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0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왕도는 찾으면 된다

왕도는 찾으면 된다
 
그의 삶은 진정 아름다웠다.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 선생의 부음을 뒤늦게 접하는 순간 내 의식을 지배한 생각이다. 어려웠던 시절,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참고서로 우리들의 영어 학습을 위해 애쓰셨던 선생의 노고를 되새기노라니 감사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숙연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는 바이다.   
 
7,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성문종합영어'(내가 공부할 때만 해도  ‘정통종합영어’였다)란 이름의 참고서는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1967년 첫 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1000만권 정도가 팔렸다고 하니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명저 중 명저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영어의 바이블이라는 닉네임으로 정상을 지켜 온 명성에 걸맞게 한 시대를 풍미한  책이었다. 실제로 당시 대학입학 관문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이 책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고의 교재라는 인식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비교적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내 영어의 근간도 따지고 보면 중학교 당시 ‘practical English’(故장영희 교수의 부친인 故 장왕록 교수님이 저자)를 거쳐 고등학교 때 연을 맺은 ‘성문종합영어’가 미친 영향이 크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달리 영어를 공부할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지방에서 올라온 친구 중에는 테입 리코더조차 낯설어 하는 경우가 많았던 시절의 얘기다.
우리들의 영어 교육에 성문종합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학생이면 누구나 성문종합영어 책 한권씩은 다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나만 해도 집에 한 권, 학교에 한 권, 휴대용 한 권 해서 총 3권을 갖고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특히 휴대용 책은 챕터 별로 분해해서 부피를 줄여 늘 끼고 다니다시피 했다. 종로 2가 경복학원인가에서 저자의 강의를 듣기도 했는데 영어가 절로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10여년 미국 생활에서 영어가 헛갈리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꺼내들게 되던 책도 바로 이 책이었다.
성문종합영어의 압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문학, 철학, 정치 등의 장르를 망라하며 제시되는 ‘예문’의 화려함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성문종합영어가 주옥같은 명문들을 내 기억에 입력시킨 매개체가 됐다는 데 더 깊은 의미를 두게 되는 것 같다.
저 유명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나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로 시작되는 케네디 미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 일부는 깊이 각인돼 지금도 전율이 느껴질 만큼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송 선생은 자신의 스테디셀러에서  ‘There is no royal road in mastering English’(영어에는 왕도가 없다)를 비롯 Rome was not built in a day(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등의 경구로 영어 정복의 길이 길고 험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 당시 목표였던 하버드 대학 입학이라는 설정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을 더 아쉽고 절실하게 키웠던 것 같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절대로 영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를 다졌었다.
오십을 훌쩍 넘긴 이 시점의 내가 세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고 나는 또 얼마나 열심히 매진하고 있는 걸까? 영어에 대한 도전과 집착을 통해 일정정도 성과를 거뒀던 것처럼 지금의 내가 매달리고 있는 주제 역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걸까?
지금 이 순간  나의 까까머리 시절을 사로잡았던 꿈과 희망을 대체하고 있는 새로운 나의 ‘현실’을 점검한 끝에 
도달한 나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꿈이 있었고 목표가 있었고 도달할 방법이 있었으니 행복했던 그 때처럼 지금 역시 꿈과 목표, 열성은 물론 삶의 경륜이 덤으로 준 노하우까지 있으니  그 때 보다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비록 일면식도 없지만 오래 전 나의 꿈과 목표를 성취하는데 동반자가 돼 주었던 고인에게 감사드린다. 
더불어  나의 새로운 꿈과 목표를 확인하는 이 밤이다.  
왕도는  찾으면 된다. 
전진, 전진....
                         (2011. 9. 30)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2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이번 만큼은

