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3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반달







반달

- 홍문종 -


낮에 놀다 두고온 하아얀 반달

동쪽 끝에 힘겹게 걸리인 반달



반쪽을 잃어버려 힘겨워 보이는 반달

반쪽에 버림받아 서글퍼 보이는 반달



토끼도 절구도 없는 황량해 뿌여언 반달

핏기도 소리도 없는 버려져 멀어진 반달



너의 반쪽은 어디에 있니?



보여지지도 못해 힘들어 하는 나

너의 반쪽을 힘겹게 지탱하는 나



너와 별들의 축제에 참석하지도 못하는 나

너와 태양의 커플 무도회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나



그럼에도

너의 빛남에

너의 갈채에

너의 환호에



불구하고

나의 빛남

나의 갈채

나의 환호로

가슴 져미는 환희로 승화



하늘 한쪽에 반달

마음 온쪽에 온달

우리 넓은마음에 큰달


(2010.10.1)

2010년 9월 2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신왕조 스캔들

신왕조 스캔들



전세계가 베일을 벗고 실상을 드러낸 북한의 신왕조 스캔들에 술렁거리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4년 만에 소집된 노동당 대표자회에 맞춰 20대 후반의 3남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하고 자신의 뒤를 이를 후계자임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이로써 故 김일성 주석이 아들 김정일 위원장한테 넘겨줬던 세습권력이 손자 김정은에게까지 이어지는 초유의 권력세습이 북한사회에서 실현된 셈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김정은의 권력 승계가 북한 사회에 변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와병설이 돌기는 하지만 김정일이 버티고 있고 김경희, 장성택 등 버팀목으로 나선 ‘혈연중심’의 후계 구도에 실리는 무게 때문이다.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으로서도 한반도 안정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체재를 인정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파격’에 외신들이 유례없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3대째 이어지는 세습구도나 지나치게 어린 ‘대장 동지’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불만이 감지되고 있다.

우리의 심기 역시 착잡할 수 밖에 없다. 이제 겨우 20대 후반에 접어든 그의 ‘좌충우돌’에 따라 한반도 전체의 명운이 좌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예고되는 수순임에도 다가올 정황에 준비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아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그저 남의 집 불구경 하는 식이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허둥지둥 나서는 것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보다 적극적인 준비와 대책으로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구축해야 한다.

그토록 철두철미한 사전 준비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유증 때문에 국가적 위기에 봉착해 있는 독일의 선례가 아니더라도 북한의 변화에 임하는 우리에게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겠다.



후계구도를 통해 드러난 북한의 의중을 바라보며 3가지 변수에 대한 대비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첫째,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권력의 속성 상 결국 김정은과 그의 고모부 내외는 균열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여기에 중요한 변수가 있다고 본다. 어려운 경제 여건과 군부 갈등 그리고 주민들의 민심 이반 등 심각한 북한현실로 볼 때 ‘체제 붕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재벌가 자제처럼 성장했을 뿐, 일천한 경력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김정은 자신으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변수다. 재벌의 아들이라고 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짧은 경륜으로 과연 온전하게 체제를 통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수십 년 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르게 무리수가 너무 많은 김정은은 솔직히 불안하다.

경험이 없다는 것은 오판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가장 큰 문제는 마리 앙뜨와네트처럼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식의 현실과 유리된 사고로 인한 '돌발적 상황'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미숙한 그가 오판으로 팽팽한 긴장 국면을 깨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세번째, 취약한 북한의 경제상황도 변수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듣게 되는 북한의 실상은 놀라움 그 자체다. 그야말로 무너져 내리는 둑을 막을 의지조차 남아있지 않은 고사 직전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감추려 해도 감출 도리가 없는 심각한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이 내가 보는 김정은을 주인공으로 한, 3대 세습 드라마에 대한 관전평이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이 비슷한 불안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결국은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 남아있는 우리 민족 차원의 문제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

더 이상 통일에 대한 찬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려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점임을 인정하자.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상황인식에 뜻을 함께 하는 것에서 시작하자.

국가 차원에서 어떤 식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국민 계몽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10.9.28)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27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아버지 리더십

아버지 리더십


한국 여성들은 역시 남자보다 한 수 위다.

FIFA 주관 U-17 여자월드컵을 통해 세계 정상에 우뚝 선 태극소녀들.

감격적인 우승 골로 시름에 잠긴 국민들에게 위안을 준 그네들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이들이야말로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 국운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좋은 날, 잦은 外侵과 일제 수탈, 동족상쟁의 비극 속에서 헤매던 우리의 과거사가 떠오른다.

오늘의 대한민국 위상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을 시절의 기억들이 있다.

6.25 직후 외신보도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필 수 있겠느냐’며 우리의 현실을 폄하하기 일쑤였다. 국제무대에 ‘Made in Korea' 제품이 한참 뒤떨어지는 성능으로 푸대접 받던 시절도 있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생활할 때 우리나라 제품 수리를 의뢰했다가 ’한국산이 뻔하다‘는 반응 때문에 속상했던 경험이 있다.

거칠고 힘든 시절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어렴풋하나마 너나 없이 생존 그 자체를 삶의 전부로 받아들이던 시절의 편린들을 기억한다.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처지이다 보니 ‘삶의 질’은 커녕 ‘멋’이나 ‘격’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지친 삶의 연속이었다. 그저 생존에 대한 보장만이 모든 이들의 최대관심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우 아파트나 성수대교, 삼풍 백화점 등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던 ‘인재’조차도 살아남기 위한 총체적인 과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할 대가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의 기준으로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에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작고 하셨지만 이름만 되면 알만한 대기업 회장이셨던 A씨는 생전에 내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그는 지난 날 살기 위해 저질렀던 숱한 일들이 후회되고 부끄럽지만 당시로 되돌아간다면 또 살기위해 그 짓을 반복할 수 밖에 없을 거라며 장탄식을 한 적이 있다.

지난 날 과오에 대한 지적은 다음 세대의 이정표가 된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짚을 건 짚고 고칠 건 고치고 넘어갈 건 넘어가는 식의 마무리는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적 아픔을 온 몸으로 막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몰아붙이기 식이 아니라 시대적 특수 환경을 반영한 배려차원의 평가기준이 있어야겠다는 얘기다.


“아빠, 청문회 하는 자리엔 절대 나가지 마세요”

오늘 아침 청문회 관련 뉴스를 보다가 딸아이가 내게 던진 일갈이다.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지내고 이제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황식 후보자를 향해 쏟아지는 각종 의혹들, 특히 딸과 관련한 문제제기가 남의 일 같아 보이지 않았나 보다.

김 후보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혹시 A회장처럼 험한 시절을 건넌 세대가 아닌가 싶어 약간은 안쓰러운 느낌이 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청문회가 모쪼록 좋은 국무총리를 검증할 수 있는 순기능의 장이 되길 바라는 점에선 여느 국민과 다르지 않으리라.


태극소녀군단의 활약으로 최덕주 감독의 ‘아버지 리더십’이 뜨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 ‘아버지 리더십’이 제일 필요한 곳은 아마도 정치현장이 아닐까...

부동산 거품, 날로 잔혹해져가는 범죄 등 오늘도 우울한 소식 일색인 뉴스를 보며 문득 해 본 생각이다.

(2010. 9. 27)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2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사진 편지



추암(촛대바위)

-홍문종




사연 한 자 없이 온 사진 한장


발신 한 줄 없이 온 부적 한장


음표 하나 없이 온 음감(陰鑑) 하나


파도도 일렁 없이 온 파경(罷經) 일성


바위도 바각 없이 온 바귀 바늘 .

.

.

바위 성 한 채 오롯이 들어 앉혔다


명절 끝자락에 받은 사진 한장이
사정없이 감성의 늪으로 빠뜨리는군요.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이렇게 소개합니다.


(2010.9.27)

2010년 9월 25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길을 묻다

길을 묻다




우연히 오래된 서가에서 ‘쇼펜하우어’의 얼굴을 만났다.


