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3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임재범 퍼포먼스

임재범 퍼포먼스


유학 간 아들이 방학이라 집에 잠깐 들렸다.
그런데 아이를 보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한 30초 동안 망설여야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로 변신(?)한 아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먼저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내가 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젊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답답함과 나름대로의 평가를 머리 모습이나 입은 옷으로 표출한 것이겠거니 싶어서였다.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자 평화가 찾아들었다. 경직된 분위기를 예상했다가 긴장이 풀리는 지 머쓱해 하는 아들의 표정에도 순간적으로 스치는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가수다‘로 재기에 성공한 가수 임재범씨가 이번에는 콘서트 퍼포먼스로 여론의 중심에 서 있다. 공연 중 행해졌던 나치복장 퍼포먼스에 대한 갑론을박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가 100억이 넘는다는 콘서트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이 무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몰취향, 후진미감이라며 임재범을 향해 독설을 날리는 진중권씨(그의 글을 읽었지만 생각은 다르다)에 맞서 인기 작곡가 김형석씨가 음악에 맞는 퍼포먼스일 뿐이라는 옹호로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경희대 이택광 교수 같은 이는 한국정서로는 생뚱맞지만 rock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을 개진하기도 한다.
진중권씨의 비판도 김형석씨의 옹호도 이택광 교수의 포용도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근거로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인십색의 주장들이 대중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과연 임재범 콘서트의 나치 퍼포먼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로 감상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임재범이 나치복장으로 무대 위에 나선 자체를 나치에 대한 증오와 자유의지를 치열하게 분출하는 Rock 정신으로 해석하거나 그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몰취향으로 판단할 수있다. 개인적 판단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건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해석과정에서 가장 비중있게 반영돼야 할 부분은 예술가의 의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생각하기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가 너무나 많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같은 대상을 모델로 해도 해당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는 작품을 흔히 만나게 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임재범의 나치복장 논란이 공연미학 담론 수준에서 정리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가수의 공연무대에까지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들이대 불화를 조장하는 건 지나친 치졸함이다.

개인적으로 임재범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번 퍼포먼스 논란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카리스마 있는 락무대를 꾸미기 위한 연출 차원에서 Rock의 자유 정신을 갈구하는 기획이었다’는 소속사의 입장 발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임재범이 소속사 뒤로 숨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미완의 대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임재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철학을 당당하게 설명하는 기회로 활용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무대에서의 퍼포먼스 그 자체일 뿐 철학이나 사상이 반영된 게 아니라고 주장하던가 Rock 정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하던가, 그야말로 팬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던가.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 Rocker로서의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명확한 자기 철학의 결과물을 담은 설명이면 그저 족하다는 생각이다.
그의 거친 음색에 매료됐듯 거침없이 세상을 여는 그의 당당한 행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유럽을 강타한 K-POP 열풍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껏 부풀리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철학이 부재한 표피적인 접근에 불과하다면 K-POP의 미래는 결코 긴 생명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K-POP 성공이 어릿광대 놀음에 불과한 일시적 자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클래식이 아니고도 시대를 관통하는 노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침이슬이나 친구 등 7080 세대의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노래들도 그렇고 my way, yesterday, imagine, sound of silence, epitaph 등 동서양을 넘나들며 오랜 생명력을 과시하는 노래들을 보면 시대정신이 농축된 철학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한 매력으로 가슴을 파고들게 하는 노래의 원천적 배경에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임재범이여,
자신의 철학이 용납한다면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아주 오래 남는 가수가 되길 바란다.


(2011. 6.30)
....홍문종 생각

홍문종생각 - 임재범 퍼포먼스

임재범 퍼포먼스


유학 간 아들이 방학이라 집에 잠깐 들렸다.
그런데 아이를 보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한 30초 동안 망설여야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로 변신(?)한 아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먼저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내가 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젊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답답함과 나름대로의 평가를 머리 모습이나 입은 옷으로 표출한 것이겠거니 싶어서였다.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자 평화가 찾아들었다. 경직된 분위기를 예상했다가 긴장이 풀리는 지 머쓱해 하는 아들의 표정에도 순간적으로 스치는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가수다‘로 재기에 성공한 가수 임재범씨가 이번에는 콘서트 퍼포먼스로 여론의 중심에 서 있다. 공연 중 행해졌던 나치복장 퍼포먼스에 대한 갑론을박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가 100억이 넘는다는 콘서트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이 무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몰취향, 후진미감이라며 임재범을 향해 독설을 날리는 진중권씨(그의 글을 읽었지만 생각은 다르다)에 맞서 인기 작곡가 김형석씨가 음악에 맞는 퍼포먼스일 뿐이라는 옹호로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경희대 이택광 교수 같은 이는 한국정서로는 생뚱맞지만 rock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을 개진하기도 한다.
진중권씨의 비판도 김형석씨의 옹호도 이택광 교수의 포용도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근거로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인십색의 주장들이 대중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과연 임재범 콘서트의 나치 퍼포먼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로 감상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임재범이 나치복장으로 무대 위에 나선 자체를 나치에 대한 증오와 자유의지를 치열하게 분출하는 Rock 정신으로 해석하거나 그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몰취향으로 판단할 수있다. 개인적 판단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건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해석과정에서 가장 비중있게 반영돼야 할 부분은 예술가의 의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생각하기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가 너무나 많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같은 대상을 모델로 해도 해당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는 작품을 흔히 만나게 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임재범의 나치복장 논란이 공연미학 담론 수준에서 정리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가수의 공연무대에까지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들이대 불화를 조장하는 건 지나친 치졸함이다.


개인적으로 임재범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번 퍼포먼스 논란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카리스마 있는 락무대를 꾸미기 위한 연출 차원에서 Rock의 자유 정신을 갈구하는 기획이었다’는 소속사의 입장 발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임재범이 소속사 뒤로 숨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미완의 대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임재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철학을 당당하게 설명하는 기회로 활용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무대에서의 퍼포먼스 그 자체일 뿐 철학이나 사상이 반영된 게 아니라고 주장하던가 Rock 정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하던가, 그야말로 팬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던가.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 Rocker로서의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명확한 자기 철학의 결과물을 담은 설명이면 그저 족하다는 생각이다.
그의 거친 음색에 매료됐듯 거침없이 세상을 여는 그의 당당한 행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유럽을 강타한 K-POP 열풍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껏 부풀리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철학이 부재한 표피적인 접근에 불과하다면 K-POP의 미래는 결코 긴 생명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K-POP 성공이 어릿광대 놀음에 불과한 일시적 자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클래식이 아니고도 시대를 관통하는 노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침이슬이나 친구 등 7080 세대의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노래들도 그렇고 my way, yesterday, imagine, sound of silence, epitaph 등 동서양을 넘나들며 오랜 생명력을 과시하는 노래들을 보면 시대정신이 농축된 철학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한 매력으로 가슴을 파고들게 하는 노래의 원천적 배경에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임재범이여,
자신의 철학이 용납한다면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아주 오래 남는 가수가 되길 바란다.                   

