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문패 바꾼다고 되나?

문패 바꾼다고 되나? 


10.26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정부 여당의 입지가 갈수록 좁혀지는 모습이다.
백척간두의 운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 쇄신 처방이 홍수를 이루지만 정작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반응이 영 시큰둥하니 문제다. 당명 개정 등의 해법은 문패만 바꾼다고 나아지겠느냐는 타박 앞에 명함도 못 내미는 형국이다.
대통령이라고 형편이 나은 것은 아니다. 여당과 한 묶음이 되어 뭇매를 맞는 가 싶더니 급기야 ‘연산군 보다 더 못한 단군 이래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쏟아지는 여론의 몰매가 우선 당장은 아프겠지만 한나라당 미래를 위해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혹독한 비난과 채찍질이 필요하다.
귀담아 듣고 개선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큰 폭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기꺼운 마음으로 이 어려운 국면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다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늘 느끼는 바지만 한나라당 진영엔 전략이 없다. 소통도 없다.
지나치게 비대하고 지나치게 둔감해서 늘 반응이 늦다.
이 같은 폐단은 이번 선거과정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한나라당이 네거티브나 색깔론 같은 20세기 선거 행태에 매몰돼 있는 동안 상대 진영은 광속의 빠르기로 선거운동을 펼쳤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분위기다. 낡아빠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제트엔진으로 진화하는 SNS의 위력을 간과했다. 더 이상 메이저 언론의 선동에 구동되지 않는 선거판 진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신개념의 소통기구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한 그 죄(?)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내년 총선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뽑거나 법조인 출신을 배제하겠다는 등의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의 구상이 반향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기로는 당내 다른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럴 듯한 쇄신론이 우후죽순 봇물을 이루지만 여전히 공허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나라당이다.
결국은 진정성의 문제다.
스스로가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이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듯 해맑은(?) 표정으로 내놓은 해법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리 만무다.
당이 회생하려면 전략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절박함은 물론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보수의 발전을 위한다면 진보진영 화법의 벤치마킹을 고려할 것을 권하고 싶다.
선명하고 강렬한 선거구호의 시각적 효과도 선거판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소다. 예를 들어 ‘연산군보다 못한 대통령’이라는 공격에는 ‘불임정당’이나 ‘신중우정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표현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분명하게 뜻이 닿고 젊은이들이 신명나게 외칠 수 있는 부분까지 고려한 구호의 생산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진영 화법은 분명 비효율적이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근엄하고 가라앉아 있어 마치 한편의 잘 정리된 논문 같은 느낌을 주는 화법으로는 찰나적이고 감각에 길들여진 젊은 피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혹자는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면 보수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고 걱정하지만 보수의 가치가 체면이 깎이는 상황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발목 잡혀 망설이다 보니 ‘점진적 무상급식’이니 ‘대안없는 반값 등록금’ 등이니 하는 애매모호한 구호로 고립을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것이며 더 나아가 투표에 임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겠는가.


서울시 입성에 성공한 박원순 시장은 자신의 공약인 무상급식 사업을 결재하는 것으로 시장 업무를 시작했다. 당분간은 누구도 보무당당한 박시장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승자인 박시장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패자인 오세훈 전 시장은 자신이 세웠던 시책들이 전면 백지로 되돌려질 위기에 처해 있다. 승자에 관대하고 패자에 박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냉엄한 현실이다.
구한 말 흥선 대원군을 주목한다.
수상한 세월을 이겨내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손에 넣고 천하를 휘둘렀던 그의 기막힌 처세술을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실현할 권력까지 쥐지 못하면 상황이 아주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게 역사의 숙명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도 책임지는 정치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정치 선택을 통해 승자를 가려왔다. 구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정치인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또 역사를 만들어 낸다.
물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행운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사상가로, 운이 나쁘면 몽상가로서 말이다. 이승만과 김구, 또 어떤 의미의 윤보선과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들의 삶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각으로는 보수를 위한 나의 조언에 굴욕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마음 한켠에 내 생각들이 틀렸으면 좋겠다는 망설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0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하는 정도로라도 받아들여져 이 땅의 보수를 진일보 시키는데 일조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간절함에 이 글을 블로그에 담는다.


(2011. 10.31)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삶의 찬가

삶의 찬가


‘죽다 살아나다’
그제 저녁부터 오늘 낮까지의 내 근황을 묘사한 가장 정밀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정말 죽을 뻔 했다.
토하고 설사하고 또 토하고 설사하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가늠할 수 없는 고통에 밤 새 시달렸다. 먹은 음식이 잘못된 건지 그동안 누적된 피로와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고민들이 일으킨 반란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심각한 토사곽란에 덜컥 발목을 잡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밤새 시달릴 때는 아무 생각도 없더니 막상 중요 스케줄 마다 괴력이 발휘된 상황이다. 병원으로 실려가 주사와 약으로 기력을 보충해서 그 힘으로 예약된 스케줄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행사에 참석하고 나면 기진맥진 축 늘어진 중환자가 되는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무대체질이라는 것도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그렇게 아무도 못 말리는 2박3일 동안의 활약상 끝에 ‘나는 지금 살아있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대부분 삶에 대해 새로운 정감을 갖게 된다더니 내 경우가 그랬다.
고비를 넘기고 새로 맞는 아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을지 모를 육신의 고통이 의외로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해 되새기는 기회를 통해 삶을 좀 더 진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신선한 공기, 햇살 한 조각조차 생의 찬미로 이어지고 신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 동안 마음을 가리던 근심 걱정이 우중충함을 벗어 던지고 말개진 얼굴로 나를 축복하고 있다. 새로운 희망으로 충만해진 자신감이 있는 한 그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살아있음이 이토록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미처 모르던 과거를 뒤로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중이다.


통제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드는 순간, 이렇게 혼자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지근거리의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소리 없이 생의 공간에서 지워질지 모른다는 좌절감은 차라리 공포 그 자체였다.
죽음을 감지하는 순간, 전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머릿 속을 스쳐갔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가장 큰 안타까움은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어떤 대상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고독을 자극하는 원초적 고립의 근원이 거기 존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생애에 담겨있던 오욕칠정이 일시에 정리되는 듯 했다.
죽음은 인간이 가진 나름의 특별함이 몰수되는 시작에 다름 아니라는, 허무하지만 틀림없는 결론이었다.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자신의 특별함을 주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눈 앞에서 보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이번 우환은 죽음을 가까이 살필 기회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여지가 적지 않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운명인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앞에서 증폭되는 고독의 무게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또 죽음이 누구에게나 예외일 수 없는 보편적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명백한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흑자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다.
그런 한계가 존재하기에 인간이 진지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솔직히 구원을 확신하는 기독교 신자로서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삶의 저편은 여전히 두렵고 궁금하고 신경 쓰이는 공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족한 신앙심 탓인지 부실한 내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삶과 죽음의 영역에 대해 좀 더 확실한 확신과 정의로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만은 사실이다.
나의 삶이 오늘을 기점으로 더 많이 진지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


고독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 그 어느 것도 고독하지 않는 게 없다.
저마다 독자적으로 고독의 영역을 고수하는 처지라면 특정한 대상에 대한 애정이나 애착행위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모든 대상을 동일하게 사랑하고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게 맞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개별적인 애착의 대상을 내려놓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마음이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대상으로 한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둘 것 같다.
문득 이 세상을 소풍 다녀가듯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고 그 무엇에도 마음을 심지 않은 채 가볍고 무심히 살다 간 천상병 시인을 생각한다.
그는 정녕 행복했을까?
그는 진정 자유로웠을까?


