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8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며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며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열사의 마지막 유언 中





다시 3.1절이다.
민초들이 나라 잃은 슬픔 대신 자주 독립을 외치며 결연히 일어나 민족혼의 정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민족사에 길이 남을 그 날이다. 고종의 승하와 함께 시작된 이 운동은 일본군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1년간 지속되며 일부 친일세력들의 양심의 변화를 가져오게 할 정도로 영향력을 보였다. 또한 중국의 5.4 운동과 간디의 비폭력 운동을 이끈 것으로 평가될 만큼 우리의 비폭력 평화적 저항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대역사였다.

삼천만이 하나로 뭉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날의 함성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역사에 빛나는 민족의 꽃, 우리의 영원한 누나로 자리매김 된 유관순 열사다.

그에 대한 평가는 외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인도의 네루 수상은 독립운동 당시 자신의 딸에게 한국의 유관순을 본받으라고 충고했는가 하면 일본인 사학자 가타노 쓰기오는 ‘유관순은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평가한 바 있다.



3.1운동과 유관순 열사는 자랑스럽고 소중히 간직해야 할 민족적 문화유산이고 정신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91주년을 맞는 우리의 3.1절의 현주소는 그다지 형편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무슨 영문인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유관순 열사 전기를 누락시키거나 (반발 여론에 밀려 내년에 다시 원상복구하기로 했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심지어 3.1절이 제정된 배경을 잘 모른다고 응답한 초등고학생들이 40%가 넘는다는 조사결과가 우리를 기막히게 하는 현실이 그것이다.

역사 교육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갈수록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려 일제에 항거했던 3.1 운동의 근대사적 상징과 의미가 그 존재감을 잃게 될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치적을 축소하려는 교과부의 최근 움직임은 유감이다.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모진 고문 끝에 18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끝까지 담대함을 잃지 않았던 용기와 충절은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에 새겨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세상이 바뀐 마당이다.

바야흐로 온 세계가 여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죽을 힘을 다한 여성의 경쟁이 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보이고 있음은 이미 여러 경로로 입증됐다.

여성은 무조건 수동적이고 보조적 위치에 만족해야 했던 과거와는 모든 게 판이하게 달라졌다. 세심한 배려와 헌신적인 봉사 정신을 모토로 하는 21세기 리더십은 남성보다는 여성에 유리한 국면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맨 몸으로 일제의 총칼 앞에 항거한 유관순 열사의 모습만 강조할 게 아니라 현대여성이 필요로 하는 유열사의 이면을 발굴하는 노력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 아침 귀국한 딸과 함께 부모님을 뵈러갔는데 어머니께서 “우리 손녀는 마음씨가 착해서 복도 많이 받고 좋은 신랑감 나타날 거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딸이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그에 못지않게 치밀하고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잔다르크의 기질을 갖추고 전문적인 여성으로서 종속된 삶보다 당당한 독립변수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2010 .2.2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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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생각-어느 흐리고 도 흐린 일요일 오후

어느 흐리고 도 흐린 일요일 오후

-홍문종



일없이

쓰고 도 쓴 커피를 또 마시고

괜스리

책장을 뒤지다가

찻잔을 만지작 거리다가





열없이

멀고 도 먼 산들을 또 바라보고

촌스리

추억을 뒤지다가

연필을 만지작 거리다가





실없이

짙고 도 진 하늘을 또 응시하고

업스리

마음을 뒤지다가

검지를 만지작 거리다가





한없이

길고 도 긴 오후는 또 지나가고

우수리

시간을 뒤지다가

핸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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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사형제도 유감

사형제도 유감



사형제도는 기원전 18세기 당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보복을 형벌 규정으로 제시했던 함무라비 법전 이후 인간의 범죄를 처벌하는 가장 강도 높은 제도적 수단으로 존치해 왔다. 우리나라도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각계각층의 오랜 요구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를 없애지 못한 나라 중 하나다. 다만 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집행을 마지막으로 집행이 정지된 상태고 이로 인해 국제 엠네스티에서는 대한민국을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인정해 왔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헌재가 ‘범죄예방 효과’를 이유로 들어 합헌과 위헌을 5:4로 한 비율로 합헌 결정을 내려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헌재 결정으로 일단은 사형제가 존속하게 됐지만 7명의 재판관이 합헌, 2명만 위헌을 결정했던 14년 전 상황보다는 진일보 됐다는 평가다.

