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201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문종 세배 드립니다.


(2011. 1. 1)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딸 이야기

딸 이야기

딸아이가 훌쩍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스물일곱 나이에 공부를 하겠다고 집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을 했다. 딸아이에게서 오래 전의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눈에 밟히는 딸아이 생각에 자꾸만 서성거리는 마음이 된다. 무슨 청승인지 비어있는 딸의 방을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딸의 체취가 남아있는 물건들을 만져보며 허전함을 달래고 있다.
이런 게 부모 마음인가 싶다.

딸아이 出家(?)에 가장 큰 자극을 받으신 분은 어머니이신 것 같다.
혼기를 놓칠 지도 모를 손녀 딸 걱정이 부쩍 많아지신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엔 별 관심이 없는 손녀가 유학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큰일이다’ 싶으신 모양이다.
덕분에 진작부터 손녀 딸 시집보내기 프로젝트를 일생일대의 관건으로 삼고 백방으로 뛰시던 어머니의 움직임이 한층 바빠지셨다. 돈 잘 벌고 신체 건강하고 가정환경 좋은 손녀사위 감을 외치시면서 중매 전선을 누비고 계신다. 마치 손녀 딸 중매를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양 맹렬한 의지로 집중하고 계신다.

그런 어머니께 중매가 능사는 아니라고 말씀 드려 보지만 역부족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중매시장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중매시장을 통해 무수히 많은 선을 보고 고르고 골라 결혼을 결정해도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난 주위의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하게 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2011년에는 기필코 손녀딸을 시집보내고 말겠다는 전의를 다지고 계시는 어머니께 통할 것 같지는 않다.

최소한 손녀사위 후보 직업에 대한 어머니의 기준은 확고하시다.
정치가와 목사 직업만큼은 싫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신다. 정치가인 남편과 큰아들, 그리고 목사인 막내아들을 둔 어머니의 사적 경험을 근거로 한 결론인데 기도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당사자인 딸이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고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손녀사위 기준과 딸이 원하는 배우자감의 조건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세대는 물론 인생관이 다르고 삶의 행태가 다르니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건 뭐 간장 게장과 피자 정도의 갈등이 아니라 인도인 생각과 우주인 생각 정도의 기호 차이다.
어떻게 하든 손녀딸을 시집보내서 4대를 이루고 싶은 어머니와 그런 할머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나름의 인생 가치에 치중하는 딸내미 사이에서 또 다시 ‘끼인 남자’가 되어 엉거주춤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자꾸만 성급해지는 어머니의 마음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딸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중매가 됐건 연애가 됐건 내 딸이 진정한 인생의 반려자를 찾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결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나로하여금 절박하게 매달리게 만드는 간절한 화두라는 사실을 딸아, 너는 알고 있니?


(2010. 12. 28)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민란보다는

민란보다는

인터넷에서 ‘100만 민란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배우 문성근씨의 근황을 접했다.
‘100만 민란’은 시민 혁명을 통한 야권대통합으로 반한나라당 세력을 결집해서 말하자면 시민 정권을 세우자는 취지였는데 문씨는 이 일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는 듯 했다.
물론 그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그를 좋아했던 터라 그가 남긴 이런 저런 자취에 저절로 관심이 갔다. 무엇보다 뚜렷한 신념을 세우고 그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높이 평가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적장을 칭찬한 셈인데 이런 나의 사고가 이분법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의 서바이벌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고 충고하는 지인도 있지만 하지만 천성이니 어쩌랴.)

그의 열정이 어떤 성과물을 내게 될지 판단하고 싶은 의도는 없다.
그렇지만 피력하고 싶은 개인적 생각이 있다.
문씨가 말하는 ‘혁명’은 통합이 화두로 대두된 21세기 정치현실에 안착하기 힘들다. 누군가를 원천적인 취약점이 있다. 누군가를 배제해야 하는 원천적 취약점 때문에 화합과 소통의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언어 구사 방식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다.
주장하는 건 좋은데 왜 굳이 순화되지 않은 언어가 동원돼야 하는지 설득되지 않는다.
문씨의 말솜씨는 일품이다. 우리 사회의 아프고 힘든 대목을 지적하는 그의 주장은 구구절절 옳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말투나 거친 언어구사는 유감이다.
듣는 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현실에 둔감한 듯 싶다.
지나치게 적대적이어서 선동 정치의 폐해가 부담으로 남는다. 다른 이념이나 가치 대상에 대한 성토는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타도와 전투대상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역시 무리가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르더라도 포용을 전제로 한 극복이나 상호이해 정도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대 진영 말살로 정권을 획득하려기보다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 여론을 설득하는 게 진정성 측면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극단적인 반목과 갈등은 사회적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정권 교체를 목표로 삼는 ‘민란 운동’의 운영방식은 수정돼야 한다.
실제로 그의 계획들은 ‘통합’의 명제 외에는 구체적인 가치와 정책 비전이 보이지 않고 아직 숙성되지 못한 허점이 있다. ‘민란’을 정당민주화, 대의 민주주의 안착,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세부적인 실천 안이 빠져있다.

좀 더 많이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할 것을 설익은 채 세상 밖으로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2011년이 며칠 안남은 시점이다.
서서히 정치가 열리면서 대권이 됐건 소권이 됐건 정치 DNA의 활동 재개 움직임이 역력해졌다.
정치현장의 소모적인 경쟁 구도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고민이 있어야겠다.
정치 현장엔 경쟁자와 상대가 상수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매번 적대적 관계로 대립의 극한을 달리다 보면 심각한 사회적 분열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폐해 역시 만만치 않다. 극한대립은 극한투쟁을 낳고 돌이킬 수 없는 적대감을 양산시킨다. 회복하는데 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 국가적 자원낭비가 아닐 수 없다.

정치 현장에서 겨룰 땐 겨루더라도 포용하고 인정할 수 있는 관계 설정으로 새로운 정치 문화의 지평을 열었으면 한다. 선거 국면에서의 경쟁과 대립도 좋지만 대결이 끝난 이후 현명한 뒤처리를 함께 모색하는 것도 기존 정치의 폐단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별히 남북통일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뒀을 때 정치현장에서 승자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할 명제는 더욱 확실해진다.
어느 대선전에서도 폭발적인 국민 지지를 등에 업었던 정권은 없었다. 고작해야 50% 안팎이었다. 만일 대선 과정에서의 서운했던 앙금이 가슴 속에 독한 불씨로 남게 될 경우 국론 분열은 더 심각한 지경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치적 승자가 왜 좀 더 겸허해져야하는지 그 이유가 자명해 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민란'을 외칠 시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갈등과 분열 보다는 화합과 통합을 매개로 한 사회적 치유 능력자를 찾아야 한다.

PS: 굳이 문성근씨의 도전이 아니더라도 정부와 한나라당이 처한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다.
위기임에 틀림없다.
이대로 독불장군식 노선을 고집하다간 문성근씨나 야당이 아닌 국민들에 의해 퇴출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체감하는 감지기능은 작동능력을 상실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한 걸음만 내딛어도 벼랑 끝인 절대 절명의 처지인데도 미몽을 헤매며 엉뚱한 방향에 집착하고 있다. 착각에 빠진 건지 마취에 취한 건지 여전히 지상 천국이다.
도대체 뭘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2010. 12. 28)
...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간장게장 vs 피자