역설적이지만 토사곽란 정도의 아픔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의 공간에 머무르면서 삶의 깊이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던 건 나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2011. 10. 30)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칭찬받아 좋은 날

칭찬받아 좋은 날

모교(서울 대광 중고등학교)의 64주년 개교 기념일에 모교를 빛낸 동문상을 받았다. 8년 선배인 무학교회 김창근 목사님, 5년 선배인 대우건설 서정욱 사장님, 그리고 2년 선배인 차병원과 중문의대 차광열 이사장님과 함께였다.
졸업한 지 38년 만에 선후배 동문의 축하를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는 기쁨이 생각보다 컸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인연으로 상을 받은 경험이 적지 않지만 그 어떤 상보다 나를 설레게 했다. 특히 국회의원도 아닌데 받는 상이어서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상을 받아도 개운치 않은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단순히 상 받는 기쁨으로만 정리되지 않는 묘한 감흥이 ‘모교의 선물’을 더 각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평소 아끼던 후배들과 친구들의 축하도 행복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어서 그 의미를 더했다. 저녁에 귀가하니 온 가족이 케잌을 사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내가 국회의원 당선됐을 때보다 더 들뜬 모습으로 ‘모교에서 칭찬받은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와중에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덕분이라고 아버지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라는 당부를 챙기시는 한편,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너희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단골 레퍼토리로 아들자랑을 겸한 세뇌작업을 잊지 않으셨다.






홍문종 총장,
김창근 무학교회 목사,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돌아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낸 기억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탄대로였던 건 아니었다.
이유를 따지자면 사연 많은 나의 인생 역정(?)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모교(대광중학)과의 인연을 입학이 아닌 전학으로 시작했다.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수송 초등학교(지금은 중구청으로 쓰이고 있고, 학교는 없어졌다)를 졸업했지만 원하는 중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낙향의 길을 걸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여를,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농사를 돕고 소꼴도 베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던 의정부 중학교에 몸담고 있다가 서울로 귀환한 게 대광과의 첫 조우였다.
과외와 번쩍거리는 구두로 대변되는 당시의 학교 환경은 내게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자극이었다. 고관대작 자제들이 우글거리던 명문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을 재생시켜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서울 정착이 그렇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친구들의 놀림은 물론 1년 동안 팽팽 놀다가 전학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누구도 의정부에 쌓아올린 내 튼실한 기반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의정부 골목대장 감투도 별 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와 문전박대를 당하는 상황이었으니 한동안은 생존을 위해 세 과시로 존재감을 증명하는 처지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나의 수상을 축하하러 온 친구 중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하고 최소한 열 번 이상 싸우고 각별한 사이가 된 친구의 얼굴도 있다)

사실 모교의 동문 중에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많다.
의사나 교수, 목사 등 전문분야에서 두드러진 명성을 얻고있거나 주목받는 사업가들로 성공한 동기들도 많다. 불멸의 야구선수 김재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나를 ‘자랑스런 동문’으로 지목한 것은 앞으로 모교에 애정을 갖고 모교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해 달라는 주문이 아닐까 싶다.
행사 일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학교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학교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학교 다닐 때보다 훨씬 퇴락한 느낌이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들 때문에 더욱 초라해 보였다. 40여 년 전만 해도 중고등학교에 드물었던 강당이 있었고 최첨단 어학실과 과학실 그리고 스팀 난방장치 등의 최첨단 시설로 호화 귀족학교 소리를 듣던 위세를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어떤 식으로든 모교의 과거 명성을 되찾는 데 수고를 아끼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후배들을 위해 강의 일정을 잡아달라는 교장선생님의 청을 받고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으로 본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겠다고 새롭게 새긴 다짐도, 나이가 더 들어버리신 은사님들을 바라보면서 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칭찬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역시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 같다.
학교 행사 말고도 전쟁기념관에서의 리더십 강연, 주요 모임의 대표자 회의 등 유난히 일정이 빽빽한 하루였지만 온 종일 들뜬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모교에서의 감흥이 준 에너지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2011. 10. 25.)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비움의 미학

비움의 미학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가 연일 화제다.
그의 최후를 둘러싼 뒷얘기가 무성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사인에 대해서도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의 체포를 우려한 심복이 자구책 차원에서 그를 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카다피가 시민군에 체포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때 아랍 통합의 주역으로 영웅시되던 인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기력하고 굴욕적인 그의 처신을 볼 수 있었다. 하수구에 숨어있다 붙잡히자 시민군을 향해 “제발 쏘지 말라”며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은 측은지심을 자아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시신이 정육점 냉동고에 전시돼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독재자의 운명이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에 비해 상가를 찾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죽음의 현장을 자주 접하게 되는 셈이다. 조문 때 마다 느끼는 바지만 각양각색의 죽음과 그 죽음을 기점으로 발생하는 적나라한 뒷담화들이 인생 본연의 모습을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다.
작고하기 3일 전까지 흔들리는 손을 간호사를 통해 제어시킨 채 결재 판에 사인했다는 자수성가 재벌 회장이나 숨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술을 포기하지 못했던 애주가의 못 말리는 사연, 또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순간, ‘엄마’를 찾은 실향민이나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는 젊은 새댁의 안타까운 절규도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다른 유형의 인생을 짐작하게 해주는 일종의 뒷담화다.
유명인들이 죽음의 순간 남긴 말들은 나름의 무게를 갖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신은 죽었다고 외치던 니체는 매독에 걸려 길거리를 배회하다 스스로를 변장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했다. 종교개혁자 캘빈은 “사람이란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다. 목숨이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붙어있는 것일 뿐”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을 움직였던 모택동은 죽은 뒤에도 10억 중국인과 함께 있고 싶다며 화장한 유골을 전 국토 위에 뿌려달라고 했다. 32세 젊은 나이에 순국한 안중근 의사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는 말로 결연한 투사의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남기게 될런지.
그러나 금방 답을 낼 수 있을 것 같던 처음과는 달리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오늘 낮 오래 전 작고하신 분을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떨쳐지지 않던 생각이다.
추도식의 주인공은 어지간한 사람이면 기억해낼 정도로 유명세 떨치는 삶을 살았지만 ....




