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1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어릴적에는

어릴 적에는 

어릴  적에는 아픈 게 좋았다.  
자주 아팠던 건 아니지만 부모님은 물론 온 집안 식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는 상황이 좋았다.  
청년기까지만 해도 아픔은 여전히 기대감을  부추기는 우호적  싸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플 동안만큼은 사유의 폭을 넓히고 존재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이  나이에는 몸의  이상이  더 이상 여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픔에  세월이  얹히자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짧을 수밖에 없는 남은 날들에 대한 체념이  생각보다 일찍 한계를 드러내게 만들었다.  
실제 살인적인 일정(나를 전담하는 기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빡센)에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이라고  찬바람을 뚫고 유세차로 강행군을 이어갔더니  탈이 나고 말았다.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급기야  약을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간의 일정을 얼추 마무리 했다는 안도감에   방전된  로봇이 되어 널브러졌다. 

 결국 내일이면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나 새로운 날을 열게 될 것이다.
 불량품이 된 컨디션 덕분에  삶을  중간점검하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이 위기를 수습해서  불안정하고 연약한  지금의 현실을 딛고 일어서야겠다  다짐해본다.     
흔히 말하는 성공적인 삶의 선택도   크게 어려운 과정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
원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기질이기에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을 체계적으로 차곡차곡 정리해보고  싶다.  
우선은 인간의 굴레가 주는 한계를 인정할 일이다.  그 다음엔  현실적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려는 의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난관도 내 갈 길을  막지 못할 거라는 결기가 내 안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다.     
이런 '순응'들이 내 삶을 바꿔 줄 것이라   확신한다.    
10월의 마지막 날  신새벽, 자다가 일어났다.   
책상 앞에 앉아   천상의 비밀이라도  채워넣듯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자니  왠지 거룩해지는 느낌이다.                                                                      

(2013. 10.30)
...홍문종 생각 

2013년 10월 2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秋夜 短想

    秋夜  短想

 
                                    -홍문종
 
 

           낙옆   
  힘차게   새눈트고   
  프르게   뽐내더니   
  뻘겋게   달구어져     
  길가에   흩어지네   



          마음  
  구름은  높아지고  
  하늘도  거머쥘듯  
  기상은  뻗어나가  
  계절이  깊어가네  
  


           인생  
   저녁이   저무르고  
   하루가   지나가고  
   일년이   익어가고  
   세월도   셀수있는  
  


           추야  
   나뭇잎    서러워라   
   칼바람    두려워라   
   초생달    저려워라   
   가을밤    아쉬워라   

  
  
   (2013.  10. 27) 


2013년 10월 2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인재의 세계화

인재의 세계화 


‘대한민국은 확실히 축복의 나라다’
HARVARD, STANFORD, MIT 등에서 MBA, MPA를 마친 3,40대 그룹의 연합동문회, ‘future Korean leader’ 현장에서 굳히게 된 생각이다.
그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인재들이었다.   저마다 의욕과 활기가 넘쳤다.   
그들의  자부심이  탄탄대로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확신하게 해 주었다.  
 하버드 행정대학원 회장 자격으로   조언을  부탁  받았지만  오히려  젊은 그들에게  더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수급 받은 기분이었다.  
연단에 올라 몇 마디 하는데 신명이 났다.
      
  
“국정감사 한다고 날마다 피감기관 사람들만 만나며 무거웠던 차에  여러분을 만나니  너무  신난다.  그런데 야속한 보좌진들은 빨리 국정감사장에 가야한다고 여간 닦달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할 말은 하고 가겠다.
여기 올 때는 대한민국을 위한 여러분의 역할을 알리고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한 헤드헌팅, 새누리당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해 줄 젊은 피를 물색하겠다는 사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반짝이는 여러분들을 보니 역시 잘 왔다는 생각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계화’다.  자원도 없고 영토도 좁고 사람도 적은 우리로서는  ‘인재의 세계화’를  통해 세계적인 리더 국가로 거듭나는 선택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미국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미국이 세계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던 부분을 한국이  대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공부하고 미국의 리더십 세태를 파악하고 있는 여러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세계적 리더십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 참으로 중차대한  자원이라 하겠다.  
미국을 알고 대한민국을 알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화된 리더십을 만들어가는 여러분이 자랑스럽고 기대 또한 크다“ 
      