이번 만큼은

후보 간 난타전이 줄을 잇는 걸 보니 서울시장 선거가 본격적인 선거전 모드로 진입한 분위기다. 단 한사람만의 승자를 전제로 한 생존경쟁의 치열한 사투가 가장 원시적 형태에 근접한 상황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나도 선거를 치러봤지만 선거의 묘미는 촌각을 다투며 승부를 내야 하는 특성 상 밀도 있는 긴장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시시각각 전개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순간의 긴박감을 어떤 식으로 대응해가며 풀어내느냐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거전에 나선 후보의 잠깐의 실수가 치명타로 이어지는 상황이 드물지 않은 것도 선거판의 이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도 대수롭지 않은 방심으로 공들여 준비한 스스로의 정치인생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정치지망생들의 아픈 사연이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정서가  ‘비정한 살벌함’이다. 
상대를 이겨야 비로소 자기 몫을 챙길 수 있는 생존법칙이 가장 정밀하게 적용되는 판이니만큼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거기다 상대의 방심을 ‘확대재생산하고 가공까지 하는 솜씨’를 갖춘 상대를 만난다면 으스스한 일이다. 비정한 정치판의 진수를 다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만 해도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다투는 후보끼리의 난타전이 간단치 않은 기류를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박원순 후보가 재벌후원금이나 개인 재산 등의 문제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가 싶더니 이번에는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대형사고(?)로 이목을 모으고 있다.
홍보를 위해 장애 시설의 12세 장애우를 발가벗겨 목욕시키는 장면을 여과없이 언론에 노출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가 본데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나 후보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조짐이다. 급기야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그녀를 인권위에 고발했다는 소식이고 보면 나 후보의 불운이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 것 같지 않다. 장애인 인권 침해사례 고발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도가니’의 흥행도 나 후보에게는 복병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 처지가 곤혹스럽게 됐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비슷한 처지였던 정동영 당시 민주당 후보를 격렬하게 성토했던 지라 이번에는 어떤 입장을 들고 나올지를 궁금해 하는 언론의 호기심 앞에서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물론 아직은 선거 초반인 만큼 앞으로 또 어떤 후보가 어떤 일로 후보검증의 촘촘한 그물코에 걸려 곤욕을 치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인성의 치명적 결함이 아닌)후보의 실수가 서울시 수장을 선택하는 기준의 전부가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유권자들 태반이 후보를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투표에 임하고 있다. 자신의 뜻을 대신해 일을 맡길 사람을 선택하는데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조차 알려 하지 않는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감안할 때 그것은 유권자의 결격사유다. 공적 참여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을 유기하는 것으로 후진 정치 현실을 정치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명백한 사유가 된다. 최소한 스스로가 정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주체인 현실을 의식한다면 많은 부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국민들이 정치를 비난하기는 해도 실질적으로 정치를 업그레이드 시키거나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만은 대한민국 대표인 서울의 수장에 누가 적합한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겠다. 좀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조사하고 의견을 만드는 노력 등으로 유권자의 의무를 다하는 선거로 만들어야 한다. 명확한 의사를 반영한 투표로, 내년 총선국면에서 정치권이 유권자의 바라는 바를 오판하지 않도록 시그널을 보내는 것도 정치발전의 시금석을 놓는 길이다.
특히 할 일이 많은 서울시장에는 대권을 꿈꾸는 사람보다 착실하게 서울시정에 집중할 수 있는 일꾼이 필요한 측면을 감안했으면 한다. 서울시장 직을 통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익보다 서울시민의 이해관계에 더 민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노력도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다.
정치권 역시 대오각성을 통해 거듭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을 느껴야할 때다 .
여당이 됐건 야당이 됐건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당의 말로는 뻔하다.
당리당략보다는 국민의 뜻을 살펴야 하는 의미를 깊이 새겨보도록.
 
“두려움은 직면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
최근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자극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마지막 대사다. 야구 감독도 인용하고 우리 교회 목사님도 인용하고 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도 인용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거기에 나도 한마디 보태고 싶다.
“국민은 정치를 극복의 대상으로만이 아니라 계산도 해야한다고 말이다.  그래야만 정치가 한단계 엎그레이드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의 주체가 되고 책임도 지겠다는 각오로 유권자 권리 행사에 신중을 기하는 국민이 됩시다” 
                            (2011. 9. 28)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27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지금은 결단할 때

지금은 결단할 때
세계경제가 다시 침울 모드다.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이로 인한 시장 불안은 도통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포퓰리즘의 진수를 보여준 그리스 위기가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세계 경제의 롤러코스터를 초래하고 이로 인한 일종의 도미노현상으로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정황과 무관하지 않은 현실이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불안정성 해소를 위해 새로운 경제질서 구축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선 세계 경제가 한번은 뒤집혀야 한다거나 심지어 중국의 위안화를 국제 통화로 써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1조가 넘는 달러 보유에도 불구하고 달러를 풀어 위기 국면을 타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중국이나 경기침체로 제 코가 석자인 일본 등에 기댈 여지가 없고 정국 불안 때문에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 중동의 오일머니 역시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당분간은 현재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빠진 프랑스보다 우리나라가 부도위험이 더 크다는 외신 보도가 충격적이다. 문제는 미국이나 유럽이 일으켰는데 발등의 불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에 떨어지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주가와 통화가치 급락으로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출 위주인 국내산업의 수익구조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탓도 있지만 신흥시장을 신뢰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의 편견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신흥국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서 선진국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주가나 통화가치 하락을 주도하는 바람에 선진국의 경제 위기가 신흥시장 자금유출을 촉발시키는 촉매제로 작동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은행장을 비롯 국회의원, 재벌그룹 회장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직업군의 전 현직 인사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예외없이  우리 경제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난무하는 백가쟁명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해결책이 별로 없다는 비관적 결론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7,80년대처럼 허리띠 졸라맨 새마을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독자적 해결방안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어서 시름만 깊어지는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리먼 브라더스나 이번 그리스 사태에서 경험했듯 이제 경제도 더 이상 독자적  차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게 됐다.  나 하나, 내 나라만 잘 꾸려나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국가가 한 묶음인  경제 공동 운명체로 가동해야 비로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할 시점이 된 것이다.
결국은 이 어려운 국면을 어떻게 버티고 지켜내느냐가 관건일 텐데.
 
