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
ㅡ홍문종ㅡ
겨울의 애가
이별과 질투
눈
회색 눈
봄의 찬가
기쁨과 만남
눈
하얀 눈
2월
3월
내리는 눈
오르는 눈
이월
삼월
검 붉은 눈
밝고 흰 눈
겨울
봄
누르는 눈
안기는 눈
삼월 하얀 눈
나, 환희, 찬가
이월의 회색 눈
너, 아쉬움, 애가
기쁨도 슬픔도
아랑곳 않고
온천지에 눈
내 마음에도 눈
어제
내린 슬픈 눈
지금
오는 기쁜 눈
어제
이월의 마지막
오늘
삼월의 시작
(2011.3.1)
청년에게 희망을
사상 최대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현실이다.
청년 실업이 금기의 선을 넘어선 후유증을 체감하고 있다.
도처에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무리들이 널려있다.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시대의 우울을 더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선배 세대로서 그들에게 좀 더 희망찬 출발을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무겁다.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서는 제자들에게 건네는 축하 인사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다.
졸업이 풍찬노숙의 사지로 내모는 또 다른 음모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솔직히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취업 현장의 경쟁률도 가슴을 덜컥 내려않게 만든다.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93:1을 기록했다는데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예사롭지 않게 들렸을 것이다. 정년 보장의 틀이 무너진 취업환경이 상대적으로 남녀차별이 적고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 직종을 선호하게 만들었을 테지만 그만큼 심각한 청년 실업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반증일 것이다. 교육 일선에 있는 입장으로서는 젊은이들이 하고 있는 고민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지구촌 곳곳이 청년 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주지하다시피 이집트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촉발점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한 청년의 절박한 구호에서 시작됐다. 청년 실업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청년 실업 자체보다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병폐부터 해결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할 수만 있다면 빈부격차부터 해소하는 게 왕도다.
가장 무서운 절망은 빈곤의 악순환 앞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게 되는 일이다. 젊은이들을 좌절에 빠뜨리고 의욕을 떨어뜨리는 빈부격차부터 바로 잡아야한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고 본다.
도대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평생 집하나 제대로 장만할 수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자식하나 제대로 교육시킬 여건이 안된다면, 그 어떤 최선의 노력으로도 낙오 대열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 무엇으로 꿈을 세울 수 있겠는가.
결국 결혼문제가 됐건 자식문제가 됐건 취업문제가 됐건 인생의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좌절로 인한 깊은 상처가 한 인간의 삶 전부를 망가뜨릴 수 있는 치명적 독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 진데 아무리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고 외쳐본 들 약발이 먹힐 리 없다.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안쓰럽다.
경기불황과 청년실업도 모자라 사회적 부양책임도 이들 세대에 떠넘긴 꼴이 됐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그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직격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후원과 따뜻한 격려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줘야 하는데 출발도 하기 전, 무거운 짐부터 지워준 꼴이 됐다.
안팎으로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넘치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생존 경쟁이 즉각적인 현실로 반영되는 이 시점에서 차세대를 책임질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적극적인 투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가 ‘청년 프랜들리’ 정신으로 그들을 돌봐야 할 때다.
젊은 세대들이 창업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나 여건을 만들어 주도록 관심을 가져야겠다.
그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짐을 덜어주자.
우리 모두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자기 포부를 펼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되도록 하자.
무엇보다 계층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젊은이들이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는 큰 지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하자.
(2011.2.25)
....홍문종 생각
부패가 문제야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튀니지 국화 이름을 따서 민중봉기에 붙은 이름) 여파가 생각보다 강력하지 싶다.
급기야 중국 땅에까지 그 파동이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소규모의 '재스민 시위'가 있었다는데 중국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뒤숭숭한 중국 상황이 걱정스러웠다. 자식이 머물고 있는 곳의 일인지라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사태가 어느 정도인지 중국 권력 주변부에 있는 지인을 찾아 알아보다가 부패로 위기에 놓인 중국 공산당의 실상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 공산당의 부패가 문제였다.
지인은 ‘과연 시진핑이 주석 자리에 오를 수 있겠는가’라는 의구심으로 중국의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지금의 중국 공직사회는 예전 장개석 시절의 국민당처럼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썩을 대로 썩어 결국 부패로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결론이었다. 백만명 정도 부패한 사람들을 솎아낼 수 있으면 몰라도 중국 공산당의 미래는 없다는 아주 간단명료한 진단이었다.
