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故 고희선 의원 영전에

故 고희선 의원 영전에

 
지난 대선 때 마치 선거에 출마한 사람처럼 뛰어다니는 그를 보았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저 양반이 큰 꿈을 꾸고 있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주변 분들이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귀띔을 해줬다.
일 년마다 신발을 여러 켤레 바꾸고 오토바이도 한 대씩 폐차할 정도의 부지런함으로 굴지의 국내 종묘산업 1위 업체를 일궈낸 분이라고. 불같은 열정으로 우리나라 종자시장을 지켜내고 바이오산업을 이끄신 분이라고.
그렇게 모두가 입을 모아 인정하는 참으로 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조국과 당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그리며 신명을 냈던 시간들이 꿈결처럼 아득하다. 
초선 때 여의도에서 지역구인 의정부까지 하루에 네 번 왔다 갔다 한 적도 있다는 내 말을 받아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만만치 않은 분이 또 있었네” 라면서 껄껄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의도에서 그의 지역구인 화성까지는 의정부 보다 1.5배 정도 더 멀다)

그런 그가 불현 듯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
영전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생시처럼 아련한데,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말을 걸어 줄 것 같은데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함께 하자던 약속들, 그 많은 계획과 포부를 두고 어찌 그리 황망히 떠나버렸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망자와의 이별이 산자의 인생을 겸허할 수 있도록 다듬어주는 인연으로 작용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삶을 더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릿한 슬픔을 여미며 이제 그만 고인을 보내드리고자 한다.
고희선 의원님,  
당신을 만나 함께 했던 시간들, 못 다 이룬 그  꿈들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 아쉬운 추억으로 묻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나마 많은 이들의 진심어린 애도 속에서 그를 떠나보낼 수 있어 위안이 된다는 건 남은 자들의 이기심일까?   많은 이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한 고인의 운명을 아쉬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생전의 그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잘 운영한 반증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PS: 그 와중에 고개를 드는 몇 가지 궁금증이  있어 이곳에 남긴다.  
      여백은 독자들께서 혜안으로 채워주시길.
                       

   *내가 유명을 달리하게 되면,
                    - 누가 올까?
                    - 자식들은 어떤 심정일까?                                
                    - 어떤 내용의 조사가 될까?
                    - 인생을 평가하는 세상 인심은?                                   




(2013. 8.29)                                                                                              ....홍문종 생각 

2013년 8월 27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Head? Heart?

Head? Heart?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정치를  시작한  탓인지  선배 정치인들과의 추억이 많은 편이다. 뵐  때마다  유난히  살가운  강창희  국회의장도 그런  인연 중 한 분이다.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의  백미는 2002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일본 도쿄 올림픽구장에서 열린 한일 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 기억이다.  
우리 측이 3대 1 역전승을 거둔 이날 경기에서 그는 야생마처럼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급기야 상대방 골문 앞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를 멋지게  동점골로 연결시키더니  국가대표 출신인  가마모토 구니시게 의원의 정강이를  걷어 차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기량(?)을 선보였다.  적진의 에이스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다음 대회 때 내가 못 뛰더라도 아킬레스가 끊어진 가마모토의 정강이를 공략하면 이길 수 있다”며  승부욕을 보이기도 했다. 
 
