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To be or not to be?”

“To be or not to be?”
 
세익스피어 선생의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결단의 시간마다 깊어지는 고뇌로 망설임이 많았던 햄릿은 우유부단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신중함에 대한 평가가 없지 않지만 갈수록 신속한 결정과 대응이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인물상인 게 사실이다.
 
 
난데없이 햄릿을 떠올린 건 나 역시 햄릿형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서다.
 
결론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주변의 품평도 듣고 있는 바다.
 
굳이 해명하자면 사회적 위치와 연륜이 깊어지면서 아는 것과 보이는 게 늘어난 이유도 있다.
 
확실히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 고려하는 변수가 예전보다 다양해졌다.
 
실제 결정 이후의 파급효과를 분석하면서 고민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 분석에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 인류까지 포함하는 오지랖이니 오죽할까 싶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결정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말로 다 못한다.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고 또 외로운 일이다.
 
나만 해도 도망가고 싶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나로 하여금 수없이 만약에를 되뇌게 했던 A의 경우를 생각한다.
 
당시 당 사무총장이었던 나는 개인적으로 친했던 A를 공천에서 제외시켰다.
 
그 결정이 나 개인과 주변의 이익과는 부합되지 않았지만 당과 국가를 위해 불가피했다.
 
덕분에 그때의 섭섭함을 털어내지 못한 관계인들과는 아직도 서먹한 상태다.
 
가족의 미래와 꿈을 짓밟았다는 A가족의 절규은 지금도 내 귓가를 맴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로 돌아가 다시 결정하라면 나는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만큼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다.
 
반면 당사자는 물론 나와 내 주변 그리고 당을 위해서도 잘 된 케이스로 공천을 받았던 B의 경우, 여전히 그 때의 결정에 후회는 없지만 불행해진 그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차라리 공천에서 떨어졌다면 그에게 또 다른 미래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동병상린일까.
 
햄릿의 망설임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 같다.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포함한 국가의 주요 결정들을 바라보는 눈도 많이 순해졌다.
 
우선 당장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해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불가피했을 결단의 순간, 밀려드는 그 고독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추종자는 물론이고 사익까지도 철저히 배제한 그 깊은 충정의 배경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결국은 정치권에 몸 담고 있는 한 너나 없이 반복해서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
 
 
더 기민하게 후회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내공을 키우겠다.
 
다만 주어진 '내 길'을 가는 동안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하다.
 
그저 지켜봐 주시는 눈길 만으로도 불끈 힘이 날 것 같다



 (2015. 10. 8)
 
...홍문종 생각
 
 

2015년 7월 1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그 어른, JP


 
 
JP를 만났다.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와 등가로 평가되는 흔치않은 정치이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모습이 반가웠다.
 
구순의 노구에도 기억력은 더없이 명료했다.
 
부친의 근황도 물으면서 경기 북부권 정치인에 대한 여러 기억들도 소상히 풀어냈다.
 
유학시절, 샌프란시스코 체류 경험을 얘기했더니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 한 영화, 배우, 노래 등을 줄줄이 꿰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내밀하게 품고 있던 현대사의 비곡을 풀어내는 이유를 적극 밝히기도 했다. (실명을 거론해가며) 거짓이 난무해서 현대사를 제대로 증언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고 잠들기 전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43년 정치행로를 접고 무욕의 경지에서 더 없이 자유로워진 노 정객의 모습은 요즘 들어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재정립 중인 내게는 좋은 자극이 되었다.
 
특히 그 어떤 정치거목도 예외 없이 정치를 종료하는 시점이 존재한다는 것과 아무리 미화시켜도 종국에는 모든 궤적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정치의 본질을 깨닫게 된 건 큰 수확이다.
 
거기에 더 해 우리 정치가 역사적으로 북한의 동향,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감안한 생존과 도약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는 현실 인식까지.
 
