 지켜나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염불에 끝나지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제발이지 살아가면서 그 때 더 잘할 걸 그랬다며 후회할 일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0. 11. 20)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8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수능이 끝났다.

지금은 ‘수학능력평가’지만 우리 때는 ‘예비고사’라는 이름으로 대학입시를 치렀다.

이름은 다르지만 인생을 걸고 올인한 시험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시험이 한 사람의 미래에 결정타로 작용하는 현행 수능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따른 희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일 아침의 악운 때문에-몸이 아프거나 늦는 경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수험생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리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니지 싶다. 실제로 돌발적인 상황 때문에 그동안 쌓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불운이 전체 인생 의 멍에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통한은 당사자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도 시험 보는 날 아침 갑자기 몸이 아파서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가 이후의 인생이 계속 꼬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를 지켜봤는데 여간 딱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인생 전체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현재의 수능제도는 개선해야 마땅하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의 중요한 진로를 결정짓는 것은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다. 여러 번에 걸쳐 제대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매번 말하는 바지만 학생들에게 몇 번의 실력 점검 기회를 주고 그 가운데 가장 유리한 성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수능 비율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대학 입학의 여러 평가기준 중 하나여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를 근거로 해서 전공의 적합성 여부 등을 면밀하게 진단하는 과정이 선행된다면 당사자의 미래는 물론 대학과 국가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정원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소수점 한자리에까지 수백명의 동점자들이 몰리는 치열한 경쟁상황을 감안해서 대학정원에 융통성이 적용돼야 한다.

1점 차이의 당락 결정이 학생 선발에 있어 어떤 타당성으로 작용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대학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선택이 어려울 때 한두명 정도의 범주에서 입학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대학에 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수능이 대학을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생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겠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일 뿐 인생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고 결정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잘 치렀으면 잘 치른대로 잘못 치렀으면 잘못 치른대로 다음 인생을 준비하겠다는 현명함과 자신감으로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는 미래를 밝혀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미래의 목표를 구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지나친 자만이나 좌절은 정답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한 것으로 됐다.

일희일비도 금물이다. 낮은 자세로 자기 주변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매사에 일희일비하면서 끌려다니는 사람의 인생은 실패하게 돼 있다.



학교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했던 에디슨, 시험 성적이 안 좋다고 대학입학이 거부됐던 아인슈타인, 명문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레이건 대통령, 무엇보다 변변한 졸업장 하나 없이도 굴지의 재벌가를 이룬 삼성이나 현대 창업주들의 성공한 인생을 보라.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은 성적순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혹여 주위에 이번 시험으로 마음을 다친 수험생이 있다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말고 따뜻하고 큰 애정으로 품어주자. 그리고 말해주자.

인생에는 시험 말고도 그들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잡이'들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음을.


(2010. 11.19)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지뢰밭이 된 여의도

지뢰밭이 된 여의도


여의도가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소액 후원금’ 후유증이 여의도 정가에 태풍의 눈이 됐기 때문이다. 청목회 암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농협중앙회가 10만원 소액 후원금을 쪼개는 식의 수법으로 해당 상임위 의원들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펼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가 지뢰밭이 됐다는 언론보도가 줄을 잇고 있는 걸 보면 사안의 정도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닌 것 같다.


실제로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조짐이다. 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모 국회의원의 지역 사무국장이 긴급체포 됐고 농협중앙회 불법 로비와 관련해 특정 지역 농협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어 해당 기관장들이 소환돼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흔히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거라고 하더니 괜한 말이 아니지 싶다. 현실적으로도 눈 깜짝하는 순간, 영어의 신분으로 전락된 정치인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의 정치구조와 정치자금법대로라면 교도소 담장 안으로 떨어지지 않을 정치인이 별로 없을 거라는 불합리한 현실에 있는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소액 후원금 제도’가 입방아에 올랐다. 지역 정가에서도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온통 이 얘기 뿐이다.

불합리한 후원제도를 바꿔야 한다는데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야 정치권도 도입 당시 취지가 변형돼 음성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소액후원금제도 개선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체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국회의원들에게 돈 거둘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실제로 돈 사용에 있어서는 너무나 많은 제약이 가동되는 불합리성이 지목되고 있다.

