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메시아

메시아


"여러분이 수백만 명 가운데 나를 찾아냈다는 건 우리 시대의 기적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을 찾아냈다.      이것이 독일의 운명이다“
1937년, 히틀러는 이런 자신감으로 독일 국민을 선동했다.  대중은  열광하며 히틀러의 등극을 환영했다.  대단한  메시아  신드롬이었다.  
그러나 그 시혜(?)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  대한민국 대선 판을 부유하는 메시아 신드롬의 편린들을 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메시아를 향한 대중의 열망이 뜨겁다.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한 시대적 상황의 특징이다.
저마다 분분한 해석을 내놓으며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걔중에는 존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냉소주의와  근접한 조건이면 메시아로 인정해서 의지해보자는 절충주의, 또는 시대정신을 메시아로 동일시하며 이를 화두삼아 정진하자는 열혈주의의 기대감이  눈길을 끈다.  
덩달아 대권을 향해 메시아적 인자를 갖춘 적임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과포장된 능력을 지속적인 자기최면을 통해 진짜 메시아라고 확신을 굳혀가는  모습들도 엇비슷하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생긴 듯하다.

이런 정황에서  안철수 현상을  되짚어 보는 일은 흥미롭다. 
최근 룸싸롱, 최태원 SK 회장 구명 등으로 촉발된 ‘거짓말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얼마만큼의  영향력인지   가늠해 보는 일이 그것이다.
안 원장은 몇 가지 사안에서 그동안 숭고일변도(?)였던   자신의 언행과 엇박자를 내면서 곤경에 처했다. 
재벌그룹의 부도덕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그가 재벌가 자제들과의 모임을 만들고 , 재벌 구명 운동을 벌이거나  공동사업을 구상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술집은 커녕 술도 못마신다는  손사레도   거짓이었다.   ‘안철수 원장과 여자가 있는 룸싸롱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는  증언이 담긴  월간지 기사가 나가자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 ‘안철수 룸싸롱’이 순식간에 1등 검색어에 등극하는 기현상이 단적으로 대변하는 대목이다. 

물론 룸싸롱에서 술 마실 수 있다. 재벌 친구 구명운동 했다고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안철수 원장만큼은 예외일 수 밖에 없다. 지나치게 강도높은  도덕적 기준치로   스스로의 정치적 위상을 올리는 대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직격탄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텔레비전에 나와 단란주점이 뭐하는 곳이냐며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거나 재벌의 불공정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는 정의감으로 대중에게 메시아적 이미지 심기에 성공한 그로서는  예상치 않은 부채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는 확실히 이미지 메이킹 만으로 특별한 투자 없이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 오르는 특수를 누렸다.    
의도했건 안했건 지나치게 완벽한 메시아적 이미지에  매달린 과욕이 화근이었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인간의 정서와 얼굴을 가진  메시아 설정으로 국민 앞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실없는 줄 알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예단할 순 없지만 이번 논란이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안원장의 진로를 방해할  징후는 여전히 유효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라도 그가 메시아의 컨셉을 바꾸면  좋겠다. 
최소한 국민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원하는 메시아의 유형은 하늘에서 강림하기보다는 더불어 살면서 고통을 이해해주는 이웃의 모습이다.   더 나아가 그 고통을 승화하고 정제시키는 작업을 통해 실패의 흔적을  백신으로 만들어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메시아를 원할 것이다.  국민을 어려움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지도자야말로  진정한 메시아의 현신이고   국민이 가장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원장 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모든 이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세요. 
과거의 오류에 옭아매기보다 어떻게 극복하고 승화시킬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포인트를 맞춰보세요. 
특히  잘나고 빛나는 이력보다는 포기와 좌절을 딛고 새로운 메시아적 이정표 창출로 스스로의 길을 얼마나 열어나갈 수 있었는지,  불굴의 투지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 보세요"     

그렇게  뚜벅뚜벅  나가다 보면   어느 결에 더 크게 국민적 기대감을 충족시키고 있는 스스로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진짜   메시아가  되어  환호 받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참으로 가슴 떨리고 신나는 일 아닌가.                               
  
