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생쇼 그만!

 생쇼 그만!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는데 정치권을 향해 거침없이 일갈을 날리는 걸쭉한 입담이 눈에 들어왔다. 탤런트 권해효씨가 그 당사자였는데 꼴불견 형님예산이나 콘크리트 예산, 그리고 선거 때마다 목욕탕 때밀이가 되어 생쇼를 하는 정치인 등을 매섭게 질타하고 있었다.
나름의 대안도 제시했는데 총선이나 대선 후보들이 지역 관련 공약을 내놓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고 그런 공약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는 후보를 뽑아주면 된다는 처방이었다.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아프지만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유의미한 지적이었다.
 
예전엔 그랬다.
선거에 잘못 나섰다가 집안을 거덜 낸 낙선자들의 후일담이 괴담처럼 떠돌았다.
주로 과도한 선거비용이 문제였다.
아버지께서 선거현장에 계실 때니까 30년도 넘은 구닥다리 얘기지만 상가의 조화나 결혼식장의 화환, 환갑잔치부터 돌. 백일에 이르기까지 이를 위한 비용 지출만 해도 상당한 액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당 살림이라고 해도 늘 쪼들릴 수 밖에 없었다. 특별히 관혼상제가 주요 선거운동의 보고였던 시골인지라 대충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쌈지돈까지 동원해 인사치레하는 풍경이 비일비재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정치에 입문하던 16년 전에도 상가나 결혼식장은 여전히 선거운동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장소였다. 무조건 발로 누비던 그 당시 나의 최고 기록은 하루 7번 주례(길일 운운해서 결혼식을 특정일로 몰리게 하는데 일조한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13군데 조문이었다. 말이 7번이고 13번이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다녔나 싶다. 그 살인적인 일정들을 무슨 수로 소화했던 건지 권력의지가 부축인 잠재적 에너지를 빼놓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권해효씨의 지적은 천번 만번 이해되고 공감이 간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사안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거나 배려한 흔적이 미약해서  균형감각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말았다.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우선 득표용 때밀이 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짚고자 한다.
그의 말인 즉, 국회의원이 선거를 앞두고 알량하고 속보이는 득표행위를 못하도록 이를 제도화하라는 건데 이 경우 자기를 알릴 기회가 없는 정치 신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없다. 가뜩이나 경쟁력 측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정치신인들의 입지를 좁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형식적이긴 하지만 선량들이 그나마 4년에 한번은 스스로 낮은 자리를 자처하고 귀를 열어 국민의 요구를 담는 경험을 원천봉쇄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솔직히 우려된다.
 
형님예산이나 지역예산만 해도 그렇다. 물론 이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부시와 레이건이 미 대통령이 되자 텍사스 주립대학과 캘리포니아 지역이 각각 업그레이드되거나 다나까가 일 수상이 되자 그의 고향에 신간센 노선이 들어가고 하는 일들은 어쩌면 국제사회에서조차 통용되는 오랜 관행인지 모른다. 심지어 카다피 고향이 리비아 수도보다 더 화려한 도시의 위용을 갖추고 김일성 출생지가 북한에서 제일 잘 정돈된 곳으로 정평을 얻고 있는 현실로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만일 이런 기회조차 없다면 더 뒤죽박죽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모든 국가예산에 집행 순번을 매길 수도 없는 일이고 또 순번이 정해진다 한들 집행과정에서의 혼란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다.
그래서 형님 예산이 옳지는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국민적 차원에서 순기능이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야기되는 업자와의 결탁이나 부정비리는 결국 민도와 관계있는 일이다. 국민전체의 대오각성 없이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중요하다.
 
어차피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인 만큼 불합리한 부조화는 불가피하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병균을 피할 도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를 잘 다스려서 병균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선거환경도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
일단 선거에 뜻을 두게 되면 지인들에게까지 기본적 예의를 지킬 수 없게 됐다. 결혼식 주례는 물론 축의금이나 조의금까지 철저히 차단하는 선거법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간혹 이를 어기다가 엄격한 선거법 잣대에 걸려 당선이 무효화되는 일도 적지 않다.  솔직히 애경사 현장에 '빈 손'으로 나설 당시의 뻘쭘함만 잘 수습할 수만 있다면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큰 부조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이 심각해서 꼭 짚고 넘어가겠다는 그의 고언은 가슴에 담을 만 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신선한 발상도  매력적이다.  코믹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캐릭터로 익숙한 그에게 이처럼 정제된 시각도 있구나 생각하니까 친밀함이 더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정치 당사자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2011. 8. 31)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29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수식어 유감