문득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오기가 몇 십 년 전에 배웠던  경제원론 1, 2  책장의  해묵은  먼지를 털게 했다.  거칠기는 하지만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우리의 경제현실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고민에  용기를  줬다.
우선은 상황논리에 따른 세부적인 매뉴얼의 효용성을   생각해냈다. 
1:1 맞춤식으로 경제상황과 대상에 따라 최소한 서너 개의 대안을 매뉴얼로 준비해 배포하는 방식은  어떨까 싶다.  상황에 따라 중구난방인 개인적 대처보다 집단 매뉴얼을 이용한 방향 제시가 바람직하다는 결론이다. 예를 들어 재벌, 중소기업, 샐러리맨, 젊은이 등 계층별로 처한 상황이나 필요로 하는 요건이 서로 다른 상황을 감안해 몇 가지 경우의 수에 맞춘 매뉴얼을 제공해서 평소에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경제현실에 대한 정부와 국민 판단의 엇박자는 그 어떤 상황이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데도 자꾸 괜찮다고 감쌀게 아니라 현실에 맞는 정책전환으로 대처하는 정부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자본통제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판이다.
그것은 다음 정권의 리더와 정부가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의제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위기의식으로 주위를 환기할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 식의 노력으로 나라 전체를 이끌지 않으면 가중된 세계 경제 혼란 속에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우리 경제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임제를 선택하고 있는 우리의 대통령제하에서는 어차피 재선 보장이 안되는 직책이다.
환율이나 증시를 진단할 수 있는 구체적 데이터가 없어도 솔직한 진단과 대안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음 정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준다면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결단이 필요한 때다.
국민의식이 변해야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달라지지 않고 퇴로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이 내게 주어진 전부라고 해도 현 상황에서 더 자제하고 견뎌야 더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낀 세대의 일원으로 얘기하자면 배고픔이 도처에 널려있던 과거에 비해 경제적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아무리 추억이 아름답다고 해도 누구도 배고픈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삶 역시 이전의 것에 비해 더 잘 누리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니까.
돌아보면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였던 인생의 선물 중에서 상당 부분이 노력에 비해 과하게 주어졌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 일부를 대한민국의 미래사회를 위해 포기해야 한다면 마땅히 포기할 수 있다는 각오를 국민 전체가 할 수 있어야겠다.       
개인의 작은 결단이 때로는  대한민국의  전부를 지탱시키는 거대한 힘이 되기도 한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비록 경제에  대한  '개론' 수준에 불과한 사설이지만    대한민국  전체 안녕에 기여하고 싶은   애국심의   발로로  평가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2011. 9. 27)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2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열망의 힘

열망의 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품었던 핵보유에 대한 열망은 참으로 컸던 것 같다.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코드명 ‘890’)를 가동시키다 돌아가셨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움직임을 담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당시 보고서를 통해 공개된 사실들이다.  그 중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위협과 힘의 논리에 지배받던 국제사회 분위기가 박 전대통령의 핵무기 개발의지를 자극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분석한  상황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약소국 리더의 고독한 노심초사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핵을 갖고자 했던 박 전 대통령의 ‘시도’들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뒤를 이은 5공의  핵 포기선언과 6공의 비핵선언 등도 한 몫 했다.   원자력 발전 시설에 대한 달콤한 기대감이 함께 있었다.  그렇게  우리를 핵무기 불임국 붙박이로  못박는  백기투항이   서서히 진행됐다.
 
그 때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꿈을 이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불발로 그친 박 전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핵무기로 자주국방을 실현해서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의 선택은  성공했다면  분명 우리에게  획기적인  기회가 됐을 것이다.    특히 핵의 실제적인 활용보다는 전시효과만으로도 상당한 전쟁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단언컨대 우리의 남북 대치 상황에도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커지는 것 같다.