소액 후원금 제도는 ’국회의원 후원제도는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공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지난 2004년 이른 바 '오세훈 선거법‘이 제정되면서 도입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취지에 급급한 나머지 법 집행의 실질적인 과정과 목적달성에는 미흡한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소액 후원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개혁성에만 주목한 나머지 돈과의 관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 현실에 대해서는 통찰력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지역의 애경사 장소에서조차 성의를 표시하지 못하도록 막는 바람에 민망한 상황이 연출돼도 불법의 굴레를 기꺼이 수용했던 건 깨끗한 정치 실현에 대한 취지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이웃들과의 한 끼 식사조차도 선거법 위반 여부를 꼼꼼히 따진 이후 결정해야 하는 ‘투명정치 실현’를 위해 불법의 굴레를 기꺼이 수용하는 것으로 동참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일단의 노력들이 무참하게 유린된 것 같아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이번 기회에 정치인 후원금 제도를 좀 더 합리적으로 손질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일본에는 국회의원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애경사에는 축의금이 됐건 조의금이 됐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었다. 또 지역 주민들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상황이 되었을 때 상식선 내에서 (정치인이)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 있었다.

우리의 정치 현장에도 후원금 범주 정도에서 이웃 간의 정을 잇는 고유의 미풍양속은 허용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노인복지관이나 장애인 복지관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기관에도 정치인의 성의가 닿을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선택을 남겨놓는 것이 성숙한 정치 문화 정착을 위해 나쁘지 않은 발상이 될 듯하다.

후원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순수 후원금만으로 왜 정치가 안되는지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지만 후원금(평년 1억5천만원, 선거 시 3억원이)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고비용 정치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상황을 더 우선적인 해결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후원금 등에 관련된 사안도 강압적으로 제한하기보다는 신뢰를 기본 양식으로 자리잡도록 분위기를 잡아간다면 사회적 간접비용도 엄청나게 절약될 수 있을 것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이 때 적지 않은 인원의 국회의원들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되어 노심초사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곤혹스럽다.

죄의 유무를 떠나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일이다.

모두 함께 더 깊은 반성과 고민으로 대한민국 미래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도록 하자.

그것이 현재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거푸 주장하는 바이지만 로비스트 제도 도입도 그 해결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2010.11.16)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지난 일을 추억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무엇을 준다.

오늘 하버드 동창회 회장단 일원이 되어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바다.

모처럼 만의 해후가 모두를 28년 전으로 되돌려 놓기라도 한 듯 꽃처럼 피어나는 추억담들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그 바람에 촘촘하게 짜인 반총장의 뒷 일정이 30분 지연되게 돼 다음 일정 분들께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하버드 재학시절부터 확실히 반 총장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실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그의 ‘오늘’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 광장에는 조그만 은행이 있었는데 그 은행 안에는 늘 만국기가 펄럭였다. 어느 날 우연히 그 곳에 갔다가 우리 태극기가 만국기 대오에서 빠져있는(82년 당시의 미약한 대한민국 국력을 말해주던 정황이었는지 모르겠다) 상황을 발견한 나는 그 즉시 외교부 과장 신분이었던 반 총장님을 학교에서 만났다. 그리고는 농반 진반으로 외교를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태극기의 부재를 告했다.

아무리 찾아도 태극기를 구할수 없다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에 태극기를 등장시켰다.

아무래도 그때 그 태극기는 그가 손수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우리들에게 이번 G20 정상회의이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특별히 그동안 G20이 아프리카 등 빈곤국을 위한 배려하는 부분이 없었는데 경제회복이 가난한 나라의 등을 밟고 일어서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유엔과 한국이 개도국을 위한 아젠다를 삽입한 점이 돋보인다는 설명이었다. 개도국과 기후문제를 위한 아젠다는 대한민국이 의장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가점을 줬다.

그는 또 자신의 대통령 출마설에 대해서도 출마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입장을 전했다.

대선 출마설이 현재 유엔 사무총장 재임이 유력시 되는 자신에게 자칫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헛소문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게 해 달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어쨌든 반기문 총장의 부지런함과 끈질긴 인내심이 그를 유엔 총장으로 만들었고 재선가도에 파란불을 켜준 일등공신 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남북문제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르는 이 때 반총장이 유엔을 지키고 있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든든한 일이겠는가 하는 기대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28년 전, 반총장이 우리 모두에게 해주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아무 때나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 있지만 앞으로 서로가 바빠지게 되면 쉽게 만날 수 없게 될 테니 싼 값으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지금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지금 현실을 보니 예언처럼 딱 들어맞는 말이 됐다.

