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4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버선목도 아니고

버선목도 아니고



15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당시 학력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다.

스탠포드 박사 수료와 하버드 석박사로 기재된 나의 학력이 허위라고 상대 후보가 선관위에 제소를 한 것이다. 선거 일주일을 남겨두고 벌어진 일이라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열 일 제쳐두고 선관위에 불려나가 일일히 해명을 해야했는데 속내를 버선목처럼 까 보일 수도 없어서 답답했다. 해명이 안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각 투표소마다 ‘허위학력 기재자’로 방이 붙을 판이어서 바쁘다고 무시할 상황이 아니었다.

촌각을 다투는 와중에 이를 해명하느라 지체되는 시간이 아까워 애를 태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는 미국대학 시스템에 문외한이었던 상대후보의 무지로 인한 해프닝이었다.

나는 하버드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난 뒤 스탠포드에서 박사학위 전 과정을 이수했으나 논문을 제출하지 못해서 수료에 그쳤다. (이는 자동 석사 학위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스탠포드에서의 학력은 ‘석사 및 박사학위 수료’가 맞다) 그리고 이후 하버드로 옮겨가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그러나 보니 나의 경우 석사학위는 하버드 행정대학원에, 박사학위는 스탠포드 교육대학원에 각각 적을 두게 되는 특이한 케이스가 됐다. 하버드에서는 석사학위를, 스탠포드에서는 박사학위 수료증명서를, 다시 박사학위는 하바드에서 밖에 뗄 수 없었으니 이 복잡해 보이는 학력이 선거 기간 중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사람들에게 호재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스탠포드 학력 시비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가수 타블로 사건을 접하니 그 때 일이 절로 떠오른다.

타블로와 그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벌이고 있는 갑론을박도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타블로에 대해 사전 지식이 많은 건 아니다. 다만 이번 사건 정도가 타블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스탠포드 영문학 석사를 입증하는 성적증명서를 비롯한 각종 증빙자료가 제출된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블로의 학력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정아 사건 이후 허위학력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지만 타블로의 경우는 지나치다. ‘마녀사냥’이 따로 없다. 급기야 '타진요'라는 까페까지 등장해 집단으로 타블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으로까지 진전된 형국이다



타블로는 왜 이렇게 집요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 사회를 에워싸고 있는 학벌만능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학벌’로 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간 서열이 존재하고 출신대학이 사회적 지위를 갖게 하는데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탠포드라는 미국 아이비 리그 대학 출신의 인기가수에 대한 대중의 뒤틀린 관심이 무리수를 둔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가 만약 스탠포드가 아닌 평범한 대학 출신이었다면 지금같은 사회적 파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배경이 타블로의 가수 인생에 막대한 플러스 알파를 부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용납하고 싶지 않은 '반감'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학벌은 한 개인이 살아온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평가할 만큼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오로지 학력만이 인생 최고 가치라며 생의 전부를 ‘올인’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진정한 삶의 과정을 맛보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여러 번 강조한 바 있지만 진짜 실력이 인정받는 실력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 대학 졸업장에 더해지는 유무형의 플러스 알파를 최소화 할 수 있어야겠다.


특히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특권층 자녀들의 특혜 취업 시비도 이참에 근절시켜야 하겠다. 취직 뿐 아니라 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서 혜택을 누려왔던 그들의 도덕 불감증에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국내 유수대학 입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경제적 교육적 상대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 자료 역시 위기에 처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정한 사회는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연고주의에 기대거나 조장하는 사람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건실한 사회적 풍토조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그러러면 불편법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람들이 몰염치했던 행각을 고하고 사죄를 구하는 철저한 자기 반성부터 선행돼야겠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명문대 출신이라고 속인 사기꾼에게 여성들은 결혼하자고 몰려들고 학부모들은 자식들 과외 청탁하려 몰려들고 중매쟁이들은 중매서겠다고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기사를 보고 입맛이 썼던 기억이 난다.

명문대생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쓰고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어리석은 군상들의 모습을 한두번 보는 게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타블로 학력시비는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 비뚤어진 대중의 가치관이 초래한 후유증처럼 여겨져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사회적 에너지가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어야겠다.

진짜 실력이 인정받는 참된 공정이 뿌리내리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모으자.


(2010.10.4)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