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0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진정한 승리는?

진정한 승리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선거현장엔 늘 엇갈리는 당락의 희비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공천이 됐건 본선이 됐건, 시의원을 뽑는 선거가 됐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됐건 절차나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나타나는 ‘현상’은 변함이 없다.

필연적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낙선(낙천)은 매번 당사자들의 적응이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낙선 인사가 느끼는 충격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지금껏 여러 선거 과정(내 선거는 물론 정치 선배인 가친의 선거부터 학급의 반장선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을 통해 만만치 않은 내공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막상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한참을 힘들어 했던 경험이 있다. 좌절, 허탈, 모멸,,,형언할 수 없는 각종 고통들이 급기야 대인공포증까지 몰고 쳐들어왔던 당시의 상황은 ‘두려움’으로 각인돼 있다. 참기도 힘들고 지우기도 어려웠던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낙선한 인사에게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선인의 식견을 위로삼아 전하고 싶다.

한 때의 불운이 한 인간의 생애를 규정짓는 마침표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일시적인 패배자가 위대한 승리자가 되어 역사의 중앙무대로 돌아오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링컨이나 레이건,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한 두 번의 일시적 패배에 좌절하고 포기했다면 그들의 오늘 날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역사의 승자로 기록되는 기회가 주어졌겠는가.

승자와 패자의 위치가 반드시 당대의 실적대로 확정되는 게 아닌 사례를 역사의 자취에서도 흔히 만나게 된다. 일시적 패배가 영구적인 승리로 굳혀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사상누각의 ‘3일천하’로도 일시적 승리를 누렸던 사례를 통해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필리핀을 오래 통치해 왔던 마르코스는 현실에서는 승자였지만 역사는 그를 패자로 기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이기붕, 미국의 닉슨 등 결국 일시적 승리자 였을 뿐 영구한 승자의 반열에 들지 못했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당대에는 패배자로 기록됐지만 훗날 진정한 승자로 존경받는 인물도 허다하다. 심복 부르투스에 의해 비명에 간 시저나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백범 김구 선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대통령 출마조차 해보지 못하고 비명에 간 김구 선생의 경우, 그 어떤 정치인보다 역사의 당당한 승자로 추앙받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미국의 카터 역시 재임기에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가 승자의 반열에 들어있다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확실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행동하는 양심의 기억으로 남는 진실이 더 오랜 생명력으로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다.



낙선은 인생의 종지부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일시적 패배를 재충전과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사람만이 자기인생과 역사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승자는 승자대로 지금 승자의 위치에 있더라도 맑은 날 우산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앞으로 정치인생에서 예상되는 난관과 고비에 대비하는 성숙함을 갖출 것을 조언하고 싶다. 그래야 진정한 승자의 위치를 구축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번 지방 선거에서 공천을 받고 당선이 된 사람 중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되어있거나 오히려 당시 선거에서 실패한 사람들보다 못한 처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반면교사로 명심해야 한다.



천안함 사태로 전 국민이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이 때 한가하게 선거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태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지는 걸 보면 선거의 계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2010. 4.3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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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죽음의 문턱

죽음의 문턱



대여섯 살 무렵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다.

독감인지 감기인지에 된통 걸려 죽을 것처럼 심하게 아팠던 상황을 말하는 거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어린 내가 “엄마,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까지 했다고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가끔 회상하신다.

나 역시 그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세상의 와중에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내던져진 막막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눈 앞을 어지럽히는 별들의 군무(?)와 제멋대로 오르내리는 심장박동 그리고 깨질 듯 머리를 조여대는 두통 때문에 이대로 쓰러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순간들이 어린 나를 압박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기세를 꺾지 않는 아픔에 겁을 먹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다 막바지 쯤 목울대를 성가시게 하던 가래가 기침과 함께 튀어나와서야 그제서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세상이 갑자기 평온하고 고요히 느껴지던 그 때의 감회가 지금도 기억난다.

이후로도 몇 번쯤 심하게 앓아눕기는 했지만 그 때 만큼 확실히 죽음을 몸으로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하루 온 나절을 앓아 누웠다.

일주일 전부터 온 몸이 쑤시고 약간의 열과 한기 등으로 몸의 이상을 감지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바쁜 스케줄에 쫓겨 별거 아니겠거니 지나쳤던 게 화근이 됐다. 그리고 강제로 할당된 휴식을 이행하라는 처벌(?)이 내게 떨어졌다. 급기야 감당을 못해 링겔을 꼽고 자리에 드러눕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호되게 아프기는 했지만 무위의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세상사나 죽음의 문제 등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고민해 보는 계기를 얻게 됐으니 말이다.

