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봉은사 땅 밟기라니


봉은사 땅 밟기라니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무신론자는 없다고 할 정도로 대부분의 국민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

종교의 천국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종교를 수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이렇다 할 종교 분쟁의 역사 없이 잘 지내왔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솔직히 종교 갈등으로 나라 하나가 세 조각으로 갈라져 적대시하거나 국가 간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 살상의 참극이 벌어지는 지구촌 현실을 바라보며 자부심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일탈이 불교계를 자극하면서 종교 갈등의 조짐이 일고 있어 유감이다. 이른 바 ‘봉은사 땅 밟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유튜브 동영상이 문제의 발단인데 기독교 신자인 듯한 일단의 사람들이 삼성동 봉은사에 난입해 기독교식 종교의식을 치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나 역시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의 ‘적극성’에 동의하고 있지만 이런 방식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이번 사건으로 종교 분쟁이 확산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기독교인의 한사람으로 불교계에 대한 ‘무례’를 진심으로 사과한다.



텔레비전 화면에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나왔다.

코미디가 아닌 뉴스 프로에 등장한 그녀의 표정은 몹시 굳어 있었다.

문득 우리 시대의 일등 코미디언인 김미화의 얼굴을 누가 저렇게 굳어지게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착잡해졌다.

KBS 내부에 보이지 않는 손들이 횡행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때 마침 정연주 전 사장이 2심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KBS에 정치적 바람이 상당히 심하게 불고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어느 곳보다 힘센 사람이나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해 주길 바란다.

“일자 눈썹을 꿈틀거리며 움메 기 죽어”를 연발하던 순악질 여사 김미화씨를 경쾌한 기억으로 떠올리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지 진실공방의 결론이 어떻게 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김미화씨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강남 일대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알선한 업주와 성매매 여성 등이 검거됐다. 이번에는 성매매 홍보 전단지를 제작한 인쇄업자까지도 검거 대상이 됐다는 내용이 조금 특이할 뿐 거의 일상처럼 날마다 반복되고 있는 뉴스다.

떠들썩하게 이목을 모으며 성매매 단속법이 발효된 지 오래지만 현실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갈수록 진화하는 범죄 현실에 비해 단속은 여전히 1차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니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성 매매가 인간이 존재한 이후 가장 먼저 발생한 직업이고 인간이 존속하는 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직업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성 생리에 사랑의 감정이 허용되는 건 인간이 유일하고 대부분의 동물에게는 종족번식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할 뿐인 점을 비춰볼 때 오늘 날 만연된 성매매 풍토는 근절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인간의 존엄성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차원에서 더욱 그렇다. 성매매는 현행법 위반 차원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 파괴 측면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사랑이나 낭만은 물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안중에 없이 진행되는 성매매에 획기적인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인정될 수 없다. 하루빨리 개탄스러운 우리의 성매매 현실이 근절되거나 개과천선 되길 바란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눈에 들어와 관심을 가져 본 소식들인데 모두 ‘일방통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남들이야 어떻든, 남들의 입장이 어떻게 되든, 나 아닌 다른 이가 어떤 어려움을 당하게 되건 아랑곳하지 않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원초적 본능(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에 급급하고 자기만 충족되면 그만이라는 만연된 이기심의 사회적 결론을 보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는 망하고 만다. 모두가 희망이 없는 암흑의 세계 앞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나름 존재의 의미를 갖춘 ‘인간이 사는 사회’에 살고 싶다면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우선 역지사지부터 실천해 보도록 하자. 이제부터라도 기독교는 불교 입장이, 힘센 권력가는 힘없는 소시민 입장이, 性 매수자는 性 매매자의 입장이 되어 세상을 거꾸로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만한 곳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만이 우리 사회의 공멸을 막고 공생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 기도하는 심정으로 오늘도 블로그에 내 마음을 새기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길.



(2010.10.31)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관점이 다르니

관점이 다르니



살면서 의중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어 곤혹스럽게 될 때가 많다.

며칠 전 내 블로그 독자와 나눈 대화 시간도 그런 순간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내 블로그에 포스팅 된 글에 꽤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글들이 특정 사안에 딱 부러진 입장을 보이지 않고 두루 뭉실 넘어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명했다.

그의 충고에 특별한 오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정확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원래 사람이 무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사상가와 현실정치인의 처지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취지로 정치하는 사람의 현실적인 한계를 설명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어떤 설명도 명확히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그를 온전히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내게 확신을 바랬지만 그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사 마다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역사나 시대적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여러 경험들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다. 똑같은 사실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사물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진단을 내리고 매듭을 짓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이 절감된다.

한일 양국에서 극명하게 엇갈린 시각으로 평가되고 안중근 열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사례만 해도 그렇다.

우리에게는 애국자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안중근 열사는 일본인의 시각으로 보면 그저 무모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나쁜’ 일본인을 제거한 쾌거가 일본에서 오늘 날의 일본을 만들어 낸 위대한 지도자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기려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의거’로 칭송하는 안 열사의 숭고한 행적이 일본에서는 무모하고 비뚤어진 영웅심의 발로 정도로 폄훼되고 있는 것도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다.

누가 맞고 틀린지를 단정 지을 수 없는 애매함이 거기 있다.

안중근 열사와 그의 아들 안중생의 삶도 비슷한 경우의 수를 보인는 건 아이러니다.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버지 안중근과 그런 아버지를 부정한 변절의 댓가로 가족의 영위를 책임져야 했던 아들 안준생의 엇갈린 운명에 대한 평가는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혹자는 안중생을 '호부견자‘로 낙인찍고 외면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그는 자신의 선택이라기 보다 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희생된 불우한 ’영웅의 후손‘으로 동정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삶을 임해야 할지는 참으로 중요한 방편이라는 생각이다. 그것들을 어떤 방법으로 추진할 것인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고 시대를 보는 밝은 안목 역시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실제로 우리의 역사 속 인물들이 남긴 삶의 궤적을 통해서도 그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고려 태조 왕건의 인내심, 피비리내 나는 전쟁을 불사하면서 권력을 쟁취한 태종 이방원, 파락호의 손가락질을 마다하지 않던 흥선 대원군의 무서운 위장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 정도는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었던 포은 정몽주의 절개 등이 지금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성공사례다.

여건과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 모두 자신의 삶을 제대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후대가 그들의 삶의 궤적을 기리는 것만 보아도 틀린 정황은 아닐 듯 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형으로 내 삶을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시대를 잘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 여건이나 주어진 역할 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고민이 있어야 한다. 또 시대를 마감한 이후 어떤 식으로 평가되고 기억될 지 의식하는 것도 인간의 삶을 바로잡아 주는 훌륭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딱히 ‘이것’이라고 할 만큼 명확하게 손에 잡히는 결론은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삶의 궤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알겠다. 제대로 된 ‘흔적’을 위해선 신중한 사고는 물론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별 생각없이 사는 것 같아도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한 저마다의 인생인 것을.



블로그 인연 때문에 제대로 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현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는 달 밝은 밤이다.



(2010. 11. 28)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27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못 말리는 DNA

못 말리는 DNA


최근 우리에게 썩 괜찮은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케이블 TV 오디션 프로그램(슈퍼스타K2)에서 우승을 거머쥔 25세 청년(이름이 ‘허각’)의 성공기가 그것이다. 가히 ‘허각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열화와 같은 환호가 연일 그를 향해 쏟아지며 장안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신장 163cm의 중졸 학력이 전부인 그가 상대적으로 월등한 조건을 갖춘 라이벌 ‘존박’을 가뿐히 제치고 정상에 오르면서 많은 이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놀라운 일이다.