(2012. 8.29)
 ....홍문종  생각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이 후보를 추천합니다

이 후보를 추천합니다


18대 대선에 출마할, 당 후보 확정 과정을  남다른 심정으로 지켜봤다.
“박근혜 후보”
후보 확정을 알리는 아나운서 멘트가 장내에 퍼지는 순간,  무엇인가  뭉클, 가슴을 밀고 올라왔다. 마치  나 자신  호명받은 당사자라도 되는 양 짜릿한 전율이 전신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맨 먼저 떠오르는 건  근 한 달여간  폭염을 헤치며 합동연설회장을 누비던 기억이 아니었다.   5년 전, 유례없이 치열했던 17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1.5%  차이로 분루를 삼킬 때의 안타까움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특히  많은 이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던 승복연설의 아우라가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었다.  승복에 인색했던 기존의 정치문화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라며 칭송이 줄을 잇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재생됐다. 
지도자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고 박 후보에 대한 확신을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기억들이었다.  그 때의 감동은  2007년 경선에서 지연, 학연 등의 집요한 회유를 뿌리치고 그녀를 선택한 나의 혜안에  확신과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지금껏 그녀를 지지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각별한 각오와 투지로 임하게 된다.
박근혜 후보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타이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조력하고 싶다.  고난을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킨 인간 승리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볼 생각이다.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팽배해 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박 후보의 행적도 우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요인 중 하나다. 수많은 정치적 인고에 굴하지 않고 고집스러울 만큼 깨끗함과 정직함을 추구하며 흐트러지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놀랍다. 절제된 언행이나 신념, 그리고 신의가 몸에 밴 지도자로서의 덕성은 오늘의  박근혜를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형성되거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박근혜식 리더십이 갖는 가치에 숙연해질 때가 많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게 자기 인생 전부를 건 승부수라는 걸 박 후보를 보면서 알게 됐다.  순간순간의 기교나  스쳐가는 우연 따위로 판가름 지을 수 없는,  처절하리만치 고행의 연속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와 여유가 필요한 필사의 과정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후광 운운 하면서 그녀의 정치적 역량을 폄훼하려는  정치적 공세가  준동을 하고 있다.   아무리  선거전이라 하지만    그 얄팍하고 졸렬한 꼼수가  어이없다. 


좋은 리더를 선택하는 건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표피적이고 찰나적인 정치적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  안목이 있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후보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궤적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올바른 판단을 돕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후보가 된 이후 . 통합과 소통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끌어안겠다는 의지가 역력한 그녀의 광폭 행보가 더 없이 미덥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찾고 유가족과 마음을 나누는 모습에서  지금까지와 또 다른 의미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흑색선전으로 자신을  치욕스럽게 했던 당사자에게조차    손  내밀기를  마다않는 그녀에게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본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적임자로서의 인성을 갖춘 그녀야말로  대한민국 비전을 창출할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덧셈의  정치로  대한민국의 국태민안을 실현 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 말이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추천하는 바이다.
박근혜 후보에게 기회를 주시라.
바람직한 철학과 비전을 갖춘  좋은 대통령감이라는 걸 확신하기에 감히 부탁드린다.  
그녀의   지난 60평생을 촘촘히  살펴보면 답이 있을 것이다.                            

(2012. 8. 23)
...홍문종 생각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무대 뒤에서


무대 뒤에서 


17일 간의 지구촌 대장정, 런던 올림픽이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종합 5위 전적으로 역대 원정 올림픽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 태극전사들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온 국민에게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한 여름 밤의 꿈으로 사라지겠지만 그 순간의 열정만큼은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게 될 거라는 예감이다.
 언제나처럼 승리의 주역들이 영웅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금메달을 거머쥔 스타플레이어들의 눈부신 아우라를 곁들인 올림픽 뒷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다.  그들의 화려한 인생역전 스토리에 열광하며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찬사와 갈채도, 신문 방송이 연일 조명을 들이밀며 헹가래 치는 모습도 익숙한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역사는 1등만 기억한다는 게 문제다.
1등이 아니면 여지없이 익명의 주변인 신세다.  나머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 자리를 놓고 겨루게 되기까지의  정황에도 불구하고   ‘승자독식’ 논리에 지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올림픽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도 연예계도 다를 바 없이  1등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형국이다.
물론 올림픽 금메달, 부와 명예를 보장할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이벤트다.  그렇다 한들 금메달이 스타플레이어 한 사람만의 개인기로 가능할 수 없는 과정을 생각하면 불합리하다. 
그런 측면에서 한 때 인기를 누린 개그 유행어, ‘1등만 생각하는 더러운 세상’은  가히 촌철살인의 풍자다.  우리의 비정한 현실을 너무도 적확하게 대변한. 
  
