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7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여의도 훈수


여의도 훈수

 
활동무대를 국회로 옮기게 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인연의 영역이 엄청나게 팽창됐다는 점이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확실히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사람 보는 안목에 대한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장담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더구나 날로 진화하는 고도의 이미지 포장술 앞에서는 더더욱 사람 판단이 여의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한 탐문수사(?)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 역시 수월하지 않다. 다른 동네와 달리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여의도의 특성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판단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때로 인격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태로 말이다.

실제로 여의도에는 대통령 후보부터 인턴직원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대한 평가가 봇물을 이룬다. 타인에 대한 평가에 주저함이 없고 또 스스로 평가받는 것에도 익숙한, 상당히 독특한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정치 밥을 오래 먹은 나조차 황당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완전히 본능만 살아 움직이는 정글이다. 이곳에서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잠깐 방심하면 사나운 맹수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결코  너스레가 아닐만큼 말로써 살벌한 동네라는 생각이다.   
하여,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를 나름 정리해봤다.
공존을 위해 전하고자 하니 뜻 있는 분들은 귀 기울이시길.

제일 먼저 꼽게 되는 건 열렬지지자의 존재다.
그들의 진정한 열정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확신이 된다. (먼저 지지자들에게 신뢰를 구축하는 건 본인의 몫이지만)
칭찬에 박한 이 동네 특성 상 이미 형성된 좋은 평판조차도 성형으로 조작됐다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그런 상황에서 내 입장을 강력한 소신으로 대변해 주는 지지자의 역할은 상당히 유의미하다. 질투와 시기의 날카로운 창끝을 너끈히 막아내 주는 수호신의 역량을 발휘하고도 남는다. 
그런 점에서 여의도 경쟁력의 넘버원 명명은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로는 나를 반대하고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한쪽 진영으로 몰아넣는  전략이다.
라이벌 진영에서 쏟아지는 인신공격은 아무리 파격적인 내용이어도 충격파가 크지 않다.  사실 유무와 관계없이 그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진영논리에 휩쓸리게 돼 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의 공격 논리가 이해관계의 상충이나 대립으로 인한 평가로 인식돼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인 공격에 비해 손실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가능한 반대자들의 공격이 일정한 시기에 집중되도록 하는 전략이다.
선거 면 선거, 당내 경선이면 경선 등  특정 시기에 공격이 집중되도록 유도하면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남을 이겨야 내가 살아남게 되는 정치현실에서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한 정치적 공격은 불가피하다. 콩을 팥이라 우기고 네모도 동그랗다고 거품을 무는 풍경이 결코 낯설지 않은 게 정치판의 일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그렇게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지는 공격의 와중에 슬쩍 물타기 식으로 어려운 국면을 넘기는 것 또한 이 땅에서 정치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라면 지혜다. 

네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자신의 강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비교로 완충시키는 방법이다.
여의도 정가에서 상당히 유효한 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A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에서 조직을 제일 잘한다는 평가는 강점인 만큼 최대로 띄우고 단점으로 지적되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평가는 그래도 B의원보다는, C의원보다는 낫다는 식의 포지셔닝이 유리한 고지 점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효과적이긴 하지만 직접 사용하기까지는 약간의 망설임이 따르는 전략을 소개하겠다.
그것은 바로 맞불작전이다.
나를 비판하는 상대가 있다면 내 약점 몇 배에 해당하는 치명적 약점을 찾아내 맞불을 놓자는 것이다. 상대가 시간을 잘 안 지킨다고 비난하면 이쪽에서는 당신은 셈이 흐린 사람이라고 치고 들어가는 식이다. 셈이 흐린 게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것보다 더 큰 결함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셈이 흐린 약점이 노출된 상대는 공격은 멈출 수 밖에 없다. 자신이 받게 될 타격이 더 크다는 계산이 서는데도 싸움을 계속할 바보는 없을 테니까.