그 후 우리는 더 드라마틱한 인연으로 만나게 됐다.  
8년의 정치공백을 딛고 복귀에 성공한, 흔치않은 경험을 공감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 인고의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정치복귀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서로를 더 가까이 엮어주는 느낌이다.  
엊저녁 전현직 의원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도 우리의 낙방거사 시절 얘기가 단연 화제였다.
특히 강 의장은, 그의 오늘이 결코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돌파한 끝에 얻은 결과물이라며 지난 세월을 풀어놓아 박수를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얘기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지목하면서) 우리처럼 끈질기게 최선을 다하면 다시 복귀할 수 있다고 한 때 잘나갔던 전직 국회의원들을 격려했다. 살펴보니 그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들 어떤 식으로든 자극을 받는 분위기였다.  
지난 정권 당시 핵심이었던 A 전의원은 “예전에 주어진 일을 하다보니까 잘못한 게 많은 것 같다. 죄송하다”며 내게 사과를 해왔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던 B 전의원은 “의장님 말씀이 평소 홍총장님이 해주시는 조언과 비슷한 내용이 많은데 숙연해진다.”고 했다.  
(내 경우, 인간만큼 정치적인 동물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살아오면서 성공보다는 실패의 순간을 주목한 적이  더 많았다.    
실패의 순간, 그 상황을 얼마나 큰 약으로 쓰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중학교 입학 실패, 박사과정 낙방, 국회의원 낙선 등-을 돌아봐도 그 때마다 나중에 이 실패를 인생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나의 다짐들이 ‘부록’처럼 달려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쌓인 ‘부록’들은 나의 삶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 같은 존재가 되어있다.  어지간한 시련 쯤은 쉽게 극복되는 경지에 오른 요즘의 여유가 연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거기에다   자신에 대한 믿음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미국에 유학 간 지 얼마 안 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운전을 하다가 애매모호한 도로표지를 빨리 판단하지 못해  적발됐는데  백인우월주의자 같은 경찰의 언행이  문제가 됐다. 
"잘 몰라서 실수했다"고 하자   하버드 유학생인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양거리듯이  “Use your head”라고 하면서 딱지를 뗀 것이다.  거기에  속상한  내가 “Use your heart”라고 응수하자  그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한동안 하버드 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렇듯  나에게 있어 자존감은  삶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더 큰 소명을 감당하기 위한 담금질이라고,  인생을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규정한 토인비의 안목이 괜한 건 아닐 터라고  토닥이며  에너지를  보태주는 보고였다.
   
강창희 의장님....
새로운 추억을  기록에 남기며  그를  떠올리니  이  멋진 인연이 마냥 감사하다.    
여전한 노익장으로 좌중을 휘어잡으며  인간적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강창희 의장의 에너지 보고는 무엇이었을까, 기회가 되면 여쭤봐야겠다.     
 “의장님, 의장직 그만 둔 뒤에도 괄시 안하고 열심히 존경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2013. 8.28)
                                                                                                            ...홍문종 생각 

2013년 8월 2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단비


단비


단비 덕분에 폭염의 횡포에서 놓여난 해방감에 숨통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가뭄에 시달리는 농촌에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기쁨이 컸다.
현장 최고위원회의 차 찾은 경남 창원에서의  경험이다.
산업단지공단을 찾아가는데  때 마침 비가 내렸다.
오랜 가뭄과 폭염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때여서인지  모두의 환대를 받는 단비의 위상이 대단했다.
우중의 이동이 번거롭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홍준표 지사나 김동오 의장은 단비를 몰고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 일행이 반가운 기색이었다. 눅눅한 습기에 짜증을 내며 지루하게 이어지던 우기를 불평하던 때가 불과 얼마 전 일인데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확실히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장마 때는 성가신 존재지만 가물 때는 구세주로 초특급 대우를 받는 단비가 되는 건 인간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와중에 타이밍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적지 않다.
실제 억만금이라도 절박할 때의 동전 한 닢에 못 미치고 불로초를 능가하는 보약이라도 필요할 때의 약 한 첩만 못한 현실이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단비’는  어려운  상황에서  존재감이  도드라지게 되는 것 같다. 
전국시대  제나라  당시,  삼천 식객을 거뒀던  맹상군은 정작 권세를  잃자  ‘풍훤’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곁을 떠나는 세상인심을 겪은 바 있다.  그리고 훗날  풍훤의 헌신적 조력으로  복직을 했다. 
일테면 ‘풍훤’은  맹상군 인생에서 ‘단비’같은 인연인 셈이다.
      