헌법 조문 해석과 범죄 예방 효과, 오판 가능성을 두고 재판관들 사이에서 엇갈린 견해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도 긍정적 사인으로 읽히는 것 같다. 실제로 합헌 의견을 낸 2명의 재판관은 사형 적용 대상 범죄를 크게 축소해야 한다는 보충 의견을 냈고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사형제를 폐지하거나 입법을 통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사형제도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이고 또 점차적으로 사형을 폐지하는 국가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인 입장으로도 사형제도 폐지를 동조한다.

물론 끔찍한 반사회적 범죄 행각에 맞닥뜨리게 될 때마다 사형제도 존치의 당위성 쪽으로 기울어질 때가 많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도 개전의 정을 보이지 않는 범죄자들을 볼 때마다 더불어 같이 살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실질적인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헌재 결정은 삼류국가 국민으로 낙인찍힌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심지어 ‘명예살인’이 행해지고 있는 일부 아프리카와 중동국가로부터 느끼게 되는 후진성이나 야만성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까지 있었음을 고백한다.

특히 헌재가 이번 판결에서 사형제도의 존치 근거로 든 ‘범죄예방 효과’는 현실적으로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명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까지의 사형제도 존치 효과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살인 등의 반인륜적 범죄는 진즉에 사라졌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갈수록 범죄는 흉악해지고 범죄는 늘어나고 있는 마당이다.

굳이 범죄억제 측면이 아니더라도 사형 오판 가능 확률(현 법관의 70%가 고민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이 0가 아닌 이상 사형제도가 제도살인을 방조하는 또 다른 ‘살인 창구’일 개연성이 충분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조건에 따라 피의자의 권리가 좌우되는 현실적 한계 역시 사형 존치의 명분을 흐리게 하는 결정적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구색은 바로 국격이다.

국격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물량공세로만으로도 될 수 없다는 건 다른 사례를 통해서 이미 입증된 바다. 이 보다 실질적인 국격을 세우기 위해서는 선진화된 제도 정착이 훨씬 효율적이다. 국민 상이의 깊이 있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호 교감을 전제로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높아진 인권의식을 반영할 수 있는 대체형벌을 모색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은 바람직하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노력을 담은 대체 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현재 사형제 폐지를 대체하는 형벌제도로 거론되는 유형은 절대적 종신형과 상대적 종신형, 유기징역형 상한 폐지, 부정기형, 사형집행유예제도 또는 사형집행연기제도다.

그 중 가장 유력시 되는 형벌은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이다. 이는 수형자가 자연사할 때까지 구금하는 형벌로 사면, 감형이나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되는 제도로 이번 헌재 판결 과정에서도 3명의 위헌 판단 재판관들이 동조한 바 있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문한다.

진정한 대한민국 국격의 승화를 이끄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2010.2.27)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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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5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나의 길


나의 길





물 오른 김연아의 경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흘러나오는 김연아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절정의 경지’ 그 자체다. 하늘의 천사가 내려온들 저만큼 할 수 있을까 싶게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그녀의 경기는 눈부시다.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그녀는 누가 뭐래도 명실상부한 은반 위의 여제다.

그녀의 요즘 근황이야 말로 황제의 전성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원로 희극인 배삼룡. 그가 유명을 달리했다.

다시 일어나 무대에 서겠다고 벼르던 마지막 꿈조차 이루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나 버린 것이다.

바보 개그와 비실이 춤으로 7,80년대를 풍미하며 우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코미디계의 황제이자 대부로 요즘의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 배삼룡.

그러나 황제의 주가를 날리던 삶의 궤적에 비해 그의 말로는 지나치게 초라하다. 밀린 병원비가 이미 삶의 경계를 달리한 그의 발목을 붙잡을 정도로 피폐하고 남루한, 가난과 외로움뿐인 인적 끊긴 병상이 그가 남긴 실체였기에 드는 생각이다. 그나마 고인이 되자 갖가지 수식어를 붙이며 세인의 관심이 쏠리고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사람들이 넘치니 다행이다 (실지로 조문 오는 사람 보다는 조화와 카메라의 숫자가 더 많다고는 한다).