(2011. 6.30)....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27일 월요일

홍문종생각 - 포퓰리즘

포퓰리즘

중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에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율화를 공약으로 들고 나와 이목을 끈 학생이 있었다. 
교복이나 두발의 자율화라니!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황당하기까지 한 그 공약은 선생님들의 제재조치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공약 당사자는 무난히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1960년대 말 경의 이야기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반값 등록금이나 무상 급식보다도 훨씬 더 파격적인 이슈를 공약으로 들고 나와 약효를 톡톡히 본 셈이다. 그 두둑한 배짱을 3, 40년을 내다 본 혜안으로 해석해야 할지 포퓰리즘의 극치로 봐야 할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헷갈리는 대목이다.

국민을 향한 정치권의 포퓰리즘 구애가 끝 간데 없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구체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반값이고 무상이란다.
그나마 포퓰리즘 논쟁으로 정치권과 재개의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며 확전일로에 놓인 분위기다. 갈수록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반값 등록금 정책이나 대기업 법인세 감세 철회를 둘러싼 포퓰리즘 논란을 벌인데 이어 이번에는 재벌총수의 국회 청문회 및 공청회 출석 문제를 놓고 정치권과 재계가 또 다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야 할 것 없이 선심 경쟁에 함몰돼 있는 정치권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재계의 볼멘소리가 직격탄이 되어 정치권을 향해 날아갔다. 재계 총수와 경제단체장들이 국회 출석 요구에 불응하면 국정조사도 불사하겠다는 정치권의 압박조차 ‘포퓰리즘의 연장선상’이라고 반박하는 재계의 강경함에 한풀 꺾인 모양새다. 급기야 허창수 전경련 회장까지 나서 ‘정부정책에 일관성이 있느냐’ 따지기에 이른 것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재벌들이 너무 막나간다’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며 불만을 고조시키고 있다.
누가 더 힘이 셀까?

포퓰리즘의 인기영합주의적 요소가 대중의 마음을 더 파고드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단순히 동조나 지지를 목적으로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다면 그 결말이 뻔하다는 점에서 가벼이 다룰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
국민은 물론 국가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에서 그렇다.
대중을 위한다며 지나친 선심정책으로 국가경제를 파탄시킨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권의 무책임한 약속 남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듣기엔 혹하지만 당장 실현가능성이 없는 말들이 가진 독소적 요소를 생각할 때 포퓰리즘의 폐해를 결코 만만히 다뤄서는 안되겠다. 당사자로서야 시간이 필요할 뿐 언젠가는 반드시 다가가야 할 이데아라는 항변을 변통할 수도 있기에 경계를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이다.
포퓰리즘에 현혹되지 않는 건 오로지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강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겠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범주에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행복하고 안락한 현실에서의 생활조건도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영원한 구원이 보장된 내세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포퓰리즘의 가장 큰 병폐는 수술이나 투약 등 환자의 환부를 치유하기 위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기회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점 해결을 위한 근본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임시 방편에 급급한 행위는 근절돼야 마땅하다. 마약 투여 등으로 통증을 잠시 잊게 하는 일시적 처방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런 경우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결국 옥석을 구분하고 이를 조정하는 역할은 국민 몫이다.
정치권의 기회주의를 막아내고 국민 권리를 지키는 것도 국민이 해야 할 일이다.
국민적 희망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국민 역량을 강화하는 작업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스스로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주체 의식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두 눈 부릅뜨고 실현 불가능한 정책들로 국민 마음을 현혹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막아낼 수 있어야겠다. 무책임한 세치 혀를 색출해서 도태시키지 못한다면 국민의 미래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자. 아무리 달콤한 말이라도 가능성과 불가능을 구별해내고 문제점을 간파해낼 수 있는 국민적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혜택을 나눠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해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이야말로 포퓰리스트의 전형적 모습이다. 적어도 포퓰리즘에 넘어가 닭 쫓던 개 신세는 되지 말아야겠다.
구분이 쉽지는 않겠지만 하다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싶다.
늘 깨어있는 의식이 중요하다.

(2011. 6. 27)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2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살아가면서 주변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남다른 인연을 나눈 사람의 성공은 당사자 못지않은 기쁨을 누리게 한다는 측면에서 특별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회원국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내게 있어 그랬다.
전 세계가 ‘조용하고 당찬 반기문표 리더십’을 인정하고 그에게 다시 일할 기회를 허락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뛸 듯이 기뻤다.
하버드 행정대학원에서 그와 함께 공부한 인연이 못내 자랑스럽다. 더구나 하버드 행정대학원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전 세계가 쌍수를 들어 연임을 환영한 ‘세계 대통령’을 모임의 일원으로 둔 호사를 누리는 셈이니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양 종일 기분이 좋은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처음 유엔 사무총장에 임용될 당시만 해도 카리스마 부재네 뭐네 하면서 그에 대한 여러 걱정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 번 방한 당시 그가 동창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연임 의지를 밝혔을 때 확신보다는 기원하는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자랑스러운 우리의 동창이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루고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총장은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낮고 겸허한 목소리로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공동의 해법을 모색하는 반기문 총장의 리더십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훌륭한 달란트가 전 세계 인류의 공영을 위해 쓰일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매일 아침 일을 시작할 때 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마땅한 도리를 하고 있는지 늘 생각하고 여성이나 약자 등 소외계층을 만나면서 희망을 주려고 노력한다’는 수칙은 오래 전 우리가 지켜보았던 그의 모습 그대로다.
하버드 시절, 누구보다 성실했고 겸손함으로 일관하면서 주위에 최선을 다하는 매너를 잃지 않던 신사로서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하버드에서 교내 은행에 내걸린 만국기 대열에서 태극기가 빠져있는 사실을 알리자 여러 곳을 수소문해서 기어이 태극기를 찾아내던 그의 성실함을 일찍이 경험한 바 있다. 10살이나 어린 우리들과의 어울림을 마다하지 않고 보살펴주던 마음씨 따뜻한 장형의 모습으로도 기억되는 그다. 때도 없이 어설프고 치기어린 국가관을 토설하는 우리들의 만용을 끝까지 경청한 뒤에야 외교 전문가로서의 자신의 견해를 보태며 조심스럽게 우리를 이끌어줬다.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면 언제고 달려와 서슴없이 잡아주던 맘 좋은 이웃 같던 그와의 인연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세대간 갈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개인과 개인이,국가와 국가가 서로 반목하며 미처 다 헤아릴 수도 없는 갈등을 빚어내는 풍경을 보면 이대로 치유 불가능의 상태로 고착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반기문 총장의 탁월한 조정 능력은 금과옥조로 떠받들어도 결코 무리가 없는 귀한 가치라 하겠다.
중국은 물론 북한까지 쌍수를 들어 그의 연임을 환영한다고 하니 그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다시한번 반총장의 연임에 갈채를 보낸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세대간 갈등의 고리를 풀어내고 좀 더 살만한 세상으로 안내해주는 불세출의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2011. 6. 23)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21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콜롬부스의 달걀

