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8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졸업, 그 시작의 의미

졸업, 그 시작의 의미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대한민국 전역이 장사진을 이룬 졸업식 물결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도 덩달아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졸업식장을 넘나들며 소화해야 할 살인적인 ‘축사’ 일정이 어느 결에 정기적인 연례행사가 되고 말았다.
경민학원만 해도 10여개가 넘는 학교기관이 있다. 거기다 인근 학교 졸업식에 까지 불려 다니는 일정을 생각하면 얼마나 숨 가쁜 스케줄을 감당하고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졸업식 풍경은 거의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진부하고 또 여전히 새로운 기운이 넘치는 절묘한 조화로움이 졸업식을 떠 받치고 있다.
가장 진부함을 드러내는 건 아무래도 축사 부분이다.
대부분 고정된 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로 시작해서 희망, 미래, 비전, 포기하지 않는 삶의 목표 설정 등으로 이어지다가, ‘인생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이 벌었나, 얼마나 큰 권력을 쌓았나, 얼마나 명예를 높였나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있다’(내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로 마무리되기 일쑤인데 오래 전과 비교해서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느낌이다.
반면 졸업식마다 매번 주인공이 바뀌고 주변 환경과 여건의 변화로 생동감 넘치는 졸업현장은 신선도 높은 새로움을 제공한다. 개인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달라지고 그런 만큼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떼는 졸업생들에게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관심기준을 주문하는 합리적인 현실을 만나는 반가움을 맛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진부와 참신이 공존하는 아이러닉한 공간이라고나 할까.

진부함을 벗지 못한 축사로는 졸업생들에게 구체적이고 확실한 목표의식을 심어주기에 역부족이지 싶다. 유행이 지나쳐 상투적이 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독창성이니 창조성이니 하는 언급들만으로는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게 하기는커녕 무지개만 쫓는 오류를 부축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다.
그래서 졸업식 축사에 나설 때마다 많이 고민하게 된다.
짧은 시간 동안 전하고자 하는 나의 의도가 (졸업생들에게)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를 준비하는 그들에게 아주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있는 건지 명확한 가늠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가끔씩 내 자신의 졸업식을 돌이켜보기도 한다.
초중고 시절의 교장선생님들과 담임선생님들의 당부 말씀들을 떠올리다 보면 우리를 바르게 가르치시고자 했던 은사님들의 노심초사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대학과 대학원 졸업식 축사 중에서 각별한 기억이 되어 내 삶의 고비마다 큰 힘을 발휘하는 당부 말씀들이 있다.
김상협 총장님의 '지성과 야성론’도 있고 88년 美 대선 당시 하버드 출신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듀카키스의 ‘unbelievable people' 등도 특별히 여운을 남기는 축사다. 하버드 졸업시장에서 ’세상에 던져진 여러분들에게 뭔가 확실하고 분명한 방향타를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잘해만 달라고 부탁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이해해 달라‘는 취지로 심금을 울렸던 총장님 말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나만의 '명 축사'다.

지금은 나 자신 역시 대학 총장 직함으로 졸업식을 치르고 있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에는 철없이 놓치고 말았던 은사님의 ‘속울음’이 내포하는 깊은 뜻이 헤아려지는 것 같다.
특별히 세상 일이 더 어려워진 요즈음이고 보니 제자들에게 확실하고 분명한 방향타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일방통행식 단어 몇 마디로 눙치고 있다는 자괴감이 적지 않다.
졸업식을 마치고 학교를 떠나는 제자들이 물가에 내놓는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예전에 내 은사님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제자들을 위한 기도 제목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간절히 간구한다. 한발은 과거에, 나머지 한발은 미래에 의지하고 과거와 미래를 잘 조율하면서 현명함으로 이 어려운 현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매달려보지만 선생의 도리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내려놓기엔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인생은 어차피 기차길 처럼 두 개의 레일 위에서 존재하는 과정인 것을.
한 쪽 레일에서는 세상 밖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일들을 지켜보고 또 다른 레일에서는 깨우치고 배려하고 지탱하고 붙잡는 인간 내면의 존립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만으로는 그 누구도 도리 없음을 받아들이고 삶의 질서에 순응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제군들이여,
이제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걸음마를 시작한 그대들의 졸업을 축하한다.
그러나 푸른 그대들이여,
세속적인 성공 개념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 일이다.
자신의 삶을 운용하는 이는 스스로 밖에 없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용맹스러운 실천과 우주를 품는 지혜로 이 넓디넓은 세계를 한 가슴에 받아 안길 바란다.
자, 시작이다.


(2011. 2. 1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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