 수식어 유감

10.2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차기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의 면모가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진작부터 적지 않은 후보군들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여왔던 터다.
그 중 한나라당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나경원 의원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눈길을 끈다.
‘사학재벌의 딸’이 그것인데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만큼 당사자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별칭일거라는 생각이다. 물론 나의원의 부친이 6개법인 17개학원에 관련돼 있는  건  맞다.
그렇더라도 교육기관인 사학을 재벌기업과 동일시하는 시각은  무리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이사장 혹은 총장으로 사학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쉽사리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단견에서 비롯된 일방적 편견이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평소 이 부분에 대해 언젠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때 마침 나의원 경우도 있고 하니 이 참에 사학재벌 용어의 부당성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의원이나 그 부모님이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학교 운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 경우 사학을 해서 재산가가 된 것이 아니라 재산가이기 때문에 사학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에 해당됐을 거라는 생각이다.
 
사학은 재벌기업과 달리 공익 법인으로 분류된다. 
아무리 재정적으로 풍요로워도 사학의 돈은 단돈 일원도 개인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실제로 사학비리에 연루된 사건을 들여다보면 개인적으로 돈을 착복하거나 유용하다 탈이 난 경우는 많이없다. 대부분 항목을 변경해서 썼다가 문제가 된 사례들이다.
그것만 봐도 사학 재정이 얼마나 엄격한  규정에 속박되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의원 부친이 관여돼 있다는  17개  학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 자산 규모가 얼마가 됐건 개인재산이 아닌 학교 재산일 뿐이다. 이사장이 과외로 가진 재산이 있어서 재벌이라는 단어를 썼는지는 모르되, 학교재산을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사학재벌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맞지 않다.
중고등학교 이사장 직위 역시 마음대로 돈을 운용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재벌’ 운운은 어폐가 있다.
경민학원에도 여러 중고등학교가 있지만 대부분 재정 형편이 어렵다. 특히 국가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어서 이사장 임의대로 유용할 재정적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대부분의 사학이 교육청 지원 없이는 화장실 하나도 제대로 짓지 못하는 실정인데 재벌이라니 언어도단이다.
사학법인의 이사나 감사직도 실상을 보면 돈과는 무관한 일이다.
서로의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사학들이 일종의 품앗이 개념으로 상대를 위한 봉사 차원에서 직함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를 주식 지분으로 이익을 분배하는 모양의 기업 지배형태의 하나와 동일시하는 건 거의 폭력에 가깝다.
혹여 몇 천억의 적립금을 예사로 받고 있는 몇 몇 잘나가는(?) 사학들의 배부른 정황을 전체 사학의 경우와 동일시하는 우를 범할까 걱정이다. 실제로 이들 거대 사학들이 보유한 기금은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대한민국에서 제일 오래되고 명문으로 꼽히는 일부 대학에 국한된 얘기에 불과하다. 적립금을 쌓은 기간만 해도 수십 년인데 신생대학이나 중고등학교 형편과 비교하는 자체가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해하는 일도 많고 오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계속해서 똑같은 방향의 오해가 반복된다면 피해 당사자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실제로 수많은 사학들이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다. 통폐합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고 더 나아가 교육시장 개방에 따른 특단의 대처가 필요한 이 때 '사학재벌'로 규정하는 일은 여러 면에서 득보다 실이  많다 하겠다.  삼성이나 현대 등의  기업과  같은 반열로 국민의 뇌리에  각인되고  재벌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 붙는다는 측면에서   속앓이를 하는 사학 관계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몇 자 적어 봤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나 의원을 소개하는 적절한 수식어를  만들어 봤다.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교육자의 딸 나경원 의원.                      
그녀의  선전을  빈다.
                                   (2011.   8.  29)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虛曠(허광)



虛曠(허광)


                                                                            - 홍문종 -

 

하루종일
머리가 쑤시더니
갑자기
마음이 터져버렸다

비운 것이
아니고
비워
진 것이다

터진가슴
벌렁가슴
솟대가슴
쓰러 내려도

가슴이
아프다
정말
뼈속까지 아프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더한
찢어짐

에 이 세상에
비로 왔는지
알 수 없어
더 지치러지다

그렇게  
피 땀 흘려
발버둥
쳐 보건만

던져진
세상에
버려진
탕아 조차도

머리두고
쉴 곳이 있어
행복해
보이거늘

뜰 太陽
불 商風
떠 오르니
쉴막에 누인다.