너도 나도 잘난 스펙이 넘치는 이 시대, 노래 실력을 빼고는 모든 것이 평균 이하의 조건인 청년이 거둬들인 성공의 실체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중의 열광도 따지고 보면 그의 열악한 배경이 극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각이 슈퍼스타로 등극하는 과정은 지켜보던 많은 이들에게 대리만족의 기쁨을 줬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을 것으로 체념한 대중으로 하여금 ‘희망’을 체험토록 한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되는 분위기다.



5.16 이후 치러진 1963년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명문가를 배경으로 영국박사 학위를 소지했던 윤 전대통령은 빈농 출신의 군인이었던, 그것도 좌익으로 몰려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을 이기지 못했다.

절대적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이회창 전 총리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개인적 스펙에도 불구하고 두 번에 걸친 대권 도전에서 상고 출신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두 야당 후보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다.

직전 대선에서도 정동영 후보는 여당 후보로서 결코 뒤지지 않는 배경을 가지고서도 비주류였던 이명박 당시 야당 후보에 패하고 분루를 삼켜야 했다.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살피다 보면 시대는 달라도 유권자의 선택에 묘한 공통점이 작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강자보다는 약자에 대해 더 후해지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야구 경기만 해도 특별한 연고가 없다면 대부분 약한 팀을 응원하게 되는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중의 선택은 참으로 복잡미묘하다.

모든 것에 능한 강자가 선호될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약자를 선택하게 되는 결과가 의외로 많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측은지심을 기대하는 건 위험하다. 동정과 연민만으로 대중의 마음을 얻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만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할수 있다. 실제로 겉으로 드러난 실체보다 저마다 뚫고 온 역경의 자취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와 사람을 지배하는 건 사랑과 덕이 아니고 힘과 권력’이라고 했다.

가끔 착각하기 쉬운데 ‘실력가 보다는 강한 자가 이긴다’는 이 메시지가 정치판 현실에 적용될 때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강한 자가 이긴다’는 ‘강해보이는 자가 이긴다’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누가 더 강한 지 판단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중이 약자에 기울어지기 쉽다고 한 앞서의 주장과 배치된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허각이,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순한 ‘약자’ 이미지에 그쳤다면 그들의 인생에 슈퍼스타라는, 대통령이라는 ‘성과물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결론을 말한다면 그들은 결코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승리는 연민이 느껴질 만큼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역경을 딛고 ‘입지’를 구축한 강한 외형이 어필됐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정치를 하고자 나선 사람들이 (유권자 선택 기준으로)반드시 명심해야 할 아이러니한 대목이기도 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탄생의 떠들썩함에서조차 정치적 역학구도를 갖다 붙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아무래도 내 안에는 아무도 못 말리는 '정치 DNA'가 들어있음에 틀림없다.



(2010.10.27)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공정한 사회를 위해

공정한 사회를 위해


얼마 전 빌 게이츠의 부친, 버핏 게이츠는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주장으로 이목을 모은 바 있다. 부자들의 재산 환원이 나쁜 건 아니지만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과정 자체가 부자들에게 혜택 보장을 전제하는 것이어서 그보다는 가혹한 세금이 사회 발전을 위해 더 낫다는 그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물론 성실하게 돈을 벌어서 후손에게 재산을 남기는 일 자체는 어찌 보면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태광그룹 사태를 통해 드러나듯 편법으로 조성된 ‘富’의 실체는 어떤 형식으로든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무리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게 돈이라지만 비감스럽기까지 하다.



대통령의 ‘공정사회’ 천명이 모처럼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불공정이 주를 이루는 흐름을 보이고 있으니 이마저도 헛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지 싶다. 게다가 구호로 그치는 공정성이 자칫 공정사회를 기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합법적인 명분을 조달하는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걱정스럽기도 하다.

특히 부의 편중 현상이 공정사회 구호를 공허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지표로 드러나는 징후들만으로도 공정사회가 안착되려면 얼마나 멀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십억, 수백억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재벌가의 미성년 자손들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결코 공정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완고한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부의 편중 사례라 할 수 있다. (것도 모자라 적통의 지위를 두고 체면도 가릴 여유 없이 서로들 치열하게 다투는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가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생중계 되고 있으니 이거 원..)

미성년 자식들에게 과도한 재산을 미리 넘겨주는 행태가 과연 당사자인 자식들에게 바람직한 일인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부모로서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자식 입장에서 반드시 재고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최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건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맹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의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기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문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양극화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물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국부 확장을 위해서는 더 지독한 양극화도 감내할 각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강팍한 물질만능주의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행복할 리 없다. 요즘 들어 부쩍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혼합한 제3의 절충안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잦아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양극화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국민 입장은 불안할 것이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양극화가 심화돼야 적정선을 찾게 될 지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스트래스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는 욕심인 것 같다. 욕심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독소 조항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모든 일정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면서 그나마 중심까지 잃어버리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현상이 어제 오늘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데 인식을 함께 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을 탓할 일은 아니나 갈수록 공정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녹록치 않은 현실 직시도 마찬가지 과정이다. 지금으로선 그저 어떤 식으로든 바로잡고자 하는 위정자의 진정성과 사회 구성원들의 실천 의지가 가장 적절한 처방이 아닐까 싶다.

공정한 사회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선 욕심대신 각 개인마다 헌신의 미학을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PS: 지금 내 머릿속을 지배하며 해결책을 구하고 있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 기본적인 자본주의 변형없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뭘까?
- 국민적 동의하에 과도한 부의 세습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어떤 걸까?
- 공정한 사회가 신기루에 불과하다면 모두와 현실적으로 공감대를 구축할 수 있는 슬로건은 과연 무엇일까?



(2010.10.26)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가을 낙엽

가을 낙엽

-홍문종


떨지는 낙엽은
이끼낀 조약돌

떨궈진 낙엽은
오래된 일기장


뒹구는 낙엽은
흐르는 시냇물


날리는 낙엽은
허공의 회심가


빛바랜 낙엽은
허전한 그림자


밟히는 낙엽은
구겨진 교과서

불타는 낙엽은
희미한 달무리


낙엽은
인간은
사랑은
당신은


(2010.10.25)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여행길 단상

여행길 단상


다도해의 최남단 섬 거문도에 다녀왔다.

거문도는 삼도 삼산도 거마도 등으로 불리던 본이름이 있었으나 섬 주민과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학문이 뛰어난 이들이 많은 사실을 알게 된 중국 청나라 정여창 제독이 문장가들이 많다는 뜻인 거문((巨文)으로 바꾸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거문도는 또 조선 시대 당시 영국과 러시아의 정치적 대립으로 야기된 ‘거문도 사건’으로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도착하자마자 거친 일기 때문에 일주일여를 섬에 갇혀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흡족함으로 남는 여행이다.

실제로 거문도에 발을 내딛은 첫날부터 풍랑주의보 발효로 다도해 최남단 섬 구경에 들떠있던 우리들의 꿈은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됐다. 하지만 이 상황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름다운 섬의 풍광에 정신을 빼앗긴 이유도 클 것이다.

거문도 등대를 통해 내려다보이는 경치나 야트막한 높이의 불탄봉을 배경으로 군무를 펼치고 있는 억새풀, 절묘한 형상의 신선바위, 마당바위 등은 거문도의 진가를 대변해주는 절경이었다. 그리고 망망대해에 점처럼 박혀 저마다의 신비와 위용을 뽐내고 있는 백도의 아름다움 역시 가히 남해의 해금강으로 불릴만했다.





