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내야 땅 볼

내야 땅 볼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는 저녁 약속 때문에 애시 당초 미련을 접은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야구 중계가 시작되자 함께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다.

이날의 5차전 역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앞서의 다른 경기들 못지않은 명승부로 야구사에 남을만한 역전의 드라마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치열한 타격전 위주로 펼쳐지는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경기 초반만 해도 5점을 앞선 두산의 승산이 점쳐지는 분위기였다. 삼성을 지지하는 팬들은 삼성의 패배를 예감하며 망연자실하는 모습이었고 승리를 기정사실화 한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다음 상대인 SK와의 코리언시리즈가 화제에 올랐다.

그러나 알다시피 1점 차의 역전승으로 코리언시리즈 진출 티켓을 쥔 팀은 삼성이었다.

치열한 혈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장 11회 말, 그것도 투아웃 상황에 터진 박석민의 끝내기 안타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얼결에 야구 경기장을 찾은 이후 부쩍 야구에 대한 관심이 커진 나를 보게 된다.

예전에 익숙했던 열기와 함께 선수들 이름이 하나하나 살아나오고 양 팀의 응원가가 귓전을 맴돌면서(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맴돈다) 다음 경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궁금증으로 다가오는 현상들이 그것이다.

일종의 스포츠 중독성이라고나 할까. 특정 자극에 익숙해지면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야구를 통해 경험하게 됐다. 아마도 술이나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야구 경기를 통해 얻은 건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인생의 교훈도 얻었다. 지극히 평범한 내야 땅볼 하나가 게임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삶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사소한 실수 하나가 인생을 패배시키는 결정타가 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가르침 말이다.

두산과 삼성의 5차전 승부만 해도 그야말로 아마추어도 쉽게 해결할 정도의 땅볼처리-긴장했는지 아니면 너무 방심했는지-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점이 치명적이었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에서도 작은 실수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인생의 패배가 큰 과오나 실수로 판가름되기보다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작은 실수가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영향력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삼성의 불굴의 투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화려한 타력의 가공할만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두산을 제친 삼성의 승부사 기질을 받쳐주는 저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의 열세에 눌려 삼성이 투지를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결코 승리의 면류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낙망하거나 절망한 끝에 쉽사리 포기하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일들이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 경우의 수인지 모르겠다. 절대 안 되는 일이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확률적으로 가망 없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에 기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자행하는 일만은 막아야겠다.

야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갑자기 야구광팬이라도 된 것처럼 이야기를 쏟아내서 쑥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결코 의미가 없거나 이유없이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이다.



15일부터 코리안 시리즈 왕좌를 두고 삼성과 SK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어떤 드라마로 펼쳐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7차례의 결전을 통해 또 어떤 신화들이 쏟아지게 될까 기대되기도 한다.

이렇게 나도 슬슬 진짜 야구팬이 되어가고 있는건가?


(2010.10.1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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