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당선자 대회

당선자 대회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모여 '국민행복 실천'을 다짐하는 당 행사에 다녀왔다.
8년 만에 진입한 제도권 정치 무대에 대한 울렁증이었을까? 행사장소인 국회 헌정기념관에 들어서는데 순간 기분이 묘했다. 들뜬 표정이 역력한 초선의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불편한 낯가림이 나를 엄습했다. 드디어 대학 문턱을 넘게 된 삼수생의 심정이 이럴까 싶게 새로우면서도 전혀 새롭지 않은, 익숙하지만 서먹함이 공존하는 독특하면서 낯선 환경에 툭 떨궈진 느낌이었다.
누군가 붙여준 '5선급 3선 의원' 덕담조차 뒷방으로 물러앉은 듯한 고립감을 가중시키는 듯 했다.
15대 국회 당시 30대에 불과하던 내 나이가 어느 새 50 중반을 훌쩍 넘긴 현실과 무관하지 않지 싶다. 그 때 함께 했던 동료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밖에 안남았는데 그나마 누구는 대선주자가 되었고 대부분 '덩치값'이라도 하는지 행사장에 얼굴도 내밀지 않은 현실이 내게 던져준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화두라도 푸는 것처럼 포지션 설정에 골몰해 있는 내 모습은 전학이 잦던 학창시절, 매 전학지마다 낯선 교실과 급우들 틈새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조금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한 부모님의 교육열 덕택에 나는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방인의 삶을 감수해야 했다. 수줍고 소극적인 첫인상으로 기존의 공동체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내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지난 삶을 돌아보면 그런 식의 허허실실로 방심하던 '현지인'들을 접수하며 '무림의 고수'를 자처했다. 학창시절 반장선거, 회장선거를 평정할 때도 그랬고 스탠포드 대학에서의 학생회장 당선이나 국회의원 타이틀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오늘 역시 적진(?)을 탐색하던 그 때처럼, 스스로의 위치 찾기를 시작한 셈이다. (일단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결론으로 화두를 정리했다.)

자기 소개시간.
시간 관계 상 20초를 넘기지 말아달라는 사회자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말 잘하는 직업군 답게 다들 시간을 넘겼다. 무대 위치를 둘러싼 보이지 않은 신경전도 감지되는 분위기였다.
3선의 여유로움으로 무대의 중간자리를 자처한 나는 정확히 20초 안에 자기소개를 마쳤다.
'의정부 출신이다, 대선에 최선을 다하겠다, 15대 국회에 처음 들어왔는데 그 때의 얼굴이 안보인다'는 세 문장이 내용의 전부였지만 나로선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전했다.
비법은 나만의 암호 동원이었다.
의정부 출신이라는 건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에서 왔는데 의정부 위상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고 대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건 대선 자체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경고의 의미였으며 마지막으로 15대 국회를 운운했던 건 우여곡절 많은 먼길을 돌아오느라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경험이 당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담은 인사를 남긴 것이다.

제법 길게 이어지는 시간 탓인지 찜통 더위와 긴장감 속에서도 당선자들이 저마다의 표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인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특유의 관찰력을 동원해 19대 국회에서 함께 일할 동료들의 면면을 살폈다.
A는 들락거리고 B는 친화력을 발휘했다. C는 전화 통화가 잦았고 D는 어쩐지 음울한 표정으로 숨어있었다. 정치행로에서 대척점에 서 있던 이도, 함께 레지스탕스를 일구던 요원(?)도 고른 시각으로 관찰했다. 이렇게 수집된 동료들의 첫인상은 이전 15대 16대 국회에서 만난 동료의 그것처럼 내 비망록에 차분히 기록될 터인데 가장 확실한 오늘의 수확이었다.