고집스런 표정을 표지로 한 그의 책이 유난히 반갑게 눈에 들어온 건 아마도 고등학교 은사님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 경지는 죽음 밖에 없다는 역설로 독일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자살에 이르게 한 염세주의 철학의 대가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를 전하고자 열정을 다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의 삶을 비관에 빠뜨려놓고 정작 자신은 73세까지 천수를 누린 독설가는 좀처럼 우리들과 친근해지지 않았다. 그저 낯설고 어렵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대학에 가서도 여전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정독해야 이해될 정도로 난해한 상황은 여전했지만 그동안 덧입혀진 세월 덕인지 쇼펜하우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의 진의를 이제는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스스로를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여겼던 쇼펜하우어는 철저하게 고독한 생을 살았다. 철저하게 유리된 삶을 고집했다. 심지어 자신의 묘비명에 조차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자신 만의 특별한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거나 강요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리석은 일로 치부하고 금기시했다. 타인의 인정을 끌어내기 위해 상대방을 먼저 인정해주는 식의 처세를 경원시하고 못견뎌했다. 스스로가 위대한 역량을 갖췄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것은 그가 평범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지만 비범하고 잘난 사람이 평범한 척 하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고립되어갔던 것 같다.




한가위 연휴동안 체중이 불었다.


절제되지 않은 식탐이 원인이었다.

어느 정도 배부른 상태에서 송편을 집어들면서 이제 이를 끝으로 더 이상 음식에 욕심을 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도 식탐을 자극하는 다양한 먹거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젓가락질을 자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기가 막히게 음식조절을 잘해왔다고 자부하던 터였기에 입맛을 끄는 명절 음식 앞에 힘없이 무너져내린 상황이 무참했다.

그 순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했던 옛 성현의 충고와 쇼펜하우어의 지적이 오버랩됐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욕구에 의해 지배될 수 밖에 없고 변화에 대한 끝없는 갈망 때문에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지적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과 변화를 향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에 냉소를 보냈던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변화에 도달하면 또 다시 새로운 갈망을 향해 갈증을 느끼게 돼 있는 인간의 한계를 일찌감치 간파한 그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변화는 새로운 욕구를 합리화시키에 좋은 변명거리에 불과할 뿐인 것을.
한가위의 미덕을 깨닫는 과정에서 쇼펜하우어를 다시 보게 해 준 셈이다.




지금 주위를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탐욕의 사닥다리가 불안하다.

수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수레를 멈춰지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수 없어 불행을 자초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이 보인다.


그럼에도 묻게 된다.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고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데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가을의 길목에서 길을 묻고 있다.


(2010.9.25)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한강

한강



홍문종



어두움이 슬며시 다가오고

저 도시의 섬광들이


폭죽 놀이 하듯

강 위에 뛰 놀면



절망의 사하라에

신기루처럼 허리굽은

바벨탑들이 오그라들고

광란의 몸짓들은 발악을 하고



한강 &역사

아득한 전설의 잔영만 일뿐

잊혀진 듯 아는 듯 모르는 듯


나름의 흐름을 반복 하는 듯



불야성 이룬 위용

뽐내며 자랑하고

전지전능한 신의 소리 훔쳐

오만하고 철없는 괴성 지르고



이 세상

내 세상이니라

모든 것은 나로 말미암아 시작 되었느니라

내가 주인이며

내가 있음에 모두가 존재하니라



조악한 소리로 후려침을 당해

조롱거리로, 천덕 꾸러기로 전락한 당신은

머리 깎인 삼손처럼

고독한 몸짓을 해댄다



한강

배설된 오물

찡그림 한번 없이 책임지려

비명 소리조차 낼 수 가 없어



비벨은 무너지리라

잡 신들도 흔적도 없이 도주 하리라

영겁의 세월 속에 생멸을 거듭하리라

하안 강은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이라



세월을 돌고 돌아

당신이 변하고 또 변하여도

영원한 생명력으로

우리의 곁을 지킴이어라

(2010.9.24)

홍문종 생각 - 風樹之嘆, 대통령의 눈물

風樹之嘆, 대통령의 눈물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대통령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봤다.

성공해서 새 옷을 사드리겠다고 한 어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회한의 눈물이었다. 대통령은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며 울먹이셨다.

명절을 맞아 風樹之嘆의 비통함을 토로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나 역시 추석을 이틀 앞두고 나눈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전화를 거신 아버지께서는 머뭇머뭇하셨다.

평상 시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걱정이 되어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묻자 그 때서야 아버지께서 밝히신 용건은 “밥이나 함께 먹을까 해서....“였다.

사전 약속된 가족 모임일은 추석 전날과 당일이었다. 가족들 대부분 스케쥴과 싸우고 있는 형편을 감안한다면 추석 전전날 아버지의 ‘번개’ 제안은 아무래도 여의치 않았다.

죄송한 마음에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머뭇거리는 상황이 됐다.

“그럼 내일 만나지 뭐... ”

정황을 감지하신 아버지의 정리로 이야기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을 통해 감지된 아버지의 외로움이 속울음으로 남아 지금 내 가슴을 적시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부쩍 약해지신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쓰이던 차였다.

세월을 한꺼번에 맞이해 버리기라도 한 듯 힘이 들어 보이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일평생을 바쁘게 살아오신 아버지시다.

자식들 생일이나 졸업식 행사에 늘 ‘부재중’이셨지만 우리들에게 언제나 당당하셨다. 아마도 넉넉한 그루터기가 되어 가족 보호의 책무를 다하셨다는 가장으로서의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가장 믿을만한 버팀목이셨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투박하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가 아니다.

언제 이렇게 늙어버리셨나 싶게 야단을 쳐도 옛날처럼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아니고 걸음걸이도 많이 변하셨다.

무뚝뚝했지만 선 굵은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대통령의 눈물에서 철들어 부모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때 부모가 안 계시는 것처럼 서럽고 허망한 일이 없음을 알고 난 이후의 회한을 보게된다.

孝를 백가지 선한 일의 근본으로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인들의 자취를 새삼스레 돌아보면서 효의 의미도 되새겨 본다. 효도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지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모체가 자식들의 행복임을 감안한다면 결국 효도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겠다.

노인 세대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건 외로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곁에 계실 때 부모 공경, 특히 부모님의 외로움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명절 아침이다.

가족들이 모여 도란도란 얼굴을 마주보고 조상들의 공덕과 부모 공경의 마음을 새기던 이 놀라운 전통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한가위 연휴 지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0.9.22)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한가위 추억을 되찾자

한가위 추억을 되찾자



유례없이 긴 추석 연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명절 특유의 들뜬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스산함이 앞선다.

추적 추적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 탓만은 아닐 것이다.

추석 명절, 천고마비의 풍요로움 속에서 넉넉한 인심과 정으로 서로를 보듬던 기억이 아련하다.

휘영청 밝은 달 빛 아래에서 정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미래의 희망을 새기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있었나 싶다.

돌이켜보니 기억 곳곳에 숨은 그림이 되어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박혀있다.

그러나 다시는 그 시절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될 것 같지 않아 우울한 마음이다.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고 했던 덕담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아 쓸쓸해진다.


많은 이들에게 이번 추석은 춥고 우울한 기색이 역력하다. 명절을 남의 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체불임금이나 청년실업 등으로 생활을 짓누르는 경기불황 여파와 무관한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만 해도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수가 늘고 있고 졸업한 지 3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직장을 못 찾아서 낙담해 있는 제자들을 많이 보게 된다.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회사가 도산해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다시 재취업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의뢰가 밀리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취직이 안돼 힘들어하는 아들, 딸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읍소하는 어머니들을 보는 일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경비실 직원 한 명을 채용하는데 멀쩡한 회사에서 일하다가 구조조정 당한 사람들이 몰리는 현실을 목격했다.

태풍 재해로 수확 직전 농작물을 망친 과수 농가의 시름은 땅이 꺼질 정도다.

물가는 물가대로 천정부지고 그나마 서민들은 지갑을 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그 폐해가 고스란히 소외계층을 위한 시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에 후원금 및 물품전달 행사가 이어지던 예년과는 크게 달라진 분위기라고 한다. 실제로 명절 때마다 답지하던 개인사업가와 사회단체들의 후원 건수가 20% 가량 감소됐다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이 해외 출국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명품매장이나 고가 선물코너 상품이 불티나도록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이 배고픔에서 벗어난 지가 얼마나 됐느냐며 진짜 배고프고 힘든 것을 모르는 게으른 사람으로 매도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니 걱정이다.