한창 잘 나갔을 당시의 화사함이 엿보이는 고인의 영정사진이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황제의 쓸쓸한 뒷모습을 향한 일종의 페이소스일까?


故人을 통해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실체를 목격한다. 아무리 잘 나가는 황제도 결국은 죽음으로 소멸되는 것이고 최고와 최상의 지위 역시 종국에는 내 놓게 돼 있는 삶의 진실을 말이다.

김연아의 말처럼 최고의 퍼포먼스는 자기 스스로를 믿고 아무 부담감 없을 때 발휘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최고가 미래의 최고에게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는 생성소멸의 법칙에 순응하는 게 우리 삶의 실체다.

유별난 건지 모르지만 인생이 잘 풀리고 신날 때는 늘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음껏 즐거움에 빠지기보다 산 꼭대기에 올랐다가 내려 갈 때의 순간을 연상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질곡의 구렁에 빠진 것처럼 삶이 암담한 순간에도 마찬가지로 냉정함을 잃지 않게 된다. 오히려 힘든 터널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힘을 모으게 된다. 이런 나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지인들도 이런 내 유별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인생의 성취에 자만하지 않을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종일토록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거의 10분, 20분 단위로 쪼개야 할 정도로 바쁜 일과였다)비슷한 생각을 했다. 오늘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처해 있는 환경, 그리고 생각도 제각각 다르지만 결국 각자의 종말은 비슷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육신까지 내 놓고 이승을 하직하는 상황에서 조금의 변경도 용인되지 않는 현실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때를 기다렸다가 무엇인가 자신의 목표를 이뤄 본 사람들은 말한다.

최고의 때를 기다려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정점의 순간이라고.

그리고 등산하는 과정을 즐겨 예로 삼는다. 정상에 오른 이후엔 내려오는 길만 남아있다고.



오늘도 하루를 정리하면서 최고의 경지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 스스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김연아처럼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최고가 되기 위한 나의 여정은 계속 될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 내 안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쏟아부을 마음의 준비도 다 마친 상태다.

그것이 지칠 줄 모르는 자유인의 기상으로 늘 스스로를 충전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을 담고 오늘도 나는 뚜벅뚜벅 내 길을 가고 있다.
(20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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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3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공존의 지혜를

공존의 지혜를


안톤 오노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는 미국의 스케이트 선수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서의 유명세가 그를 그다지 명예롭게 해 주는 상황은 아니다.

환대받는 다른 외국의 스포츠 스타와 달리 그의 이름만 나오면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이 고개를 돌리거나 질색하는 정도의 비호감 경지보다 더 심하게 혐오하는 대상이다.

오노가 우리에게 알려진 건 지난 2002년 올림픽 당시부터다. 쇼트트랙 파이널 코스에서 김동성 선수와 금메달을 놓고 겨루고 있던 그가 결정적인 순간, 노골적인 반칙으로 김 선수를 밀치고도 헐리웃 액션으로 심판 판정을 유도해 내는 모습이 경기를 지켜보는 국내 팬들의 공분을 사면서부터 국민 밉상 대표 서열에 등극하게 됐다.

이번 밴쿠버에서도 그는 우리 선수들에 대해 막말 참견으로 우리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미운 짓’은 여전히 구가하고 있다. 그의 ‘입놀림’은 상당한 수준의 내공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오노가 결코 고와보이지 않는 우리 시각에서의 일방적 판단일 수도 있다)

심리전도 동계스포츠 경기의 일환으로 치는 분위기라면 대단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선수임에 틀림없다.


그런 오노가 질렛 면도기로 유명한 미국의 대기업 프록터&갬블의 광고모델이 될 전망이라니 놀랍다. 우리에게는 혐오 대상인 그가 본국인 미국에서는 쇼트트랙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며 타이거 우즈를 비롯, 양키스의 데릭 지터,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의 트리오 등이 거쳐간 광고 켐페인 차기 모델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해당업체 CEO가 기용할 뜻을 내비쳤다고 하니 낭설은 아닌 듯하다. 미국의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다 메달리스트(금 2, 은 2, 동 3)로서 미국의 떠오르는 스포츠 아이콘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 주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오노에 대한 한국과 미국에서의 극단적인 평가의 원인을 따지자면 결국은 관점의 차이다. 동일 인물이 정 반대의 평가로 호감과 비호감을 넘나드는 현상은 그다지 새삼스러울 건 없다.