간장 게장 VS 피자

모처럼 가족 외식을 결정했는데 출발부터 난관이었다.
메뉴 결정이 관건이 된 것이다.
간장게장을 드시고 싶다는 아버지 말씀에 따라 간장게장을 잘하는 단골 식당을 목적지로 정하려고 하자 아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간장 게장은 먹기 싫다며 피자를 먹자는 주장이었다.
가족 중 부모님과 나만 간장 게장을 선호할 뿐 모두들 피자 쪽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싫다는데 일방적으로 강요할 사항도 아니어서 절충에 나섰다.
그 결과 부모님은 간장게장, 아이들은 피자 쪽으로 메뉴를 이원화 했다. 부모님과 함께 간장게장 식당에 갔다가 아이들이 가 있는 피자집으로 이동해서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부모님을 따로 모시려니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모두들 부모님이 식사하시는 곳으로 가되, (식당 측에 양해를 구하고) 피자를 주문해서 함께 식사를 하자는 수정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역시 상황에 적합한 제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손님이 붐비는 게장 집에서 피자를 먹는 모양새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다 나머지 식구들이 간장게장이 아닌 다른 메뉴를 골라 같은 장소에서 식사를 하자는 새로운 안이 제시됐고 모두의 동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피앤딩이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한 식탁에서 간장게장과 매운탕을 메뉴로 해서 외식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가족들의 입맛 하나도 통일 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보다는 부쩍 연로해지신 부모님과 이제 품을 떠나야 할 자식들이 마음에 걸렸다. 점점 기운을 잃어 가시는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천방지축 어디로 향할게 될지 모를 자식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노파심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렇게 부모님과 자식들 가운데에 끼인 채 양 세대를 바라보니 내 인생의 지나간 시절과 다가오는 미래가 한꺼번에 보였다. 그리고 내가 처한 현실과 가장으로서 내가 맡은 역할의 중요성이 새삼 감지됐다. 더불어 家和萬事成의 가르침으로 가족 간의 소통을 큰 가치로 강조했던 선인들의 속뜻이 헤아려졌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른 말씀이라면 무조건 복종을 미덕으로 알았던 우리 시대의 가치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엄청난 변화였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랬듯 자식들과 나 역시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 직시됐다. 비단 부모 자식 관계에서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개성에 따라 달리하는 생각들을 쉽게 드러내고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권이 지극히 당연하게 존중되고 있었다.

외식 일정 하나만 해도 가족 전체를 배려하고 모두의 행복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최선의 답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결국은 절반 밖에 충족시키지 못한 미완의 결말이었다. 메뉴 하나 선택하는 과정도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데 나머지 사안들은 얼마나 어려운 절차를 감내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데 동의한다.
성공적인 가장이 되려면 가족 구성원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도 공감한다. 가족 단위의 소통 단절은 대번에 불신이 판을 치는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게 리더의 역할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다.
개인의 영향력이 극대화 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가 됐건 CEO가 됐건 교육자가 됐건 같은 맥락의 역할이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결국 21세기 리더십의 주요 명제는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리더의 자기희생적 실천의 선행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다.
대통령이나 CEO가 자기 입지만 염두에 둔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누구도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따른다고 해도 자발적 동기가 결여된 복종은 면종복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참여의식은 물론 감동도 없이 강요당하는 구성원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명제는 더 더욱 확실해진다고 할 것이다.

갈수록 가족 해체 위기에 대한 걱정이 넘친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기에 가벼이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연말연시의 시간들이 가족 구성원 간의 반목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동안 서로에게 무엇이 부족했던 가도 반성하고 또 앞으로 무엇을 더 노력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못할 바도 없다.
모든 걸 ‘나’ 위주로만 생각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공통 명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그렇게만 된다면 절반의 성공은 이미 거둔 셈이 된다.
그런 식으로 가족간 균열도 치유하고 한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근간을 다지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


(2010. 12. 26)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Merry Christmas!!

Merry Christmas!!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담겨있는 진정한 의미를, 아니 하나님이 무슨 의미로 인간에게 내려주신 선물인지는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성자의 탄생지가 말구유인 것은 낮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그의 사명을 상징하는 의미가 크다.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우리들의 현실은 하나님의 그 깊은 속내를 잘 헤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대형 백화점은 흥청망청 활황기를 맞고 있고 고급 레스토랑들은 예약이 안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작 헐벗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이웃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 축제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생을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의미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속의 문화를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만큼은 낮고 초라한 구유로 오신 예수 탄생의 의미를 가슴 깊이 음미해 보는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
주위를 살펴서 삶을 힘들어 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그런 크리스마스를 우리 모두가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하자.

Merry Christmas!!

(2010. 12. 24)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감기 단상

감기 단상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30년 만의 최저 기온이란다.
갑자기 밀어닥친 한파에 화들짝 놀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나 역시 온종일 강추위에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그동안의 겨울은 겨울답지 않았다. 한겨울 동장군의 매운 기억을 잊게 할 만큼 포근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니 모처럼 찾아든 추위에 허둥지둥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애초부터 추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번 한파로 겨울이 추운 계절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한 분위기다. 방한복이나 장갑, 목도리 등의 효용성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기습적인 공격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로는 북한도 다르지 않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북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부쩍 커진 건 사실이다.
북한을 대하는 국민인식이 확실히 달라졌다. 그동안의 무관심을 거두고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막연한 동포애로 호의를 보이던 국민감정이 많이 격해졌다. 분개 차원을 넘어 적대감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동족’이라기보다 물리쳐야 할 '적군‘의 개념으로 인식하게 됐다.
순전히 북의 책임이다.
몇 차례 도발로 우리에게 노렸던 꿍꿍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북한은 실수를 한 게 틀림없다. 얻은 것 보다 잃을 게 훨씬 많은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
싸늘해진 민족 간 화해공조 분위기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감기는 정말 추울 때 보다 춥다가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 더 많이 걸리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외부의 자극을 이겨낼 수 있는 배경도 저마다의 극한심이 작용한 바 크다는 분석이다. 내성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주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 외적 요인보다는 일시적으로 나약해진 심신이 결정적인 발병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신자세’가 우리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새삼 알겠다. 최근 곤욕을 치루고 있는 실세 인사들의 근황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게 된다.


대통령 최측근 인사로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이나 이런 저런 설화로 전 국민 뒷담화의 단골메뉴가 되어 조롱거리로 전락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얘기다.
여당 대표, 건실한 기업가로서의 입지만으로도 능력이나 세상 처세에서 부족한 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분들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부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당대표이니까 말을 더 가려서 하고 대통령 친구이기에 행동거지를 더 조심했어야 했다. 주목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영향력이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잘 살아오셨던 분들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한다.

감히 훈수를 둔다면, 전후사정을 잘 살펴보고 다소 수정이나 재충전의 필요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방만해지고 복잡해진 주위 환경에 휩쓸려 주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도 살펴보았으면 한다. 야당과의 어려움(?)을 잘 극복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른바 정치적인 봄날을 맞이하여 곤욕을 치르고 있으니...
오랜 시간 공들여 온 삶의 궤적에 오점을 남기게 된 그들의 허둥거림이 안쓰럽다.
소 잃고 뒤늦게 ‘고친’ 외양간이라도 이후 그들의 삶을 잘 인도하는 길잡이로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기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추워진 날씨만이 감기 원인인 건 아닐 것이다. 위축되거나 해이해진 정신상태가 결정적일 수도 있다. 문명의 발달이 인간에게 모두 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건 우리가 익히 경험한 바다.
난방기구의 발달은 인위적인 온도 조절을 가능하게 했다. 덕분에 우리 인간은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을 만큼 계절의 특성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추위 뿐 만이 아니다. 휴대폰이나 네비게이션 등 원하기만 하면 필요한 정보를 척척 내주는 문명의 편익은 우리로 하여금 기기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정능력 퇴화라는 무서운 굴레를 쓰고 만 꼴이 된 것이다.

