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5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유언비어


유언비어

 
엊그제 일본 관동지역 대지진 당시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당한 현장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보도된 지면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도 민심수습을 노리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집어넣었다’고 퍼뜨린 일본정부의 유언비어가 발단이었다니 오죽할까 싶다.  
몇 년 전에는 일본 야쿠자와 연루돼 신체 주요부위가 훼손됐다는 괴담에 시달리던 가수 나훈아씨가 기자회견 단상에 뛰어올라 바지춤을 움켜쥔 채 시위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 역시 유언비어가 주범이었다. 또  악성 루머에 시달리던 인기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한줌 흙으로 사라지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도 있었다.
  
정치권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휘말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유죄로 찍히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측면에서 정치인이 유언비어에 갖는 심리적 부담은 상상 이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유언비어가 한 사람의 정치적 명운을 가르는 결정적 한방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럴 거라는 생각이다. 

중상모략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정치를 하면서 숱한 유언비어에 시달리는 건 인지상정이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유언비어가 활용된 흔적을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언비어의 독성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장래가 촉망되던 정치인들이 오래 벼르던 웅지를 접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6대 국회 당시,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며 중상모략에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던 몇몇 동료의원들의 경우도 그랬다. 그들의 아픔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대범하게 웃어넘기라고 토닥이는 게 전부였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식으로 꺾여나간 아까운 인물들이 많다.   미완에 그친 정도전, 조광조의  꿈이  그랬고 불멸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충무공 이순신도 자칫했으면 음해의 희생물이 되어 무위의 존재로 남을 뻔 했다.
세월을 거슬러 오르고 나침판을 뺑뺑 돌려 무작위로 찾아도  유언비어의 위력만큼은 여전히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강적 페르시아에 맞서 아테네 뿐 아니라 그리스 전체를 구한 영웅으로 칭송받던 테미스토클레스를 하루아침에 패각투표로 끌어내리고 자살로 최후를 맞게 만든 것도 유언비어였으니 하는 말이다.

이쯤에 이르고 보면 유언비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폐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느 정도 문명을 이루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우선시되는 사회라면 정당하지 않는 승부를 거부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늘 문제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는 핑계를 방패삼아 운명 뒤에 숨어야 할지, 혁신의 깃발을 앞세우고 씩씩한 투사의 길을 자임할 것인지 결론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그 망설임들이  직관적 결단을 방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엔 양심의 울림에 더 큰 힘이 실리게 될 것을 믿고 있다. 
그리하여 정당하지 못한 승부나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을 발판 삼는 꼼수 따위는 언감생심 명함도 내밀지 못할 그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것도.                                                                 

 (2013. 2. 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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