'수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당선자 대회를 끝내고 새로운 다짐으로 마음을 추스리며 여의도를 떠나오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시조 한수가 약간의 설레임과 국가와 민족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나를 각성시켰다. 정치 밖에서 지냈던 지난 8년이 결코 헛된 날들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마음에 담게 했다.
정치 낭인으로 보낸 시간들이 현역 정치인이었으면 도저히 볼 수 없었을 안목을 내게 줬다. 정치적 역량을 숙성시켜준 참으로 귀한 세월이었다.
제대로 정화됐다는 확신이 나로 하여금 자신감에 차 있게 하는 건 열망의 순기능이다.
그렇게 뜨거운 열정으로 챙겨둔 법안들을 하나씩 손질해서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하겠다.
더불어 훗날 돌이켜 봤을 때 19대 국회에서의 삶이 내 생에서 가장 보람있고 빛나는 시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내일 새벽 예약된 생방송 TV 대담프로 출연약속이 잠자리를 재촉하는 바람에 아쉬움 속에서 생각을 접으며 4월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2012. 4. 30)
...홍문종 생각

2012년 4월 2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출사표' 관전 후기

'출사표' 관전 후기


정몽준 전 대표도 공식적으로 대권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새삼스럽지 않아서인지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차분한 반응이어서 당사자로선 맥 빠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의 '출사표'를 지켜보았다.
그 결과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있어 전하고자 한다.

정 전 대표 대권 출정식은 자신의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무엇보다 그가 대선 후보로서 전하고자 하는 대국민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간이 힘들다.
그런 점에서 걱정되는데 지나친 민감함이었으면 좋겠다.
특히 ‘박근혜 비대위원장 끌어내리기’의 진수를 보여준 대목이 압권(?)이다.
덕분에 대권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가 ‘박근혜가 이래서 나쁘고 저래서 잘못됐다’며 국민들에게 험담하기 바쁜 모양새로 채워지고 말았다. 험담으로 스스로를 무게감이 떨어지는 정치인으로 전락시켰을 뿐 아니라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뭘 잘 할 수 있는지 설득할 기회도 놓쳐 버렸다. 더구나 사실왜곡까지 동원하는 궁색함이라니 패착도 이런 패착이 없다.
명색이 어쨌건 7선 의원이고 과거 대권 도전 경험도 있는 거물급 정치인의 선택치고는 너무 실망스러워 유감천만이다. 선거전에서 강한 상대에 대한 ‘마타도어’로 반사이익을 노리는 수법은 정치 신인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속 보이는’ 메뉴다. 혼자서는 인지도도 지지도도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후보들이 타인에 기대 몸값을 올리고자 할 때 동원하는 궁여지책이다.
그런 꼼수에 기댈 정도라면 일찌감치 뜻을 접는 게 낫다는 고언을 아끼고 싶지 않다. 그것이 당사자를 위해서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나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있다.
정 전 대표는 타인의 오류를 지적하기 전, 자신의 지난 행적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하는 기본적인 인과관계를 간과하는 우를 범했다. 자신의 ‘들보’는 그대로 둔 채 남의 ‘티끌’에 확성기로 들이대는 두서없는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대권 도전에 나서고자 했다면 자신의 행적부터 검증받겠다고 나서야 했다. 예를 들자면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의 일도 많은 국민이 궁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당시 통합21 대표로서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후보단일화 시작부터 선거직전 통합을 파기하기까지의 전모를 투명하게 밝히고 국민 이해를 구하는 수순을 밟는 게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인지 모르고 있었느냐 묻고 싶다.
모든 선거가 다 그렇지만 특별히 대통령 선거는 합종연횡 등의 경쟁을 거쳐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국민대통합의 대서사시적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대권 주자로 나서는 정치인들은 저마다의 지난 행적을 명확하게 밝혀야 하는 건 기본이고 미래 비전의 명확한 제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도우미’를 자처하는 ‘서번트 리더십’ 검증도 철저히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인의 철저한 자기 단속은 매우 중요하다.
하물며 대통령 선거에 나선 이에게는 더더욱 철저한 검증 과정이 있어야겠다.

이 쓴 소리가 정 전대표의 대권 도전 가도에 약으로 활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새누리당과 정치권 전체가 국민들에게 좀 더 인정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바람이 과욕을 부렸나 싶은 마음도 있다. (지나침이 있었다면 관용으로 품어주시길.)
기왕에 나선 길, 더 생산적으로 순탄하게 안착하길 바란다.

