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0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無信不立

無信不立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던 40대 총리 내정자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끝내 낙마했다.

총리가 되기엔 지나치게 흠집 많은 과거가 문제였다. 무엇보다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부정직성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탐욕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힐 때만 해도총리내정자는 기개와 자신감 넘치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삶을 정의롭게 관리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그의 장밋빛 미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스스로의 삶에 발목을 붙잡힐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다.

그가 사퇴의 변으로 남긴 ‘無信不立’이 새삼스러운 무게로 이목을 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의 입신양명이 순조로웠을까?



며칠간 떠들썩했던 것과는 달리 또 다른 총리 후보와 장관감의 자질을 검증해야 하는 후속 청문회는 형식적으로 끝나게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미 전쟁이 끝나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 모두 후속 총리 인선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정치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본래의 취지가 퇴색된 청문회제도에 대한 보완 조치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청문회는 원래 고위공직자 후보의 국정철학이나 각 분야별 추진사업의 소신 등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런데 작금의 청문회는 모든 국민들에게 제대로 살아온 자신의 행적을 담보로 앞으로 맡은 직책을 어떤 식으로 운영해보겠다는 경쟁력을 내보이는 본래의 목적은 아랑곳없이 복마전 양상을 띤 인간도살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결과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통과하지 못한 대로 통과한 사람에게도 상처만 남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책 질의는 간 곳 없고 후보자 비리에 관련된 의혹제기나 이를 추궁하는 목소리, 그리고 거짓말 답변이 난무하는 19금 화면이 된 지 오래라는 소리다.



그래도 청문회 대상이 될 정도면 대부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인재그룹이다. 걔 중에는 미래를 향해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의 롤모델로 자리잡은 인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청문회 검증대를 거치면서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명색이 고위 공직에 앉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면면이다. 그런데도 절제하지 못하고 ‘범죄자’ 수준의 탈불법을 불사하면서까지 탐욕을 부리는 모습이 안방에 중계되고 있는 판이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자칫 그들의 오염된 행적이 국가 전체의 도덕 불감증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청문회 과정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낱 노래자랑이나 퀴즈대결도 여러 번의 예선 절차를 거쳐 본심에 오른 사람들만 공중파를 탄다. 하물며 국가 대사라고 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다.

고위 공직후보가 청문회 석상에 얼굴을 내밀기 전 도덕성을 비롯한 개인적 자질 검증을 위한 예선전을 별도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도덕적 하자가 있는 청문 후보는 막을 수 있는 예비 청문회 개념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자는 의도는 없다. 다만 인재등용의 과오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사전 절차를 거치자는 소리다. 국민에게 선보이는 후보만큼은 도덕성 문제로 시비 대상이 되는 일 자체는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교 시절의 주차위반 경력까지도 문제를 삼는 미국의 엄격한 공직 인선 기준은 진실로 부러운 사회적 합의다. 그토록 까다로운 사전 절차를 거치는 만큼 청문회 석상에서 낯 뜨거운 설전이 오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테니 말이다. 우선은 후보 당사자부터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다면 아예 무모한 욕심을 내지 않고 알아서 빠지는 점도 우리와 다르다. 아무리 뒤가 구려도 일단은 잡아떼고 거짓말로 덮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대비된다.

그렇게 해서 자리에 오른 들 제대로 된 명예나 권위를 갖게 될 리 만무다. 그런데도 움켜 쥔 주먹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 공직후보들의 모습이 그렇게 추하고 몰염치하게 보일 수 없다. 최소한 국민이 느낄 자괴감만이라도 안중에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청문회를 당리당략을 위한 정략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온갖 설화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장에 ‘당첨’된 조현오 후보를 놓고 여야가 주고받는 속 들여다보이는 설전에서도 그 기류가 감지된다.

후보는 명확하게 차명계좌 여부를 밝히라는 성화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내내 알쏭달쏭한 태도를 견지했다. 여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노전대통령의 차명계좌에 관한 조청장 발언이 사실이기 때문에 청문회를 통과했다’고 말을 얹었다. 야당 역시 특검을 요구하면서도 그다지 대차게 밀어붙이는 기세가 아니다. 손학규 전대표가 '부관참시'라고 목청을 높이고 유시민 전의원은 뜸들이는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을 향해 '철없다'고 일갈하며 선동정치를 벌이고 있지만 공허함만 키울 뿐이다.

갈수록 국민 의혹만 부풀리는 대응은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적당히 눙치며 몰아갈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전직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와 직결되는 문제이고 야당도 원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검을 비롯한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제대로 규명돼야 할 일이다. 일이 불거져 나온 이상 그냥 덮고 지나 갈 수 없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그런데도 표류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신뢰를 잃은 의회정치가 표류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리당략의 늪에서 실종되고 있는 의회정치의 암담한 현실이 보인다.



무신불립의 경고는 국회의원들에게도 뼈아픈 얘기임을 각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누구를 위한 청문회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변화를 주지할 필요가 있다. 청문위원으로 나온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며 오직 당리당략과 본인들의 의원직 유지에만 관심이 몰려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정황을 놓치지 말라는 소리다.



좀 더 품격있는 질의와 답변이 오가는 이상적인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고 싶은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발등의 불이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2010. 8. 31)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賞을 주지는 못할 망정

賞을 주지는 못할 망정


선관위가 지난 지방선거 당시 트위터에 경품을 걸고 20대 투표를 독려한 유명인사들을 선거법으로 처벌하겠다고 나서 인터넷이 들끓고 있다.

선관위가 내세우고 있는 처벌근거는 ‘투표유도죄’(선거법 230조 제1항 위반)이다.

선관위의 의지대로라면 임옥상(판화작품 1000점), 권해효(공연 '러브레터' 초대권), 박범신(소설 '은교' 10권), 안도현(시집 '연어 이야기' 30권), 김용택('그 여자네 집' 10권), 이세돌(기념사진 및 사인), 드림팩토리(이승환 10집 앨범) 등 적지 않은 인사들이 '투표를 하게 하거나 하지 아니하게 할 목적으로 선거인 등에게 금전, 물품, 향응 등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을 약속‘했다고 처벌대상이 된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정치 냉소로 그동안 정치적 상황에 무관심했던 20대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낸 건 아무래도 경품 이벤트의 영향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선관위가 투표 독려했다고 처벌 운운하다니 자가당착이다.

해프닝의 진원지가 의심스러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호기로운 장담에도 불구하고 선관위가 쉽사리 뜻을 이루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 이해관계 없이 투표독려 했다고 처벌한다는 것은 처벌규정을 적용할 명분부터가 불분명하다. 법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다. 이들을 처벌하려면 우선 문화상품권을 주겠다며 대대적으로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였던 지자체나 선관위 스스로부터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얼마 전 슬그머니 봐주고 넘어갔던 여당 여성 국회의원의 트위터 상 불법 사안의 재검토도 불가피하다.

우선 당장 네티즌들이 공정한 법 적용을 요구하며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 마당이다. 무엇보다도 후반기 정권의 핵심지표로 기회균등과 상생의 토대 위의 공정한 사회를 표명한 대통령의 8.15 축사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다는 점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과잉충성과 정치보복.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빠지지 않는 정치적 악습이다.

여당이 특별히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상을 차리는 사람들이 문제아다. 지나치게 넘쳐 탈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같은 부끄러운 행태까지도 지탄의 대상이 되어 손가락질 받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당시 야당 중진의원이었던 한 지인은 정권이 바뀌면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엄청난 보복정치의 폭풍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정치생리를 너무나 잘 아는 선견지명의 결론이었는지 모른다. 전투에서 지면 삼족을 멸하는 가문지화를 당하게 돼 있는데 그나마 숨이라도 붙어 있으면 다행인 줄 알라는 자조섞인 농담도 정치권 일각에서 떠도는 메뉴 중 하나다.