그래도 그가 외교안보수석, 오스트리아 대사, 유엔총영사 등 요직을 거칠 때만 해도 해당 국가를 찾아가거나 청와대를 방문해서 정을 다지며 28년 전의 유쾌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UN 사무총장이 되면서부터는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된 것만 봐도 그의 예언은 정확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배는 다르지만 반듯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반총장이 한없는 애정과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당시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 날의 추억도 못지않게 소중한 나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만남은 이국 땅에서 하버드 교정을 터전 삼아 저마다의 꿈을 키우던 사람들이 28년 만에 저마다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는 UN 사무총장으로, 누구는 국회의원으로, 또 누구는 대학 총장으로, 누구는 기업가로...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시점에선가 다시 만나게 될 때 모두의 모습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내 마음 속에도 오래 전부터 갈무리 해 놓은 ‘ 꿈’ 하나가 있다.

언제나 현재 진행 중인 너무도 소중한 나와의 약속이다.

꺼내보니 여전히 펄떡거리며 살아있어 다행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2010. 11. 13)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잔치는 끝났다

잔치는 끝났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우리로서는 역시 미국과의 FTA 협상이나 북한을 의제로 한 중국과의 대화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환율 줄다리기가 어떤 결과로 매듭짓게 될 지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별 다른 이슈없이 끝나버린 것 같다.

확실히 ‘뜨는’ 후진타오와 ‘지는’ 오바마였다.
1년 전만 해도 환심사기 경쟁이 벌어지던 오바마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고 자신만만한 후진타오는 기세 등등한 모습으로 뉴스의 중심이 됐다.
그들의 비교되는 행보가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 했다.
새로운 경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민첩한 움직임이 거기 있었다.
미국을 흔들어대며 명실상부한 G2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은 더 이상 우리의 만만한 ‘이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단순히 언제 저렇게 컸나 싶어 부러웠는데 그런 중국을 옆에 두어야 하는 우리의 운명을 생각하니 그마저도 사치스러운 현실이 자각됐다.
반면에 호기로었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화가 언제인가 싶게 영향력을 잃어가는 미국의 퇴락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우리와의 FTA 협상 과정에서도 선진강국의 너그러운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기 발등의 불이 다급해서인지 지나치게 옹색하고 옹졸한 모습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역시 이처럼 냉혹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구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우선은 외교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미국와 일본 위주로 고정됐던 외교채널을 바꾸는 시도가 있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외교상대를 찾아내고 다양한 아젠다를 발굴해서 교류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이어져야겠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척박하다. 유럽이나 브라질, 러시아 등 새롭게 관계를 구축해야할 나라들과의 외교 물꼬를 틀 수 있는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들 나라들과의 인연을 시작할 인적자원 양성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북한문제 역시 우리의 당면과제 중 하나다.
현재 북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는 중국, 미국, 일본 정도다. 특히 북한에 보이는 중국의 관심도는 날로 증가하는 형국이어서 우리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인 대응책이 있어야 겠다.

서울 G20 정상회의 평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데 지나치게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이미 파장한 잔치상 메뉴 가지고 뒤늦게 갑론을박 해봤자 뭐가 달라지겠나.
지금 우리 처지가 쓸데없는 논란에 에너지를 소모할, 그렇게 한가한 상황도 아니지 않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그나마 제자리를 차지하려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우리도 세계무대를 주도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사회통합이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화두가 아닐까 싶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일단의 노력들이 화두를 푸는 정답일 것이고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은 정치권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사회통합의 기수로 나서길 바란다.
대신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는 안된다.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으려면 지금보다 한참은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
거의 개과천선 차원 쯤은 돼야 할 듯 싶다.


(2010. 11. 13)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기적이 별건가

기적이 별건가



‘경제 기적을 낳는 전략은 수명을 다했고 새 전략은 채택이 쉽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가 우리경제 현실을 향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G20 특집 지면을 통해서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도약해 온 대한민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재도약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비관적인 전망이었다.

미국 일방의 관점이어서 왜곡된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WSJ의 경고들이 대체로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과 과도한 음주문화, 관료사회의 경직성,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등을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요소로 꼽았는데 특별히 피부에 와 닿는 지적들도 있었다. 또 인기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도 출연한 외국여성들도 비슷한 내용으로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돌아보니 개인적으로도 술 문화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충이 많았다.