그러나 '나이 90이 되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 헛살았다'는 그의 소회는 오래도록 생각을 머물게 한다. 9선 국회의원, 4개 정당 대표, 두 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하고도 정작 대통령의 권좌에 오르지 못한 회한은 아닐까, 이런 저런 추론이 자꾸 되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오늘 날 대한민국 토대 구축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당사자의 자부심이 아직은 모두에게 통하는 것 같지 않다.
 
실제 영원한 2인자, 정치 9JP의 노회한 처세에 대한 갑론을박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상태다.
 
다만 그런 상황이 역동의 기로에 선 이 시점에서 정치적 역할을 고민하고 있는 내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적어도 훗날 역사적 평가에서 호평을 받으려면,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의 적임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으로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정보를 얻었으니 말이다.
 
 
의미있는 궤적을 남긴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정치 여정을 종료하게 될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부디 이 다짐을 어여삐 여겨 응원해 주시길.

(2015, 7. 19)
 
...홍문종 생각

2015년 7월 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드디어 무혐의 결정을!!



드디어 무혐의 결정을!!

 
 
오늘 드디어 길고 긴 터널을 벗어났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텔레비전을 통해 '무혐의'라는 검찰 발표를 접하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압박과 설움에서 풀려난 해방감이 생각보다는 덜 드라마틱해서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 인생에 끼어든 불청객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지난 몇 달 동안 지옥을 헤맸습니다.
 
압박과 설움에 짓눌려도 아프단 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고 보낸 그 시간들이 아득합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항할수록 조여드는 올무의 횡포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외로워지는지 또 무기력해지는지 말입니다.
 
 
그 따가운 눈총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언론과 야당은 그렇다고 쳐도 지인들의 달라진 시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떳떳하다고 결백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버선목처럼 뒤집어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연로하신 부모님의 눈물이었습니다.
 
평생을 무릎이 닳도록 자식의 성공을 간구했던 부모님께 못 볼꼴을 보여드렸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정치하는 남편과 아버지 때문에 늘 많은 것을 감내하고 있는 식구들 대하기도 민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죄의 징표'를 쥐고 나설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기쁩니다.
 
웃으면 웃는다고, 찡그리면 찡그린다고 온갖 억측으로 닦달 당하며 가슴앓이 하던 지난 설움을 다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역시나 세상에서 진실보다 확실하고 강력한 무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필귀정을 생각하며 인내하길 잘했지 싶습니다.
 
 
덕분에 많이 단단해졌습니다.
 
이제는 어떤 풍파에도 두려움 없이 저의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입견으로 지레짐작하고 역지사지하지 못했던 부족함을 채워 정치적 토대를 마련하는 호기로 삼겠습니다.
 
역대 어느 대선 보다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는 이 자부심을 바탕으로 더 이상 손가락질 받지 않는 정치판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저 혼자가 아닌 여러분 모두와 함께 그 일을 이뤄낼 수 있게 되길 열망합니다.

(2015. 7. 2)
 
....홍문종 생각
 

2015년 6월 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사필귀정을 믿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이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반칙 없이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위력으로 제 앞길을 가로 막고 나섰습니다.

억측이 난무하는 수렁 속에서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도 외로웠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 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는 대선 당시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 그에게 2억원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 정계를 은퇴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필귀정의 기대감을 안고 솔선수범 검찰에 출두합니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규명되고 뒤죽박죽 엉킨 것들은 제자리를 찾게 될 수 있
을 거라 믿습니다.

저도 주어진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국민 앞에 오로지 진실만 보고하는 심정으로 성실하고 겸허하게 검찰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거짓으로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불편부당한 세력에 굴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굳건한 저력을 입증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우국 충정의 뜨거운 마음도 함께 담아 가겠습니다.
 
 
감히 자부하건데 지난 대선은 대한민국 정치사상 가장 깨끗한 선거였습니다.
 
대선자금이니 공천헌금이니 구시대 유물이 더 이상 관행이란 이름으로 활개 치지 못하게 막아낸 쾌거였습니다.
 