사는 일도 죽는 일도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생전엔 물론 죽음 이후에도 향기를 잃지 않는 인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이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옥한흠 목사님 등 참된 삶으로 사표가 되신 종교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세인들이 그들의 삶을 숭배하며 자발적인 존경을 보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고 또 상상하기도 용이하지 않은 카다피의 죽음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달아 김정일이나 카스트로를 연관 짓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보다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의제를 바탕으로 한 절실한 관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푸르던 나뭇잎이 어느 새 누렇게 변해 땅위에 떨어지고 있다.
인간의 유한한 생명에 대한 경고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낙엽의 퍼포먼스다.
계속되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미욱하기만 한 인간은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70년도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카다피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비참한 결론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모두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고별사를 진행하는 앞산의 단풍이 참으로 눈부시다.
오롯이 비워냄으로 해서 전부를 채우는 삶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모든 걸 내놓고도 초연할 수 있는 낙엽의 여유로움에 귀도 기울이고 눈도 맞춰보겠다.
그렇게, 향기로운 언어를 마지막 메시지로 담을 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해야지.


(2011.10.22)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정치 리모델링

정치 리모델링


서울시장 선거전 분위기가 갈수록 태산이다.
양 후보 진영의 상대후보 흠집내기가 도를 넘는 형국이다.
폭주하는 네거티브에 후보들이 더할 나위없이 형편없는 인격체로 추락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갈기갈기 찢기다간 누가 시장으로 선출된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싶다.
이들의 공방대로라면 서울 시민들은 부적격자를 시장으로 선택하게 되는 어이없는 결론이다.

하는 행태를 보면 이번 선거 역시 실패의 조짐이 역력하다.
후보들의 볼썽사나운 대응이 정당정치의 위기국면을 부채질하고 있다.
모두가 국민 신뢰는 안중에도 없다.
정치권은 민심에 귀를 닫고 민심은 정치권을 외면한 가운데 그들만의 리그로 치르는 선거가 성공을 거둘 리 만무다. 더구나 역대 어느 선거도 특별히 뜨거운 성원이나 박수갈채 속에서 치러진 기억이 없다.
탐욕스런 선거판에 보내는 국민 냉소가 시베리아 냉기를 능가할 정도로 싸늘하다.
며칠 전 만난 하버드 동창회 회장단 모임에서도 흉흉해진 저자거리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사들이 전하는 민심의 현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 실책에 대한 불만의 정도가 생각보다 깊고 크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최소한 한번만이라도 자성의 기회를 할애했다면 정치권 전체가 이렇게까지 난국에 처하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중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찬조연설자로 나섰던 한 친구의 재기발랄한 코멘트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단상에 나서자마자 그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친구들에게 돼지라고 놀림을 받고 있다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그러더니 정색을 한 표정으로 돼지의 강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여러분, 실제로 돼지는 깨끗한 걸 좋아합니다. 다른 가축에 비해 협동심도 있고 사람에게도 정말 많은 것을 주는 유익한 가축입니다.”라며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몰아붙이지 않고도 자기가 선택한 후보를 회장에 당선시키는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비록 어린 친구였지만 여느 선거 참모 못지않게 우수한 전략을 썼다.
무엇보다 후보의 약점을 강점으로 부각시켜 유권자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전략은 오늘날 네거티브 독성에 찌들어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더도 말고 그 순기능적인 요소만이라도 벤치마킹 하면 어떨까 싶다.

며칠 있으면 이 혼탁한 선거전도 막을 내리게 된다.
누가 이길지 선거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의 문제다.
분열된 국민 정서를 봉합하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만들어 주는 작업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계속해서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인 이전투구로 공론이 분할되는 소모전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정치의 큰 틀을 바꾸는 수고 없이는 위기와 불안에 사로잡히는 삶이 이어지게 돼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정치가 아닌 기쁨의 매개체가 되는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지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정치 리모델링에 나서 보도록 하자.


(2011. 10. 20)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가을 남자

가을 남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한결 섬세해진 마음결이 조심스러운 계절이다.
미세한 통증 하나에 가슴 전체가 순식간에 텅 빈 동굴로 초토화되거나 바스락 구르는 낙엽소리조차 예사로이 넘겨지지 않는 고감도 감성이 때때로 천형이 되어 신상을 들볶고 있다.
흐르는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가을의 내 모습이다.
그렇게 통과의례처럼 가을을 앓고 있는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는 밤.
아직은 건재함에 안심하면서도 쫓기는 듯한 이 불안감은 뭔지 모르겠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알리는 신의 엄중한 경고일까?
감정과 감정 사이를 흐르는 심연과 날카로운 바위들에 놀라고 다치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나약한 모습은 도처에 깔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 앞에 적나라한 나상으로 서 있노라면 세상의 명예도 권력도 그 무엇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복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러면서도 끝내 그것을 내려놓지 못해 불면을 키우고 있는 이 어리석음이 인간의 한계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이중적이지만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변명으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엄청난 압박을 피할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되기엔 한참은 역부족인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 고개 들어 가을 밤하늘을 쳐다보니 날 선 빛으로 박혀있는 달과 별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선명한 지 파르르한 떨림까지 전해질 기세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유난히 먼 거리에 놓여있는 느낌이다. 선명하다고 해서 거리가 늘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거리가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실제로 깨끗해서 선명한 대상에 거리감을 갖거나 경원시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판단의 오류가 선호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깨끗한 결론이나 대상을 도외시 하려는 건 배제돼야 할 속물근성이다.
새삼스런 깨달음이 힘이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이고 보면 ‘가을을 탄다’는 자체를 사치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상황 때문에 약간의 냉기에도 쉽사리 움츠러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둔감하게 지나치기보다는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가을과의 조우를 권면하고 싶다.평생을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다간 법정 스님이 생전에 쓰신 글 중에 가을을 참 이상한 계절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있다. 그러면서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가을 나무에게서 착해지고 싶게 만드는 충일의 순간을 포착한 적이 있음을 고백했다.
법정스님하여금 비어있음과 충만을 동일시하도록 작용한 권력이 있다면 오로지 가을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계절의 변화와 가을의 서풍, 떨어지는 나뭇잎 등은 우리 자신을 한번쯤 돌아볼 수 있게끔 배려한 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굳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평생 화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 구하기의 일환이라는 쪽에 무게를 싣게 된다. 어쩌면 인간 삶의 근원을 묻는 질문에 각 개인 저마다의 질문이 맞닿아 양산되는 수 만개의 서로 다른 대답들이야말로 가을앓이의 본질이라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올 가을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들과 견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녕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가을남자 앞으로!!
세상이 아무리 슬프게 해도 그것에 스스로를 함몰시키는 불행은 자초해서는 안된다.
이 가을이 위축된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커다란 위안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2011. 10.18)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전령사가 되자

전령사가 되자

선거를 열흘 앞두고 정치판이 설설 끓고 있다.
온갖 험한 말들이 오고가는 선거 캠프는 딱 전쟁터 분위기다.
특히 목불인견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전이 더욱 그렇다.
후보 진영 간 비방과 폭로가 도를 넘는가 싶더니 급기야 고소 고발로 이어지면서 사생결단에 나서는 모습이다. 유권자는 안중에 없이 무슨 짓을 해서든 이겨야겠다는 이기심이 염치도 체면도 다 벗어던진 탐욕스런 원초적 본능만 남겨놓은 듯싶다. 선거 시작 때만 해도 정책 대결을 약속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던 후보들이 며칠 사이에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 양 으르렁거리고 있다.