정권의 칼자루를 쥔 손에 따라 갑과 을의 입장이 바뀌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여당도 야당 하면서 겪었던 아픔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여당을 보면 호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했던 며느리가 막상 시어머니가 되면 더 혹독한 시집살이 메뉴를 들고 나온 형국이다.

나도 지난 시절 끔찍한 정치보복을 경험한 바 있지만 나 역시도 막상 상황이 되면 어떤 형태의 ‘가해자’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습의 반복으로 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할 일이다. 또 구차한 과육을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SNS 열풍이 사회적 트랜드를 주도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 기능과 역할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위터 선거운동을 문제 삼는 건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분명 문제가 있다. 문명의 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창의적 결과가 나오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걸림돌이 되면 안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바른 말과 정의가 통하는 정치를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

최소한 국기를 흔들거나 거짓말이 아니라면 사상과 신념에 따른 자기소신은 어떤 상황에서고 보장돼야 마땅하다.

옆길로 새고 있는 한심한 현실이 선관위의 미래를 더 걱정하게 만든다.



투표 독려에 참여한 트위터리안 처벌을 적극 반대한다.

그들은 처벌이 아니라 賞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2010.8.27)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김연아에게

김연아에게



김연아와 오서 코치가 서로를 결별의 원인제공자로 지목하며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결별 배경과 관련 김연아 어머니에게 섭섭함을 토로한 오서 코치의 인터뷰에 발끈한 김연아가 가세하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김연아는 자신의 트위터나 미니홈피를 통해 ‘거짓말하지 말라’며 오서를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사제지간의 각별함을 보이던 모습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이들의 환상적인 하모니는 이미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린 바 있다.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하던 이들의 관계는 모든 매체가 열광하며 보도할 만큼 애틋하고 각별했다. 김연아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오서의 헌신을 전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랬던 그들이 결별과정에서 거의 막장 분위기로 서로를 탓하고 있는 것이다.



회자정리라고 했다.

인간의 모든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이 따르기 마련이다. 삶의 과정에서 진행되는 선택적 영역이 될 수도 있고 죽음 앞에서 불가피하게 순응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인간관계의 진면목은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그것도 좋게 헤어질 때보다 나쁘게 헤어질 때 나타난다.

그런 측면에서 김연아와 오서간의 결별 과정은 아쉬움이 크다. 여러 면에서 이번 싸움으로 김연아가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특히 김연아의 직접 대응은 우려스럽다.

물론 그럴 만한 저간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김연아의 직접적인 공세는 김연아 본인은 물론 이제 막 빙상왕국의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늘 날의 김연아가 있기까지 오서 코치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연아와 오서는 최소한 4년 이상 호흡을 맞춰 ‘세계 정상’ 타이틀을 결과물로 만들어 낸 사이다. 무엇보다도 그냥 단순한 사이가 아니라 사제지간으로 통하고 있다.

그런 만큼 날 선 공격으로 오서를 밀어붙이는 김연아를 지켜보는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김연아의 어머니를 공격하면서도 제자의 미래를 축원한 오서와 비교돼 자칫 성공한 뒤 막말로 갚는 배은망덕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노파심 때문이다.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잔인한 추론일지는 모르지만 이번 소동이 혹시 지나친 모정이 문제가 된 건 아닐까 싶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 성장한 박세리, 신지애에게는 딸을 위해 헌신을 다한 눈물겨운 부성애가 있다. 부모의 헌신보다 더 큰 동력이 없음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남는다.

김연아 어머니가 딸을 위해 헌신한 과정은 이미 널리 알려진 그대로다. 김연아의 어머니로는 흠잡을 데 없는 그녀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모성애라고 해도 피겨여왕 김연아 코치역량까지 담보되는 건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김연아의 빙상계 위상이 커질수록 어머니의 기능과 역할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 현실을 직시하고 순응해야 한다. 그것이 순리다. 어느 수준까지는 부모가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세계적인 선수가 된 다음부터는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한 현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걱정은 김연아 글의 여파다.

김연아는 지난 4년 동안 오서와의 사이에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다는 뉘앙스의 글로 오서를 공격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정상에 오르게 된 이후 그 불만을 털어놓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오랜 커플의 갑작스러운 갈등국면에 혼란을 느낄 팬들에 대한 배려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사는 선수로서의 의무다. 자기들만의 일이니까 밝힐 필요가 없다는 식의 대응은 오만하다는 새로운 불씨를 자초할 수 있다.

이번 갈등 국면이 정상에 올라있는 김연아를 겨누는 세력에게 호재가 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분명 사려 깊지 못한 처신이었다. 차라리 허심탄회한 대화로 결별 수순을 밟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오서를 직접 만나 그동안의 서운함을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식으로 조용히 둘의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 지었다면 이렇게 진흙탕싸움으로까지 확대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상을 쟁취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정상을 지키는 일이고 또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상의 김연아를 둘러싸고 터져나오는 불협화음이 걱정스럽다.

진작부터 김연아의 지나친 광고 노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터다. 지나친 상품화로 정상의 스타가 그 빛을 잃게 될까 우려하는 팬들의 걱정이다.

우리에게 있어 문제는 스타 부재현상이 아니다. 그나마 육성된 스타를 잘 보호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김연아의 그 좋은 이미지가 상처를 입지 않은 채로 온전하길 바란다.

영원히 온 국민, 아니 온 세계인의 뇌리 속에 불멸의 김연아로 남았으면 하는 아쉬움에 몇 자 적었다..



(2010. 8. 26)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IBM의 선택

IBM의 선택



내가 대학 다닐 당시만 해도 IBM의 오랜 명성은 참으로 대단했다.

IBM 로고가 찍힌 타이프라이터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그 육중하고 잘생긴 외형도 외형이지만 단 한번의 타이핑만으로 오타가 수정되는 기능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IBM의 요새가 영원한 난공불락일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최고의’ 수식어는 IBM 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경영진, 최고의 기술, 최고의 엘리트 직원, 최고의 시장 점유율, 최고의 수익률 등을 자랑하는 컴퓨터 업계 지존으로서의 확고부동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자부심이 치명적인 '독성’으로 전환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이 되고 그 오만함 때문에 퍼스널 컴퓨터 혁명이 진행 중이던 시장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탓이다.

치고 올라오는 경쟁사들에게 밀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급기야 누적되는 적자가 초래한 경영위기 앞에서 IBM의 아성이 풍전등화의 신세로까지 전락하게 된 것이다.




위기에 처한 IBM을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CEO, 루 거스너와 새뮤얼 팔미사노 없었다면 IBM의 재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루 거스너는 실속없이 방만하기만 했던 조직을 줄이는 등 혁신적인 기법으로 경영의 효율을 꾀해 IBM의 활로를 구축한 공로를 세웠다. 새뮤얼 팔미사노는 기존의 IBM 브랜드 정체성에 연연하지 않고 획기적인 체질개선을 감행하고 나섰다. PC 사업부문을 팔고 그 대신 컨설팅·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합병하는 등 IT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 한 것이다. 2002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앤쿠퍼스(PwC)의 컨설팅 부문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00개 이상의 소프트웨어·서비스 기업을 사들였다. 당시로서는 거의 도박수준의 결단이었다.