콜롬부스의 달걀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뉴스 메이커로 등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정치공세가 빌미가 됐다.
며칠 전 전남지역 시군의회 의장단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누가 대통령을 했어도 그 (박정희 전 대통령) 만큼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호기를 부린 것이다. 십 수 년 전, 대정부 질문에 나섰다가 논리도 명분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상대 정당을 공격하라던 당 지도부 하명(?)을 받고 당혹스러워하던 초선의원 시절과 어쩌면 그리도 달라진 게 없는지. 아무리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는 게 정치판 생리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싶다.
식상할 만도 한데 치고 빠지는 수법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는 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일까? 한나라 당의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이라는 사실도 오비이락일 것이라고 간주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당 대표 출마 때문에 정치적 노림수가 필요한 사정은 알겠으나 이 치졸한 정치 공세가 그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도울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있어 좀 더 진중한 접근이 아쉽다는 생각이다.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박전대통령의 업적을 폄훼하면서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으나 누구도 그 책임을 묻는 분위기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박 전대통령을 향한 크고 작은 정치 공세에 대한 결과물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문득 신대륙을 발견하고도 그를 인정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던 콜롬부스의 정황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결국은 선택의 가치 존중의 문제로 귀결될 것 같다.
‘콜롬부스의 달걀’이 떠올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불가능에서 가능의 세계로 전환되는 데 있어 필요한 건 결국 선택이고 맨 처음 시도는 결국 선택한 가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의 접근이냐에 따라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또는 영구히 미해결 상태로 분류되기도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콜롬부스의 달걀 세우기는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낸 쾌거라 할 수 있다. 아무도 달걀 끝을 깨뜨려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때, 콜롬부스는 그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러나 아무런 해법을 내놓지 못했던 사람들은 콜롬부스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거둬들인 성공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너무 쉬운 방식’이라며 첫 시도가 가진 가치를 존중해 주지 않았다.
부당한 처사였다.


여러 공과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 전대통령을 향한 국민 향수는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아우라를 담고 있다는 중론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의 특성이라고 할까, 형언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데 아마도 사심이 배제된 애국애족의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실제로 박 전대통령의 통치 행적 곳곳에서 뼈속깊은 애국애족의 흔적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애국애족 정신이야말로 전 세계가 포기했던 지독한 가난에서 탈출하게 하고 오늘 날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있어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정치인의 업적은 당대보다는 시간이 흐른 이후의 역사적 평가가 훨씬 더 객관적인 설득력을 갖게 된다고 보고 있다. 당대 평가는 강압적 요소 때문이건 혹세무민 효과 때문이건 정당한 평가가 난항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심판에서 요행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 만큼은 불변의 진리다. 어떤 식으로든 제몫의 신상필벌이 돌아가게 돼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날 박 전대통령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결과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30년 전 통치행보에 대한 것이니만큼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충분히 농익은 평가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빈곤탈출을 이끈 지도자로서의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는 측면에서 결코 소홀히 다뤄질 수 없는 객관적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최소한 국민 전체가 역대 대통령 중에서 1등으로 선택한 분이다.
반론 차원에서의 언급이라면 더더욱 치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니어도 아무나 경제발전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장담한 박지원 의원은 스스로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구체적인 배경설명은커녕 앞뒤도 없고 결론도 없었다.
제1야당 원내대표를 지낸 분이 아무런 갈등없이 이런 허망한 정치적 수사들이 활개를 치도록 조장한 일은 책임져야 마땅하다.
폄하가 능사는 아니다.
무엇보다 국부하나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척박한 대한민국 정치환경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국민적 동의가 몰리고 있는 박전대통령을 놓고 한번쯤 그 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것도 무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참에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국부의 창출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PS:(민주당은 22일 역대 대통령 리더십을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있는 발표를 했다.)

      (2011. 6. 21)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1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밥그릇

밥그릇


자체 수사권을 확보하려는 경찰과 이를 반대하는 검찰 사이의 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경찰에 수사 개시권과 진행권을 주면서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한다’는 총리실의 2차 절충안 마저 검사들 반발로 거부되면서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다. ‘한심한 밥그릇 싸움’이라는 대통령의 경고는 물론 두 번에 걸친 총리실 중재조차 약발이 먹히질 않는 분위기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조직의 이익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요지부동인가 싶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집단 이기주의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도권 다툼 행보를 마뜩치 않게 바라보는 국민 정서를 염두에 두지 않은 출발로 간과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현실을 외면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형국이다.
솔직히 검경 수사권 갈등 국면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있어 옳고 그르냐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검찰이나 경찰 둘 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느 쪽이 국민을 덜 귀찮게 하고 또 상대하기 쉬운 기관인지의 여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국민 정서 상 경찰이 상대적으로 더 쉬운 상대로 해석되고 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범죄 행위가 경찰을 통해 해결되는 현실적인 여건만으로도 검찰보다는 경찰 주장에 힘이 실리는 조짐이다.
물론 검찰에 비해 상부기관이나 권력층, 또는 돈의 외압으로부터 더 취약한 현실이 경찰의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기는 하다. 그나마 검찰의 기소 독점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검찰이 그다지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권부인 동시에 원부로 지목되고 있는 검찰의 취약한 현실이 한계에 도달해 있다는 느낌 역시 경찰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역차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국민이 검찰 조직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치명적이다. 국민 정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채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는 부패집단이라는 국민 인식이 팽배해 있다.
국민 생각에 검찰은 그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들을 괴롭힐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실체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그 치명적인 낙인을 해결할 뚜렷한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검찰이 몽니를 부릴 경우 어떤 식으로도 피할 수 없다는 열패감이 검찰을 향한 국민 불신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실에 대한 서글픈 좌절과 원망이 검찰을 향한 또 다른 공격무기를 양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검찰이고 경찰이고 죄의 경중을 구분 짓지 못할 바에야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금권에 길들여져 있는 검찰보다는 경찰에 힘을 실어주는 게 낫다는 정서가 표출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공이 넘어가 버렸다.
검찰과 경찰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으로 던져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결정한 들 단 시일 내에 국민적 호응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 인식 속에 들어있는 검찰과 경찰 이미지가 너무나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우호적 분위기가 아니기에 당사자들의 신중한 처신이 더욱 요구된다 할 것이다.
그런데도 티격태격하고 있는 검경의 현실을 보면 분위기 파악을 정확히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저마다 국민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정작 국민을 위하는 진정성은 찾기 힘들다. 자신들의 기득권 존속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는 비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다.
긴 안목으로 보자면 우리 경찰도 미국처럼 연방수사국이나 지역경찰 등으로 분리되거나 독립돼야 할 타당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검찰 역시 중수부 폐지안을 비롯한 검찰 내부의 자정 노력, 특히 힘 빼기 작업 등을 통해 조직에 대한 거부감을 축소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좋은 의도도 국민적 호응을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검찰이나 경찰 모두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상대의 주장을 살펴보길 바란다.
역지사지를 통한다면 의외로 수월하게 합일점을 찾게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고 말이다.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of the people' 이라는 박수 갈채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진 말자.
모든 완성은 첫 걸음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 만큼은 영원 불멸의 진리니까.
또 한가지, 저마다의 밥그릇에 무엇을 담게 될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사실 역시 잊지 않도록 하자.