어줍지 않은 훈수였다면  용서 바란다.
남의 중상모략 때문에 피멍이 들었던 경험이 있기에 여의도 정가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이들에 대한 남다른 걱정이 동기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결국 좋은 일상은 자신의 평소 행동을 통해 구축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워낙 쉽지 않은 동네라 걱정에서 몇 자 적어 본 충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덧붙여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건 살면서 허위사실로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그렇게 해서 씻을 수 없는 원한을 남기는 건 너무도 큰 죄악이다.  무엇보다 그 대가를 크고 중하게 치르는 것을 종종 봐 왔기에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이왕이면 좋은 인연을 매개로 여의도가 지금보다 더  사람냄새 나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다.                                                                                          

(2012.6.25.)
...홍문종 생각

2012년 6월 1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주폭과의 전쟁



주폭과의 전쟁

 




여의도 정치에 첫 발을 들여놓던 그 무렵,  대한민국 정치력의 절반은 술에서 나오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 모임이 있다하면  담배연기가 난무하는 술자리가 태반이었다. 술 마시는 과정을 공동화하면서 친화력을 강화하고 정치적 입지를 키우는데 술 만 한 게 없다는 정서가 주를 이루는  듯 했다. 

흡연하는 정치인들도 많았다. 지금은 작고한 L의원과 M의원은 골초로, 국회의장을 지내신 P의원과 원내총무를 역임하신 K의원은 애주가로 명성을 날렸다. 당적을 바꿔 야당 대권주자로 나선 모 의원도 만만치 않은 주량을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지도 않는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술이   일상인 여의도 정가에서 비주류를 고수한다는 건 강단이라기보다 무모한 용기에 속하는 일이었다.   특히나   ‘주력(酒力)이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랬다.  자칫하면 고립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주어지는 술잔 처리가 관건이었다.  초선 입장에서 하늘같은(?) 선배의원들이 애연, 애주하는 자리에서 따로 놀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국회에 출입하는 반장급 기자 열댓 명과의 폭탄주 경연대회에서 일등을 거머쥐는 ‘전설’을 썼다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술 잘한다는 기자들이 끄덕도 않고 폭탄주잔을 비우는 내게 두 손을 들고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이제 와 고백하는데 그 당시 저 홍문종이 마신 건 폭탄주가 아니었다. 폭탄주하고 색깔이  같은 우롱차를 마셨을   뿐이다.  ( 대학 다닐 때부터 생존 차원으로  써먹던 수법이니  너른 이해 바란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내가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단언하건데 지금까지 성찬식 등 특별한 경우에 마시는 와인 이외에는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술 예찬론이 없는 건 아니다.
처칠은 ‘알코올이 빼앗아 간 것 이상으로 알코올에서 얻었다’ 고백했고 칸트는 ‘또 하나의 도덕적 성질,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라고 예찬했다. 심지어 대 음악가 브라암스는 임종하는 순간, 술 한 잔을 청해 마시고 ‘아, 술 맛이 좋군. 고마워’란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태백의 주옥같은 시들은 대부분  술을 매개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친목도모의 매개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우위의 강자로 술을 꼽는 이가 적지 않다.  정치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통로가 되는 게   사실이다.
초선의원 시절, 이모님 친구 되시는 J의원님과 이스라엘 정부 초청을 받아 여행길을  동행한 적이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셨던  J의원님은  간간이 술을  드셨는데 환갑을 훌쩍 넘겨 혼자 되시고 난 후 술을 알게 되었다는 그녀의 고백에 나의  순진무구(?)한 결심이 흔들릴 뻔한 기억이 난다.   알코올과  함께 만들어 내었던   밀월여행(?)의 추억이   술의  순기능을 이해시키면서  그동안의  선입견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언제나 친근한 이웃의 얼굴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건 주변의 여러 경험이 말해준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180cm에 가까운 거구로 관우, 장비를 연상시키던 친구 아버님은 60도 안된 59세 나이에 명을 달리하셨다. 워낙 약주를 좋아하신 게 화근이었던 것이다. 평소 팔십까지는 너끈히 살 수 있다는 사주팔자를 입버릇처럼 내세우며 당신의 장수를 호언장담하셨지만 술 앞에 장사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주셨다.
오래 전 우리 동네에 있던  정미소도  술 때문에 패가한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는 집이다.
성실한 아버지 덕분에 의정부 일대에서 소문난 부잣집이었지만 일찍이 술에  빠져 알콜 중독자가 된 아들이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고 흉흉한 뒷소문만 무성하게 한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길을 잘못 든  아들이 스스로는 물론 부모형제의 삶과 집안 전체를 망가뜨린 것이다.