후보의 학력 시비는 선거 때면 어김없이 부각되는 단골 메뉴다.
민감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매력 때문인지 네거티브 선거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이번에는 해외 학력시비가 논란이 되면서 야당 후보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하버드대에서 객원연구원이었다는 건지 객원 교수였다는 건지 갑론을박이 이어지다가 급기야 저마다 서로를 허위사실 유포로 맞고소하는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나 역시 학력 시비에 걸려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기에 관심이 간다.
어느 선거 땐가, 미국 대학에서 받은 나의 석 박사 학위가 가짜라며 상대후보가 선관위에 고발을 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 대학의 학위운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
미국은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학위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경우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나 관련 논문은 쓰지 않았다.
스탠포드 대학 측은 그런 내게 석사 학위를 줬다. 결과적으로 박사과정 수료한 학력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셈인데 국내 대학 시스템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제도일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상대후보의 공격을 받았던 하버드 대학 박사 학위 건도 마찬가지였다.
석사 학위는 케네디 스쿨이라고 불리는 행정대학원에서 받고 박사 학위는 교육대학원에서 받았는데 이를 두고 상대방은 하버드 박사 학위는 맞지만 석사 학위는 허위라는 주장을 폈다. 행정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은 완전히 다른 소속이어서 두 학교에 제각각 문의해야 하는 절차를 어긴 상대방의 명백한 오류였다.
나중에 결백이 밝혀지긴 했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봉변이었다.
그런 관점 때문인지 이번 강용석 안형환 두 의원의 박원순 후보 해외 학력 문제 제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사실여부를 확인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선거도 예외없이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원색적인 비방과 폭로, 흑색선전으로 정책선거는 실종된 지 오래다.
당선이 최고의 선이라는 그들만의 덕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모두들 또 다른 제목의 석고대죄 역사 쓰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해서 캠프 살림이 조금은 나아졌는지 묻고 싶다.
음모와 탐욕이 넘치는 그들만의 드잡이에서 국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길이 없다.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은 또 다시 쇠귀에 경 읽기로 끝나고 마는가 싶어 아쉬움이 크다.
남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지만 링 밖의 관전자로서는 발 구르는 안타까움을 전할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각성하면 된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겠다.
OECD 경제 대국을 자처하면서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 한심한 정치현실을 바로 잡을 주체는 오로지 스스로라는 현실 인식을 가져야할 때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제대로 된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그것이 정치를 바로 세우고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가장 확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임을 알고 행하자.
흔히들 강한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아니다, 그 말은 틀렸다.
진실이야말로 최대의 무기다.
깨어있을 때만이 스스로의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음을 알자.
국민 모두가 정치현장에 새로운 가치관을 이식시키는 전령사가 되겠다는 각오로 새 역사 창출에 나서자.
이번 선거를 통해 실현해 보자.

(2011. 10. 15.)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안녕히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와이에 있는 동안 양정규 전 의원님의 부음을 접했다.
가끔 병원에 다니신다는 말씀은 들었는데 그토록 위중한 상태였는지는 몰랐다.
생자필멸이라지만 가깝게 지내던 이들의 부고는 늘 처음 겪는 것처럼 날 선 아픔으로 다가온다. 헌정회 회장으로 늘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이렇게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더 서운하고 황망해지는 마음이다.
고인과는 15대 국회에서 동료의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보통은 국회를 떠나면 소원해지기 일쑤인데 우리는 얼마 전까지 자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만남으로 그 인연을 이어갔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격 없는 대화가 가능했던 건 넉넉하게 주위를 품어주시던 양 전의원님의 인품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헌정회 회원이신 아버지와도 허물없는 사이로 지내셨던 터라 ‘아버지는 형님뻘이고 아들은 막내 동생 같으니 웃기는 족보’라는 우스개로 우리를 웃겼던 일도 있다.
정감 넘치던 고인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의 일이라면 언제나 발 벗고 나서길 망설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언젠가 제주도에 경민 학교 연수원을 지을 때도 정 많은 품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시며 세심하게 도와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인 덕분에 당시 도지사까지 나서서 연수원 진행 과정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너나없이 모든 사람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공감하는 그를 보면 다선의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분명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능력이었다.


고인을 우리는 양두목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느닷없이 맞게 된 두목의 부재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겠다.
정치는 물론이고 세상 일을 격의없이 상의드릴 수 있었던 큰 어른을 잃은 상실감이 만만치 않은 파동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댄다.


그래도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는 드려야겠지.






두목님처럼 지역이나 연령이나 신분차이를 가볍게 뛰어넘고 모든 사람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하나 얹어서.


우리의 영원한 두목님.. 영면하소서. (2011. 10. 14)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하와이 독립문화관

하와이 독립 문화원

하와이에 와 있다.
하와이 독립문화원의 이사장 취임을 위한 일정 때문인데 대를 이어 독립 운동하는 심정으로 바쁜 일정을 쪼갰다.
이 곳 독립문화원과 아버지 사이의 각별한 인연을 생각하면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 일본인들이 독립유적지였던 이곳을 콘도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사재를 털어 독립문화원을 조성하겠다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의지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하와이 항일투쟁사 일부가 일본인 소유의 콘도에 짓눌려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독립문화원은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정서로 다가서는 공간이다.
독립유적지 보존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아 매진했던 아버지의 열정과, 먼 이역 땅에서 고국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애국지사의 얼이 깃든 곳이라는 점에서 더 그런 것 같다.
하와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공식적인 미국이민이 시작된 곳이다. 1902년 제물포항에서 증기선을 탄 121명을 필두로 1905년 이민이 금지될 때까지 모두 7843명이 이곳에 이주해 정착했다.
그렇게 이주한 애국지사들은 사탕수수밭에서 일한 돈으로 임시정부 활동을 도왔다.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풍전등화 같던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며 본토수복을 위한 결사항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재의 독립문화원 터는 그분들이 결성해서 활동했던 ‘국민회’ 건물이 있던 장소로 순결한 항일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그런 만큼 독립문화원이 상징하는 역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다.