(2011.6.20)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18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냉면 한 그릇

냉면 한 그릇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행이 결정되었을 당시 가장 크게 대두된 현안은 나의 결혼문제였다.
결혼을 시키지 않고 혼자 보내면 혹여 서양 며느리를 얻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부모님의 노파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단순히 걱정만 하셨던 게 아니라 절대로 아들 혼자 (유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당신들의 완강한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셨다. 며느리 감의 조건을 달아 나를 맞선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덕분에 겹치기도 불사하며 20여명에 달하는 맞선녀와의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고충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 ‘외국인 절대 불가’를 외치시던 부모님은 평범한 외모와 고집스럽지 않은 성품, 그리고 적당한 연령대(당시 결혼적령기인 24세 정도)를 며느리 감의 조건으로 내세우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생각해보면 시대적 상황마다 고비를 거치면서 가치관의 변화가 불가피했다는 생각이다.
그 때문인지 자식들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부모님 시절의 그것과 많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부모님께서 내 결혼과 관련해 가지고 계셨던 기준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1980년대 초반 무렵만 해도 성격차이로 이혼을 결정하는 미국인들을 보면 ‘미국이 곧 망할 징조’라고 할 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당시 부모님은 부부가 서로 다른 의견으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얼마나 이해하거나 양보할 수 있고 또 서로의 생각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느냐에 관심을 두셨던 듯싶다. 국적이나 나이, 성품 등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두 사람이 부부로 살아가면서 하나가 될 수 있을 지 여부가 성공적인 결혼의 조건으로 판단하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얼마 전 전유성. 진미령 커플이 오래 전 헤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목을 끌더니 이번에는 그 결별 사유가 새삼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냉면 한 그릇 먹을 시간조차 기다리지 못하는 남자가 어떻게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에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는 진씨의 고백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전유성씨의 광팬까지는 아니더라도 왕팬을 자처하는 나다. 그가 어눌하게 쏟아내는 말에서 번뜩이는 재치와 삶의 정곡을 찌르는 혜안을 느끼게 되는 건 비단 나 한사람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기품 있는 외모와 음유시인 같은 느낌의 진미령씨 역시 평소 호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던 분이다. 특히 한때 한미관계 업무를 함께 추진했던 그녀의 선친과는 적지 않은 연륜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밀하게 지낸 사이였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인연이 거기까지 밖에 되지 못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두 분 공히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사는 신분인 만큼 각자의 길에서 자신의 최선을 끄집어 내는 삶의 주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별 외에는 또 다른 해결책은 없었던 것일까 싶어 자꾸 서성거리게 되는 마음이다. 나를 포함한 요즘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신의 삶을 가벼이 여기는 행태도 개탄스럽지만 개인의 삶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공포감으로 엄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결혼관과 직업관을 어설프게나마 짐작하게 만드는 바로미터가 된다.


한 개인의 삶이 모두의 삶보다 우선되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서거나 양보할 수 없는 절대치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나 사회의 가치 변화가 인간의 전생애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과 후회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그렇다.
나는 지금 현실을 향해 창의력이나 독창성보다 남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기성세대로 몰릴 수 있지만 남에 대한 배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평가 기준 자체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주변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속단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솔직히 하고 있다.


냉면 한 그릇 먹을 시간도 기다려 주지 못하고 또 그런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조급함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결국 너와 나 모두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돌 던지기를 서두를 게 아니라 현재를 향한 물음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다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2011. 6. 18)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16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K-POP

K-POP


‘소녀시대’의 파리 입성으로 유럽전역이 들썩거리는 모습이다.
무수한 한류 팬들이 쏟아져 나와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의 아이돌 가수들을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한국 가요(K-POP)가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자부심이 국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런 유럽의 표정에서 오래 전 크리프 리차드의 내한 공연 당시 그를 맞던 오래 전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의 공연을 보러 온 젊은 여성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던 이대 강당의 뜨거운 열기를 아마 지금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the young' 등 크리프 리차드의 주옥같은 노래에 매료된 여대생들이 속옷을 벗어던지거나 기절해서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과 함께 말이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 정서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대형사고로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 때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수업에 들어오셨던 선생님들이 철없는 것들이라고 개탄하시던 기억이 난다.


소녀시대를 비롯한 아이돌 사단의 K-POP으로 유럽을 점령한 SM은 우리 시대 인기를 모았던 샌드 페블즈 멤버로 활동하다가 기획사 회장으로 변신한 이수만씨가 만든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K-POP이 이번 파리공연으로 올린 매출 20여억원은 세계 음반 시장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시장에서의 첫 성과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보다는 이 회장의 '안목'의 역할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이런 저런 관점으로 SM의 성공 사례가 분석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귀에 담아야 할 건 이 회장의 "14년 전부터 국내 아이돌의 해외 진출을 노리고 IT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체계화한 CT에 기반을 둔 제작과정을 만들었다"는 이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SM의 성공 요소에 남다른 아이디어와 이를 이루기 위한 부단한 노력 외에도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획과 노력이야말로 SM의 성공 요인이었다는 당사자의 결론에 다름 아니다.
유럽의 K-POP 열광이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행운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소녀시대의 원조 모델을 꼽으라면 우리보다 훨씬 윗대에서 활동했던 김시스터즈를 들 수 있다. 미8군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라스베가스로 진출했는데 당시의 환경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활동무대가 고급한 곳은 아니었을 거라는 짐작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세대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성공모델이 있고 인프라와 노하우도 구축돼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준비돼 있는 셈이다. 모델을 따르기만 해도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당사자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할 것이다.
특히 문화는 그 어떤 분야보다 발전 가능성이 큰 영역이다.
체계적 과정을 거쳐 기량을 인정받기만 한다면 교육이나 영화, 소프트 프로그램 등의 매출효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묶어 낼 수만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문화는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는 매출 효과를 보장하는 보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 브랜드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측면으로 보자면 가히 '문화 만만세'를 외칠만하다 .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문화를 앞세우고 세계로 나가 기회를 잡을 것을 권하는 바다.
여러 가지로 젊은이들의 취업시장이 어려운 실정을 감안하더라도 이제는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됐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는 성공한 롤모델이 있다.


