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9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Wag the dog

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들면 어떻게 될까?
'wag the dog' 언론과 정치권력이 손을 잡으면  진실을 얼마만큼 왜곡하고 감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세상을 속이려 조작된  영화 속 미디어의 공포는  우리에게  더 이상 화면 속 미국 이야기에 그치지 않게 됐다.  우리 역시   미디어의 발달로 짧은 시간에 정치인의 이미지 조작이 가능해진 세상을 살게 됐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미디어가 본래의 기능 대신 정치권력에 유착하거나 여론조사, 미디어 등의 일방적 주장들이 선거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이 눈 앞의 현실이 됐다.   

 평소 정치하려는 이들에게  선천적 환경이나 개인적 장단점과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다,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투지를 잃지 않으면 최후의 승자로 될 수 있다는 건  나 자신을  향한 주문이기도 했다.   불리한 출발이 고지 선점에 결정적 역할을 하거나 유리한 여건이 당사자를 궁지로 몰며 국면이 전환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선거에서 공정한 승부를 불합리하게 방해하는 괴벨스의 화신들이 많아졌다.
유권자의 사고체계를 교묘히 조종해서 선거 결과를 뒤집는 기능을 권력의 지렛대로 삼아  군림하려는  검은  커넥션의 존재가 그들이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수치로 선거판세 호도는 물론 과도한 후보 미화나 미확인 흑색선전으로 유권자의 검증기능을 교란시키는 역작용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 
덕분에  신념이나 투지 등 정치적 기를 불어넣는 용어를  낡은 화첩 속 박제로 남긴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최선 보다는 차악'이라는 궤변으로 권리 잃은 무안함을 무마하고 있다.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지만 처리가 쉽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처벌규정을 강화해 형량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더 교묘한 수법이 등장할 게 뻔하다.
유권자 권리장전이라도 만들어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전이라도 펼쳐야 하나?​

혼전지역이 많아 유례없이 뜨거운 7.30 재보궐 선거전을 지켜보면서도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다.
여야  공히 다 안면있는 후보들인데  공정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선거 결과도  쉽사리  예단할 수 없는 분위기다.
최소한 별다른 왜곡 없이 저마다의 역량이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만 해도 좋겠다는 심정이다. 
그 와중에 몇 몇 후보들의 특장점을 떠올리며 관전포인트를 설정해 봤다.
뛰어다니는 후보들은 속이 타겠지만  제법  쏠쏠한 재미를 안겨 주었다.   
"동작을의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는 인지도가 높은 반면 유권자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데 이 상황이 득표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정의당 노회찬 후보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정치적 신념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두 번째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당선되면 예산폭탄 투하가 예상되는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주민들은 그에게 지역구도 탈피의 월계관을 씌워줄까, 아니면 제2의 김부겸 네이밍에 족해야 할까.  
MB 비서실장 출신 임태희 후보, 지난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아픔이 이번 선거에 보탬이 될까 안될까? 
 재보궐 전문가로 군림한   손학규 후보는  이번 선거를 바탕으로 분당대첩의 영화를 되살리며 대선후보로  비상하는 날개를 달 수 있을까. 어쩔까."                (2014. 7. 28)  

                                                                                      ...홍문종 생각​  

2014년 7월 2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어떤 죽음

어떤 죽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유병언이 전라도 순천 매실 밭에 망자의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고가의 명품에 휘감긴 채 본인 여부는 물론 사인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태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매스컴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황제처럼 신처럼 시대를 풍미하던 그였다. 재벌가 회장 못지않은 부를 누렸다. 카메라 셔터 한 방이나 낙서 같은 메모만으로 수많은 걸작(?)을 배출하면서 불멸(?)의 예술가 대접을 받았다. 교주를 향한 추종자들의 맹종적 헌신도 빼놓을 없는 로열티였다.

그런 그가 육포 2조각과 검은 콩 20알에 의존해 산길을 헤매다 명을 재촉했다니 모두가 허를 찔린 표정이다.
결국 끝없이 움켜쥐려 했던 재물, 권력, 명예 어느 것도 기로에 선 사내의 절박함을 덜어주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참으로 허망하고 또 비정한  탐욕의 끝이었다.
그나마 70 평생을 세상의 부귀영화를 향해 부나비의 욕망을 품다가 생을 닫아버린 실증이 되어 경종을 울리고 있으니 다행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하늘의 징벌이 이미 시작됐나 싶을 만큼 비참한 말로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 사내의 시신은 차디 찬 냉동고에 들어가 있다. 죽어서도 범죄 소명의 굴레를 벗지 못한 탓이다. 그나마 그를 거둘 가정도 풍비박산 난 지 이미 오래다. 가족 대부분 수감되거나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현실이다.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생전에 제대로 살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비정하리만큼 냉정한 셈법이 작동된 결과다
    