안타까운 건 국가차원의 지속적인 관심이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개인의 관심이나 뒷바라지만으로는 채워지지 못하고 급기야 외면과 방치가 거듭되면서 독립유적지들이 유실되고 있다.
우리의 현재가 조국이 기약없는 불운에 흔들리고 있을 때 불꽃처럼 자신을 태우며 조국의 독립을 염원한 이들이 처절한 희생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조국이 불행할 때 홀연히 나서 모든 것을 던졌던 조상의 숭고한 흔적들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참으로 부끄러운 무능함을 방기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선진 그룹을 자처하면서도 아픈 역사를 대하는 무심함은 지나치게 후진적이다.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가 유기돼 있는 현실이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해외 독립 유적지의 역사적 배경이나 흔적이 지워질수록 대한민국의 국격도 비례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실이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감추고 싶은 치부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조국의 사소한 인연까지도 국가의 자존심 반열에 올려놓고 최선을 다하는 게 상례였음을 기억하자. 더불어 국가가 세심하게 예우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건 해외 교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각성도 촉구하는 바이다.
우리 정부나 국내 기업가 적극적이고 항구적인 지원책으로 해외에 흩어진 유적보호에 적극적인 관심으로 나서길 기대한다.

때 마침 이 곳 하와이는 11월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교민사회 전체가 들떠 있는 분위기다.
대통령과 함께 하는 자리에 초대될 100명 인사의 향방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가운데 미묘한 신경전도 있다는 후문이다. 역대 대통령 방문 때마다 되풀이되는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초대 명단에 교민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사 대신 지탄받는 인사들이 섞이는 경우가 종종 있어 대통령 방문이 교민사회 단합이 아닌 분란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초대자 명부를 어떤 기준으로 작성할지 모르지만 이번 만큼은 최대한 투명한 방식으로 처리하고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한 결과물이 되었으면 한다.
특히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인사에 대한 세심함이 있어야겠다.
뻔한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정부가 특별히 배려하지 않으면 초대받기 어려운 독립유공자나 항일투사의 자손을 위한, 필요하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라도 모시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2011. 10.13)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본질은 백년지계다

본질은 백년지계다

해마다 이맘때면 대학가를 강타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각 기관의 이런 저런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한 대학 랭킹 발표로 벌어지는 대학 간 경쟁이 그것이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평가 기준 때문에 속앓이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어 문제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고 일관적이지 않는 순위결과도 그렇지만 평가 기관에 따라 서열 순위가 달라지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발표기관이나 평가기준에 따라 들쭉날쭉한 결과지만 당사자인 대학 입장에서는 민감한 이슈일 수 밖에 없다. 랭킹 경쟁이 대학의 모든 능력을 대변하는 것처럼 대학들이 갈수록 순위 경쟁에 매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대학가만의 풍경이 아니다. 경쟁력 있는 대학들이 몰려있는 미국에서 조차 대학랭킹에 초연해지지 못하는 모습이다. 평가와 그에 따른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예외 없이 각 대학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서는데 국내외가 다르지 않다.


문제는 평가의 공정성이다.
현재로서는 교수 1인당 발표 논문 수, 영어 강의 비율 및 외국인 학생 수, 강의평가 공개율,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한 졸업생 취업률 등의 지표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평가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각 대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과정이 아무런 개선의 노력없이 다년간 지속되고 있는데 이 같은 현실이 방기되고 있다. 대학 간 경쟁력을 비교하는 평가가 출발점부터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예술 분야 비중이 큰 대학에게는 이런 방식의 평가 지표는 독약일 수 밖에 없다. 예술계통 학문의 특성 상 대부분이 대학 졸업 이후 곧바로 취업하기 어려운 여건인데도 취업률 평가에서 이를 배려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발표된 한 언론사의 국내 대학 평가 결과에서도, 심지어 교과부의 부실대학 심사과정에서도 똑같이 노출된 문제다.

그런데도 대학랭킹을 수단으로 한 관련 산업은 날로 번창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대학이 돈벌이에 놀아난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순위에 따라 대접도 천양지차로 달라지니 어쩔 수 없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개구리의 생사를 가르듯 대학 랭킹에 따라 존립이 좌우되는 대학으로선 평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짓을 펼치는 처지일 수 밖에 없다. 명문대학은 명문대학대로, 중하위권 그룹 대학은 또 그들대로 순위 경쟁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정교하지 않은 평가결과가 해당 대학의 심각한 피해로 이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인 현실이다. 관점은 다르지만 교과부 평가에서 하위 랭킹에 속하게 된 몇몇 대학의 운명도 같은 맥락이다. 실질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순위 경쟁에 밀렸다는 이유만으로 폐교될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각 대학들이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보다 평가기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대학 랭킹 경쟁은 경쟁력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빈익빈 부익부 초래로 대학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하위 랭킹에 속한 대학들의 의욕 상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많다는 생각이다.
랭킹 경쟁보다는 각 대학이 지향하는 목표나 이상을 더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접근 방식이 교육의 백년지계를 위해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해법이다.
그런 점에서 올 초 국제교육협의회에서 발표한 경쟁교육 폐해에 대한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3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지표’에서 0.31점, 관계지향성과 사회적 협력 부문 0점으로 각각 최하위였다 개인의 행복지수 역시 OECD 국가 중 꼴찌였다. 충격적이지만 적나라한 우리 교육의 현실이었다.
의미없는 경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줬고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공멸뿐이라는 위기를 입증할 만한 자료라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대학 스스로 유치하고 비생산적인 랭킹 싸움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대학의 내실화를 위한 일단의 사회적 노력들이 뒷받침 돼야겠다. 대학의 특성화나 생존전략에 방점을 둔 평가 작업으로의 전환도 고려할 만한 방안이다.
물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나 역시 대학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대학 순위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그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우리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등을 생각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정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은 역사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가능성에 대한 투자다.
'시대를 뛰어넘는 제품은 시장조사가 필요 없다'고 했던 스티브 잡스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인재 양성을 교육의 소명으로 삼도록 하자. 그렇게 최선을 다한 이후의 역량을 바탕으로 한 대학 순위 평가라면 좀 더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100년, 200면 이후를 내다봐야 하는 교육의 본질에 가장 적절한 평가방식이고 미래지향적인 가늠자를 토대로 결정돼야 할 대학 순위가 천박한 상업주의에 끌려 다니는 볼썽사나운 작태를 멈추게 하는 바로미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순위 때문에 총장이나 교수들이 구체적인 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통계 수치를 조작하는 등의 편법에 가담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스스로가 나서야 할 때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육을 백년지계로 설정한 선인의 속 깊은 의중을 배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다.

최근 한 언론사의 국내대학 평가에서 재벌기업이 관계한 두 대학이 각각 상위권에 진입하는 공교로운(?) 사건이 마음에 걸린다. 두 대학의 기업마인드를 극찬한 해당 언론 기사의 헤드라인도 공교롭기는 마찬가지다. 재벌기업의 막대한 영향력이 대학의 질적 평가에 개입하는 신호탄은 아닌지 모르겠다. 더 나아가 재벌 기업이 교육기관 판까지 좌우하는 막장까지 보게 될까봐 솔직히 걱정되기도 한다.
중소기업 먹거리까지 손대는 탐욕이고 보면 불가능한 현실만은 아닐 수도 있다.