그런 모습들이 집 없고 먹을 것 없고 보살 필 사람 없는 불우이웃은 물론 일반 서민들의 삶을 더 강팍하게 만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富’를 사회적 틀로 가두는 것은 부당하다.

내 돈 내가 벌어서 내 마음대로 쓰는 건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한 권리라도 사용방법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물이 초래된다는 측면에서 ‘부의 용처’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신중해도 모자라지 않다는 생각이다.

늘 반복하는 말이긴 하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 역지사지, 나눔의 철학 등에 더 각별한 마음씀이 필요한 때다.


어느 때보다 소통과 화합이 사회적 용어로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더불어 하나가 되어 함께 잘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강조되는 게 아닐까 싶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 던 시절에도 풍요롭게 공유하며 민족 공동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명절이 세계 경제 순위 11위를 자랑하는 지금은 오히려 민족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초라하게 굴절된 경제 발전의 이면을 들킨 기분이어서 민망하기까지 하다.

소통과 화합은 말의 성찬으로 해결될 수 없다. 진정성 있는 실천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가위는 더 ‘낮은’ 곳으로 더 ‘약한’ 곳으로 더 ‘소외된’ 곳으로 향하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물질이 어려우면 따뜻한 위로의 마음이라도 전하도록 솔선 수범해 보자.

그래서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의 추억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렇게 함께 노력해 보자.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보자고 손가락 걸어 다짐해 보자.

(2010.9.21)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1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내게 길 물으니

내게 길 물으니



-홍문종-



한밤에 구름을 보신 적이 있나요.
달빛도 없는 깜깜한 밤에 구름을 보신 적이 있나요.
별빛도 없는 칠흙같은 어두운 밤에 구름을 보신 적이 있나요.


먼산 아스라이 손짓하고
바람은 슬렁슬렁 얼굴을 간질이는데
한밤의 구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달빛에 비췄던 그 구름인가요.
별빛과 어울렸던 그 구름인가요.
아니면 나 혼자 구름이어라
자유롭게 노닐던 구름인가요



아 참
달은 그 달이고 별은 그 별인데
구름은 그 구름이 아닌 것 같아요
구름은 구름이라 하지만
글쎄 그 구름인가요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달 별 구름을
멀리 어슴프레 보이는 산을 의지해서
찾아가고 있어요



나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찾느냐고
구름을 찾고 있는데
그 구름이 내가 보았던 구름인지
궁금하다고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나는 달처럼 구름처럼 태양처럼
그 때의 나인가요
아니면 구름같은 나인가요
구름같이 무니만 비슷한 나인가요


아 참,
그러고 보니 달도 별도 태양도 나도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사랑만 의지하고 살겠어요
예, 사랑의 진실만 의지하고 살겠어요
변하지 않는 사랑만
별보다 달보다 태양보다
사랑만 기다리고 살겠어요


머리를 들어
별도 달도 태양도 없는 하늘에서
구름을 찾는 이 밤입니다.



(2010.09.19)

2010년 9월 17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캐릭터 연가

캐릭터 연가



남친돌, 깝돌, 짐승돌, 모델돌, 백지돌...

얼핏 무슨 뜻인지 해석이 난감해서 당혹스러운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그랬다. 알고 보니 가요계 아이돌 그룹에게 붙는, 결코 평범할 수 없는 별칭을 가리키는 용어들이었다.

캐릭터 설정은 순수한 보컬 실력이 주를 이뤘던 과거의 평가와는 달리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으로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게 되면서 가요계에 새로운 트랜드가 형성된 결과다.

이로 인해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날마다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형국이라고 한다. 특정 이미지의 캐릭터화가 그룹의 명운을 좌우하는 결정타가 되기도 하니 고만고만하게 치열한 경쟁구도에 놓인 입장에서는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캐릭터 설정으로 성공을 거둔 아이돌 그룹이 많은데 대표적 케이스를 꼽으라면 ‘2PM’을 들 수 있다.

2PM 멤버인 조권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 마다 ‘있는 대로 촐싹거리는 캐릭터’로 출연, '깝돌'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는가 하면 그룹은 그룹대로 ’짐승돌‘이라는 이미지 설정으로 정상급 위치로 우뚝 올라서는 기회를 거머쥐었다는 평가다.



오늘 한국캐릭터협회와 경민대학 간의 MOU를 체결하는 자리에서도 '캐릭터'의 중요성이 언급됐다.

평소 애니메이션 분야를 공부한 딸아이와 경민대학에서 주관하는 전국 효 만화 공모전 인연으로 개인적인 관심이 적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함께 한 한국 캐릭터협회 이종원 회장님과 심평무 상임부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좀 더 심도있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캐릭터는 그림 한 컷에 대상의 전부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특징을 잡아서 압축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과 파산 직전에 놓인 월트디즈니사를 오늘 날의 위치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 다름 아닌 미키마우스 캐릭터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흥미롭게 들었다.

정말이지 캐릭터 시장은 무궁무진한 시장성만으로도 충분히 미래지향적인 경쟁력을 갖춘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수록 이미지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미지가 미치는 영향력은 정치 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에서 색다른 항목으로 여론의 흐름을 조사한 데이터를 기사화한 내용이 있었는데 정치인에게 있어 캐릭터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에 대해 느끼는 각종 이미지를 조사한 작업이었다.

국민들은 약속과 신의, 도덕성, 위기관리 능력 등 상당히 다양한 내용으로 각 정치인의 이미지를 묻는 조사에서 가장 긍정적 캐릭터로 (여야 통틀어) 국민들에게 가장 긍정적 캐릭터로 구축된 정치인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꼽았다. 여타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날카로운 결과물로 나타나 있었다. 생각보다 국민들이 예리하게 정치판을 지켜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정치적 성패를 가를만한 민감한 기준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현실은 어떤 이미지의 캐릭터로 비춰지고 있을까?

이왕이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이웃의 아픔을 따뜻함으로 품고 공유할 수 있는 믿음직한 정치인이며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로 빠른 실행이 가능한 결단력을 소유한 긍정적 이미지로 구축된 캐릭터의 주인공이고 싶다.

여기에서 물질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물질보다는 도덕성, 신뢰성, 지조, 의리 등의 정신적 가치들이 바람직한 이미지 구축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도 더 큰 의미로 작용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내가 지향하는 방향과 현실적인 내 모습에 괴리가 존재한다면 이를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사실 노력하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정치를 목표로 정한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중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또 굳이 공적 영역에 놓여있는 위치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가족이나 소속 구성원들 사이에 각각 어떤 유형의 캐릭터로 평가받고 있는지 스스로의 현실을 점검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작업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오늘의 블로그 소재를 ‘캐릭터’로 설정한 것도 ‘약속 잘 지키는 캐릭터’ 구축을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 협회 관계자들에게 캐릭터와 관련된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로 한 약속을 실행하는 차원으로 말이다.


오늘의 인연을 계기로 한국 캐릭터협회와 경민대학이 상생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또 누구든 원하는 이미지가 있는 분은 한국 캐릭터 협회의 전문성에 의지해 보는 것도 생산적일 수 있다는 정보도 덩달아 전하는 바이다.



PS,

이종원 회장님.

오늘 함께 했던 시간들,,, 반갑고 또 좋았어요.

높은 호응 속에서 전국 효 만화 공모전이 성황리에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 경민대학 학생들에게 세계로 뻗어나가는 비전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도 너무 너무 감사하고요. 덕분에 미래산업의 기대주로 커 나가고 있는 캐릭터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저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유익했답니다.

무엇보다 회장님께서 직접 고안하신 곰탱이 캐릭터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협회에서 만들어주신다고 한 제 캐릭터,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기대 됩니다. 박지성 선수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부탁드리면 과욕이 될까요? 그래도 넉넉한 인품을 담은 캐릭터였으면 좋겠습니다. 캐릭터에 뒤처지지 않도록 죽어라 노력해볼 참이니까요.