이쯤이면 인간이 문명의 이기를 부리는 주체인지 조차 알쏭달쏭해진다.
역설적이게도 문명의 발달이 '마음의 감기' 환자를 양산하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는 겨울에 나이테를 늘리지 않는다.
부족한 영향 상태를 고려해서 성장보다는 숙성에 비중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자연의 놀라운 생태 적응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이 겨울을 외적 확장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공 단련의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예전에 읽으려다 미처 읽지 못하고 밀쳐둔 책을 찾거나 결론을 내지 못한 생각의 고리를 다시 풀어보는 것도 들뜨기 쉬운 연말 시즌을 현명하게 보내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실을 기하지 않으면 꽃피고 새우는 봄날, 설 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부터 위기의식을 마음에 새겨넣고 ‘거듭나도록’ 하자.
그렇게 마음의 감기를 치유하자.
놀라운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2010 .12.24)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돌아보자

돌아보자


고구려 역사를 보면 고구려 멸망 이유가 자명해진다.
후백제 등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여타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 또는 형제간의 후계 다툼이 결정적 화근이 되어 권력 승계 과정에서 갈등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공통점이 있다.
백척간두에 놓인 북한의 현실에서 고구려의 마지막 모습이 보이는 건 지나친 예민함일까?
너무 흡사해서 고구려 역사가 우리의 통일 국면에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개소문의 아들들은 후계구도를 놓고 다퉜고 급기야 그 중 하나가 중국으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일종의 망명정부를 세우게 되는데 그 와중에 고구려는 패망하고 만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중국 어딘가에 도망가 있는 지금의 북한 형편과 엇비슷한 점이 많다. 중국은 그런 김정남을 나중에 조커로 쓰겠다는 음흉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고,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김정은 체제는 불안정한 기류 속에서 북한의 붕괴를 재촉하는 모습이다.
김정남의 도전이라도 받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모두들 북한의 운명을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북한의 붕괴를 뒷받침하는 징후들이 드러나고 있는 판이다.
그렇다고 한들 북한의 멸망이 곧바로 흡수통일로 연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하게 될 것 같지도 않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고구려 영토가 당나라 지배권역으로 귀속됐고 수습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붕괴로 통일 기회가 온다고 해도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대가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호재라고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카스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우리가 짊어져야 했던 오욕의 역사를 돌이켜봐야 할 시점이다. 그 옛날 미국과 일본이 그랬듯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한반도를 담보로 한 모종의 딜이 형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래는 한 나라였는데, 영국의 수월한 중동 분할 통치를 위해 위성국 형태로 갈라져 나간 이란과 쿠웨이트의 운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힘의 논리로 지배되는 국제사회의 위계질서와 정의 구현의 실체가 거기 있다.
제대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국익과 무관하게 모든 상황들이 전개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주창한 ‘비핵. 개방 3000’ 정책만 해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크게 반대하진 않지만 통일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보면 약간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관이 주도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당초의 좋은 의도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한계점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 약간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반관반민 형태의 단체 형태로 정치권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된 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나간다면 어떨까 싶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대한 관심(=흑심)이다.
그 관심들을 우리의 의도대로 몰고 갈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일본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 일변도의 현 외교 정책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 정국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주도권 상실로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 하는 과오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볼 때 우리 현실도 북한 못지않은 위기 국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은 그 위기 상황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더구나 통일을 전후해서 벌어질 한반도의 여러 가지 부족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통찰력 있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부단한 노력들이 필요한 시기라 하겠다.
한반도 정세를 놓고 저마다의 국익에 따라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열강의 탐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특히 중국의 속셈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 같다.
사안마다의 코멘트들도 그렇지만 최근 서해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의 전복사고를 둘러싸고 안하무인으로 적반하장인 중국 정부의 억지를 보면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늘 반복되고 있는 역사, 결코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가끔은 호흡을 늦추고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로움을 가져보자.
때론 바로 그 순간을 통해 역사의 발전이 이뤄질 수도 있음이다.

( 2010. 12. 22)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말의 독성

말의 독성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예전에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함께 했던 신성일씨였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악플의 폐해와 해악을 말하면서 자제를 호소하고 있었는데 악플에 시달린 경험자의 토로여서인지 꽤나 설득력 있게 들렸다.




달갑진 않지만 악플은 우리처럼 공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숙명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결정적 빌미가 되기도 한다.

사사로운 감정 해소나 이익을 위한 불순한 동기로 악플을 가동하는 건 죄악에 가깝다. 그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악플의 횡포를 극복하지 못한 공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다. 그야말로 사람을 퇴로 없는 궁지로 몰아넣는 가공의 위력이다.

악플이 인터넷 공간을 통한 사회악이라면 마타도어는 오프라인에서 공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마타도어의 덫에 걸리면 법원 판결 등으로 무고가 입증되기 까지는 낙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선거판에서 정치적 라이벌에 의해 악용되는 경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잔인함으로 아프게 한다는 건 나 역시 익히 경험한 바다.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식 역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경우엔 어떻게 저렇게 저런 유형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인생에는 딱 떨어지는 ‘모범답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피하고 끝까지 심사숙고하고자 하는 배려가 있어야겠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는 직종의 사람일수록 더 큰 배려의 보호가 필요하다. 아무리 나와 생각이 다르고 미워도 상대방을 충고하거나 비판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금도를 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악플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형틀에 매인 형국이라 하겠다. 애증과 복수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환하다. 결국 중동에서의 분쟁이 911 사태를 야기하는 것처럼 3차 대전의 발단도 크게 이목을 끌지 못하는 소소한 일에서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복의 역사는 돌고 도는 속성 때문에 단절이 쉽지 않고 계속해서 구원으로 돌게 될 확률이 크다.

무엇보다 남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의 악의적 코멘트는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극단적인 반목으로 치닫게 만든다.

악플이나 마타도어 역시 십중 팔구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역지사지 정신을 우리의 의식세계를 주도하는 귀한 가치로 삼기를 권하는 바다.

어떤 상황이 됐건 한번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그나마 살만한 세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전의 역사에서도 역지사지가 가능했다면 많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은 링컨이나 김구, 간다, 마틴루터 킹 등 시대적 영웅들이 남기고 간 미완의 삶을 회한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됐을 터이고 서로 간에 죽고 죽이는 끔찍한 역사의 서술을 통째로 편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신념에 대한 확고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각에서는 죽이고 싶도록 싫거나 반대하고 싶은 ‘악’의 영역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당시 ‘살인’ 감행을 사회정의 구현 차원으로 받아들이던 집단의 정서를 심정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살인이고 범죄행각일 수 밖에 없겠다.

그러나 그 어떤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런 분들의 수명이 좀 더 길었다면 우리는 좀 더 살만한 세상을 소유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최소한 인간의 기본적인 룰과 원칙 위에 모든 소통과 화해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필요이상의 거짓과 과장으로 타인을 아프게 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때론 아픔이 사람을 성숙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 주변의 가족 친지, 친구들이 느끼게 될 고통을 헤아려 달라고.

말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의 삶을 마감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희망과 격려가 넘치고 에너지를 주는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가까운 이들의 따뜻한 이해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명심하도록 하자.



누가 그랬다.

비난은 적게, 격려는 크게 하라고.

(2010.12.20)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새 하늘 새 땅

새 하늘 새 땅


점입가경이다.

정치권이 국회 집단난투극에 이어 엇갈린 ‘고소고발전’으로 2라운드를 펼치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민주당 관계자들을, 민주당은 한나라당 관계자들을 각각 고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한나라당대로 당 홈페이지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국회폭력 현장'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야당의 대응수위에 따라 고소 고발 방침을 정하겠다고 으름장이다.

오로지 당리당략과 이전투구만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구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국회를 유린한,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판단 하에’ ’이 땅에 의회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고 실질적인 법치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고소를 하는 거라는데, 끌어다대는 이유가 참 현란하기도 하다.

자숙한다며 머리를 조아리던 며칠 전 모습이 과연 진실이기는 할까 싶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민 앞에 증거라고 내 놓은 동영상도 저마다의 의도대로 ‘손질한’ 상태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다. 국민을 어떻게 보고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염치도 없이 저마다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목소리 높이고 떼를 쓰면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김질이다.

치고 들어가야 할 쪽이 있고 막아야 하는 쪽이 있다면 피해자를 가리는 일은 너무나 쉽다. 국회 예산안 처리과정에서도 예산처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 측이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거의 상식선이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물리적인 ‘가해’를 통해서라도 일을 성사시키려는 여당 측 행보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범주였다.

그런데도 이런 저런 수상쩍은 ‘꼼수’로 비상 정국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여당 일각의 ‘바람’과 '시도'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뜻대로 되기가 슆지 않을 텐데.