(2011. 10. 11)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8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스티브 잡스 2

스티브 잡스 2

스티브 잡스의 위대한 삶은 미국인으로  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살아있을 때보다 사망 이후 더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극적인 삶을 지켜보면서 떠올려 본 생각이다.
스티브 잡스를 우리 시각으로 보자면 (우리 국민이 그토록 좋아하는)스펙 없는 혼혈 사생아일 뿐이다.
그런 잡스를 차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미국의  저력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수많은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포용과 배려의 미덕이 넘치는 미국사회의 저력이 스티브 잡스의 오늘을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현실만큼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출신지나 과거 행적에 연연해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안목이 아니었다면 세상을 혁신하고자 하는 그의 꿈은 세상 밖으로  명함도 못내밀고 스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스티브 잡스 효과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호재를 만난 셈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탄생도 따지고 보면 미국사회의 열린 분위기 덕을 톡톡히 본 사례다. 실제로 잡스와 오바마는 각각 시리아와 케냐 출신이었고 그나마 잡스의 경우는 사생아인데다 지방대학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다. 마약 전력이 있는 오바마 역시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둘은  미국 사회의 대표적 아이콘이 되었다.
이들을 영웅으로 만든 건 흔들림 없는 선택으로 미국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국민들의 혜안이었다.
거기에   인력 자원을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풀어나간 미국의 선견지명도  공신계열에서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실리콘벨리를 통해서도 인재를 구하는 미국의 통 큰 처세를 목도할 수 있다.
실리콘벨리를 움직이는 두뇌집단 50%가 한국, 일본, 중국 등 이국의 인재들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내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세계 각국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멀팅포트 문화는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미국의  세심한  노하우가 담겨 있다. 외부의 문화들이 모방과 순응하는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미국화 되는 결과조차 미국이 가진 경쟁력의 일부로 보인다. 이는 다른 국가나 종족에 대해 꾸준한 배려를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키워가는 미국만의 독특한 문화 방식으로 해석된다. 세계화 시대에 자기 국민을 정확하게 알고 보듬을 줄 아는 융통성이 핵심인데 미국의 위대함을 지탱해주고 미국이 미국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가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국의 위대함은  모방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유연한 사고가 더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특별한  한가지.
스티브 잡스의 비공개 장례식을 통해 미국사회의 또 다른 매력을 엿보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상태에서 열화와 같이 쏟아지는 추모열기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그의 장례식은 고인의 바람대로 측근들만 참여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에 대해 섭섭함이 토로됐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개인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하고 보호하는 분위기의 연속이다. 성숙한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선입견이 배제된 체 무한대로 주어진 자유를 아무 얽매임 없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은 그의 삶이  질투가 느껴질 만큼 부럽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자유인의 지존으로 불릴 만하다.
그렇게 참 자유를 구가한  삶의 질로만  평가한다면  잡스로서는 아무런 여한도 없을 것 같다. 
 
그런 미국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아직 멀었다.
여전히 외국인이라고, 여자라고, 무산계급이라고 차별받는 부당한 현실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기존 권력을 암묵적인 구태로 유지하려 드는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힌 사람들 때문이다. 화려한 겉치레에 갇혀 구체적 실리를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수많은 가능성을 억압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국수주의적 사고에 대한 현실 인식이 시급하다.
국가 간 인종 간 경계 자체가 무의미해져가고 있는 시대적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맹목적 혈통주의에 빠져 우리만의 역사와 전통이 최고라고 내세우는 시대적 착오가 머지않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족쇄가 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오래 전 우리도 미국 땅을 향해 꿈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고 대한민국 사회에 편입되기 원하는 수많은 약소국 이주민들을 냉대하는 이중성을 자행하고 있다. 약소국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을 기형적 행태로 풀어놓는 일이 얼마나 큰 부끄러움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주민을 배제한 채 우리끼리 만의 소통으로는 대한민국의 21세기도 존속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일이다. 이주민과의 공조를 공존의 화두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우리에게 문호개방을 원하는 이주민들을 위한 방도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해외 이주민의 경우 대학입학에서도 쿼터제 등 그들만의 합리적인 경쟁이 가능할 수 있는 우대정책으로 정착을 도울 수 있도록 서두를 일이다.  우리끼리만 잘난 나머지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면 국가 경쟁력을 훼손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편견을 내려놓고 배려와 공감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자. 
우리라고 제2, 제3의 스티브 잡스를 만나 지 말란 법 없다. 
 사회적 관점의 틀을  바꾸면 예상 외로 수월할 수 있다.
                 (2011.  10.  9)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7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굿 바이~ 잡스

굿 바이~ 잡스

이번에는 스티브 잡스의 부음이 지구 건너편으로부터 날아들었다.
예고된 불행이었지만 무거움이 가슴을 파고드는 소식이었다.
남다른 삶의 자취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 버린 천재의 부재를 알리는 조종소리에 온 종일 회색빛에 갇혀 헤맨 사람은 아마도 나 하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외롭지 않은 그의 마지막이 한 줌 위안이 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세상과의 인연을 거두는 스티브 잡스를 배웅했다. 많은 이들이 진심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인류역사의 새 기원을 마련한 고인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세상을 잘 살다간 영웅의 자취를 기려 주었다.

언젠가 잡스가 자신을 있게 한 인생의 결정적 축복, 3가지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일반적인 판단으로는 축복은커녕 인생 가도에 걸림돌이 되기에 충분한 최악의 설정들이었다.
실제로 돈이 없어 6개월만에 대학을 포기했고 자기가 만든 애플에서 축출됐다. 그리고 예고된 죽음 앞에서 언제 죽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두려움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는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인생에 해악을 끼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대학의 중도 포기는 흥미에 따라 다양한 공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로, 애플에서 쫓겨나 백수가 됐을 때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죽음이 예고된 인간의 한계의 경우, 하루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충실하게 지내는 방법으로 반전을 꾀했다. 인생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들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순기능적 상황으로 바꿔 버린 것이다.
결국 그런 기질들이 잡스가 IT 업계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한 결정타로 작용한 셈이다.