그리고 이 블로그를 통해 협회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제 마음이 부디 잘 전달되기를.


(2010. 9. 17)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16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물질의 허망함을 벗자

물질의 허망함을 벗자



캘리포니아 현역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訪韓 일정이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2012년 캘리포니아 고속철 사업 논의를 위한 그의 행보가 정치적 입지보다는 배우로서의 유명세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는 듯하다.



세계 영화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헐리우드,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또 세계 최고의 색을 품고 있는 말리브 해변과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진 엘로우 스톤 공원...

천혜의 기후조건과 함께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소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의 ‘골든 스테이트’로 불리우며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이다. 국가 단위로 평가해도 경제 순위 세계 8위, 세계 10위의 면적이나 인구 규모를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기회의 땅이었다.

나 역시 스탠포드 재학시절 3년여의 시간을 캘리포니아에서 머문 바 있는 데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 속에 새겼던 그 때의 정경들이 지금도 가끔 엔돌핀을 가동시키는 동력이 되곤 한다. 유명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 특성 상 유학생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유학생들, 특히 중국 유학생들이 캘리포니아가 천국에 가깝다며 감탄해하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오늘 날 캘리포니아 현실은 안타깝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세계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캐리포니아 위상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어 가고있다. 늘어나는 적자폭을 매울 도리가 없어 재정파탄에 대한 위기감으로 퇴락의 기조가 역력하다.

급기야 외국으로부터의 수혈이 불가피한 상황에까지 이른 모습이다. 경기불황 직후 세수가 급감하는 가운데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급증한 건강보험과 사회안전망에 대한 수요에 따른 정부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슈왈츠제너거 주지사가 영화 터미네이트에서처럼 터프하게 캘리포니아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희망적인 것 같지는 않다.

작금의 캘리포니아 현실은 천혜의 입지조건이라도 무절제한 낭비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음을 웅변적으로 설명해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캘리포니아의 퇴락을 지켜보는 심정이 솔직히 복잡하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 건전성 문제가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이 불안감이 기우로 그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자신없다.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적 풍토가 불안감을 날로 증폭시키고 있다. 사람의 진가가 값비싼 자동차나 거주지역이나 아파트 평수, 명품 브랜드 물품의 소유여부로 판단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골프채나 화장품 등 각국의 명품들이 일단 한국 시장에 런칭돼 성공여부를 테스트 받는 게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국민 일인당 최고급 양주의 소비가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라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소비 장악력(?)을 지금 우리 국민이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4억 명품녀’ 케이스가 천민자본주의의 대표적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당국의 세무조사 방침까지 촉발시킨 명품녀에 대한 진실공방이 주변인의 가세로 논란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전남편을 자처하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녀의 낭비벽을 하소연하는 기사도 나왔다. 속단할 수 없지만 드러난 일들이 사실이라면 부모의 무책임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부모의 무절제한 호의(?)가 자식의 인생에 걸림돌이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부의 권리’를 부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물질과 소유가 인간의 참 행복을 보장하는 가치척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물질의 충족을 목표로 하는 인생은 끝없는 갈망의 연속 속에서 돌아서면 늘 허기를 느끼게 돼 있다. 명품녀가 갖고 있다는 8억 상당의 40여개의 명품백이 그 반증이다. 모르긴 몰라도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 그녀로 하여금 끊임없는 명품 쇼핑 순례자로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자신이 존재하는 근원적인 목표점이 설정되지 않은 삶은 늘 부족함 투성이일 수 밖에 없다. 스스로의 욕심에 노예가 되어 삶을 탕진한 결과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도 인류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도 평생을 영원한 방랑자로 허기를 느끼며 살다간 흔적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근원적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 방편으로 저마다의 소명의식을 찾는 정신운동을 펼치는 건 어떨까 싶다. 물질의 허망함을 벗자는 것이다.

한 차원 승화된 정신적 가치가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 그 자신감이 불안한 기조를 보이고 있는 우리 현실을 구원할 수 있는 근원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선택은 저마다의 몫이지만.

(2010. 9. 16)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1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도박, 그 치명적 유혹

도박, 그 치명적 유혹



요즘 들어 대한민국 사회에서 최대 관심사로 급부상한 관련 단어를 꼽자면 단연 ‘도박’이다.

각 매스컴이 앞 다퉈 중계하는 ‘신정환 도박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도박을 주제로 저마다의 ‘주관’을 쏟아내기 바쁘다. 대부분 도박의 폐해를 지적하는 의견들이지만 간혹 어차피 인생사 자체가 도박인데 각박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완충제 역할을 들어 도박예찬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내게도 ‘도박’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15대 총선 당시 ‘사람이 살아가면서 조심해야 할 ‘3마’가 있는데 경마(도박), 약마(마약이나 술) 그리고 출마‘라는 출마의 변으로 좌중을 웃겼던 기억이 난다. (그 덕분이었는지 무난히 국회 입성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기억도 잘 안나는 오래 전, 친구들과 라스베가스에 간 적이 있다. 그리고 호기심에 부풀어 저마다 100불씩 손에 들고 씨저스 팔레스니 엠지엠이니 하는 곳을 찾은 경험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아쉬워하면서도 그 정도의 수업료로 큰 경험을 해 봤다며 득의양양하던 모습들이 추억의 한 파편으로 남아있다.



과유불급.

욕심이 늘 문제다.

욕심에 대한 경계를 허물지 말아야 하는데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 간단치 않은 것이다. 도박 중독이 인간의 기본적 양식을 마비시켜버릴 정도로 무서운 독성을 발휘하는 현장을 눈으로 보게 되니 하는 말이다.

실제로 도박 중독으로 기본적인 상식선이 교란되면서 치명적 병폐가 초래된다는 사실을 이번 신정환 경우에서 절감할 수 있었다. 전도양양한 자신의 앞날을 송두리째 수렁에 처박고도 여전히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그의 ‘비참한 말로’가 참으로 안타깝다.

평상시 나는 모험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당할 수 있는 테두리까지를 내가 즐기는 모험의 임계점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나 주변 환경요인 등에 대한 마지노선을 잊지 않고 나름의 철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진정한 의미의 모험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안전하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일종의 노하우로 내게 입력되어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종종 사회적 물의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도박도 불명예를 벗으려면 ‘내 방식’논리가 적용되면 어떨까 싶다.

도박 뿐 아니라 사소한 오락게임조차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나 재화 규모에 대해 일정한 한계를 정해놓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삶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수치심을 잃지 않을 정도의 멤버 구성도 중요하다. 그 정도면 최소한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서 낭패를 보는 불상사는 일어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따라서 좀 더 근본적인 정부차원의 항구적인 대응책이 당연히 있어야 하겠다.



필리핀, 홍콩, 마카오 심지어 라스베거스까지 도박 한국인들에게 접수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비뚤어진 과시욕 때문에 대다수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도매값으로 매도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이들의 원정 도박을 차단할 수 있는 묘책 마련이 시급하다. 기왕에 강원랜드가 있기는 하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은 만큼 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채찍과 당근을 병행해서 순화된 형태의 국민도박장을 고려해보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라스베거스처럼 쇼도 볼 수 있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갖춘 센터로 국민들이 건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당‘을 조성해서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되게끔 관광 차원에서라도 숨통을 트일 수 있도록 정부의 고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대체 오락의 보급이나 그린벨트를 이용한 휴양 시설 등의 확대 설치도 도박 중독의 확산을 막는 대응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성인 100명 중 1명은 도박중독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매년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누구도 도박중독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도박중독은 마약중독이나 알콜 중독과 같은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지병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야겠다. 실제로 도박장에서 돈을 따기를 기대하는 사람의 뇌는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의 뇌와 동일한 반응을 나타낸다는 연구결과가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자가진단을 통해 중독 정도를 체크하는 시스템이나 기능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보호나 수용 시설을 활용한 치료 등 정부가 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도박중독이 치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범죄시하거나 고립시키는 것은 도박중독자의 갱생을 막는 치명타일 뿐이다.

도박으로 인생을 망치고 해외에서 부랑하고 있는 ‘낭인’들도 어차피 우리 국민이다.