덕분에 IBM은 2008년 말 들고 나온 ‘스마터 플래닛(Smarter Planet)’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지구촌’ 혁신의 리더를 자처하고 나설 만큼 회복돼 있다. 첨단 IT를 대중교통이나 식품유통, 수자원 보존, 의료 시스템, 에너지 산업, 건강관리 시스템 등 공공 및 민간 영역에 적용하는 데 IBM이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 성과도 있다. 벌써부터 뉴욕시 범죄율 27%를 절감시키는 1등 수훈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조만간 IBM의 과거 명성을 되찾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드웨어와 파이낸싱, 컨설팅, 소프트웨어 등의 프로세스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느 IBM만의 특성을 살린다면 목표로 하고 있는 기업이나 정부가 필요로 하는 ‘End-to-End' 패키지 시스템 제공 실현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통찰한 리더의 결단이 없었다면 IBM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오늘 날 지구촌 혁신의 꿈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IT회사로서의 자신감은 물론 IBM의 명운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리더의 미래 통찰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일본의 소니가 이제는 삼성이나 심지어 엘지에 굴욕을 당하고 현실 역시 시대를 앞서 읽지 못한 잘못이 크다. 모토로라나 노키아가 겪는 어려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삼성이 제일제당 삼성물산에서 IT 삼성으로 주요 기업을 바꿔나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단 기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국가가 됐건 개인이 됐건 혁신과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경이로운 발전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발전은 우리의 창의적 노력에 의한 결과물이라기보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다만 ‘보기 좋고 편리하고 그리고 좀 더 값싸게 재가공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기존의 ‘솜씨’만으로 세계 시장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IBM의 변신을 벤치마킹해야 할 이유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구태는 과감히 버리고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우리 만의 독특한 ‘영역’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도전 정신과 진취적인 자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가다가 작은 만족에 홀려 이 정도면 된다는 안일함은 과감히 던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래의 부는 저절로 굴러드는 호박이 아니다.

IBM의 선택에서 길을 모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PS: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지금 머물고 있는 체코의 데친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체코나 헝가리, 폴랜드 등의 시가지 정서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시절의 폐해가 남긴 흔적이 여전히 국민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유머와 의욕을 잃은 표정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한 나라의 흥망성쇄와 국가 리더십의 연관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대표의 회동소식을 이국땅에서 전해 들었다.

좋은 분위기와 유익한 대화가 있었다는데 두 지도자의 만남이 국민의 희망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국민은 특정 지도자의 부속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지도자가 국민에게 져야 할 막중한 책임이 다시한번 환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순리를 거스른 지도자들이 역사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았던 이전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겠다.

(2010.8.24)

....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미국 박사가 능사?

미국 박사가 능사?



미국 박사만 있는 국내 국책연구기관의 편중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부분의 박사급 연구위원들이 미국 학위 소지자라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표적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KDI(한국개발연구원)의 경우 54명의 박사급 연구위원 중에서 50명이, 조세연구원은 30명 중 28명이, 한국금융연구원은 32명 중 30명이 미국 학위를 갖고 있었다.

미국을 추종하는 해바라기도 아닌데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항변에도 불구하고 시각의 편중성, 글로벌 지역경제에 대한 전문성 부족 등 지나친 미국쏠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본교 출신의 진출을 제한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인사방침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대학 당국이 하버드 박사 출신이 전체 임용의 40%를 넘지 않도록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버드 의대나 로스쿨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비 하버드 출신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정도로 학문적인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풍토가 기존의 경험과 너무 달라 놀라웠다. 하버드엔 스탠포드 출신 총장이, 스탠포드엔 하버드 출신이 총장을 지내고 있었는데 사회적으로도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던 기억이 난다.

우리 국내 주요 대학들이 자기 대학 출신 임용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선진 교육 풍토가 부럽기까지 하다.



중동이나 일본의 경우 왕실 내부의 혈통을 유지하겠다는 일념으로 근친결혼을 관례화했지만 간단치 않은 후유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윤리적 측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생학적 차원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학문 분야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비슷한 성향끼리의 무리 짓기는 조직 내 소통과 교감이 배가되는 측면은 있지만 발전적인 결과물 도출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기능을 발휘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부시 행정부에서 임명한 국방장관이 사의를 표하자 간곡하게 잔류를 요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붙잡는 오바마와 이를 고사하는 국방장관의 모습이 얼마 전 정부기관 산하기관장들과 ‘닦달하고 버티며’ 소요를 일으키던 우리 현실을 부끄러움으로 떠올리게 했다.

통상적으로 ‘회전문 인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인재선택의 영역을 넓히는 포용력이야말로 실리적인 안목의 제1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우수한 집단이라고 해도 ‘정통성’만 주장하다가는 스스로의 치명적 문제점을 해결할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인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평소 좀 더 다양한 인재풀에서 생각이 다르거나 심지어 반대편 진영까지도 중요한 시점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른 바 본격적인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광의의 안목 없이는 21세기의 파고를 넘을 수없다는 절박감을 가져야 할 때다. 미국위주였던 그간의 기류가 달라지고 있는 흐름을 눈치 빠르게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질적으로 각국의 대미 의존도가 시시각각 낮춰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그늘에 안주하려는 안일함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미국 박사가 어떤 결정적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일부 학자들 주장대로 정 안되면 쿼터제 도입으로 국책기관의 논의가 우리 실정에 맞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다양한 인재풀을 통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그때 그때마다 적절히 대응하자는 것.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2010.8.21)
...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살자', 그리고 '낳자'

'살자', 그리고 '낳자'



세계적인 국내 재벌가 3세의 자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던 날 고등학생과 중학생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기 절정을 달리던 박용하의 자살도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이것이 자고나면 새로운 자살 소식이 울렁증을 일으키게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한해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만 2,858명, 하루 평균 35명, 40분마다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통계치가 있다.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자살률 감소를 보이는 OECD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만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저런 위치에서 자살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던 이들이 자의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선택할 수 없는 몹쓸 횡포다.

배우자, 자녀, 부모, 가족, 친구, 이웃, 동료 등 자살자의 주위 사람들이 겪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양상이다. 두통, 불안, 긴장, 피로, 기분변화, 수면장애, 집중곤란, 분리와 소외감 등에 시달리는 것은 기본이다. 한 사람의 자살로 6명의 주변인이 심각한 충격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얼마 전 누나의 뒤를 이어 자살한 배우 최진영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엄청난 상실감과 자살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유가족 자신이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까지 있다.

자살률 최고의 불명예 낙인이 찍힌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일이 참으로 불행한 것 같다.



아이 키우기가 두려워서 아이들을 낳지 않는다고들 한다.

실제로 저출산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자살 못지 않게 심각한 '발등의 불'이 된 지 오래다.

1인당 평균 출산율이 1.15(2009년 기준)에 불과하니 오죽 할까 싶다.

2009년 한국사회 동향보고서에서도 급격한 출산 저하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이 경고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구 감소가 노동력 감소로 이어지는 현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현재의 30대를 국가 경제기반의 중추세대로 봤을 때 이들이 노인세대가 되는 30년 후 이를 대체할 노동인력이 부재하다는 게 문제다. 저출산이 초래한 인구의 역피라미드 현상이 경제성장 동력 악화와 경제 불황 수순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적 안전망까지도 위협받게 된다. 우선 당장 의료비 지출이 국내총생산의 10%를 넘어서는 2043년부터는 국민연금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와 있는 판이다.

저출산 문제가 노동력이 국가의 존립기반이라는 원칙에서부터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자살이나 저출산이나 개인의 선택 영역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회적인 여파나 그 폐해를 생각한다면 개인적인 만족 여부에 국한될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극도의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할 일이다.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출산은 우리가 받은 그대로를 후대를 위해 물려주는 의무 이행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다. 부모님의 출산 결정이 오늘 날 우리를 존재하게 한 것처럼 우리 역시 후대를 위해 출산의 수고를 감내해야 할 강제적 조항으로 해석돼야 한다.

아홉, 열 자식을 두고도 늘 넉넉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우리의 윗세대를 생각하면서 즐겁고 기꺼운 마음으로 부모가 되자. 그리고 죽을 힘으로 한 번 살아보자.

그렇게 우리 힘으로 우울증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내 보자.