소녀시대 등 K-POP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의 지속적인 성공은 결국 실력과 후원의 확보여부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오래 전부터 이 방면에 관심을 갖고 본교에 실용음악과나 뮤지컬과를 신설 육성한 배경설명이 될 수도 있겠다. 미래의 땅을 겨냥한 아프리카 문화예술원과 초중고생의 세계화에 대비한 국제학교에 정성을 쏟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시간이 갈수록 이런 내 계획들이 점점 구체화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기쁘다.
우리에게 우리 손으로 세울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국내 이슈로 우리끼리 싸우느라 세계로 치고 나갈 우리의 자원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2011. 6. 16)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1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아버지2

아버지 2


현지에서 살펴 본 아버지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했다.
이마를 여섯 바늘이나 꿰매 눈 한 쪽이 퉁퉁 부어올라 병상에 누워계셨다.
그런 아버지를 뵈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고 목이 메었다.
밤을 다퉈 모시러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연신 걱정을 하시면서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내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긴장을 풀고 숙면을 취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아픈 중에도 하와이 독립문화원과 학교 그리고 집안의 대소사까지 끊임없이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넘치는 에너지는 아버지의 천성이기도 한 것 같았다.
아버지를 통해 이런 열정들이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중경은 중국에서 몇 번째로 꼽히는 도시라는데 중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많이 실망스러웠다. 도시 전체가 얼마나 더럽고 어수선한 분위기 일색이던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했나 싶을 정도였다. 아버지께서 머무신 병원만 해도 중경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는 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진료비는 왜 그리 비싼지 4일 입원비가 중국돈 2만원을 육박하는데 카드결제도 안된다고 해서 현금다발을 들고 있어야 했다.
귀국 절차도 순조롭지 않아 애를 태웠다.
당초 단체비자였던 아버지의 비자발급이 귀국을 지체시키는 원인이었다. 뛰고 저리 뛰었지만 결국은 예약 비행기를 놓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의 꿰맨 상처도 비행기 탑승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됐다.
중국 항공을 이용할까 했는데 이마를 꿰맨 환자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항공사를 바꾸고 꿰맨 상처를 가리는 북새통 끝에 비행기 트랩에 오를 수 있기는 했지만 황당한 경험이었다.
심지어 환자의 탑승을 돕는 이동수단까지도 문제였다.
중경 공항에는 미국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자용 미니카 대신 휠체어가 준비돼 있었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은 구설거리를 제공했다. 이용 환자를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특히 무면허처럼 환자에 대한 배려 없이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끌고 다니는 난폭운전이 무시로 행해지는 행태는 목불인견이었다.
역시나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 하나 옮기는 것조차 힘겨워하시는 아버지를 부축해 드리는데 그 순간, 아버지가 전적으로 내게 몸을 싣고 의지해 오셨다. 원초적인 매달림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절박함이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의탁한 일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어린 날 장터의 서커스 공연을 보고 늦은 밤 아버지 등에 업혀 돌아오던 내 모습을 보았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아버지도 어쩌면 어린 날의 나 같은 심정으로 손을 내미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 때 나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뭔가 자꾸만 뒷덜미를 잡아채는 것 같아 두려웠다. 아버지 등에 찰싹 엎드리고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아버지와)밀착하고자 용을 썼던 이유다.
문득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역할 환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헤아리고 있다.
부정적인 의미도 아니고 긍정적인 의미도 아닌 단순한 ‘죽음’의 명제로 기도하듯 생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될 것이다.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이다.
결국 아버지 얼굴처럼 주름이 지고 아버지의 다리처럼 빈약해지고 힘을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여정 자체가 선택의 여지없이 죽음을 향하고 있는,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것 같다. 이 역시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오고 가는 여정 속에서 완독한 최인호 작가의 ‘낯익은 타인의 도시’와의 인연도 이 같은 나의 정서 형성에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현실 안주를 거부하는 비존재의 몸짓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거나 존재의 가치를 끊임없이 되물으면서 방점이 찍힌 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단을 볼 수 있는 재미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미덕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아버지는 귀국 직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다.
앞으로 많은 검사를 남겨두고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에 적을 둔 병원에 입원했다는 안도감만으로도 아버지는 많이 안정된 상태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현지까지 당신을 찾아와 준 아들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계신다.
그런 식으로 장남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시는 것이고 보면 참 많이 변하신 모습이다.
나 자신도 과찬에 몸 둘 바 없는 가운데 아버지께 더 효도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쾌차를 위해 함께 걱정하고 기도해 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한다.


(2011. 6.13)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1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아버지

아버지


내게 있어 아버지는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특히 더 했다.
부자지간의 다정다감한 대화는커녕 그저 어렵고 두려웠던 기억이 더 크게 각인돼 있다.
기골이 장대한 외모에서 풍기는 위화감 탓도 있었지만 감정표현이 거의 없던 아버지 특유의 무뚝뚝함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이 땅의 아들들 대부분이 한번쯤 느끼게 되는 좌절감이라는 생각이다.
조금만 더 하면 아버지를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아무리 죽어라 달려도 번번이 저만치 앞에서 뚜벅뚜벅 걷고 있는 아버지의 완강한 뒷모습을 통해 전해지는 패배감에 시달렸던 기억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장성한 이후 아버지로부터 몇 차례 인생고백을 들으면서 상당 부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는 시대적 상황의 희생양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월남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아버지 역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버지의 기억엔 한없이 근엄하시기만 했던 어린 시절 할아버지(아버지의 아버지)가 전부일텐데 자식 사랑을 살갑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 리 만무다. (부전자전인지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그다지 자상한 아버지의 본을 보여주지 못했다)

- 故김학수 화백님,  前교육인적자원부장관 안병영님, 
前연세대총장 故박대선 선생님과 함께-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다.
내 삶의 고비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듬직하게 뒷배가 되어 주셨던 이도 아버지셨다.
특히 당신이 솔선수범하시면서 훈육하셨던 몇 가지 가르침은 지금도 내 인생에 있어 확실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창씨개명을 거부한 탓에 정식학교에 등록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자신의 품 속 깊숙이 넣어둔 아픔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새겨 주셨다.
약간의 한학 교육을 마친 아버지는 교회에서 만든 평화 중학교를 (정식인가된 학교는 아니었지만 열성적인 선생님들 덕분에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분들 중 한분은 연세대 총장을 지내신 박대선 선생님이었고, 또 다른 맨토이셨던 김학수 선생님과는 작고하신 작년까지 오래도록 교분을 이어가셨다.) 다녔는데 그나마 당시 일본 순사와의 갈등으로 도피 차 남하하느라 학업을 접어야 했다. 남한에서 경희대학교 법학과에 진학, 학업의 기회를 잡았지만 이마저도 전쟁 통에 1년 다니고 졸업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학업에 대한 열망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잊지 않으셨다.
얘기들은 하버드에서 공부 때문에 한창 방황하고 있을 때 미국까지 찾아오신 아버지께 들었다. 그 때 아버지는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당신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며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덧붙이셨는데 내게 있어 그 어떤 교육보다 효과적인 교육이 되었다.