 
지금껏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의 주인이고 싶다는 노래를 불러왔다.
그 때문인지 자꾸 가슴을 향해 묻게 된다.
‘지금이 때인가?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 새누리당에 필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서는?’
결국 ‘단비’가 될지 ‘쓴비’가 될지는  두고 살펴야 할 일이고 우선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바람직한 방향을 정하는  최소한의 역할만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  통찰이 가능한 혜안, 적임자를 자임하는 용기, 이끌어내고 동참시키는 추진력, 이 모든 걸 추동하고 견인할 수 있는 리더십 등이 필요한 시점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대를 이끌 화두를 고심하며 새벽 산책길에 나서는데  빗줄기가  반색하며  맞는다.
밤 샌 담금질로 어수선해진 머리를  예사롭지 않게 나를 품는 기색이다. 
이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뚜렷해지는 건   나아갈  방향을 정한  자신감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대한민국 운명을 바꿀  불세출의 리더십.....  
단비처럼  살포시  다가올 , 시대의  로망이요  우리의 미래 아닐까?                                 

 (2013. 8. 22)   

...홍문종 생각 

2013년 8월 1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결국은 사람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정치는 사람 고르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 같다.
-사람은 자기가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생각한 대로 행동한다-
얼마 전 찾아낸, 누군가를 관찰한 34년 전 메모에도 그런 내 생각이 담겨있었다.
(어릴 땐 일기로, 나이 들면서는 메모를 통해 남긴 과거 기록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없어져 안타까울 때가 많다)
     
사람이 문제인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초한지’의 두 주인공, 유방과 항우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요인도 바로 ‘사람’이었다.
유방은 ‘잘난’ 항우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뒤처지는 인물이었다. 다만 여자나 좆는 건달로 살면서도 차곡차곡 대업을 쌓아올리며 자신의 꿈을 키우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인재를 기용할 줄 아는 출중한 안목의 소유자였다. 실제 유방이 천하통일 과업을 이룬 배경도 따지고 보면 장량, 소하, 한신 등의 뛰어난 기량이 역할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반면 항우는 역발산기개세의 화려한 위용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스스로에 대한 과신이 인재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가 범증의 진언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면, 품안에 들어온 당대 최고의 지략가 한신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면 역사의 물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에서 사람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측면은 도박판 생리와 다르지 않다. 
실제  쭉정이 같은 내면을 가리려는 허장성세가 유난히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사람을 가르는 일은 늘 쉽지 않다. 나름대로의 안목을 자부하는 편인데도 그렇다.  
실력을 갖춘 사람이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 허풍을 떠는 것처럼 꾸미거나 별 볼일 없는 사람이 허풍을 떠는 정도는 어지간한 내공이면 해결될 일이다.
나보다 수가 낮은 상대면 더더욱 일도 아니다.
그러나 고수의 허허실실은 다르다. 제스처까지 능수능란하게 가동하는데 버금가는 안목이 아니면 도리가 없다.  특히 정직을 신념처럼 앞세우는 사람의 경우, 결정적인 순간 치명적인 거짓말로 상대를 속일 확률이 크다는 경계심도 염두에 둘 만하다.


어린 시절, 지능이 떨어지는 동네 친구가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홀짝 접기’를 하자고 졸랐다. 그러면서 번번이 내게 졌다. 질 수 밖에 없었다. “많이 잡았니?”라고 물었을 때 “많이 잡았어”라고 대답하면 ‘홀’을 쥐고 있고 “조금 잡았어”라고 하면 ‘짝’을 쥐고 있는 자신의 트릭 패턴을 바꿀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창시절, 시험 때면 벌어지는 친구들 사이의 눈치작전은 달랐다. 특히 오늘은 졸려서 시험공부 안하고 잠이나 자겠다고 연막을 피우는 당사자가 고수인 경우, 시험공부 대신 잠을 선택했다가 뒤늦게 땅을 치는 친구가 어김없이 나왔다.
상갓집 개를 자처하는 파락호로 위장하거나 또는 백정의 가랑이를 넘나드는 수모를 감수하며 때를 기다렸던 대원군이나 한신이 고수의 반열에 속하는 이들이다.    자신의 본질을 감추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는 이런 캐릭터들은 판단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밀분석 대상이다.  자칫 방심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한 방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단독 게임이 불가능한 정치 속성을 비춰볼 때 또 다시 안목을 화두로 삼을 수 밖에 없다.
어떤  파트너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정치적 위상과 판도가 결정되기에 하는 소리다.
이는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돌이켜보면 예측한대로 순조롭게 대통령직에 오른 분이 있는가 하면 연속된 실패 끝에 은퇴를 선언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기회를 잡은 케이스도 있다. 따 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던 선거구도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기회를 놓치고 종국엔 레이스를 포기하고 만 경우도 있고 황당해 보이는 경로를 거쳐 기적처럼 대업을 일궈낸 주인공도 있다.  
결국  성공과 실패는 각자에 동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아는 상태에서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하늘이 주신 뜻을 이룰 수 있다.  나를 알고 상대방을 모르는 상태라면  현상유지 정도는 가능할  것이고  나도 모르고 상대도 모르는 무모한 시작이라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털릴 수도 있다."   
 우선은 이 평범한 가르침부터 가슴에 새겨야겠다.
그런 다음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의 안목을  위해  두눈을 크게 부릅 뜰 일이다.  