물론 여야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상황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에겐 가해자와 피해자의 영역이 구분된 마당이다. 더구나 여당의원들이 다시는 날치기를 안하겠다며, FTA 추가 협상안도 여야 합의 없이는 처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함으로써, 가해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해 놓은 정황이다.

그런 것을 책임 소재를 미루며 다투고 있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국민은 가만히 있는데 ‘가해자’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며 ‘보상’요구로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을 한참 비껴간 몰염치가 아닐까 싶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로 반성하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정치권의 의지를 보고 싶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며 너나 없이 싸잡아 보기싫다고 야단치고 있는 마당에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까 짐작이나 해봤는지.



뜻밖의 돌발적 변수가 상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뒤집힐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정치판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성 정치인들에게 있어 다음 선거판은 그 어느 선거보다 재앙에 대응하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크기와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 인위적으로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부담이 그저 걱정스럽기 만한 그런 정황 말이다.

방송 등 언론 매체에 노출 빈도가 많았거나 당내 중책을 맡았던 다선의원일수록 긴장 모드가 필요하다. 만일 그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현실정치 감각이 그만큼 둔하다는 것이고 뒤쳐져 있다는 뜻이다.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하면 분명 성난 민심의 질책 앞에 초라한 낙오자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성경에 절묘한 우연이 있다.

40년 동안이나 광야를 헤매며 오랫동안 준비했던 모세는 정작 젖과 꿀이 흐른다는 새 땅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을뿐 밟아보지 못했고, 여호수와와 광야에서 새로이 태어난 사람들의 몫이 됐다.

정치권 역시 하늘과 땅이 새롭게 열리는 시점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땅과 하늘은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새롭게 준비한 지도자의 몫이 될 것이다.


(2010.12.17)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6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트로이 목마?

트로이 목마 ?

날치기 정국의 여진이 위기감에 빠진 여권을 연일 코너로 몰아넣고 있는 모양새다.

급기야 여당의 초재선 23명 의원들이 의원직을 걸고 국회를 바로 세우겠다며 나서기에 이르렀다.

예산안 강행처리를 반성하고 다시는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길 시에는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뭐 이런 내용의 ‘자성과 결의’가 담긴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장한(?) 각오는 생각보다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은 그저 냉소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등 돌린 민심을 사로잡을 만큼의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 23명의 거사에서 트로이 목마를 떠올린다.

이미 패를 다 까 보인, 그래서 실패하게 돼 있는 트로이 목마.

백기를 들고 투항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지금 또 다른 내심을 다른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현실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들이 들어가 앉아있는 목마가 사실은 나무가 아니라 투명한 속살을 내비치고 있는 유리재질인 현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멍청하던지 무심하던지.

트로이 목마의 묘미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략 구사에 있다. 상대방이 수를 읽지 못했을 때만이 진가를 보여줄 수 있다. 상대에게 수를 들키는 순간부터 아무 짝에도 쓰임새가 없는 나무토막이 되고 마는 것을.

그런 점에서 해피앤딩으로 끝난 트로이 목마 원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트로이 목마는 패색이 짙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이 들고 나온 카드는 그동안 너무 많이 남용돼 낡고 식상해진 상태다.

요란한 시작에 비해 늘 흐리멍텅하게 매듭짓기 일쑤였던 마무리의 반복도 국민신뢰를 잃게 한 일등공신이라 하겠다.




이러다간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다.

민주당이라고 형편이 더 나은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분열과 동요를 추스르지 못한다면 민주당 역시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새벽까지 정권퇴진과 잘못된 예산 수정을 외치고 형님과 영부인 예산 물리라고 목청을 높여도 준비없이 조악하게 대응하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없다면 민주당의 미래 역시 암흑일 수 밖에.

화력과 전력전술이 부족한 민주당이 승기를 잡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적잖은 실망과 낙담을 안겨준 한나라당 역시 돌아앉은 국민 마음을 쉽사리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국민이 화가 많이 났다.

정치를 새로 갈아엎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느낌이다. 정치판을 새롭게 짜겠다는 국민적 각오가 강력한 엔진이 되어 시동을 걸고 있는 마당이다.

그 뜨거운 열기가 관전자인 내게로까지 전달되는데 이번에야말로 정치판 대수술이 감행될 것 같은 기세다.

이대로라면 때마다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정작 가장 개혁이 시급한 정치권은 늘 사각지대 속에 숨어버리곤 했던 근본적인 문제점이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정치판에 필요한 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 같은 진정성이다.

말로 때워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의원직이라도 내던질 수 있는 용기와 각오를 보여야 할 때다. 지도부 사퇴 등의 용단으로 특단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상황인데 어영부영 눈 그치기를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사고는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앞으로 정치인이 되려면 도장에 가서 태권도 부터 배워야할지도 모를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젊은 의원 중에서 재도약을 하고 싶다면 모든 권리를 백지위임하고 내 한 몸 던지겠다는 각오 하에 희생정신을 갈고 닦기를 권하는 바다.

밖에서 훈수를 두고 있으니 수가 더 잘 보이는 관계로,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크게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국민 마음을 아우를 수 있는 것, 그것이 정치력이다.

힘자랑 보다는 정치력이 고수로 대접받는 정치판 풍토를 만들자.


(2010.12.16)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인구가 경쟁력이다

인구가 경쟁력이다


중국이 그랬듯 인도가 세계를 평정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순전히 인도가 보유하게 될 세계 최대 규모의 인구가 발휘하는 저력이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지만 바야흐로 인구가 국가 경쟁력인 시대적 상황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정삼각형 형태로 펼쳐진 인구분포도가 탄탄한 인도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2025년이면 5억9000만 명이 된다는 (15세에서 35세까지의) 노동인구 현황에 확실히 그 답이 나와 있다는 생각이다. 이 노동력이야말로 인도를 세계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에너지의 원천이고 조만간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고 전망하는 미 CIA의 시나리오나 유엔의 미래 보고서가 설득력을 갖는 배경이기도 하다.



반면, 2009년 현재 OECD 30개국 회원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다.

실제로 우리의 미래는 연 5000만 명 출산으로 1인당 1.15 출산율로 심각한 저출산 기조에 위협받고 있다. 이대로 저출산 파고를 넘지 못한다면 2800년 무렵이면 ‘종족 소멸’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산아제한을 독려하던 국가 정책이 성행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예비군 훈련 면제를 미끼로 정관수술을 유도하거나 셋째 아이는 의료보험 혜택을 제한하는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출산을 막으려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마음이 무겁다.

인구문제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우리가 그 직접적인 대상으로 지목되고 보니 충격이 크다. 더군다나 저출산 현상이 고령화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도임을 감안한다면 사안은 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격변을 ‘인구지진(Agequake)’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던 언론인 폴 월리스는 "투표권을 무기로 부양의무를 강요하는 노인들과 이에 반발하는 젊은이의 대결이 불가피 할 것"으로 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우선 당장 노인 대상 ‘Medicare’ 효율화로 건강보험의 재정난을 해결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오바마 정부가 성난 노인들을 등에 업고 ‘노인홀대론’으로 맞서는 보수야당의 저항에 직면해 있는 양상도 비슷한 모양새다. 물론 노인들의 과도한 연명치료 대신 아이들의 예방접종을 늘리자며 오바마를 편들고 나서는 세력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 어떤 자율적 기능이나 자연 현상이 고령 인구를 억제시키고 젊은이들의 부양책임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이 형성될 가능성이 대두되기도 한다. 노인 살해 등의 극단적인 수단이 동원될 가능성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식량이나 땔감 등이 부족했던 고대사회에서는 노인봉양 자체가 사치였다.

고령자는 굶어 죽게하는 풍속 등이 만연했다. 한정된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젊은이들에게 쓰는 게 집단 전체의 이익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공공연히 형성됐다.

