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닮은 꼴' 단상

'닮은 꼴' 단상


태극전사들이 런던 올림픽 펜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냈다는 쾌보다.
감동의 드라마로 펼쳐지는 열광의 무대가 연일 지구촌 전체를 쥐락펴락 흔들어 대는 와중에 접하게 된 최고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100번째 금메달이라는 의미에 감동이 배가되는 분위기다.
승부가 갈릴 때마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재미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다. 중독성이 감지되기도 한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과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열광하게 되는 걸 보면 그렇다.
특히 이번 올림픽 최고의 화제 인물로 부각된 금메달리스트 송대남 선수가 국가대표 서정복 감독, 방귀만 코치와 더불어 유도계를 대표하는 자랑스런 경민출신이라는 사실이 올림픽 경기 관람에 신명을 더 해 주는 듯 싶다.

그러면서 새삼 확인한 것이 있는데 내 안에 못 말리는 정치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뼈 속 깊이 정치색에 물들어있는 스스로를 재발견했다고나 할까. 아닌 게 아니라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정치 구조를 견주며 유사점과 상이점을 구분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정치라는 화두가 내 삶의 중심을 지배하고 있다는 소리다.
금메달은 올림픽 경기의 꽃이고 당선은 정치인의 최종 목적지다. 금메달과 당선이라는 목표물이 완성되는 순간, 환호가 터지는 모습이 너무도 닮았다. 4년을 주기로 엄청난 노고를 필요로 하고 역경을 감내하고 나서야 원하는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 운명이 서로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완벽하고 확실하게 예견된 결과만이 아니라 부서지고 망가져 더 이상의 희망을 포기하려는 마지막 순간, 역전 드라마의 카타르시스가 가능한 것도 올림픽과 정치 영역에서만 허용되는 묘미이지 싶다.
그런가하면 운명의 장난처럼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유가 오래 공들인 탑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승자가 결정되면 당사자보다 주변부가 더 신나하고 기세등등해지는 정황도 두 영역이 닮은 점이다. 일템변 태극전사들의 선전으로 날마다 쏟아지는 메달 소식이 폭염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정황 같은 것 말이다.

유사하면서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아이러니한 정황이 많은 것도 두 영역이 갖는 특장점이다.
올림픽에서는 한번 금메달리스트면 영원한 금메달리스트다. 한번이라도 금메달을 따면 불변의 지위가 보장되는 것이 올림픽의 묘미라면 4년마다 한번씩 혹독한 검증대 통과를 요구하는 정치는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중요성이 간파된다. 또 있다. 금메달이 세계 각국의 대표선수들이 기량을 겨뤄 얻은 결과라면 정치는 내부 경쟁의 벽을 뛰어넘어 희비를 갈라야 한다는 게 다른 점이다. 젊을수록 금메달리스트의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는 올림픽과는 다르게 정치에서는 적당한 연륜이 승인의 호조건으로 작용하는 것도 두 영역을 구분하는 큰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확연히 구분되는 목표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올림픽은 명예를 추구하고 정치는 권력을 추구한다. 그렇다 한들 섣불리 가치의 우위를 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뜬금없는 시도에는 승자만 기억하는 사회에 대한 반발심리가 작용한 정황이 역력하다. 솔직히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 것만 해도 생의 엄청난 명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놓치면 무능의 대명사라도 된 것처럼 철저한 외면으로 유망한 기대주들의 꿈을 가두는 폭력을 서슴지 않았던 우리다. 오로지 1등 만이 인생 최고의 가치고 어느 영역에서건 1등이어야 비로소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1등만 향해 치달아 온 부작용의 폐해가 눈 앞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패자도 기억되고 대우받을 수 있는 성숙한 사회적 분위기가 요구되는 시점이 된 것이다.
강자를 향한 환호 못지않게 최선을 다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이들에게도 또 다른 가능성을 기다려주자. 실패나 낙마가 새로운 포기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패자에 대한 배려가 정착돼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영광의 주역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마찬가지로 실패한 전사들에게도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말자.
오늘은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미래를 포기하거나 기권하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말자.
새롭게 결기를 다지면 4년 후엔 금메달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토닥토닥 등이라도 두드려 주자.

(2012. 8. 4)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