누구에게도 함부로 패자의 이름을 붙이지 않을  일이다. 
우수한 선수, 뛰어난 CEO를 부와 명예를 독식할 수 있는 승자로 규정하고 경기를 위해, 조직을 위해 뛰어다닌 선수나 직원들을  무조건 패자로 모는  건 근시안적  패착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오늘이 있기까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온다. 
 부모부터 시작해서 코치와 감독, 심지어 선수촌의 영양사, 경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그를  위해 헌신한 흔적이 역력하기에.   
따지고 보면 국가대표로 선발되기까지의 경쟁자들도 그를 만든 자원의 일부였다.
1등 주자가   명예와 부를 얻은 현실에  자족하고 나머지 혜택은 자신을  위해  헌신한 주변인의 몫으로 돌리는  겸허함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이제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던  독식의 성찬은 끝났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부국이 되기까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들의 역할만 있었던 게 아니다. 야구에서 기량이 뛰어난 타자 한 사람만의 힘으로 시합을 승리로 이끄는 게 아닌 정황과 같다.  아무리  능력있는 CEO라도 진정성 있는 뒷받침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삼성이 됐건 현대가 됐건 재벌기업의  놀라운 성공은 수많은 하도급 업체와 그 종사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도 기업 총수 못지않게 갈채를 보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나날이  그 수를 늘리고 있는 노숙자나  치솟는 실업률  문제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양극화 현상과 부의 편중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역시   임계점에 이른 상황임에랴.  
우선은 불공정의 굴레부터 벗어 던질 일이다.

그리고 승자의 독식을 거부하는 자발적  분위기 조성....    
대선 정국의 이슈로 부각된 경제민주화  덕목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 간의 희로애락은 가슴에 묻고 4년 후를 기약하며 새로운 출발선에 나선  우리의 건아들이  그 어느 때보다 듬직한 느낌이다.
그들 모두에게 아낌없는 갈채와 사랑을  보내며  이제 그만  축제의 흥을 접으려 한다.  
                                                                                                         
( 2012. 8.14)
 ...홍문종 생각

2012년 8월 7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이종걸 의원의 막말


이종걸 의원의 막말

 
민주통합당 ‘이종걸 의원’이 사고를 쳤다.
자신의 트윗에 박근혜 후보를 상스러운 욕설을 섞어 타박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정치적 지향점은 다르지만 이종걸 의원에 대해 배타적 감정을 품어 본 적이 없다.
결정적 이유를 대자면 그가, 평소 존경하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라는 점 때문이다.
일제 당시 우당 선생 일가의 애국 행적은 가문 차원의 완전한 헌신이었다. 집안 전체가 명문가의 안락함을 팽개치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선택이 있었기에 오늘 날 우당 가문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며 대한민국 대표 명문가로 추앙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언행은 인간의 도덕성과 지적 수준을 확실하게 평가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그런 측면에서 이종걸 의원이 스스로의 막말에 대해 느껴야 할 부담의 강도는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고 4선의 제1야당 최고위원이다. 거기다 가문의 명예를 생각하면 더 더욱 정제된 처신이 요구되는 위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원은 시정잡배 수준의 막말로 가문은 물론 동료 의원들에게까지 상처를 입혔다.
더 실망스러운 건 이번 사건을 대응하는 그의 안일한 현실인식이다.
이의원은 자신의 ‘욕설’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줄임말’이라고 했다가 ‘오타’라고 하는 오락가락 궤변으로 변명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정작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 한 것은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해진 이틀 뒤였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고를 치고도 무모할 만큼 완강하게 잘못이 없다고 버틴 이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오히려 막말을 지적받자, ‘고심해서 찾아낸 욕설’이라는 뉘앙스로 너무 따지지 말라고 충고할 정도로 당당하다는 식이었다. 사고체계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에게 두려운 존재가 없었다. 유력 대권 주자에게 막말을 해놓고도 버티도록 무모한 용기를 부축인 건 그의 안하무인격인 상황인식이었다. 적어도 국민 여론을 두려워했다면 그 같은 방만함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현실에 접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일상의 상식을 배반해야 할 경우가 많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게 최선으로 평가되는 정치적 가치판단과 무과하지 않다. 상대를 죽여야(?) 비로소 내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속성 상 상대의 허점이나 잘못을 파고들고 물고 늘어져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그렇더라도 금도는 지켜야 한다.
정치를 우위를 점하기 위해 스스로의 품격을 포기하는 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소탐대실이 되기 쉽다.   특히 말로써의 정쟁이 일상이다시피 한 정치인의 언행은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한다.  한번 쏟아내면 주워 담기 어려운 말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오늘따라 무더위가 더 참기 힘들게 느껴지는 건 이종걸 의원의 막말이 보태준 답답함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2012. 8.7)
....홍문종 생각

