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8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인연이여, 날아라


인연이여, 날아라 


이번 4.24 재보궐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한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서울, 충남, 부산 등지의 우리당 후보 선거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응원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도 당연한  도리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더 있었다.
출마한 세 분의 후보 모두 개인적으로 인연의 무게가 적지 않은 터라 ‘미니전국투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충남 부여청양 선거구의 이완구 후보와는 박성범 전의원과 함께 ‘지구당 위원장’ 동기로 인연을 시작한 사이다.  
문민정부 시절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여당 지구당 위원장하면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임명장을 주고 신문에도 대서특필될 정도로 대접을 받는 자리였다.    
그러나 기자들은 누구도 우리 셋의 정치적 미래를 밝게 전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성범 전의원은 그 지역 터주대감 격인 정대철 의원과, 이완구 후보는 당시 자민련 조부영 부의장과, 그리고 나는 문희상 현 민주당비대위원장과 대진표를 짜고 있었으니 당연한 전망이었다. (그러나 그 해 총선에서 세 명 모두 여의도 입성에 성공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런 인연으로 찾아간 이완구 후보는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먼 길을 왔다며 반겼다.
그러면서 나와의 에피소드를 우리 일행에게 소개하며 덕담을 하셨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15대 국회 시절 동료의원들과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관저를 방문했던 때의 얘기였다.  당시 이완구 의원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내게 ‘곧 총리가 나오니 정좌를 하라’고 권했는데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면 몰라도 일본 총리 앞에서 다리 꼬고 앉은 게 무슨 잘못이냐, 내 마음대로 앉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 후보는 “그 때는 홍의원이 독립운동가 후예라는 자부심과 절취부심하며 일본식민시대 관련 논문을 쓸 만큼 몸에 밴 반일정서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나를 두둔했다.
30대 혈기의 치기어린 객기였을까?
돌아보니 약간은 머쓱했지만  그래도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을 재생시켜주신 이후보께 감사했다.     
      
그 다음 행선지는 부산 영도, 김무성 후보 사무실이었다.
소탈하고 괄괄한 성품의 김무성 후보처럼 활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부친이 영도지역에서 40여 년간 사업체를 운영했다더니 그 영향도 있겠구나 싶었다. 언론 등에서 일찌감치  김후보의 당선을  예견하는  정서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라 생각, 대통령 생각, 당 생각, 영도 생각' 이라고 쓴 플랜카드 문구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순간, 내 블로그의 '홍문종 생각'을 차용(?)했나 물으며 장난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김 후보와는 형처럼 친구처럼 인연을 이어온 만큼  함께 한 추억도 적지 않다.  
언젠가 손학규, 김문수 당시 의원들과 백두산에 올랐는데 흐린 날씨에 가려 천지를 보지 못하게 된 적이 있다. 그러자 김무성 의원이 “백두산은 원래 거물들이 오면 모습을 안 드러낸다는데 우리가 거물들인가?“고 해서 모두가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가지, 부산지역 의원들끼리 묘한 경쟁의식 같은 흐름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였다. 특히 김 후보의 독특한 면모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서울 노원병은 맨 마지막으로 찾았다. 
허준영 후보는 대학동기다. 
또 과거 국회 행정자치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경찰에 몸담고 있던 그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 지난 총선 때는 친구들로부터 둘 다 당선돼 공동위원장으로 홈커밍 40주년 준비를 알차게 해달라는 응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만 당선돼  외롭게 학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가 다시 기회를 얻게 돼 기뻤다. 
‘상계동의 허준’이 되어 발로 뛰는 선거전을 펼치고 있는 친구가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반드시 당선돼서 모교행사를 멋지게 준비하자는 격려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일방적으로 쏠리는 것 같지 않은 선거분위기가 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세상 인연이 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이런저런 인연들로 얽힌 사람들이 주자로 나선 이번 선거는 확실히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부디 좋은 결과로 19대 국회에서 그 인연의 무대를 옮겨 교류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내 인연들이여, 훨훨 날아  어서 국회로 오시라 "
                                                      

 (2013. 4. 18)     
....홍문종 생각        


2013년 4월 1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우환


우환


요즘들어 갑작스레 집안에 우환이 많아졌다.
병원을 차려야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환자가 늘고 있다.
지난 달 허리 병으로 입원하신 어머님에 이어 이모님, 그리고 고종사촌 매형과 형님이 같은 병원에 누워계신다. 그렇지 않아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계시는 아버님 때문에 심란한데 마음이 무겁다.
      
