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5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찌라시 2

찌라시 2
초등학교 때 전학이 잦았던 환경 탓이었을까?
돌아보면  통과의례처럼  음해에 시달린 기억이 많다.
어쩌면  낯선 전입생을 맞는 그들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멀쩡한 어머니를 '가짜엄마'라고 소문내는 가하면(담임선생님께 아들을 엄하게 훈육해달라고 부탁하는 어머니 말씀을 들은 반장이 주범) 입에서 회충이 나왔다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것도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 앞에서)
그 때마다 고민도 많았는데 한동안은 주먹질을 방책으로 삼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 유명 연예인들이 줄줄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 온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기억이 난다.
찌라시의 횡포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나 역시 정치를 직업으로 하고 있기에 찌라시와 무관하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다.
찌라시에 등장한 경험도 무수하다. ​
미국유학 가면서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를 대동했다는 음해성 찌라시를 정치인이 되어 첫 대면했다. 그 때는 얼토당토않은 소설이라고 펄쩍 뛰었는데 이후 갈수록 더 음험하고 야비한 형태로 진화하는 찌라시를 겪다보니 이제는 달인의 경지에 이른 듯 싶다.   
    
사회적 파장을 생각 할 때 찌라시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더 이상 방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그럴 듯 소문을 엮어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솜씨가 상당하다. 대부분 당사자가 기억조차 못하고 서로 무관한 정황의 편린들을 왜곡 조작, '책 한권'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실제 적당히 즐기고 넘길 가십거리 수준의 해프닝이  멀쩡한 사람을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고 우량 기업을 하루아침에 재기불능 상태로 몰아넣는 폭탄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건 이런  불합리한 횡포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산께이 신문 사태에서도 보듯 찌라시의 촉수는 더 이상 성역도 분별도 안중에 없다. 
금도를 넘은 지 오래다.



불분명한 출처를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찌라시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인간의 관음증이 갖는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숱하게 지적되는 폐단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바닥에서 찌라시 수요가 마르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적폐가 아닐 수 없다.
기술통신의 발달이  찌라시의 확산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한정된 수량으로 배포되던 과거와는 달리 SNS 등으로 영역과 대상을 넓혀가며 빛의 속도로 퍼져가고 있으니 걱정이다.
후유증으로 인한 폐해가  짐작조차 못할 만큼  확대될 터이기에 하는 소리다.  
    
아이러니하게도 찌라시에 이름을 올리길 소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실제 모 초선의원의 경우, 국회의원 된 지 2년이 넘었는데 찌라시에 이름이 거명되지 않아 서운하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방위적으로 뻗어가는 찌라시의 마수는 이쯤에서 마무리돼야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더 이상 야릇한 짜깁기로 쥐어짠 내용보다는 최소한 사실을 근거로 한, 이왕이면  선의적 사건의 주인공으로 찌라시에 등장하고 싶다.  
 다른 이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2014. 8.24)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