실제로 지금까지 우리가 전쟁 등 위기 국면에 처하게 된  과정만 해도  대부분  미국과의 관계가 원인이었던  적이 많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방국에 등 돌리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른바 국제사회의 냉혹함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 
가쓰라-태프라 밀약으로 일제 강점기를 초래하거나 얄타회담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일본 대신 한반도 분단을 주도한 것도 미국이었다. 6.25 전쟁을 부른 에치슨라인이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에 단초를 제공한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불안한  우리의   처지나  초긴장 국면일 수 밖에 없는 남북관계의 특수상황을 배려하지 않았던 미국의 홀대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제일  많이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응분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박 전대통령의 시해배경에 미국을 연관시킨 각종 루머들이 나름의 생명력을 유지하며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해를 당하고 결국 미국의 의도대로 대한민국 비핵화가 실현됐다는  소문이   잦아들 기미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누누이 얘기했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철저하게 이타적 입장을 고수하는 건 누구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국가 간 정치 행위에 있어서는 이타적 경지는커녕 조금 치의 손해를 감수할 의사가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오로지 정글의 법칙만이 제대로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특정한 과거의 인연조차도 현실적인 관계에서 참고사항 정도면 몰라도  사실을 가르는  결정적 기능을 기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기준이고 잊지 말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과거 우방국으로서 장제석 총통과 함께 나눈 우호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공산국가인 중국을 선택하기 위해 대만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경험을 상기하면 그 답이 명료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무기로 상징되는 자주국방 의지는 높이 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무엇보다 소멸직전의 위기 국면에서 핵무기 하나로 현란하게 국제무대를 주무르는  솜씨는  자주국방의 프리미엄을 활용한 좋은 본보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소고기 파동이나 FTA 등 사회적 갈등국면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야겠다.  
좀 더 절박한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주어진  생존과 미래를 준비하다보면 의외로  문제해결이 빨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 전대통령이 품었던 미완의 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다.
그가 품었던 꿈과 희망이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영향력으로  우리의 가슴을 점령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2011. 9. 26)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2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할만해?"

“할만해?”
 
이춘구 전 의원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와병중인 근황을 듣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부음을 접하게 되니 서운함이 크다.
 고인하고 정치를 함께 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 못지않은 인연으로  내게는 각별하게 기억되는 분이다.
1980년대 언제였던가 (자식자랑에 ‘고슴도치’가 되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우리 집을 방문한 고인을 처음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정치를 시작하려는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배려가 담긴 자리였던 것 같다)
그 때 그는 내게 정치를 해보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졌고 나는 정치가 민생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은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드렸다.
십수년이 지난 1995년에 의정부 지구당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하게 됐는데 당대표를 맡고 있던 고인이 내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후에 알았다. 한 번도 지구당 위원장 선정에 개입한 적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내 거취를 거론하시더라는 얘기를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DR이 내게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15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들어왔을 때는 그는 이미 은퇴를 선언하고 정계를 떠난 뒤였다.    은퇴한 뒤로는 여의도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자리에서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그를  만났다.   
그는 그 때 내게  또 물었다.
“할만 해? 내가 멀쩡한 사람 정치판에 끌어들여 고생시키는 건 아닌가?”  라고.
하지만 나는  "네. 정치를 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가슴 속에만 담았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강직과 절제로 무장돼 있는 딱딱한 외연과는 다르게  깊은 속정도 나눌 줄 아는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것이  개인적으로 그와 나눈  마지막   인연이 되었다. 

 역시 사람의 판단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온 세상이 평생을 소신과 신의를 지키며 청렴하게 삶을 가꾸다 간 그의 삶을 아쉬워하며 그를 거목으로 대접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평생을 원칙주의자로 살았고 정실에 치우치는 법이 없었던  고인은   정부나 당의 요직에 있으면서도  사적인 청탁이나 민원을 들어주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인간의  이름 석 자를 대우하는 가장 기초적  근간은  그가  지나온 삶의 궤적에 대한 정확한 값 매김이 아닐까 싶다. 사람에 대한 평판에 뿌린 만큼 돌려주는 가장 정직한 셈법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인은 대접을 받을 만큼 충분히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길을 걷다가 취사선택에 실패한 많은 이들이 남긴 행적만 봐도 의연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그의 삶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것 같다.
앞으로 더 혹독하고 각박한 생존경쟁을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남다른 감회로 고인의 삶을 되새기게 된다. 무엇보다 (정치가) 할만하냐고 묻던   그의 마지막 질문은   나태해지려는 나를 다잡는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은 마무리가  어려운 정치판에서 본보기가 되는 삶으로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정신적 유산을 잘 챙겨야겠다. 특히 자기 손 안에 든 것을 과감히 놓을 줄 아는 결단력은 정치를 하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는 만큼 소중한 자원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의 삶을 본받아야겠다.

편히 쉬소서. 명복을 빕니다.
                           (2011. 9. 21)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2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눈물을 닦아주는

눈물을 닦아주는
또 사고가 터졌다.
정국이 출렁이고 있다.  저축은행이  사건의 중심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다. 
토마토나 제일 등 7곳의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추가 영업정지 조치가 이뤄졌다. 
물방울 다이어, 박태규 소망교회 장로, 대통령 측근의  출국금지 그리고 검찰 소환,  
저축은행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들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내용의  검찰 수사가  이들을 옭죄는 형국이다.  

