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딸 이야기

딸 이야기

딸아이가 훌쩍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스물일곱 나이에 공부를 하겠다고 집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을 했다. 딸아이에게서 오래 전의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눈에 밟히는 딸아이 생각에 자꾸만 서성거리는 마음이 된다. 무슨 청승인지 비어있는 딸의 방을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딸의 체취가 남아있는 물건들을 만져보며 허전함을 달래고 있다.
이런 게 부모 마음인가 싶다.

딸아이 出家(?)에 가장 큰 자극을 받으신 분은 어머니이신 것 같다.
혼기를 놓칠 지도 모를 손녀 딸 걱정이 부쩍 많아지신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엔 별 관심이 없는 손녀가 유학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큰일이다’ 싶으신 모양이다.
덕분에 진작부터 손녀 딸 시집보내기 프로젝트를 일생일대의 관건으로 삼고 백방으로 뛰시던 어머니의 움직임이 한층 바빠지셨다. 돈 잘 벌고 신체 건강하고 가정환경 좋은 손녀사위 감을 외치시면서 중매 전선을 누비고 계신다. 마치 손녀 딸 중매를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양 맹렬한 의지로 집중하고 계신다.

그런 어머니께 중매가 능사는 아니라고 말씀 드려 보지만 역부족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중매시장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중매시장을 통해 무수히 많은 선을 보고 고르고 골라 결혼을 결정해도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난 주위의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하게 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2011년에는 기필코 손녀딸을 시집보내고 말겠다는 전의를 다지고 계시는 어머니께 통할 것 같지는 않다.

최소한 손녀사위 후보 직업에 대한 어머니의 기준은 확고하시다.
정치가와 목사 직업만큼은 싫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신다. 정치가인 남편과 큰아들, 그리고 목사인 막내아들을 둔 어머니의 사적 경험을 근거로 한 결론인데 기도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당사자인 딸이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고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손녀사위 기준과 딸이 원하는 배우자감의 조건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세대는 물론 인생관이 다르고 삶의 행태가 다르니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건 뭐 간장 게장과 피자 정도의 갈등이 아니라 인도인 생각과 우주인 생각 정도의 기호 차이다.
어떻게 하든 손녀딸을 시집보내서 4대를 이루고 싶은 어머니와 그런 할머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나름의 인생 가치에 치중하는 딸내미 사이에서 또 다시 ‘끼인 남자’가 되어 엉거주춤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자꾸만 성급해지는 어머니의 마음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딸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중매가 됐건 연애가 됐건 내 딸이 진정한 인생의 반려자를 찾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결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나로하여금 절박하게 매달리게 만드는 간절한 화두라는 사실을 딸아, 너는 알고 있니?


(2010. 12. 2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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