'내가 죽으면 누가 가장 섭섭해 할까? 가슴 아파할까? 내게 주어진 삶이 짧은 시간 밖에 없다면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까? 하늘에 가서 심판관을 만난다면 나는 무슨 포토폴리오로 내 생을 설명하게 될까? '

그렇게 머리 속을 오가는 갖가지 상념에 젖어 있다가 잠이 들었다. 깊은 수면에 빠졌는데 머릿 속에 담았던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인 영상의 형태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천사와 악마가 출몰하는 천당과 지옥이 양쪽 스크린에서 동시상영되기도 했다. 불마차와 아비규환의 채찍질과 월계관 등 수많은 영상들이 교차되는 꿈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다 왔구나...’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지난 밤에 비해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목에서 가래가 튀어나왔다. 덩달아 갑갑하던 목안이 자유를 얻었다. 살았구나 싶으면서 살긴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군살처럼 따라 붙었다.

인간의 출생과 사망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1일 24시간 동안 32만명이 태어나고 16만명이 유명을 달리한다고 한다. 매시간 7000명, 매분 120명, 매초 2명씩 세상을 등지게 된다고 한다.

그런 죽음의 행렬에 누구도 예외는 없다. 단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개인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영역에 속해 있을 뿐이다.

인간이 가장 진실해 지는 순간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죽음의 순간을 향한 항해일 수 밖에 없다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깨달음,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그래서 인생을 함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각성 등에서 얻어낸 부연 설명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죽음이 알려주는 가르침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이론의 여지가 낄 틈새조차 없다는 것이다.



1박 2일의 짧은 ‘와병’의 순간이 오히려 기회가 된 것 같다. 아직 감기가 완전히 장악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자문을 통해 내 인생을 중간점검 하는 계기를 얻은 것 같아 고맙기 조차 하다.

(2010 .4.2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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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6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선거에서 이기려면

선거에 이기려면



휴일 낮 결혼식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결혼식장인지 선거 운동장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군들이 하객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에 열심이더라는 전언이셨다. 결혼식장 입구에 도열(?)해 있던 후보들이 평소 안면이 있는 어머니를 보자 경쟁적으로 다가와 세상에 더 없이 반가운 표정으로 포옹까지 하던 상황도 설명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이 아니어도 치열한 선거전에 뛰어든 각 후보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 곳에 서 있었을지는 가히 짐작이 갔다. 나 역시 예전에 여러 번 경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분명 유권자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식장을 찾았을 것이다. 남의 결혼식장 입구에 진을 치고 눈총 따윈 아랑곳없이 자기 장사(?)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는 후보들의 처지가 문득 정치인의 ‘천형’처럼 느껴지는 건 지나친 감상일까?



공천과정이 끝남에 따라 이제는 본격적인 지방선거 모드로 접어드는 것 같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군들이 당선을 향해 저마다의 기량을 총동원하며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표 하나에 목마르고 절실한 그들의 눈빛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이기는 선거가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선거전.

경우에 따라 치명적인 상처로 막을 내리게 되는 치명적 독성을 감내할 각오가 없으면 덤벼들지도 말아야 할 비정한 전쟁터다.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어차피 당선으로 선택되는 인원은 정해져 있는 게임이기에 사투를 벌일 수 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걱정이 나로 하여금 경험자로서 조언을 들려주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재미를 많이 본 선거운동 노하우를 소개하겠다.

후보 자신의 강점과 취약점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이 의외로 선거전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끄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불교를 종교로 하는 후보의 경우, 교회에 가서 구태여 자신의 종교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드러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나 천주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를 지나치게 옹호하다 보면 (후보의 종교가 기독교일 경우) 기독교 계층의 적극적인 지지는 얻게 될지 몰라도 나머지 종교인들에게는 ‘안티’ 정서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종교간의 대립이 심해지는 경우에는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 부터 '정말 우리 신도 맞느냐'는 일갈을 당 할 수도 있다. 결국 자기의 텃밭으로 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될 수 도 있으니 조심 할 수 밖에 없다.

같은 강점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강조할 때와 대충 처리할 시기를 적절하게 맞출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취약한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강점으로 바뀔 수도 있고 더 심한 약점으로 남을 수 있다.

만약에 지나친 가난이 걸림돌이 되는 후보라면 유세장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돈에 욕심을 내본 적이 없습니다. 옷 한 벌과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그 외에 시간은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는데 바쳐왔습니다”라고.