이번 거문도 여행은 구경도 구경이지만 삶의 가르침을 체득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유익했다.

모든 사람은 각기 나름대로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 그것이다.

이번만 해도 일행들로부터 평소 몰랐던 여러 끼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꽤나 출중한 일가견이어서 솔직히 놀라웠다. 누구는 입담이 좋아 좌중을 즐겁게 했고 또 어떤 이는 조용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노래를 잘했다. 심지어 등산 중 거의 달인 수준의 길 찾기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남보다 잘 할 줄 아는 게 있다고 해서 함부로 잘난 척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만의 강점이라기보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엇비슷한 특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상황을 명심해야겠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를 만나든 특출한 장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대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받은 셈이다. 상대방이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 지 알아내거나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할 수 있는 안목이야말로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지도자의 판단과 결단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거문도에서 불탄봉 등반에 나섰는데 초행인데다 길이 익숙지 않아서 해가 기울기 시작했는데도 하산을 마치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평소의 방식대로 골짜기를 따라가며 길 찾는 방법을 동원, 거의 1시간여 동안의 ‘정글 속 사투’ 끝에 산을 내려왔는데 일행 모두가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생스러운 경험을 한 셈이다. 낮은 산이어서 스릴과 써스팬스를 즐길 수 있겠다는 속셈이 있기는 했으나

다른 동반자들에게 고통스러울 수 있었다는 자책감이 든다.

다음 날 문제의 등산코스를 자세히 관찰해보니 2,30분이면 (하산이)족히 해결될 평탄한 길이 있었다. 약간의 긴장감으로 즐거움을 더했던 등산이었지만, 실 생활이었다면 더 많은 사전 준비와 탐사가 필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태평함도 봉변을 초래한다는 사실도 체험했다.

평소 배멀미를 하지 않던 터라 이번 여행의 필수 코스인 배타는 과정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여수항에서 거문도로 입항 할때는 태풍주의보가 발효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걱정보다 파도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문도에서 백도로 가는 뱃길에는 아무 근심거리가 없는 무방비 상태였었다. 그러나 그러한 무방비가 유례없는 배멀미로 초죽음 지경이 되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평소 배멀미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약을 먹거나 배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방식으로 ‘재난’에 대비했다. 그러나 배멀미 상식이 없던 나는 탁 트인 시야를 즐긴답시고 선두에 앉아 있었던 것이 객기아닌 객기가 되고 말았는데 (어쩐지 그 자리가 텅 비어있더라니) 멀미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날따라 파도는 어찌 그리 심하던지. 백도를 갔다 오기는 했으나 경치는 즐깋 여유가 없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존중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지도자는 항상 판단에 신중해야 하고 판단의 결과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거문도에서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리 속을 맴돌던 이 상념들을 여행이 내게 준 선물로 잘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배멀미로 힘들긴 했지만 교훈도 챙기고 볼거리도 풍요로웠던 2박3일 여행길은 즐거웠다.


(2010.10.25)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21일 목요일

홍문종생각 - 쇼인지 국감인지

쇼인지 국감인지


국감 시즌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과잉의욕이 국감장을 이벤트의 집결지로 만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질의에 나선 의원들이 국정을 논하는 건지 쇼 무대를 연출하는지 모호하다.


실제로 국감장에 때 아닌 가스통, 군용 제독기, 식용낙지, 배추, 대인지뢰가 등장하는 가하면 심지어 고글과 장갑을 착용한 국회의원이 ‘불쇼’를 공연(?)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치 브라운관 속 연예인들이 속칭 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과 다르지 않은 정치인의 모습이 솔직히 볼썽사납다.





어떻게 해서든 튀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블로그만 해도 이왕이면 많은 이들이 찾아주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독자를 늘리는 특별한 방법이 제시된다면 그것이 개인의 철학이나 가치관과 약간의 차이가 나더라도 수용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 같다. 하물며 국민의 관심과 박수를 먹고 사는 정치인 입장에서 이목을 모을 수 있는 이벤트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운영은 신뢰와 진정성을 근간으로 가동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어떤 이유로도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퇴색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국정감사는 나라살림을 제대로 꾸려보자는 취지에서 진행되는 국정 스케쥴이다.


미비한 점이 있다면 대안을 마련하고 합리적인 정책 수립 등으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본연의 기능이다.


그러나 정치권 상황은 사태의 심각성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한 표정들이다.


진정한 국정논의는 간곳 없고 오로지 주목받기 위한 발버둥(?)만 존재한다. 국정감사조차 버라이어티 쇼의 일부로 생각하는 정치권의 철없는 행보가 언제쯤이나 제 자리를 찾게 될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국정 운영조차도 희화화되는 조짐인 것 같아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언론의 시니컬한 반응이나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 ‘생 쇼’들 때문에 재원 낭비와 국민기만, 부실의 주체로서 책임져야 할 형량이 더 무겁게 매겨지는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정황이 역력하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감의 실효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상설국감을 다시 한 번 주장하는 바이다.


차분한 분석과 진정성 있는 열정이 지배하는 국감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국정 감사는 대학의 세미나처럼 진지하게 진행된다. 그런 분위기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권을 신뢰하게 하고 찬사를 보낼 수 있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내실있는 국정운영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속적이고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총체적인 문제점 해결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상설국감은 결코 가벼이 다룰 수 있는 제안이 아니다.


국회의원 보좌 시스템을 손질하는 것도 국감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한 방안이다.


국회의원 1인당 4급에서 9급까지 7명 정도의 TO가 배당되는 우리와는 달리 미국의 시스템은 훨씬 합리적이다. 일테면 의원들에게 보좌진을 구성하도록 재량을 일임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우리도 일괄 처리하는 현행 방식보다 능력에 맞는 탄력적인 보좌진 수급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능력별 보수지급-경우에 따라 의원 세비 수준의 보수를 받는 보좌진도 가능한-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정감사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의 자세도 지금같은 상태로는 안된다. 변화가 있어야겠다.


부끄러운 행위를 수치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국감을 정쟁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자체가 기피 대상으로 인식될 정도의 도덕성이 필요하다.


특별히 선거가 있는 해의 국감이 표를 의식한 의원들에 불순한 의도 때문에 본연의 기능이 뒷전으로 밀리는 불상사는 없어야한다.





문제는 마인드다.


국감장이 더 이상 깜짝 쇼나 정쟁으로 타락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국민들이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상벌을 명확히 한다면 최소한 국정감사가 정치인의 탐욕에 오염되는 일만은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수준이 업그레이드 되려면 국민 저마다 정치권에 대한 감시 기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품격의 정치수준이 국민 자부심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사실도 함께.


(2001.10.21)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더불어 산다는 건

더불어 산다는 건


요즘 들어 대한민국의 우월한 유전학적 인자를 확인하는 기회가 많아진 것 같다.

그 중 해외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교포들의 성공 스토리는 특히 반갑다. 나름대로 성공을 이루고 뿌리 찾기에 나선 해외 입양아 케이스는 각별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둥지를 틀고 행정부 고위직으로, 재벌 사업가로, 스포츠 스타로 주목받는 교포들이 적지 않다.