곳곳에 명료하게 박혀있는 巨人의 자취가 연일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들여다보니 56년이라는 길지 않은 삶을 통해 고인이 세상에 남긴 업적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무엇보다 동갑내기로 동시대를 살아온 깊은 인연이 있는 내게 그의 생애는 남다른 감회일 수 밖에 없다. (그것도 불과 40여일 정도 뒤늦게 태어난 미세한 시차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스티브 잡스 관련 자료를 더듬으며 나의 삶과 비교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사생아로서 불우한 성장과정을 거친 잡스와 내가 환경적 측면에서 일치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건은 다르지만 나 역시 잡스 못지않은 굴곡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선은 내 화려한(?) 학업 이력을 꼽을 수 있겠다.
잡스처럼 학교를 도중에 그만 둔 건 아니지만 잡스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전적이다.
다양한 분야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던 중고교 시절 천당과 지옥을 오가던 성적을 비롯해서 초등학교 4번, 중학교 2번의 전학생활로 쌓은 내공의 역사,(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생각해보라), 거기다 미국 유학을 통한 신학, 행정학, 교육학, 법학, 정치학 등 엄청나게 다양한 학문의 종류는 둘째치고 내가 다닌 대학 역시 일일이 열거하려면 필기구가 필요할 정도다. 그 과정에서 학생회장이나 반장등 수없이 많이 당선의 영광도 있었지만, 낙선의 다양한 이력 역시 만만치않다.
고려대를 비롯해서 미국의 리버티, 스탠포드, 하버드 그리고 동경대와 북경대를 돌면서 4개의 석사 학위와 3개의 박사학위를 남겼으니 하는 말이다.
이러한 결과물들은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이 몸살을 앓던 청소년기의 내 방황의 역사이기도하다.

2번의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던 정치 과정도 순조롭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다.
복잡한 사연이 펼쳐지는 와중에 탈당도 했고 공천탈락도 겪었다. 한참 잘나가던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 시절에는 잠깐의 방심으로 내부세력의 표적이 되어 좌절을 겪기도 했다. 말도 안되는 선거법 위반에 발목을 잡혀 오랜 시간 동안 분루를 삼키는 와신상담을 경험하기도 했다.
결국 그런 시간들이 또 다른 측면에서 정치적 내공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픈 상흔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는 전 세계에 울림을 주고 있는 그에 대한 부러움이 내 뇌리를 지배하고 있다.
잡스처럼 전 세계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조국, 대한민국 땅에서만큼은 반향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그의 힘 있는 목소리가 하루를 정리하는 내 귀에 또렷하게 각인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당신의 소망은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는 잡스의 격려가 에너지를 생동시키고 있다.

굿 바이~ 잡스.


....홍문종 생각
(2011. 10. 7)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점령된 월스트리트

점령된 월스트리트

10여 년 전만 해도 ‘아메리칸 드림’은 유효했다.
17세기 청교도들이 공동의 꿈으로 신세계를 연 이후 능력있고 부지런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이 기회의 땅에 수많은 발길들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하층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구상 가장 이상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미국을 꼽는데 망설이지 않았고 꽤 오랜 시간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미국 사회에서 지난 17일 ‘월스트리트 점령’ 구호로 시작된 시위가 3주째 미국의 가을을 달구고 있다는 소식은 놀랍다. 미국경제가 월가의 탐욕으로 나락에 빠져들고 티파티로 대변되는 보수파로 인해 끝없는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들고 일어난 자발적 시민봉기가 세계의 금융 1번가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1%의 탐욕과 부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99%의 결연한 의지로 뭉친 모습이 심상치 않다. 부패한 자본 금융을 향해 던지는 이들의 돌팔매가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로 그 열기를 이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미국사회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계층 간 간극을 메우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이 기여하는 바 컸다는 생각이다.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사회로부터 받은 ‘운 좋은 선물’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이를 공동체에 나누고자 하는 지혜로운 노력 때문에 미국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으로 부자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부터가 미국의 남다름을 설명할 수 있는 배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미국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 날 미국의 몰락은 이들이 미국의 사회 정의나 시스템이 준 혜택, 미국시민의 의무,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열망 등 아주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미국사회의 가치들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결과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현실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 미국의 정치 경제가 펜대를 굴려 천문학적인 돈을 모은 상위 1%의 금융 자본가들에 의해 가동된다는 의심에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월가의 파격적인 풍경도 이 같은 미국의 속사정을 대변하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저축은행의 총체적 비리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으로도 도대체 인간의 기본이 돼 있는 사람들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무모하고 엉망인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기업 윤리나 사회 정의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합동수사단을 발족하고 엄중 수사를 다짐하는 등 정부당국의 대응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의 속은 숯검정이 된 지 오래인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의 근로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좀 더 세심한 뒤처리가 있어야겠다.
결국 피해자는 서민이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투여해서 이 사태를 수습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른 바 악덕 업주가 됐건 시이오가 됐건 마지막 한푼까지 발본색원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고 근본적인 환부 조치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을 인센티브를 통한 동기유발과 자유의지에 둔다면 단점으로는 소득분배의 불균등이나 인간 가치의 결여 등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 장점에만 치중하다보면 부의 불평등현상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기본 동인인 인센티브 시스템 억제를 통한 해법을 찾을 수도 없는 일이다. 사회 전체의 균형있는 발달을 저해하는 문제점 때문에 선택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산주의 물결이 세계를 지배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거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붕괴한 전적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역시 인간의 욕심을 통제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자본가들의 무절제한 이기심이 시스템 자체를 마비시키는 시도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자본주의 종말을 부를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부른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음모가 세계 경제 질서를 교란시킨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왜 자본주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번 시위 사태의 심각성이 월가의 점령이라는 물리적 상황 보다는 자본기득권층을 타도 대상으로 삼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에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결국 미국의 미래도 여기에 달려있는 셈인데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미국이 됐건 우리가 됐건 결국 문제 해결의 핵심은 기득권의 대오각성이다.
몰핀이나 마약 처방으로 마치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기득권층의 무사안일하고 이기적인 관점이 늘 문제다. 사술로 자리를 꿰어 차고 시간을 끌면서 행복한 노후 보장이 가능한 절대적 가치인 ‘돈’만 챙기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 유전자가 작동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체제 마저 헌신짝처럼 던져버릴 수 있는 탐욕에 찌든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할 만큼 곪아있는 눈 앞의 현실이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리겠다는 자기희생적 각오로 문제를 접근하지 않으면 답 구하기는 참으로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저 자성을 통해 거듭나야겠다는 뼈를 깎는 절박함이 필요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우리 사회의 기득권 계층으로 혜택을 많이 받은 수혜자의 한사람으로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한없이 무거워지는 마음이다.