술에 관한  추억을  자극한 건   우연히 눈에 들어온 거리의 플랜카드였다. 
‘주폭(酒暴)과의 전쟁’ 운운하는 내용이 술로 곤혹스럽던  순간을 떠오르게 했다.    
처음엔 조폭을 소탕하겠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술 취해 부리는 행패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문구였다. 기왕에 경찰청에서 본격적으로 조폭소탕에 나섰다는 뉴스가 있더니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씁쓸했다. 사회적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주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들고 소탕작전에 나섰을까 공감이 가면서도 이제는 술자리조차 범죄행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각박한 세상이 되었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비록 비주류지만 술자리는 끝까지 지키자는 개인적 신조 덕분에 적당한 음주가 생활의 윤활유가 되는 모습도 종종 목격한 바다.   그런 경험이 조폭과의 전쟁을 바라보는 마음에 구름을 끼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과유불급.
주변의 술 문화를 접하면서  늘  하게 되는 생각이다. 
술자리에서도 그렇지만  경찰청의 이번  프로젝트에도  반드시   필요한 처신이 아닐까 싶다. 
최소한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테니까. 
그렇다 해도 대법원에서  주폭 행패에 관대했던 기존과는 달리   가중처벌할 수 있는 양형기준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2012. 6. 17)

...홍문종 생각 

2012년 6월 1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오픈프라이머리 대첩


오픈프라이머리 대첩

 
 
지금 새누리당은 전쟁 중이다.
대선 후보 경선 룰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정치적 신념처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재오, 김문수, 정몽준 이른 바 비박 3인방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는 형국이다. 급기야 관련 법안까지 제출하는 등 오픈 프라이머리 관철을 위해 필사적으로 총력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이들 말대로라면 오픈프라이머리는 올 12월 대선판의 종결자고 만병통치약이다. 오픈프라이머리만 실시하면 대선 흥행과 정권재창출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다. (오픈프라이머리가)야권의 대선 흥행 이벤트에 찬물을 끼얹고 공정한 경선 보장으로 새누리당을 민주 정당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물론 중도층 표심도 확보해 주는 교두보가 된다. 또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오픈프라이머리가 대세인 만큼 우리도 그 반열에 끼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비박계는 여러 경우를 들어 오픈프라이머리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있지만 조삼모사다.
어떻게 보면 당사자들도 스스로의 허구성을 알고 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이를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명확한 정치 철학을 근거로 하는 것 같지도 않다.
특히 오픈프라이머리에 관련한 비박계 3인방의 과거 발언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이재오 의원은 2006년 당시 정당정치의 근간인 당원들을 소외시킨다는 이유로 오픈프라이머리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정당의 당원들 전부에게 자기 당의 후보 선출권을 갖게 하는 게 당연하다며 현행 경선룰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정몽준 의원도 2002년 노무현 후보와의 후보단일화 협상 당시 역선택 가능성을 들어 일반국민 여론조사 경선 방식을 반대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다르지 않다. 17대 총선 당시 공천심사위원장 시절, ‘완전 오픈 프라이머리는 동원능력에 좌우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이력이 있다.
명색이 대권주자로 나선 이들인데 상황논리에 따라 정치 철학이 조변석개 하는 모습은 곱지 않다. 그 어떤 변명으로도 궁색함을 모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궁핍한 정치적 상황을 오픈프라이머리로 돌파구 삼아 활로를 찾아보려는 의도가 부각될 뿐이라는 걸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하는지....
지금이라도 그나마 체면을 지키려면 과거와 정반대로 견해가 바뀐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절차가 있어야겠다.
 
 
 
오픈프라이머리 제도가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툭하면 미국 타령인데 간접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의 대선 제도는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의 선거환경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미국의 프라이머리는 보다 예비선거 과정에서 합리적인 유권자의 의견 반영을 위해 각 주의 형편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돼 있고 그 방식 또한 다양하다. 미국의 가장 많은 주(26개주)에서 실시하는 당원 프라이머리는 지지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해야만 후보 경선 투표권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는 현행 새누리당 경선제도보다 더 폐쇄적 형태다.
또 다른 방식으로 19개주가 채택하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방식이 있는데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한 정당에 투표 등록을 하면 다른 정당에는 등록을 할 수 없게 했다. 이 정당 저 정당 옮겨 다니는 투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인 결사의 자유를 해친다는 이유로 위헌 심판이 제기된 상태다. 역선택의 꼼수로 상대당 후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정치공작이 현실적인 문제점으로 인식된 결과다.
더 큰 문제는 미국과 다른 우리나라의 정당 체제에 있다.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지지계층만 다를 뿐 우파 정당이라는 점에서는 차별성이 없어 유권자 입장에서 어느 당이 되던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념과 지역구도 등으로 선명하게 차별을 짓고 있는 우리 정당 체제로서는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이 안고 있는 원천적인 한계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흥행과 지지층 확대의 강점을 들고 있지만 지지율이 낮은 민주당은 몰라도 새누리당은 흥행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과열된 당내 경쟁이 후보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논란으로 인한 분열 양상이 서로의 골을 파 대선가도에서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게 분명하다.
차라리 후보경쟁력에 관심을 갖는 게 훨씬 긍정적이다.
후보 선출 시기도 어려움이 예상되기는 마찬가지다.
비박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915일 후보를 정한다면 후보의 도덕성 검증은 물론 정책이나 국정운영 능력 검증은 언제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후보검증은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후보 검증 과정이 요식행위에 그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후보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지 근심스럽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오픈프라이머리 실시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다.
어림잡아 300억 정도의 비용이 예상된다고 하는데 국민적 지지도도 미약한 후보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혈세를 낭비한다는 건 잘못되어도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
 