- 제11대 국회의원시절 워싱턴을 방문하신 아버지와 함께 -

아버지의 산교육이 빛을 발했던 또 다른 기억은 국회의원에 낙선할 때다.
아버지께서는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공천 잡음 속에서 출마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부르시더니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당신의 경험(아버지는 11,12대 국회의원을 지내셨다)을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때 나는 출마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정치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위험했기 때문이다. 가장으로서 내가 잘못됐을 때 나나 내 가정을 지킬 사람이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생각을 굴뚝 같았지만 출마를 포기했다. 그러나 너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출마해라. 왜냐하면 아버지인 내가 있으니까.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됐는데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너는 아버지보다 더 큰 꿈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출마를 독려하시더니 모든 준비는 물론 새벽부터 뛰어다니며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물론 새벽까지 뛰어주셨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낙선이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네가 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 출마가 앞으로 네가 정치하는 데 있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라며 담담한 어조로 위로해 주셨는데 그 위로가 지금까지 험난한 정치일정을 버티게 해 주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아버지의 힘은 수년 전 음해세력(당시 여당 수뇌부가 움직인 정황 등으로 정치적 탄압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몇 가지 사건들)에 의해 학교 총장이었던 아버지와 이사장이었던 내가 동시에 구설수에 오르고 내가 구속된다는 기사가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때에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어느 날 문득 내 방을 찾으신 아버지는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 할 때도 떳떳하게 살아온 내가 치욕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비장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학교에 관한 어떤 허물이라도 너는 명목상 이사장 일 뿐이지 책임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네가 여기서 혹여 아버지와 학교를 위한답시고 경솔하게 행동하거나 발언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불효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면서 “너는 나를 위해 죽을 수 없지만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 아마 지구상에 유일하게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일 것이다”고 덧붙이시는 아버지를 붙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유고 중이시다.
헌정회에서 중국여행을 가셨다가 고령인데다 뜨거운 여름날씨 때문에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놀라서 연락을 드렸더니 아버지는 “나는 아무 일 없으니 학교 방문하는 교육부 손님들 잘 영접하고 학교나 잘 지켜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런데 현지를 통해 알아본 상황은 달랐다.
은근히 아들을 찾으시는 눈치라는 전언이고 보니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조급함이 일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안위가 걱정스러워 잠시 후,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현지로 출발할 예정이다.
아버지, 언제든지 손을 내미세요. 예전에 아버지가 제게 해주신 것보다는 듬직함이 덜할지 몰라도 아버지 그래도 최선을 다할게요.
아버지 오래 사세요. 불효자식이지만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세상은 생각하기도 싫다.
벌써부터 하늘이 노래진다.
지금 이 순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하나님, 제발 우리 아버지를 지켜주세요.

(2011.6.12)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오뎅집

오뎅집




오늘 점심 메뉴는 의정부 부대고기였다.
강연 차 경민대학교를 찾은 개그우먼 박경림씨가 선택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게 된 곳이 의정부 최고의 부대고기 명소, ‘오뎅집’이었다. (의정부 부대고기의 3대 족보 하면 부글부글 찌개로 끓여내는 덜매운 맛의 ‘오뎅집’, 볶음 형태로 나오는 ‘부산집’, 맵고 싱겁고 등의 맛 조절이 가능한 ‘형네집’을 들 수 있다. )
박경림씨의 감탄어린 추임새가 아니더라도 오뎅집은 52년간 한 자리에서 부대찌개 맛을 천착해 온 집답게 언제 찾아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곳이다. 특히 77세 허기숙 할머니의 손끝에서 예술처럼 피어나는 전통의 맛이 3대를 잇고 있다는 자부심과 어우러져 남다른 기쁨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오뎅집의 명성은 처음 불을 지피는 순간부터 찌개를 끓이는 과정은 물론 양념까지 일일이 챙기시며 맛에 관한 한 조금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주인의 단호한 장인정신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단골로 드나드는 내게는 색다른 덤이 주어지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곁들여 꼼꼼히 근황을 챙겨주거나 자주 오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허 할머니의 애정어린 관심에서 우리시대 어머니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그것이다.









슬프고 가난했던 우리의 아픈 시대상황이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정부 부대고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뉘앙스는 특별하다. 부대고기가 미군이 먹다 남긴 음식을 한데 모아 끓인 ‘꿀꿀이 죽’에서 비롯됐다는 유래 때문에 더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다. 꿀꿀이죽에서 좀 더 발전한 것이 미군들이 남긴 고기를 얻어다가 만든 부대고기인데 먹을 것이 귀했던 당시로서는 최고의 음식으로 대우를 받았다.
그 부대고기가 상품화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의정부를 대표하는 부대찌개가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의정부 부대찌개’ 대신 ‘의정부 찌개’로 음식명을 바꾸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단의 고민이 이해되지 못하는 바도 아니다.
사실 전후 세대인 우리로서는 꿀꿀이죽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없다. 다만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통해 그나마 꿀꿀이 죽 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당시의 어려운 형편을 짐작하는 게 고작이다. 아침나절이면 동이 나버린 빈 그릇을 아쉬움으로 바라보던 기억들을 전해듣다 보면 그 불우했던 시절이 상흔을 자극하게 되는 게 무리가 아니지 싶기는 하다.
당시 미군부대 주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새알 초코렛, 퍼모스트 아이스크림, 츄잉껌 등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던 간식거리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미군이 지나가면 “깁미 쵸코렛”하면서 쫓아다니던 선배나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도 동남아 현지에서 뭔가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아이들을 보면 발길을 떼지 못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장인의 시대라기보다는 저마다 '나 잘났다’를 외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빨리’ ‘크게’ ‘한탕’에 경도된 움직임이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묵묵히 한길을 걷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외면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시대가 됐다. 급변 그 자체로 견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찰나에 강한 젊은이들의 발빠른 적응력(?)을 나무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찌 보면 그 중 일정정도는 반짝이는 창조성이나 독창성으로 간주하고 받아들이는 여유나 아량에 대한 준비는 기성세대인 우리들의 몫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신의 가치를 고수하고 지켜온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등한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정받고 받들어지는 세상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기본이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흔들고 있는 부산저축은행이나 반값등록금 사태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필요한 시각이 아닐까 싶다. 좀 더 긴 안목으로 헤아리려는 사회적 노력이 있어야겠다.
당장의 이득이나 박수갈채에 집착한 나머지 단편적인 사고에 기대려한다면 분명 새로운 불행의 시작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도 내일을 준비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시대적 상황논리에 충실하면 그만이라는 안일함은 백번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칫 그 때 그 때 맞춰 나가야 할 시대적 목표를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 해악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멀리 내다볼 줄 알았던 故 김준엽 총장님의 영면은 더 없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 자신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학자와 지도자의 지성과 리더십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셨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한번쯤 걸음을 멈추고 의정부 부대고기 식당에 들려주길 권하는 바다.
그 곳에 가면 은근과 끈기를 무기로 장인의 경지에 오른 분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을 통해 세상을 진실하고 제대로 살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기회를 낚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누구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을 사랑한다.