소신 때문에 어느 자리에서도 금주가 원칙인 나 같은 사람에겐 막무가내 식 음주관행이 적지 않은 스트래스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활동할 때 어려움의 강도가 심했던 것 같다. 술잔을 피하다가 본의 아니게 인간관계까지 위협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 몇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나라당 대선 출정식에서 당시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를 위한 파티자리에서 폭탄주를 안마시고 버틴 일이나 지금은 일본 대사로 가 있는 권철현 의원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자꾸 술을 거부하니까)술 안 마시려면 먼저 들어가라는 말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차라리 먹는 척 융통성이라도 발휘할 것을.)

고건 전 총리의 술잔을 몰래 버린 적도 있다. 하버드 시절 테니스 파트너로 나를 많이 아껴주셨는데 죄송하다. 현역 의원 시절 정치부 기자들 앞에서 우롱차를 양주인 양 취한 척했는데 미안하다.

지금도 여전히 술을 마시진 않지만 나름대로 쌓아올린 ‘내공’에 힘입어 술친구도 엄청나게 많이 늘린 나다. 본인이 안마신다고 다른 사람의 음주를 탓한 적이 없고 또 술자리 뒤처리는 늘 멀쩡한 내 몫이니 함께 하는 술꾼들로선 편한 측면도 있을 터다.

(부시 전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잘했는지의 여부는 역사에 맡길 일이지만 와인 한잔 안마시고 8년의 재임기를 무난히 마친 일 만큼은 별도로 평가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음주문화에 대한 개선의 여지는 여전하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술자리가 2차, 3차까지 진행돼야 남성미 넘치는 것으로 간주되는 비민주적인 음주관행이 걱정이다. 폭탄주와 여자의 오버랩으로 턱없이 비싼 대가가 요구되는 룸싸롱 문화 역시 짚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의미로 즐길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음주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은 대한민국 균형 발전을 어그러뜨리는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 상태다.

남성의 평균수입 50%를 밑도는 대우로 버텨야 하는 여성의 현실은 짐작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다.

경쟁구도는 그렇다 쳐도 애초부터 재벌가 유착으로 얼렁뚱땅 넘겨보려던 꼼수는 이제 약발이 다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 여성들이 우수하다는 결론에는 한 표 더하고 싶은 생각이다.

처음에는 후보군으로 나서기조차 어려웠던 여성그룹의 정계진출은 상당히 고무적으로 진척되는 것 같다.

조심스럽지만 모계중심 사회로의 회귀가 역력한 세상이 됐다. 모계의 득실은 편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떠돌던 우리들의 사회적 정의이기도 하다.

세계가 여성 대통령은 물론 적재적소에 반드시 필요한 인력을 아이콘으로 여성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교사의 화두를 던지는 지난 역사를 통해 적당히 자기 주장을 싣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어느 사회건 단점과 장점의 적합한 조정에 힘입어 더 큰 상상을 실현시키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일 인권이 지상최대의 과제물로 생각했던 킹 목사였다면 남자냐 여자냐, 또는 피부빛으로 판가름하기보다 개별적으로 주어진 달란트에 의해 평가받는 사회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게 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여성 고용을 늘리는 수준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관료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기존사회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WSJ의 분석에 동의한다.

연공서열에 앞서 능력을 적절하게 보상하는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여성들로 하여금 선뜻 문호를 열 수 있도록 하자는 그의 제안이 옳다는 생각이다. 노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음주문화가 마음에 안들면 거절해야 하는데도 자칫 룸살롱에서의 '사회 생활'이 여성들로 하여금 비즈니스와 네트워킹의 기회를 박탈하는 새로운 장애물로 작용되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오래 전, 戰後의 한국상황을 보고 간 외신 기자들은 오늘 날의 한국을 꿈에라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불가능의 범주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해냄으로써 국민적 저력을 과시한 셈이다.

반만년의 역사가 우리의 끈질긴 생명력과 불굴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음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게 됐다. 지금의 이 위기가 머지않아 기회의 꽃이 되어 피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모쪼록 잘 이겨내 한민족의 시대를 여는 꽃이 되느냐의 여부는 21세기를 앞둔 우리의 숙제이자 지향점 아닐까 싶다.



기적? 그거 별거 아니다.

그 모든 것이 내 뜻, 내 안에 들어있음을 확신하자.


(2010. 11. 10)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봉은사 대첩 관전기

봉은사 대첩 관전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강남 봉은사가 조계종 직영사찰로 결정되면서 일단락되는 듯하다. 명진스님은 선방수행 쪽으로 가닥을 잡고 오늘 오후 봉은사를 떠났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조계종과 명진스님과의 갈등은 불교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이슈거리였다. 실제로 관전평을 쏟아내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눈길이 적지 않았다.