(2012. 4. 29)
...홍문종 생각

2012년 4월 27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미완이 혁명을 부른다

미완이 혁명을 부른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 축하로 분주하던 상해 홍커우 공원에 폭탄이 떨어졌다. 그리고 현장은 수많은 사상자로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80년 전의 일이다.
윤봉길 의사의 역사적 거사가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과 가와바다 일본인 거류민 단장 등을 즉사시킨 것이다. 현장에서 체포된 윤의사는 30년의 짧은 생을 미처 채우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윤의사의 행적을 새삼 상기시키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다. 윤의사의 ‘의거’를 환기시키려는 의도도 아니다. 그 보다는 무엇이 농촌계몽에 열정을 쏟던 한 청년을 혁명가의 길로 나서게 했을까. 그 배경이 궁금해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 사유일 듯싶다. 그 자신 법정 진술을 통해 주장했듯 솔직히 일본 수뇌부 몇 명 제거한다고 식민지배가 끝나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독립이 쟁취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희생이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고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우리의 현실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을 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윤의사가 혁명가의 삶을 선택한 배경이 100% 설명됐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건 미숙한 정치사회적 환경이 젊은이를 혁명가로 내모는 결정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윤의사 역시 비슷한 절차를 통해 혁명에 자신의 운명을 건 흔적이 분명 있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 젊은이들을 접하면서 비슷한 걱정을 했다.
그 때 느낀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는 우리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생각보다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주역이기보다는 주변인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체념과 분노가 그들의 생산적 에너지를 비틀어 악순환의 고리를 자처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그렇게 잘못 형성된 에너지가 젊은이들을 어줍지 않은 혁명가로 선동하고 있었다.
그것이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얼마든지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이끌어갈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스포트라이트나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스토리의 중심이 윤의사의 ‘거사’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흐트러진 이유조차 내 풍부한 상상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걱정이 많다.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라가 됐건 정권이 됐건 사회가 됐건 젊은이들을 혁명가로 내모는 출구전략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모호한 기운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서 힘을 쓸 수 있는 자체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혁명은 나약하고 문약한 기회주의나 패배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이 땅의 젊은이들을 혁명의 이름으로 산화하도록 부추기고 설득한 배경논리도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떤 사회건 젊은이의 균형잡힌 가치관은 집단의 건재함을 담보할 수 있는 주요 바로미터다.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을 지독한 냉소주의나 방관주의로 내모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에게 건전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의도적인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극단은 미완과 상통하고 미완은 혁명을 부른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이 사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긍정의 동력으로 밀어주고 보완해주는 것이 기성세대 본연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정도의 따끔한 경고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2. 4. 26)
....홍문종 생각

2012년 4월 2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교도소 담장 위 남자들

교도소 담장 위 남자들


대통령 주변의 최고 실세들이 ‘대형사고’로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거액 수뢰와 권력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데 측근 비리의 단골 ‘몸통’으로 지목되고도 무사하던 그동안과는 달리 이번에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대통령의 ‘정치 멘토’는 구속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고 자택 압수수색 등 궁지에 몰린 ‘왕차관’ 역시 후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백척간두 신세가 됐으니 하는 말이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위기의 남자들이 ‘권불십년’의 허무를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생경한 풍경은 아니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정치드라마를 통해 익숙하게 보아온 장면이다.
주연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시대도 바뀌는 가운데 유독 바뀌지 않는 건 측근 비리가 권력의 종막을 장식하는 점이다. 실제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박영준 전차관은 대통령 후보 경선부터 대통령 업무까지 좌지우지한 실세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정권 최고 주요 인물로 등장해서 부패이미지로 끝나가는 모습들이 역대 정권 말기와 너무나 흡사한 모습으로 엔딩을 향하고 있어 당혹스럽다. 이들의 패착으로 그나마 남은 1년 임기조차 우왕좌왕 하다 끝나게 될 것 같아 걱정이 많기도 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후진적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정치현실에 자괴감이 든다. 정권 실세로 호가호위 하다가 비리에 연루돼 호송줄에 묶인 정치권 인사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정권말기의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문제의 중심엔 늘 돈이 있었다.
그렇게 순간적인 방심으로 절제하지 못하고 돈의 덫에 걸려 나락으로 떨어진 정치인이 부지기수다. 성공한 정치인이 되느냐의 여부가 자금에 대한 유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지나간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공유하고 싶지 않는 우리들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러다간 재력가여서 돈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전지전능한 능력가여서 무슨 일이든 해 낼 수 있거나 아니면 끝까지 비리를 덮을 자신이 있는 사람만 정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닐지, ? 자조 섞인 농담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돈의 독성이 더 이상 정치판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폐단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현실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겠다.
그런 면에서 현행 선거법은 여러 면에서 모순과 문제가 많다.
부패의 고리에서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법이 경우에 따라 부패를 가속화시키는 주역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당내 선거 건 당 밖 선거건 제대로 된 선거를 치루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의 선거법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세훈 선거법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도 19대 국회를 통해 다시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해법을 찾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정치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관심을 쏟을 계획이다.

