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우리 안의 적


우리 안의 적


국제적 해커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가 북한의 대남선전용 사이트를 턴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어나니머스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이름의 북한 사이트를 두 차례나 해킹해서 회원 아이디와 이름을 비롯한 이메일, 전화번호, 생년월일 등 15000여명의 신상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들의 신상노출은 이적행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으면서 북핵 위협 등으로 고조되고 있는 최근의 긴장상황과 맞물려 파장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발 빠른 네티즌들은 벌써부터 일부 회원들의 신상을 추적해서 게시판에 올리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덕분에 살벌한 구호로 남한을 비방하고 북한의 체제 선전이 이뤄지던 이곳에 정부의 접근불허 조치에도 불구하고 회원이 되어 활동했던 이들의 흔적이 노출됐다. 고위공직은 물론 언론, 정당, 교육, 대기업 전반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섬뜩한(?)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국가의 존립기반을 해칠 정도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도저히 간단한 ‘해프닝’으로 끝낼 수 없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실제 해당 사이트 가입에 기본적으로 충성맹세 글이 요구되기도 했다니 보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위여부를 선명히 가려내는 작업이 불가피해졌다. 다만 이메일을 도용당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인권침해 소지를 가려내는 노력이 빠져서는 안되겠다. 

때마침 경찰과 검찰이 해당 회원명부를 대상으로 수사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불안의 그늘이 여전하다.
지난 해, 입대를 앞둔 막내와 함께 본 영화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월남의 패망과정을 다루고 있었는데 결정적 패인으로 ‘내부의 적’을 지목하는 감독의 날카로운 시각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당시 월남사회를 주도하던 얼치기 지식과 애국심으로 스스로를 애국자로 치장하고 나선 반정부 인물 군 등을 ‘내부의 적’으로 적시하며 그들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고발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어리석음으로 스스로의 조국을 파멸시켰는지를 낱낱이 보여주면서 특별한 악의가 없어도 치명적 독성을 뿜어낼 수 밖에 없는 뼈아픈 현실을 힘 있게 설득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지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월남의 슬픈 역사가 오늘 날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다는 상상력의 과도함 탓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압도적 우위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맥없이 패망의 역사를 쓰고 만 월남의 최후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최근   야당의 박지원 의원은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금지시킨 배경과 관련, “배짱, 끝장, 자존심을 중시하는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체면을 살려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대화에서 저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는 DJ 전 대통령 당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경색된 남북관계 해법으로 툭하면 북한의 자존심을  챙겨야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매우 부적절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매번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은 답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네들의 자존심을 위해 우리들 체면이나 자존심은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의미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의 남북 타협의 역사를 돌아볼 때 어이가 없다. 매 번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무력 도발 위협으로 떼를 썼다. 결국 오늘 날 북한의 철없는 핵 놀음을 가능하게 한 것도 북한이 생 떼를 쓸 때마다 ‘달래고 퍼준’ 결과다. 

언제까지 북한의 몰염치한 행각에 코 꿰어서 끌려다녀야 하는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38년 전 월남의 운명을 가르던 순간을 생각하자.
잠깐의 방심으로 대한민국을 더 이상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 수도 있는, 냉엄한 표본이 거기 있다.            
                                                                                        
(2013. 4. 7)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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