한국인 최초로 오바마 행정부에 보건부 보관담당 차관보와 국무부 법률고문으로 각각 임명돼 워싱턴 정가의 관심을 모았던 고홍주, 고경주 형제가 있는가 하면 부시 행정부에서 대 테러정책 핵심논리인 선제공격의 이론적 틀을 주도했던 한국계 변호사 존 유 교수가 있다. 미식 프로 풋볼계를 점수한 한국계 스타 하인스 워드, 태권도 해외 보급으로 태권도 원조국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린 권재화 사범 역시 뛰어난 개인 기량으로 일가견을 이룬 자랑스런 대한민국 유전자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대구에서 '한민족 경제의 중심, 한상네트워크'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열린 세계 한상대회를 주목할 만하다. 46개국 내외동포 경제인 3200여명이 참석했다. 모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의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난 번 중국 상하이 모임에 이어 9번째라는데 해외에 있는 한국출신 경제인들이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면면을 따지다 보면 저마다의 성공스토리 역시 가볍지 않으니 만큼 이들 한상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지만 쓰는 것은 예술이라며 어렵게 모은 재산 60억을 선뜻 고향 발전을 위해 쾌척한 한창우 마루한 회장도 그 일원이다.

가난 때문에 16살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일본 밀항선에 몸을 실어야했던 그가 이제는 일본 재계 20위 규모의, 재벌순위 17위의 기량을 자랑하는 기업가가 됐다. 성공한 기업가가 되어 금의환향하게 되기까지 그의 삶이 얼마나 곤궁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 그가 이제 고국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8순 老사업가의 숭고한 선택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역지사지 측면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인심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그 생존력 강한 화교들의 정착을 막은 유일한 나라로 찍힐 정도니 알만하다.

우연히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간 화교 출신 중국인을 만났는데 “밀가루값 계속 올라 해. 자장면 값 못올리게 해 . 망해서 미국으로 도망갔어 해”라고 진저리를 쳐서 몹시 민망했던 경험이 있다.

세계가 점점 하나로 되어가고 있는 추세로 봤을 때 옹색하게 움추리는 우리의 폐쇄성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다. 조선의 몰락을 도왔던 대원군의 쇄국정치를 굳이 입에 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울타리를 허물고 점점 좁아지고 있는 지구촌 현실과 역주행하는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더구나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압박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 임에랴.

해외 입양을 근절하거나 이주민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전향돼야 마땅하다. 다문화 수용에 대한 적극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답은 선인들의 삶에서 건질 게 많다.

혼인 문제 하나만 해도 그렇다. 아래 윗동네끼리 사돈을 맺고 산 너머 동네에서 자식들의 혼처를 구하는 일상적인 관행에조차 치밀한 ‘사전계산’을 포석으로 깐 정황이 역력하다. 유전학적으로도 그렇고 사회학적으로도 그렇고 어쩌면 그리도 과학적일까 새삼 무릎을 치게 되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역시 평범한 우연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한다.



2012년이면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4%에 해당되는 200만 이주민 시대가 열리게 된다고 한다.

더 이상 이주민은 경쟁상대국의 일원으로 대하는 건 의미없는 일이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없이 더불어 사는 삶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18일 개막한 ‘고양 문화나눔 한마당’ 행사는 내게 있어 상당히 유의미하다.

국수주의를 벗고 서로의 삶을 끌어안는 방식을 통해 다문화의 수용공간을 넓혀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실천 마당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이 행사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미약한 시작이지만 창대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리란 믿음으로 임하고 있다.

모쪼록 이번 행사가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양 문화나눔 한마당’이 제 길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격려와 참여,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이 곁들여진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린다.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다문화 수용 움직임에 선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각자의 강점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서 완성도를 높이는 식으로 덧셈의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겠다.

대한민국을 세계 속 리더의 반열에 올리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2010.10.19)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1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우리도 도왔다

우리도 도왔다


절망의 막장에서 69일간의 사투 끝에 생환한 33명의 칠레 광부 스토리가 전 세계를 감동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다. 생환 드라마는 종료됐는데도 이들의 구조 후일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광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지구촌의 뜨거운 관심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이 보여준 인간승리에 대한 여진 때문일 것이다.
그 와중에 기분좋은 소식이 있어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


구조 작업에 결정적 역할을 한 미 센터록사 굴착기의 핵심 부품인 드릴해머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인 신성산업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된 것이다.
15명 인원이 전부인 소규모 업체에서 생산한 드릴 해머 의 빠른 속도 때문에 33명의 구조 작업이 당초 예상했던 4개월에서 7주로 단축될 수 있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싶다.


역시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없다는 자부심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어렵더라도 인내하면서 신기술 개발에 노력한다면 우리의 중소기업도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신성산업의 활약에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다.


신성산업이 일궈낸 성과는 비슷한 처지의 업체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졌다는 의미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업적이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한 뉴스도 있었다.


최근 미국 하버드 대학과 매사추세츠 공대(MIT), 한국 한신대 교수들이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에게 ‘한국의 뿌리박힌 성차별 정서를 활용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조언한 보고서 내용이 그것이다. 이들은 공동 집필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여성인재들을 중간간부로 적극 고용할 것을 장려했다. 여성간부가 10% 늘어날 경우 회사의 총자산이익률(ROA)이 1%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의 성차별 문화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다국적 기업의 경쟁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보니 착잡해진다.


자칫 촌각을 다퉈야 하는 치열한 기업 경쟁 무대에서 근거없는 유고 이데올로기에 젖어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위기의식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인재가 국가 경쟁력이라고들 한다.
갈수록 국가 경쟁력이 관건이 되고 있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

국가 경쟁력의 최대 키워드는 ‘인재확보’라는 사실에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단순한 인재 확보 차원이 아니라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차원의 뒷받침 기능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온통 미흡함 뿐이어서 솔직히 안타깝다.
계층 별 인력 배치 문제부터 장애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마다의 특성에 맞춘 인력의 효율적 배치가 미치는 사회적 순기능이 간과되고 있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특히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젊은 세대의 무경험이나 노년층의 노련한 경륜 등이 적절한 가치철학의 기준도 없이 배려되지 못하고 혼용되고 있는 상황도 우리의 국가 경쟁력을 다운시키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은 숙달되지는 못했지만 창의력이나 독창성 분야에서 두각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다. 그런 그들에게 자기 의견을 좀 더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거나 언제든지 경청할 수 있다는 소통의 자세를 견지하는 접근 방식은 때로 금맥을 여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무조건 무경험자의 무능한 측면만 부각시키는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서의 세대를 대하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지금 노인정이나 파고다 공원을 부유하는 노년 세대 중에는 수십년 축적된 노하우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고려장 당한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노련한 경험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인위적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겠다. 그것이 국가 경쟁력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투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람이 자원이고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 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기존의 관행을 수술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겠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최소한 인재 선발에 있어 ‘나이는? 출신학교는?, 고향은? 성별은?’ 이런 사소한 기준이 근거가 되는 기존 방식은 폐기돼야 한다. 한참 많이 틀린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당사자의 능력 여부가 이 모든 시시콜콜한 조항의 요구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거기에 덧붙일 것이 있다면 국가 정책 차원의 합리적인 인재 양성 정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고 이를 적절한 곳에 배치하는 미래지향적 안목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 향방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치창조의 일단이고 세계를 이끌어 갈 초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2010.10.16)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내야 땅 볼

내야 땅 볼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는 저녁 약속 때문에 애시 당초 미련을 접은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야구 중계가 시작되자 함께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다.