백번 천번 돌이켜봐도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였다는 자평 외엔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선거역사의 신기원을 이뤄냈다는 이 자부심을 국민 여러분께 공인받고 또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반드시 그 토대가 마련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5. 6, 8)

....홍문종 생각
 
 

2015년 6월 6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현충탑에서 홍문종 생각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영전에 감사의 마음 바칩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친 충절과 헌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 뜨거운 피로 남기신 님들의 명령,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 숭고한 희생 헛되지 않도록 영광의 대한민국 대대손손 이어가겠습니다. (홍문종 생각)
 

2015년 6월 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경민 회고록 문집 발간에 부쳐

1967, 유난히도 쌀쌀했던 10월 하순 경.
 
허허벌판 경민중학교 신축 부지에 기초석을 놓는 행사를 지켜보던 그 때를 기억합니다.
 
의욕과 확신에 차있던 홍우준·이연신 설립자를 비롯한 사람들, 그리고 기대와 우려 속에 반신반의 했던 군중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설립자와 동고동락하시던 경민의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동인 교장선생님, 이영환 교장선생님을 비롯, 오상유. 김용일. 양기천 교장선생님....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 새 반세기 세월이 흘렀다니 무상합니다.
 
하지만 교실 대여섯 칸 규모의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축물로 시작한 경민중학이 유치원과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7개 학교와 4개 부설교육기관을 망라한 경민학원으로 성장, 의정부와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중추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은걸 보면 그저 속절없이 흐르기만 한 세월은 아니지 싶습니다.
 
 
당시 의정부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저는 번창하던 주택사업을 접고 가진 재산을 다 털어 학교를 짓는다고 나선 설립자의 선택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교육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세우겠다는 소신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던 탓도 있습니다.
 
이대로 사업을 하시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텐데 (스레이트 지붕 때문에) 닭장이라고 놀림이나 받게 만들고...’
 
그동안 친구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즐기던 나로서는 졸지에 금맥을 잃고 나락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설립자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버려진 땅으로 외면받던 의정부에서, 미군부대카바레-부대찌개...이런 상징어로 대표되던 의정부에서 경민중학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당시 의정부에는 의정부중학교 밖에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학생들로선 재수, 삼수가 불가피하거나 도중에 학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경민중학이 이들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했습니다.
 
게다가 반쪽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한다는 설립이념의 기치 아래 함께 뭉친 선생님들의 열의가 끓어 넘치는 학교였으니 금상첨화였습니다.
 
실제 당시 스레이트 지붕의 교실은 초라했고 포장이 안 된 학교 길은 비만 오면 진흙 범벅이 되기 일쑤였지만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가르침을 주겠다는 교사들의 의욕과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충만한 의지가 한데 어우러져 만족감을 충족시킨 것도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왕성한 추진력으로 경민학원을 진두지휘하시던 홍우준 설립자의 연세가 어느 덧 구순을 넘겼습니다.
 
공동 설립자인 이연신 총장님 역시 구순을 코앞에 두고 계십니다.
 
두 분은 아직도 가끔 당시 선생님들의 열정과 헌신을 말씀하시면서 추억에 잠기시곤 합니다.
 
도시락을 못 싸오거나 등록금을 못내는 학생들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선생님, 자신의 도시락을 슬그머니 책상위에 올려주거나 박봉을 털어 등록금을 대납해주시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추억처럼 떠올리고 또 떠올리십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하십니다.
 
경민학원 첫 건축물인 경민중학 건물에 대해서도 여간 애착이 많은 게 아니십니다. 대부분의 경민학원 건물이 재건축으로 외형을 달리한 반면, 경민중학 건물만큼은 원형 그대로 보관돼 있는 건 그 애틋함의 발로일 것입니다.
 
 
이제 경민학원의 산 증인이신 교장선생님들의 회고담을 모은 문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늘 날 경민을 만들어 낸 주역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두의 가슴에 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했지만 뜨거움이 살아 숨 쉬던 시절을 되짚으면서 진정한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러분의 헌신을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열정과 사명감이 남긴 흔적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과 경민학원 미래를 담보하고 견인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감사합니다.
 