도스토예프스키는 27세 때 사회주의 혁명모임에 연루됐다가 총살형을 받고 처형 직전 사면된 경험이 있는데 이 때의 무시무시한  공포를  자신의 작품('백치’)에 반영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이가 사형집행 전 5분을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소설 속 화자는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을, 자기성찰에 2, 나머지 1분은 주변을 둘러보는 데 쓰겠다고 했는데 나라면 어떤 선택이었을까, 생각의 여지를 주는 장면이었다.   
    
너나없이 어떻게 태어나느냐 보다 어떻게 죽느냐에 더 방점을 찍으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가치 평가도 마찬가지다.
생전에 얼마만큼 물량을 늘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나눴느냐에 관점을 두고 그 삶의 가치를 논하는 게 옳다.
누구도 죽음으로 한계가 그어지는 삶의 여정을 모르지 않는다.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협한 이기심에 갇혀 움켜쥐려는 부조화의 삶을 지향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보다 공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나름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막상 죽음에 대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면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머뭇거림 없이 명확한 대차대조표를 내밀게 될 때 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 같다.
    
나는 마지막을 무엇으로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공공의 표적이 된  사내의 마지막이 나로 하여금 죽음의 명제에 천착하도록 이끌고 있다.  
깊은 밤 폭우 쏟아지는 운동장을 누비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라고 부축이기도 한다.       
천둥번개, 소나기, 불볕더위....
머잖아 한 해의 종착역을 향하는 달음박질로 숨을 고르게 될 터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 해야겠다.        (2014. 7.26)

                                                                ...홍문종 생각​

2014년 7월 18일 금요일

낙선 후기

낙선 후기
    
당심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고도 여론조사에 무너지다니...
애석해하는 주변의 탄식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했던 요 며칠이었다.
승패에 따라 분명한 희비가 엇갈리는 잔혹한 현실에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본 느낌이다.
언론도 헷갈릴 만큼 복잡한 전대 셈법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솔깃해질 만큼 조금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다 내 불찰이었다.
녹록치 않은 지역구도 장벽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단순한 지역 연고만으로도 강력한 집단후원이 가능한 영호남과는 달리 사분오열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일 수 밖에 없는 구도였는데 이를 간과했다.
    
하지만 이번 경험으로 새로운 정치적 과제를 얻게 됐으니 다행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대는 내게 새로운 출구를 열어줬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지지율 10%로 정치적 도약의 발판을 얻었다는 안도감이 솔직히 있다.
과거 부산 출마 당시 노무현 후보가 DJ를 찾아가 대권후보 표방을 허락받던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일종의 자격증을 부여받은 기분이다.
 
전대 이후 달라진 동료의원들의 처신을 지켜보는 것도 큰 인생 공부였다.
정치무대에도 똠방각하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라웠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한꺼번에 엉켜 그곳에 있었다.
덕분에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를 왜 더 밉다고 했는지도 알게 됐다.
그 행적들을 기억에 담고 싶지 않아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는데 효과는 모르겠다

누군가를 질타하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갖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며 준엄하게 스스로를 심판하고 반성했다.
내게 동의하지 않았던 이들에 대한 어떤 원망이나 아쉬움도 다 초기화시켜버렸다.
다만 나를 도왔던 이들에 대한 감사함은 일기장에 기록했다
더 큰 비전으로 보답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적었다.   
    
그러다보니 학창시절, 선거에서 내게 패해 분루를 삼키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반장선거 때 더 잘할 수 있다는 내 말발에 밀려났던  의사 아버지를 둔 왕눈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회장 선거 때 내게 달랑 한표 차이로 패했던 점박이 경수(몇 해 전 공직에서 은퇴했다), 대학 때 치열한 선거전 끝에 학생회장 타이틀을 내게 빼앗겼던 목욕탕집 아들 철수(캐나다로 이민갔다) 등을 비롯, 혹여 내가 앞길을 막았을지 모를 지난 인연들에게 이 반성문을 전하고 싶다.
혹여 경쟁에서 이기고 난 후, 거만함이나 잘난 척 등으로 무시한 일이 있다면 본의 아닌 철없음이니 부디 용서하길 바랍니다” 
                                                                       (2014.  7.  18)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