형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에 많이 놀랐다.   
그러나 병상의 형님을 보는 순간 타임 테이블이 40여 년 전으로 되돌려졌다.    
언어를 잃은 와중에도 빛을 발하는 그의 백만불짜리 미소 때문이었다.
고모(형님의 어머니) 댁은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식구가 많았다. 고모부는 성실하신 분이었지만 전쟁을 겪은 살림살이가 수월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모는 늘 뚱한 표정이었다. 무뚝뚝한 고모의 미소는 특별했다. 어쩌다 한 번 웃으면 그동안의 서먹함이 단숨에 사라지게 하는 묘한 힘을 발휘했다.
그 양질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사람이 형님이었다.
어린 시절 고모님 댁을 자주 찾았던 건 열 살 넘는 나이터울에도 불구하고 나와 죽이 잘 맞는 형 때문이었다. 역할놀이를 하면서 놀았는데 형은 선량한 시민, 나는 뒷주머니를 노리고 쫓아가는 도둑역할을 했다. 또 해진 후 뒷산 개울에서 찬물로 목욕을 하며 덜덜 떨던 기억도 있다. 뭘 해도 마냥 즐겁기만 하던 그 시절 추억을 함께 하던 형이 어느 덧 칠순의 노인이 되어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허무했다.
추억의 꼬리가 매형의 병실로도 이어졌다.
마침 누나도 계셨는데 중학생 무렵, 어머니와 함께 내 방에 와서 내가 자는 줄 알고 결혼할 매형 얘기를 하며 ‘결혼작전’(?) 짜던 내용을 엿들었다고 했더니 펄쩍 뛰셨다. (아마도 당시 매형을 좋아하던 누나가 어머니께 지혜를 구하던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날 좋아했지 내가 언제 홍씨(누나는 이씨 성이고 매형은 홍씨)를 좋아했느냐”며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뇌졸 증세로 말하기가 어려운 매형이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극구 부인하고 나서 모두를 웃게 했다.
그렇게 잠시 웃음기가 도는 사이, 조카들에게 ‘앞으로 니들이 잘해야 한다’는 내용의 일장연설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나왔지만 허전함이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병실의 어른들을 찾아뵈면서  운명 앞에서 더 겸허해지는 마음이다.  
어떤 인생도 생과 사의 구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깨달음을 공고히 다지게 됐다.     
특히 주어진 내 삶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다짐하는데 면회 갔을 때 들었던 A의원의 탄식이 새삼 떠올랐다.   
고작 5년 권력에 불과한데 대통령 주변인들이 천년만년 불변의 권력으로 착각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토로였는데  내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5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 권력에서 내려올 때 진정어린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는 일....
그게 뭘까를 궁리하게 만들었으니.                                    

 (2013. 4. 16)   
 ...홍문종 생각     

2013년 4월 15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포플리즘의 끝은 어디인가


포플리즘의 끝은 어디인가.

 
언론 인터뷰에 나설 때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싶은’ 갈등으로 망설인 경험이 적지 않다. 지명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속셈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종국엔 개인의 영달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쪽으로 귀결되지만 유혹 앞에서 흔들림이 있는 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  
정치인으로 살면서 얻게 된 일종의 직업병(?)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중국에 가서 왕자루이 외교부장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 출연한 TV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당시는 북핵문제로 한창 민감한 상황이어서 북한통인 왕자루이와의 미팅 후일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쏠리던 시점이었다. 인터뷰 내내 왕자루이에 초점을 맞춘 질의가 이어졌는데 선명한 답변 하나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를 생각하면 엄청난 유혹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알맹이를 빠뜨린 채 무미건조한 인터뷰로 끝내고 말았다.
정치적 욕심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책무의식에 힘을 실은 결과였다.
민감한 내용이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지금도 잘했다는 생각이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을수록 철저한 자기관리가 요구되는 건 자명한 이치다.
곧바로 뉴스가 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발언에 무게를 두고 단어 선택 하나까지도 신중에 신중을 더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지지 못할 미사여구로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는 정치적 시도가  남발되고  있어 유감이다. 백가쟁명식 발언으로  사익에 연연해하는 풍경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느낌이다. 특히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민심이반과 국론분열로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정치인들이 많아졌다.
포플리즘 유혹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현실을 모르지 않지만 목불인견이어서 괴롭다.
  