그들을 포기하지 말자.

국가 차원에서 현지에서 법적 문제나 조직깡패 등에 의해 억류된 사례를 찾아내 인터폴 공조 등을 통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재활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관심을 보이길 바란다.



그런 맥락으로 신정환에 대해서도 재고의 여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예인의 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 신정환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2010. 9. 15)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1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최근 내 인생이 새로운 기류에 접목(?)되는 빅 이벤트가 있었다.

포천 광릉수목원 진입로에 위치한 아프리카 박물관에 ‘문패’를 걸게 된 것이다.

살다보면 계획되지 않은 뜻밖의 일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아프리카 박물관과의 인연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아프리카 박물관이 내 삶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인생이 참 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2006년 박물관이 오픈되면서 고문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을 때만 해도 내 자신이 박물관 전체를 온전히 책임지는 위치에 서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물론 평소 아프리카에 대해 인류문명 원조지에 대한 원초적 호기심을 품고 있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전격적인 결과물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남아공 월드컵 축구 때문에 폭주하는 관심의 대열에 묻혀 함께 열광하면서 부풀려진 아프리카에 대한 호의가 겁도 없이 아프리카 박물관을 덜컥 접수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매개로 아프리카와의 깊은 인연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레임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생각보다 아프리카 박물관의 덩치가 크다.

유물이나 작품의 규모도 그렇지만 주변으로부터의 관심도 상당한 만큼 큰 그림을 그려도 되겠다는 의욕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박물관의 여러 분야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에서 온 공연 팀이 제일 흥미롭다.

처음에는 검은 피부나 몸의 문신, 유난히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등 익숙하지 않은 외모 때문인지 쉽게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예의바른 태도와 순수한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는 면도 놀라웠다. 아프리카가 인류문화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더 나아가 앞으로 인류문화의 핵심으로 재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확신도 확고했다.

검은 피부 뒤에 숨어있는 우성 DNA의 진수라고나 할까, 그야말로 ‘원시·토착’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세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쇄신하는 ‘문화 전령사’ 역할을 그들이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었다. 육감적인 몸매와 리드미컬한 율동을 통해 전달되는 공연단의 예술적인 감각과 흥은 앞서 입증된 스포츠 기량 등과 더불어 아프리카가 다가오는 문화예술 신세기를 평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미개하고 낙후된 대륙이라는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이제는 많이 제고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늘 바쁜 사람이 거기까지 관심을 갖느냐고 많은 이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중국을 필두로 한 세계 각국의 아프리카 대륙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만으로도 아프리카 박물관과의 인연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아프리카가 세계의 중심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지는 분위기가 이번 결정이 시의적절했다는데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이벤트가 교육현장에도 상당히 유용한 인연으로 작용될 거라는 기대감도 빼놓을 수 없겠다.

지금까지 경민대학에서 중국이나 미국, 호주, 유럽 일부 국가와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는데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 각 지역과도 적극적인 교육 교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별히 문화 예술 분야의 교류에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조만간 아프리카 대사들을 전부 초청해서 이 문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심도있는 논의를 나눌 생각이다.


아직은 여러 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신경써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우선은 혼신의 열정을 쏟아 붓겠다는 의욕만 가지고 뛰어들었다.

그렇더라도 종국엔 창대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다.

강호제현의 지도편달을 바란다.



PS: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서 둘러볼 만한 곳이다.

포천 광릉수목원 진입로에 위치에 있기 때문에 광릉 수목원과 임업시험장을 묶어서 하루 일정으로 방문하시면 좋은 볼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다.

네비게이션에 ‘아프리카 박물관(경기도 포천시 소홀읍)’으로 입력하면 자동 안내 된다.

(2010.9.12)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11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희망을 깨우자

희망을 깨우자



달라진 국가적 위상을 가장 먼저 실감하게 되는 건 외국의 공항 입국심사대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외국을 자주 방문하는 분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자 국적에 따라 입국절차의 난이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말이다.

어느 때 부터인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대한민국 패스포드를 내밀면서 우쭐한 느낌을 갖게 된 것 같다. ‘Korean'임을 밝히면서 조금은 더 당당해진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처음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70년대 초반 당시의 풍경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 여름 방문했던 폴란드나 체코 등 유럽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시가지 곳곳에 널려있는 한글간판이나 한국제품에서도 그렇고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반기며 호감을 표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우리의 현주소를 체감할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 만난 한 상인은 자신의 낡은 중국제 자전거를 가리키며 한국제품이었으면 훨씬 성능이 좋았을 거라고 말을 붙였다. 심지어 그는 중국제품에 대해 별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며 우리제품의 우수성을 거듭 칭찬해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그런데 생활고 때문에 여러 유형의 생계형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선진국 반열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늘을 고스란히 드러낸 실상인 셈이다.

실제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마트에서 음식물을 훔치다 주부가 구속이 되고 실직한 20대는 생활비가 떨어지자 재래시장을 돌며 푼돈을 털다 덜미를 잡혔다. 성실히 살았지만 빚을 갚지 못해 고민이 깊어진 가장은 어린 자식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하직했는가 하면 역시나 경제적인 문제를 이유로 어린 세 딸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어버린 모진 모정의 안타까운 사정도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전과자로 전락하고 있는 게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다.

이처럼 어두운 현실을 단순히 개인의 경제 능력 문제로 외면하기엔 사회적 책무와의 연관성이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고 있다 해도 이 같은 사회적 그늘이 제거되지 않는 한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부모로부터 조달되는 용돈만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4억 명품녀'에 대한 논란도 우리 사회의 모순된 부의 편중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정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정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화두로 ‘잘 살기보다는 공평하고 공정한 나라’라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러시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도 “경쟁을 통해 사회의 역동성을 살리며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공정한 사회야 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실천적 인프라”라는 내용의 포럼 기조연설로 이 같은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현실은 정부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생계의 도탄에 빠진 이들을 향해 ‘잘못’이나 '책임‘을 추궁하거나 종용하는 건 불량기 넘치는 사회적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는 일이다.

해결을 위한 공동체적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관점에서 최근의 생계형 범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차원의 주장을 펴자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축적물을 오로지 개인적 영역이라는 편협한 생각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그런 현실이고 보니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부자가 존재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에게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모범적으로 실천해 온 경주 최부자 댁이 있기는 하다. 대를 이어가며 이웃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민 덕에 존경받는 부자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지금은 그 명맥이 끊긴 상태다)

남의 나라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국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 억만장자 40명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는 '아름다운 약속'을 결성한 움직임은 이 땅의 기득권 계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풍토가 정착되려면 아직도 요원한 우리로서는 그저 부러울 뿐인 사회적 자산이다.

특히 우리의 종교인들이나 사회사업가들이 역할 모델로 삼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백히 말하자면 이들은 자신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을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종교계의 현주소는 비관적이다.

들여다보면 교회나 사찰 등이 본연의 업무와 역할의 중심에서 벗어난 일탈 투성이다. 마치 외형으로 교세가 결정되기라도 하는 양 날마다 신축 경쟁에나 매달리면서 정작 해야 할 진짜 해야 할 임무들을 도외시 하면서 빈축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그들에게 기대할 게 과연 있기나 한 건지 모를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은 임금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 말은 이제 말 그대로 옛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성 있는 사회적 합의로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동력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해결책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우선 당장 한 끼를 해결하는 정도의 단편적 구호는 제공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줄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 양극화의 폐해를 완충시키는 치유책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히려 전체 국민에게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불평등 구조의 심각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게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자는 것이다.



모두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분배와 공유가 제자리를 찾는 길이 가장 빠른 해법이다.

이를 기본 전제로 모두가 한마음이 될 수만 있다면 양극화 해소는 물론 이 정부의 주요 화두인 공정한 사회 구축을 한결 더 수월할 수 있도록 하는 묘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부자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쉬운 ‘존경과 사랑’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

모쪼록 희망을 잃지 않는 게 관건인 만큼 희망을 깨우도록 하자는 얘기다.

(2010. 9. 10)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9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역원조교제

역원조교제


왜곡된 성문화의 인질이 되어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실태가 점입가경이다.