(2010. 8. 19)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권력구조보다 실천에 관심을

권력구조보다 실천에 관심을

영화 ‘로마의 휴일’ 주인공으로 나오는 오드리 햅번은 영국 왕실 공주의 하루 일탈을 그려내는 깜찍한 모습으로 모든 남자의 로망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공주의 존재가 있었다면 이 살벌한 정치판이 조금은 순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때 그런 로맨틱한 상상력을 곁들여 ‘내각 책임제’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국민적 지지를 배후로 한 왕실의 권위가 내각 정치의 방향을 순화시킬 수 있는 국가적 상징으로 작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특히 왕실의 권위가 동서남북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민심을 하나로 묶는 중심이 되고 국가 기관의 권력분점이 보장된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바 크다.

비록 정치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게 되는 단점은 있지만 일당독식과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을 줄이고 내분이나 내전에 대한 걱정을 순화시킬 수 있다는 계산으로 내각제를 대안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의 5년 단임제는 권력의 장기집권 야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반영된 시대적 산물이었다. 그러나 장기집권 가능성이 불식된 현실로 볼 때 5년 담임제의 시대적 소명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개헌 논의 명분은 상당히 축적돼 있는 셈이다.

현실적으로도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매 정권마다 의욕을 보여 왔던 개헌 논의가 이번 정권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이번 개헌논의 과정에서 현 정권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이원집정부제는 앞서 도입한 프랑스에서도 그 부작용으로 여러 문제점들이 지목된 바 있다. 프랑스 정국의 혼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걸 보면 그 폐해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집정부제라는 구체적 목표에 총력을 집중하는 정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는 분위기다. 대통령, 실세장관, 여당 지도부들이 연일 지원사격으로 열심히 개헌 분위기를 북돋고 있다. 특히 실세장관의 거침없는 행보가 인큐베이터에 있던 이원집정부제도의 출격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면서 전운마저 감지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가 초당파적으로 대응해야 할 통일이나 외교, 국방 문제를 국내 정치와 거리를 두게 한다는 측면에서 기대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본래 취지에 충실해서 운용의 묘만 살릴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의회정치 실현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수준으로 미루어 볼 때 강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될 개연성이 크다. 분권정치나 계파정치의 부활이나 국민주권 침해, 여론외면 정치 등의 부작용으로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속화 시킬 위험인자들이 엄청나게 많다. 결국 외치와 내치 모두가 엉망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우려를 지우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방향의 개헌이든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헌의 완성도 여부는 장점과 단점이 항존할 수 밖에 없는 여건에서 결국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운영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개헌논의도 권력구조의 개편에 관심을 두는 방향이 아니라 삼권분립 확충방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정부통령제도하의 4년 중임제를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헌논의 과정에 사심을 배제하는 일이다.

특정한 인물이나 세력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꼼수나 자기세력의 득세를 위해 함정을 파는 차원이라면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혹여 성공한다고 한들 존립자체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학습한 바 있다.

아무리 머리좋은 사람들이 국민의 뜻을 빙자하여 현란한 수를 둔다 할지라도 결국은 국민에 버림받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까운 과거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전두환 정권이 내각제를 주장하다가 결국 국민 저항에 부딪혀 대통령 직선제로 바꿨고 사심에서 출발한 JP의 오랜 내각제 주장도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국민 자신도 선거가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사용해서 거시적으로 민족의 장래에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고민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국가 권력의 멋대로 질주를 막아낼 수 있는 동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참에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 정국을 만들어 내자.



PS:통일세 신설을 찬성한다.

그러나 통일세라는 이름은 반대한다. 자유세나 미래세 등으로 명명하고 사용처도 포괄적으로 명시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통일을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그 취지에 동감하지만 통일세라는 이름이 갖는 미묘한 뉘앙스가 본래의 취지를 탈색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 2010. 8. 18 )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이제는 우리도 주역이 되자

이제는 우리도 주역이 되자


앙드레 김의 타계 이후 대한민국 전체가 술렁일 만큼 그의 생애를 기리는 말이 성찬을 이루고 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아쉬움 속에서 그를 떠나보내고 있다.

나 역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이었지만 수많은 언급들이 있어서인지 특별한 감정이 덧붙여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전할 8.15 기념사를 준비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8.15 광복절이 아직은 진정한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완성도 높은 삶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흔적을 돋보이게 했다.

단순히 세계 패션계의 거장으로서만이 아니라 한평생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았던 장인의 자존심과 애국심이 새삼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세계 패션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 앙드레라는 이국적인 이름에 자신의 기본 뿌리인 金을 조합한 의도부터 시작해서 그가 나라를 사랑했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외국산 옷감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에 단 한 번도 모피의상을 제작하지 않았던 뒷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애국심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우직한 성정이 그로 하여금 흰색 의상과 독특한 머리모양, 말투, 제스처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자기만의 독창성을 고수할 수 있게 한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순백으로 물들이며 순백을 지향했던 자신의 독창성을 완성시켰다.



65번 째 8.15 광복절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사를 향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과 유사한 역사와 전통, 풍습을 가지고 있는 여건인 만큼 발군의 독창성을 발휘하지 않는 한 세계무대의 주역이 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세계 속 대한민국을 어떤 독창성으로 자리매김할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독특함이나 창조성으로 대표되는 독창성은 우선 나름대로의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만들어지고 용기가 있어야 지킬 수 있고 그리고 실력이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확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세계를 제패한 피겨 스케이팅,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축구, 골프 등으로 세계의 호감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내세워 세계 변화의 주역이 되겠다고 나서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도전정신이나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비롯,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세계사의 앞과 뒤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던 나라들만 해도 세계에 각인된 각국 고유의 캐릭터가 저력으로 뒷받침 된 정황이 있다.

이 같은 정황에서 문득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도 대한민국만의 캐릭터로 세계 역사를 주도하는 선진대열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말이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으로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쟁의 비극과 일본의 강점기를 거쳐 아프리카보다 더 비참했던 가난의 시기를 극복해 낸 대한민국이다.

이 같은 과거 상황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세계평화의 발원지로 상징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쪽으로 우리의 독창성과 창의력을 집중해서 우리도 우리만의 정체성으로 세계를 주도할 동력을 갖자는 말이다.



실제로 오천년 역사 동안 무력으로 남을 침공하거나 식민지로 삼은 일이 드문 우리다.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심성 착한 국민성 또한 유별나다. 또 원조받던 입장에서 지원국이 된 지금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빈곤국의 아픔을 우리만큼 잘 이해할 수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세계 평화나 빈곤퇴치 캠페인을 주도하기에 우리나라만큼 적격인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사상과 이념 변화의 물결이 첨예하게 마주했던 만큼 지구촌 그 어떤 갈등도 수용되는 메카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역사가 웅변해주고 있다.

물론 상징성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다. 거기에 걸 맞는 실력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 우선 당장 뛰어들기엔 자체적으로 선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는 내부 형편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일단은 국가의 미래 비전을 세우는 일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밑그림 그리기부터 시작해서 희망을 완성시켜 보자는 얘기다.



명품의 삶을 살다간 앙드레김은 오랫동안 사람들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당분간 그를 대체할 한국산 세계적 거장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늘에서도 자신의 조국이 명품 국격으로 세계를 주도하기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평생을 소원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주역이 되자.
(2010. 8. 15)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희망을 쏘자

희망을 쏘자



어릴 때 나는 엉뚱하게도 연극배우를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시작된 갈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으니 얼마나 깊이 소원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면서도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연극배우’라고 대답한 적은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기억도 없다. 속내를 감히 드러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당시 집안 분위기로는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지레 포기가 됐기 때문이었다.

요즘이야 부모들이 자녀들의 연예계 진출에 더 적극적으로 팔 걷어 부치고 나설 만큼 세상이 달라졌지만 그 때는 달랐다. 춥고 배고픈 가시밭길의 연속이고 고생문이 훤하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어느 부모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에 당시 분위기가 요즘 같았다면 나는 연극배우가 될 수 있었을까?