2012년 8월 6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공천헌금


공천헌금

요즘 환경에선 어림없는 일이지만 선거 때마다 ‘전국구는 돈국구’ 등식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례대표를 받으려면 거액의 공천헌금이 관행처럼 통용되던 때의 이야기다.
비례대표 1번은 얼마, 2번은 얼마 하는 식으로 액수가 설정돼 있고 그렇게 유입된 ‘헌금’의 일부가 당 운영비나 공천을 챙겨주는 실세의 수입으로 배분된다는 건 공공연하게 알려진 ‘비밀’이었다.
내가 도당 위원장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던 때에도 그랬다.
하루가 멀다하게 돈 공천 파문이 터져 나왔고 그 와중에 공심위원장이었던 나 역시 무수한 음해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검은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급기야 무슨 혐의를 받고 검찰에 불려가는 사람들마다, 특히 기초 단체장들은 예외 없이 공천헌금을 자백하라는 회유에 시달렸다는 뒷이야기가 돌고 있는데 당시 풍토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갑은 몰라도 을의 위치에서 자기 소신을 지켜나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한 번 소신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형국이 되는 정황을 감안하면  이를  놓지 않으려는 노력은 더 없이 중요하다.  언젠가 자기 나름의 정치역량을 펼치려는  꿈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해야 할 덕목임에 틀림없다.    

이번 파동이 정치적 주도권 다툼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상황은 유감스럽다.
당의 위기를 호기로 삼아 박근혜 후보에게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비박주자들의 공세도 유감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경선 일정을 볼모삼은 그들의 시도는 장안의 웃음거리가 됐다. 스스로의 패를 다 까 보이고 논두렁에 고개를 처박은 꿩의 우매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솔직히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다.
완벽하다고 볼 순 없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의한다면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 반열에서 박근혜 후보만큼 돈 문제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청렴을 능가하는 정치인은 단연코 없다는 믿음이, ‘빚 값는 정치’로 대한민국 미래를 파행으로 몰아넣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오랜 동안 그녀를 ‘대통령 감’으로 지지하게 만들었다.
그런 배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를 향한 공세들이 번번이 명분을 얻지 못하고 제풀에 꺾이게 되는 건.

이 참에 비박주자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알려주고 싶다.
그들이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다.  실제로 번번이 들고 나서는 의제마다 ‘자기가 뺨 맞은 것도 아니면서 왜 울겠다고 나서는 것이냐’ 타박하는 대중의 냉소에 갇히게 되는 이유를 진지하게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국민 마음을 얻지 못하는 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매사 자기 성찰 보다는 남 탓으로 돌리는 습관 말이다.  
실제로  이런  것들이  여론의 향배에 결정타가 되는 게  정치판 인생이다.                          
  