오늘 날 경민학원이 졸업생 12만을 육박하는 졸업생과 재학생 1만여명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튼실한 토대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후학을 위해 남기시는 이 가르침이 이 시대 참교육의 부활을 독려하는 생생한 표징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15. 6.2)
 ...홍문종 생각
 
 
 

2015년 5월 1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딸내미의 강추로 영화 ‘still Alice’를 봤다.
 
언어학자로 명성을 날리며 승승장구하던 51세의 명문대 여교수가 희귀성 알츠하이머 발병으로 지워져가는 기억을 붙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는데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뜻하지 않는 병마의 습격을 받은 여주인공 앨리스의 당혹스러움과 두려움 등의 심리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그 어떤 절실함으로 다가와 눈길을 붙잡는 특별함 때문이었다.
 
 
스틸 앨리스를 유작으로 남기고 지난 3106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감독의 흔적을 살피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영화는 루게릭으로 시한부 삶이었던 리차드 글랫저 감독의 실전이었다.
 
그리고 극 중 여주인공 대사의 태반은 감독 자신이 세상을 향한 외침과 다르지 않았다.
 


제가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전 고통스럽지 않아요. 다만 힘을 다해 애쓰고 있어요.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또 예전의 나 자신으로 남아있기 위해서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제 자신에게 말하죠.
 
그게 순간을 사는 동안 정말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죠.”


 
촬영기간 내내 현장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에 자신의 전부를 바쳤던 그의 투혼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병세가 악화돼 더 이상 말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아이패드의 음성응용 프로그램까지 동원해 촬영을 강행할 정도였다니.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자신의 치열한 내면을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줄리안 무어에 완벽하게 투영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의욕을 잃지 않는 영원한 용자의 표상이 되었으니 다행이다.
 
 
영화는 내게도 몇 가지 생각을 던져줬다.
 
우선은 그 어떤 인생의 고비에도 굴하지 말고 꿋꿋이 자신을 세우라는 강렬한 메시지다.
 
지나친 낙관이나 비관도 말라는 선인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성공적인 삶도 사실은 끊임없는 좌절 속에서 찾아낸 길의 첫머리일 뿐그 때 그 때 주어진 삶에 충실한 것이 최고의 전략인 것을.
 
 
또한 앨리스의 곁을 지키는 막내딸 리디아의 선택에서 세상의 또 다른 질서를 봤다.
 
유별난 자유분방함으로 가족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던 그가 영원한 결속을 다짐하던 가족들이 저마다의 삶을 위해 뿔뿔이 흩어진 뒤 텅 빈 앨리스의 존재감을 채워주기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모습은 숭고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건 소위 잘난 이들의 능력보다 오히려 어렵고 고통받는 가운데 역지사지로 타인을 품을 수 있는 손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세상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건 뛰어난 능력보다는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이들의 헌신적 역할이었다. 조만간 이를 기준으로 한 사회적 재평가 작업이 이뤄져야겠다.
 
 
사랑을 통해 여전히 진행 중인 희망을 전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기억은 물론 언어까지 다 소진해버린 앨리스를 마지막까지 지탱시키는 가치는 '사랑'이었다.
 
그렇게 세상에 남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웅변을 통해 삶의 의욕을 독려하고 있었다.
 
사랑이야말로 그녀를 당당한 세상의 일원으로 존재토록 하는 에너지의 실체였던 것이다.
 
​​영화의 대주제이기도 한 ‘still Alice’를 충족시키는 메시지로서 사랑의 위대함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는 대목이었다.
 
 
모처럼 나이 들면서 무뎌져가는 감각을 무장해제 시키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사려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영화 관람을 이끌어 준 딸에게 감사하다.
 
큰 위로가 되었다.
 
아빠가 힘낼게” 

(2015. 5. 15)

...홍문종 생각
 
 

2015년 5월 1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종점 이용원

 

종점 이용원

 
 
대원여객 106(13) 종점에 위치한 종점이용원에 들러 머리를 정리했다.
 