 
사심이 아니고 오로지 당을 위한 충정이라는 그들의 말을 나도 믿고 싶다.
제발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합리적 논거와 대안, 그리고 정책 대신 오로지 오픈프라이머리만을 금과옥조처럼 외쳐대거나 1등 후보 깍아내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그들에게선 희망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동의할 수 없는 몇 가지 석연찮은 부분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자꾸 살피게 한다. 수수방관만 해서는 큰일나겠다 싶기도 하다.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지도자가 되려 한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장애요인은 없을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 때 그 때 얄팍한 속내를 드러낸다면 어느 국민이 신뢰할 것이며 과연 그런 지도자의 앞날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그래서 말하는 건데 지금은 오픈프라이머리 관철에 목숨 건 투사가 되기 보다 겸허한 자기성찰로 흐릿해진 시야를 맑게 닦아내는 일이 우선이다.
정녕 모르고 있던 일인가 되묻고 있다.

(2012. 6. 13)
 ...홍문종 생각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거수경례 유감

거수경례 유감


누구에게나 경례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 얼마 전 입대하는 막내아들로 부터 받은 거수경례가 떠오른다. 녀석의 거수경례는 숙달된 조교에 비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까지 받아본 경례 중 가장 가슴을 뜨겁게 했다. 아마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진지하게 부모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아이의 속내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선후배들의 등굣길을 지도하는 ‘예의부장’ 직을 수행하면서 경례의 실체(?)를 터득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가겠지만 그 때는 서로를 향해 거수경례를 붙이는 것이 학교 규율로 정해져 있었다. 경례는 똑같은 제스처라도 그 느낌은 천차만별이었다. 자발적 존경심이 담긴 경례와 아니꼽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경례, 그리고 아무 생각 없는 경례 등. 일테면 상대방에 대한 무장해제, 충성과 환호를 본질로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상반된 감정을 전할 수 있는 경례의 특성을 확실히 알게 됐다고나 할까.

요 며칠 인터넷 공간을 달구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거수경례 논란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본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8일 육사에서 열린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기념행사에 참석 도중 경례를 붙이고 있는 전 전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당시 임석상관인 육사 교장 옆자리에 서 있던 전 전 대통령이 구호를 외치는 생도들에게 거수경례로 화답한 것이 '사열'하는 장면으로 비춰지면서 비난여론을 초래하는 화근이 됐다. 그에 대한 비난은 급기야 정치권과 시민단체로까지 점화되면서 박종선 육사 교장 파면과 김관진 국방부장관 사퇴 요구로까지 확산되는 중이다.
전직 대통령에 부정적인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여론이 들끓는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고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번 사건은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사회적 견해가 빛의 속도로 퍼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바일의 발달은 우리에게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혜택을 줬지만 역으로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 판단들이 사실인양 순식간에 세계 구석구석 퍼지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번 전파된 의견은 다시 되돌리거나 수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처세가 요구된다.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감정적 판단만으로 부화뇌동 하는 건 더 없이 위험하다. 사소한 견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사실을 늘 염두에 둬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 때문에 국민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선동은 지양돼야 한다. 특히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는 국론 분열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더 더욱 그렇다.
국민 개개인도 무조건 여론에 편승하기보다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자발적이고 냉정한 노력이 있어야겠다. 최소한 스스로를 정치권 의도에 놀아나는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2012. 6.11)
...홍문종 생각