결과는 명진스님의 ‘脫봉은사’로 마감됐다.

그러나 이번 봉은사 대첩(?)의 최고 승자는 누가 뭐래도 명진스님이 아닐까 싶다.

패자의 상처는 고스란히 조계종 총무원장의 몫으로 남게 됐다는 판단이다. 이 싸움의 성패는 '누가 옳으냐' 가 아니라 '누가 이슈를 선점 했느냐'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사 순리가 다 그렇겠지만 돈과 권력이 모이면 부패하게 되고 특히 종교단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수 있다.

중세가 암흑기로 규정된 것도 종교권력의 폐해 때문이었다. 면죄부나 팔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타락을 일삼던 종교계의 파행이 초래한 어두운 흔적인 셈이다.

맨 처음 종교 개혁의 나팔수를 자처하고 나선 이는 루터다. 확신하는 진실 하나로 천년 부패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고 덤벼든 그의 모습은 무모함 그 자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이후 장로교의 캘빈이나 감리교의 웨슬리 등 많은 개혁자들이 그의 뒤를 이어 종교의 본모습 찾기에 주력했고 그렇게 형성된 믿음의 새 해석들이 기독교계를 신교와 구교로 양분하면서 종교의 또 다른 가능성과 미래를 얘기해 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성공적인 목회로 교회 부흥을 이룬 순복음교회 케이스가 있다. 야전 텐트에서 시작한 조용기 목사님의 목회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단 시비를 비롯한 각종 시험들이 그의 발목을 잡아당기며 방해했다. 하지만 그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펼쳤고 오늘 날 한국 기독교의 본류라고 자부하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등의 경직성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교세를 떨치고 있는 순복음교회를 일궈냈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슈 선점 측면만으로도 명진스님의 勝氣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주장’이 불교계에 국한되지 않고 대한민국 전역을 불같이 달군 정황만으로도 의심의 여지 없는 승리다.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사로 부각됐고 봉은사 신도 규모를 훨씬 능가하는 추종자를 확보했다. 비록 조계종의 봉은사 직영 계획을 막지는 못했지만 선명한 대립 구도를 통해 더 많은 대중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공표할 수 있었던 것도 명진스님이 거둬들인 수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명진스님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도 이번 봉은사 대첩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가 대승 불교적 차원으로 갈 것인지 소승 불교적 차원으로 갈 것인지 더 나아가 조계종과 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것인지 선택적인 조계종의 한 분파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결과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을까 싶다.



결국 종교는 새로운 외침에 의해서 재생되고 부활되게끔 돼 있다. 더 이상 감동을 줄 수 없는 구조직은 밀려나고 말았던 역사적 정황을 보더라도 명진스님의 목소리는 의미를 더 해 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지와 그것을 실행하는 용기의 역할이 더 없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때론 돌출행동으로 오인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야말로 기존의 고인 물을 정화시키고 존속시키는 활약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그것이 권력의 달콤함으로 변질되었을 때 제대로 감당할 강단이 없으면 독성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묘하게 얽혀 있는 권력과 종교 사이를 정교한 이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서로 무시하거나 군림의 상대로 삼고자 하면 대번에 탈이 나게 돼 있다. 서로가 긴장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면 종교가 권력의 악세사리로 전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고려시대 당시 국가의 도움을 받아 크게 성장한 불교가 결국 권력과의 밀착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도 있음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되겠다.

어차피 새로운 이슈와 국민적 호응에 시대를 관통하는 소명의식이 가미되면 크게 부흥할 수 있는 계기는 저절로 형성되기 마련이니까.

이번 해프닝이 부디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의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순기능으로 작용됐으면 좋겠다.


(2010. 11. 9)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로비스트

로비스트


청목회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구속 수사’나 ‘뇌물죄’ 등이 언급될 정도이고 보면 사태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보도된 대로라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어렵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문득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로비스트 역할이 허용되는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합법화된 제도 하에서 입법 로비가 이뤄졌다면 분명 지금 같은 혼돈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이 우리 정치권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사회가 복잡다기해지면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종류의 일자리들이 출몰하고 있다.

물론 걔 중에는 인기 있는 직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직종이 있다. 반드시 첨단 산업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현 시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각광을 받는 직종들 중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분야가 많다.