우리에겐 부정적 인물일 수 밖에 없지만 미국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빙상경기가 동양선수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통설에도 불구하고- 또 우리 보기에 석연찮은 금메달이라고 해도- 불굴의 의지로 승리를 이끌어낸 대단한 스포츠 스타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에게는 천하의 침략자에 불과한 (그래서 그를 처단한 안중근 선생이 애국지사로 추앙되고 있는) 이등박문도 일본에서는 화폐에까지 등장하는 국부적 존재로 존경의 대상이 되는 현상과 마찬가지다.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임진왜란 당시 우리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중원진출을 가로막은 장애물 정도로 평가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세종시 문제로 의총을 열고 있는 한나라당 내 갑론을박이 온 나라를 흔들어대고 있다.

끝도 없는 그 심란함이 점입가경이다. 담장을 넘는 정제되지 발언들이 언제 ‘핵폭탄’이 되어 사고를 치게 될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밀어붙이며 쏟아낸 말들이 머지않아 스스로의 발등을 달구는 불이 되어 후회를 불러오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처음부터 정해놓은 자신의 결정에만 함몰된 대화가 문제라는 생각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의 대립국면은 피할 수 있고 공존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생산적인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어차피 설득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명한 성패보다 중간지대의 공존이 훨씬 나은 전략이 아닐까 싶다. 돌출 발언으로는 해법을 구할 수 없다.
(2010. 2. 2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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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생각- 신뢰 이야기

신뢰 이야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지존이었던 토요타 자동차 몰락의 단초는 ‘품질 결함’이었다. 대량 리콜 사태로 파생된 불신이 ‘1등 품질’을 기반으로 한 토요타의 명성을 순식간에 ‘사상누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최고 품질’ 약속을 저버린 토요타의 배신을 향해 내려진 소비자의 준엄한 심판인 셈인데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약속 불이행으로 인한 파행은 기업의 경우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건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복잡한 생활 속에서 약속을 온전하게 이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면책이 용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엊저녁 친구들과의 ‘해프닝’은 약속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꼭 만나야 할 용건으로 저녁 8시 죽마고우 둘과의 약속이 있었다. 다들 바쁜 친구들이라 겨우 조율해서 만든 일정이었다. 약속 장소는 군학협력 관계로 25사단장과의 사전 약속이 있었던 나 때문에 서울과 양주 중간 지점으로 정해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기대감을 줬던 이 약속은 씁쓸한 여운만 남기고 깨져 버렸다. 자동차를 이용한 나와 A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은 약속 장소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B에게 불편한 위치였던 게 화근이 된 것이다.

먼저 도착한 나와 A가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은 B에게 전화를 걸자 뜻밖에도 B는 화를 내고 있었다. 약속 장소를 찾다가(A가 약속 장소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헤매던 끝에 타고 오던 택시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며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모처럼의 약속을 깨버리고 가버린 B의 처사가 안타까웠다. 만나서 분풀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함께 만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혹자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약속의 중요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강박관념일수도 있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주위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약속이 어그러지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가 약속장소에 왔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랜 세월 나눈 우정의 이름값만으로도 당연히 친구들과의 약속을 존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약속을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이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고 평가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측면에서 친구사이의 참된 신뢰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일화 한 토막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옛날 그리스에 절친한 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됐다. 그런데 사형 직전, 모친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모친을 보고 싶다는 사형수를 위해 그의 친구가 볼모를 자청했다. 사형수가 시간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친구가 대신 사형당하는 조건으로 사형수는 4일간의 일정을 얻게 됐다. 그런데 사흘이면 다녀 올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나흘째 되는 날이 저물도록 사형수는 돌아오지 않아 양속대로 친구가 사형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마침내 사형집행 시간이 되어 왕이 친구에게 "자 보아라, 네 친구는 너를 배신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너는 네 친구를 믿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친구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늦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드디어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교수대에 친구를 매달기 시작할 때 사형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면서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내 친구를 풀어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왕이 늦은 이유를 물으니 돌아올 때 큰비로 강물이 불어나서 도저히 강을 건널 수 없어 늦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에 감동한 왕은 두 사람 모두를 풀어줬다.