실제로 고대 카스피 족은 70세가 넘으면 굶겨죽이거나 시체를 벌판에 버렸고 아프리카 대륙 원주민의 경우는 노인들을 고된 노동으로 혹사시켜 진이 빠져 죽게 하는 풍습이 횡행했다. 북극해 일대 에스키모들은 늙어서 스스로의 먹거리를 구하지 못하면 목을 졸라 죽이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버리고 갔다. 운신을 못하게 된 노부모를 자루에 넣은 뒤 나뭇가지에 매달고 활을 쏘아 죽게 했다. 한 발에 목숨을 끊으면 효자로 칭송하는 독특한 문화도 있었다.

우리의 고려장과 유사하게 노인들의 잔여 생명이 비정한 방법으로 처리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듯 하다.



고령화 사회의 심각성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수렁에 발목을 붙잡힌 일본이나 그리스의 사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는 퇴직자 연금 때문에 재정이 파탄됐고 일본은 노인복지의 과도한 지출로 인한 부채비율 증가로 경제대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려야 했다.

생산연령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의 어두운 그늘이 우리라고 비껴갈 리 만무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에 태어난 40∼50대)의 대거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노인세대의 양적 팽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반해 정부의 정책적 고려는 여전히 답보상태니 큰일이다. 국민연금 개혁과 공무원 연금 지급 방식 수정을 통해 대비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기금 고갈과 막대한 적자에 대한 우려까지 해소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현상이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부 차원의 현실적인 복지 정책이 시급하다.

19세기부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프랑스나 스웨덴의 경우 한 때 저조한 출산율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으나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 덕분이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식하고 공공보육 지원 확대를 비롯해 출산휴가 연장, 가족 수당 지급 등의 발빠른 정책적 대응으로 위기 국면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인구사회학자 듀크대 필립 모건교수의 해법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녀 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교육체계를 저출산 현상의 주요 요인이라고 지목했다. 관련 세미나 등을 통해 대가족 제도의 강화와 적극적인 이민 수용을 저출산 문제 해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세대 간 동거를 통해 부모는 정서적 부양과 보살핌을. 자식들은 육아 도움으로 서로 윈윈하게 됨에 따라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지였는데 충분히 동의하는 바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삶만 들여다보는 이기심을 벗는 일이 시급하다. 교감을 통한 세대 교류가 가능해야 대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다산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물쭈물 미봉책으로 꼼수를 부릴 여유도 없다.

자기 위주의 생각들이 만들어 낸 부작용을 극복하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국민대각성 범사회적 운동이라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지막지한 선택을 강요당하기 전에 미리미리 대처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먼 미래의 일이 아니기에.

(2010. 12.15)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혈액형이 문제라고?

혈액형이 문제라고?

인터넷을 둘러보는데 혈액형을 소재로 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가 화합하지 못하는 건 두 분 다 주관이 강해서 양보와 타협을 모르는 B형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담긴 기사였다. 전 현직 대통령들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성격을 혈액형별로 분류해 놓기도 했다.
10명의 대통령 중에서 A형(박정희, 최규하, 김대중)과 O형(이승만, 윤보선, 노무현)이 각각 3명이었고, B형(전두환, 이명박)과 AB형(노태우, 김영삼)은 각각 2명이었다.
그러나 이들 대통령들의 통치 스타일이나 성격 등이 -혈액형이 같건 다르건- 제각각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바다. 미국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낼 수 있다. 똑같이 O형인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 경우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과 같은 AB형인 오바마를 보더라도 이들 사이에 두드러지는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소재 빈곤을 넘기 위한 고육책의 기미가 엿보이는 기사라는 판단이다. 무엇보다도 혈액형으로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스스로의 지면으로 입증하고 있다. 불과 10명의 데이터를 통해 대통령의 직위나 리더십에 맞는 특정 혈액형을 판단하려는 시도 역시 선정성 혐의를 벗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일반적으로 혈액형이 화제에 오를 때가 많다. B형이니까 어떻고 AB형이니까 어떻다는 등 혈액형이 사람의 특질을 규정하는 정보가 되고 더 나아가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더라도 혈액형이 인간의 특질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나 특정 리더십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게 하는 기준치에 있어서 더 그렇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부모와 가정환경을 가졌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또 어떤 혈액형인지 등은 참고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성공적 ‘리더십’ 인자의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선천적인 기질보다는 양성되는 경로와 과정은 물론 리더가 된 이후 리더십이 발휘되는 과정까지도 포함돼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소신이다.

늘 그렇듯이 리더의 주변부가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주변부 특히 측근 인사들이 리더를 망가뜨리는 경우는 실패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화려한 시작에 비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고 패자의 낙인 속에 스러져 간 리더가 한 둘이 아니다.
국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경험한 바지만 특히나 ‘용비어천가’ 관리만 잘해도 리더십의 기본은 한다는 생각이다.
권력의 중심이 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위치의 권력이든-주변의 달콤한 아부가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려도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아부가 없을 때 섭섭해지고 불쾌해지는 심리변화를 경계해야 한다. 마치 ‘교황 무오설’처럼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확신하게 만들어 ‘치명적인’ 오류의 빌미가 된다는 게 경험자들의 일관된 토로이고 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혈액형조차 아부의 도구로 쓰였다는 믿지 못할 얘기도 전해진다. 권력의 당사자가 무슨 혈액형이었기 때문에 리더가 되는 게 당연하다는 류의 아부가 넘치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감언이설에 대한 경계심을 독려한 선인의 가르침이 유난히 많은 현상도 그 해악의 정도가 어느 정도 인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달콤할수록 더 치명적인 것이 아부의 생리다. 특히 인의장벽은 리더의 오류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권력의 전환기 때마다 제고돼야 할 필수 명제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날치기 예산 정국으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국회의 모습이 부끄럽다. 민생 예산이 무더기로 잘려나가는 와중에 특정지역 예산은 몇 배로 뻥튀기됐다는 분노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 몸둘 바를 모르겠다.
뭐가 문제일까 싶다. 특별한 능력으로 국회의원이 됐다고 생각하는 건지, (도달하기까지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그 자리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심판의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건지.
최소한 위임받은 권력의 유한성을 생각했다면 벌릴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다는 후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지만 현실을 보면 아직도 미몽을 해메고 있는 게 틀림없다.

모든 것이 순간에 지나지 않은 것을.

(2010.12.12)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딜레마

딜레마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카르멘 갈라 콘서트를 관람했다.

역시나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다는 명성답게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이었다. 투자한 시간이나 노력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잘 정제된 무대와 주연배우의 뛰어난 기량이 '투우사의 노래'를 비롯해서 '하바네라', '집시의 노래' 등 귀에 익은 주요 아리아와 중창의 선율을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인간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갈등구조를 선율만으로도 생각의 고리를 이어주며 흥미를 부각시키는 데 손색이 없는 무대였다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지만 그 반면 죽여서라도 사랑을 쟁취하려는 돈 호세의 욕망. 상대의 헌신적인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다가 속박을 거부하고 차라리 목숨을 포기하고 마는 카르멘의 선택.

카르멘과 돈 호세의 비극적인 운명은 매번 강렬함으로 나를 자극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잔영으로 남아 머릿속을 지배하던 ‘마지막 장면’이 급기야 꿈으로까지 재현될 정도니 가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가는 정치 현장 곳곳에 ‘카르멘’의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에게서 우리 인간의 원형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이고 누구에게도 통제받고 싶지 않은 자유를 향한 본능과 원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용의가 있는 극단성이 카르멘 주인공들의 역할에 오버랩 되면서 머릿속이 혼란해진다.

무책임과 무절제가 판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영락없는 여주인공 카르멘이고 전략부재로 실익없이 우왕좌왕하는 민주당에게서는 돈 호세의 답답함이 읽혀진다. 안하무인으로 방종을 일삼는 재벌 2세와 그런 재벌 2세를 응징하겠다고 나선 국민에게서 또 다른 카르멘과 돈 호세를 보게 되는 것 자체가 비극이 아닐까 싶다.