로비스트도 그런 직업군 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동선’ ‘린다 김’도 (미국에 적을 두고 있는) 로비스트를 직업으로 했던 사람들이다. 스캔들 형태로 다가온 인물들이어서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우리사회에 전반적으로 로비스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이로 인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뿐만 아니라 로비스트 활동이 대기업이나 이익단체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게 하는 빌미를 제공, 부익부 빈익빈의 부작용을 심화시킨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사회가 다양해짐에 따라 갈수록 ‘로비스트’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를 보다 더 안정적으로 가동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직업군이라는 생각이 그 순기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비스트 도입에 관한 한 우리는 지금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그 길 만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적극성을 발휘하는 쪽은 어떨까 싶다.

로비스트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현행 로비스트 법을 벤치마킹하는 접근법도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살피고 단점을 보완한다면 충분히 활용가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국회나 관청 주변을 둘러보면 불법 브로커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드러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 역시 적지 않다.

기업이 됐건 관청이 됐건 또 입법부가 됐건 저마다의 입장에만 매몰되려는 관성이 문제다. 첨예한 대립각으로 갈등을 키우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상생의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좋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후로도 더 이상 제2, 제3의 청목회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 때마다 우리 사회가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로비스트 법 제정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로비스트를 허용하는 법 제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불법 브로커나 무분별한 이윤 추구, 로비의 독과점 등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마련하는 선에서 순리적인 로비스트 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둘러야 할 일이다.


(2010. 11. 8)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예술문화는 힘이 세다

예술문화는 힘이 세다



토요일 오후 경민대학 예술문화 아카데미 회원들과 특별한 나들이를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불화대전 - 700년 만의 해후’ 특별전 관람이 그것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 총 108점 중에서 고려불화는 일본의 27점, 미국 유럽의 15점, 그리고 국내 소장품 19점 등 총 61점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술로 손꼽히지만 작품이 워낙 귀하다보니 이번처럼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가히 특별한 전시회로 칭할 만 하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일본은 물론 미국 유럽 등 44개 소장처에 각각이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은 것이니만큼 이번 전시회가 우리 일생에서 다시 만나기 힘들 수도 있다는 박물관 측 설명이 영 과장만은 아니리라 본다.

특히 유물들을 한 곳에 모으기까지 관계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번 특별전은 고려 불화 뿐만이 아니라 같은 시대인 중국의 남송~원대의 불화와 일본의 가마쿠라시대의 불화도 함께 하고 있는데 동아시아 불교미술 가운데 고려불화의 뛰어난 예술성을 폭넓은 시야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해설자 말마따나 초등학생과 대학생 작품 차이처럼 한눈에 봐도 우리 작품의 우수성이 두드러진다.

그 중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을 가진 ‘수월관음도’는 은은한 녹색 물방울 모양의 광배 속에 서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작품으로 일본 센소지라는 절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어서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했다.

관음보살의 늘씬하고 우아한 곡선미와 7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또렷한 이목구비가 현란한 색채에 힘입어 당시 고려 미인을 연상케 하는데 깊숙이 은익(?)돼 있던 이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데는 우리 측 학예사의 진정성 있는 ‘정성’ 덕분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감동적이었다.








동행한 한 교수님은 조선 시대를 미술의 ‘암흑기’로 표현했다. 고려의 불화 등 몇몇 작품에 견줄 때 조선 시대 작품은 유독 깊이도 없고 상당히 뒤떨어지는 수준이라는 것인데 유교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처음엔 선뜻 공감할 수 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유교가 형식적이고 도식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자유롭게 펼쳐져야 할 예술혼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서 그랬는지, 고려 불화들은 큰 틀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자유롭고 호탕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문화 예술 분야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오늘 날 우리의 IT 기술이 세계를 리드하거나 디자인 등의 작품들이 세계를 쥐고 흔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면면이 이어지며 뛰어남을 잃지 않는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 혼 덕분이 아닐까 싶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겠지만 한 민족의 문화예술은 단시일 내에 판가름 될 대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얼마나 깊이 있는 역사성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관점도 작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주요 기준이라고 하겠다.

연전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기술력으로 시장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미래사회는 국가와 개인이 문화 경쟁력을 필수 항목으로 갖춰야 할 시대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문화 예술의 힘이 정말로 막강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겠다.



바쁜 일정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작품설명으로 우리를 환대해 주신 의정부 여고 전 동창회장 최영희 선생님, 또 이 분을 연결해 주신 지역사회교육협의회 안희정 선생님, 전공 실력을 살려 미술사적 측면에서 상세히 도움말을 주신 김명규 선생님, 그리고 참여해 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모두들 즐거워하셔서 기쁨이 배가되는 듯 했다.