요 근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일들을 보면서 희망을 북돋는 일과 꺾는 일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은 희망 키워드의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을 만하다. 잘 살아 보자는 희망 독려로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고 또 결실을 거뒀다.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천년의 빈곤을 퇴치하고 우리도 잘 살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준 것은 무엇보다 큰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벤치마킹 하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반면에 대다수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희망과 거리가 먼 풍경들이다. 젊은이들의 희망을 꺾고 강요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봉급을 한푼도 안 쓰고 오십년을 꼬박 모아도 강남의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고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사회가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희망의 메시지를 창출하지 못하는 무능한 위정자들의 안일함이 초래한 부작용에 다름 아니다. 국가의 무능이 국민의 희망을 꺾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희망 꺾기’가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너무나 뻔하다.



사회건 개인이건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젊은이도 마찬가지다. 젊은이가 희망을 잃으면 이미 스스로의 역량을 포기하는 것이다. 희망과 함께였다면 어떤 위기가 와도 이겨낼 수 있고 가능성을 실현해 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은 더 없이 중요한 일이다. 희망을 독려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평소 생각하고 있는 ‘희망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좋은 희망쏘기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야구나 미식축구의 치어리더처럼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희망을 쏘아올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로 하여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독려하는 주변의 관심이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때로는 허황되게 들리는 얘기일지라도 참고 들어주는 포용력이 희망을 성사시키는 결정타가 되기도 한다.

안철수나 빌 게이츠의 성공신화를 조금 더 과장해서라도 많은 이들에게 꿈을 주는 일은 유의미하다. 현재가 됐건 미래가 됐건 사회적 공조를 통해 롤모델의 스킬을 창조해내는 상황도 배제할 필요가 없다. 롤모델의 대상이 늘어나는 것도 바람직하다. 꿈을 실현한 성공담이 같은 성공을 이루고 싶은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롤모델을 구축하는 건 어떻게 보면 사회적 책무 중 하나일 수 있다.

돈이나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적극적인 조력이 필요한 것도 아닌, 희망쏘기에 가장 필요한 사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과 배짱이다.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을 사람들이 이해 못하거나 무시해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배짱이나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거침없이 동네의 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도록 하자.



연전에 작고한 장영희 교수가 생각난다. 고통받는 사람에게도 늘 그 나름의 기쁨이 있고 그래서 살아갈 힘이 나온다며 그 자신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생전의 그녀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만큼 위대한 힘이다.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그녀만큼 온전하게 희망을 품고 살았던 이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녀는 갔지만 그녀가 생전에 쏘아 올리던 희망은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희망의 힘이다.

우리도 그렇게 희망을 쏘자.
(2010 . 8. 12)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2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오실 님

오실 님


홍문종



간다
가안다
님이 간다
세월도 간다



온다
온단다
님이 온다
세월이 온단다



아주 가지도
멀리 가지도 않건만
보내는 마음 섦구려



오소서
마음일랑 노지먈고
길일랑 잃지말고
앞만 보고
내만 보고 오소서


(2010. 8.12)

2010년 8월 1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가깝고도 먼

가깝고도 먼


가깝고도 멀다는 이웃나라 일본.

일본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가풍 탓인지 개인적으로 일본을 친밀하게 느껴본 적은 없다. 무심히 외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럴 수 없게끔 늘 신경을 자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본 동경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도 항상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이 강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이 우리를 압도하는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일본국민의 매너가 놀랍다. 선천적 기질처럼 여겨질 정도로 일상화 돼 있는 친절한 국민성에 일본의 노련한 저력이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일본인의 사소한 일상에서 ‘선진국민의 여유로운’ 면모를 찾아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일본 방문길에서도 그들의 친절한 국민성이 발휘하는 위력을 직접 체험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을 바라보는 심정이 참으로 복잡다단해진다.

그들을 인정하면서도 반드시 뛰어넘고 싶은 오기가 작동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오사카에 가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보고 오라는 조언에 따라 하루 일정을 떼어 그곳에 갔다. 할리우드 영화를 모티브로 꾸며진 무비테마파크였는데 초대작 영화를 생생하게 재현한 놀이기구며,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오사카 특유의 살인적 더위와 6100엔이라는 고액의 입장료, 그리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넘치는 인파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세계적 명성을 대변하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각 영화에 사용됐던 세트장에 눈길이 갔는데 그것도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30분까지 줄을 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인내심 없이는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점심 먹는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싼 가격대와 길게 늘어선 줄은 여전했다.

한참을 줄 서서 배급받은(?) 닭 튀김 한 조각과 음료를 식판에 받쳐 들고 구내식당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리를 찾고 있는데 지나던 사람이 그만 내 식판을 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음료가 쏟아져 나의 밥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나를 친 중년의 이국 여인은 연신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미 쏟아진 밥상이었다.

순간적으로 굉장히 난감해졌다. 저 긴 줄을 또 기다려 새 밥상을 차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먹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식당 종업원이 달려와 연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이내 똑같은 메뉴가 담긴 식판을 가져다주고는 자기 일로 돌아갔다.

감동이었다. 그 짧은 순간의 감동이 줄을 서느라 곤두섰던 신경줄을 스르르 풀어냈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이보다 더 복잡한 상황에서 식사를 하는 등 황당한 경우가 많았지만 일본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의 이번 경험은 특별했다.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일본이 강국이라는 사실을 절감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택시를 이용하면서도 일본의 선진국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기사의 인상적인 안내 말이 이어졌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 두 가지 길이 있다. 길 하나는 10분 빠른데 고속도로를 타야하기 때문에 비용이 1000엔 정도 더 나온다. 나머지 구 길은 시간이 좀 걸리는 대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바가지 쓸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배려’였다. 가끔씩 승객과 택시기사 사이의 요금 실랑이가 목격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되는 경험이었다.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간단한 영어로 택시기사들과의 소통에 무리가 없었다. 깨끗한 실내와 절도있는 매너, 휴대용 휴지까지 나눠주는 친절함 등은 결코 간단치 않은 선진국 일본의 풍모였다.

오사카 남방은 저렴한 가격대의 잡화점이 수천 개 쯤 늘어서 있는 거리다. 우리의 남대문 시장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 그곳에서 조그만 필기도구 하나를 구매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상인들의 친절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근사근한 종업원은 내가 구입한 상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케이스에 넣더니 다시 비닐로 겹겹이 재포장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비가 오니까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본이 강국이라고 자인할 수 밖에 없는 여러 정황들이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선진국의 면모이기도 하고.



평소 친분을 나누고 있는 전직 SKY 대학 총장은 한국 식자층들이 중국의 당태종과 일본을 지나치게 얕잡아 보는 편견이 문제라고 했다. 특히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 간단한 나라가 아닌데도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걱정이었다. 두려움의 대상까지는 아니겠지만 일본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잊어서는 안된다는 자신의 지론을 펼쳤다.

나 역시 두 번에 걸친 이번 여름 출장으로 일본이 간단치 않은 나라임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전직 일본 수상이 음주운전 때문에 지방의원직을 사퇴한 아들 일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일본의 모습에서 강력한 국가브랜드의 가치가 읽혀진다. 기본이 확실하게 지켜지는 사회적 합의가 일본을 지탱하는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일본을 제대로 알고 배워서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연구해 보자.

일본을 품는 그것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0. 8. 11)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9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아프리카

아프리카



이번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유난한 감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착취와 억압으로 아프리카를 울렸던 서방세계를 모두 불러들여 안방에서 잔치를 벌인 셈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개최되는 한 달여 동안, 오랜 시간을 착취와 억압의 굴레 속에서 유린당했던 뼈아픈 과거사를 떠올리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그 l주일 뒤에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철폐 투쟁의 구심점이었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92세 생일잔치가 있었다.

전 세계가 이 ‘살아있는 성자’의 생일을 축하했다.