( 2011. 6. 8)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7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지금이 어느 때라구

지금이 어느 때라구


주한 미 대사 내정에 대한 국민 관심이 뜨겁다.
성김(한국명 김성용)이 그 당사자인데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승승장구, 미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은 대표적 미국 내 지한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를 주한 미 대사로 임명하기까지 그가 보여준 여러 외교적 능력과 북한 문제에 대한 노하우 등이 높이 평가됐다는 후문이고 보면 그의 성공이 결코 간단하진 않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그의 아이비 대학 이력이나 LA 검사 경력 그리고 그동안 각 단체에서 발휘한 역량 등을 볼 때 미대사 직무도 잘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갈수록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성김 내정자의 한국 내 인연이 알려지면서다.
최초의 한국계 인사라며 그의 내정을 환호하던 처음 분위기와 사뭇 달라지는 느낌이다.
실제 그가 ‘나는 가수다’ 방송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임재범과 고종사촌지간이라거나 선친이 70년대 주일공사를 지낸 김재권씨라거나 또 부인이 이화여대 미대 출신이라는 등 대사의 업무처리 능력을 재는 잣대와 무관한 시시콜콜한 신변잡기가 언론에 의해 속속 들춰지고 있다.
아버지가 누구고 고종사촌이 누구냐 하는 관계나 부인이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한국계 최초로 주한 미 대사에 임명된 그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 지 알 수 없다.


결정타는 김대중 납치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평범하지 않은 선친의 이력이 아닐까 싶다. 그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선친이 DJ 도쿄 납치사건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식의 주장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면서 이런 저런 흉흉한 소문들을 파생시키면서 연좌제의 악몽을 재현시키는 형국이다.
당사자가 아닌 부친 경력을 들어 대사 수행에 결정적 하자 요건이라도 되는 양 침소봉대하거나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는 어떤 식으로든 불순하게 평가될 수 밖에 없다.
연좌제가 폐지된 지 30년이 지난 시점에 벌어지는 이 불합리한 상황이 참으로 어이없다는 생각이다. 대명천지에 부관참시라도 당하는 기분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연좌제의 횡포는 불가항력 그 자체였다.
무고하게 사화나 역모에 연루돼 삼족지멸의 화를 당하는 가문이 많았다.
가족 중 누군가 반역자로 찍히기라도 하면 그 어떤 가문도 부모 형제는 물론 친지들에게까지 묻는 연좌제의 추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실제로 사형 이상의 중범죄자 일족들은 대부분 사형을 시키거나 가산을 몰수하고 노비로 삼았다. 그런 식으로 걸쭉한 인재들이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일이 적지 않았으니 국력의 손실면에서도 그 폐해가 컸다고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기세를 이어나가던 연좌제가 공식 퇴출된 시점은 1980년이었다. 그 때까지는 한 개인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위력을 발휘하면서 사회적 기제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 문제에 대해 직·간접으로 관여할 가능성 큰 점을 감안할 때 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한반도 전문가로서 자각하고 있는 책임감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무엇보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내정자의 현실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이 미국보다 우선할 수 없는 그의 정체성을 임의대로 착각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그는 이미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에 대해 남다른 애정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미국의 국익을 능가할 정도는 결코 될 수 없다. 지금처럼 외교문제가 첨예하게 걸려있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필요이상으로 혈연을 강조하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대응하다간 외교적인 주도권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외교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데 인색하지는 말자.
사적인 인연을 앞세워 줄을 대라는 의미는 아니다. 혹여 헤게모니를 잡기위한 쟁탈전에 혈안이 된 것처럼 비춰진다면 부끄럽고 불행한 일이다.
그가 자신의 임무를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묵묵히 돕는 게 우리의 일이라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가 이번 기회를 통해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을 보태주도록 하자.
성공한 한국계의 롤 모델로 우뚝 자리매김 한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 대한민국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다.


(2011. 6.7)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현충일에

현충일에

56돌 맞는 현충일이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했던 동족상쟁 기록인 6.25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6.25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미국, 중국, 소련 등 열강의 치열한 이해관계가 얽힌 3차 대전이었다)
그러나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해야 하는 현충일 본연의 취지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현충일이 추모보다는 단순히 휴일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충일마다 전국에 있는 도로망이 연휴를 즐기려는 차량행렬로 몸살을 앓는 풍경이 반복되는 것도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현충일의 의미에 대해 슬픈 날인데 잘 모르겠다거나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날이냐는 반응을 보이는 초등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있고 보면 대책마련에 좀 더 조급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열강에 의해 고착화된 분단의 비극을 끌어안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현충일에 대한 ‘무개념’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삼아야 마땅하다.
더구나 휴전 상태에 놓여있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열강의 왕성한 탐욕이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운명을 조종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슈퍼 파워가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는 한 우리의 운신은 여전히 그 폭을 제한받게 돼 있다.
우리는 그런 열강의 이기심을 예멘, 독일, 베트남 등의 분단현실을 통해 익히 경험한 바 있다. 분단을 주도하던 처음과는 달리 분단국의 통일 과정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짐작컨대 스스로의 영향력 감소를 원하지 않는 속셈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G2가 막강한 영향력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힘의 축으로 작용하고 있는 한 세계정세는 당분간 달라질 게 없다. 그들의 영향력 또한 최소한 반세기 정도는 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이런 관점을 출발선에 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인 여건 등 북한을 월등하게 압도하고 있다는 신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만 통일 문제는 좀 더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종교전쟁 같은 측면에서 해석될 소지에 대한 주의가 그것이다. 오렌지와 사과 중 어떤 과일이 더 맛있느냐는 논쟁처럼 결론이 쉬운 의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체제를 손 들어준다든지 어느 한 쪽으로의 흡수 통일될 가능성이나 또 그것이 실현됐을 때 야기될 내부적인 갈등 문제에까지 충분한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지금까지 단골 메뉴로 내세웠던 정당성이나 당위성만의 접근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보다는 국민적 동의가 전제된 좀 더 거시적인 접근 방식이 있어야겠다.
그동안 관이 주도하던 방식을 민간단체나 시민단체 위주의 학술교류나 종교 교류, 혈연 교류, 동호인 교류 등의 접촉을 추진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세계 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상호신뢰 구축으로 남북간이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는 이해를 끌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될 공산이 크다. 세계사적 조류의 충돌로 인한 급진적인 문제 발생 시 반목의 위기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강점도 있다. 남북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우선시하는 베이스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숙명을 직시하자.
호국영령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우리의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감사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그 감사함을 다가오는 미래 세대에 어떤 식으로 보답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잊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나라를 지키고 또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현충일의 의미를 진중히 새기도록 하자.