흰 옷을 입었나이다
용서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용기를 주소서



  (2011.8.29) 

2011년 8월 27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18억 짜리

18억 짜리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고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붕괴하게 돼 있다.
이 경고가 준엄하게 실행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독재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오던 나라들이 민중 봉기로 속속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너무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거나 절대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 부패하게 되고 종국엔 외면 받는 수순을 밟게 된다는 것을 우리 역시 지난 과거사를 통해 체험한  바 있다. 
체제붕괴로 42년 독재의 막을 내리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리비아 현실도  마찬가지다.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한 시민군이 행방이 묘연한 카다피 일행을 18억 현상금과 함께 맹추격 중이라는 뉴스를 듣고 있다.  아무래도 카다피의 운명이  제 명을 다한 것 같다.  튀니지의 밴 알리나 이집트의 무바라크의 전철을 밟게 될 공산이 크다는 생각이다. 
붕괴한 그 자리에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게 될 텐데  이왕이면 좀 더 합리적인 대안이길 바란다.  소통과 화합으로 오래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숨통을 열어주고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정치의 장으로 말이다. 
벌써부터 다음 타순에 등장할  이름들이 거명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나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등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당사자들은  얼마나 불안한 심경일까  싶다.

중동국가에 있어  왕조의 퇴락과 형성은 그다지 중요한 아젠다가 될 수 없다. 
그 보다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준비와 대안을 갖추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가치다. 
이런 기준점으로 중동의 현실을 판단해 볼 때 통치자의 면면과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정체성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코란과 석유 아닐까 싶다.   결국 코란은 종교적 분야, 석유는 경제적 분야를 대변하고 있는데 이 두 부분만큼은 특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특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
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상대국과의 효율적인 유대관계를 우선 순위로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이  되는  실리적 외교에 주력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특별히 특정 국가 위주의  전문가 양성 학교 설립을 고려해 보는 것도 한 방안이 아닐까 싶다. 
한 나라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경제 사회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만들어 둔다면 비중있는 국력의 보고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런 차원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분야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구태여 따지자면  개인적 생각이긴 하지만 아프리카보다는 중동국 관련 설립이 우선이어야 한다. 
 
카다피의 몰락은 독재에 항거한 민중 봉기의 결과물인 셈이지만 또 다른 관점으로는 패권국인 미국을 비롯한 서방제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희생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몇몇 국가들의 추가 몰락이 예측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중동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과 이를 위한 몸부림은 우연한 과정이 아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스페셜 리스트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사인일 수도 있다.  지나친 비약일 수 있으나 중동의 끝없이 널린 사막이   석유자원 못지않은  엄청난 부로 환치될 수 있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들이  중동국가와의 교류에 있어 기본적으로  넘어야 할 장애가 많은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식민 관계 내지는 종속이론에 의한 부의 약탈 등의 관계로 규정됐던 만큼   국민적 정서가  원활할 리 만무다.  무엇보다   유럽국에 대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중동국들의 정서가  경우에 따라 우리에게 새로운 경쟁력을 부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그  원천적인 반감이 아시아에 위치한 우리에게는 호재가 되는 것이다. 

.... 18억 짜리로  전락한 카다피를 바라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가.
                                 (2011. 8. 27)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가끔씩 숙제처럼 지하철을 탄다.
최소한 지하철 요금이나 지하철 타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이다. 또 그것이 이 땅에서 선생이나 정치인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오늘의 프로젝트(?)는 서울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기였다.
지하철 이용 시 제일 큰 난관은 티켓 구입 과정인데 오늘도 역시나 녹록치 않았다. 3천원짜리 교통카드를 구입하고 부족할 듯 싶어 5천원을 더 충전했더니 어찌된 셈인지 카드 잔액은 5천원뿐이었다. 졸지에 앉은 자리에서 3천원을 날려버린 셈이 됐다.
늦은 시간, 붐비지 않는 지하철에 앉아 느긋한 기분으로 귀가하는 경험은 좀 특별하다.
물론 뉴욕이나 중국에 비해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지하철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사람들 표정을 살피는 재미는 지하철 이용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쏠쏠한 덤이지 싶다. 사람들마다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완전히 생각 없거나 하는 제각각의 표정으로 저마다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를 유추하고 상상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생각이다.
 