때 마침 한 정치선배가 ‘"사람이 젊어서는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늙어서는 지조를 소중히 지켜야 한다"며 인간의 도리를 언급했는데 거기에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
“명예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우선이어야 하고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거나 남을 속이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명예라면 이미 명예의 명분을 잃은 것입니다. 지조 또한 유불리에 따라 행동을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불의에 동조하는 고집까지 지조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2012. 4. 25)
.....홍문종 생각

2012년 4월 2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수상한 여론조사

수상한 여론조사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드디어 대통령직에 관심이 많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대선 후보 경선 참여를 공식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라 놀랍지는 않았는데 도지사를 사퇴하느니 마느니 오락가락 행보와 경선 룰 시비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모양새가 솔직히 불편하다는 생각이다. 거액의 뇌물수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뇌물 용처와 관련한 폭탄발언이 청와대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는 정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18대 대선 후보 경선 때에도 경선 룰을 둘러싼 그런 요구가 있었다. 홍준표 당시 혁신위원장이 국민 참여 폭을 50%까지 올려 정비해 놓은 당헌당규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판단 하에 시작한 샅바싸움이었다.
결국 박근혜 당시 경선후보는 당헌당규를 뜯어 고쳐 만든 경선 룰 때문에 당심에서 이기고도 1.5%의 표차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그녀의 통큰 모습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외면한 정치판에서 희망을 보게 했다.

그 때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또 경선 룰 바꾸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면면을 보니 당시 경선 룰로 바꾸는데 책임있던 분들인데 다시 경선룰 타령을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힘이 달리니까 음해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박대표 자신이 경선룰 때문에 탈당한 전력이 있다고 공격했는데 진실과 거리가 있는 내용으로 밝혀졌다.
국민과 당원과의 약속을 오로지 개인의 안위를 기준으로 손바닥 뒤집듯 마음대로 하려는 속된 이기심을 낱낱이 드러낸 셈이다. 그야말로 한번 내질러 본 견강부회의 도발이었다면 몰염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룰과 원칙은 적용대상의 성향이나 관점, 유불리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정당의 헌법기능인 당헌당규의 독립성은 아무리 존중의 강도를 높인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적어도 정치를 하고자한다면 최소한 자신의 선택이 남긴 흔적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오늘 자기의 주장이나 선택이 또 다른 미래의 순간에는 어떻게 비춰질까 정도는 짚고 있어야 한다.
오늘 날 박근혜 위원장의 건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나름의 원칙이 발휘한 힘 때문이다. 그녀의 그런 저력이 이번 총선에서 백척간두에 놓인 새누리당을 구해낼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한 경선이 당에 기여하는 기대감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다만 경선 룰을 바꿀 여유도 시간도 없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는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싶다.
경선룰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의욕을 꺾고도 남는다. 김문수 지사를 비롯한 경선 후보군들 역시 애꿎은 경선룰 붙잡고 늘어질 게 아니라 자신들의 모습이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해 더 고민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는 사실도 함께.
지금 당장의 유불리에 민감해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건 물론 결과에 승복하고 후일을 기약할 줄 아는 멋진 당내 도전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런 계기를 통해 개인의 발전과 국가, 당 발전에도 제몫을 다하는 당당하고 새누리당의 멋진 대통령 후보 경선을 기대한다.

5년 전 수상한 여론조사를 두고 세상의 수근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꼼수는 어쩌다 한번이지 대놓고 써먹으려 들면 패가망신으로 직결된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심해지지 않는다.

