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4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새정부 출범에 앞서


새정부 출범에 앞서


새 정부 출범을 하루 앞두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어린 시절 소풍 전날 밤처럼 자꾸 서성거리게 되는 설렘도 있다.
정치권에 몸담은 연륜이 적지 않지만 이번 대통령 취임식을 바라보는 감회는 확실히 남다르다.  치열했던 전장의 상흔을 되돌아보는 기분이 이럴지 모르겠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기억의 편린들, 언제 그 세월을 다 건너왔나 싶다.  당사자만큼은 아닐 테지만 나름 가볍지 않게 치러 낸 질곡의 정치역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자신 옳은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이 주는 위안이 크다.
숱한 굴곡에도 불구하고 처음 마음을 지키며  한 길을 걸어온 뿌듯함 말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그 자부심을 온전한 것으로 만들기에는 아직은 갈 길이 먼  현실이 있기에.
내 선택에 후회 없는 방점을 찍기 위해선  박근혜 정부가 성공한 정부여야 하는  선결조건이 이행돼야 한다. 말하자면 A/S 과제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책무이고 결연한 각오와 단단한 다짐으로 새롭게 출발선에 나서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실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어떻게든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돕고 싶지만 처신의 향배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그 판단이 쉽지 않은 것이다.

한 솥 밥을 나누며 유방의 곁을 지켰던  공신들에게서  작금의 현실을 보게 된다.
유방이 천하통일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들의 노고가 컸지만  막상 과실을 나눌 때에는  저마다의 분량이 같지 않았다. 각자의 처신에 따라 운명의 행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중 장량의 처신이 눈에 띈다.
유방에게 의심을 사 한 때 옥고를 치렀던 소하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한신과는 달리 장량은 명철보신의 달인이라는 호칭까지 얻으며 천수를 누렸다.  같은 공신이면서 너무나 다른 운명의 길을 갔다.
지혜로운 처신의 힘이랄까, 장량을 소하나 한신과 구분 짓게 하는 요소였다.
결국 겸허와 배려 그리고 우직한 뚝심으로 자신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갖춘 장량만이 스스로의 선택대로 살 수 있었던, 역사의 가르침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출범도 안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이런 저런 걱정들이 많다.
너무 섣부른 예단이 아닐까 싶다.
지금으로선 저마다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지켜보는 게 최선이다.
그녀의 오늘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한 발 한 발 진정성 있는 노력을 바탕으로 국민 신뢰를 얻어   지금의 자리를 인준 받은 그녀다.
 옆에서 지켜 봤다면 그녀의 15년 정치 일정이 얼마나 당당한지 또 얼마나 올곧게 그 길을 걸어왔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역경과 고비마다 원칙과 소신을 허물지 않던 강단있는  뚝심은 아무나  쉽사리 흉내 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에 더욱 값지다.
오래 준비한  그녀의  국정운영 청사진이 조만간 힘을 발휘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확신한다. 


부정하고 흔들어 힘 빼기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자.
이 참에 한 발 더 해  대한민국 역사를 새롭게  써 보도록 하자.  우리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존경받는 국가지도자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말이다.                                                                                                                        

(2013. 2. 24) 
 ....홍문종 생각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순응의 힘


순응의 힘

 
인간의 방어기제로 인한 긍정적 에너지를 축복처럼 만나게 될 때가 많다.
실제로 콤플렉스가 사회적 성공의 발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순응의 힘이다.
각박한 이 세상을 조금은 웃으며 살아가도록 배려한 신의 손길로 느낀다면  과장일까?
어쨌든 순화된 방어기제로 인해 유익한 ‘삶의 도구’가 우리에게 주어진 셈이다. 
개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은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이지 싶다. 그리하여 자칫 무위로 흘려보낼 수도 있는 시간들을 창출의 공간에 새롭게 채워나가는 무한 에너지, 그리고 그 근원을 확인해나가는 절차가 중요하다. 그런 다음 저마다의 적응력을 밑천 삼아 긍정적 에너지로 환상적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다가 영어의 몸이 되어 있는 선배정치인을 찾았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실의에 빠져있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그는 크게 달라진 모습 없이 우리 일행을 맞았다.
선배로서 미안하다고 민망해하면서도 위풍당당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의연하고 씩씩했다.
비결이 뭐지? 살짝 궁금했는데 그가 먼저 답을 내놨다.
“그동안 번잡하게 사느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지난 시간을 성찰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있어요. 그런 기회를 갖게 돼 정말 다행인지...”
불운에 대한 방어기제가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되어 그로 하여금 삶의 여유를 지킬 수 있게 작동한 것이다.