한가해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물건 파는 분들의 움직임이 많았다.
맨 처음 등장한 이는 2만원짜리 식칼 세트를 파는 노인이었다. 주로 아주머니 승객들에게 눈을 맞추고 상품을 설명하던 그는 내가 쳐다보자 곧바로 내 앞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열심히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이며 판매에 공을 들였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나마 한 아저씨가 ‘불법행위’라고 일침을 놓자 실랑이 끝에 우리가 앉아있던 칸을 떠나갔다.
두 번째로 우리를 유혹한 이는 접착제를 파는 아저씨였다. 식칼을 파시던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제법 체계적인 홍보술을 구사한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접착제 효능과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곳에서 2천원 받지만 1천원만 받겠다는 그의 선전에 잠시 솔깃해지기도 했으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하나도 팔지 못하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다음 칸으로 옮겨갔다.
이어서 찬송가 소리와 함께 구걸하는 아주머니가 등장했는데 졸고 있던 와중이어서 돈통 용도의 플래스틱 바가지만 얼핏 스쳐간 기억 뿐이다. 이 분 역시도 호응을 얻지 못하기로는 앞서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결말이었다.
기착지인 의정부역이 가까워질 무렵, 키 큰 청년이 나타나 뭔가 적혀있는 종이를 승객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젊은 녀석이 핏기 없는 모습으로 동냥이나 하는 것 같아 죄송하다. 그러나 희귀병에 걸리는 바람에 부모님 수발도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 도저히 살 방도가 없어 이렇게 나왔으니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하소연이었는데 이 청년한테는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까 교통카드 사고 남은 돈을 말없이 건넸다.
그 때 순간적으로 내 시야에 돈을 처리하는 그의 손놀림이 포착됐는데 기분이 영 찝찝했다. 마치 누구에게도 동정의 손길을 받지 못한 딱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것처럼 교묘하고 노련하게 돈을 치우는(?) 솜씨가 불신을 증폭시켰던 것이다.
 
서울역에서 의정부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의 체험이 정제되지 않은 판매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최소한 지하철 안의 이런 모습들이 외국인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에 대한 고민은 마땅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혼잡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승객의 불편을 가중시키지 않는데 무조건 불법행위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마땅히 근절시켜야 할 현상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제제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나 제반 비용 등 실효성 측면에서도 좋은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사회적 책임이나 지하철 관계자 더구나 승객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결코 해결이 간단치 않다는 결론이다. 다만 사회 전체가 더 건강해지고 시민의식이 깨어있게 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해결책을 앞당겨 내놓을 수 있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와 함께 노인이나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위해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지만 아직은 요원한 현실이 문제다. 아무리 유능한 행정가나 정책전문가라도 선뜻 대안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안타까움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내가 목격했던 지하철 모습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미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특히나 지하철 안에서 실적도 없는 불법행위에 목을 멜 수 밖에 없는 삶의 유형이 노인이거나 신체활동에 제약을 받는 이들이 대부분인 현실이기에 사안이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지하철 탐험도 나로 하여금 내 영역 밖의 것들을 배우게 하고 생각할 거리를 줘서 유익했다.
                                (2011. 8. 26)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야구와 인생