이날의 5차전 역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앞서의 다른 경기들 못지않은 명승부로 야구사에 남을만한 역전의 드라마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치열한 타격전 위주로 펼쳐지는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경기 초반만 해도 5점을 앞선 두산의 승산이 점쳐지는 분위기였다. 삼성을 지지하는 팬들은 삼성의 패배를 예감하며 망연자실하는 모습이었고 승리를 기정사실화 한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다음 상대인 SK와의 코리언시리즈가 화제에 올랐다.

그러나 알다시피 1점 차의 역전승으로 코리언시리즈 진출 티켓을 쥔 팀은 삼성이었다.

치열한 혈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장 11회 말, 그것도 투아웃 상황에 터진 박석민의 끝내기 안타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얼결에 야구 경기장을 찾은 이후 부쩍 야구에 대한 관심이 커진 나를 보게 된다.

예전에 익숙했던 열기와 함께 선수들 이름이 하나하나 살아나오고 양 팀의 응원가가 귓전을 맴돌면서(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맴돈다) 다음 경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궁금증으로 다가오는 현상들이 그것이다.

일종의 스포츠 중독성이라고나 할까. 특정 자극에 익숙해지면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야구를 통해 경험하게 됐다. 아마도 술이나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야구 경기를 통해 얻은 건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인생의 교훈도 얻었다. 지극히 평범한 내야 땅볼 하나가 게임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삶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사소한 실수 하나가 인생을 패배시키는 결정타가 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가르침 말이다.

두산과 삼성의 5차전 승부만 해도 그야말로 아마추어도 쉽게 해결할 정도의 땅볼처리-긴장했는지 아니면 너무 방심했는지-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점이 치명적이었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에서도 작은 실수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인생의 패배가 큰 과오나 실수로 판가름되기보다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작은 실수가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영향력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삼성의 불굴의 투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화려한 타력의 가공할만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두산을 제친 삼성의 승부사 기질을 받쳐주는 저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의 열세에 눌려 삼성이 투지를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결코 승리의 면류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낙망하거나 절망한 끝에 쉽사리 포기하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일들이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 경우의 수인지 모르겠다. 절대 안 되는 일이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확률적으로 가망 없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에 기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자행하는 일만은 막아야겠다.

야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갑자기 야구광팬이라도 된 것처럼 이야기를 쏟아내서 쑥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결코 의미가 없거나 이유없이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이다.



15일부터 코리안 시리즈 왕좌를 두고 삼성과 SK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어떤 드라마로 펼쳐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7차례의 결전을 통해 또 어떤 신화들이 쏟아지게 될까 기대되기도 한다.

이렇게 나도 슬슬 진짜 야구팬이 되어가고 있는건가?


(2010.10.14)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플레이오프 4차전

플레이오프 4차전



어제 저녁 나는 민심의 바다에 빠져 있었다.

날개를 달고 급부상중인 잠실 야구 경기장에서였다. 급조된 스케줄이긴 했지만 삼성과 두산의 2010 마구마구 플레이오프 4차전 경기를 관람하면서 민심의 흐름을 살피는 호사를 누린 셈이다.

아침부터 직원이 안절부절 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오후 6시부터 열리는 삼성과 두산의 야구게임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직업상 젊은이들의 생각이 늘 궁금한 입장에서 재래시장이나 연극 공연장을 찾기도 하는 터라 아예 직원을 앞세워 야구경기가 열리는 잠실야구장으로 직행, 민정시찰(?)에 나서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4차전에 이르기까지 매 게임마다 1점차로 박빙의 승부를 주고받는 삼성과 두산의 리턴매치는 그 자체만으로 야구팬들의 관심 속에서 날개를 단 형국이었다.

처음에는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한 삼성의 일방적인 승리로 경기가 싱겁게 끝나는 가 싶었다. 그러나 이내 뚝심을 발휘한 두산의 기적이 연속 5점을 뽑아내면서 동점을 기록, 관중을 환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결국 팽팽한 접전 끝에 8:7로 삼성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경기 내용으로는 우열을 가르기가 쉽지 않았다.

한치 앞을 예측 할 수 없게 펼쳐지는 혈전의 드라마는 나로 하여금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경기에 빠져들게 했다. 역전과 재역전이 이어지는 경기 내내 심장의 안위가 걱정될 만큼 초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가을 야구의 진수를 맛보게 했다. 야구의 승패는 왜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 3볼까지 지켜봐야한다고 하는지 실감나게 했다.



공 하나마다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야구를 흔히 인생에 견주기도 한다. 각본없는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가능성과 우여곡절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동의되는 부분이 있다.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다. 저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을 향해 열정적으로 성원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경기관람은 삶의 활력을 제공하는 엔돌핀의 보고다.

내 눈에는 열광하는 관중들이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 모여 있거나 한산대첩을 앞두고 대치중인 병사들처럼 보인다. 예수를 따라다녔다는 수 천 군중의 환호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하이 히틀러!'를 외치던 독일 병사들의 비명같은 구호가 연상되기도 하고, 아고라에 모인 아테네 시민들의 열광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들이 그릇된 결정의 패각투표로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내쫓았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이 시대 무엇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가를 생각하도록 단초를 던지고 있다.



야구장에는 선수들의 몸동작을 비롯해 경기 내용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관중이 넘친다.

그런 모습을 통해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할 대상에 목말라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 3S 정책이 있었다.

3S는 스포츠(Sports), 섹스(Sex), 스크린(Screen)의 첫글자를 딴 통칭으로 제5공화국 당시 국민적 관심을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돌려 반정부 움직임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한 정책이라고들 한다. 그 중 스포츠는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을 겪게 될 때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위정자들이 단골로 찾던 메뉴였다. 문제는 3S의 긍극적인 성과가 희망으로 작용하기 보다 정권의 치부를 가리는 가림막으로 활용된다는 데 있었다. 위정자의 음모로 국민적 열광거리의 잘못된 선택이 국민 우민화의 도구로 활용됐던 암울한 시절의 기억이다.



대중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일이야말로 시대를 앞서 나가는 지도자의 역할이고 당면과제가 아닐까 싶다. 민족과 역사 앞에 가치있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만한 실체로 말이다.

최소한 시대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일시적인 이벤트로 국민여론을 호도하려는 시도 따위는 처음부터 집어 던져야 한다. 국민을 선도하는 혜안은 지도자의 기본 덕목임을 명심할 일이다.

치어리더들의 감각적인 몸짓을 향한 열광은 위험 할 수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서, 주와 객이 전도 된다면 말이다.

미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환각제처럼 무모한 거래가 되기 십상이다.



정말로 제대로 된 열광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찾아나서야겠다는 것.

엊저녁 야구장을 나서면서 건져올린 나의 결론이다.



(2010. 10. 12)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1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10,10,10,10,10,10,10

10,10,10,10,10,10,10



2010년 10월 10일.

이 날은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임산부의 날이라고 한다(나는 국회의원 시절 참석했던 중국의 쌍십절 행사로만 기억 하고 있었다).

나도 몰랐는데 며칠 전 이 기념일 제정을 주도했던 안명옥 전의원의 강연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안 전의원은 doctor amo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고 산부인과 전문의, 대학 교수로 활동 하시는 분이다)

안 전의원에 의하면 2010년 10월 10일(바로 오늘)은 10이라는 특정 숫자가 세 번 겹치는 특별한 날이다. 백년에 한번인 확률로 볼 때 우리 생애의 유일하게 맞이하는 기회의 순간이기도 하다.



2010년 10월 10일 10시 10분 10초 10.