두 친구의 참된 우정과 서로를 신뢰하는 모습이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였다.

약속을 귀하게 여기고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될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결과로 이어지는 이유다.

신뢰가 없어진 세상이 된다면 당장에 직면하게 될 문제점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막말과 고성이 동원된 한나라당의 세종시 내전이 본격적으로 치닫는 정황이다. (이 와중에 정국 상황을 개인을 위한 기회로 삼고자 준동(?)하는 부류의 꼼수가 목격되기도 하니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다)

세종시에 관한 민심의 향배는 이미 여론을 통해 결정돼 있는 상태다. 물량공세 등의 홍보전으로 부축일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선 듯하다. 더군다나 신뢰는 유불리의 기준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토요타 사태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문제는 세종시 처리과정에서 무엇보다 확실하게 반영돼야 할 가치 철학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 대목이 외면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대명천지에 그저 눈 감아 버린다고 진실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그리고 PS,

오늘 이 이야기를 전하는 건 헤어질 때 A가 내게 블로그 얘기를 하며 오늘 주제로 친구와의 약속 해프닝을 쓰라는 주문을 했고 나는 별 생각없이 쓰겠다고 한 ‘약속’ 때문이었다.

친구와 약속을 해서 쓰기는 했지만 쓰는 동안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음을 첨언하는 바이다.


(2010. 2.2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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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생각- 골든 선데이 단상

골든 선데이 단상


앞산의 잔설에도 불구하고 봄기운이 완연해진 이번 휴일은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 준 ‘골든 선데이’였다, 이정수 선수의 금메달을 비롯, 우리 선수들의 무더기 메달 획득 소식이 벤쿠버 동계올림픽 경기장으로부터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동계올림픽 경기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그들의 쾌거에 움추러든어깨가 펴지는 기분이다. 특히 이정수 선수는 값진 금메달을 2개나 받고도 3번째 금 사냥을 앞두고 있다니 그에게 더 큰 영광이 있기를 기원한다.



동계올림픽 뿐 아니라 여타 스포츠 대회가 열릴 때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사전 정보에 근거를 두고 경기결과를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예상했던 대로 보다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 같은 경기의 속성이 관중석의 재미를 배가시켜주기도 한다.

세상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세월이 갈수록 그것이 실력의 작용이 됐건 운의 작용이 됐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운의 작용도 기본 이상의 기량이나 자질이 전제된 다음부터의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피겨 퀸 김연아의 벤쿠버 입성 소식에 경기장에 파견 나와 있던 전 세계 언론이 들썩거리는 것은 동계올림픽 경기에서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 때문이다. 모태범, 이상화, 이정수 선수들도 금메달 획득 때마다 이어지는 찬사의 물결과 취재진의 열띤 취재경쟁을 이미 경험을 그러나 지금부터 4년 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로 온 세상의 찬사를 받았던 선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솔직히 말해 당시 우리가 열광했던 스포츠 스타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는 내 경우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영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그 어떤 금자탑도 그저 어떤 한 분야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지 그 우월성을 기화로 다른 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권한이 허용되는 자격증을 부여받는 건 아니다. 또 일정한 기간 동안 누릴 수 있는 지위일 뿐이지 한 번의 영광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무한대의 ‘1등’을 보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칫 간과하기 쉬운 이 한계 때문에 인생이 때로는 비극으로 흐르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흔적도 없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마는, 그저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의 한계를 우리들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한 경로를 거치게 되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에러 같은 것 말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과 정성을 다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막상 목표를 이뤘을 때 개인의 능력이 전부가 아니라 하늘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 이 성공은 수많은 성공 중 하나 일 뿐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성공이 본인의 인생 전체를 바쳐 어렵게 얻은 결과물이라고 해서 다른 모두에게도 똑같은 가치로 관심 갖기를 강요하는 건 오만이다. 그것은 자기 성공에 지나치게 함몰된 나머지 어리석음으로 성공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사실 작은 성공에 목불인견의 안하무인이 되는 반면 오히려 큰 성공일수록 세상을 향해 더 겸허한 모습으로 소인과 대인의 면모를 드러내는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의 독성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어리석음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지켜보기 괴로운 현실이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 소멸되어간 수많은 권력 무상을 모르지 않을텐데 인간의 우매함은 왜 이리 끝이 없는지 모르겠다. 결국 한줌재로 사라져 갈 허망한 결론을 알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굳이 외면하고 있는 건지...