이런 식이라면 고아 출신이나 재벌 출신 등 그 어떤 상황의 약점이 있더라도 무리없이 유권자 설득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보 본인 뿐 아니라 상대방의 강점이나 약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선거전략도 있다.

상대 후보가 학벌이 좋고 똑똑하다면 유세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우리는 왜 A 후보처럼 좋은 환경에서 살지 못하고 좋은 학교에 갈 수 없는 걸까요? 과연 저렇게 좋은 조건을 가진 후보가 공부를 못하거나 배고픈 우리의 사정을 알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해 보자.

이 질문 하나만으로 상대 후보의 강점을 하루아침에 약점으로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까발리고 흉보고 비판하는 네거티브 전략보다 점잖게 그러면서도 촌철살인으로 상대의 문제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에 범죄경력이 있는 후보라면 이런 식으로 대중 연설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7.80년대 어려운 질곡의 세상을 살면서 범죄경력을 갖지 않고 산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 역시도 민주화를 외치다 투옥되고 환경문제를 논하다 벌금을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세금을 안냈다고 벌금을 물거나 회사 운영을 잘못했다고 처벌된 적은 없지만 주차위반으로 벌금을 낸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군중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이해력도 중요한 관건이다. 단 이해의 출발점은 반드시 유권자 의식이 나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학교 졸업의 학력을 가진 50대 여성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를 기준으로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문장을 단순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단순한 문장을 구호로 만들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상에서 교회를 전도하는 사람들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를 반복적으로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찬가지로 후보자 역시 자기 이름이나 정당명, 기호 등을 하나의 단어로 연결해서 최대한 단순화 시킨 구호로 만들어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는 방법도 훌륭한 선거전략이 될 수 있다. 구호의 반복은 선거전에서 후보의 이미지 메이킹의 효과를 거두게 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구호는 키워드를 하나씩 정해서 키워드에 부합되는 단어를 활용하면 된다.



교회 장로를 선출하는 현장에서조차 이름을 들어봤거나 한번이라도 만났거나 커피 한잔이라도 나눴던 인연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게 기정사실이다. (그 어떤 선거전략도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직접적인 스킨십을 능가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뜻이다)

하물며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 현장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후보의 부지런한 발품이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선거전략이 될 수 있다. 유권자와 만나더라도 이왕이면 생산적인 만남이 될 수 있도록 머리를 써야 한다. 지역주민의 관심사를 파악해서 이에 대한 개인적인 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도 유권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전략이 될 것이다.

보너스로 하나 더.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고등학생 등을 만났을 때 선거권이 없다고 절대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반드시 정중하게 인사하고 이번 00직에 출마한 XX후보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구호 한두마디를 반드시 덧붙이도록 하라. 경험에 의하면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가 만난 후보자들에 대해 집에 계신 부모들에게 전달한다. 확인된 사실이다.



더 자세한 걸 듣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저를 찾아오시면 된다.

산전 수전 다 겪은 사람으로 기꺼이 한 수 가르쳐 드리겠다.
(2010.4.2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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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4일 토요일

홍문종생각-선거전략을 위한 조언 하나

선거전략을 위한 조언 하나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삶의 요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돈, 막강한 권력, 건강한 신체, 뛰어난 용모 등을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주요 조건으로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들 조건을 제치고 ‘원만한 인간관계’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첫 번째 조건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들이 모여 다섯 항목의 만족도 지표와 기쁨과 비참함 사이를 일곱단계로 구분한 기준표를 사용하여 행복의 본질을 측정한 결과치인 만큼 힘이 실리는 학문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태어날 때 부모와의 관계를 시작으로 형제자매, 친척, 이웃, 사회, 국가로 넓혀지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망과 그 속에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돼 있는 인간의 본질과 무관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국사회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고 있는 ‘꽌시’(關係) 문화 역시 원만한 인간관계의 가치를 인식시켜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꽌시는 '關係'의 중국식 발음으로 중국 사회에서 공존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일종의 ‘인맥’을 의미하며 개인의 영역과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로는 법률보다 우위를 점하는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실제로 중국인의 92.4%가 꽌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71. 7%가 문제해결과 이익도모에 꽌시를 활용한다는 통계치가 있다. 일단 ’꽌시‘가 성립되면 친척, 동향, 동창, 동료는 물론 심지어 동성(同姓)으로까지 인정되는 정도의 ’지위‘가 부여된다. ('꽌시‘에 대한 여러 측면의 평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극진한 배려와 진실을 기초로 해서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인간관계의 영향력이 가장 극명한 이해관계로 드러나는 건 아무래도 선거판이지 싶다.
각 정당의 지방선거 후보 공천작업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쟁 당사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꽌시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예외없이 ‘인간관계’의 역학이 작용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드는 생각이다. 공천이 정당 내부의 인간관계의 산물이었다면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본선에서는 지역 유권자와의 ‘인간관계’가 당락을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흔히들 정치판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동지도 없다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정치적 ‘동반자’가 되어 유권자 설득에 나서는 모습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가 됐건 지방선거가 됐건 선거 규모와 상관없이 예측불허의 이합집산식 ‘세규합’이 비일비재하다는 건 지나간 정치 현실을 통해 익히 경험한 바다.
선거철이 되면 또 다른 의미의 ‘인간 짝짓기’가 성행하는 것도 ‘인간관계’가 선거의 승패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아무리 장점이 많은 후보라도 많은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후보들이 촌각을 다투는 선거기간 동안 지역유권자와의 관계에 주력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선거전에 활용할 수 있는 인간관계 유형에 대해 관전자의 입장에서 그동안 정치경험을 녹여 한마디 거들어볼까 한다.