(2012. 4. 24)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벚과 목련

벚과 목련


                                                        -홍문종-





새 하얀 목련이 터질때
순수하고 눈시린 아름다움
힌 붉은 벗꽃이 오를때
화려하고 눈부신 아름다움

순백 수줍음이 눈길을 잡아
마음을 그리고
無地 황홀함이 손길을 잡아
온기를 담그니

무릉도원 도원경이
펼치며 널부러져
구름젖은 하늘궁전
살포시 내려앉아

흰색하늘이 닫혀
황토색과 어울려도
기품을 간직한채
대지에 안기고

영롱했던 무지개도
덩실 덩실 선녀 춤으로
천지를 덮히니
온세상이 무아지경

사락 파락 봄비 내리고
하후 후훠 봄바람 불어
영롱한 비단 길을 열으니
애잔하게 허우적 허우적

찬란한 春光
어느 덧 멀어지니
덧 없는 세월만이
추억으로 남겨져

봄 날은 간다
봄의 소리, 느낌, 향기
봄의 추억, 색갈, 고독
신기루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2012. 4. 24)

2012년 4월 17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탈, 레테의 강

탈, 레테의 강


또 하나의 아까운 젊음이 레테의 강 저편으로 사라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영구제명 조치됐던 이경환 선수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 같은 스캔들에 연루됐던 정종관, 윤기원 선수의 극단적 선택이 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다.
불명예가 주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결론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축구가 전부였던 그들에게 승부조작이라는 주홍글씨는 죽음보다 더 깊은 치욕이었을 터다.
치명적 독화살에 관통당한 심장을 부여잡고 절망과 좌절에 허우적거렸을 모습이 아프도록 선명하다.
더 없이 소중한 생명을 내놓고라도 명예를 되찾고 싶었던 망자의 절박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절망감이나 무기력감이 인간을 한 없이 축소시키는 또 다른 극단의 현실을 보고 있다.
바람 앞 촛불처럼 꺼져가는 인간 한계에 대한 중계 보고서라고나 할까.
오래 지켜본 지인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그는 지금 쓸쓸한 폐허가 되어 울고 있다. 한없이 연약한 어린아이가 되어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단 한 줌의 희망도 쥐지 못한, 그래서 세상이 온통 두렵기만 한 실패자의 모습으로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신봉하던 자금력의 비호가 사라졌을 뿐인데 적응이 어려울 정도로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이 충격적이다. 자금력의 영향력을 너무 모르고 있다며 충고를 아끼지 않던 당당함은 간 곳없이 초라하게 무너지고 있는 그가 아주 많이 걱정된다.

어리석은 결정을 경고하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스스로를 죽이는 무리가 늘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찌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비굴해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안간힘일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가벼이 정리되는 상황이 불만스럽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날마다 죽음의 골짜기로 내몰리고 있는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지나치게 간과한다는 생각이다.
문득 나 역시도 인간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도 헛딛는다면 결국 나락뿐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생을 살면서 죽음으로 맞서고 항변할 수 밖에 없는 시련과 조우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솔직히 인간의 극한적인 한계까지 경험하는 인생은 피하고 싶다.

(2012. 4. 17)
....홍문종 생각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새로운 출발입니다

새로운 출발입니다


선거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감사 인사드릴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승리는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아파트 모퉁이에서 도로에서 공장에서 농로에서 시장 통에서 행상하시는 아주머니들이, 택시와 버스 기사님들이, 공장과 근로자들이, 교육현장의 선생님들이, 중소기업체의 경영주들이 그리고 홍문종 아저씨를 외치면서 사인해 달라고 종이를 내밀던 어린 학생들과 노인정 어르신들의 사랑과 관심이 만들어 내신, 바로 여러분 덕분입니다.
때와 장소는 달랐지만 반가움으로 따뜻하게 품어주시던 정다운 이웃의 한결같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큰 힘으로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현충원에서 국가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노라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참배를 올리며 다짐했습니다. 숙연한 마음으로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선거 기간 동안 수많은 분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의 말씀과 눈빛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히 제 가슴에 담겨 있습니다.
특히 시장 통이나 아파트 모퉁이에서 마주쳤던 노점 아주머니들의 깊이 패인 주름과 거친 손길이 말하던 삶의 애환을 기억하겠습니다. 길 한켠에 펼쳐진 좌판이 생계수단의 전부인 그 분들의 지난한 삶이 전하던 그 뜨거운 진동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 많은 공약들을 어떻게 다 지킬 거냐고 벌써부터 어머니는 근심이 많으십니다.
절대로 ‘빌 공자 공약’이 안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출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블로그를 통해 나누는 일상은 변함없이 지속하고자 합니다.
좋은 공복이 될 수 있도록 언제든지 따끔한 질책으로 일깨워 주시기 바랍니다.
달게 새겨듣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욱 더 낮은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2. 4. 12)
....홍문종 생각

2012년 4월 5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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