개헌 논의만 해도 그렇다.  
‘5년 단임제도가 실효를 다한 만큼 동서화합과 통일에 대비한 헌법논의를 시작해 보자’라는 발언과 ‘현 정부의 문제가 크니 손끝에서 발끝까지 확 바꾸는 작업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최선을 다하자’라는 발언이 주는 느낌은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뭔가 후련하게 해주는 자극이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뒷맛이 개운치 않은 뒤의 발언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무책임한 선동의 혐의가 짙다. 발언의 진의 여부를 가리는 일이야 부차적 문제로 놓더라도 근본적으로 공평하지 않은 출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북핵 관련 상황을 전하는 과정도  다르지 않다. 
북한과의 상황을 똑같이 전하면서도 불안을 조장하는 정치인이 있고 안정감을 주는 정치인이 있다. 한쪽은 근거없는 주장으로 불안감에 떨게 하고 다른 쪽은 현실을 직시해서 대처방법을 모색하자고 주문한다.
그런데 현실은 패배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정치적 발언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 폐단을 알면서도 충동적으로 인기영합주의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인사청문회가 됐건  정부조직법이 됐건   불안한 발언을 이어가는 정치인의 원맨쇼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튀는 발언 하나로 정치적 성공을 거둔 사례 때문에 정치적 악순환이 거듭되는 형국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지만  환심을 사기위해 이미지 조성에 신경을 써야하는 정치인의 비애를 알기에 편하게 타박도 못하겠다.  
염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재를 믿는다.  
포플리즘에 천작하는 정치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 의도를 꿰뚫는 국민적 혜안만 있으면 문제 없다.    
결국 국가의 명운이  국민  저마다에 달려 있음이다.                              

( 2013. 4. 14)   
...홍문종 생각 

2013년 4월 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우리 안의 적


우리 안의 적


국제적 해커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가 북한의 대남선전용 사이트를 턴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어나니머스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이름의 북한 사이트를 두 차례나 해킹해서 회원 아이디와 이름을 비롯한 이메일, 전화번호, 생년월일 등 15000여명의 신상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들의 신상노출은 이적행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으면서 북핵 위협 등으로 고조되고 있는 최근의 긴장상황과 맞물려 파장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발 빠른 네티즌들은 벌써부터 일부 회원들의 신상을 추적해서 게시판에 올리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덕분에 살벌한 구호로 남한을 비방하고 북한의 체제 선전이 이뤄지던 이곳에 정부의 접근불허 조치에도 불구하고 회원이 되어 활동했던 이들의 흔적이 노출됐다. 고위공직은 물론 언론, 정당, 교육, 대기업 전반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섬뜩한(?)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국가의 존립기반을 해칠 정도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도저히 간단한 ‘해프닝’으로 끝낼 수 없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실제 해당 사이트 가입에 기본적으로 충성맹세 글이 요구되기도 했다니 보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위여부를 선명히 가려내는 작업이 불가피해졌다. 다만 이메일을 도용당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인권침해 소지를 가려내는 노력이 빠져서는 안되겠다. 

때마침 경찰과 검찰이 해당 회원명부를 대상으로 수사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불안의 그늘이 여전하다.
지난 해, 입대를 앞둔 막내와 함께 본 영화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월남의 패망과정을 다루고 있었는데 결정적 패인으로 ‘내부의 적’을 지목하는 감독의 날카로운 시각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당시 월남사회를 주도하던 얼치기 지식과 애국심으로 스스로를 애국자로 치장하고 나선 반정부 인물 군 등을 ‘내부의 적’으로 적시하며 그들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고발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어리석음으로 스스로의 조국을 파멸시켰는지를 낱낱이 보여주면서 특별한 악의가 없어도 치명적 독성을 뿜어낼 수 밖에 없는 뼈아픈 현실을 힘 있게 설득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지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월남의 슬픈 역사가 오늘 날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다는 상상력의 과도함 탓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압도적 우위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맥없이 패망의 역사를 쓰고 만 월남의 최후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최근   야당의 박지원 의원은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금지시킨 배경과 관련, “배짱, 끝장, 자존심을 중시하는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체면을 살려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대화에서 저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는 DJ 전 대통령 당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경색된 남북관계 해법으로 툭하면 북한의 자존심을  챙겨야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매우 부적절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매번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은 답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네들의 자존심을 위해 우리들 체면이나 자존심은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의미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의 남북 타협의 역사를 돌아볼 때 어이가 없다. 매 번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무력 도발 위협으로 떼를 썼다. 결국 오늘 날 북한의 철없는 핵 놀음을 가능하게 한 것도 북한이 생 떼를 쓸 때마다 ‘달래고 퍼준’ 결과다. 

언제까지 북한의 몰염치한 행각에 코 꿰어서 끌려다녀야 하는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38년 전 월남의 운명을 가르던 순간을 생각하자.
잠깐의 방심으로 대한민국을 더 이상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 수도 있는, 냉엄한 표본이 거기 있다.            
                                                                                        
(2013. 4. 7)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