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말의 독성

말의 독성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예전에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함께 했던 신성일씨였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악플의 폐해와 해악을 말하면서 자제를 호소하고 있었는데 악플에 시달린 경험자의 토로여서인지 꽤나 설득력 있게 들렸다.




달갑진 않지만 악플은 우리처럼 공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숙명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결정적 빌미가 되기도 한다.

사사로운 감정 해소나 이익을 위한 불순한 동기로 악플을 가동하는 건 죄악에 가깝다. 그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악플의 횡포를 극복하지 못한 공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다. 그야말로 사람을 퇴로 없는 궁지로 몰아넣는 가공의 위력이다.

악플이 인터넷 공간을 통한 사회악이라면 마타도어는 오프라인에서 공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마타도어의 덫에 걸리면 법원 판결 등으로 무고가 입증되기 까지는 낙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선거판에서 정치적 라이벌에 의해 악용되는 경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잔인함으로 아프게 한다는 건 나 역시 익히 경험한 바다.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식 역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경우엔 어떻게 저렇게 저런 유형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인생에는 딱 떨어지는 ‘모범답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피하고 끝까지 심사숙고하고자 하는 배려가 있어야겠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는 직종의 사람일수록 더 큰 배려의 보호가 필요하다. 아무리 나와 생각이 다르고 미워도 상대방을 충고하거나 비판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금도를 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악플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형틀에 매인 형국이라 하겠다. 애증과 복수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환하다. 결국 중동에서의 분쟁이 911 사태를 야기하는 것처럼 3차 대전의 발단도 크게 이목을 끌지 못하는 소소한 일에서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복의 역사는 돌고 도는 속성 때문에 단절이 쉽지 않고 계속해서 구원으로 돌게 될 확률이 크다.

무엇보다 남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의 악의적 코멘트는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극단적인 반목으로 치닫게 만든다.

악플이나 마타도어 역시 십중 팔구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역지사지 정신을 우리의 의식세계를 주도하는 귀한 가치로 삼기를 권하는 바다.

어떤 상황이 됐건 한번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그나마 살만한 세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전의 역사에서도 역지사지가 가능했다면 많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은 링컨이나 김구, 간다, 마틴루터 킹 등 시대적 영웅들이 남기고 간 미완의 삶을 회한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됐을 터이고 서로 간에 죽고 죽이는 끔찍한 역사의 서술을 통째로 편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신념에 대한 확고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각에서는 죽이고 싶도록 싫거나 반대하고 싶은 ‘악’의 영역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당시 ‘살인’ 감행을 사회정의 구현 차원으로 받아들이던 집단의 정서를 심정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살인이고 범죄행각일 수 밖에 없겠다.

그러나 그 어떤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런 분들의 수명이 좀 더 길었다면 우리는 좀 더 살만한 세상을 소유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최소한 인간의 기본적인 룰과 원칙 위에 모든 소통과 화해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필요이상의 거짓과 과장으로 타인을 아프게 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때론 아픔이 사람을 성숙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 주변의 가족 친지, 친구들이 느끼게 될 고통을 헤아려 달라고.

말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의 삶을 마감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희망과 격려가 넘치고 에너지를 주는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가까운 이들의 따뜻한 이해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명심하도록 하자.



누가 그랬다.

비난은 적게, 격려는 크게 하라고.

(2010.12.2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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