(2012. 8. 5)
 .....홍문종 생각

2012년 8월 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닮은 꼴' 단상

'닮은 꼴' 단상


태극전사들이 런던 올림픽 펜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냈다는 쾌보다.
감동의 드라마로 펼쳐지는 열광의 무대가 연일 지구촌 전체를 쥐락펴락 흔들어 대는 와중에 접하게 된 최고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100번째 금메달이라는 의미에 감동이 배가되는 분위기다.
승부가 갈릴 때마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재미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다. 중독성이 감지되기도 한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과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열광하게 되는 걸 보면 그렇다.
특히 이번 올림픽 최고의 화제 인물로 부각된 금메달리스트 송대남 선수가 국가대표 서정복 감독, 방귀만 코치와 더불어 유도계를 대표하는 자랑스런 경민출신이라는 사실이 올림픽 경기 관람에 신명을 더 해 주는 듯 싶다.

그러면서 새삼 확인한 것이 있는데 내 안에 못 말리는 정치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뼈 속 깊이 정치색에 물들어있는 스스로를 재발견했다고나 할까. 아닌 게 아니라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정치 구조를 견주며 유사점과 상이점을 구분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정치라는 화두가 내 삶의 중심을 지배하고 있다는 소리다.
금메달은 올림픽 경기의 꽃이고 당선은 정치인의 최종 목적지다. 금메달과 당선이라는 목표물이 완성되는 순간, 환호가 터지는 모습이 너무도 닮았다. 4년을 주기로 엄청난 노고를 필요로 하고 역경을 감내하고 나서야 원하는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 운명이 서로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완벽하고 확실하게 예견된 결과만이 아니라 부서지고 망가져 더 이상의 희망을 포기하려는 마지막 순간, 역전 드라마의 카타르시스가 가능한 것도 올림픽과 정치 영역에서만 허용되는 묘미이지 싶다.
그런가하면 운명의 장난처럼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유가 오래 공들인 탑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승자가 결정되면 당사자보다 주변부가 더 신나하고 기세등등해지는 정황도 두 영역이 닮은 점이다. 일템변 태극전사들의 선전으로 날마다 쏟아지는 메달 소식이 폭염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정황 같은 것 말이다.

유사하면서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아이러니한 정황이 많은 것도 두 영역이 갖는 특장점이다.
올림픽에서는 한번 금메달리스트면 영원한 금메달리스트다. 한번이라도 금메달을 따면 불변의 지위가 보장되는 것이 올림픽의 묘미라면 4년마다 한번씩 혹독한 검증대 통과를 요구하는 정치는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중요성이 간파된다. 또 있다. 금메달이 세계 각국의 대표선수들이 기량을 겨뤄 얻은 결과라면 정치는 내부 경쟁의 벽을 뛰어넘어 희비를 갈라야 한다는 게 다른 점이다. 젊을수록 금메달리스트의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는 올림픽과는 다르게 정치에서는 적당한 연륜이 승인의 호조건으로 작용하는 것도 두 영역을 구분하는 큰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확연히 구분되는 목표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올림픽은 명예를 추구하고 정치는 권력을 추구한다. 그렇다 한들 섣불리 가치의 우위를 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뜬금없는 시도에는 승자만 기억하는 사회에 대한 반발심리가 작용한 정황이 역력하다. 솔직히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 것만 해도 생의 엄청난 명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놓치면 무능의 대명사라도 된 것처럼 철저한 외면으로 유망한 기대주들의 꿈을 가두는 폭력을 서슴지 않았던 우리다. 오로지 1등 만이 인생 최고의 가치고 어느 영역에서건 1등이어야 비로소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1등만 향해 치달아 온 부작용의 폐해가 눈 앞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패자도 기억되고 대우받을 수 있는 성숙한 사회적 분위기가 요구되는 시점이 된 것이다.
강자를 향한 환호 못지않게 최선을 다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이들에게도 또 다른 가능성을 기다려주자. 실패나 낙마가 새로운 포기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패자에 대한 배려가 정착돼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영광의 주역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마찬가지로 실패한 전사들에게도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말자.
오늘은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미래를 포기하거나 기권하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말자.
새롭게 결기를 다지면 4년 후엔 금메달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토닥토닥 등이라도 두드려 주자.

(2012. 8. 4)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