솔직히 인터넷 뉴스 제목을 클릭하기조차 겁날 정도로 끔찍한 현실이 날마다 줄을 잇는 형국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미숙한 정신과 조숙한 신체의 부조화 때문인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이번에는 ‘逆원조교제’라는 생경한 용어로 혼 줄을 빼놓는다. 세상에나 어떻게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활용한 성매매로 돈을 벌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 앞에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10대 남학생들이 그것도 성인 여성들을 상대로 성을 팔겠다고 나섰다가 무더기로 적발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래서 따라 붙은 이름이 ‘역원조교제’다.

경찰에 따르면 문제의 사이트에 가입한 남녀 회원(남자 회원은 10, 20대였고 여자 회원은 20대 후반부터 50대까지의 연령대)이 544명이나 되었고 역원조교제를 원하는 글이 무려 844건이나 게시돼 있었다고 한다. 이를 매개로 10대 남학생과 성인 여성들 간의 성매매가 성사되기도 했다니 전체 사회의 전반적인 정서와 마냥 동떨어진 발상이 아닌 것을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성인들의 비뚤어진 성의식 피해자였던 10대 청소년들이 이제는 가해자가 되어 사회적 혼란을 주도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현실이 당혹스럽다.

게다가 비정상적인 청소년 성문제가 근절되기는커녕 확대일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걸러지지 않은 낯 뜨거운 性적 표현이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영화 스크린을 통해 무방비적으로 범람하는 요즈음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역원조교제 케이스도 케이블 TV 프로그램이 모방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마당이다.상업주의의 치열한 경쟁 구도 때문에 어느 결에 인간의 性은 더 이상 짐승의 본능적인 욕구와 변별되지 않는 수준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온 몸으로 ‘바담 풍’을 보여주면서 입으로만 ‘바람 풍’을 가르친 기성세대의 이중성이 초래한 부작용에 다름 아니다.

구부러진 아이들의 이 모습은 가릴 수 없는 우리 어른들의 자화상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청소년의 성적 일탈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황금만능주의가 불러온 또 하나의 일그러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오늘 날 원조교제나 역원조교제로 인한 혼란도 그 천박한 논리가 급기야 물질로 환산해서는 안될 영역을 침범해 버린 후유증에서 비롯된 셈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게 최고의 선이라는 잘못된 가치관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부모의 보호 없이도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도 문제를 키우는 요인이다. 부모 슬하를 떠나도 수월하게 돈 벌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믿는 구석이 그들로 하여금 고민없이 너무나 쉽게 현실을 박차고 나서게 하는 것 같다.

덕분에 조금만 못마땅해도 가출을 일삼는 10대들의 풍속도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은 세상이 됐다. 인정하기 싫지만 성문화의 마수가 가출 청소년을 유혹하고 있는 현실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 곳곳에 지뢰처럼 널려 있는 어두운 수렁 속으로 날마다 빠져들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철학의 빈곤도 문제라면 문제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동안 먹고 사는 데 치중 할 수 밖에 없었던 불행한 과거에서 핑계거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일상이 동물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는 자존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는 요즈음이다. 왜 사느냐에 대한 자기 성찰이 국가와 가정, 그리고 개인 등 저마다의 위치에서 철학으로 정립되고 무장돼 있어야 하는 당위성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된다면 최소한 인간 본연의 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동물적인 본능과 약육강식의 질서로만 존재하는 우리 현실이다. 이로 인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이 엄청난 사회적 병리현상을 감당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가슴을 태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현실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현장에 있는 입장에서 이 난감한 현실을 어찌해야 좋을지 하루 종일 막막함으로 겉도는 기분이었다. 아직은 푸른 꿈에 젖어있어야 할 어린 학생들을 그토록 황폐한 폐허로 내몬 건 순전히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자책 때문에.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 옥한흠 목사....

그나마 방황하는 발걸음을 잡아주던 종교 지도자들의 빈자리가 크나큰 그리움이 되어 가슴을 울린다.

그들의 부재가 이 시대 우리가 안고 있는 크나큰 슬픔임을 절감시킨다.

아무도 안계세요?

누구라도 우리 손을 들어 가르침으로 통솔해 줄 수 있는 존재의 출현을 간절히 기대하게 되는 이 밤이 다.

(2010.9.8)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6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장관 딸 이야기

장관 딸 이야기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없는 대한민국이다.

청문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장관 딸 특혜'가 정국을 흔들어대고 있다.

외교부가 통상전문가 특채 과정에서 장관 딸 합격을 위해 ‘맞춤형' 채용 일정을 진행한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참으로 몰염치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진행된 ‘그들만의 리그’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뜨겁게 한다.

실제로 행안부 감사 결과 장관 딸 경력에 맞춰 응시자격을 낮추거나 기한을 연기하는 것도 모자라 외교부 인사담당자 3명이 시험위원으로 불법 참여해 점수를 몰아주는 식으로 장관 딸 합격을 위해 최선(?)을 다한 행각이 밝혀졌다.

현대판 음서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정국이 들끓고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과도한 자식 사랑이 불러온 후유증으로 장관 아버지는 옷을 벗었지만 사건의 파장이 그 정도에서 수습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국민 공분과 허탈감이 너무 크다.

왜 아니겠는가. 그동안 암암리에 자기들끼리 묵인하며 특혜를 누려왔던 현장을 목격했는데 오죽할까 싶다. 나 역시도 생각보다 훨씬 추하게 얽혀있는 그들의 두터운 도덕 불감증 앞에서 부끄러움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국민 전체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특정 인사의 특혜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는 사회라면 국제사회에서 비난받고 있는 후진 독재국의 권력세습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우리의 과거제도나 고시제도가 그나마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상징처럼 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험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선진성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기회이긴 했지만 실상 거기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알성시니 춘당대시니 해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시행하는 임시 과거제도가 인기가 높았지만 공정성 측면에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많았다. 무엇보다 상피제가 적용되지 않아 사관의 자제들에게 응시기회가 열려있었던 점도 그렇고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사정을 감안하면 중앙에 위치한 고위 자제들에게만 기회가 열려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고시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고시제도는 ‘개천의 용’들에게 있어 신분상승의 유용한 ‘등용문’ 구실을 했던 게 사실이다. 이른 바 고시나 행시, 외시 등의 고시제도가 다양한 계층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통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개천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느 시점부터 고시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신분상승의 기회를 충족시켜주는 ‘희망의 창구’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수많은 고시 낭인들이 기회의 줄을 잡기 위해 표류하는 현상은 줄어들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기회균등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적 한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몇 몇 대학이 고시 합격을 독과점하고 있는 현상이 심각하다. 나머지 대학들은 법대의 존재성 자체에 의문이 들 정도로 미미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서울에 있는 유수 대학이 점점 특목고나 강남 8학군, 부와 권력을 배경으로 한 집안 출신들이 차지하는 현실 하나만으로도 대번에 설명이 되는 정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고시제도를 고수하자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바야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명운을 끌고 갈 인재를 구하는데 과거의 선발 기준을 고집하는 건 명분도 없고 불합리하다.

고시제도가 자칫 인재발굴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전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적재적소에 맞는 트레이닝을 거친 인재들의 다양한 캐릭터와 창의성, 독창성 등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물론 외교부장관 딸 건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터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당초 정부가 정한 인재선발 방향이 휘둘린다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혜가 당사자에게 무조건 좋은 환경을 보장하는 것도 아닌 듯 하다.

공무원 특채로 들어간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보이지 않게 가해지는 압박 때문에 받는 스트래스가 적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심지어 직장 내 왕따가 되어 실질적으로 하고자 하는 업무 진행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전언이다.



무엇보다도 시대적 여건에 맞는 인재 선발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사제도보다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공적 마인드가 문제다.

공직자의 공정성이 담보된다면 능력있는 인재 발굴은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부차적 문제다.

특정 인사의 주관적 판단이나 영향력에 의해 인사가 좌지우지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보완이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학교 출신의 독과점 현상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인사의 기본 틀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이왕에 불거진 공정성 시비가 차제에 인사제도의 선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됐으면 좋겠다.