그 시각에 (정확히 말하자면 10이 7개 겹치는) 나는 일곱 사나이의 일원이 되어 도봉산 백운대에 있었다. 무슨 황야의 7인이나 된 것처럼 폼(?)을 잡고 등산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내가 오르는 산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백년 만에 한번인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자는 의미의 회합이었다.

산을 오르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우리를 스쳐가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많은 일과가 있었는데 그 역시 돌이킬 수 없는 내 생의 조각들이라고 생각하니 특정일만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순간순간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돌아보니 내 자신 일반적인 사고체계와 참 많이 다른 독특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테면 남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심하고 반대로 남들에게 중요하지 않는 부분은 챙겨드는 경향이 그것이다.

물론 적당히 배합하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감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남들이 아무리 쉽게 동조를 해도 유독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엉뚱한 기질은 충분히 문제가 였다.

그 때문에 꽤 여러번 곤경에 처해지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까지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경우, 왜 왼쪽은 왼쪽이고 오른 쪽은 오른쪽이어야 하는 지 반복된 의문 때문에 선생님께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는 애국가 가사에 대해서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문제제기로 부모님을 괴롭혔던 전력이 있다.

이런 엉뚱함은 중고등학교 때에도 이어졌는데 영어시간에는 영어를 말하는데 왜 문법이 필요하냐고 억지를 부리거나 미술 선생님께는 피카소의 그림이 어째서 걸작이냐고 따지는 질문으로 튀는 문제학생이 나였다.

심지어 군대에서는 왼손 오른손을 혼동해서 난감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궁여지책으로 상처가 있는 손을 왼손으로 입력하는 식으로 좌향좌, 우향우를 겨우 구분했지만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뭐든 이해가 안되면 용납이 되지 않았던 독특한 기질이 빚어낸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고체계는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세상을 살아오면서 양보와 타협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통해 무뎌질 수도 있으련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괴팍스러움(대부분 숨기면서 혼자 삭히는 선에 그치기 마련이지만)이 여전한 걸 보면 천성인 가 보다.

명확하기보다 교묘한 혼합으로 대충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유일한 이 순간과 내 독특한 사고체계의 절묘한 타이밍은 거의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살얼음판을 딛는 기분으로 언제 폭발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최연희 부부의 동반자살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다. 갈수록 포악해지는 사회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분석과 이해가 가능한 폭넓은 공감능력 또한 내가 소유하고 있는 강점이아닐까 싶다.



오늘의 블로그는 이쯤에서 마치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기록으로 여러분에게는 암호문처럼 남겨두고 싶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간은 유일한 시간이고 독특성에도 불구하고 홍문종의 삶이 나름대로는 하나하나 치밀하고 심혈을 기울인 정성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아직 완성품이 되지 않았으니 마음에 안 들고 이해가 안가더라도 넓고 큰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격려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2010. 10. 11)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7일 목요일

홍문종생각 - 부실국감

부실국감



국정감사가 시작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정치권을 바라보는 여론의 눈초리가 따갑다.

해마다 부실 국감에 대한 우려는 국감 시즌이면 도마 위에 오르는 단골 메뉴다.

그러나 같은 문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니 큰일이다. 실제로 고성과 호통이 난무한 국감현장엔 정책 전반을 검증하려는 의지가 실종된 지 오래다. 여야 간 말싸움과 기싸움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장이 제 기능을 할리 만무다. 불성실과 구태의 반복이 여전한 국감 현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낯 뜨거운 자화자찬으로 부실 국감을 덮으려는 꼼수로 일관할 뿐이었다. 속보이는 대응으로 매를 부르는 화를 자초한 셈이다.



나 역시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으로서 부실국감의 책임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 부담감이 있는 만큼 부실국감 대책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고민을 많이 해 왔다.

무엇보다도 ‘상시국감의 정례화’가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방대한 국감 자료를 제대로 체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정황이다. 부실국감은 예정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측면에서 국감의 상시화야말로 부실국감을 막는 좋은 처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의 전문성 확보도 관건이다.

상임위원회 변경이 잦은 우리 국회의 현실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소속 상임위의 잦은 변경이 국회의원들의 전문성 약화로 이어지고 부실국감을 초래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상임위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인데 정부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이 충족될 리 있겠는가.

내 경우만 해도 현역시절, 소속 상임위가 교육위에서 행자위로 또 환노위 등으로 계속 옮겨지다 보니 공무원 그룹의 전문성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국회의 경우 6선의 조순형 의원이 ‘법사위 전문가’로 활약을 펼치고 계시지만 대부분 전문성이 미흡한 상황이다. 자기 전공에 맞는 상임위가 한번 정해지면 내내 같은 상임위에서 활약하고 있는 미국 의원들에 비하면 미약한 여건임에 틀림없다.

정부기관의 전문성을 능가하지 못하면 대의기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국회의원에게 ‘만능’보다는 ‘전문적’ 자질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회의원의 노력이 더 없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보스나 당리당략에 따른 전략 차원으로 국감에 나서는 행위가 근절돼야겠다. 간혹 국회의원들이 국감현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언동이나 해프닝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 공천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가 깔려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회에서 난동을 부려도 당을 위하거나 보스를 위한 거라면 거부감 없이 용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에 따라 이처럼 어이없는 과잉충성이 당 공천 보장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니 부끄럽고 서글픈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방지하려면 선출직의 후보 공천이 철저한 상향식 절차로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주민들이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후보를 선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후보 공천에 정당의 입김이 약화된다면 국회의원들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국감에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실 국감을 막기 위해 덧붙일 게 있다면 전문위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조력 그룹을 공동으로 확충하는 방안이다.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도 반복되는 부실국감을 조장하는 요인이다. 또한 국감의 증인채택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정치적인 목적이 앞선다면 결국 국회위상만 떨어뜨리는 악재가 되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텅 빈 증인석이 신청 당사자인 의원은 물론 국회의 권위에 도움이 될 리 없다. 사안에 따라 비공개 방식 등으로 증인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럴 경우 국회 위상은 물론 효율적인 국감진행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있다.

해마다 부실국감 비난이 이어지고 이에 따른 대안 제시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은 이 마저도 당리당략에 따른 여야 정쟁의 소재로 전락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권의 개과천선이 없는 한 부실국감의 근절은 참으로 요원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간 (부실국감)공해 제거를 위해 온 국민이 나서게 될 지 모른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10. 10.8)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6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명품 인생

명품 인생



영화인 신영균씨가 500억원에 달하는 사재를 쾌척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고 부자인 삼성 이건희 회장이나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경우 10조원을 육박하는 재산가라는데 실질적으로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500억 원은 국회의원 세비를 한 푼도 안 쓰고 550년을 저축하면 모을 수 있는 액수라니 그가 얼마나 큰돈을 세상에 내놨는지 감이 온다.

신씨의 미담을 더 빛내는 건 그의 가족들이었다.

가장의 거액기부 결정을 자랑스러워하며 격려하는 가족들로 인해 인간 신영균을 더 깊이있게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연배는 다르지만 신영균씨와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다.

국회에서 같이 활동할 당시 지근거리에서 그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아들인 신언식 사장과는 젊은 시절 꽤 오랫동안 같은 모임에서 활동했었다. 선이 굵고 머리가 명석해서 사업가적인 자질이 뛰어난 친구였다)

그 때도 그는 자기 삶을 철저히 관리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자칫하면 허장성세로 빠지기 쉬운 환경이었음에도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놀라웠다. 배우로도 정치인으로도 예총회장으로도 각각의 역할에 손색없이 최선을 다하는 ‘완벽남’이었다.