  
국감 일정에 쫓겨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만남에 그쳤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젊은 그들의 넘치는 자신감과 책임감이야말로 막강 대한민국을 만들어 낼 든든한 자원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힘이 불끈 솟았다. 적어도 이 들 중 몇몇은 국민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본연의 역할을 실천하는 정치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아직은 미래를 말하기보다 과거에 집착하고, 칭찬하기보다 탓하길 좋아하고, 겸허히 승복하기보다 무모한 떼쓰기가 만연해 있는 정치현실이지만   머잖아  품격있는  리더십으로 바로 잡힐 걸 생각하니 문득 행복해졌다.                                                                         

                                                 

(2013. 10. 23)
...홍문종 생각

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여성 정치인, 그녀

여성 정치인, 그녀

 
최고위원회의, 국정감사, 선거지원유세, 모교행사 등 이른 아침부터 숨 가쁘게 진행된 오늘의 일과를 마감한 곳은 성북동 산꼭대기 윌리엄 패터슨 호주대사 관저의 만찬장이었다. 방한 중인 줄리 비솝 호주 외무부장관과 꼭 함께 하고 싶다는 대사관 측 요청에 몇 배로 바쁘게 무리해가며 빼낸 일정이었다. 늦을세라 훠이훠이 성북동 산꼭대기에 위치한 대사관저를 찾았는데 몇 몇 동료의원들과 외무부 직원들도 함께 하는 자리여서 반가웠다.
      

변호사 출신인 비숍 외무부 장관은 토니 애벗 총리에 이은 자유당 2인자로 호주 정부 유일의  여성 각료로도 유명하다.   이제 막 취임 4주째를 맞고 있었지만  만찬장에서의 그녀는 좌중을 압도하는  안정된 카리스마로  정치적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보수 정권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나와의 대화를 여는 적극성을 보였다. 아마도 내가 언급했던 20년 집권 발언을 염두에 둔 반응인 듯 했다.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 논란에 관한 국민 반응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나는 ‘보수는 썩지 않고 너그러우며 자기진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충분히 20년 집권이 가능하다, 결국 그런 것들이 경제발전을 만들어낼 수 있고 정권유지에 결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그녀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기초노령연금에 대해서는 결국 국가 부가 늘면 최소한의 증자를 가지고 노령연금을 해결할 수 있다는 해법을 얘기했다. 기초노령연금과 경제는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함께 해야 하는 관계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경제가 무시된 기초노령연금은 국가를 파산시키고 기초노령연금이 없는 경제는 사회전체를 불행하게 한다는 견해에 그녀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나섰다.
나 역시 호주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우리의 국민정서를 전하면서 일본자위권을 두둔한 최근 발언에 대한 섭섭함을 표명했다. 그녀는 표현상 문제였다면서 그 보다는 한국을 좋은 우방으로 얘기하는 등 긍정적 내용이 더 많았다고 적극 설명하는 한편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체결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한국과 호주는 서로의 장점을 굉장히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FTA 체결을 통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모멘텀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적극적이고 친밀감 넘치는 대사, 그리고 사려깊은 친한파 캐릭터 외무장관과의 저녁만찬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멋진 하루에 확실한 방점을 찍어준  성북동 야경 역시  모두를 매료시키는 훌륭한 자원이었다.                                                                                                           

(2013. 10. 17)   
 ...홍문종 생각

2013년 10월 2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home coming day

home coming day 



73학번 입학 40주년기념 모교방문 행사가 있었다. 
모교 발전을 바라는 공감대로 인연의 실타래를 감고 있는 현장은 유쾌하고 발랄하기까지 했다. 특히 40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스물 나이 당시 우리들만의 언어가 공존하고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73학번 강의실’ 현판 제막식(교우들이 모교발전 기금을 모아 마련한 교양관)에서 극대화된 일체감을 통한 ‘愛校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모교를 향하는데 마치 40년 전 새내기 대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듯 설렜다.
수개월 전부터 준비위원장을 맡아 나름 열과 성을 쏟은 행사니 그럴 만 했다. 거기다 오래 묵은 약속을 이행했다는 성취감도 home coming day에 대한 각별함을 거들었다.
      

묵은 약속의 정체를 밝히려면 학도호국단이 학생회를 대신하던 대학시절 이야기부터 풀어야 한다.
그 때는 학생들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전시에 대비한다는 미명 아래 설치된 학도호국단이 학생회를 대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 조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일상적인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간부급을 연대장, 대대장, 사단장 등으로 호명하는 방식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생회장 격인 학도호국단 간부직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다.
친구들이 그런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학생회장 선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열성적이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때 내가 한 대답이 ‘나중에 home coming day 때 앞장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번 40주년 행사에서 준비위원장을 맡아 뛰어다닌 것이다.
예사롭게 넘기기에는 너무도 딱 떨어지는 필연이라는 생각에 놀라웠다.
      