한숨과 통곡에 엉긴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날벼락을 맞고 피눈물을 쏟고 있는 저들의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진다. 
크게 탐욕을 보인 것도 아니고 단지 몇 푼 더 준다는 이자수익에 혹했을 뿐인데 그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이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생각이다.
위로라도 하고 싶은데 달리 떠오르는 말도 없어 그저 가슴만 치게 된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이번에도  대부분의 피해자가 서민들이라는 점이다.
50만원도 채 안되는 생활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자돈,  3년 동안 적금 부어 겨우 마련한 전세자금, 자식 교육비로 쓰려고 온갖 고생 무릅쓰고 아등바등 모아놓은 쌈지돈 등 나름의 사연을 담은 이들의   '목숨줄'이   지금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실제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 불쌍한 돈을  날름 한 입에 집어삼킨  탓이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서민들의 꿈과 희망이 산산이 부서졌는데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 막히고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상상을 초월하는 관련자들의 무능과 도덕 불감증에 분노가 치민다.
대주주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거액을 몰아주거나 차명계좌와 특수목적 법인을 동원해 불법영업을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검증되지 않은 두 곳의 사업체에 자산의 70%를 올인하는 무모함은 차치하고라도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시지가 12억원의 땅을 담보로 1000억여원을 대출해 준 사례가 발각됐고 은행 자산을 대주주의 사금고로 운용했다. 무능한 경영진의 무책임한 투자결정이 부실경영을 재촉했다. 그런 식의 방만한 경영으로 수조원의 자산을 흔적도 없이 날리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 있다. 부실을 감추려는 몰염치가 고객 피해를 키운 사례도 적지 않았다. 고이율의 이자나 허위 BIS 정보로 고객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토마토2 저축은행의 경우, 자본시장법을 어기면서까지 퇴출 위기에 놓인 토마토저축은행의 후순위 채권을 파는 편법을 감행했다.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한 자구책이었겠지만 고객의 손해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이들 은행을 감독관리 해야 할 금융당국의 몰염치는 설상가상 그리고 목불인견이었다.
저축은행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의무를 저버린 직무유기는 그렇다 치고 사외이사 자리를 꿰찬 금융감독원의 퇴직 임원들이 수 천 만 원대에 밥값 대신 한 일이라곤 거수기와 방패막이 역할 뿐이었다.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러운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유일한 해법으로 공적자금 투입이 거론되고 있다.
대주주나 권력의 사유화가 허용된 상태의 공적자금 투입은 올바른 저축은행 해결책이 될 수없다는 생각이다.  방만한 경영 형태를 바로 잡고 관리감독이 철저히 이뤄질 때만이 비로소 저축은행 본래의 기능을 잘 할 수 있다.  툭하면 세금으로 메꿔주는 건 임시방편은  의미가 없다. 본질적인 문제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서민을 볼모로 삼아 지배계급의 꽃놀이패로  삼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선  안될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대통령과 위정자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
깊은 이해로 국민과 소통하고 넓은 그루터기로 언제든지 국민이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 하는 국가 지도자로  되어달라는 것,  그리하여 이 땅에서 더 이상 서민들이 슬퍼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지도자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신뢰를 잃지 않는 일이다. 
이를 명심하고 국민 신뢰를 최우선의 원칙으로 삼는  대통령이 되어주길 바란다.
                             (2011. 9. 20)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19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유종의 미

유종의 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그를 쓰러뜨린 건 폐암이었다.
좀 더 일찍 암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의 줄담배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만류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을 불운이었다는 회한 때문에 천근 무게로 짓누르던 마음고생에 시달리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런데 벌써부터 정권의 안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는 현실이  떠나간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친구를 보내던 그 때처럼 착잡하기만 할 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부패 권력의 실체가 하나 둘 세상에 맨 얼굴을 드러내는 조짐도 예사롭지 않다. 너무나 만연돼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우성이 말기 암 선고 보다 더 무섭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신뢰는  중요하고 특별히 정치권력이 수호해야 할 주요가치라고 생각한다. 위정자들은 국민 신뢰를 잃은 정권은 통치 권력을 통째로 내놓은, 죽은 정권이나 다를 바 없다는 두려움을 가져야겠다.

과거 노무현 정권 말기에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
국민신뢰를 잃은 실패한 정권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 당시 미친 듯 끓어오르던 부동산 폭등을 막기 위해 내 놓은 참여정부 정책은 나름대로 내실있는 대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옳은 정책도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 정부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 국민들로 하여금 정책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어긋나는 선택으로 혼란을 자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로 인한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되돌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지만 아무도 이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었다.
미리 막을 수 있었다면.
그러나 인생엔 만약이 없다. 그래서 더 비극적 요소가 많은 건지 모르겠다.