그와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인 정치인에게서도 비슷한 심리상태가 엿보였다. 
짤막하게 위로의 서신을 보냈더니 무지무지하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답신이 왔다.
무엇보다 평상심을 잃게 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주어진 운명에 굴하지 않겠다는, 자유스럽지는 않지만 긍정적 에너지를 디딤돌 삼아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각오가 보통 단단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자서전 출간계획까지 짜는 등 밖에서 보다 더 왕성한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야무진 미래설계에 여념이 없게 만든 순응의 놀라운 에너지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시름을 내려놓게 됐고. 

비슷한 맥락으로 박근혜 정부 각료에 인선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의 '성공'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라이프 스토리는 참으로 대단하다.  순간순간마다 어찌 그리도  절묘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존경스런 삶이다.   특히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역사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뚝심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알려져 있다시피 14살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자가 된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빈민촌에서 정부가 지급한 식권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할 만큼  거칠고 불우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고학으로 대학(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을 마치고도 생활고 때문에 미 해군에 입대해 7년간 해군 장교로 핵잠수함을 타야했다.
그런 그가 30대 후반 무렵 성공한 과학자이자 경영인으로 미국 400대 부호 반열에 오르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입지전적인 라이프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오래 전 떠나온 조국의 부름을 받고 금의환향하게 되리라고는 더더군다나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이뤄낸 성공인이다. 현재의 것만으로도  최상의 삶을 보장받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모국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첫발을 떼고 있는 그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리고 기원한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무한 에너지로 새로운 환경을 사뿐히 안착하게 되기를.

PS;  일각에서 김 내정자의 국적 문제를 시비삼고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이중국적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시점이 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이중 국적 허용에 앞서 몇 가지 장치는 전제돼야 한다.   김 내정자의 다양한 경험은 대한민국 발전에 여러모로 이점이 될 것이다.  모국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그의  남다른 각오도  우리에겐 더없는 호조건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대한민국을 21세기 주역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의 역량을 끌어내는 건   우리의 몫이다. 
그의  열정을 믿어보도록 하자.                                                           