입학 40주년 기념행사라니.
‘기쁘면서도 착잡하고 즐거우면서도 속상한’ 형언하기 어려운 속내가 온종일 오락가락 마음을 흔들어댔다. 듬성듬성해진 머리 숱, 깊게 패인 주름, 세월의 간극을 비껴가지 못한 친구들에게서 자화상을 보고 있자니 덧없고 무상한 세월이 절감됐다. 엇갈린 운명이 내 인생의 명암을 소나기처럼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눈을 감으니 지금의 내 연배 쯤 되는 선배들에게 왜 40년 세월을 그 정도로 밖에 살지 못했느냐고 질책하는, 조금은 당돌하고 거만한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보였다.  질책하고 있지만 조만간 나 또한 나무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세상 이치를 알지 못하던 치기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알고 있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속성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 무력감은 또 얼마나 속수무책인지를.   


무엇보다 40년 전 세운 목표를 향해 한 눈 팔지 않고 오롯이 달려온 나의 지난 삶이  대견스럽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자부심이 나를 새로운 목표물을 향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순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남아있는 시간을 초조히 세고 있는 현실은  고역이다.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삶의 지혜를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주목할  건 최선을 다해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명료한  의지가  적어도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순간,
지금껏 뭐하고 이렇게 초라한 뒷모습을 남기느냐는 질책은 듣지 않겠다는  갈망으로  환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갈망이  요즘 들어 부쩍  자극을 주고 있다.        
신발끈 질끈  동여매고 미래를 향하라는  성화로  뭔가 큰 일을 낼 것 같은 조짐을 부르고 있다.   
                                                      
 2013.10.17
...홍문종 생각
  

  
- 한용진(고려대 사범대학장). 홍문종(73 행사준비위원장.사대교우회장). 조원선(사대교우회 수석부회장) 김덕천(전 사대교우회장) 강선보(전 고려대 교무부총장) - 

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국정감사 첫날에


국정감사 첫날에 


  
의정활동의 꽃, 국정감사가 드디어 서막을 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 같은 설렘으로 기다려 온 날이다.
지나간 국감현장이 흔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도 아닌데  국감 자료를 꼼꼼히 따져 읽으며  긴장하는 것이  영락없는 수험생 폼새다.
 누워서 침뱉는 격이지만 매 번 국감무용론이 대두될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실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형식에 얽매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오명이 익숙할만큼  원성이 자자하다.  특히나  피감기관을 향해  언성을 높이고 인상을 구기는 퍼포먼스로 정신을 빼놓는 '카메라파' 의원들을 올 국감에서만큼은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바꿔놓지도 못하면서 호들갑만 잔뜩 떠는 빈깡통의 폐단에  더 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다.    
 그런 식의 국감이 성과를 남길 리 없다.  그저 만리장성 앞 돈키호테로 전락된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과 자괴감에 짓눌리는 현실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치게 경건해서 무슨 예배 의식이라도 거행하듯  국정감사에 임했다.   신의 영역에 속하는 엄청난 일들을 잘 알 수도 없지만 간절히 간구하면 그 길을 열어나갈 수 있다는 신념이 확신이 되어 내게 용기를 줬다. 
무엇보다  첫 피감기관인 미래창조과학부 질의 현장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있어 기뻤다.      
지엽적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탈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의 동료 의원들이 사명감과  충정으로 국정감사에 임하고 있었는데  조금씩  허물을 딛고 거듭나고  있는  우리 안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  같아 더  없이  행복했다.
특히  평소 박근혜 정부와 대한민국 미래에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터여서   각별한 마음으로 질의에 임했다.   그런 만큼   대한민국 미래를  설계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역량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컸다.       
7분여에 불과한 짧은 질의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모든 걸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많이 준비하지 못하고 내 진심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미진함이 남았다.     

요즘 들어  부쩍   인류역사에 커다랗게 기여하는 합리적인 역할로서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예고하고 준비시키는 하늘의 뜻을 느끼게 된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반드시  세계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 오를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번 국감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여기저기  등불을  켜는  작업이 되길  간구하며  국감 첫날의  소회를  남긴다.                                                                 

(2013. 10. 14)  
...홍문종 생각  

2013년 10월 13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한 밤에 여의도 강변을 거닌 까닭은