(2011. 6. 5)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광주일고

광주일고


광주일고로 말하자면 자타가 공인하는 호남 최고의 수재들을 배출한 명문고다.
학교에 대한 동문들이 갖는 자부심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만큼 끈끈한 ‘동문애’ 역시 대한민국의 대표 인맥의 하나로 거론될 만큼 대단하다.
그런 광주일고 인맥이 뉴스의 중심에 서 있다.
정계 관계 재계를 총망라하는 광주일고 인맥의 막대한 영향력을 대서특필하는 언론 보도가 연일 이어지는가 하면 광주일고 출신 총리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제기한 비리 연루의혹을 해명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 로비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광주일고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을 비롯,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와 핵심 경영진까지 광주일고 출신 일색으로 김 원장은 부산저축은행이 대전·전주 저축은행을 인수한 전후인 2008~2009년 금융위 금융서비스 국장으로 인수·합병(M&A) 인허가를 담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정황이고 보니 검찰 수사가 확대될수록 부산저축은행 고위 인사와 인연이 있는 광주일고 동문 장관 출신 고위인사, 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에게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일찍부터 광주일고 출신과의 인연으로 그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기운을 접한 바 있다.
나의 학업을 도와 주셨던 두분의 과외 선생님을 통해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난 선생님은 해남 천재로 광주 서중과 광주일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인 분이셨다. 초등학교 6학년 전 교과서를 암기하다시피 하는 그의 기억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예를 들자면 음악책 12쪽 8번째 줄에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식의 놀라운 암기력을 발휘했다. 발군의 예상시험문제는 족집게 점장이를 능가했다. 당시 초등학생인 내게는 거의 신의 경지였다.
중학교 때 만난 선생님 역시 명문대를 수석 졸업한 광주일고 출신이었다.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그와의 인연은 여러 면에서 내게 유의미하게 기억되고 있다. 그의 지도로 영어와 수학의 확실한 그루터기를 조성할 수 있었고 또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게 한 연결고리였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 외에도 하버드에서 동문수학했던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 S교수, 전 대법관을 지낸 L 변호사, 서울대 교수를 하고 있는 P교수 등도 나의 광주일고 출신 인맥 중 하나다.
광주 길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는 사람치고는 꽤나 두터운 광주일고 인맥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대한민국 사회는 인맥사회로 대표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만사 인맥 通’이라고 자조할 만큼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맥 현장이 갈수록 늘고 있다. 연고주의가 낳은 폐단이라 하겠다.
사정이 그러니 학연은 물론 지연, 혈연 등 동원 가능한 모든 공동 수단으로 인맥을 형성하고자 혈안이 되는 풍경이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인맥으로 일사분란하게 교통정리된 집단 이기주의적 사고가 좌우하면서 조직의 발전과 성장을 가로막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부분의 인맥이 집단 이익만을 위한 파벌 형성의 수단이나 고질적인 병폐의 근원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카르텔 형성은 상당히 심각한 후유증을 우려하게 한다.
그 폐단의 범주가 전방위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스포츠 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선수 선발 등에서 선수 개인 기량과 무관한 지연이나 학연 등의 자료에 의해 분류되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계, 관계 등 공직사회는 물론 굴지의 재벌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오너와의 혈연, 학연, 지연 세력이 주축을 이루는 친정체제가 선호되고 있다.
언젠가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사들의 출신지와 출신교 자료를 삭제하고 검사 개인의 능력과 인품을 최우선시하는 인사를 단행하겠다고 밝혀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 뒷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모르지만 21세기 세계 무대의 주역을 꿈꾸는 대한민국에 있어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연고주의를 철폐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높이살만한 가치였다.


같은 관점에서 우리 경민대학교를 생각한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규모의 교직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조직이다.
생각해보니 적어도 혈연 학연 지연 등의 배경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인사규칙을 지켜왔노라 자부할 만하다는 결론이다. 노력이 가미된 결과라고 감히 말하겠다. 최소한 21세기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마인드로 출발한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부산 저축은행 사태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고 있다.
그 중 큰 가르침은 21세기로 나가기 위해서 지향해야 할 지나친 인연 중심의 사회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고주의 배경이 아닌 능력과 일 중심으로 시스템이 구축되고 운영되는 실천이 선행돼야함은 물론이다.
지금부터라도 연고주의를 놓아 버리는 과감한 결단력을 실행해보면 어떨까?
분명 새로운 개안의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ps: 21세기를 지향하는 우리 대한민국에 있어 합리적으로 정리돼야 할 부분이라는 동기로 생각을 짚어 봤는데 광주일고 출신들께 본의 아닌 결례가 있었다면 혜량을 구한다.

(2011. 6. 4)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무관심

무관심
 
말세의 징후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건가?
얼마 전에는 성추행 현행범으로 검거된 현직 고등법원 판사가 현장에서 명함을 보이며 구명을 청하는 어이없는 짓을 했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급기야 성희롱을 항의하는 여성에게 칼을 들이대며 사건을 무마하려 한 뻔뻔한  작태를 뉴스로 접하고 있다.
더 기 막힌 일은 며칠 전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이 화장실로 끌려가 잔인한 폭행을 당할 때까지 주위의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심지어 역무원이나 경찰조차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충격적인 현실이다.  

자신의 과오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은 최소한의 인간가치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까지 놓치는 형국이다. 사회적 문제의식에 대한 무감각증이 양심불량과 인면수심의 범죄행각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큰일이다.
그저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실제로 자신의 과오로 인한 결과나 파장으로부터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강심장’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사이코 패스 등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다른 사람의 평가에 대해 무심해지는 유형이 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질은 더 없이 풍족해졌지만 저마다의 가슴에 커다란 우물 하나씩을 파 놓고도 갈증의 수위를 높이며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 둘 곳 없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  고독한 군중의  현실이다.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최소한 이로 인한 폐해가 고스란히 자기 몫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날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방치하고 있던 대상을 향해 조금만 더 따뜻한 숨결을 불어주었다면 훨씬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이 아쉬움이  나만의 것은 아닐 터다.
어른도 그렇지만 청소년들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상적 성장을 포기한 청소년들이 주변에 넘친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정서적 장애가 우리의 청소년들을  갉아 먹고 있는 모습을 속수무책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학업에 지장을 받는 건 물론 삶의 의욕마저 포기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민이 있어도 함께 나눌 친구가 없고 조언해 줄 선생님과 부모님이 없는 게 현실이다.
급속도로 진행된 극단적 이기주의 현상이  초래한  부작용들을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청소년들의 여린 심성을  파먹고 있는 현실을 그저 강건너 불구경 하듯  보고 있다. 
 이 무기력함을 어찌할꼬.   
학교나 심지어 가정의 부모까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다.
관계없는 일에 끼어들어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편을 갈라 공동체적 사안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줄기차게 아이들을 훈육해 온 결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미래 경쟁력을 위해 우리의 모습을 더 탄탄히 가꿔야 할 때다.
사회적 정의감을 실종시키고 우리 사회를 총체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이 독성을 남의 일로 간과하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세계무대를 지휘할 21세기 대한민국의 리더십 확보를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있어야겠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짚을 건 짚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주관과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는 사랑과 관심 그리고 배려의 덕목도 빠져서는 안되겠다.
그것이 우리 사회전체를 좀 더 경쟁력있고 건강한 사회로 만들 수 있는 리더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측근에 대한 배려도  리더가 갖춰야 할   강력한 덕목 중 하나임을 잊지 말자. 
마음으로 전한답시고  일방통행을 강행한다면  그나마  주위에 포진해 있던 우군마저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또 한가지,  치고 나갈 찬스를 놓치지 않는 센스도 리더에게 엄청난 기회가 된다는 것.
                                             (2011.  6. 1 )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