작년부터 만델라의 생일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Nelson Mandela International Day)'로 정한 유엔은 올해 그 첫해를 맞아 축구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만델라 재단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67분' 동안 봉사할 것을 촉구했다. '67'이라는 숫자는 만델라가 1942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입당한 이후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기간을 의미한다. 봉사 활동 확산을 위해 영화에서 만델라 역을 맡았던 미국 배우 모건 프리먼 등 유명 인사들이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오토바이로 행진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독립 50주년의 아프리카가 뜨고 있다.

명실상부한 지구촌의 21세기 경제성장 동력으로 자리를 굳히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인류문명의 발생지였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본격적인 용틀임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세계가 목도했던 월드컵 주최국으로서의 단단한 면모는 우연이 아니다.

이제 아프리카를 무지와 가난, 에이즈, 분쟁으로 피폐해진 죽음의 땅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검은 대륙을 향한 지구촌의 뜨거운 구애가 연일 줄을 잇는 형국이다. 거액의 차관과 원조를 앞세워 아프리카와의 스킨십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9억 인구의 아프리카는 무궁무진한 수요가 예견되는 여전히 ‘수줍은’ 미래의 소비시장이다. 석유·가스·희귀 금속 등의 천연자원과 관광자원의 보고라는 점도 아프리카의 기대치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거대한 규모의 자원들이 개발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곳 투성이라는 매력이 전 세계의 발길을 아프리카로, 아프리카로 끌어들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저마다 젯밥에 흑심을 두고 있는 형국이지만 아프리카로선 꽃놀이패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아프리카 독립 50주년을 기념해 케냐와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46개국에서 100여명의 기업가와 NGO활동가를 백악관으로 초청한 오바마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역설한 바 있다.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프리카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사전 포석을 두는 의도가 역력하다.

중국 역시 아프리카 공들이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아프리카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중국- 아프리카 포럼회의를 베이징에서 개최하고 아프리카 대륙 53개 국가 정상을 모두 초청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정부가 아프리카간의 무역관계를 얼마나 중요시 하고 있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못지 않은 선견지명으로 일찌감치 아프리카에 터를 잡은 일본의 공세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이고 있다. 사업확장에 나선 민간기업의 공격적 투자가 도로 및 원자로 건설, 자동차 생산, 식품 판매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의 전쟁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는 아프리카 쟁탈전(?) 속에서 지금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겨우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남들 다 지나간 뒤에 뒷북이나 치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주경쟁은 기술력 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아프리카 경쟁구도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적극적인 관심을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역할 할만한 콘텐츠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공업이나 중공업 분야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현지 투자와 함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우리 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접근법을 연구해 보자.



PS, 아,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시점에 삼성전자가 10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ㆍ한국국제협력단과 아프리카 풀뿌리교육 발전사업인 '브릿지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실행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남아공, 레소토, 르완다, 말라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5개국의 15개 지역에 한국의 청년지역활동가 15명을 파견해 문맹퇴치 및 지역개발 사업을 돕는 프로그램인데 한국국제협력단이 올해 처음 시행하는 민관협력사업(PPP)의 하나라고 한다. (2010. 8. 9 )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개각

개각



집권 후반기 진용이 드러난 휴일 개각이 화제다.

총리를 비롯한 장관급 10여명이 교체된 최대 규모인 만큼 국민적 관심사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정치권에 몸담고 있으면서 여러 번에 걸쳐 개각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두를 흡족하게 만들었던 개각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역대 개각 때마다 정치총리니 대독총리, 무마용, 구색용 등 총리 장관직에 대한 각종 별칭과 이런 저런 구설이 따라붙는 현상을 통상적인 관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임기를 마친 총리 장관들 중에서도 통치권자의 당초 임명 의도를 충족시킬만한 업적을 남긴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를 돌아보면 딱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없다.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라도 내각 구성원의 면면을 결정하는 인선작업은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임시방편이나 논공행상, 코드인사 식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인사는 분명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교체되는 우리와 달리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는 부처 장관이 많은 미국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대통령과 장관이 함께 나서서 지속적인 정치적 아젠다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의 근원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최소한 자신들이 동의한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 당국의 끈질긴 열정에 국민들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반면 파리목숨에 비교되는 우리 정부 각료의 임기 현실로는 자기 소신을 편다는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총리나 장관들이 개인적 소신보다 자리보전이나 보신 정책에 연연해하다가 대통령 신망도 국민 기대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도중하차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국민들에게 일시적인 전시효과나 눈에 보이는 단기적 성과에 급급했다는 질책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모두에게 불행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관의 치'로 그 업적을 길이 숭상받고 있는 중국 당나라 태종의 성공기가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에서 특히 당태종과 그의 부인 장손 황후, 명재상 위징 등의 상관관계를 좀 더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당나라의 융성은 당태종 혼자의 힘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태종에게 쓴소리로 충언을 아끼지 않는 위징과 남편이 위징의 충언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혜롭게 내조한 장손황후의 공로를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적진의 책사 위징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하는 과감한 인사를 단행하거나 부인의 충고를 흘려듣지 않은 당태종 자신의 결단력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의미로 보면 당나라의 번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충언을 계속한 위징이나 귀에 거슬리는 위징의 쓴 소리를 모두 수용해서 국정에 반영할 줄 알았던 태종의 만남이 이뤄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왕에 결정된 개각 내용에 대한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이번 내각만큼은 대통령과 국정 후반을 책임지고 임기를 같이하는 붙박이 내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면 싶다. 당나라의 태종과 위징의 관계처럼 이번 개각이 성군과 충신의 결합물로 흡족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대통령과 각료들이 정치철학과 정치적 신념을 공유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서로간의 소통이 어렵지 않는 동반자 관계로 국정 운영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또한 각료 개개인에게도 소신껏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주문하는 바이다. 임기를 마치고 난 이후 국민 모두가 그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각료로 남겠다는 목표치를 세우면 어떨까 싶다.

이번 직책을 개인적인 정치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기보다 마지막 경력이라는 생각으로 열과 성을 다하는 각오로 임한다면 정권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는 일등공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명품 인선으로 채워진 출발이었으면 싶다.

이번 내각이 정권을 향한 국민의 신망이 넘칠 수 있도록 대통령과 국민사이를 제대로 이어가는 가교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국민적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총리와 장관의 면면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도 행복해질 수 있다.
(2010. 8.8)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7일 토요일

홍문종생각 - 선생 김봉두

선생 김봉두



뉴스 보기가 겁난다.

공무원의 파렴치한 행각에 관한 소식이 하루도 빠질 날이 없으니 하는 말이다.

오늘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산하기관인 한국교육과학기술부기획평가원(과기평)이 그 명맥(?)을 이어줬다.

수시로 허위 출장보고나 인쇄비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예산을 횡령해서 상급 기관인 교과부 간부에게 성상납을 포함해 수천만원 대의 향응을 제공한 기상천외한 범죄수법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고가의 룸살롱 양주, 성상납 등 유흥비로 흥청망청 탕진되거나 외유성 해외 출장비, 심지어 가족을 동반한 간부의 휴가비용으로 지출된 정황 포착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1년여 동안 횡령한 금액이 무려 5700만원이나 된다하니 어이가 없다.



게다가 교과부는 당사자의 자술서까지 확보된 공직윤리지원관실 비위사실 통보에도 불구하고 미봉책에 그친 수상한 조처로 눈총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해임된 사람은 자금을 담당했던 연구원 1명에 불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연루 당사자 중 상당수가 무탈하게 현직을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 여당 정책위원이나 대학 석좌교수로 잘 나가고 있었다. 특히 핵심 연루자가 과기평 징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니 부패 불감증이 만연된 공직사회의 지독한 실체 앞에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혹시나 이번 사건이 세계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소지가 될까봐 걱정이다.



국가의 교육과학기술을 위해 연구하라고 내준 자리에서 공금을 횡령하고 성상납이나 벌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행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가장 선비정신이 투철해야 할 교과부 공직자들이 말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근간이 된 교육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도 그 죄가 크다.

교과부의 미온적 대처가 사태의 심각성을 확산시켰다.