이 정부에서도 지난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되는 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줄담배 습성이 친구의 명을 재촉했던 것처럼 도덕불감증이  이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치명적 역할을 하고 있다. 권력을 우산삼은 검은 의혹들의 종횡무진  활약(?)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기도 하다. 정치자금에 연루된 모 의원이 줄만 잘서고 목적만 달성하면 나머지 문제는 다 커버해준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실세에게 들이대더라는 류의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되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유한한 명예보다 무한한 자본의 선택이 더 현명하다’는 자조어린 말까지 돌게 됐을까 싶다.
물론 이런 식의 구태가 이번 정권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어느 정권이고 친인척을 포함한 측근 비리에서 자유로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을 돌이켜보면 박수 받는 권력의 퇴장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부당한 현상을 무심히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고질적 상황을 해결해야겠다는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의지가 필요하다.
과거 지방선거 공천심사를 주관하면서 돈 공천 잡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나름의 비책을 쓴 경험이 있는데  정치개혁을 위한 개인적 노력의 일환이라는 생각이다.  공심위원 상호간의 감시체제를 최대한 가동시켜 서로에게 감시당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부정한 공천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였는데  효과가 있었다.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으로서 자정을 위한 노력들로 정당공천의 투명도를 조금은 더 높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신뢰를 되찾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이 부단히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차기 정권 역시 지난 정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구태를 척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출발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정치 개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 잡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정치 환경 더 어려워졌고 진정성을 알아주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가겠다. 

 최종회로 치닫고 있는 현 정부의 드라마가 더 이상 놀랄 일 없이 잘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오늘을 마감한다.
                                (2011. 9.19)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보이는 것의 실상

보이는 것의 실상

가히 초절정의 건망증이었다.
밤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보는데   더 이상   환하고 둥근 한가위 보름달 자태가 나오지 않는 실상이 궁금했다.   추석 지난 지 며칠이나 됐으니 보름달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잊을 걸 잊어야지.
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의 광선을 받아 빛나는 특성 상 태양·지구· 등의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뀔 수 밖에 없는 ‘달의 운명’을 수없이 입에 달고 살던 나로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해프닝이라는 자책마저 일었다.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달이 차면 기울고 또 다시 차오르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떠올리다가 생각이 달라졌다. 이 세상 모든 진리의 실체와 우리가 받아들이는 실체는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의 변화가 그것이다.
실제로 달은 한결같은 실체로서의 스스로를 견지하고 있는데 공기 때문이건, 구름 때문이건, 공전 때문이건 단지 우리 눈에만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자 우리가 지금까지 상식으로 규정하고 받아들인 모든 것들이 갑자기 모호해졌다. 판단의 근거가  실체의 기준인지 , 그것을 대상으로 한 시각인지, 그 마저도 실체와의 사이에 놓인 장애요인을 감안한 부분인지, 더 나아가 보고 싶은 부분으로만 판단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선명하게 잡히는 대목이 없다.
또 간간히 주변 환경 때문이든 개인적인 특성 때문이든 실체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을  우리가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놓쳐버린 실체가 전부인 것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진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도처에 깔린 현실이다. 

달일까, 전기일까?
어느 쪽이 인간에게 더 유용하게 쓰일까?
갑작스런 정전사태가 정치권까지 술렁이게 했다는 소식에 떠올려 본 생각이다.
자연 앞에 문명의 소산을 비교하는 자체가 미련한 발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마나한 우문을 던지는 건 보조제 정도는 몰라도 절대로 자연의 대체제가 될 수 없는 문명의 이기가 가진 한계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은 자연을 능가할 수 없다는 건 여러 번의 재해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지진이나 해일 등 최근 들어 잦은 출몰로 지구촌 전체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자연 재해도 따지고 보면 다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다. 환경오염이나 우리 삶의 패턴을 풀어나가는 접근 방식에 인간의 겸허함이 필요한 이유이고 또 그것이 옳다.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잡으려면 촘촘한 그물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그럼에도 일정정도 이하의 그물코 넓이를 단속하고 있는 건,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연의 씨를 말리고 인간의 피해로 이어지는 폐단을 알고 있기에 나온 처방책일 것이다. 자연을 죽이고 양식장 등으로 그 간극을 메우려고 한들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너무도 뻔한 답이 말해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갑작스런 정전사태로 속출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피해 상황이 짧은 순간의 단절만으로도 인간의 삶을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문명의 이기가 가지고 있는 유한성을 절감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절전사태가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우선권을 자연에 둔 재설계에 관심을 둬야 하는 현실 인식을 촉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실체라는 것들은 다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이 가진 한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궁극적인 실체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이 내달리다 보니까 태양이 없는 달은 우리가 아는 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공식적으로 드러낸 이름 외에도 시인을 비롯한 각종 예술분야의 작가군들이 불러주는 수없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달의 실체가  오로지 하나라는 사실 뿐.
 우리에게 통용되는 달의 실체는 태양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고 태양의 존재가 빠진 달의 실체는 우리에게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태양조차도 광활한 우주 나 은하계 영역으로 보자면 지극히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더 복잡하게 흔들고 있다.