 야구와 인생 
흔히들 말한다.
9회말 2아웃부터인 야구가  인생을  닮았다고.
수많은 야구팬들을 사로잡은  추신수 선수의 드라마틱한 야구 인생을 보니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음주운전과 손가락 부상 등의 연이은 불행으로 침체의 늪에 빠졌다   영웅으로 돌아온 추신수 선수가 화제다.  그의 불 뿜는 방망이가 9회 말 경기에서  생애 첫 굿바이 홈런(다음 날 연속 홈런까지)으로   4연패  악몽에서 허덕이던  팀을 구해낸 것이다. 
 아무리 전설적인 최강의 홈런타자도 4%의 타율은 언감생심인   야구의 세계에서  인생을 본다.
그 천하의 추신수 선수의 타율도   3할 7푼 2리를 기록하고 있다.   비단 추 선수 뿐 아니라 베이비 루스나 행크 아론, 왕정치, 장훈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타자 중 그 누구도 통산 타율 3할 대 기록을 뛰어넘은 사람이 없다.  그런   야구 현실이 치열한 경쟁 구도에 놓여있는 우리 인생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노력 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뭔가가 있는 느낌이다. 
야구와 인생을 닮은꼴로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무상급식 주민투표戰에서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오세훈 시장은  야구선수로 따지자면 추신수를 능가하는 능력과 운을 겸비한 강타자다.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오세훈 법안’으로 명성을 날리고 당원도 아니면서 한나라당 공천경쟁 구도에 뛰어들어  서울시장 자리를 거머쥐더니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재선의 영광까지 누린 그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스타플레이어라 해도 타율 4할의 벽을 넘지 못하듯 정치적 기린아라고 해도 인생의 굴곡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눈물로 읍소하며 시장직까지 걸고 그토록  매진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을 온전히 얻는데는 실패하고 만 오 시장의 현실이 제대로  입증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오시장 자신도 이런 결과를 예상 못했던 건 아니었던 듯싶다. 다만 어차피 민주당에 장악된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승부수를 던지고 출구 선택의  빌미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의 아이콘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25%대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지금이야말로 오 시장의 정치인생에서 최고의 시련기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단순한  깜짝  추위로  끝나게  될  것  같지도 않다. 빙하기의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 혹독한 여정이 그를  짓누르고 있을 게 뻔하다. 
자신의 생각대로 난국을 뚫고 또  다시  비상하기 위해 냉정한 현실 인식이 급선무다.
 한나라당과의 연을 유지할  생각이라면  어떤 형태든  당과의 교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라는  조언을 주고 싶다. 또 개인플레이보다는 팀플레이에   주파수를 맞추고 대차대조표를  세심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그 자신을 위한  정치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면, 이번 ‘무상급식 전쟁’이 정치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평생의 신념에서 비롯된 가치였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자신은 물론 국민이 믿게 하는데 성공한다면 오세훈 시장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으로 본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보수가 됐건 진보가 됐건 지금은 ‘울트라의 가치’가 힘을 쓸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일로 울트라 보수로 자리매김 됐을 오 시장으로선 정치적 진로에  걸림돌을 하나 더  늘린 건지도  모른다.
포용력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다. 물론 내상이 심한 지금으로선 무엇부터 수습해야 할지 혼란 그 자체일 테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새롭게 추스르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운도 좋고 기회도 잘 맞아 떨어졌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풍찬노숙을 각오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르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기회로  삼도록 하라.

야구도 인생도  모든 결과물은  결국  저마다의  역량과  몫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에랴.
                              (2011.8.25)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구름 향연

 구름 향연

                                                                              -홍문종-

하늘 구름
햇님을 초대해
가을 잔치

햇님의 Promenade
구름 손을 내밀고
경쾌한 step

하양 물러가고
새 하양 등장하고
회색 & 검정 밀려들고

날이 기울자
번개 질투
방울비 훼방

하늘 빛 기지개
Aurora 섬광
붉게 지피는 하늘

Joy의 humming 속으로
Sunny는 뒷짐 걸음
하늘 향연은 막내리고...
 
  (2011. 8. 24)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카노사의 굴욕


카노사의 굴욕 

고등학교 때 독일 왕 하인리히 4세가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 굴복하고 사면을 구했던  세계 역사를 공부한 기억이 있다.  이른 바 '카노사의 굴욕'으로,  서임권 투쟁이 정점을 이루던  1076년을  배경으로 한   사건이다. 특히   교황 앞에 무릎을 꿇은 왕의 모습을 담은  교과서  삽화가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당시로서는  납득이 안가는 대목이었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 일이지 왕까지 되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담당 선생님은 “저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왕의 자리이고 그 자리가 주는 향연이다”라는 말씀으로 우리들의 이해를 도우셨는데 자리가 됐건 권력이 됐건 그로 인한 부가급부를 맛 본 사람일수록 그것을 위해서 최소한의 자긍심도 버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읍소하고’
카노사의 굴욕을 연상시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15분 퍼포먼스’가  화제가 됐던 하루였다.
주민투표 결과 투표율이 미달(33.3% 이하) 되거나 무상급식 안이 통과되면 서울시장직을 그만두겠다는 오시장의 파격선언이 정국을 들끓게 한 것이다.  
초임 때만 해도 서울시장 직무를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으로 그를 지켜봤었다. 그런데 재선 임기 시작부터는  상황이 꼬이는 조짐이었다.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에서  시장을 상대로  날린 견제구가   원인이었던 듯 싶다. 
그러더니 급기야  '자신의 결정이 이 나라에 지속가능한 복지와 참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데 한 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서울시장직을 담보로 시민들에게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는 초유의 일을 벌이고 말았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오시장이   자신을 서울시장 꽃가마에 태워줬던  '오세훈 선거법'에 지나치게 경도돼     시장직무를 볼모로 삼은  자신의 선택에  아무런   명분이 없는 현실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그의 성마름이  공감보다는   불신의  단초가 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 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회의원 시절 상임위 활동을 함께 했고 옆자리 지기의 인연을 나누기도 했던 나로서는 오시장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귀족스러운 용모와 정갈한 말솜씨로 뛰어난 설득력을 발휘하던 실력있고 합리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만큼 오죽하면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싶기도 하지만 공인으로서 지나치지 않았나 싶어 걱정이다.
 