유력자의 딸이 당당하게 특채될 수 있는, 그보다 더한 권력가의 아들이 떨어져도 어쩔 도리가 없는, 그 정도의 정당성이 담보될 수 있는 튼튼한 인사시스템의 출현을 기대한다.

최소한 이 땅의 젊은이들이 청춘을 걸고 공부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기대감만큼은 보장되는 건강성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0. 9. 7)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4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진정한 자유

진정한 자유

우연히 조영남, 마광수 두 사람이 함께 한 인터뷰 영상을 봤다.
남의 시선에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자신만의 진짜 인생을 살아온 평범하지 않은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였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자유와 낭만을 향한 방랑기를 삶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의지를 투영시키고자 한 제작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조영남씨의 화투장 그림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두 남자의 입담은 알려진 대로 거침이 없었다. 주저없이 진행되는 대화는 독특했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부실한 메이컵 탓인지 윤기를 잃은 푸석푸석한 화면발은 그들을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자유인이라고 부르짖는 그들의 외침은 몹시도 공허했다. 50년 이내 결혼제도 자체가 없어질 거라는 등의 주장도 상당히 진보적이긴 했지만 그동안의 ‘파격성’이 반복되는 느낌일 뿐이어서 더 이상 신선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나보다 앞서 사는)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인생이 저런 톤으로 늙어가고 있구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들을 통해 나이든 이들의 재기발랄(?)한 언변은 더 이상 생생한 자극이 될 수 없다는, 인생의 진지한 비밀하나를 발견한 느낌이다. 그리고 어떤 형식이든 종말을 향하고 있는 삶의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듯하다.
그 사실을 수긍하도록 강요받는 것 같은 강박감에 당혹스럽고 우울해진다. 특별히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는 나 역시 같은 삶의 궤적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우울함의 배경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친구들의 부음이나 중병 소식이 우울함을 더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동창 L을 폐암으로 잃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오늘은 내 살을 잘라 먹여도 안 아플 것 같은 친구 S의 소식이 전신의 힘을 빼놓는다. 당뇨기가 있어서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해 봐야겠다는 S의 힘없는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칼로 베는 듯 고통을 가한다.
이제는 죽음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 됐음을 실질적인 환경으로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 예정돼 있고 그 어떤 경로를 거치든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그 무게는 늘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사는 일 못지않게 제대로 죽는 일에 대한 고민을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철저한 자기점검은 삶의 이정을 견인해주는 안정된 조력의 제공처라는 측면에서 더더욱 동반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카터는 평생에 걸쳐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나는 원대한 꿈과 비전, 그리고 열정이 있는데 그것들을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 과연 얼마만큼 최선을 다해왔는지, 그리고 후회없다고 대답할 수 있는지를 자문한다.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살았느냐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통해 그리고 그 답변을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초 단위로 따진다면 좀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인생 전체를 하나로 놓고 보면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에 대한 중압감은 갈수록 크게 느끼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이 되기를 기도로 간구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조차 괴로워할 만큼 자기 성찰에 철저했다니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만 하다.
그런 윤동주의 삶이야말로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시대적 고민을 풀수 있는 최상의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영남이건 마광수건 철학자건 시인이건 정치인이건 그 누가 됐건 ‘최선을 다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시간들이 스스로의 영혼은 물론 사회적 역량을 튼실하게 세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가치있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삶의 족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책도 거기 들어있다.

(2010. 9. 5)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상책을 쓰자

상책을 쓰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막연한 짐작이 막상 현실로 들이닥치니 공포 그 자체였다.

태풍 ‘곤파스’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뿌리 째 뽑혀 널브러진 나무,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제, 산산조각난 대형 유리창....

태풍이 순식간에 거리를 전쟁터로 변신시켰다. 사람이 맥없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가 하면 출근 길 전철은 속수무책으로 묶여버렸다.

자연의 역습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곤파스'의 여진이 채 사라지기도 전인데 이번에는 ‘말로'가 북상중이란다.

게다가 앞으로도 몇 개의 가을 태풍이 더 있다고 하니 근심이 커진다.

차라리 멋모르고 당한(?) ‘곤파스’가 나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혼란의 와중에 문득 인생이 있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태풍과 닮아있는 우리 삶의 과정이 보였다.

해마다 치르게 되는 연례행사인데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그 때마다 피해를 반복하는 현상이 서로 닮아 있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미욱함으로 피해 규모를 키우게 되는 것도 그렇고 일희일비하는 단순함도 그렇다.

인생에 행복이나 불행이 정확하게 예약돼 있는 게 아닌데도 좋은 일엔 그 기쁨이 영원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쁜 일 앞에선 그 아픔이 영원할 것처럼 일희일비한다. 순간의 감정에 빠져 자신의 인생을 또 다른 형태로 꾸밀 새로운 감정이 예비돼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 민망함을 자처한다.



근본적으로 인생에서의 행복과 불행은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기쁨과 슬픔은 취사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현실을 수긍해야 한다. 다만 그 폐해를 예상하고 그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삶의 지혜가 필요할 뿐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인생의 노정에서 불행구간 전체를 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현명한 대처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지혜로운 처신이다.

문제는 희망의 존재여부다.

우리 삶에서 희망의 영향력은 예방주사 같은 효능을 발휘한다. 그것은 생각보다 막강하고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지금 이 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인생을 흔들지만 잠시만 인내하면 곧 밝은 햇살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에 대해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은 일종의 희망 세우기인 셈이다.



태풍이 지난 자리에서 그것이 무서운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인생에서도 같은 현실을 보게된다.

강력한 바람과 폭우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온갖 텁텁함을 말끔히 정화시키는 현상이 그것이다. 코 끝을 간질이는 청량하게 정화된 공기가 상쾌하다.

매번 태풍은 찾아 올 것이다. 그러나 폭풍 뒤 개인 날이 준비돼 있음을 알고 있기에 태풍을 더 이상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눈부신 태양 빛이 지난 밤 태풍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단단함으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한번 무너진 둑이 새롭고 튼실한 제방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예전 어머니들이 출산을 통해 아픈 몸을 치유하던 삶의 지혜와 비슷하다.

태풍을 통해서 자연이 정화되듯 우리 인생에서도 고통이나 슬픔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의 근원을 창출해내는 삶의 비밀이 새삼스럽다.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바벨탑으로 신에 맞서다 초토화 된 경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과신하는 어리석음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길을 가다 예기치 않은 태풍 앞에서 생존을 위한 건곤일척의 몸부림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맞서 싸우는 건 결코 지혜로운 처신이 될 수 없다. 성난 바람 앞에 우산을 들이대면 우산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우산주인까지도 바람에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려워 하지는 말자. 대신 엎드려 피해가는 상책을 쓰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상책이라고 손자병법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난 밤 광풍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맞는 새벽하늘이 평화롭다.

싸고도는 달콤한 공기가 언제 그런 격랑이 있었는가 싶다.

(2010.9.4 )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2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볼모를 자처하지 말자

볼모를 자처하지 말자



러시아의 천안함 조사결과가 공표되지 않는 것은 MB와 오바마의 정치적 타격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가 믿을만한 ‘러시아 친구’로부터 확인했다며 공표한 내용이니 만큼 단순히 흘려버릴 수도 없게 됐다.

그레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기고 글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과 함께 대체적으로 미국과 우리가 주도한 천안함 진상 조사결과를 불신하는 국제사회 기류를 전했다. (이러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아닌 우리가 왕따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그가 아니어도 지난 6월 초 한국을 방문해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아닌 기뢰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러시아 조사단 보고서의 한글 요약본이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군 전문가로 구성된 러시아 조사단은 폭발에 앞서 배가 좌초된 흔적이 있고 스크루에 엉킨 어망에 걸려 올라온 기뢰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레그는 또 천안함 사태를 기화로 가속화 되고 있는 대북제재 현상이 ‘전통적인 치킨게임’을 닮아간다고 불안해하는 우리 내부 정서도 전했다. ‘북한으로 이어지는 모든 다리를 불태우고 강경 일변도로 출구 없이 치닫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우려’하는 국내 고위 외교관의 코멘트를 인용했는데 사실이라면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바마가 이라크와의 전쟁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7년 5개월 만의 종지부다.