(2013. 8. 16)
...홍문종 생각

2013년 8월 9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불치하문(不恥下問)

불치하문(不恥下問)




일찍이 '아는 것’의 경쟁력을 간파했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통찰력이 놀랍다.
연륜의 관록이 쌓일수록 감탄하게 되는, 삶의 진리라는 생각이다.  특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갈수록 그 위력의 범주가 넓혀지고 있는 추세다.
거듭되는 진화를 통해 우리에게 ‘문명'을 공급하고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 폰만 해도 그렇다. 새로운 기능을 발견할 때마다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의 콜럼부스 못지않은 문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간단한 기능 하나에 세상살이 절차가 훨씬 더 수월해지는 현실이라니, 그 반가움 때문에 둔한 손놀림으로라도 기능을 익히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섣불리 아는 척하기보다 아예 모른다고 하는 게 모두의 평화를 위해 백 번 낫다. 
다만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경우엔 반드시 조금 다른 처신이 필요하다.     
얼마 전 미국 방문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보스턴에서 렌터카를 빌렸는데  유학할 당시 오랫동안 거주해서 지역사정에 밝다는 어설픈 자신감이 화근이었다. 네비게이션 없이 캠브리지, 하버드, 엠아이티 등 대학 캠버스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길을 잃고 만 것이다. 예전에 잘 알고 있었던 길들이 지금은 많이 바뀌어 낯선 환경이 되어버릴 만큼 흘러가버린 세월의 간극을 의식하지 못한 패착의 결과였다. 
결국 한 시간여를 뱅뱅 돌며 길 위에 뿌리고 나서야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인위적인 길안내에 의존했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막급이었다.  
 
어설픈 잘난 척으로 이 보다 더 심각한 폐해를 초래하는 곳이 있다.
바로 정치판이다.
천양각색의  성향이 모인, 흔히 엘리트집단의 집결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징후는 얼마든지  있다.  
얄팍한 지식만으로 전문가연하는 사람들이 만연해 있다.  완전치 못한 지식을 인정하거나 겸양의 도로 스스로를 낮추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정도 수준이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나마 양호한 축이다.
문제는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념을 고수하는 '치명적인 폭탄들'이다.  신앙이 되어버린 신념은 바꾸기 힘들 뿐 아니라 주위의 많은 이들을 미혹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거의 통제불능 상태다.        
결국 사교집단 유형과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종교를 잘못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려는 시도들이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 전례를 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30여년의 세월이 얹힌 오래 전, 하버드에서 공부할 당시,  친구들은  모르는 것이 생기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거나  답을 구하는 나를  낯설어 했다.  하버드에 다니면 뭐든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자부심과 배치된다는 반발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 모습이  내 본연의 성정이라는 걸  알고 난 후부터는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홍문종만의 강점'으로  인정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그 때부터 불치하문(不恥下問) 의 도리를 실천하고 있었던  걸까?)  
  
아는 것은 확실히 힘이 된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민폐로 작용하는가를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멀게는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나 무솔리니, 그리고 가까이에는 최근 ‘나치 식 개헌을 배우자’는 망언으로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일본의 아소 부총리 등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급 위치에 오르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 문화 역시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특정 미션을 강요당하는 일까지 있다. 그런 것들이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특별히 국회 등 정치권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스스로의 약점을 용기있게 고백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지도자에게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기회의 허용이 필요하다.  그것도 무제한으로. 
더불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게 하고  교정을  독려하는 사회적 배려야말로  배놓을 수 없는 덕목이지 싶다.  