이제는 무상급식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오시장의 황당하기까지 한 행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가 더 큰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정말 무상급식 이슈가 잠룡으로 평가받는 오 시장에게 있어 서울시의 산적한 문제를 제치는 최우선 순위의 가치였는지, 시장자리를 내던질 만큼 절박하고 심각한 현안거리였는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 문제였는지 여부를 두고 좀 더 심사숙고 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또한 번번한 태클로 앞길을 가로막는 야당의 공세가 아무리 아팠어도 그렇게 빨리 손을 들고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어렵겠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내심을 보여줬어야 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장애 앞에서 이를 극복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내공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 시장은 적은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하고 이해 불가의 계산표를 들이미는 조급함으로 스스로의 무기력을 드러낸 셈이다.
 
처음부터 많은 일들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로 몰고 간 자체가 개인적 과욕의 산물이었다.
 단정하기 이르지만 낙관하기 어려운 주민투표 결과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코 앞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마당이다.
물론 ‘사퇴’라는 배수진으로, 주민투표 이슈를 전환(무상급식 찬반을 묻는 정책투표에서 오세훈 신임여부를 묻는 정치투표로 바꾼)시킨 성과로 보면 오시장 개인으로서는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라는 셈법을 제시하는  언론이 보이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승부수 때문에 서울시민은 물론 당과 동료를 볼모로 삼았다는 지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오시장의 정치적 입지는  결코 플러스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정황들이 족쇄가 되어  그의 미래 구속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오 시장을 공천해 서울시장으로 만든  한나라당으로서도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좀 해야겠다.
주민투표 이후 예상되는 후폭풍들에 대한 수습책 마련에 골머리 아프게 생겼다.  
우선 당장 선거판에서 치룰 대가가 가장 아픈 매가 될   것  같다. 

‘무상급식이  저에게는 앞으로 시정을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어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그리고 이 이슈를 저의 정치적 열망과 일직선상에 놓고 생각해보기도 했었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시민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받들고 정성을 다해 섬기겠다는 게 저의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바꾼 것도 없고 변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잠시나마 무상급식 이슈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시장직을 걸겠다고 말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부디 저의 아둔함을 용서하시고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임기동안 성실히 시장직무를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혹여 이런  담화문이 필요한 현실이 도래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오세훈시장을 아직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전직 동료의원으로서, 오세훈시장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게도 오시장에게도 긍정적 사인의 퇴로가 활짝 열릴 수 있기를.
                              (2011. 8.23)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2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반 달

 반 달

                                                             -홍문종-


 영접된 당신
 선명하고 눈부시게
 높고 푸른 하늘에

 당신은
 채우려는 듯
 아니면 비우려는 듯

 도도한 미소
 절제된 감미로움으로
 수줍은 몸동작

 황홀해서
 자세히 보자꾸나
 가로누인 머리

 기쁨의 노래를
 귀에 / 가슴에
 Siren으로 쏟아

 노닐리라
 은하마차 빌려다가
 별나라 구름나라

 당신의
 콧노래 쫓아
 춤추며 살리라

  (2011.08.22) 

2011년 8월 20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입보다 귀

입보다 귀
한 지인이 진실성을 주제로 한 대화 도중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성토하고 나섰다.청문회장에서의 조회장 모습은 코칭에 의한 이미지 연출에 불과하다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잠시 발톱을 감춘 재벌의 위선에  온 국민들이 속은 거라며   핏대를 올렸다.  그러면서  만일 한진중공업을 문 닫으라고 일갈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판단을 했다.
사전 코치를 받아 청문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식을 얻고자 한 노력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청문회를 대비해 전문가의 조력을 구하는 것이나 재판을 앞두고 변호사를 찾는 행위나 다를 바 없는데  유독 재벌이라서  특단의 잣대로 정죄하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상대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화술이 진리나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닌가.
 