짝짓기의 유형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조합은 누가 뭐라고 해도 찰떡궁합 관계의 짝짓기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간의 신뢰가 결속력을 가속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선거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 될 수 있다.
여러 대상 중에서 가장 나은 파트너를 선택해서 이뤄지는 짝짓기도 있다. 이 경우 더 좋은 조건이나 상대가 생기면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점이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상대를 선택하는데 있어 과장된 평가나 착각이 최상의 선택을 방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민스러운 선택이 될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가 되고 적의 친구는 나의 적이 되거나 적의 적이 나의 친구가 되는 관계 설정도 선거판 짝짓기 유형 중 하나다. 가장 단순명료한 판단을 전제로 하는 이 유형을 주위에서 생각보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걸 보면 ‘관계등식’을 심각하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을 통해 일회성에 그친 단순한 동기 하나만으로도 오랫동안 끈끈한 결속력을 보이는 ‘관계’도 있다. 고등학교 때 그룹끼리 졸업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해 외톨이가 된 6,7명이 모여 사진을 찍었는데 그 때 사진을 함께 찍은 의미만으로 30년 세월이 지나도록 우정을 존속시키고 있는 경우를 봤다. 그 배경에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속성이 작용됐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나친 독자성으로 인해 어느 누구와 조합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유대를 맺고 함께 혹은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독자적인 변수로 존재할 수 있음의 확인인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 중 상당수가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상당부분 축약되긴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언급한 인간관계의 유형은 무슨 위대한 철학자나 사상가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기보다 내 일천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쓴)굳이 동기를 부연하자면 지금부터 고독한 레이스에 들어선 선거 출마자들에 대한 애정의 발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런 만큼 각 후보들에게 있어 이 인간관계의 정리가 -어느 유형을 자신의 선거전에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참고자료로 삼을 정도의 가치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생각해 보면 선거처럼 엉뚱하고 재미있는 과정이 속출되는 인간 행위는 별로 많지 않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도박보다 더 예측불가능하고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마약보다 더 흥미롭고 섹스보다 더 달콤한 인생훈련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선거에서의 최고의 선은 당선밖에 없다.
......
부디 건투를 빈다.

PS: 맨 처음 언급해야 하는데 사족처럼 밝히고 싶은 말이 있다.
인간관계의 유형에서 ‘이성’간의 조합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효율성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은 유보했다는 사실이다.
(2010. 4.2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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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2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세기의 결혼식

세기의 결혼식



세기의 결혼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다음 달 2일 결혼을 앞둔 장동건 고소영 커플의 결혼 준비에 쏠린 세간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른다. 신부가 입을 드레스나 신랑의 턱시도, 예물반지, 주례나 사회자는 물론 결혼식장과 신혼집 등에 이르는 시시콜콜한 사안 하나하나에까지 쏟아지는 팬들의 궁금증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팬들의 관심을 배려해서인지 신부 고소영의 혼전 임신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알리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다. 연예인들이 혼전 임신은 물론 결혼 소식까지 무조건 쉬쉬하며 감추기 바빴던 과거를 생각하면 ‘개벽’ 수준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스타들의 혼전 임신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장동건 고소영 커플 뿐 아니라 혼전임신은 어지간한 연예인 결혼 브리핑에 필수항목처럼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 심지어 혼전임신이 혼수 품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반인들의 혼전 인심에 대한 대중의 반응 역시 생각보다 매우 관대한 것 같다. 개방적인 사회적 흐름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관을 우리 세대와 동일시 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국회의원 주례를 금지하지 않았던 예전엔 다소 어린(?) 때부터 결혼식 주례로 불려 다닌 경험(지금까지 1000여 쌍 정도)이 있는 나로선 세태에 따라 변화하는 결혼 풍속이 유난히 크게 감지되는 편이다.