(2011.10.5)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재승박덕(才勝薄德)

재승박덕(才勝薄德)
각별한 친구 동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청천벽력의 충격과 함께 다가왔다.
이제 막 오십을 넘긴    죽음이기에  안타까움이  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 일이 다 좋기만 한 것도, 다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도  자꾸만 허둥거리게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뭐든지 잘하는 재사였고 명문대를 졸업한 이후에도 남보다 빠르게 재벌기업 사장자리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는 모습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그였다.  그런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죽음의 지대에 속해있는 현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세상일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친구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말로 어떻게 친구를 위로할까 싶어 슬그머니 속울음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더 없이 착잡한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아마도 미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황없이 상가에 앉아있는 와중에도 가인박명(佳人薄命), 재승박덕(才勝薄德) 고사성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삼국지에는 젊은 나이에 계륵이라는 고사를 남긴 채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는 양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나치게 머리가 좋았던 그는  계산하다가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는 기회를 놓치고   결국 그 일이 조조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공자의 애제자였던 염구 역시 재승박덕 때문에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케이스다. 염구는 공자가 여러 곳에서 ‘藝’에 밝고 재상이 될 만한 재목’이라고 평할 만큼 재능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대한 그의 빠른 이해력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옥죄는 족쇄가 되고 만다. 얕은 꾀로 스승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현실 안주를 도모하다가 공자로부터 파문 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재능과 인품을 겸비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경계한 선인들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세상 유혹이나 실패에 놓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의 속도조절이 가능한 내공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깨닫게 해 줬다. 
 
상가에서 나와 착잡한 마음을 식히려고 올려다 본 밤하늘 별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고왔다. 
장례식장 건물  너머 4343주년 개천절을 기념하는 태극기가 밤 경계를 가르고  묘한 조화로 나부끼는  모습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우주의 한 점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미미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빛의 산란이 신의 계시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득 계산도 상상도 안되는 개천절 기념이 우리 삶에 무슨 의미로 존재하는 걸까 싶었다.  과연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뭇계산들에 무슨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반만년 역사의 속도로 비춰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인간의 생과 사의 기계적인 교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좀 더 현실적인  판단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잘난 계산 솜씨만 뽐내고 있을 게 아니라 그것보다는 인간의 장구한 역사에 걸 맞는 통 큰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제 안에 찍힐 당당한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내며 허물을 벗고 나설 시점이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일에 좀 더 초연하고 담대하게 맞붙는 호적수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음이다.
 단, 지나친 자신감은 금물이다.  영글지도 않은 승리에 도취하면 더욱 더 안되겠다.

다시 상가로 돌아오니  누군가가 전화기  너머에서  숨가쁜 호홉을 내뿜고 있었다.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박원순씨가 됐는데 재미있겠다라는 전언이었다.    이번 선거가 녹록치 않을 것 같다며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의 정치계산으로  복잡해진  심경을 내비쳤다. 
흠.
정치 상황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잘 이해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되게 받아들일 수 있는냐에 달려있다는 내 답변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왠지 말개진 느낌이다. 
장독대 뚜껑 덮는 기분으로   하루를  닫고  있는데, 어! 이 묘한 두근거림은 뭐지?
                              (2011.10.4)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짝퉁 원조는 일본이다

짝퉁 원조는 일본이다

독도나 동해 표기 문제 등으로 우리의 심기를 긁는 것으로도 모자랐나 보다. 
 嫌韓 분위기 조성에 나선 일본의 수상한 움직임이 갈수록 그 도를 더하는 양상이다.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날조 비방으로  한계를 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늘 우연히 유튜브에서 접한 동영상만 해도 그렇다.
일본 네티즌이 만든 문제의 동영상은 한일 간의 유사한 콘텐츠에 대해 무조건 한국이 일본을 모방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우리를 비하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혼다의 짝퉁이고 삼성이 일본 기업인 척 한다며 일본짝퉁의 천국이라는 억지로 한국 비방을 반복하는 식이었다.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 현대나 삼성의 파워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망발인지 모르겠다.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지만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는 일본의 도발은 언제나 그렇듯 밉상스럽다. 좀처럼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지리적으로)가깝고도 (심정적으로)먼 일본과의 화해는 정말 요원한 것일까?
 
1980년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일본을 폄훼하는  미국 교수들이 적지 않게 봤다.  
그들은 1960년대 일본 제품을 보면서 ‘일본제라 별 수 없다. 작동이 잘 안되거나 망가지기 일쑤다. 일본 제품에 뭘 바라겠느냐, 일본은 창조 능력이 없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노벨상은 어림없는 일이고  결국 2등에 그치게 될 것'이라며 일본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다. 심지어 몇 몇 학자들은 전범 일본에 대해 ‘전쟁책임도 묻지 않고 국방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모방행위조차 문제 삼지 않는 미국의 지나친 관대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주판알을 튕긴 결과이겠지만 실제로 미국은 2차 대전 종료된 이후 전범 책임자인 일본 천황의 목숨을 부지시켰고 독일을 분단 상황으로 만든 것과는 달리 일본에게는 통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시혜를 베풀었다.  말하자면  미국 덕분에  경제대국 일본의 오늘이 존재하게 된 셈이다.
이후 모방의 천재, 경제적 동물로서   일본이 펼친  눈부신 활약상(?)은 모두가 다 아는 그대로다.
그렇고 그런 식으로 문화와 산업 기술의 짝퉁 천국 과정을 거쳐   경제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보은 차원에서였는지 인색한 본연의 모습과는 달리   미국에게만은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백인 신드롬이 거론될 정도로 미국을 배려하고 닮고자 하는 일본사회의 각별한 노력들은  백인 숭배사상의 깊은 뿌리로 환치됐다.  일본 광고에 백인 모델이 다반사로 등장하는 현상이나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과거 일본 동경 대학에서  발표할 때  일어보다 영어 사용에   더 호의적으로 반응하던 일본의 젊은이들의 모습도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며 일찍이 모방의 가치를 높이 산 아리스토텔레스의 선견지명에 동의한다. 결국 모방으로 시작해서 상대방을 능가하게 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창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흐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는 일본이나 미국 유럽을 모방한 사실을 부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것을 열심히 모방하고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대해 나무라는 것도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유럽 경제 모방을 모토로 근대화를 이룬 과거를 가진 일본이 우리에게 짝퉁천국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한국의 전통 식품인 불고기나 김치, 심지어 막걸리에까지 특허를 시도하는 무모함을 보였던 그들이 말이다.
왕인이나 아직기를 들먹이지 않아도 일본문화가  우리 것을 모방한 사실은 곳곳에 베낀 흔적을 감추고 있는 일본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 일왕이 한국인 혈통임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사실에 이르면 갑론을박 자체가 무의미하다. 

결정적인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나름의 강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식민시대 일본의 수많은 악행이 있었지만 교육에 대한 일본인의 열정 같은 건 충분히 배울 만하다. 또 미국 침공을 감행한 나름의 대담함이나 자부심을 두고 취사선택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동경대학에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배우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접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 경험들이    그들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후학들에게 일본 국민의 우수성을 배우라고  가르치게 하는 것 같다.
토인비 말처럼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를 향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 시점에서는  희망을 품을  방도를 구축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이 됐건 중국이 됐건 한국이 됐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모두에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건설적인 방향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수단을 통해 한국을 임의대로 조종하고자 하는 의도라면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머지 않아 발등을 찍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함부로 짝퉁이니 뭐니 거론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짝퉁 원조가 일본이라는 게   바꿀 수 없는 진실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그야말로 순리대로 살 일이다.
                          (2011. 10.  2)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