이 여세를 몰아 이번 기회에 그림 감상 동호회를 발족시킬까 하는 생각도 있다.

전시회 일정이 오는 21일까지라고 하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필히 감상의 기회를 가져보시길 권한다.

(2010. 11. 6)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아니면 말고?

아니면 말고?



70년대 당시 대학을 다니던 우리세대에게는 사실상 학교 교육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만 해도 대학에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사실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라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미국에 가서야 정신을 차리고 체계적인 공부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굴종을 감내해야 했던 현실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심지어 스스로를 길 잃은 세대로까지 자조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기도 했다.

당시의 미국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이른 바 입학 사정회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한국학생들의 처지를 언급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 역시 우리 세대가 느껴야 했던 시대적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능력이 되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은 희망자들이 장사진을 쳤던 그 시절 풍경을 아마도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바마가 미 공화당 교육예산 삭감을 비판하면서 한국교육의 우수성을 예찬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오바마의 지적대로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교육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데 100% 동의한다. 게다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대한민국 학부모의 교육열이 끼친 영향력 또한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 위상은 그러한 동력들이 모여 이뤄낸 공동작품인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386 세대에 대한 부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나가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대학을 다닌 그들 세대가 우리들 보다는 우수하고 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자기주관이 뚜렷하지 않거나 세대간의 질서의식이 결여 되어 있다는 우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름의 장점도 없지 않아 큰 걱정거리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386 세대인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영부인을 직접 지목, 남정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로비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뉴스메이커가 됐다. 이로 인해 여야 간은 물론 정부와 청와대까지 진흙탕 싸움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결론으로 말하면 강의원의 이번 발언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도 사려깊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그가 정황으로 제시한 1000불짜리 AMEX 수표가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뇌물로 이용될 수 없다는 여당 측 반박에 ‘후속 액션’ 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점도 스스로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정황이라 하겠다.

대통령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386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허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만약 이번 파란이 치고 빠지기 식으로 의도적으로 전형적인 구태 정치를 답습한 형태였다면 386 정치인에 대한 가중된 '냉소'는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앞서 간 그 어느 세대보다 여러모로 교육의 혜택을 받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일테면 교육받은 값어치를 해야 하는 책무를 진 세대라고나 할까.



정치공세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건에서 한나라당도 과거 지사 떄문에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의 과거 발언 몇 가지만 들추더라도 영부인에 대한 도를 넘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강의원 비난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강의원을 공박하기 전에 스스로를 향한 자성의 목소리부터 내는 것이 필요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야 국민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이번 강의원 파장이 정략적인 정쟁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 우리 정치의 진일보를 위한 교두보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사실 대한민국에서의 낙후된 정치 수준은 심각한 상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쟁 현장이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이제 정치만 제자리를 찾으면 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겠는가.

나 역시도 초선의원 시절 DJ에 대한 폭로성 발언을 중진의원들로부터 주문 받았던 경험이 있다. 조금은 지나치다 싶어 어물어물하다가 넘어가기는 했는데 누구도 '문제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결과적으로는 잘 한 일인 것 같다.


무분별한 정치공세가 우리 정치현장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조성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우선 정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야 할 대상이라는 관념부터 바뀌어야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정쟁을 바라보며 불안해하는 국민 입장을 생각하자.

이번 사건도 진실게임 수준이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진실의 향방보다 국민적 자존심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국익에도,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제로섬 게임으로 정치일정을 낭비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치인들이 최소한 선거 때 유권자에게 표를 구하는 초심으로 정치마당에 나선다면 지금처럼 동네북처럼 욕을 먹는 풍토도 개선될 수 있다.

모쪼록 미국도 부러워하는 우리의 교육수준이 정치권의 구태까지 정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으면 싶다.


(2010. 11. 5)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신뢰의 리더십에 주목하자


신뢰의 리더십에 주목하자



누군가의 호의로 ‘신뢰의 속도’ 저자, 스티븐 MR 코비의 조찬 강연회에 참석했다.

신뢰 전문가로 국제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는 초베스트셀러 '7-habits'로 우리에게 익숙한 스티븐 코비의 아들이기도 해서 친근감이 더해지는 인물이었다.