2012년 6월 9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말로써 말 많으니



말로써 말 많으니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아무리 바빠도 의총엔 꼬박꼬박 참석하겠다는 생각이다. 등원하면서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개인적으로 다짐한 바 있는데 의총 참석은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 개원 일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국민들께 야단맞고 있는 처지지만 칭찬받는 19대 국회를 만들겠다는 의욕이 크다. 기필코 사랑받는 정치의 전형적인 본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의총은 150여명이나 되는 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빌미가 됐다.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부산했는데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앉은 자리 주변으로만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누군가는 먼 자리까지 찾아가는 적극성을 보였다.
나 역시 미소와 목례로 군중 속에 섞여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관전자가 되어 의총장을 탐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속한 무리를 국외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건 내 오래된 습벽이다. 짐작컨대 자주 학교를 옮겨다니며 적응해야 했던 어린 시절 환경과 무관하지 않지 싶다.
실제로 나는 새 환경 정착의 성공 여부는 동료들과의 관계 설정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동료로 섞이기 위해선 개개인의 관심사나 특성부터 파악해야 하고 그들의 얘기를 통해 얻은 정보가 관계를 수월하게 해주는 묘약이 된다는 사실까지도.

의총이 진행되는 동안 단상에서 의욕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동료의원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초선 당시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처음 국회의원이 된 그 때는 무슨 근거로 세상의 전부를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과는 참 많이 다른 모습인데 세월의 무게가 주는 변화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분명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말하기보다 남의 얘기를 듣는 시간이 많아졌고 생각보다 내 자신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 심지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조차 실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실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다음은 내 관전 안테나에 잡힌 동료의원에 대한 감상평이다.
우선 지도부 반열의 의원님 품평부터.
유머와 따뜻한 너그러움으로 덕장의 면모를 발휘하며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A의원님은 조심성도 좋지만 애매모호하기만 한 화법이 영 불만(?)이다. 답답하고 유약한 느낌이 혹여 흠결있는 품성으로 비춰질 수 있을까 걱정이다. 조만간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줄 때가 있겠지... 기다리는 중이다.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으로 해박한 지식이 더 돋보이는 우리의 지장(智將), B의원님 역시 다 좋은데 박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맹장이나 용장의 풍모를 아쉬워하면서도 괜한 박력 타령이 지나친 욕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감히 하늘같으신 선배님들을 이렇게 평해서 죄송합니다)
발언대에 자주 출몰하는 초선 의원 C는 자기가 올라와 있는 링의 분위기 파악이 아직 덜 된 것 같아 걱정스럽고(동료의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모르는 듯) D의원은 자신의 이미지 각인을 위한 조급함 때문에 잘 정제된 개인적 장점들을 고작 ‘인증샷’ 도구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어 안타깝다. 자기최면에 걸려 정확한 상황 판단이 어려운 지경인 듯 싶다.
E의원은 현장감이 넘치는 제안을 들고 발언대에 섰는데 공감은 가지만 사안의 경중을 계량하지 못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지방의회 정도에서나 관심 끌 사안을 국회에서 제안하니 그저 한담 정도로 흐르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명확한 의제 설정이 중요하다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스스로를 거물급 정치인으로 우대하려는 인식 때문에 희화화를 자초한 F의원은 완전 코미디다. 자신의 위상(?)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발언 내용과 액션의 조화를 깨서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반면 적당한 유머와 센스를 섞어가며 정치적 밥상을 먹음직스럽게 차려 좌중을 홀리는 솜씨를 보인 G의원은 확실히 군계일학이었다. 다만 그렇게 명쾌하고 훌륭한 정치적 구상이 있는데도 18대엔 뭐하느라 이슈 파이팅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나도 모처럼 발언대에 올랐다.
반복된 주제일 수 있지만 그동안 생각해왔던 몇가지 사안에 대해 얘기했다.
언론 노출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의원들의 심각한 언론 중독증 행태를 지적했고 지도부를 동네북처럼 질타하지 말자고도 했다. 출범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지도부 불평으로 분란을 자초하기보다 우리가 지도부를 위해 무얼 해 줄 지를 고심하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동안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을 주장해 왔던 대권주자들의 의총 불참을 꼬집었다. 당내 의원들이 다 모인 자리인데도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대권주자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아 진정성에 의심이 갈 정도였다.
역시나 뒷맛은 씁쓸했다. 괜히 나섰다 싶었다. .

