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공동체에 대한 단상

공동체에 대한 단상


설날 아침, 올 설은 유난히 명절 기분이 난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께서 해 주신 설빔 덕분이었다.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명절엔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채근하시는 바람에 한복을 입었는데 착용감이나 보온성 등 여러 모로 좋은 점이 많았다. (옷고름 매는 법을 몰라 난감해 하다가 아버지께서 전수해 주신 노하우로 해결하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시절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세배를 올리고 세배를 받고, 모처럼 만나는 친척들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나누는 푸짐한 아침 식사 그리고 우리 집안의 설날 공식게임인 이북식 전통 윷놀이가 펼쳐지는 명절 풍경은 예년과 다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윷놀이를 한게임 하고나니 식구들이 전부 없어져 버렸다.
그나마 남아있는 가족들도 각각 개인일정(?)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축구 시합을, 어머니는 안방에서 연속극 재방송을, 나는 건넌방에서 조영남, 김세환, 윤형주, 송창식 등 7080 가수들이 출연한 '세시봉‘을 보느라 각자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고 아들은 아들대로 쪽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우리 집안 풍경이 대한민국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저마다 단일지수로 겉도는, 요즘 명절 풍경이 우리집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촌조카들까지 모였지만 정작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내 아이들은 얼굴을 볼 수 없거나 공식일정이 끝나자 저마다의 세계에 빠져 고립을 자처하거나 제 볼일을 보러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이야말로 현대인의 고독한 초상을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옛날에는...’만을 고집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봤자 뜻대로 될 수도 없다. 어차피 시대적 상황이 변하고 있고 핵가족 사회의 분열이 가속화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삶이 중요시되는 사회로 변해가는 21세기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다.

21세기에 걸맞는 바람직한 가족상을 생각해 보게 된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풍토가 대세이기 때문에 구성원 저마다의 개성 존중을 기본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배려하되 가족이라는 공동체 개념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다.
개인보다는 공동의 힘이 확실히 크다는 점에서 개인 위주로 치닫기만 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 아젠다와 관심사를 가진 가족 공동체의 결집된 힘이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 있어 시너지를 주는 배경이 되도록 지혜를 모으는 일은 더 없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개인 존중만 앞세우다가 공동체를 배제하는 어리석은 선택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국가 공동체를 구성 과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개인들이 저마다의 영역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국가의 기능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고 그것이 곧 국력의 실체가 되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희생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럴 땐 개인적 희생으로 이어지더라도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 모두가 자기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국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동일한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더 없이 중요한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은 방어를 위해서 5천킬로의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로마는 개방을 위하여 15만킬로의 도로를 만들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중국과 로마의 운명을 단적으로 비교한 대목인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울림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세계를 향한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도록 하겠다던 로마의 목표는 로마를 세계의 중심국으로 잇는 ‘‘도로(道路)’가 된 반면, 기득권 수세에 급급했던 중국의 만리장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도로(徒勞)’가 되고 말았다. 합리적인 노력은 건강하고 발전 가능성 있는 가정이나 국가를 만드는 귀한 자질로 활용될 수 있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노력(만리장성 축조를 위해 들어간 그 수많은 노고들을 생각해 보라)의 말로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을 짓건 도로를 만들건 저마다가 처한 위치에서 추구하는 목표점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다만 고유의 영역을 고집하기보다 소통과 대화를 통해 상황과 여건에 맞는 융통성이 일에 성패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지 알아야겠다.

신묘년 한 해 동안 개인의 발전과 독창성을 유지하면서도 가정이나 국가 공통의 지향점을 함께 채워나갈 수 있는 그런 인적자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러기 위해선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부터 연구해 보면 어떨까 싶다.

(2011.2.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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