이른 새벽시간인데도 참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낯익은 정관계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코비는 신뢰가 있으면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이 절감되는데 이것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다는 내용을 기조로 신뢰의 핵심 개념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신뢰는 도덕이 아니라 경제적 동력이고 리더십의 으뜸 요인이다. 또 배움을 통해 개선이 가능한 기술이기도 하다.

그는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5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워렌 버핏의 어록이나 ‘식량, 군대, 신뢰 등을 핵심요소로 하는 정치에서 군대나 식량은 경우에 따라 포기할 수 있지만 지도자의 신뢰 만큼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을 인용해가며 신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신뢰지수가 낮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성품과 역량으로 볼 때 고신뢰 사회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유효하다는 덕담으로 희망의 여지를 남겨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조직과 리더가 신뢰를 쌓기 위한 기회를 실기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충분히 신뢰회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요지였다.




여러 면에서 유익했던 그의 강연은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내가 누구를 신뢰하느냐 보다 누가 나를 신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덕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이 하루 종일 화두가 되어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교육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 나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신뢰의 빛나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지수가 저조한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가 신뢰임을 감안한다면 아이러니한 현상이기도 하다.

형성과정은 물론 증명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점도 문제라면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의 가치가 정금처럼 빛날 수 있게 됐는지 모르지만.

사회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완성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신뢰의 가치관 정립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노력들이 있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막연히 개인의 가치나 사회의 도덕적 규범으로 판단하기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겠다.



신뢰를 주제로 한 코비의 강연에 청중이 몰리는 현상도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신뢰의 리더십을 갈구하는 대중의 갈증이 반영된 현상은 아닐까 싶다.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낮게 평가되고 있는 신뢰 관련 수치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신뢰 상실의 후유증을 깊이 실감하고 있다.

도처에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한숨소리다.

서로를 향한 불신의 ‘독’이 저마다의 부메랑이 되어 상처를 헤집고 있지만 속수무책일 정도로 빠르게 황폐화 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심지어 일종의 성역이었던 부모 자식 사이조차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부모자식 간 불화가 참사로 이어져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대한민국을 구명하고 치유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신뢰회복 뿐인 것 같다.



우리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진단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게 될 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국가 지도자의 진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도자 한사람의 노력에만 기대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의 공동 관심으로 신뢰를 키우고 우리사회를 도약시키고자 합심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일에 대한 분명한 목표와 책임의식 그리고 반드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신뢰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의 21세기를 견인해 줄 지도자를 갈망한다.

모두가 거의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2010. 11. 3)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가을 밤에

가을 밤에



寒雨夜鳴竹 (한우야명죽) 차가운 밤비가 대를 두드리고

草蟲秋近床 (초충추근상) 가을 풀벌레는 평상 가까이에서 운다.

流年那可住 (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을 어찌 멈출 수 있으리오

白髮不禁長 (백발불금장) 자라나는 흰머리를 막을 길이 없구나

-송강 정철, 우추(雨秋)





세월 참 빠르다.

싸늘한 찬바람에 돌아보니 2010년이 이제 두 달도 채 못 남았다.

침침해지는 눈과 무성해지는 흰머리가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한다.

송강 정철의 넋두리에 마음을 실었더니 쓸쓸함만 더 키우는 꼴이 됐다.



오늘도 정신없이 분주하게 하루 일과를 마쳤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은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면서도 돌이켜보면 아쉬움 투성이다.

보람되면서도 아쉽고, 속이 꽉 찬 듯 싶으면서도 공허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영악하게 대처한다 해도 빠른 세월을 통해 인간이 감지하게 되는 건 역시 아쉬움이다. 사람이 죽으면 남는 다섯 가지 ‘~걸’에 대한 농담에서도 인간의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 같다. ‘좀 더 베풀 걸, 좀 더 들을 걸, 좀 더 노력할 걸, 좀 더 다가갈 걸 (한가지는 생각이 안 난다)라고 하며 지난 삶을 후회하게 된다는 농담이다. (썰렁했나?)



역시 인간은 누구도 완벽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게 맞다.

피라미드, 타지마할 묘, 중국의 명 십삼릉 등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곳은 인간이 얼마나 버둥거리다 갔는지 짐작 할 수 있게 해주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불로초를 구하지 못한 진시황처럼 죽을 수 밖에 없다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까지도 연습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은 간다. 우리도 간다.

가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 우리가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활용하기에 따라 삶이 지혜의 보고가 될 수도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추운 날씨 탓인지 한 장 남은 달력이 주는 스산함이 깊다.

발길에 차이고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게 되는 가을밤이다.


(2010. 11. 2)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