어떤 형태로든 연구 용역비를 빼돌리고 그것으로 성상납이 이뤄진 게 확실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문제를 덮으려고 했던 교과부의 안일함에 대해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그 정도의 범죄는 당연하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신출귀몰한 답변이나 변명에 구출됐다는 건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교육부가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 일변도였던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부패는 안된다.

중국의 국민당이 무너진 것도 부패 때문이고 필리핀 마르코스의 오래도록 견고했던 정치적 아성을 몰락시켰던 것도 부패다. 일본의 다나까라고 다를 리 없다.

반면 우리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사적 재평가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건 경제부흥 측면이 크지만 비교적 청렴한 행적으로 부패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사소한 녹 성분이 무쇠를 녹여버리듯 부패의 독성 역시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긴장을 풀 수 없다.

방치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낼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 많다.



그리고 또 한가지, 교육분야의 자율성에 대한 해 말하고 싶다. .

국회 있을 당시부터 교과부 규모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현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그 때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소신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교육에 관해서는 각 학교나 연구기관의 자율성 확대에 대한 부분을 좀 더 활발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세분화 되어 갈수록 중앙정부의 방만한 통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도 이 참에 ‘자율의 효율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게 좋을 듯 싶다.




이번 사건이 얼마 전 EBS에서 본 영화 ‘선생 김봉두’를 떠올리게 한다.

오래 전 개봉돼 호평을 받은 영화인데 뇌물에만 관심있던 부패 교사가 깡촌으로 좌천돼 그곳의 순진무구한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참된 교사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충격적이다. 공직자 공금횡령에 매춘스캔들까지 포함된 부패종합선물 셋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김봉두 선생은 개과천선해서 그야말로 새나라의 교사로 거듭나는 해피앤딩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이다.

관계당국은 더 이상 눈치보지 말고 여론의 질타가 더 매서워지기 전에 자발적으로 관련자를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대충 이러다 말겠지 요행수를 바라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많다는 것을 앞서의 여러 경험들로 학습했을 것이다.



더 이상 같은 분노와 수치스러움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국민 좀 생각해 주시압.


(2010.8.6)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5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오바마의 칭찬

오바마의 칭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해 1월부터 지금까지 342회의 연설에서 36번(참고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호주와 영국은 각각 6회와 9회, 일본과 프랑스는 17회, 싱가포르 1회, 대만 2회 정도다)이나 ‘코리아’를 언급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가 있었다.

오바마의 잦은 ‘한국 언급’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믿음이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오바마가 연설 석상에서 ‘코리어 벤치마킹’을 외쳐대는 모습은 그다지 생경하지 않다. 대통령 취임 이후 고국인 아프리카 첫 방문길에 나섰을 당시에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한국을 능가하던 케냐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의 1인당 경제규모가 지금은 완전히 추월당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프리카 가나 의회 연설을 통해 ‘한국을 배우라’고 조언한 것도 오바마의 그 같은 심중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본국인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를 향해서도 ‘대한민국’을 외쳐주는 오바마 덕분에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이 소개되는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칭찬이 싫지는 않다.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에 솔직히 우쭐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실체가 곧바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경제발전의 롤모델로 추켜세우고 있는 우리의 경제 실상만 해도 그렇다.

전체적으로 커지고 있는 우리 경제의 파이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몫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금감원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불공정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점들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이를 선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경제발전이 존재할 리 없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도 엊그제 당 회의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기층민들의 생활이나 삶의 질은 추락할 대로 추락하고 부의 편중에 대해 아무런 해법도 제시되지 못한 채 3%의 재벌들이 90%의 富를 독식하고 있는 한국 경제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과대포장은 교육현실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에 대한 오바마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양심상 우리교육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놓지 못하겠다. 그 많은 후유증을 외면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양적 팽창은 교육현장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다른 교육열은 오히려 학생들의 삶을 노예의 그것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독창성 없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문제되지만 개선의 여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렇듯 엄청나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우리 교육이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만한 가를 생각하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부의 편중현상으로 야기된 빈부갈등과 창의력 부재로 비전제시가 불가능해진 교육현장은 21세기 미래한국을 가로막는 명백한 걸림돌이다.

이를 제거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없이 우리의 미래는 단연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 특별히 소외되고 버려졌다고 생각되는 지역에 대한 과감한 인프라 투자 등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 계층 간의 갈등해소를 위한 해법 차원에서라도 정부당국의 고민이 있어야한다고 본다.

교육현안에 대해서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어야겠다. 대학이 됐건 중고등학교가 됐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교육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정책은 어떨까 싶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만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일단은 21세기 대한민국과 개인의 미래를 제대로 개척할 수 있는 자격증에 도전해보자.

다른 사람의 칭찬을 100% 즐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자. 그것도 행복이니까.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낙관해도 좋을 듯 하다.
(2010. 8. 5)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4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자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자



무더위의 연속이다.

날씨 탓인지 요즘 들어 주변 분들의 부음을 부쩍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다.

덕분에 상가를 찾는 일도 그만큼 빈번해졌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장제비나 장례 절차 등으로 허례허식이 판을 치는 상가 풍경은 여전하다. 상가를 치장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백만원대에 이르는 조화 장식이나 복도에 즐비하게 늘어선 조화 행렬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렇더라도 상가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얼굴을 접하게 되는 등 상가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덤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상가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가에서는 다양한 소재가 대화로 거론되는데 인터넷 중독이라고 할 만큼 인터넷 서핑에 열중하고 신문 열독을 통해 세상사에 밝다고 자부하는 나조차 눈이 번쩍 뜨게 하는 내용이 많다.



오늘 다녀온 상가에서는 우리의 부끄러운 휴가문화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인파가 몰리고 있는 피서지마다 쌓이는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실태가 사못 심각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피서지라 할 부산 해운대만 해도 하루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많게는 20톤, 적게는 10톤에 달한다고 하니 괜한 우려는 아닌 듯 싶다. 뿐만 아니라 피서지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향락 위주의 음주가무 역시 사회문제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라는 지적이다.

그런 형국이고 보면 입으로만 선진국민을 자처하는 꼴이어서 얼굴이 뜨거워진다는 우국충정어린 발언도 있었다. 저절로 공감이 가는 현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서구인들의 휴가문화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익히 경험한 바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쉰다는 개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휴가를 제대로 즐길 줄 안다. 산책과 독서, 사색 등 재충전하는 시간을 통해 휴가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들의 여유로움에서 선진국의 깊은 격조를 느끼게 되고 또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주어진 휴식 공간에서는 충실히 충전의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그들의 정립된 가치관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절도있고 합리적인 명품의 격에 대한 선망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들의 선천적 DNA 영향 때문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국격이나 민격을 논하기로 하자면 우리가 그들에 비해 뒤떨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다.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릴 정도의 격조있는 선비문화의 후예들이 바로 우리 아닌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우리도 물론 일부 상류층 인사들의 경우 참으로 격조있는 그들만의 휴가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몇 사람이 품격을 갖췄다고 해서 별도로 선진 국민을 자처하는 것은 위악이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동일한 객체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의 격이 선진국 대열로 올라가서야 비로소 선진국민이 될 수 있는 일종의 공동운명체인 셈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활성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대중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참여만큼 국격을 고양시키기에 효과적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얼마 전 박근혜 전대표가 휴가철 읽어야 할 두 권의 책(열국지와 신로마인 이야기)을 소개한 바 있는데 많은 이들이 같은 책을 찾는 모습이었다.(요즘 같은 피서철로는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독서를 하며 휴가를 보내는 건 성숙한 휴가문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 지도층 인사의 간단한 책 소개가 대중의 변화를 견인하는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동일한 방법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관심을 보인다면 우리의 휴가문화는 피서지에 쓰레기를 쌓아놓는 게 아니라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고 재충전 하는 기회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기들만의 품격을 위해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대중과 함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아무리 궁리한들 독불장군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순응하자.