실제로 일정한 격식에 따라 진행되던 결혼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갈수록 사라지는 게 눈에 보인다. 격식보다는 결혼 당사자들의 창의적인 개성이 새로운 결혼 문화를 주도하는 현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단순한 노파심으로 일축될 정도가 아니라면 당사자들이 좀 더 진중하게 판단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보겠다.

우선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세밀한 사안까지 따지는 젊은 세대의 모습이 솔직히 낯설게 느껴진다. 특히 이혼을 전제로 재산 분할 사항까지 규정하는 모습은 영 적응이 안되는 부분이다. 준비성이란 점에서 긍정적일지 모르지만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결혼관에 익숙한 우리 부모 세대로선 결혼하면서 ‘이혼준비’(?)에 지나치게 철저한 대비로 임하는 것 같아 고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부부 일심동체를 강조하며 결혼을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던 기성세대의 결혼관과 상충되는 요즘 젊은이들의 새로운 결혼관이 걱정스럽다.

두 사람이 서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되 별도의 공간에서만 가족 공동체로서 동일시되는 개념을 적용하는 이중구조가 요즘 젊은 부부들이 추구하는 결혼생활의 특징이라면 말이다.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개인영역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혈연 등 특수 관계로 형성된 ‘가족의 끈끈한 개념’에서 얻을 수 있는 강점이 이기적 입장의 지나친 존중으로 인해 약해지는 것은 물론 자칫 결혼제도 자체가 일종의 계약에 의한 거래행위 정도로 전락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를 하게 된다.



혼전 관계에 대한 시각도 좀 더 진중한 분석이 요구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혼전임신 사실 공개에 대해 우리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등의 고리타분한 경직성으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타박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혼전 임신이 (결혼이나 육아 부분에 있어) 책임 질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된 상태라면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또 혼전 관계가 남녀 사이의 은밀함이 더 이상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풍토 속에서 상대방을 미리 알아본다는 관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 하려한다.

그러나 성적 자유로움이 한참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시기에 있는 젊은 세대에 있어 특히 남녀관계가 감각적이고 표피적으로만 치우치게 되는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인간의 적극적 선택 영역이다.

아무런 노력없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부사이는 물론 부모자식과, 이웃간의 관계에까지 그 모든 관계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 그리고 양보와 배려를 통해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더구나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결혼 형태와 가족의 모습으로 인해 전통적인 가족관의 수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동성애자 사이의 결혼이나 국제결혼, 계약결혼을 통해 양산되는 가족과 재혼 가정 그리고 주말부부나 기러기 아빠 등의 신조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가족의 형태 등 기존의 관념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변화가 산재해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모든 정황을 지혜롭게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야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 해법이 아닐까 싶다.



세기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장동건 고소영 두 스타커플의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인간의 진화가 계속되는 한 멈추지 않을 삶의 변화 속에서 행복의 키를 놓치지 말고 시작하는 지금의 행복을 끝까지 잘 지켜내길 바란다.
(2010.4.2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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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스폰서 검찰

스폰서 검찰



때 아닌 ‘스폰서’ 논란이 대한민국 최대의 막강 파워조직인 검찰청의 검사들의 혼을 빼놓고 있다.

비난과 조롱과 분노로 뒤엉킨 국민 여론이 폭포수처럼 검찰을 향해 쏟아지고 있으니 왜 아니겠는가.

검찰 주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촌지와 향응, 심지어 성 접대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접대문화의 어두운 관행이 구체적인 제보와 치밀한 취재과정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 조직의 심각한 ‘부패현황’이 안방으로 정밀하게 중계되면서 물론 타성에 젖어 불감증에 빠져버린 검사들의 개념없는 행태도 여과없이 노출됐다.

덕분에 검찰의 체모는 말이 아니게 됐다. 정말로 쥐구명이라도 찾아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25년간 검사들을 후원해왔다는 한 건설업자의 전방위적인 폭로가 공중파 방송을 탄 이후의 풍경들이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검사와 스폰서의 어두운 역사로 사회적 파장이 일게 된 건 처음있는 일이 아니다. 갖가지 유형의 법조계 비리혐의로 세간에 각인된 사건만 해도 적지 않다.

