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인구가 경쟁력이다

인구가 경쟁력이다


중국이 그랬듯 인도가 세계를 평정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순전히 인도가 보유하게 될 세계 최대 규모의 인구가 발휘하는 저력이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지만 바야흐로 인구가 국가 경쟁력인 시대적 상황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정삼각형 형태로 펼쳐진 인구분포도가 탄탄한 인도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2025년이면 5억9000만 명이 된다는 (15세에서 35세까지의) 노동인구 현황에 확실히 그 답이 나와 있다는 생각이다. 이 노동력이야말로 인도를 세계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에너지의 원천이고 조만간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고 전망하는 미 CIA의 시나리오나 유엔의 미래 보고서가 설득력을 갖는 배경이기도 하다.



반면, 2009년 현재 OECD 30개국 회원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다.

실제로 우리의 미래는 연 5000만 명 출산으로 1인당 1.15 출산율로 심각한 저출산 기조에 위협받고 있다. 이대로 저출산 파고를 넘지 못한다면 2800년 무렵이면 ‘종족 소멸’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산아제한을 독려하던 국가 정책이 성행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예비군 훈련 면제를 미끼로 정관수술을 유도하거나 셋째 아이는 의료보험 혜택을 제한하는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출산을 막으려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마음이 무겁다.

인구문제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우리가 그 직접적인 대상으로 지목되고 보니 충격이 크다. 더군다나 저출산 현상이 고령화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도임을 감안한다면 사안은 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격변을 ‘인구지진(Agequake)’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던 언론인 폴 월리스는 "투표권을 무기로 부양의무를 강요하는 노인들과 이에 반발하는 젊은이의 대결이 불가피 할 것"으로 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우선 당장 노인 대상 ‘Medicare’ 효율화로 건강보험의 재정난을 해결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오바마 정부가 성난 노인들을 등에 업고 ‘노인홀대론’으로 맞서는 보수야당의 저항에 직면해 있는 양상도 비슷한 모양새다. 물론 노인들의 과도한 연명치료 대신 아이들의 예방접종을 늘리자며 오바마를 편들고 나서는 세력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 어떤 자율적 기능이나 자연 현상이 고령 인구를 억제시키고 젊은이들의 부양책임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이 형성될 가능성이 대두되기도 한다. 노인 살해 등의 극단적인 수단이 동원될 가능성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식량이나 땔감 등이 부족했던 고대사회에서는 노인봉양 자체가 사치였다.

고령자는 굶어 죽게하는 풍속 등이 만연했다. 한정된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젊은이들에게 쓰는 게 집단 전체의 이익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공공연히 형성됐다.

실제로 고대 카스피 족은 70세가 넘으면 굶겨죽이거나 시체를 벌판에 버렸고 아프리카 대륙 원주민의 경우는 노인들을 고된 노동으로 혹사시켜 진이 빠져 죽게 하는 풍습이 횡행했다. 북극해 일대 에스키모들은 늙어서 스스로의 먹거리를 구하지 못하면 목을 졸라 죽이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버리고 갔다. 운신을 못하게 된 노부모를 자루에 넣은 뒤 나뭇가지에 매달고 활을 쏘아 죽게 했다. 한 발에 목숨을 끊으면 효자로 칭송하는 독특한 문화도 있었다.

우리의 고려장과 유사하게 노인들의 잔여 생명이 비정한 방법으로 처리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듯 하다.



고령화 사회의 심각성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수렁에 발목을 붙잡힌 일본이나 그리스의 사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는 퇴직자 연금 때문에 재정이 파탄됐고 일본은 노인복지의 과도한 지출로 인한 부채비율 증가로 경제대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려야 했다.

생산연령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의 어두운 그늘이 우리라고 비껴갈 리 만무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에 태어난 40∼50대)의 대거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노인세대의 양적 팽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반해 정부의 정책적 고려는 여전히 답보상태니 큰일이다. 국민연금 개혁과 공무원 연금 지급 방식 수정을 통해 대비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기금 고갈과 막대한 적자에 대한 우려까지 해소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현상이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부 차원의 현실적인 복지 정책이 시급하다.

19세기부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프랑스나 스웨덴의 경우 한 때 저조한 출산율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으나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 덕분이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식하고 공공보육 지원 확대를 비롯해 출산휴가 연장, 가족 수당 지급 등의 발빠른 정책적 대응으로 위기 국면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인구사회학자 듀크대 필립 모건교수의 해법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녀 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교육체계를 저출산 현상의 주요 요인이라고 지목했다. 관련 세미나 등을 통해 대가족 제도의 강화와 적극적인 이민 수용을 저출산 문제 해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세대 간 동거를 통해 부모는 정서적 부양과 보살핌을. 자식들은 육아 도움으로 서로 윈윈하게 됨에 따라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지였는데 충분히 동의하는 바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삶만 들여다보는 이기심을 벗는 일이 시급하다. 교감을 통한 세대 교류가 가능해야 대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다산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물쭈물 미봉책으로 꼼수를 부릴 여유도 없다.

자기 위주의 생각들이 만들어 낸 부작용을 극복하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국민대각성 범사회적 운동이라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지막지한 선택을 강요당하기 전에 미리미리 대처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먼 미래의 일이 아니기에.

(2010. 12.1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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