때 마침 우리 언론에서도 중국 공직사회의 부패 관련 조사결과를 보도했는데 가공할 뇌물 수법과 관리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줄줄이 구속되는 규모도 무척이나 방대했다. 뇌물로 수십억채의 주택을 구입하거나 60여개의 예금통장 운용, 심지어 고리대금업자가 되어 사채놀이도 서슴지 않을만큼 엽기적이었던 그들의 부패 행각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었다.
부패 때문에 중국의 G2 위상도 영 말이 아니게 됐다.
대부분의 중국민들은 G2로 격상된 국가적 위상으로 여건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는 않았다. 공산당이나 특정 계층만의 관심사안에 그치고 있었다. 오히려 갈수록 간극을 벌리고 있는 심리적 경제적 계층간 격차가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가난한 시절엔 모두가 한 마음으로 공동의 문제를 대처하면서 서로를 북돋아주는 에너지가 있어 더 좋았다는 회고가 나오기까지 했다.
늘 그렇듯 부패한 권력의 처신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연이어 그가 들려주는 북한 공산당 부패는 중국의 실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심지어 중국에서 북한주민을 위해 보내는 구호물품까지 공산당 간부에 의해 빼돌려지고 있었다. 고스란히 1/3 가격으로 중국 시장에 되팔리는 경우가 다반사라니 개탄스러운 현실이었다.
중국은 공산당만 망하면 되지만 북한은 나라 전체가 결딴나게 생겼다는 그의 판단을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부패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밀폐됐던 사회가 불행한 뒷모습을 남기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던 기록이 적지 않다. 튀니지의 민중 봉기가 나비의 날개 짓이 되어 지구 저편의 후폭풍으로 증폭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저런 징후들이 튀니지의 재스민 향기가 지구촌 전역을 휘감을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순간, 부패권력의 횡포와 억압에 숨죽이던 민중의 외침이 들풀에 옮겨 붙은 불길의 기세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 알제리로.... 그렇게 중국이라고 예외를 보장받을 수 없는 분위기로 몰리고 있다.
일찍이 땅투기 이권매매 탈세 등으로 재산을 불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나라 전체가 부패하게 된다고 경고한 간디의 망국론이 섬뜩하게 되살려지는 요즈음이다.
근심스럽다.
우리 주변에서 감지되고 있는 심상치 않은 일련의 징후들 때문이다.
그동안 간간이 권력 주변부에서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긴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잘 비켜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실적 만능주의와 결과 지상주의 등의 천민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이 판을 손 안에 틀어쥐고 우리의 운명을 거대한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사에는 비밀이 존재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동안 하나 둘 은밀한 그림자에 감춰졌던 일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임계점에 이른 분노 게이지의 폭발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높아질 대로 높아진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생각한다면 결코 안심할 상황이 아닌 점만은 분명하다.
위기의식을 갖고 긴장을 풀지 말아야겠다.
그 어떤 선한 동기의 시스템도 부패 앞에서는 맥을 못추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각성과 반성으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다는 데 격조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인간만의 차별성이다.
자정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단순한 외적 팽창만으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중국의 현실이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변화하는 세태에 따라 혁신하는 일이 물리적인 노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탐심을 버리고 부패의 늪을 경계하자.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격을 갖출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방도가 아닐까 싶다.
'북경에도 언젠가는 봄이 오겠지....'
이대로 진짜 봄이 오기는 오는 걸까?를 묻던 그 지인에게 전한 나의 생각이다.
(2011.2.22)
....홍문종 생각
봄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차고 매서운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해서 봄이 온다는 생각보다는 어떡하든지 동장군의 손길을 피해야겠다는 소극적인 생각으로 이 겨울을 보냈다. 그 순간들이 생애 전부라도 되는 양 이대로 다시는 벗어날 길이 없을 것 같은 절박감으로 고립무원의 고독에 짓눌려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그 무엇도 염두에 둘 여유조차 없이 동토의 세상을 산 셈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세상이 달라졌다.
맹위를 떨치던 추위는 간 곳 없고 완연해진 봄기운이 노래하듯 온 천지를 감싸고 있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봄이 오는 소리가 온 천하를 울리고 있었다.
인간의 속성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특정 이슈 앞에서 함몰돼 버리고 마는 내 모습을 본다. 매 순간마다 다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는 그 집중력과 단순성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평생 군인으로 살기라도 할 것처럼, 평생 학생의 신분으로 살아갈 것처럼. 평생 젊은이로 살 수 있을 것처럼 고정된 레퍼토리에 얽매여 있는 모습 일색이다.
저마다의 인생을 통과하게 돼 있는 순례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신열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인간의 그 미욱한 한계가 안타깝다.
찰나에 지나지 않을 특정 순간을 항구적인 상황으로 규정짓고 싶은 욕망이 착각을 불러오는 것 같다. 더군다나 자신이 현재 속해있는 ‘상황’을 압박하면 압박할수록 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미래의 자유 영역을 그만큼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관관계를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임에랴.
