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볼모를 자처하지 말자

볼모를 자처하지 말자



러시아의 천안함 조사결과가 공표되지 않는 것은 MB와 오바마의 정치적 타격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가 믿을만한 ‘러시아 친구’로부터 확인했다며 공표한 내용이니 만큼 단순히 흘려버릴 수도 없게 됐다.

그레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기고 글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과 함께 대체적으로 미국과 우리가 주도한 천안함 진상 조사결과를 불신하는 국제사회 기류를 전했다. (이러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아닌 우리가 왕따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그가 아니어도 지난 6월 초 한국을 방문해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아닌 기뢰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러시아 조사단 보고서의 한글 요약본이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군 전문가로 구성된 러시아 조사단은 폭발에 앞서 배가 좌초된 흔적이 있고 스크루에 엉킨 어망에 걸려 올라온 기뢰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레그는 또 천안함 사태를 기화로 가속화 되고 있는 대북제재 현상이 ‘전통적인 치킨게임’을 닮아간다고 불안해하는 우리 내부 정서도 전했다. ‘북한으로 이어지는 모든 다리를 불태우고 강경 일변도로 출구 없이 치닫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우려’하는 국내 고위 외교관의 코멘트를 인용했는데 사실이라면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바마가 이라크와의 전쟁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7년 5개월 만의 종지부다.

그러나 ‘자유의 전쟁’ 운운하며 이라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자평하는 미국의 호들갑은 공허하다. 이 전쟁이 세계 평화를 가장한 석유확보와 군수산업 활성화를 위해 이라크를 재물로 바친 음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눈을 흘기는 세간의 정서를 모를 리 없건만 전쟁 종료를 알리는 미국의 표정이 순진무구하기까지 하니 어이없다.

명분없는 이 전쟁은 생각보다 더 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본능적으로 적용되는 살벌한 생존경쟁이 정의로 대접받을 수 있고 질서와 규범이 될 수 있는 국제사회의 고무줄 잣대를 생생하게 체감시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정서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쟁 종료를 앞두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 국민 59%가 ‘이라크와의 전쟁은 미국의 실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끝났어도 도탄에 빠진 이라크 국민들의 불안한 삶이 구제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라크 국민의 ‘속울음’이 정녕 남의 일로 끝날 수 있을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우리만큼은.




갈수록 다극화 양상을 띠게 되면서 국제사회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은 줄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그동안 미국을 최고 우방국으로 했던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선 당장의 대대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외교방향의 점검이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 나름대로의 아젠다로 생존경쟁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방안과 역량을 강구해야 한다.

과거 열강의 이해다툼의 희생양이 되었던 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천안함 보고서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은 더없이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봉합하고 감추려드는 수세적인 입장보다 적극적인 선제공격도 해법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성한 소문에 휘둘려 주도권을 놓친다면 그나마 어렵게 구축한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러시아의 천안함 조사결과가 우리의 그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따지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확인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러시아 보고서가 자칫 우리에게 큰 타격이 될 수도 있고 대북 제제가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시각을 견지한 그레그의 주장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말대로라면 남북문제에 있어 우리 입장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이 시점에서 들리는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소식이 예사롭게 넘겨지지 않는다. (차라리 지나친 민감함 탓이면 좋겠다)

외교에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물거리다 국제정서에 휘말리게 될까 솔직히 걱정이다.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맞게 주변국을 리드하지는 못할 망정 다시 또 볼모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 앞에서 느껴지는 백척간두의 위기감이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단순한 노파심이기를 바란다.

스스로가 아니면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줄 수 없는 비정함도 국제사회에서는 순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남북문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을 직시하자.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절감하게 되는 이 아침이다.




(2010. 9. 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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