옛 성현은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하는 가르침으로 말의 부정적 측면을 경계토록 했다.
정치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가르침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 관중과의 눈맞춤이 없는 정치인의 연설은 죽은 연설이라는 한 선배 정치인의 가르침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정치적 일정이 아니더라도 평소 연설 기회가 많은 내가 매번 처음 연단에 나서는 것처럼 치열한 심정으로 연설에 임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의총장에서 동료의원들의 신상발언을 들으면서 ‘이들이 단상에 나서 발언하기 전에 충분히 고민했을까? 치열한 준비과정을 거치고 나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말의 성찬이 주를 이루는 국회에서 정치인의 발언은 주요 의정활로일 수 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다음부터는 조금 더 지켜보면서 더 배우고 더 생각하고 더 준비한 다음에 입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말 잘하는 국회의원보다 의미있는 내용으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말을 할 줄 아는 국회의원이 되어야겠기에.
그것은 나의 또 다른 다짐이 되었는데 ‘말’의 릴레이로 2시간 훌쩍 넘긴 의총장에서 유일하게 건져 올린 성과물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각박한 건가?

(2012. 6. 9)
...홍문종 생각

2012년 6월 3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한 밤의 데이트


한 밤의 데이트

  
주일인데도 살인적으로 이어지는 스케줄에 파묻혀 하루를 보냈다.
겹쳐진 일정 때문에 고민하기도 했다. 하버드 교우회 초청으로 내한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들 교수와의 만찬과 고교동창들이 마련한 당선축하 모임이 같은 시간대였던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마이클 샌들을 포기하고 동창들을 만나러 나섰다. (옛날 같으면 두 모임을 다 욕심냈을 텐데 요즘 들어 어느 한 쪽에 더 충실하기로 인생관을 바꾼 영향이 미친 결론이었다)
역시나 추억의 힘은 셌다.
한 방을 가득 채운 동창들을 만나 웃고 떠들자니 세상 어디에 있을 때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0여 년 전 시간대로 훌쩍 옮겨 간 우리들은 시절 이야기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려 울고 웃었다. 기억의 공유만으로 이토록 유쾌해질 수 있는 마법은 동창 모임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친구들과의 인연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2, 3차로 정이 이어지는 중간에 내일 일정을 이유로 귀가한 나를 집 앞 뜰로 다시 불러낸 건 덩그러니 둥근달을 걸고 있는 앞산이었다. 얼마 전에는 부처님의 형상이었던 앞산에 조금 전 만난 친구들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국진이가 되었다가 인식이, 춘경이 그리고 만영이 모습으로 바뀌는 앞산을 바라보며 친구들과의 추억을 다시금 곱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12월에는 면류관을 쓴 예수의 모습으로 보였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다 앞산이 달리 보인 건 산의 변모라기보다 내 안의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자연이나 사물이 본래의 모습 대신 개인의 생각이나 느낌이 투영된 형상으로 비춰지기 마련이라는 것,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으로 보게 돼 있다는 것.
우연히 삶의 비밀 하나를 건진 느낌이 들었다.

타인에게서 내 모습을 찾아내 반추해보는 내 오래된 습벽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읽혀진다.
다른 사람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데 이 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다. 때로는 스스로를 경계하게 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나만의 노하우로 내 삶을 긍정적 비전으로 채워가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은근히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앞자리에 앉아 신이 나서 사시 합격한 아들의 결혼 소식을 전하는 완성이의 많은 점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동기 회장으로 수고하고 있는 성수는 관심 분야에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는 친구인데 그에게 내 모습이 있었다. 천진난만하고 구김살 없는 승철이나 가끔 지나친 욕심으로 눈총을 받는 XX(왜 익명일까요??)에게서도 내가 보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앞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새벽 공기를 가르는 음성이 내 귓가를 울렸다.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시간, 결코 평범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 소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삶의 매 순간이 극적인 희비로 채워지는 굴곡의 연속이었다. 처절한 좌절이 있었지만 끈질기게 인내하며 운명에 굽히지 않은 네가 자랑스럽다. 지금껏 지난 삶을 잘 지켜낸 것처럼 앞으로도 더 잘 해내리라 믿는다
절대자의 무한 격려가 주는 에너지가 생생하게 감지됐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내 삶의 과정을 정리해주고 지혜와 여유를 허락해 주시는 절대자에게 감사했고 스스로도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힘을 얻고 집을 향하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그 여운이 잠자리까지 따라붙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부풀리는 듯 했다.
기분 좋은 한 밤의 데이트였다.



(2012. 5. 30)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