인간이 처한 그 어떤 상황도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인간사의 모든 희로애락은 연극 무대의 설정이 전환되듯 바뀌게 돼 있는 삶의 질서를 미처 알지 못해 벌어지는 돌발적 해프닝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새벽이 오고, 아무리 혹독한 추위도 봄을 몰고 오게 돼 있으며 아무리 끝 간 데 없는 질곡의 나락이라 해도 종국엔 환희와 기쁨의 새날이 오게 돼 있다.
그것이 인생의 비밀이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생각이 많다.
참 힘겨운 날들을 잘 이겨냈다는 안도감이 있는 반면,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꿈을 가진 사람치고는 그저 현실을 대처하는데 급급해 세월을 흘려보낸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솔직히 있다. 세월을 낚는 동안 미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설계하지 못했다는 미련에 뒷덜미를 잡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없다. 지금 시작해도 괜찮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전진의 시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아침,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나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더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각성으로 마음을 다 잡아 본다.
봄이다!!
뚜벅 뚜벅, 저기 봄이 오고 있다.
(2011. 2. 21)
....홍문종 생각
스티브 잡스
미국의 한 타블로이드 잡지 보도로 촉발된 스티브 잡스의 건강상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인콰이어러지’는 최근 머리숱이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충격적인 보도사진(정작 얼굴은 확인되지 않은)과 함께 스티브 잡스가 ‘6주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주장으로 파장을 일으켰지만 곧 바로 이를 뒤집는 이런 저런 정황이 제기되고 있어서 진위 여부를 가리기 가 쉽지 않게 됐다.
더구나 최근 잡스가 정보기술업계 최고 경영자들과 함께 백악관 간담회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는 잡스의 ‘절박한’ 근황보도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론이 대세인 분위기로 반전되고 있는 것 같다.
평소 스티브 잡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스티브 잡스와 관련한 국내의 언론 보도를 바라보는 심경은 영 불편하다. 특히 애플사와 경쟁관계에 놓여있는 ‘삼성’이 그 배경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 있다.
잡스의 ‘6주 시한부’ 논란만 해도 그렇다.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뉴욕 타임즈 등 외신에 비하면 우리 언론은 지나치게 논란을 부추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백악관에서 배포한 자료사진을 두고서도 ‘오바마, 투병 중인 스티브 잡스와 마지막 인사?’라거나 ‘스티브 잡스, 죽기 전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까지 등장했다. 선정성도 선정성이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 측면으로도 결례가 되는 셈이다.
참으로 엄청난 창의성(?)이 발휘된 결과물이라 하겠다.
사실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는 선정적인 억측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역력한 이런 제목이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문득 부끄러웠다. 그 어이없는 상황이 대한민국 국민 정서의 일단으로 비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일었다.
언론 보도 문제는 비단 스티브 잡스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국내 사레만 해도 지명도 있는 인물들이 그릇된 언론보도로 인한 구설수로 치명타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폐해로 당사자가 당하는 피해규모는 상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심할 경우 하루아침에 한 인간의 인생항로를 뒤바꾸는 일도 부지기수니 하는 말이다.
그 여파 때문인지 왜곡, 오도 등으로 대표되는 황색저널리즘의 참을 수 없는 천박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현실이다. 건전한 매스미디어까지 혐오 대상으로 전락될 만큼 언론에 대한 기피의식이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 간 경쟁이 문제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특종에 대한 조바심이 생기고 이로 인해 광고시장의 압박 등을 이유로 언론이 사회의 흉기로 변질되는 현실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 비등해지고 있다. 심각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평소 친분이 있는 판사 한 분이 100건의 사건 중 99건을 명판결하고 나머지 한 건을 실수하기보다는 99건을 평범하게 판결하더라도 단 한 건의 실수를 막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론에도 고스란히 적용시켜야 할 불문율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많은 특종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해도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오보를 냈다면, 특히 의도적으로 행해진 결과라면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깊은 사고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인명을 대상으로 한 보도 접근은 아무리 신중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작은 탐욕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자기 편의만 충족되면 남이야 어찌되던 알 바 없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바로 서고자 깨어있는 언론의 역할이 더 없이 소중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병가에 들어가 있는 그의 쾌유를 빌고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그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루 빨리 병마를 이기고 자신의 일터로 되돌아오길 바란다.
아이폰(애플사)과 갤럭시폰(삼성)의 대결 양상이 대한민국 언론의 국제적 ‘망신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이 글을 썼는데 기우였으면 좋겠다.
(2011. 2. 20)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