오늘도 꼬리를 물고 휴가지로 몰리는 차량대열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더 이상 피서지의 쓰레기 문제가 우리 사회의 당면한 고민과제로 떠오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휴가문화 개선을 대한민국의 업그레이드 첫단추로 삼아보는 건 어떨지 여러분의 동참을 기대한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새로운 휴가문화 창출로 대한민국 국격을 올리는 주동자가 되도록 하자.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서 맨얼굴로도 부끄럽지 않게 진정한 선진국민 대열에 설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다 함께 출발하는 거다.
(2010. 8. 4)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투캅스; 이야기

'투캅스' 이야기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이 능청스런 명품 연기로 콤비를 이뤘던 ‘투캅스’는 재미있게 봤던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만난,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맹활약(?) 중인 ‘투캅스’들은 씁쓸함을 남긴다.

경찰과 불법업소 주인 사이의 먹이사슬로 얽힌 뒷거래에 관한 사건인데 발단은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세금 43억여만원을 포탈하고 미성년자를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죄로 업주가 구속되면서부터다. 이런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10여 년간 경찰의 단속대상이 되지 않은 사실이 불거지면서 무려 66명의 경찰이 관련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은 것이다.

그 결과 6명의 경찰이 해임되거나 파면되고 33명이 감봉 또는 견책조치 됐는데 이마저도 ‘제식구 감싸기’라는 질타를 받고 있으니 경찰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불법을 단속해야 할 경찰이 문제 업소와 결탁해 뒤를 봐주는 ‘유착형 비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사행성 게임장 업소를 대상으로 단속 부서 요원들이 업주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단속 정보를 사전에 유출시키는 방법으로 보호하는 정도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닐 정도고 심지어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안마시술소에서 금품을 받아온 경찰이 성매매 신고자의 신원을 유출시켜 보복폭행을 당하게 하는 일까지 있으니 그 치부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만하다.

문제는 이처럼 망가진 경찰조직이 우리사회의 원천적 자본이랄 수 있는 신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이다. 실제로 우리의 신뢰지수는 크게 나빠져 있는 상황이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 결과 한국인은 10명 중 3명만이 남을 믿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신뢰지수가 가장 높은 스웨덴(6.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중국(5.2명), 베트남(5.2명)보다도 낮은 수치다.

우리 사회의 불신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해져 있는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경찰의 타락상에 대한 사회적 지탄은 상상 이상이다.(그 중에 묵묵히 자기 본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없는 건 아니다) 이래놓고 무슨 수사권 독립을 얘기하고 있느냐는 개탄의 목소리 앞에서 자신들을 위한 항변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국회에서 행정자치위원회 활동을 통해 경찰 업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3D직종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불분명한 출퇴근 시스템이나 머리와 몸을 동시에 쓰면서 받는 스트래스 등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힘든 직업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찰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경찰을 적극 옹호하는 親경찰론자였던 내가 오늘만큼은 그들을 변명해 줄 아무 말도 찾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처럼 부끄러웠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권한을 축소하거나 박탈하는 식의 대응은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개선의 여지없이 외면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운자식 떡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더 적극적인 관심과 자극으로 경찰의 환골탈태를 유도하는 게 민주시민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평소 경찰조직을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지고 있는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경찰의 분권화와 봉급 인상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업무량에 비해 지나치게 미흡한 박봉이 부패에 둔감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처우개선으로 경찰의 사기가 진작된다면 업무에 대한 자긍심이 부패의 자정지수를 높이게 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다음 관건은 자치경찰제 도입과 시행이다.

어떤 제도에서도 10%의 부패는 불가피할 지 모른다. 자치경찰제가 조직의 부패를 축소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효과가 크다고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자치경찰제 도입이 경찰조직의 대민 서비스에 대한 의식구조를 바꿔주고 그 질을 높일 수 있는 보완책의 일환으로는 활용 가치가 크다고 보기 때문에 자치경찰제 정착을 주장하는 바이다.

반면에 경찰대학은 한시라도 빨리 폐지돼야 한다는 쪽이다. 특히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일상화 되어있는 우리의 사회적 구조에서는 경찰대학의 독식현상이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구성원끼리의 긍정적인 경쟁구도를 위해서도 경찰대학 제도는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경찰의 제한적인 수사권도 걸림돌이다. 독과점 방지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번 기회에 ‘수사권 이양’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되었으면 좋겠다. 검찰과 경찰, 고비처 등의 조직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구도가 돼야 사정 기능도 강화할 수 있고 대국민 서비스의 질도 개선될 수 있다.

견제와 협력을 통한 책임과 의무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이려나?



당분간 국민의 뇌리 속에 박힌 경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일부 경찰에 해당되겠지만 국민에게 준 상처는 정말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온전하게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이를 해소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각오와 결기의 중무장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경찰 스스로 해결해내야 할 몫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인 본연의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 기대한다.
(2010. 8. 2)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준비하는 삶

준비하는 삶



코미디계의 대부, 원맨쇼의 달인.

가식없는 웃음 제조기로 만인의 사랑을 받던 원로 코미디언 백남봉 선생이 영면했다. 아직도 50대 젊은이 같은 영정 사진 속 모습만으로는 선생의 유고가 실감나지 않는다.

70년대와 80년대를 주름답던 선생의 구수한 입담을 추억으로 공유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시절 장안을 휘어잡던 선생의 성대묘사나 팔도사투리 구사는 명품 코미디의 진수로 누구나 한번쯤 흉내내기에 도전해 본 기억이 있을 법하다.

전성기가 지나간 이후에도 자신의 달란트로 남을 위한 삶을 살았던 흔적들이 그의 부재를 아쉽게 한다. 투병 중에도 삶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을 만큼 희극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유난했다는 후일담이 그와의 빠른 이별을 안타깝게 한다.


죽음 앞에서 예외가 되는 삶은 없다. 너나없이 모든 사람은 죽게 돼 있다.

인생의 여정 역시 죽음을 향한 타임 스케쥴에 불과하다. 앞서 간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한 줌 흙으로 사라져야 하는 숙명의 한계를 알았기에 현인들은 제대로 된 삶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 같다.







이른 바 ‘삶의 내신’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에 족적을 남기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재벌도 아니고 권력가도 아닌 나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겠지만 모든 인간이 다 평등하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역사에 남을 자기 기록에 대한 책임의식에 경중이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자신의 평생 행적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되는 기준 하에 평가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평가를 의식하고 자기 생활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한 삶은 그렇지 못한 삶에 비해 훨씬 더 정제된 결과물을 남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재물이나 권력의 무게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평소 나 자신이 역사에 어떤 인물로 평가될 것인가에 촉각을 세우는 편이다. 나를 대표하는 말이나 글 그리고 행적이 어떤 식으로 역사에 기록될까를 생각하면 정말로 잘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지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극히 유한한 삶의 일정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주위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만은 특별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제의 탐욕과 집착이 얼마나 헛된 결말이었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헛된 욕망은 여전히 절제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무리 움켜쥐어 봐야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삶의 철칙을 안다면 그토록 흉한 모습으로 스타일을 구기면서까지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을 텐데 또 다른 측면의 인간적 한계이지 싶다.

건강, 재물, 권력.... 결국은 신기루다.

시간이 되면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그 허무한 휘발성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각하자.

어떻게 자신의 삶을 운용했는지에 따라 저마다의 인생 등급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고 보면 많은 이들로부터 가슴에서 우러난 애틋한 조문을 받으며 떠나는 백남봉 선생의 삶은 행복한 결말을 지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성공적인 생애에 박수를 보내며 충실한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가슴 속에 내려 놓는다. 쉼 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나 역시도 한 점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는, 나의 매 순간순간이 훗날 어떤 식의 평가로 이어질지를 한시도 잊지 않고 살겠다는 그런 다짐 말이다.
( 2010. 7. 31)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