저자거리에 나서니 세간의 웅성거림이 한층 더 고조된 톤으로 들려온다. 이제 막 끓기 시작하는 가마솥 팥죽처럼 부글거리는 모습도 심상치 않다.

어쩌려는지 정말 근심이다.

일단 끓어오르기 시작한 팥죽은 식히기가 쉽지 않을 텐데. (20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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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생각-권불십년

권불십년






사석에서 만난 권투선수 김태호씨가 세계 챔피언이 되니 갑자기 ‘주먹’이 무서워지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주먹에 관한 한 일인자임을 인정받은 그가 왜 전에 없이 주먹이 무서워졌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때 각 정권의 핵심부에서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인사들도 김 선수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권력의 실체를 경험하기 이전에는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더니 막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니 동네 파출소 순경의 힘조차 예사롭게 보이지 않더라는 고백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다가 호랑이의 ‘영향력’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천방지축일 수 없게 됐다는 의미로 이해됐다.



권력에 가장 담대하게 맞설 수 있을 것 같은 권력가들이 막상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의 현실에서는 많이 다르다. 대부분 지나치게 수세적이다.

실제로 정권을 창출해서 권세를 누리던 세력들이 다시금 정권의 정상에 진입하는 사례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세워놓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헌신했던 사람들이 일단 권력의 꿀맛을 향유한 다음에는 ‘배부른 돼지’가 되어 버리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겠다는 불굴의 투지는 실종되고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용기나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권력 뿐 아니라 세계 챔피언이었다가 한번 타이틀을 뺏기면 왕좌 탈환에 성공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닌가 싶다.



현재진행형의 권력의 눈이 흐려지는 건 몇 가지 원천적인 문제점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막상 권부에 진입하게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권력의 속성에 매몰돼 버리고 만다. 권력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절제하지 못하고 방만해지면서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좌에서 내려올 일 밖에 남아있지 않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한권력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게임의 룰을 망각하면서 약보다 독을 양산하는 쪽으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또 다시 권력에 가까이 갈 기회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무한권력 창출의 의지를 불태우는 지나친 자신감도 문제다.

임기 이후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존속시키기 위한 전임자들의 노심초사가 무위로 돌아간 선례만으로도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텐데 '안보이고 안들리는' 것 같다.



대한민국에 세종시 이슈 밖에 없는 것 처럼 온통 난리다. 경기불황의 늪 속에 빠져있는 국가적 현실을 감안할 때 최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시급한 현안들이 모두 뒷전에 밀려있는 형국이어서 안타깝다.

이제는 어떤 형태로든 세종시 논쟁을 매듭지어야 할 때다.

지난 번 소고기 파동 때처럼 자칫 국민의 분노가 쓰나미처럼 정치권을 삼켜버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말없는 다수의 민심을 두려워하는 권력이어야 한다.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까지 없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정치권의 오만이 국민을 각성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오남용이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책임을 통감하며 선거에서 좀 더 신중한 선택을 해야겠다는 다짐들을 와신상담의 그것처럼 꼭꼭 다지게 할 수도 있다.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국민에게) 버림 받은 뒤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자.

권불십년의 지혜를 새겨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20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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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생각- 의형제, 기염을 토하다

의형제, 기염을 토하다




이번 설 명절은 영화 마니아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야말로 ‘영화 쓰나미’에 풍덩 빠져 지낸 며칠이었다. TV특선영화, 케이블 방송, 개봉관 등을 통해 몇 편이나 봤는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원 없이 많은 영화를 본 셈이다.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본 영화 중에서 백미를 꼽는다면 단연코 ‘의형제’를 들겠다.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다.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춘 뛰어난 기량의 영화라는 판단이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는 건 지난 4일 개봉된 이후 연일 흥행몰이에 성공적인 기록을 갱신하는 것으로 이미 입증된 바다.