달이 주는 원천적 아름다움에만 매몰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때 그때 가슴으로 전달되는 의미를 받아들이고 음미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잡념의 구덩이를 헤매는 형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텐데....
나머지는 숙제로 넘겨야겠다. 
여기까지만도 너무 벅찬 하루.....
                       (2011. 9 .16)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15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반중 고운 감

반중 고운 감 
 
지인이 情을 담아 보내온 해산물(전복, 해삼내장, 성게알 등)을 전하러 갔는데 어머니가 한창 즐거워하고 계셨다. 소녀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뭔 일인가 싶었는데 이내 궁금증이 풀렸다.
“문종아, 신문에 네 기사가 나왔더라.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데 야당도 여당도 벌벌 떠는 후보가 될 거라더라”
어머니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든 일등공신은 신문에 실린 아들에 관한 기사였던 것이다.
어머니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아들이다.
어머니는 나의 고갈을 막아주시고 뒷배가 되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깊은 믿음으로 이 아들의 미래를 확신하고 또 간구하고 계신다.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 주시고 응원하는 분이시다.
이번 추석에도 어머니는 손주들을 불러다 앉혀놓고 훈육하는 시간을 잊지 않으셨다.
“훌륭한 아버지다. 아버지가 너희들한테 시간을 많이 못 낸다고 서운해 하지 말아라. 어리광을 부리거나 툴툴거리지도 말아라”
말이 훈육이지 실상은 (그들에게는 아버지이고 어머니께는 자식인인) 나를 위하라는 정신교육 내지는 세뇌가 이뤄지는 시간이었다.
 
늘 하게 되는 생각이지만 어머니는 멋쟁이 중 멋쟁이시다.
8순이 훨씬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현역을 능가하는 감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때가 많다. 특히 정치 분야에 대한 식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기량이시다.
아마도 남편과 장남을 정치인으로 뒷바라지 해 오신 오랜 경륜의 결과라는 생각이다.
어머니가 식구들 사이에서 장남인 나의 전속 정치평론가’로 위상을 굳힌 지는 실로 오래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일급 참모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하루 일과는 날마다 배달되는 20여종의 신문구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홍문종’으로 검색되는 기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스크랩하거나 기사의 주요 대목을 별도로 챙겨 내게 전하시는 일도 어머니의 고정 일과 중 하나다. 뿐만 아니다. 경민대학이나 내 블로그 주소를 당신의 컴퓨터에 즐겨찾기로 등록해놓고 일일이 모니터하시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활발히 하고 계신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고 시원으로 존재한다.
여전히 탯줄로 연결돼 뭔가를 공급 받고 있는 듯한 긴밀하고 특별한 느낌을 주는 대상이다.
내 생의 전반에 걸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보다 더 나를 잘 꿰고 있으면서 한번도 나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은 적이 없는 분이기도 하다.
아직도 어머니와 몇 번은 전화통화를 나눠야 비로소 하루 일과를 마치는 기분인데 학교 업무는 물론 정치 일정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세심하게 짚어주시는 어머니의 코치가 얼마나 요긴한지 모를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를 통해 상대방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의 실체를 느끼게 될 때가 많다. 사랑을 배우고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면서 삶의 의미에 좀 더 진지하게 다가가게 되는 것 같다.
특히 명절을 계기로 가족을 만나 정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의미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역할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어머니의 헌신이 가장 큰 자극이 되는 것 같다.  어머니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족을 위하고 특히 자식들에게는 뼈 속까지 그 사랑이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들을 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기댈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건 나에게 더 없는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우리 집안의 공식게임으로 자리잡은 이북식 윷놀이 대회가 열렸는데 부모님 덕분에 더 행복했다. (의도가 담기긴 했지만) 아버지께 돈 다 잃었다고 투정 부리고 어머니께 1000원만 달라고 떼를 쓰면서 맛 볼 수 있었던 즐거움은 나만의 은밀한 달콤함이기도 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한 시간도 채 안 돼 부모님과 이모님이 체력의 한계를 보이시며 손을 드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말이다.
.........
밤하늘의 둥근 달이 '반중 고운 감'을 연상시키는 이 밤, 부모님과 함꼐 하는 즐거움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는 소망이 절실한 간구가 되어 가슴을  저리게 한다.                                            (2011.9,15)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14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찜질방에서 민심을