분명한 건 인간의 모든 가치 기준이 상대적으로 가동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역할을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합과 소통으로 하나가 될 여지보다 분열과 반목에 익숙한 집단적 속성에 비추더라도 인간은 성선설보다는 성악설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인간을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이런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그나마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돈하려면 제대로 된 현실 인식으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들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무한대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 상수로 존재하는 한 폭력과 강압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고질적 병폐로 자리답게 될 공산이 크다.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처 방안이 더 없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시스템 구축 차원의 고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자유로우면 된다는 무책임은 무정부 상태가 되기 쉽고, 원하는 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은 폭력 지상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두 근본 원리를 잘 연구하면 100% 만족은 아니더라도 근사치에 근접할 수 있는 모범답안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은 현실이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그렇더라도 공연은 좋았다.

눈이 내리고 음악은 흐르고 좋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어서 유쾌한 시간이었다.


(2010. 12. 10)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9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명인, 앙드레김

명인, 앙드레김


앙드레김, 세상을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난 그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타인을 위해 기꺼이 온정을 베풀던 생전 행적이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이 그를 새삼 돌아보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그를 추모하고자 열린 자선기금 마련 패션쇼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식이다. 안성기, 이병헌, 김희선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해서 고인의 ‘따뜻한 마음’을 되새겼다는 후문이다.
이번 패션쇼의 수익금은 유니세프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라는데 이 역시 생전에 유니세프 대사를 맡아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던 앙드레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한 취지란다.
디자이너로 40년 외길을 사는 동안 세계 평화를 염원했던 그는 가는 곳마다 ‘나눔’의 실천으로 소통과 화해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우한 이웃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끊이질 않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기부로 그늘진 곳을 보듬던 그의 손길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로 인해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 되짚어 생각하게 된다.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고 있는 종교간 갈등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봉착한 느낌이다.
급기야 정부의 불교계 예산 대폭 삭감에 반발,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전국 사찰 출입금지한다는 조계종 선언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대치를 비롯, 지역갈등, 계층 갈등, 정치권 갈등 등 산적한 분열 양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종교간 반목까지 더해져 퇴로가 안 보일 정도로 혼미한 형국이다.
이제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 할 것 없이 종교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이 사회 전체가 수많은 다양성 속에서 편안하게 국민적 에너지를 통합할 수 있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이 사회에는 다양한 종류의 종교가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생존이나 영역확장을 위해 투쟁을 선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종교 영역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공격이나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 일 역시 이제는 멈춰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진리를 통해 영생을 지향한다는 종교 본연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포용력이 아쉽다.
다문화 가정이 우리의 현실이 된 지 오래건만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에게 다문화 가정은 더 이상 이질적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개성과 장점을 살려 우리 속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수용해야 할 의무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수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다른나라, 특히 우리보다 후진국가의 문화 형태를 배척하는 국수주의적 요소가 폭력의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미국을 패권국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모든 것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던 ‘멀팅 폿’ 정신이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포용력이야말로 우리가 21세기 선진국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선결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식석상에서 몇 번 스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앙드레김을 잘 알지 못한다.
백색의 패션, ‘김봉남’이라는 본명, 특이한 억양과 화장한 얼굴 등의 정보가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아, 앙드레김 티셔츠를 2벌 갖고 있다)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그의 사후 평가들이 나 자신이 품고 있던 기존의 관념까지도 재점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와는 분명 다른 삶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됐든 그의 삶에 존경받아야 할 이유와 또 다른 절대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각자의 박제된이미지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 앙드레김의 총체적인 삶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또 존경할 부분은 존경해야겠다는 일종의 궤도 수정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인 일관되게 타인과의 소통을 자신의 삶의 목록에 첨부하고 나눔과 수용의 형식으로 실천했던 앙드레김의 인생철학에 대한 존경의 의미일 것이다.

명인의 생전 궤적이 제대로 된 삶의 흔적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각성을 내게 줬다.
놀라운 영향력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용과 나눔의 삶을 고찰해보는 이 밤이다.


(2010 . 12. 9)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3대 세습에 부쳐


3대 세습에 부쳐


삼성이 오너 일가의 전진배치를 통해 본격적인 3세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장남 이재용과 장녀 이부진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젊은 삼성‘ 구현‘에 나선 것이다.
40세 안팎인 이들 3세들의 경영 능력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LG나 두산 등 앞서 3대 세습이 이뤄진 기존의 회사들도 새삼 주목을 받는 분위기다.
주가가 일제히 뛰었다니 출발부터 나쁘지 않은 조짐이지만 부의 대물림을 바라보는 세간의 정서는 다른 것 같다. 김일성의 3대 세습과 비교하면서 이런저런 문제점을 제기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일본이나 유럽에 가 보면 한 집안의 가업이 몇 대에 걸쳐 이어지는 현상이 드물지 않다. 가업에 자부심을 갖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일의 종류와 무관하게 고상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재벌기업의 대물림을 이런 경우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방대한 조직의 규모나 국가전체에 미치는 적지 않은 영향력 등 근본적인 점만 놓고 봐도 그렇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세금이 전제된다면 부의 대물림은 경원시되거나 견제받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권장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한민국 재벌가의 납세 의식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 기준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심심하면 몰상식한 행실로 물의를 일으키는 재벌가의 사건사고 소식 역시 재벌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결국 구속으로 처리되긴 했지만 이번 ‘최철원 사건’만 해도 재벌가의 현실 인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라 하겠다. 대부분이 재벌가에 호의적이지 않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사리 재벌을 존경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인지 평소 재벌가의 젊은 2세 경영이 어딘가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2세라는 단어보다 젊다는 단어가 더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물론 우리나라 2세 경영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건희, 정몽구 회장을 보면 일반적인 예상치보다 훨씬 잘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선대보다 훨씬 더 도약적으로 가업을 안정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선대의 성공이 모든 긍정적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이번 삼성의 파격 행보 역시 알 수 없다. 재벌가의 무모한 모험기로 끝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결국 모든 문제는 부의 대물림 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당사자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자기 할 탓이고 운용할 그릇의 문제인 것이다.

원론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지만 성공적인 부의 대물림을 위한 주의사항을 짚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부의 대물림이 ‘특혜’로 인식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후계자 수업도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는 관점에서 진행시켜야 한다.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건 양보할 수 있는 인내심과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길러야겠다.
대인의 풍모를 가진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할까, 그래야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방대한 조직을 탈 없이 이끌어 갈 수 있다.

재벌가의 후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CEO가 된다고 자동으로 정돈된 자질이나 인격 등이 부록으로 따라오게 돼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계자의 완성된 인격을 위한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젊은 나이에 오너가 된 재벌 2,3세들이 빚어내는 반사회적 행태들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무모한 부의 대물림이 초래한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파생시키는 위화감이나 불쾌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고 그것이 고스란히 재벌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이 생겼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의 부자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은 뿌리가 깊다. 그리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결자해지라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 재벌에게는 좀 더 적극적인 노력으로 해명하거나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원천적 의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재벌가의 재화를 위해 많은 국민들이 희생의 땀을 흘려야 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 기업이 회사의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 경영체제를 달리하는 건 사적 선택일 수 있지만 결코 자유로운 영역이 될 수 없다.

더 이상의 반목과 불화는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우리에게도 존경받는 재벌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의 국격을 재는 진정한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2010. 12.8)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국익엔 모두 하나로

국익엔 모두 하나로



한미 FTA 재협상 후폭풍이 정치권을 긴장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훌륭한 업적’이라며 반기는 여당과는 달리 야당 측은 “퍼주기 굴욕 외교”의 전형이라며 비준을 반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FTA 재협상 타결 이후 사전 합의한 발표시간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신나’하는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을 보면서 우리 측이 뭔가 크게 바가지 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살펴보니 미국 자동차 업계나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어려움을 배려한 흔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야당의 반발이 마냥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명확한 진상을 알고 싶어서 2박 3일을 움직였다. 주변 인맥을 가동해 (외무부와 대사관, 그리고 자동차와 농수산물 업계 관련인이나 국회의원, 기자 등과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한미 FTA’를 나름 취재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이번 재협상 과정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황에 지배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염두에 두고 해석돼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우리의 당면과제로 떠오른 '안보'가 우리 측 입지를 좁혀버린 불가피성을 감안하자는 것이다.