실제로 개봉 3주차 접어든 의형제가 각종 외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강세를 꺾고 한국영화 예매율 1위를 기록한 이후 3주 연속으로 박스오피스 선두를 달리고 있어 장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남북분단 하의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대척 상황을 소재로 삼아 ‘화해’를 따뜻한 감성 코드로 풀어나가며 평범한 이웃과의 공감대 형성에 성공한 이 영화는 곳곳에 배치된 코믹한 감각까지 더해져 웃음과 감동을 주는 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요인은 많겠지만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감동 코드 설정과 영화보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센스있는 연출, 신들린 듯 맞춤 연기로 관객의 혼을 빼 놓은 배우들의 활약 등을 흥행에 기여한 공신으로 지목하는데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사상이나 신념의 화해를 우리처럼 극명하게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나라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좋은 테마를 제공받은 셈이 됐다. 특히 이데올로기와의 화해를 지역이나 계층 간 화해에 앞서 풀어야 할 의미있는 주제로 접근, 70년대식 이분법적 시각이 아닌 인간애라는 기본 속성에 묶어 성공적으로 처리한 점도 높이 살만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 송광호씨의 명품 연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은 그는 다른 출연작에서도 그랬지만 극중 역할(전직 국정원 직원)에 녹아있는 듯한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배우 송광호가 아닌 천상 평생을 퇴직한 국정원 직원으로 살아온 냄새를 온 몸으로 폴폴 풍기는 그의 연기에 연신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남파 공작원 역할을 맡은 강동원의 연기도 못지 않았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릴 만한 순수한 인간미를, 섬세하게 잘 녹여낸 그의 연기 덕분에 (빈도높은 액션 신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남북간 이데올로기가 대치하는 설정의 영화를 긴장없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정원 직원과 남파공작원이 형제의 정을 나눌 수 있다는 설정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쩌면 우리가 남북통일을 하는데 있어서 플라토닉한 인간미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혼자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의형제’의 감동을 이 블로그에 까지 끌고 온 건 영화가 수작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문화 예술이야말로 세계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주가를 올려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품목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바야흐로 국제 경쟁 시대에 돌입한 국면이다. 이제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경쟁력 있는 품목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치열한 생존경쟁 구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21세기가 문화 예술의 시대로 평가되고 있는 근래의 분위기가 우리에겐 호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문화예술 분야에 남다른 소양을 보이고 있는 국민적 자원이 확보돼 있는 만큼 우리가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공을 들인다면 투자 대비 최고의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동남아를 비롯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한류 열풍의 시장성은 기왕에 확인된 바다. 이제 그 무대를 세계로 확대하고 시장 경쟁력 제고를 위한 콘텐츠 개발 등에 역량과 관심을 집중시킨다면 대한민국을 세계로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파워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단 우리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 않는 여건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데 있어 장애요인이 되지 않도록 이에 대한 별도의 대비책이 있어야겠다. 예를 들어 우리 영화에 영어 자막을 넣을 경우, 작품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전문적인 영화 번역 분야를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경쟁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지원이지만 열린 사고로 보편화를 추구할 수 있는 문화적 유연성 정착과 학교 교육의 획기적 개혁도 선결돼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감성 중심의 교육을 통해 개인적인 창의성을 중시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문화예술을 높이 사는 사회적 안목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무관하지 않다.


조만간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이 찬란한 전성기로 세계 시장을 호령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동남아의 한류가 세계를 휩쓰는 한류가 되어 지구촌 문화예술계를 평정하게 될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글을 쓴다. (그동안의 한국 영화계 선전이 내게 심어준 자긍심의 영향이 크다)



영화사로부터 땡전 한 푼 받은 건 없지만 영화 고르기가 어려운 분에게 다시 한번 ‘의형제’를 추천하는 바이다.

믿으시라. 본전 생각나는 불상사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01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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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금벅지 예찬

금벅지 예찬


"한국 빙속의 성공에는 별다른 비결이 없다. 고된 훈련이 보상받았다. 행운이 아니다"(로이터통신) "막강한 금메달 후보를 제압한 충격적인 승리였다"(AFP통신) "한국이 스프린트 스케이팅 메달을 싹쓸이했다"(UPI통신)



모태범, 이상화, 이정수... 막내들이 일으킨 ‘이변’에 대한 외신의 반응 속에 우리의 할 말이 다 들어있는 듯하다.