찜질방에서 민심을
가끔씩 동네 찜질방을 찾는다.
30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이발소와 목욕탕이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곳의 단골인 셈이다.
정치를 하는 내게  찜질방은 아주 유용한 공간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이만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누구나 맨 얼굴일 수 밖에 없는 특성 때문인지  유난히 허심탄회한 모습인  이웃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도 찜질방은  최고의 명당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찾은 찜질방에서도 대박을 쳤다.
인생의 삼라만상을 두루 섭렵한 아주머니(70초반 연령대)들을 옆자리에 둔 행운(?) 덕분이었다. 그녀들의 원색적 토로(수다)에는 복잡한 세상사를 단숨에 정리해내는 깊은 내공이 담겨있었다.
다른 찜질 이웃을 통해서도 귀동냥이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총망라하는 추석 민심을 수렴할 수 있었다.
민심도 수렴하고 삶의 철학도 음미할 수 있는 찜질방은 역시 좋은 곳이다.

배려가 담긴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A 아주머니는 명절이면 음복을 핑계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고 나서 나중에 따지면 기억에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팔순 시누이 얘기를 꺼냈다. 급기야 식구들이 집안 대소사에서 그 시누이를 만나면 이번에는 또 무슨 말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까 전전긍긍하게 됐다며 아무리 가족 간이라도 할 말 안할 말을 구분하는 배려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경험을 전했다.
B는   달라진 제사 풍속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제사는 한 곳에서만 지내야 하는데(처음 안 사실이다) 요즘엔 이런 저런 핑계로 제사 주관을 기피하는 바람에 집집마다 제사상이 돌고 있다고 성토했다. 벌초만 해도 사람을 사서 대행하는 모습이 많다며 자신은 이런 꼴이 보기 싫어 진작부터 자식들에게 화장을 당부해 놓았다고 씁쓸해 했다.
어렵기만 한 사돈과의 관계가 고민이라는 C는  화장실과 사돈은 멀리하라는 옛말이 있지만 아파트가 주를 이루는 주거문화의 변화로 화장실이 집안에 놓이게 된 현실을 예로 들었다. 그 같은 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돈네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대상이라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사돈과 해외여행도 함께 하고 식사도 여러 번 나눠 봤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더욱이 혼사를 맺기 전에는 친구사이였는데도  사돈이 되니 더 멀어지는 묘한 관계에 놓여 있다며  융통성 없는 자신의 성격을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親자를 붙이는 대상(친정어머니 등)과 媤자를 붙이는 대상(시누이 등)은 극과 극의 정서라는 D 아주머니의 주장은 난생 처음 듣는 얘기이기도 해서  개인적인 흥미를 자극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시가 쪽은 어렵고 친자가 편하고 좋은데 요즘은 그나마 똑같이 가깝지 않은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며 최소한 친가와 시가 관계만 잘 조종할 수 있어도 결혼생활의 90%는 성공한 셈이라는 결론이었다.
자식들이 먹고 살기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E 의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추석 명절에도 일을 하는 자식들이 많아져 옛날보다 풍요로운 생활이어서 살기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삶의 질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는 우려 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 밖에도 주식 때문에 울고 장사가 안돼 울고.... 여기저기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람들의 탄식이 제일 많았다.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집을 줄여 이사하거나  쇼핑품목 줄이는  것으로  갈수록 곤궁해지는 살림살이에 대한  걱정을 대처하는 모습들은  한 사람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근혜 안철수를 주제로 한 정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안철수 교수는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좋은 대통령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얘기와 박근혜 전 대표는 마음 고생이 많아서인지 얼굴표정이 굳어있다는 촌평도 나왔다. 안교수가 정작 서울대학교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거나, 여자 대통령에 여전히 유연하지 않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내게는 안철수 거품이 많이 빠지고 박근혜 지지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조짐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결국 우리 경제는 어렵고 계층 간 가족간 대화는 불통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큰 의미의 가족의 틀은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여성 대통령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완전히 불식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세론을 바꿀만한 획기적인 변수는 없다고 보는 게 현장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이라는 생각이다. 

이상이 듣는 재미 때문에 찜질방에서  더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주워 담은 ‘블로그 거리’의 대략이다.
두 시간 채 못 미치는 시간을 통해 머리 깎고 땀 흘려 찜질해가며 대한민국 민심까지 수렴한 수확은 자랑할 만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다.
특별히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와 내 손을 잡으며 덕담을 주던 이웃 분들의 얼굴도 내가 거둔 또 다른 수확물이다.
그들은 내게 “이제 홍의원님이 나서면 정치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너무 많이 쉬었다”며 독려하는 가하면 “돕겠다는 주위의 말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때로는 지역 현안에 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게 낫겠다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선거전략까지 제시하는 분도 계셨다. 
다 고마운 일이고 내게 힘이 되는 말씀들이다.

희망과 걱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제 사람들 생각을 알았으니까 내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래, 역시 민심은 천심이다.
                                  (2011. 9.14)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