지난해 6월 유력한 선배, 동기들을 제치고 검찰 총장 후보로 발탁됐던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낙마시킨 것도 스폰서와의 부적절한 관계였다. 사업가와의 돈거래나 동반여행 등에 얽힌 의혹이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검사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통과한 명실상부한 최고의 두뇌집단에 속하는 절대 권력체다. 특히 소위 그들만의 리그로 얼기설기 엮이는 혼맥, 인맥, 혈맥 등의 영향력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 검사들이 그것도 고위급 검사들 까지 줄줄이 건설업자의 향응에 코가 꿰어 차마 보기 민망한 상황에 놓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 부패하게 되면 나라의 존립근거가 흔들릴 만큼 위험해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검찰은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경원시 당하고 있다. 설사 그렇다 한들 할 말도 없을 것이다. . 존경은커녕 실오라기만큼의 믿음마저도 냉랭한 눈길 속에 얼어붙어 버렸으니 오죽할까 싶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총체적인 진단을 내놓을 만큼 잘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분명한 건 엘리트 집단일수록 청렴함이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그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검찰이 얻을 수 있는 신뢰지수는 몇 점이나 될까 싶다. 모르긴 몰라도 그다지 후한 평점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이다.

타락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렴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미국은 그나마 저력있는 국가다. 매사 자본 논리에 맞춰 돌아가는 제도적 단점을 뺀다면 그런대로 깨끗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국사회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반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집단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은 답답함 그 자체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 기관의 타락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와 불안을 낳고 있다.

외부인사가 주도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검찰의 발 빠른 진상 규명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이전 사건 당시 ‘제식구 감싸기’에 그쳤던 검찰의 전력(?)이 자초한 결과다. .

오히려 이번에도 변죽만 올리고 그칠 수도 있다며 특검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기 문제를 안고 있는 검찰에게 과연 타인을 정죄할 수 있는 기능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검찰로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검사 임용제도를 연구해 보면 어떨까 싶다. 사시를 패스하고도 일정 기간 동안 숙련된 과정을 통해 자질을 향상시킨 후 검사에 임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대신에 기존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와 명예로 보상해 준다면 검사의 질적 향상은 물론 우리나라 법조계에도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거나 (현재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민배심원제도 확대를 고려해 보는 것도 처방이 될 수 있다.

특히 검사들의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을 적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



모쪼록 검찰이 이번 시련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검찰도 검찰이지만 대한민국 운명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깨끗하고 새로운 기운으로 21세기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로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란다
.(2010.4.2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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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0일 화요일

홍문종생각-지금이 바로 그 때

지금이 바로 그 때



따뜻한 인사와 반기는 미소 그리고 다정한 손짓이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비밀병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오죽하면 ‘감사합니다’가 입에 붙을 때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는 말까지 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미국인들은 일상 속에서 Hi, Thank you, excuse me, I'm sorry 등 기본적인 언어사용 만으로도 자연스런 친화력을 발휘하는데 익숙하다.

그에 반해 우리는 속내를 드러내는 자체를 꺼리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양반, 남자 따위의 폐쇄적인 체면 문화에 구속돼 비단결 같은 속정을 가슴 한가득 품고도 상대에게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인은 미스터 인사(허리 굽혀 인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중국인은 미스터 시끌, 한국인은 미스터 무뚝뚝이라며 한국인 특유의 지나친 경직성을 강조한 유머가 떠도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 역시 근 50여 년 세월동안 근엄과 침묵이 최상이라고 교육받은 탓에 쉽사리 말문을 트거나 손을 내밀지 못하는 ‘갑갑증’을 겪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등 간단한 말 한마디가 딱딱해진 분위기를 풀어주고 상대방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막강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마음은 있는데 몸이 안따라주는 격이라고나 할까.

외국인으로부터 충고를 들은 적도 있다. 게리 오웬이라고 미국 하바드대학 교수로 대통령 후보 홍보를 담당했던 그는 내게 동양인들은 찢어진 눈매와 각진 얼굴 때문에 무서운 이미지를 주는데다 감정표현에도 인색해서 친밀감을 느끼기 어렵다며 특히 정치를 하려면 무엇보다 이미지 개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고 했던 조언이 기억난다.