승리의 감격에 겨워 태극기를 꺼내든 이들의 세레모니는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지켜보던 지구촌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오랜 체증이 해소되는 듯한 짜릿함도 있었다. 그 어떤 드라마가 주는 감동이 이보다 더할 순 없다. 우리나라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과 아시아 최초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쇼트트랙 2연패라는 전적으로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빙상강국’ 반열에 올려놓은 그들의 나이가 불과 21세다.

동계 스포츠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금밭을 일궈 어려워진 경제로 수심에 잠겨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감로수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 어린 그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아무래도 우리의 국운이 마구마구 잘 뻗어나갈 듯한 기분이다. 아무리 정치판이 혼탁하게 돌아가고 청년실업과 경제난이 가뜩이나 무거워진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쑥쑥 솟아나고 있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가운데 전해진 청량제 같은 낭보라 그 기쁨이 더 배가되는 것 같다. 이 모두가 우리를 신명나게 기운을 북돋아 준 밴쿠버 경기장 소식 덕분이다.

너무도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운 젊은 그들이다. 미래의 동량인 그들의 꿈이 훨씬 구체적인 실체로 공감되는 일체감을 느낀다. 안심하고 넘겨줘도 너끈히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을 준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큰 꿈이라고 해도 허황되다는 생각보다는 실현 가능할거라는 믿음이 앞선다.

설사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뚜껑을 열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미리 포기할 필요도 없다. 미개척 분야라고 해도 그것이 무엇이건 하나하나 미래를 시작하는 자세로 도전해보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며 최소한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과 희망을 준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금메달을 이변이라고 하지만 결코 우연한 기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고 일곱 살 때부터 뛰었고 악바리 별명이 붙은 것만 미뤄봐도 그들이 거둔 오늘의 영예가 어쩌다 얻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이변은 없다. 사실 모태범의 첫 금메달 소식이 전해질 당시만 해도 그의 금메달을 예감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준비된 이변이었고 예상하지는 못했으나 이것 역시도 준비된 금메달이었다는 사실을 모태범의 두 번째 메달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뭏든 막내들이 최고다.

오래 전 초선 국회의원 시절, ‘21세기의 징기스칸은 대한민국으로 부터 나온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한국의 교육미래를 준비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비록 호기롭게 소신임을 내세워 버틸 수 있기는 했지만 약간은 공허하게 들린다는 동료의원의 애정어린 충고 앞에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내 가슴이 그 때처럼 마구 설레이고 있다. 20여년 전 부터 품어왔던 나의 생각들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조짐들이 좀 더 구체적인 윤곽들로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만 해도 미국의 포니가 들어올 무렵인데 애초 말도 안되는 소국인 몽고가 세계대제국 건설을 이뤄낼 것으로 짐작하지 못했던 것처럼 조그만 우리나라에서 중동에 한국 건설 붐이 일어나 한국 건설 기술자들의 놀라운 내공을 선보이고 있고 동유럽에 이제 막 한국의 존재가 막 알려지기 시작할 즈음의 주장이니 만큼 주변에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만 했다. 그러나 내게는 분명 대한민국이 세계를 몰아치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었다. 그런 만큼 징기스칸론을 주장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자기 일생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고 국가는 세기마다 한 번씩의 도약이 가능하다고 하기도 한다.

20세기 초 나락으로 떨어졌던 대한민국이 이제 21세기에 들어 국운 융성의 호기를 맞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이 블러그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보다 더 큰 조짐이 어디 있겠는가.

이 조그만 동방의 나라에서 각각의 분야마다 일정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 점차적으로 평정해 나갈 수 있다면 그리하여 IT, 자동차, 전자 등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문화 예술 분야가 두각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21세기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까를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


이제 막 확산일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 국운이 전성기를 누리게 될 꿈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국운의 확산은 이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건희 회장이 대한민국 정치가 4류라고 질타한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의 지적대로 정치가 행여 모처럼 정말 모처럼 다가온 대한민국 국운 융성의 계기를 좌절시키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판은 오늘도 밀어붙이니 싹을 자르니, 해가면서 그저 서로 죽이지 못해 혈안이 돼 있어 화색이 돌고 있는 우리 국운의 발목이나 잡지 않을까 걱정이다.

제발 정신들 좀 바로 챙겼으면 좋겠다. (2010.2.1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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