그의 그런 처세는 영화배우로 더 성공적이었지만 정치권에 와서 이미지를 망가뜨렸던 다른 배우 출신 정치인들과 대비돼 더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큰 너털웃음으로 주위를 넉넉하게 하던 그는 정치선배로서도 언제나 후하고 사려깊어서 인기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 당시 보조를 맞춘 적도 있는데 신사적인 매너로 늘 언행에 신중을 기하며 자세를 흩트리지 않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향 싼 종이가 향 내음을 전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행동은 그 사람의 인격적 중후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일시적 꾸밈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명품의 품격 같은 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영균씨의 500억 기부 결정은 그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그의 ‘명품 인성’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어려운 세대를 지나온 사람이기에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누구의 간섭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내 자신 수혜 당사자라도 된 것처럼 기쁘고 통쾌한 마음이다.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풍토 속에서 신영균씨 미담은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희망의 조짐에 단비를 뿌렸다.

그의 이번 기부가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착에 교두보가 되고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하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신영균씨처럼 명품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출몰하기 바란다.

(2010. 10. 6)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5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그들

그들


대한민국 정치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JP는 정치를 虛業이라고 했다.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현실 정치에서 비켜선 노정객의 총평이니만큼 무게가 실리는 듯하다. 유난히 부침이 심한 정치판에서 그동안 명멸해 간 숱한 인재들을 돌이켜 보더라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혹자는 또 정치를 마약 같다고도 했다.

공감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쉽사리 연을 끊지 못하고 평생을 정치에 저당돼 살아가는 경우는 흔하다.

정치의 독한 중독성을 보여주는 일단이라 할 것이다.



아침 신문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던 민주당 전당대회 소식이 정치기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대표로 선택하고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났다.

이번 민주당의 선택은 과도기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이번 민주당 전대에서 누구도 완벽하게 승리하거나 패배하지 않았다. 또한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에서 차선이 최선이 될 가능성과 나중에 최선의 재목이 될 잠룡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생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을 새롭게 이끌 새 지도부의 면면이 소개돼 있었는데 그 중 특별히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천정배 이 네 정치인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민주당의 새로운 수장이 된 손학규 대표, 축하하고 그의 정치적 미래가 순탄하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민주당의 손학규 선택은 탁월했다는 생각이다. 한나라당을 잘 알고 한나라당을 이해하는 사람이 민주당식 사고를 잘 접목한다면(사과나무에 감나무를 접목하듯) 보다 비전있는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

한나라당에 같이 있을 때부터 뭔가 한나라당에 어울리지 않아 이단아 같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은 한나라당 보다는 민주당과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민주당 일각에서 그의 출신성분을 문제 삼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당적 이동이 그의 정치적 진로에 아무런 걸림돌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누가 봐도 뻔한 정략적인 정치 공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몇 번이나 당적을 바꿨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당적이동 이력을 내세워 그의 정치일정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정동영 전장관의 정치적 강점은 친화력이다. 첫 만남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정 전장관 만의 특화된 정치적 우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도 면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TV 앵커 출신의 이점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미남이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는 확실히 많은 이들에게 한꺼번에 어필될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는 천혜의 호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역 의원 시절, 의원 연찬회 장소에서 그의 낙서를 우연히 접할 수 있었는데 나름대로 간략하게 분석한 메모 내용(약간 시니컬한 코멘트 위주로 적힌)을 보고 단순히 의원직으로 만족하지 않을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저력은 기존 질서에 약간 시니컬하면서도 감각적인데 있지 않나 싶다. 예리한 분석력을 바탕으로 한 그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면 정치적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세균 전대표는 나와 대학 동문이다. 학교 다닐 때 학생회 간부로 함께 한 인연도 있다.

그가 생각보다는 과도기 민주당을 잘 이끌었다는 생각이다. 그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 낸 대표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간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에게 시련과 역경을 통해 좀 더 강한 정치적 기질이 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앞으로의 정치 행로에 이 부분을 채울 수 있다면 나이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충분히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누구나 이 시대 텔레반으로 인정하는 천정배 전대표.

그의 강직함은 물론 강점이다. 그러나 그로인해 그에게 덧입혀진 강성 이미지는 그의 정치 일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약간은 좀 더 유연하고 복합적인 사고체제의 훈련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순화 작업이 선행되었더라면 바람직한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못 말리는 나의 오지랖이 나와 무관한 민주당 전당대회를 언급하도록 충돌질한 탓에 허공에 편지 쓰듯 몇 자 적었으니 과례였다면 용서해주길 바란다. (나머지 분들은 내가 많이 알지 못하거나 뭐라고 코멘트하기가 부적절해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비전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성패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기회의 유무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시대를 읽을 수 있는지 여부와 그 시대를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리더십을 어떤 식으로 자리매김하느냐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정치의 최종 판단이 허업이라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든 천형의 업보로 받아들여 수긍하는 것으로 매듭짓든 어차피 내딛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발전이 우리 정치 수준의 업그레이드는 물론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2010. 10. 5)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4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버선목도 아니고

버선목도 아니고



15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당시 학력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다.

스탠포드 박사 수료와 하버드 석박사로 기재된 나의 학력이 허위라고 상대 후보가 선관위에 제소를 한 것이다. 선거 일주일을 남겨두고 벌어진 일이라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열 일 제쳐두고 선관위에 불려나가 일일히 해명을 해야했는데 속내를 버선목처럼 까 보일 수도 없어서 답답했다. 해명이 안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각 투표소마다 ‘허위학력 기재자’로 방이 붙을 판이어서 바쁘다고 무시할 상황이 아니었다.

촌각을 다투는 와중에 이를 해명하느라 지체되는 시간이 아까워 애를 태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는 미국대학 시스템에 문외한이었던 상대후보의 무지로 인한 해프닝이었다.

나는 하버드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난 뒤 스탠포드에서 박사학위 전 과정을 이수했으나 논문을 제출하지 못해서 수료에 그쳤다. (이는 자동 석사 학위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스탠포드에서의 학력은 ‘석사 및 박사학위 수료’가 맞다) 그리고 이후 하버드로 옮겨가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그러나 보니 나의 경우 석사학위는 하버드 행정대학원에, 박사학위는 스탠포드 교육대학원에 각각 적을 두게 되는 특이한 케이스가 됐다. 하버드에서는 석사학위를, 스탠포드에서는 박사학위 수료증명서를, 다시 박사학위는 하바드에서 밖에 뗄 수 없었으니 이 복잡해 보이는 학력이 선거 기간 중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사람들에게 호재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스탠포드 학력 시비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가수 타블로 사건을 접하니 그 때 일이 절로 떠오른다.