한미 간의 긴밀한 협조와 공동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진 시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협상결과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미국과의 유대관계를 결속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한 측면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불이익’ 국면이 아니라 일정 정도 ‘소득’ 개념으로 정리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가 독자적인 방위력을 갖췄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안보가 최대 화두가 되어버린 현 시점에서 최고 우방국과의 교감을 위한 배려는 지극히 당연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 관계가 소원해진 중국은 결정적인 순간 북한 편을 들 공산이 크고 일본이나 러시아는 캐스팅보트를 쥘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가깝게 접촉할 대상은 미국 뿐이다.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득 생전에 한미 FTA가 대한민국 국가 안보에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역설했던 황장엽씨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떠올려진다.



게다가 이번 재협상의 최대 이슈인 자동차 문제만 해도 생각보다 타격이 크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내가 접촉했던 자동차 업계 최고위층 인사는 '실질적으로는 잃은 것이 별로 없다'고 까지 반응했다. 어차피 상용트럭 시장은 기술력 한계 때문에 불이익이 추가될 상황이 아니고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자국 자동차 업계에 생색을 낼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의미가 더 크다는 판단이었다.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 시장을 개방해도 품질 경쟁에서 손색이 없는 우리가 영향받을 일이 없고 BMW나 아우디 등 독일과 일본의 등쌀에 미국 자동차가 설 자리가 쉽지 않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다만 아직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쇠고기 협상과정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미국과의 재협상이 다른 나라들의 재협상 요구로 확대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내부적으로 더 많이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국회 인준 과정에 있어서도 여당처럼 고분고분하기보다 절대 인준불가를 외치는 야당의 완강함이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코 녹록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홍역을 치루는 정부의 모습이 이후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방패막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기준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권의 당리당략 차원의 접근은 조금 불편하다.

국익 앞에서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할 일이다.


(2010. 12. 6)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4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용이 되다

용이 되다


12월 4일, 오늘은 유난히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된 하루였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오늘의 벅찬 스케줄을 걱정했고 당일인 오늘 아침에는 이른 시간 일어나 동선 처리를 구상하고 연구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일과였다.
서로 반목하던 지인들을 화해시키는 일과를 필두로 사촌과 친구 아들의 혼사가 치러지는 2곳의 결혼식장을 찾았고 외빈으로 초대받은 의정부 중.공고 동문회와 경민고 동문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했다. 그리고 연이어 일정이 잡힌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와 미 8군 샤프사령관이 주관하는 송년모임, 죽마고우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거의 살인적인 일정이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보니 그 어느 때보다 마무리가 잘 됐다는 생각이다.
포만감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사촌동생이 아들을 장가보내는 식장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지들과 안부를 나눌 수 있었고 아들 결혼식에서는 오래된 인연들이 진정성을 담아 건네는 정겨운 덕담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지역 동문회 모임에서는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사회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에서는 이국 땅에서 고충을 나누며 열정을 쏟던 동무들과의 젊은 날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있던 절친들과의 만남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기까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오늘 아침만 해도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무거운 마음이었다. 개운하지 않은 뭔가에 짓눌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나 둘 모임이 진행될수록 가슴 속 먹구름이 걷히면서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그리고 사명들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모임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보이며 기대감을 보여줬던 정황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말 오늘은 가는 곳 마다 유난히 내게 집중하는 분위기였고 고스란히 에너지가 되어 나의 의욕을 자극하고 독려했다. 그리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만하게 채워줬다. 덕분에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나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설레기까지 했다.
역시나 내게는 못 말리는 정치적 DNA 인자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연말연시가 되면 갖가지 형태로 많은 모임이 진행된다.
그 모임들을 통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비디오를 돌려보듯 지난 시간을 현실에 비춰보며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생각처럼 모임이 좋은 결말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지나친 망년회 음주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사고로 이어지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번만큼은 무탈하게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술에 취해 과거를 잊자는 그런 취지의 송년 모임도 카타르시스를 위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망년회를 하는 그 순간조차도 곧바로 과거로 편입되는 게 인간사임을 감안할 때 차라리 미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는 송년모임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모임을 통해 어려워진 경기에 풀죽은 이들을 기운 차리게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없는 성공이라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임을 주도하는 이들의 철학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좌중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각 모임을 주재했던 회장단 여러분께 감사하고 싶다.
내게 참으로 큰 행복을 줬다. 용이 되어 승천하는 기세를 느끼게 했다.




(2010. 12. 4)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용이 되다

용이 되다

12월 4일, 오늘은 유난히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된 하루였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오늘의 벅찬 스케줄을 걱정했고 당일인 오늘 아침에는 이른 시간 일어나 동선 처리를 구상하고 연구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일과였다.
서로 반목하던 지인들을 화해시키는 일과를 필두로 사촌과 친구의 혼사가 치러지는 2곳의 결혼식장을 찾았고 외빈으로 초대받은 의정부 중.공고 동문회와 경민고 동문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했다. 그리고 연이어 일정이 잡힌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와 미 8군 샤프사령관이 주관하는 송년모임, 죽마고우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거의 살인적인 일정이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보니 그 어느 때보다 마무리가 잘 됐다는 생각이다.
포만감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사촌동생이 아들을 장가보내는 식장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지들과 안부를 나눌 수 있었고 아들 결혼식에서는 오래된 인연들이 진정성을 담아 건네는 정겨운 덕담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지역 동문회 모임에서는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사회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에서는 이국 땅에서 고충을 나누며 열정을 쏟던 동무들과의 젊은 날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있던 절친들과의 만남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기까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오늘 아침만 해도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무거운 마음이었다. 개운하지 않은 뭔가에 짓눌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나 둘 모임이 진행될수록 가슴 속 먹구름이 걷히면서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그리고 사명들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모임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보이며 기대감을 보여줬던 정황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말 오늘은 가는 곳 마다 유난히 내게 집중하는 분위기였고 고스란히 에너지가 되어 나의 의욕을 자극하고 독려했다. 그리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만하게 채워줬다. 덕분에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나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설레기까지 했다.
역시나 내게는 못 말리는 정치적 DNA 인자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연말연시가 되면 갖가지 형태로 많은 모임이 진행된다.
그 모임들을 통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비디오를 돌려보듯 지난 시간을 현실에 비춰보며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생각처럼 모임이 좋은 결말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지나친 망년회 음주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사고로 이어지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번만큼은 무탈하게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술에 취해 과거를 잊자는 그런 취지의 송년 모임도 카타르시스를 위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망년회를 하는 그 순간조차도 곧바로 과거로 편입되는 게 인간사임을 감안할 때 차라리 미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는 송년모임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모임을 통해 어려워진 경기에 풀죽은 이들을 기운 차리게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없는 성공이라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임을 주도하는 이들의 철학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좌중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각 모임을 주재했던 회장단 여러분께 감사하고 싶다.
내게 참으로 큰 행복을 줬다. 용이 되어 승천하는 기세를 느끼게 했다.