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다양한 코치 기회를 구하는 건  삶의 질을 위한 적극적 노력으로 해석되는 게 맞다. 
특히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코치 기능은  개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오제이 심슨이 ‘살인죄’를 면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변호인단의 유능한 코치 덕분이었다. 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과도한 변호사 비용 때문에 파산에 이르는 극한 대가가 따르기는 했지만) 또 잔 딜로리안처럼 캐릭터 코치까지 영입해서 치밀한 설정으로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여 무죄방면이 된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자본과 코칭의 환상적인 결합이 맹위를 떨친 사례들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이 만들어낸 상황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가의 편을 들 수 밖에 없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이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일 적나라하고 세부적인  코칭 대상은   대통령 후보다. 
특히 선거 기간에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말하기는 물론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화장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코치들이 달라붙어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교정한다. 그러면 후보는 마치 말 잘 듣는 아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코칭 코멘트에 순응하는 모습이다.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상황 모드가 달라진다고 한다.  당선 순간부터 3개월 이내에 후보의 5감이 오작동 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후보시절만 해도 ‘사람’이었는데 대통령이 되면 거의 ‘하나님’ 경지가 되어 누구의 ‘코치’는 물론 감독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국민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던 후보 시절 기억을 깡그리 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선호하면서   눈과 귀가 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누구나 짐작하는 대로다.
 
이는 대통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선거전에 나선 후보는 물론이고 청문회장에 나서야 하거나 법정에 서야 하거나 하는 등의 목적을 앞두고 있을 때는 양처럼 순하게 전문가들의 코칭에 순응하다가도 목적을 이룬 순간부터는 언제 그랬냐싶게 그동안의 조력은 안중에 없이 제멋대로가 되기 일쑤다. 그야말로 화장실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른 인심을 보이는 것이다. 특히 높고 힘이 센 자리일수록 그런 경우가 심하게 두드러지는데 인간의 한계로 치부하고 말기엔 파장이 만만치 않다.
목표 달성의 성취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 비극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니 하는 말이다.
목표 달성이 ‘고생 끝 행복 시작’ 등 단순명제 충족에 그치기보다 추락의 또다른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역사와 전임자들이 온몸으로 생중계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막상 그 자리에 들어서면 대부분 그 단순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수감생활을 하던 두 전직 대통령이 당시 법정에서 처음 만나 나눈 대화가 공개됐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먼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그 구치소에서는 간수들이 계란후라이를 해주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 전대통령이 “안준다”고 하자 전 전대통령도 “나도 안주더구먼" 했다는 것이다.
코미디 같은 간단한 내용이지만 생각의 여지가 많은 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두 분 대통령이 처음부터 이렇게 원초적인 심정으로 대통령 직무에 임했다면 더 좋은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듣는 귀라도 제대로  열어두었더라면...
 
'코치를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코치를 안 받는 것이 문제다.'
아마도 구치소에 있던 두 전직 대통령으로 하여금  가장  뼈아픈  회한에 잠기게   만든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2011. 8. 19)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19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한예슬과 김진숙



