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home coming day

home coming day 



73학번 입학 40주년기념 모교방문 행사가 있었다. 
모교 발전을 바라는 공감대로 인연의 실타래를 감고 있는 현장은 유쾌하고 발랄하기까지 했다. 특히 40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스물 나이 당시 우리들만의 언어가 공존하고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73학번 강의실’ 현판 제막식(교우들이 모교발전 기금을 모아 마련한 교양관)에서 극대화된 일체감을 통한 ‘愛校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모교를 향하는데 마치 40년 전 새내기 대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듯 설렜다.
수개월 전부터 준비위원장을 맡아 나름 열과 성을 쏟은 행사니 그럴 만 했다. 거기다 오래 묵은 약속을 이행했다는 성취감도 home coming day에 대한 각별함을 거들었다.
      

묵은 약속의 정체를 밝히려면 학도호국단이 학생회를 대신하던 대학시절 이야기부터 풀어야 한다.
그 때는 학생들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전시에 대비한다는 미명 아래 설치된 학도호국단이 학생회를 대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 조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일상적인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간부급을 연대장, 대대장, 사단장 등으로 호명하는 방식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생회장 격인 학도호국단 간부직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다.
친구들이 그런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학생회장 선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열성적이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때 내가 한 대답이 ‘나중에 home coming day 때 앞장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번 40주년 행사에서 준비위원장을 맡아 뛰어다닌 것이다.
예사롭게 넘기기에는 너무도 딱 떨어지는 필연이라는 생각에 놀라웠다.
      

입학 40주년 기념행사라니.
‘기쁘면서도 착잡하고 즐거우면서도 속상한’ 형언하기 어려운 속내가 온종일 오락가락 마음을 흔들어댔다. 듬성듬성해진 머리 숱, 깊게 패인 주름, 세월의 간극을 비껴가지 못한 친구들에게서 자화상을 보고 있자니 덧없고 무상한 세월이 절감됐다. 엇갈린 운명이 내 인생의 명암을 소나기처럼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눈을 감으니 지금의 내 연배 쯤 되는 선배들에게 왜 40년 세월을 그 정도로 밖에 살지 못했느냐고 질책하는, 조금은 당돌하고 거만한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보였다.  질책하고 있지만 조만간 나 또한 나무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세상 이치를 알지 못하던 치기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알고 있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속성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 무력감은 또 얼마나 속수무책인지를.   


무엇보다 40년 전 세운 목표를 향해 한 눈 팔지 않고 오롯이 달려온 나의 지난 삶이  대견스럽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자부심이 나를 새로운 목표물을 향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순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남아있는 시간을 초조히 세고 있는 현실은  고역이다.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삶의 지혜를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주목할  건 최선을 다해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명료한  의지가  적어도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순간,
지금껏 뭐하고 이렇게 초라한 뒷모습을 남기느냐는 질책은 듣지 않겠다는  갈망으로  환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갈망이  요즘 들어 부쩍  자극을 주고 있다.        
신발끈 질끈  동여매고 미래를 향하라는  성화로  뭔가 큰 일을 낼 것 같은 조짐을 부르고 있다.   
                                                      
 2013.10.17
...홍문종 생각
  

  
- 한용진(고려대 사범대학장). 홍문종(73 행사준비위원장.사대교우회장). 조원선(사대교우회 수석부회장) 김덕천(전 사대교우회장) 강선보(전 고려대 교무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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