타블로와 그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벌이고 있는 갑론을박도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타블로에 대해 사전 지식이 많은 건 아니다. 다만 이번 사건 정도가 타블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스탠포드 영문학 석사를 입증하는 성적증명서를 비롯한 각종 증빙자료가 제출된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블로의 학력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정아 사건 이후 허위학력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지만 타블로의 경우는 지나치다. ‘마녀사냥’이 따로 없다. 급기야 '타진요'라는 까페까지 등장해 집단으로 타블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으로까지 진전된 형국이다



타블로는 왜 이렇게 집요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 사회를 에워싸고 있는 학벌만능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학벌’로 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간 서열이 존재하고 출신대학이 사회적 지위를 갖게 하는데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탠포드라는 미국 아이비 리그 대학 출신의 인기가수에 대한 대중의 뒤틀린 관심이 무리수를 둔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가 만약 스탠포드가 아닌 평범한 대학 출신이었다면 지금같은 사회적 파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배경이 타블로의 가수 인생에 막대한 플러스 알파를 부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용납하고 싶지 않은 '반감'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학벌은 한 개인이 살아온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평가할 만큼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오로지 학력만이 인생 최고 가치라며 생의 전부를 ‘올인’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진정한 삶의 과정을 맛보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여러 번 강조한 바 있지만 진짜 실력이 인정받는 실력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 대학 졸업장에 더해지는 유무형의 플러스 알파를 최소화 할 수 있어야겠다.


특히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특권층 자녀들의 특혜 취업 시비도 이참에 근절시켜야 하겠다. 취직 뿐 아니라 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서 혜택을 누려왔던 그들의 도덕 불감증에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국내 유수대학 입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경제적 교육적 상대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 자료 역시 위기에 처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정한 사회는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연고주의에 기대거나 조장하는 사람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건실한 사회적 풍토조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그러러면 불편법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람들이 몰염치했던 행각을 고하고 사죄를 구하는 철저한 자기 반성부터 선행돼야겠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명문대 출신이라고 속인 사기꾼에게 여성들은 결혼하자고 몰려들고 학부모들은 자식들 과외 청탁하려 몰려들고 중매쟁이들은 중매서겠다고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기사를 보고 입맛이 썼던 기억이 난다.

명문대생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쓰고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어리석은 군상들의 모습을 한두번 보는 게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타블로 학력시비는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 비뚤어진 대중의 가치관이 초래한 후유증처럼 여겨져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사회적 에너지가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어야겠다.

진짜 실력이 인정받는 참된 공정이 뿌리내리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모으자.


(2010.10.4)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3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최고가 된다는 건

최고가 된다는 건



어제 박찬호 선수가 새로운 전설을 썼다.

메이저리그 데뷔 17년 만에 개인 통산 124승을 거둬 123승을 기록한 일본의 야구 영웅 노모 히데오 선수를 제치고 아시아 최고의 투수로 등극한 것이다.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운 지 2주 만이다.

박찬호 스스로도 얘기했듯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기록은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7년 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개인이 만들어 낸, 아시아 최고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특별하고 대견스러운’ 성과로 대접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세계에서 야구를 잘한다는 사람이 모인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체형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운동으로 세운 기록이다.

박찬호 개인에게도 숱한 부상과 마이너리그로 떨어지는 수모 등의 역경을 극복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감회와 의미의 기록이 될 것이다.


오늘, 박찬호가 받는 찬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코리언 특급’으로서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인 뉴욕 양키스 구단에 스카웃될 때만 해도 그의 장밋빛 미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의 야구 영웅 박찬호가 팀에서 방출되는 수모를 겪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속된 부진으로 좌절의 순간에 봉착하게 된다. 이대로 야구인생을 끝내게 되는가 할 정도의 위기 국면이었다. 그리고 다시 최약팀 피츠버그로 이적하는 기사회생을 통해 급기야 아시아 최다승 투수로서 정상에 우뚝 서는 쾌거의 주인공으로 ‘박찬호의 성공 신화’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까지의 내가 만든 것이다.

내 인생에 불행은 없었다."

박찬호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긴 말인데 공감할 수 있는 울림을 준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의미두기야 말로 시련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리고 묵묵히 자신이 세워놓은 삶의 이정표를 견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좋은 피칭을 위해 얼마나 연습하고 노력했는지에 더 큰 의미를 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도전’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는다는 그의 가치관과 상통하는 부분인 것 같다.

좌절하지 않고 실패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박찬호의 성공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노하우를 전수 받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누군가의 신기록은 또 다른 누군가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좀 더 크고 넓은 미래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희망의 전초전으로서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박찬호의 이번 124승은 지난 98년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등 2개의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면서 한국골프의 지평을 연 박세리나 지난 2009년 미국 남자 프로골프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쉽’에서 골프황제 타이거우즈의 신화를 꺾고 바람의 아들이 된 양용은의 성과처럼 우리의 새로운 지표가 됐다. 우리로 하여금 또 다시 정복해야 할 목표물로 향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공한 것이다.

그들이 세운 금자탑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고 역경은 성공의 아버지일 수 있음을 입증한 살아있는 표본으로 손색이 없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어려운 역경을 뚫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기여도가 크다고 할 것이다.


최고가 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최고가 되기 위한 목표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삶의 이정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 충분히 족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최고의 삶이 될 수 있다.

(2010. 10.3)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1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국무총리 청문회

국무총리 청문회



예상했던 대로 국무총리 인사 청문회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유례없이 ‘허술하고 김빠진’ 청문회라는 낙인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총리 인준안도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최초의 전남출신 총리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총리 선출을 바라보는 민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다. 신임 총리의 ‘운 좋은 타이밍’이 거론되기도 한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개인적 문제점이 명확하게 해명되지 않은 상황도 ‘구설’을 키우는 한 요인이 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황식 신임 총리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드린다.

다만 신임총리가 순조롭게 진행된 총리 인선과정이 스스로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할까봐 우려된다.

총리 자신의 자질보다는 여러 정황과 주변 여건이 앞서의 김태호 후보자 보다 유리하게 작용된 국면이 많았음을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를 잃지 말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특히 청문회 당시 ‘대통령의 단점’을 묻는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지나친 대통령의 자신감이 장점이자 문제점이라고 했던 총리 답변은 불편했다. 총리의 평소 가치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선 교육현장에 있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나이가 들어가고 직책이 올라갈수록 업무에 대해 점점 더 겁이 많아지고 결정에 앞서 심사숙고하게 되는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하물며 국정 운영과정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런 측면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의 지나친 자신감을 장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총리의 가치관이 내게 놀라움을 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물론 ‘자신감’의 순기능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걸 안다.

그러나 자신감의 주체에 따른 구분은 반드시 있어야한다는 생각이다.

실직자나 재수생, 노인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의 자신감은 당사자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보약’이니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자신만만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대통령의 경우는 다르다.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그 영향력 때문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신중에 신중을 더한 판단력이 덕목으로 요구될 수 밖에 없다.


최근의 ‘양배추 김치’ 구설 건만 해도 대통령의 방심이 얼마나 크나큰 후폭풍을 야기하는지 직접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김치가 金치가 됐다니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식탁에 올리라고 한 대통령 발언의 본질은 '충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대통령은 민심의 공격을 자초하고 말았다.

상황에 대해 조금만 더 심사숙고했다면, 배추 값이나 양배추 값이나 똑같이 채소 파동을 겪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국민왕따가 되는 수모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직관이나 판단을 과신한 대통령의 지나친 자신감이 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놓친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나라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넣게 되는 위력을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어렵고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정자의 가치관은 그 파장이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아무리 많은 주의를 기울여도 부족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김황식 총리 후보자의 각성이 요구된다는 생각이다.

청문회 통과가 총리자질 인정이나 총리 자격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만큼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서 공의에 맞는 총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아보고 단도리하는 노력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얘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총리로서 권한과 책임을 충실히 다하는 실속있는 총리가 되고 싶습니다"

청문회 통과 직후 그가 언론 보도를 통해 남긴 대국민 약속들을 들여다보니 나의 이런 걱정들은 한낱 기우에 그치게 될 것 같다.

반드시 그리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0.10 .1)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