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7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못 말리는 DNA

못 말리는 DNA


최근 우리에게 썩 괜찮은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케이블 TV 오디션 프로그램(슈퍼스타K2)에서 우승을 거머쥔 25세 청년(이름이 ‘허각’)의 성공기가 그것이다. 가히 ‘허각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열화와 같은 환호가 연일 그를 향해 쏟아지며 장안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신장 163cm의 중졸 학력이 전부인 그가 상대적으로 월등한 조건을 갖춘 라이벌 ‘존박’을 가뿐히 제치고 정상에 오르면서 많은 이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놀라운 일이다.

너도 나도 잘난 스펙이 넘치는 이 시대, 노래 실력을 빼고는 모든 것이 평균 이하의 조건인 청년이 거둬들인 성공의 실체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중의 열광도 따지고 보면 그의 열악한 배경이 극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각이 슈퍼스타로 등극하는 과정은 지켜보던 많은 이들에게 대리만족의 기쁨을 줬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을 것으로 체념한 대중으로 하여금 ‘희망’을 체험토록 한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되는 분위기다.



5.16 이후 치러진 1963년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명문가를 배경으로 영국박사 학위를 소지했던 윤 전대통령은 빈농 출신의 군인이었던, 그것도 좌익으로 몰려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을 이기지 못했다.

절대적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이회창 전 총리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개인적 스펙에도 불구하고 두 번에 걸친 대권 도전에서 상고 출신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두 야당 후보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다.

직전 대선에서도 정동영 후보는 여당 후보로서 결코 뒤지지 않는 배경을 가지고서도 비주류였던 이명박 당시 야당 후보에 패하고 분루를 삼켜야 했다.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살피다 보면 시대는 달라도 유권자의 선택에 묘한 공통점이 작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강자보다는 약자에 대해 더 후해지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야구 경기만 해도 특별한 연고가 없다면 대부분 약한 팀을 응원하게 되는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중의 선택은 참으로 복잡미묘하다.

모든 것에 능한 강자가 선호될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약자를 선택하게 되는 결과가 의외로 많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측은지심을 기대하는 건 위험하다. 동정과 연민만으로 대중의 마음을 얻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만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할수 있다. 실제로 겉으로 드러난 실체보다 저마다 뚫고 온 역경의 자취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와 사람을 지배하는 건 사랑과 덕이 아니고 힘과 권력’이라고 했다.

가끔 착각하기 쉬운데 ‘실력가 보다는 강한 자가 이긴다’는 이 메시지가 정치판 현실에 적용될 때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강한 자가 이긴다’는 ‘강해보이는 자가 이긴다’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누가 더 강한 지 판단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중이 약자에 기울어지기 쉽다고 한 앞서의 주장과 배치된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허각이,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순한 ‘약자’ 이미지에 그쳤다면 그들의 인생에 슈퍼스타라는, 대통령이라는 ‘성과물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결론을 말한다면 그들은 결코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승리는 연민이 느껴질 만큼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역경을 딛고 ‘입지’를 구축한 강한 외형이 어필됐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정치를 하고자 나선 사람들이 (유권자 선택 기준으로)반드시 명심해야 할 아이러니한 대목이기도 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탄생의 떠들썩함에서조차 정치적 역학구도를 갖다 붙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아무래도 내 안에는 아무도 못 말리는 '정치 DNA'가 들어있음에 틀림없다.



(2010.10.27)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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