한예슬과 김진숙


어느 핸가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지고 영화 촬영현장 몇 곳을 잠행하며 구경한 경험이 있다.  
그 때의 일로   지금은 없어진 일영역을 배경으로 촬영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엑스트라들이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반복해서 리허설에 임하고  있었다.  현장엔  욕설에 가까운 반말이 인격 모독 수준으로  고성 속에 난무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문외한이어서인지 내가 보기엔 별 무리없어 보이는 장면도 감독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여러 번의 ‘컷’과 ‘액션’이 수없는 동일 동작을 주문하며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데 틀 좋은 밴과 함께 주연배우가 도착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동일한 장면을 몇 번이고 되풀이시키며 ‘황제’처럼 군림하던 감독이 시간 없으니까 한 번에 끝내자며 주연배우의 심기를 살피는 ‘이방’으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주연배우가 감독에게 작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자 조금 전까지 조연급과 엑스트라들이 욕먹어 가며 반복해서 연습하던 장면들이 대번에 바뀌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그렇게 한마디 말로 많은 이들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고 표표히 그 자리를 떠나는 주연배우의 뒷모습이 내게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낙선 직후 인생의 비정함을 곱씹던 터라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연배우가 아니면 안 되는 건 영화판이나 세상사나 다를 바 없다며 비감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비감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직접 만든 영화 한편 정도는 소장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배우 ‘한예슬 파동’이 잊혀진 과거사까지 떠올리게 했다.  
온갖  소문을 양산했던  그녀의 ‘쿠데타’는 3일 천하도 못 채우고 막을 내렸다. 
그녀의 항복과 사과로  일단은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당초 의도나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드라마 제작환경의 병폐를 이슈화하는 데는 그나마 그녀의 조연 역할이  순기능을 발휘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한예슬 개인에게는 득보다 실을 안기는 결과로 자리매김 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촬영거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을 생략하는 바람에 명분을 잃은 게 가장 큰 실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가 불성실과 무책임이 전부인 단순 무단이탈인지 대한민국 문화예술 진흥 발전을 위한 고육지책인지조차 분명히 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좀 더 명확히 구체화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랬다면 최소한 동료 배우나 스텝들이 냉소적인 반응으로 그녀를 고립시키는 고약한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비슷한 관점으로 무상급식 파동의 한가운데 서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보고 있다.
급기야 중앙당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무상급식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선전전은 정당 간 기싸움 양상으로 번지는  중이다.  집무실 대신 길거리를 선택한 그를 상대로  잘잘못 여부를 가리자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선택이 ‘한예슬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될까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다.
오시장은 잠재적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만큼   사안마다 최소한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 해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주민투표  건만 해도   살신성인의 각오로 이 시대의 중요한 보수이념을 전파하겠다는 사명감의 발로인 건지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염두에 둔 정략적인 발상인 건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간과됐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한예슬과 서울시장 오세훈은 실책을 범했다. 
불거진 현안에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제대로 입힐 줄 몰랐다.
오시장의 경우 차라리 “대통령이 되고 싶다. 언제일지 모르지만”하는 소신을 보였다면 무상급식 국면에서 상당히 탄력을 받을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다.  
한예슬도 본인의 입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밝혔더라면 좀 더 쉬운 화해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진 중공업 사태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인 두 사람- 김진숙, 조남호-은  특별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명하게 알고 있고 있어서 반대하는 쪽이  더 극렬해진 측면이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했던 점은 높이 살만하다는 생각이다.
 오랜 기간 클레인에 매달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벌인 김진숙씨의 사투는 숙연해질 정도다.    
온 몸으로 부딪히면서  일관되게 외쳤고 결국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들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그녀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확실하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외쳤던 그녀의 노고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청문회에 임하면서 예비답안까지 준비하는 등 본인의 영역을 지키려 애쓰던 조남호 사장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부나 회사를 지키려는 자본가로서의 모습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줬다. 분명하게 자기가 지켜야 할 몫과 그 몫을 위해 철저했던 그의 처신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중학생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던 YS는 꿈을 키우며 자신의 뜻을 이룬 대표적 인물이다. DJ 역시 몇 번의 고배와 고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하고 싶다는 집념을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때부터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대통령을 목표로 하는 속내를 감춘 적이 없다. 끊임없이 설파하다 드디어 대통령이 된 것이다.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물론 자신의 숨겨진 아젠다를  드러내고 싶지 않고   화려하게 포장된 겉 취지만 전달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면에 제시된 이유보다는 숨겨진 부분에 호기심을 보이며 은닉된 무엇인가를 들춰내기 위해 에너지 쓰기를 망설이지 않는 것  역시도 인간의 본능 영역이다. 

갈수록 상호간  사안에 대한 이해가  빨라지고 있다.  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반대가  더 극렬해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찬성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자기 문제가 아니면 그다지 관심이 없다. 골머리를 써가며 성실하게 들어줄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약간은 조악해보이고 또 어찌보면 무모해보이기도 하지만   자기 아젠다에  대한 솔직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어야겠다.  특히 정치인에게  있어서는  정말 중요한 요소다.
                              (2011. 8. 19)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