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개헌, 지금은 아니다

개헌, 지금은 아니다

대통령에 이어 여당 내 주류 진영이 본격적인 개헌 세몰이에 나서는 모습이다.
35명의 여당 의원들이 모여 개헌 추진의 뜻을 함께 하는 간담회를 열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주체가 누가 됐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한 정치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라는 개헌의지를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 역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됐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녹록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개헌 적기를 놓쳤다는 생각이다.
싸늘한 민심도 어두운 전망에 일조하는 분위기다.

대통령 자신의 임기를 줄이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정권 초기에 개헌을 추진했다면 혹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의 개헌 언급은 정부와 여당의 흑심으로 의심받을 수 밖에 없는 불리한 정황이다.
1948년 첫 헌법이 제정된 이래 9차례에 걸친 개정 과정에서 단 한차례만 빼고는 전부 정략적인 의도로 개정되는 과정을 지금껏 지켜본 셈이니 오죽할까 싶다. 더구나 구제역 피해, 물가폭등, 전세대란 등에 짓눌려 있는 국민들이다. 그런 국민들 귀에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다.
늘 그렇듯 기득권 다툼을 위한 이전투구로 싸잡혀 욕먹기 딱 좋은 구조다.
이 같은 정황은 개헌을 찬성하는 의원들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일 것이다. 설 연휴 동안 지역 민심을 체감했다면 그 공포심(?)은 더 할 것이다. 대부분의 민심이 개헌과 동떨어져 있을 텐데 조만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입장으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터일테니 말이다. 국민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행위에 뭐라고 마땅히 변명할 거리도 별로 없을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깊은 불신도 만만치 않은 장벽 중 하나일 것이다. 국민에게 불신을 받는 의원들이 권력과 관련된 개헌을 이야기하면 외면당하기 쉬울 거라는 한숨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신뢰를 잃어버린 정권을 향한 국민의 냉담함이 얼마나 매몰찬지 앞서의 여러 정권들을 통해 익히 경험한 바다. 그런데도 실패의 역사는 늘 똑같이 반복되기 일쑤니 모를 일이다.
이번에도 익숙한 풍경이 개헌 정국을 둘러싸고 펼쳐지고 있다. 일련의 개헌 주장 논거를 보면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실패를 '반면교사'가 아닌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참여정부 때도 원포인트 개헌 제안이 실패한 적이 있다. 결정적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렸던 민심에 있었다. 당시 청와대나 대통령이 수없이 진정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개헌 추진 배경에 뭔가 있을 거라며 정략적 노림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정계개편 논의에 개입하는 등 정파적으로 비칠 수 있는 행보를 보였던 노 전대통령의 자업자득인 측면도 적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개헌 정국을 주도하는 듯한 언급 보다는 조금 다른 각도로 지난 반 방송 좌담회 기회를 활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통령께서 진정으로 개헌을 국익을 위한 기회로 생각하신다면 이런 내용으로 국민적 동의를 구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 개헌이 국익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아젠다임에도 취임 초에는 다른 일들이 많아서 손댈 수 없었다. 그런데 굉장히 민감한 주제가 되다보니 지금의 내게 굉장히 벅찬 과제가 되어버렸고 자칫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환경에 처하게 됐다. 그래서 다음 정권이 개헌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다음 정권의 개헌 작업에 일조하는 의미로 개헌에 대한 모든 가능성과 찬반 논리 등을 집대성해서 개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침서를 만들어 보겠다"
만약 이런 식의 처세를 보이셨다면 대통령을 향한 정략적이거나 정파적이라는 의구심도 불식시킬 수 있고 또한 마무리할 일들 많은 임기말을 다른 전임 대통령들 보다 훨씬 알차게 보낼 방법이라고 본다. 특히 임기 말 과제를 마무리 못하고 물러나는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개헌의 당위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그 진정성에 신뢰가 실리지 못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진정성을 평가받고 싶다면 다음 정권에서 개헌 추진이 용이할 수 있도록 지금은 필요한 여건을 미리 준비해 놓는 정도로 방향을 재 설정하는 게 현명하다. 혹여라도 전략적인 접근으로 개헌 정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모함에 불과하다.
파국을 각오한다면 모를까.
개헌 정국으로 가뜩이나 지쳐있는 국민들을 흔드는 불행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2011. 2. 7)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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