부전자원이 부족한 우리의 입장에선 무엇이 됐던 세계 시장과 교류해야 살 수 있는 나라다. 그럴 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경직된 표정보다는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인상이 더 유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세계인의 호감이 미래사회에 미칠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이미지 개선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느 소설에서 왜 저 동양인은 허리를 구부려서 인사를 하느냐고 딸이 묻자 엄마가 아 저 사람은 일본인인데 그가 열심히 인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일본인들의 친절하고 성실한 국민성이 세계에 소문이 났나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오늘 날 그들이 국제 서열 2위 위상을 가진 국가로 자리매김 하는 데 있어 그 같은 이미지 효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을 거라는 각성도 있었다.



때 마침 영국의 BBC방송이 세계 각국의 국민 2만9977명을 대상으로 작년 11월부터 올 2월에 걸쳐 국가별 선호도를 공동 조사한 결과가 나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중 32%가 우리나라에 호감을 보였고 비호감 비율은 30%였다. (호감도가 제일 높은 나라는 59%의 지지를 얻은 독일이다) 특히 독일 이태리 스페인 등의 국민들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우리와 경쟁국면에 놓여있는 현실(요 근래 축구 등 스포츠 경쟁 요인도)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BBC 조사 결과는 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실상에 비해 생각보다 후한 점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선 턱없이 부족한 수치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희망을 완전하게 심으려면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호감도 확보가 시급하다. 대한민국 이미지 제고를 위해 정부와 정계, 민간에 이르기까지 한 마음이 되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정부시책이나 대통령 치적의 국내 홍보에 치중할 때가 아니다. 세계무대를 향해 대한민국 홍보에 총력전을 펴도 모자랄 판이다. 국정 홍보처 등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인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미국 중국 시장 못지않게 확대될 유럽시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유럽이 EU라는 큰 테두리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처럼 움직인다고 하지만 어떻게 따지고 보면 각각의 국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 독특한 개성을 잘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일본의 오늘 날이 결코 우연으로 이뤄진 소산물이 아님을 인식하자.

한국을 연구하는 일본인 학자가 한국을 연구하는 한국인 학자보다 더 많은 현실이나 임진왜란 당시, 침범 이전부터 한국을 철저히 연구하고 준비했던 일본인들의 철저한 근성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밉다고 멀리만 할 게 아니다. 필요하다면 철저한 연구를 통해 일본을 벤치마킹 상대로 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유럽이 됐건 미국, 중국이 됐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하거나 수정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우리의 미래 입지를 확실히 구축하자는 얘기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2010.4.2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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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8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항구적 일등을 위해

항구적 일등을 위해



명실상부한 세계 일등 브랜드 삼성전자의 위상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매출액 34조원, 영업이익 4조3천억의 최대 실적을 자랑하는 삼성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기업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삼성전자 근로 현장에서 근로자 수 십 명이 죽을 병을 얻었다며 아우성인데 정작 기업은 자기네와 무관한 이야기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에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23세 여성 근로자 박지연씨 사연이 알려져 논란을 증폭시켰다.

삼성전자 측에서 박씨의 죽음에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22명의 근로자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 암으로 투병중이고 이 중 8명의 근로자가 같은 경로를 거쳐 사망한 상태다.

근로자 측의 산업재해 인정 요구에 대해 삼성 측은 단 한건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의 오늘에서 오래 전 미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미국에서 생활할 당시는 팍스아메리카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곳의 부자들이 사회보장제도를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던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결국 ‘일하지 않는’ 미국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자칫 나라를 무너뜨리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었다.

그 때 보기에도 지나치게 낭비적인 시스템 운영이 문제였다. 사회보장 구축에 필요한 비용보다 이를 집행하는 시스템 가동에 더 많은 인력과 재화를 필요로 하는 기형적 구조가 문제시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들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만들기도 했지만 앞으로 국제사회가 이른 바 미국의 경제력 침탈 구조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 시작하면 머잖아 미국의 지위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삼성 입장에서 아직은 효율성과 경제성이 직원들의 후생복지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점점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노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측면에서는 노동자의 권익이 축소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속 구성원들과 일등이라는 자부심을 공유하지 못하는 일등 브랜드는 본말이 전도됐다고 본다. 아무리 큰 돈을 벌어들이는 부자 기업이라고 해도 근로자의 목숨을 담보로 이뤄진 ‘부’라면 정당성을 얻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극히 제한적인 분량이라도 산업재해의 가능성이 예상된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만큼 좀 더 철저하고 확실한 회사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리더십을 얘기할 때 마다 구성원들의 참여의지를 최대한도로 높일 수 있는 리더십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해왔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로 삼성 역시 오늘의 지속적인 성공이 소속된 모든 근로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력 여하에 달려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계 10대 강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위치로 자리매김 되기 위해서는 남한은 물론 북한에 이르기까지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시급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이 근로자와의 갈등국면을 하루라도 빨리 해소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일선 복귀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요즈음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현장의 재해 현황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그만큼 고조돼 있는 게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근로자 사망 사건으로 행여 그 위상을 해치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돌아가는 여론을 보면 소외되고 어려운 계층의 강요된 희생을 통한 ‘축적’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오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삼성이 부디 해묵은 노사갈등의 난제를 잘 풀어내서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경영사례를 남겨주었으면 싶다. 그렇게 항구적으로 일등 자리를 보존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오늘 날 미국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2010.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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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7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삶의 질을 생각하자