선거구가 바뀐 뒤로는 자주 찾게 되지 않아 오랜만이었지만 어제 본 사람처럼 살갑게 반기시는 주인장의 미소가 있어 편안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스스로의 품격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발 기술에 관한 한, 오랜 기간 한 우물을 파 온 장인의 꼿꼿한 자부심이 그의 삶을 충분히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처럼 전통적인 머리 모양을 낼 수 있는 명품 이발사는 드물다고 한참을 강조하던 그가 스스로를 이발 명장반열에 올렸는데 반감이 들지 않았다.
 
실제 머리를 다듬는 손놀림을 보니 단순한 가위질이 아니었다. 작품을 다루는 예술가의 손길과 다르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솜씨를 인정받아 과거, 두 분의 대통령을 모시기도 했다니 자부심을 가질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내 활력이 넘치는 입담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군대를 삼대 째 다녀온 집안에 대해 공무원 특채 등 사회적 이익을 주는 법을 만들어 국가 의무에 충실한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라는 주문은 귀에 쏘옥 담겼다.
 
갈수록 젊은이들이 군대를 기피하는 현상이나 군대는 배경없는 집 아이들만 가는 곳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는 쓴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얘기를 묻길래 두 아들 중 하나는 제대했고 하나는 군 복무 중이라고 했더니 자신의 동해 경비사령부 시절의 무용담을 들려주며 신명을 내셨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깎던 그가 내 이마에 관심을 가졌다.
 
한참을 이마에 눈길을 주더니 굉장한 이마를 가졌다며 큰 인물이 될 상이라고 덕담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이마에 대한 나름의 평가도 들려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이발소 앞에서 함께 사진 찍기를 청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건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명품 이발사가 되려면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을 매만지는 솜씨도 여간 아니어야 할 듯 싶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하루에도 몇 번씩 평상심 유지를 위해 애를 써야 하는 요즈음, ‘종점 이용원에서 얻은 활력이 참으로 감사했다.
 
더욱 기품 있는 이발의 명장으로 거듭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2015. 5.12)
 
...홍문종 생각
 

2015년 4월 2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대선 당시 성완종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성완종 비서 홍문종, 2012 대선 때 성회장과 식사도 했다는 제하의
 
금일 (2015. 4. 28) 경향신문 보도는 전형적인 카더라식의 허위 기사입니다.
 
 
경향신문은 익명의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비서진 2명이
 
 
1. ‘2012년 대선 당시 성 전 회장이 홍문종 의원(당시 박근혜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
 
수차례 만났고 식사를 한 적도 있고 전화 통화도 많이 했다.
 
 
2. ‘성 의원을 본적 없다는 홍의원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내용으로 인터뷰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경향신문 보도는 사실무근입니다.
 
 
앞서 수차례 밝혔듯 저는 2012년 대선당시 성 완종 전회장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식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 성 전 회장의 30개월간 (20124~20149) '일정표'를 분석한 결과, 저와 성 전회장의 만남은 20136월부터 20144월까지 총 6회였다고 한 언론 보도도 있습니다.
 
(기사 참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27/2015042700162.html)
 
 
성 전 회장은 대선 때 사무실을 같이 쓰고 매일 같이 다녔다.”고 했지만
 
사무실을 같이 쓴 적도 없고 같이 다닌 적도 없습니다.
 
당시 2백여 명의 캠프 상근자 중 그를 본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당시 조직총괄본부를 비롯한 각 선거 조직 캠프들이 제각각 별도의 건물에 위치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사무실을 함께 썼다는 명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의 합당일은 대선을 코앞에 둔 20121116일로, 합당 수개월 전부터 독자적 체계를 갖추고 활동해 온 조직총괄본부 내에 도중 합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재까지 본 의원의 주장에 반하는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향신문이 성 전 회장 비서진의 입을 비는 형식으로 홍문종, 2012년 대선 때 성 회장과 식사도 했다는 허무맹랑한 기사로 황색 저널리즘을 자처하는지 그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대선 당시 고 성완종 회장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지난 18대 대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깨끗한 선거였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2015428
 
홍문종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