한 밤에 여의도 강변을 거닌 까닭은


한강 고수부지 산책은 여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 누리게 된 호사 중 하나다.
틈만 나면 강변을 거닐  궁리를 하는 내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워낙 걷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른 곳이 아닌 한강이어서  주는 즐거움이 큰 탓이다.
강가를 거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오느라 거칠어진 숨결도 잔잔해지고 번민으로 주름진 마음도 어느 결에 환해진다.  아우슈비츠를  탈출하는듯한 통쾌함까지 제공되는  가히 묘약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실타래처럼 엉킨 일과에 지친 오늘 같은 날엔 강가를 갈구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오늘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작용한 이유도 있는 듯하다.
   그런 배경을 업고  늦은  밤 여의도 강변산책을 결행했다.  
편한 복장과 신발로 무장해제를 한 채 익명의 바다에 뛰어드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서강대교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한강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오는데 국회를 등지며 걷기 시작하자  이내 순복음교회 십자가가 시야를 채웠다.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 그 환한 빛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더니 코끝을 간질이며 다가오는 강바람에 밀려나버렸다.  
어느 날  흔히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한 장면처럼.   
     
따라붙는 상념을 애써 떨구고 걸음을 옮기자니 나름의 뜻을 담아 ‘현대판 아고라’로 명명해 놓은 강변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내게 있어 각별한  장소다. 
지금 만약 고대 그리스 당시처럼 직접 민주주의 방식의 정치가 행해진다면 우리의 정치 환경은 어떨까를 상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강바람과 마주치는 지점 또한 개인적인 은밀함이 통용되는 장소이기에  그 의미가 더하지 싶다.    
납득할 만한  개연성이 충분한 건 아니다.  다만  딱 그 곳에 발걸음을 멈추면 내 안의 신명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강바람과의 합체를 통해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 흔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가  설명할 수 있는 전부다.   
일종의 강신바람의 발현이라고나 할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포대교는  그  현란한 불빛만으로도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등 뒤의 서강대교가 거스를 수 없는 세월 앞에 순응하기로 마음먹은 여인네의 수더분함을 강점으로 내세운다면   마포대교의 튼튼한 교각과  생동감 있는 불빛은 자신감으로 도발하는 젊은이의 패기를 닮았다 할 것이다.  
다리를 기점으로 선명하게 엇갈리는 주변 풍경도 이 같은  생각을 받쳐준다. 
마포대교 이전까지는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기분인데 마포대교를 지나면서부터는 엘지 트윈타워로 대변되는 도회의 소란스러움이 불야성을 이루며  편을 가르는 모습이다.
교각 주변에서 예외 없이 삼삼오오 모여 통기타 반주에 맞춰 마음을 나누거나 텐트 안에서 저물어 가는 휴일을 함께 하는 이들은 물론  그 소란스러운 틈새로 서로의 밀어에 취해있는 연인들의  사랑스런  모습도 한 몫 거드는 분위기다.   
그  은밀함에  홀려  안보는 듯  훔쳐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젊음에 대한 부러움 때문일까, 지나간 날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를 되짚어 보는. 
      
  휘적 휘적  걸음을 재촉하니  저 멀리  원효대교가  모습을 드러내다가 이내 희미해졌다.
원효대교는 그 이름이 주는 고즈넉함 때문에 오래된 골동품을 대하는 느낌이었는데  현실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게 되고 말았다.  국내 제일의 위용을 자랑하는 63빌딩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하지만  63빌딩은  기도하는 손을 모델로  삼은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불통의 상징으로 전락되는 위기였다.   
실제  늦은 시간,  층층이 쏟아지는 불빛들이 여의도 구석구석을 넘나드는 모습은 현대판 바벨탑을 지켜보듯 아슬아슬했다.   휘황찬란한 불빛은  아름답지 않았다.  미완에 그친 인간의 욕망이  조금은 허영스러운 모습으로 기품을 갖추지  못하는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었다.    
  
....63빌딩에  다다를 때까지는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출발지로 되돌아 올 때까지도  여전히  비어있는  두 손이  전신의 기운을 뺐다.  
 자괴감에  천길 만길 늘어지는데  때 마침  울리는 휴대폰 너머  어머니 음성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아이고, 수고 많았다.  얼마나 힘들었니. 이젠 딴 생각 말고 빨리 잠자리에 들도록 하렴”
나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지 알고 계시고 또 이해해 주시는 수호천사 어머니,  늘 감사합니다.  
  
PS: 당사에서 방송 카메라를 앞에 선  일정이 마지막 일과였던  지난 6일  시작한   이번  글은  유난히 더딘 걸음으로 완성됐다.  김아무개 박아무개를 비롯한 이런 저런 인연들과 연관된  각오와 교훈을  풋노트로  새긴 이 기록에 애착이 많아질  것 같다.                                    

(2013. 10. 11)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