(2013. 2. 19)
....홍문종 생각

2013년 2월 15일 금요일

홍문종생각 - 이동흡라빈스 31


이동흡라빈스 31



살아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운명을 매듭짓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무엇보다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그 결과가 늘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기에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 저마다의 가슴 속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 한 줌씩을 품게 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드디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사퇴’로 자신의 거취를 마무리 지었다는 소식이다.
‘만시지탄’,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열흘 전 쯤 방송에 나가 농 반 진 반 ‘아직 사퇴 안했느냐’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결단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그의 망설임이 아쉽다.
그는 선택을 너무 오래 끌었다. 그 바람에 출혈이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인생에서 진퇴의 명분과 시기를 명확히 알고 이를 실행하려는 의지는 정말로 중요하다.
모르긴 몰라도 옛 성현들이 날 때와 들 때를 제대로 아는 처신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새 정부 조각을 위한 인선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몇 번의 ‘경험’ 때문인지 불안감이 없지 않다. 모름지기 좋은 분들이 선택되길 바라는 마음 크지만 그 중 몇이나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일단은 청문회 검증대가 관건이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인사 검증 과정에서 운명을 바꾸는 정황을 숱하게 목격했기에 한느 소리다. 실제로 나름 잘 살았다고 자부하던 삶이 하루아침에 저자거리 눈요기로 곤두박질치거나 다소 미흡했더라도 새로이 웅지를 펼칠 기회를 얻은 사례가 적지 않다. 
이동흡 사퇴 소동만 해도 그렇다. 최소한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양했다면 그렇게까지 난도질당하는 참사는 면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는 인사에 욕심을 부렸다. 자기 자신을 너무 몰랐던 탓이다. 
새 정부 인사지명자들이 경계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물론 판단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자기에게 주어진 정황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주변 지인들에게 익명의 인물인양 자질여부에 대한 판단을 구해보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내가 들어설 자리인지 아닌지 충분히 판단한 이후 나서도 늦지 않다.
지혜로운 처신으로 더 이상 인사지명으로 상처받는 이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얻은 타산지석의 가르침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결론이 아니라는, 끝없이 정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그것이다.
앞서의 실패들도 결국 인생을 긴장하지 않고 산 후유증에서 비롯됐다.
최소한 더 큰 미래를 염두에 둔 삶이었다면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을 텐데 그들은 이를 간과했다.


인생은 결코 녹록치 않다.
두려워할 줄 아는 겸허한 마음으로 제대로 살아야겠다.                                 

(2013. 2. 15)  
...홍문종 생각

2013년 2월 5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유언비어


유언비어

 
엊그제 일본 관동지역 대지진 당시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당한 현장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보도된 지면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도 민심수습을 노리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집어넣었다’고 퍼뜨린 일본정부의 유언비어가 발단이었다니 오죽할까 싶다.  
몇 년 전에는 일본 야쿠자와 연루돼 신체 주요부위가 훼손됐다는 괴담에 시달리던 가수 나훈아씨가 기자회견 단상에 뛰어올라 바지춤을 움켜쥔 채 시위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 역시 유언비어가 주범이었다. 또  악성 루머에 시달리던 인기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한줌 흙으로 사라지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도 있었다.
  
정치권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휘말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유죄로 찍히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측면에서 정치인이 유언비어에 갖는 심리적 부담은 상상 이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유언비어가 한 사람의 정치적 명운을 가르는 결정적 한방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럴 거라는 생각이다. 

중상모략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정치를 하면서 숱한 유언비어에 시달리는 건 인지상정이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유언비어가 활용된 흔적을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언비어의 독성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장래가 촉망되던 정치인들이 오래 벼르던 웅지를 접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6대 국회 당시,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며 중상모략에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던 몇몇 동료의원들의 경우도 그랬다. 그들의 아픔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대범하게 웃어넘기라고 토닥이는 게 전부였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식으로 꺾여나간 아까운 인물들이 많다.   미완에 그친 정도전, 조광조의  꿈이  그랬고 불멸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충무공 이순신도 자칫했으면 음해의 희생물이 되어 무위의 존재로 남을 뻔 했다.
세월을 거슬러 오르고 나침판을 뺑뺑 돌려 무작위로 찾아도  유언비어의 위력만큼은 여전히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강적 페르시아에 맞서 아테네 뿐 아니라 그리스 전체를 구한 영웅으로 칭송받던 테미스토클레스를 하루아침에 패각투표로 끌어내리고 자살로 최후를 맞게 만든 것도 유언비어였으니 하는 말이다.

이쯤에 이르고 보면 유언비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폐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느 정도 문명을 이루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우선시되는 사회라면 정당하지 않는 승부를 거부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늘 문제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는 핑계를 방패삼아 운명 뒤에 숨어야 할지, 혁신의 깃발을 앞세우고 씩씩한 투사의 길을 자임할 것인지 결론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그 망설임들이  직관적 결단을 방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엔 양심의 울림에 더 큰 힘이 실리게 될 것을 믿고 있다. 
그리하여 정당하지 못한 승부나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을 발판 삼는 꼼수 따위는 언감생심 명함도 내밀지 못할 그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것도.                                                                 

 (2013. 2. 5)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