그것이 비로소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최적의 답이 아닐까 싶다. 


(2013. 8. 8)




...홍문종 생각

2013년 8월 1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출세

출세 


가끔씩 출세를 위한 인간욕망의 범주를 가늠해보곤 한다.  
여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다.
출세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는 정도를 재자면 이곳을 능가할 곳이 없지 싶다.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눈빛이 뜨겁게 살아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가 많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곳  또한  이 곳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모순된 속성으로 말하자면 ‘출세’를 대하는 우리의 정서와 닮았다는 생각이다.
출세하는 사람들에게 덧씌우는 비정함이나 야비함, 속물근성 등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를 부러워하고 출세를 갈구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심지어 출세할 수 있다면 ‘흑역사’도 개의치 않겠다는 각오로 덤벼드는 이들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실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짓밟고 이용한 이들이 거둬 올린 성공사례도 심심찮게 접하는 현실이다.   
출세를 지향하는 인간 본연의 본성이 반영된 결과이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 정리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순간이다.
그런 여의도에서 출세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게 요즘의 내 근황이다. (누군가는 벼락출세라고도 하던데 자랑질은 아니니 절대 오해마시길!)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무리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경기도 의정부 서생에 불과했던 내가,  8년의 정치공백을 깨고 3선 국회의원이 되더니 대선 조직총괄본부장을 거쳐 여당 사무총장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 불쑥 상황설명에 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건  쉽사리 출세라는 보통명사 하나로 일괄 규정하기엔 지난 시간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기 때문일까 싶다.
실제 곡절 많은 정치행로를 거치는 동안 기쁘기보다는 아픈 세월이 더  많다. 
그러나 나름대로 세운 정치적 목표가 있었기에 단 하루도 헛되게 쓰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사실이다. 하루를 이틀로 삼아 한 땀 한 땀 미래를 채워가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보낸 날들이었다.   
 
언젠가 우리 사회에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나올 용이 없다’는 시각의 TV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인간의 본능을, 그리고 그 실상을 너무 적나라하게 짚어내고 있어 민망하기도 했지만 출세에 대한 인간 심리를 심층적으로 다룬 분야에서는 수작으로 평가할 만한 프로그램이었다.
연출자는 과거와 현대의 출세관을 조목조목 비교해가며 달라진 출세유형을 우리에게 제시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과거에는 높은 학벌, 거대한 부, 고시합격, 정치권 진출 등이 출세할 수 있는 일반적 통로였던데 반해 요즘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말하자면 출세의 격이 달라졌다는 얘기였다.
 이 들 요소 중 한 가지만 갖춰도 신분상승이 허락됐고 또 그런 식의 자수성가가 가능했다.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거나 돈을 많이 벌어 사업가가 되거나 고시를 통해 판검사가 되거나 정치권에 영입돼 정치인이 되어 출세가도를 걸을 수 있었다. 누구든 노력만하면 용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식의 '용'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지적이었다.   기존의 출세 메뉴에 인기나 명성, 경제력, 가문 등이 더해져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는 권력을 갖췄을 때 비로소 출세인증이 가능하다는 공론화 현장이었다.  

공직사회 이동이 많아진 요즈음, 출세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출세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의외로  큰 차이가 없지만   이유 없는 ‘출세’는 없다.  
출세의 주역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는 노력과 장점이 많은 공통점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능력에 도취되라는 얘기는 아니다.  엇비슷한 경쟁 틀에서 선택될 수 있었던  행운의 역할을 인정할 줄 아는 겸허함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런 경쟁력도 없는 허술한 자신의 현실을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  
 반면  선택되지 못한 경우, 자질보다는 타이밍의 문제가 더 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생각으로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인내하면서 자신의 그릇을 갈고 닦다보면 반드시 때를 만날 수 있다.
더욱이  어려운 시기의 고난은  단순한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래의 어느 순간, 내 길을 비춰줄  동반자가 되어 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개인적 경험으로 얻은 확신이어서 자신있게 권하는 바다.   

(2013. 7.25)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