그러나 ‘자유의 전쟁’ 운운하며 이라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자평하는 미국의 호들갑은 공허하다. 이 전쟁이 세계 평화를 가장한 석유확보와 군수산업 활성화를 위해 이라크를 재물로 바친 음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눈을 흘기는 세간의 정서를 모를 리 없건만 전쟁 종료를 알리는 미국의 표정이 순진무구하기까지 하니 어이없다.

명분없는 이 전쟁은 생각보다 더 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본능적으로 적용되는 살벌한 생존경쟁이 정의로 대접받을 수 있고 질서와 규범이 될 수 있는 국제사회의 고무줄 잣대를 생생하게 체감시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정서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쟁 종료를 앞두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 국민 59%가 ‘이라크와의 전쟁은 미국의 실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끝났어도 도탄에 빠진 이라크 국민들의 불안한 삶이 구제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라크 국민의 ‘속울음’이 정녕 남의 일로 끝날 수 있을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우리만큼은.




갈수록 다극화 양상을 띠게 되면서 국제사회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은 줄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그동안 미국을 최고 우방국으로 했던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선 당장의 대대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외교방향의 점검이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 나름대로의 아젠다로 생존경쟁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방안과 역량을 강구해야 한다.

과거 열강의 이해다툼의 희생양이 되었던 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천안함 보고서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은 더없이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봉합하고 감추려드는 수세적인 입장보다 적극적인 선제공격도 해법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성한 소문에 휘둘려 주도권을 놓친다면 그나마 어렵게 구축한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러시아의 천안함 조사결과가 우리의 그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따지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확인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러시아 보고서가 자칫 우리에게 큰 타격이 될 수도 있고 대북 제제가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시각을 견지한 그레그의 주장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말대로라면 남북문제에 있어 우리 입장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이 시점에서 들리는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소식이 예사롭게 넘겨지지 않는다. (차라리 지나친 민감함 탓이면 좋겠다)

외교에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물거리다 국제정서에 휘말리게 될까 솔직히 걱정이다.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맞게 주변국을 리드하지는 못할 망정 다시 또 볼모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 앞에서 느껴지는 백척간두의 위기감이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단순한 노파심이기를 바란다.

스스로가 아니면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줄 수 없는 비정함도 국제사회에서는 순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남북문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을 직시하자.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절감하게 되는 이 아침이다.




(2010. 9. 2)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문제는 문제다

문제는 문제다


주객이 전도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차명계좌에 연루시킨 발언으로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탈락될 위기에 처해있던 조현오 청장은 무사히 취임식을 마친 반면 정치권은 격한 표현을 주고받으며 설전 중이다.

‘차명계좌’ 논란이 당사자를 제쳐두고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어 발화하고 있는 것이다.

진원지는 ‘조청장 임명이 차명계좌 존부에 대한 대통령의 자신감’이라고 자극한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발끈한 친노 인사들이 유시민 전 장관의 ‘철없다’는 공박을 필두로 연일 홍의원에게 맹비난을 쏟아내며 활극을 벌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친노 인사는 아니지만 손학규 전 지사도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부관참시까지 하는 패륜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며 차명계좌 정국에 가세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 측에서 손학규 전 지사를 향해 역공을 취하는 모양새다.




손학규. 홍준표, 유시민.

차명계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이런 저런 동기로 개인적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다. (손학규, 홍준표는 15대 국회에서, 유시민은 16대 국회에서 만났다.) 그래서였는지 갑자기 떠오른 그들에 대한 단상을 오늘의 블로그 소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5대 국회에 들어간 이후 당시 299명의 국회의원 전체 명단을 놓고 한 명 한 명 짚어가며 그들에 대한 나름의 비밀 비망록을 작성한 적이 있다. 이 '금서'는 지금도 가끔 들춰보는 은밀한 개인적 영역인데 이들 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길게 코멘트 돼 있다. (그에 앞서 개인적인 내 약점을 고백하자면 호불호로 사람을 가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손학규 전지사와는 15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특별히 친하게 지낸 사이다. 이른 바 기층민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풍부했던 그의 삶은 나의 그것과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특히 수배자가 되어 도피하던 시절의 얘기를 들을 때면 확실히 나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배자 시절 약사였던 부인과 몰래 데이트하던 그의 모험담을 가슴 졸이며 들었던 기억도 난다.

해외 유학파, 교직 경력, 기독교 등 동질감을 주는 배경들이 그에 대한 친밀의 강도를 높여줬던 것 같다. 국회를 떠난 뒤로도 경기도당 위원장 시절, 경기도지사였던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큰 흠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의 말을 안 듣는다거나 인간사이의 끈끈한 의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이기주의, 독단주의, 엘리트주의 등등 그에 대한 비난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신을 가질만한 직접적인 정황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에 대해 특별히 나쁜 기억을 담고 있지 않다. 게다가 (내가 평소 존경하는) 연세대 K교수 같은 젊은 교수 그룹이 그를 희망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지켜본 터이기에 그가 좋은 정치리더라는 기존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



홍준표 선배는 15대 국회에 함께 입성했다. 또 홍씨 종친회나 대한민국 대표적 선배문화를 자랑하는 K대 학연 등으로도 여느 정치인보다 깊은 연을 맺고 있었던 사이다.

홍선배는 사석이라면 발언을 독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통찰력 있는 안목과 식견으로 좌중을 좌지우지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 중 사나이다. 경상도 특유의 시원함으로 그를 좋아하는 후배들이 많았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언제나 당당하게 자기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불굴의 의지라고 할까, 적은 체구의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을 팍팍 쏟아내는 모습은 (나하고 다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건 물론이고 어느 경우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해줬다. 초선의원 시절, 이회창 총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잘했다. 내 금서에도 그런 그의 용기를 높이 평가돼 있다.



유시민은 국회에서 만나기 전, 책으로 만났던 사람이다.

그가 쓴 책을 읽으면서 삶의 대한 고뇌를 많이 했다는 느낌과 앞으로 사상가나 저술가로서 가능성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그를 보궐선거로 들어간 16대 국회에서 동료로 만났다. 본회의장에서 같이 의원선서를 하는데 양복을 입지 않은(흰 면바지 차림이었다) 그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어떤 경우 얄미워 보일만큼 말을 잘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의 정치적 스승인 故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논리적인 언변, 이른 바 휘발성 있는 연설기량이 돋보이는 정치인이다.



국회는 광의의 정치판 일부분인 만큼 설왕설래로 부산한 분위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무 말없이 침묵하는 것 보다 좀 심하더라도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 더 좋은 정책 대안이나 사회적 정의를 판단하는 기능이 있는 만큼 각자의 시각을 통해서 서로를 검증할 기회를 갖는 것이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 며칠 ‘차명계좌’를 공통분모로 한 싸움에서 오고가는 말들은 이해는 가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체통을 잃고 싸움에만 매몰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가 될지 모르지만 본능에 충실한 경기 룰로 진행되는 격투기를 보는 것 같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있지만 잘 정돈된 단아함은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러나 골프나 테니스처럼 신사적인 규칙을 적용해 진행한다면 격투기의 동물적 분위기는 조금은 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치공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감정이 격해졌어도 용어 선택에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흥분했다고 본능에 지배받는 원초적 모습을 드러내는 건 본인은 물론 지켜보는 국민의 격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하물며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핵심 정치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보다 성숙하고 정제된 용어 선택으로 대한민국의 격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분들의 막말 공방은 그래서 더 불편하게 만든다.



‘철없다’나 ‘패륜’ ‘부관참시’ 같은 ‘막말’보다 더 격조있는 용어를 선택할 수는 없었을까?

해외 유학파 교수 출신인 손학규 전지사,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홍준표 최고위원, 그렇게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유시민의원, 이들의 면면을 보면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건 아닐 진데 아쉽다.

정치판 운명은 결국 정치판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 판단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방심하지 말고 오로지 두려움으로 서슬 퍼런 민의를 섬겨야 하는 이유다.

“아직도 정치판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전철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시민의 육성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이 말을 저승사자의 그것처럼 무겁게 받아들이는 정치인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문제는 문제다.


(2010. 9. 1 )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