(2010. 12. 4)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메세나 운동

메세나 운동



10초의 중요성이 오늘처럼 절실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0.17분도 채 안되는 시간 때문에 초대받은 대한민국 미술축전 개막식 테이프 커팅을 놓쳤다. 식장에 들어서긴 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식이 이미 시작돼 버린 것이다.
그래도 모처럼 만난 김영선 국회의원의 반가운 얼굴과 차대영 미술협회 회장님의 진심어린 환대가 테이프 커팅을 놓친 아쉬움을 덜어줬다.
경민대학 학생들의 활약상도 기쁨에 일조했다. 행사장 내 마련된 부스에서 경민대학 주관으로 캐리커쳐 그려주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인파가 몰리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정창균 작가님이 이번 미술축전에서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식이었다.
정 작가님과는 5년 전 작품을 구매하면서 시작된 인연을 나누고 있는 사이다. 실례일지 모르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솔직히 그의 예술적 자질까지 알아봤던 건 아니다. 그저 성실히 작품에 임하는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탐구와 변화를 통해 작품의 질적 가치를 승화시켜 온 그를 지켜봤다. 경민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화려하기 보다는 과묵한 모습이 맘에 더 들었었다.
그동안 일관되게 소재로 삼았던 원 대신 최근 들어 사과나 꽃 등을 소재로 화풍으로 바꾼 것도 그가 추구하는 변화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얼마 전 그와 만난 자리에서 ‘예전의 작품은 약간 형이상학적이어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느낌이었는데 요즘 작품은 생동감이 느껴져 개인적으로 훨씬 더 좋은 느낌“이라고 감상을 전한 적이 있는데 그의 최근작 중 하나가 수상작으로 선정돼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전문적인 콜렉터도 아니고 뛰어난 예술에 대한 심미안이 있는 것도 아닌, 단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뿐인 나로서는 그저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작품을 골랐는데 결과적으로 1등 작가의 작품을 고른 것이어서 덩달아 인정받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작품 구매를 통해 미력하나마 예술인들을 조력하고자 했던 나의 진심이 보상받는 기분이어서 기쁨이 배가되는 것 같았다.




진짜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굉장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작품활동에 임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렇다고 우리 작가들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이번 미술 대전에 출품된 작품들만 해도 눈에 띄는 작품성으로 작가들의 우수성을 입증할 만한 작품들이 많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재에 밝지 못해 정당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환경이 어려움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어차피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 시점에 국가가 나서서 작가들에게 세계를 향할 수 있는 둔덕이 되어 준다면 우리 역시 세계 유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를 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골프에서도, 피겨스케이트에서도, 수영에서도 ‘일등’을 해내고 있는 우리다. 하물며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데 예술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뉴욕이나 런던의 경매장에서 천억대의 진가를 가진 대한민국산 예술 작품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문화 예술을 사랑받고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진정한 의미의 일등 국가, 일등 국민이 될 수 있다.
유럽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의 피렌체만 해도 그렇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뒤덮일 정도로 중세 예술의 보고가 되어있는 이 도시 역시 메디치 가문의 예술후원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술 관련 학과 개설에 관심을 갖고 수목원 수튜디오나 예술문화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에 열정을 쏟는 이런 과정 모두가 우리 문화 예술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한 충정이
라고 할 수 있다.



이참에 우리 모두 주변의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전역에 메세나의 물결이 차고 넘치게 만들어보도록 하자.
적은 걸음이라도 개개인이 대한민국 예술 확산의 전령사를 자처하고 나선다면 대한민국이 세계 예술의 선두로 자리매김하게 될 날이 멀지않았다는 생각이다.
여러분 모두가 메세나 운동의 선두주자로 나서면 뭐든 할 수 있다.
더불어 일산 킨텍스에서 6일까지 전시되는 대한민국 미술축전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 있으시길 바란다.

(2010. 12. 2)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경민 상아탑에 초대합니다.


경민 상아탑에 초대합니다.


12월, 진학 시즌이다.
저마다의 진로를 놓고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가는 계절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로는 학교 측 역시 만만치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학생은 학생대로 좀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싶어서, 학교는 학교대로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를 향한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왜 ‘경민’이죠?”
가끔씩 주변 사람들이 경민대 총장 직위를 가진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아마도 경민학원의 우수성을 말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럴 때 마다 제법 의기양양하게 내놓는 대답이 있다.
“저는요, 제 세 아이들 모두를 경민에 보냈습니다”
사실이다. 나는 내 아이들을 모두 ‘경민 동문’으로 만들었다.
위장전입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식을 강남 8학군에 보내는 열혈부모가 되겠다는 뜻은 없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기준으로 치자면 어느 부모 못지않은 나다.
그런 내가 주저없이 아이들을 경민에 보낼 수 있었던 건 어느 학교보다 질 좋은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는 교육자로서의 자부심이 아버지로서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경민학교에 갖는 나의 자부심은 크다.
민족정신 함양과 인성교육을 우선시 하는 설립이념이 있는 한 경민의 꿈과 희망은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이런 자부심이 경민인들이-학생이 됐건 교직원이 됐건-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근원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도를 넘는 청소년 관련 범죄나 학원 문제가 어제 오늘의 고민거리는 아니다.
학생 개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동안 인성을 도외시하고 성적 만능만 외치던 학교 교육의 병폐가 초래한 후유증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경쟁교육만이 능사인양 점수벌레로 내몰았던 학교 교육이 오히려 학생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됐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 대목에서 신앙교육과 효충 교육을 근간으로 인간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전인교육에 정성을 쏟고 인성 강화를 강조하는 경민학원의 교육방침이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다.
조금은 진부해 보일지 모르지만 '인간이 된 후에 학문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경민의 슬로건이야말로 퇴로를 잃고 궁지에 몰려있는 이 시대 교육 현장에 필요한 사표가 아닐까 싶다. .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예의와 도덕을 근간으로 한 인성교육을 중시한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기약 할 수 있었고, 쇠퇴 일로에 놓인 현실이 인성교육을 소홀히 한 탓이라며 자책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봐도 틀리지 않은 추측이다.
경민학원의 가치는 예견되는 문제점에 일찌감치 대비한 남다른 선견지명에 있다고 감히 자부한다.
학생들에게 성적에 치중하기보다 그에 앞서 인간이 될 것을 주문했고 또 비중을 두고 교육했다. 인간이 되어야 부모님을, 더 나아가 조국과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품격있는 일등국민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민족학교로서의 차별화된 교육방침을 위해 애쓴 흔적이 적지 않다.

학생들의 자존감 고양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점도 경민학원 만의 강점이다.
신앙교육을 통해 저마다 하느님 섭리에 의해 세상에 온 위대한 피조물임을 강조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개념으로 학생들 스스로에 대한 자존의식을 고양시켰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저버리지 않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는 교육을 지향했다. 이 역시 경민학원 만의 차별화된 교육방침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선생님과 학생이 한마음이 되어 학생들로 하여금 저마다 타고난 달란트를 바탕으로 각자의 인생에 꿈과 목표를 갖게끔 힘을 모았다. 침체된 경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달란트를 찾아내서 희망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다며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통해 기를 불어넣었다.
꿈과 목표를 갖되 개인적인 관심사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가치관이 형성되도록 기도로 최선을 가르치는 게 경민대학의 교육목표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아무 것에도 발목 잡히지 않고 세계 시민이 되어 마음껏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경민학원이 그 역할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리더를 키우려는 경민대학에서 저마다의 자신의 미래를 찾기를 권하는 바다.
학생 저마다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개발, 접목시켜 ‘특별한 대한민국 인재’로 길러낼 수 있다는 교육적 확신이 경민대학에 있음이다.
21세기 세계 속 대한민국의 견인차 역할을 감당할 경민대학의 다양한 학과와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국제적인 프로그램의 가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새롭게 부상하는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함으로써 국제화 시대를 철저히 대비하기 위하여 한발짝 더 다가섰다. 이제 시작하는 대학이지만 전직 국회의원, 고위관료, 성공적인 기업가, 전 육,해사관학교 교장, 전 교육감 출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던, 존경 받으시기에 충분한 분들을 교수진으로 모셨다.
무엇보다도 학교의 리더십과 공유된 비전으로 학생들의 무한경쟁을 뒷받침하겠다는 빛나는 신념을 주목해 주길 바란다.

경민대학이 젊은 그대들과 미래를 함께 하기 위해 그동안 준비해 왔던 모든 기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줄 기회를 주기 바란다.
경기도 의정부 가능동 언덕배기에 있는 경민대학에 여러분의 미래를 실어보시라.

분명 함께 빛나게 될 것이다.

(2010. 12 .1 )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