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사필귀정을 믿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이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반칙 없이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위력으로 제 앞길을 가로 막고 나섰습니다.

억측이 난무하는 수렁 속에서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도 외로웠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 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는 대선 당시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 그에게 2억원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 정계를 은퇴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필귀정의 기대감을 안고 솔선수범 검찰에 출두합니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규명되고 뒤죽박죽 엉킨 것들은 제자리를 찾게 될 수 있
을 거라 믿습니다.

저도 주어진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국민 앞에 오로지 진실만 보고하는 심정으로 성실하고 겸허하게 검찰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거짓으로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불편부당한 세력에 굴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굳건한 저력을 입증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우국 충정의 뜨거운 마음도 함께 담아 가겠습니다.
 
 
감히 자부하건데 지난 대선은 대한민국 정치사상 가장 깨끗한 선거였습니다.
 
대선자금이니 공천헌금이니 구시대 유물이 더 이상 관행이란 이름으로 활개 치지 못하게 막아낸 쾌거였습니다.
 
백번 천번 돌이켜봐도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였다는 자평 외엔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선거역사의 신기원을 이뤄냈다는 이 자부심을 국민 여러분께 공인받고 또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반드시 그 토대가 마련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5. 6, 8)

....홍문종 생각
 
 

2015년 6월 6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현충탑에서 홍문종 생각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영전에 감사의 마음 바칩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친 충절과 헌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 뜨거운 피로 남기신 님들의 명령,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 숭고한 희생 헛되지 않도록 영광의 대한민국 대대손손 이어가겠습니다. (홍문종 생각)
 

2015년 6월 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경민 회고록 문집 발간에 부쳐

1967, 유난히도 쌀쌀했던 10월 하순 경.
 
허허벌판 경민중학교 신축 부지에 기초석을 놓는 행사를 지켜보던 그 때를 기억합니다.
 
의욕과 확신에 차있던 홍우준·이연신 설립자를 비롯한 사람들, 그리고 기대와 우려 속에 반신반의 했던 군중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설립자와 동고동락하시던 경민의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동인 교장선생님, 이영환 교장선생님을 비롯, 오상유. 김용일. 양기천 교장선생님....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 새 반세기 세월이 흘렀다니 무상합니다.
 
하지만 교실 대여섯 칸 규모의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축물로 시작한 경민중학이 유치원과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7개 학교와 4개 부설교육기관을 망라한 경민학원으로 성장, 의정부와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중추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은걸 보면 그저 속절없이 흐르기만 한 세월은 아니지 싶습니다.
 
 
당시 의정부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저는 번창하던 주택사업을 접고 가진 재산을 다 털어 학교를 짓는다고 나선 설립자의 선택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교육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세우겠다는 소신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던 탓도 있습니다.
 
이대로 사업을 하시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텐데 (스레이트 지붕 때문에) 닭장이라고 놀림이나 받게 만들고...’
 
그동안 친구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즐기던 나로서는 졸지에 금맥을 잃고 나락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설립자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버려진 땅으로 외면받던 의정부에서, 미군부대카바레-부대찌개...이런 상징어로 대표되던 의정부에서 경민중학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당시 의정부에는 의정부중학교 밖에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학생들로선 재수, 삼수가 불가피하거나 도중에 학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경민중학이 이들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했습니다.
 
게다가 반쪽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한다는 설립이념의 기치 아래 함께 뭉친 선생님들의 열의가 끓어 넘치는 학교였으니 금상첨화였습니다.
 
실제 당시 스레이트 지붕의 교실은 초라했고 포장이 안 된 학교 길은 비만 오면 진흙 범벅이 되기 일쑤였지만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가르침을 주겠다는 교사들의 의욕과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충만한 의지가 한데 어우러져 만족감을 충족시킨 것도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왕성한 추진력으로 경민학원을 진두지휘하시던 홍우준 설립자의 연세가 어느 덧 구순을 넘겼습니다.
 
공동 설립자인 이연신 총장님 역시 구순을 코앞에 두고 계십니다.
 
두 분은 아직도 가끔 당시 선생님들의 열정과 헌신을 말씀하시면서 추억에 잠기시곤 합니다.
 
도시락을 못 싸오거나 등록금을 못내는 학생들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선생님, 자신의 도시락을 슬그머니 책상위에 올려주거나 박봉을 털어 등록금을 대납해주시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추억처럼 떠올리고 또 떠올리십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하십니다.
 
경민학원 첫 건축물인 경민중학 건물에 대해서도 여간 애착이 많은 게 아니십니다. 대부분의 경민학원 건물이 재건축으로 외형을 달리한 반면, 경민중학 건물만큼은 원형 그대로 보관돼 있는 건 그 애틋함의 발로일 것입니다.
 
 
이제 경민학원의 산 증인이신 교장선생님들의 회고담을 모은 문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늘 날 경민을 만들어 낸 주역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두의 가슴에 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했지만 뜨거움이 살아 숨 쉬던 시절을 되짚으면서 진정한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러분의 헌신을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열정과 사명감이 남긴 흔적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과 경민학원 미래를 담보하고 견인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감사합니다.
 
오늘 날 경민학원이 졸업생 12만을 육박하는 졸업생과 재학생 1만여명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튼실한 토대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후학을 위해 남기시는 이 가르침이 이 시대 참교육의 부활을 독려하는 생생한 표징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15. 6.2)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