삶의 질을 생각하자

갈수록 처리해야 할 업무량이 늘고 마음만 바빠지는 정황이다.
특히 봄이 되면서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과에 치이다 보니 제대로 살고 있는지 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늘 미진한 아쉬움이 뒷덜미를 잡고 늘어진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 얼굴이 한 둘이 아니다. 실제로 나 자신 ‘엄청난 인사’도 아니면서 식사 약속을 청하는 이들의 요청을 그 때 그 때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돌아보니 언제나 ‘바쁘다’의 연속이었던 삶이었다. 그 덕분에 시간에 쫓겨 신중한 고려없이 처리해버린 일들 역시 적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중한 스케줄이 문제다.
그동안 즐겨 행하던 우리 동네 더듬기(저녁이면 혼자서 취미삼아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곤 했다), 야간 등반, 한강의 야경탐색 등의 관심사를 이제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지경이고 보면 정말 일에 치여 살고 있는 게 맞다.

인간에게는 누구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일정한 삶의 분량(수명)이 주어져 있다.
생자필멸의 예측 가능한 삶이기에 무엇보다 ‘삶의 질’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보다, 그 과정에 ‘개인의 가치와 철학을 어떻게 담아내고 구현했느냐’를 더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의 순리 속에서 자기 몫의 생을 다하면 어떤 미련도 허용되지 않는 게 인간의 삶이다.
결국 인간의 성공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만큼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아무리 많은 일을 했다고 해도 정작 스스로의 삶의 질을 챙기지 못한다면 결코 제대로 산 인생이라고 볼 수 없다.
주변에서도 하는 일에 상관없이 자기 삶에 만족도가 큰 사람일수록 뚜렷하고 일관성 있는 자기 철학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건 질적으로 우위를 점한 그의 삶에 대한 예우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다르게 살았던 사람도 존경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일관되게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노력 했었다는 흔적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제대로 산다는 건 인생의 어느 주제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임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에서 귀중한 시간과 정력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좀 더 짜임새 있는 삶의 운용에 관심의 폭을 넓히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것이다.

근래 들어 기도로 아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일과로부터 내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에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기 전 내가 이 자리에 와 있는 이유와 일처리 기준의 기본적인 틀, 그리고 일의 우선순위 등을 기도를 통해 스스로에게 주지시키는 작업을 한다.
(나의 아침 기도 속에는 하나님, 국가와 민족, 바른 삶의 명제, 희망, 미래, 영혼 등 이상적인 주제가 있는가 하면 청년 실업 전망, 점심값이나 종이대금 같은 물가 동향, 교육현장에 필요한 커리큘럼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이렇게 아침부터 하루 일과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린 다음 기준이 되는 틀을 적용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작하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하루보다 훨씬 충실한 일과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능률적인 면에서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일이 많아질수록 처리하는 속도에 가속이 붙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 속에 파묻혀 살아야하는 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삶의 질을 외면해서는 안될 일이다.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일에 몰입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다.
내 인생의 주체는 오로지 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보여주기 위한 피상적인 삶의 태도를 던져버리고 내 신념과 가치를 위해 삶의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이다.
기도가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가장 확실한 조력자임을 알려드린다.
이는 블로그 독자에게 드리는 나의 극진한 충정이다.
(2010.4.1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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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생각- 이별

이별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자식을, 그리고 남편을 부등켜안고 통곡하는 천안함 유가족들의 모습이 비친다. 안녕의 말조차 나누지 못하고 생사의 공간으로 엇갈려야 하는 이별의 모습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슬픔과 절망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과거의 경험들이 감정이입을 부축이는 탓이다. 덩달아 울컥해지며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이별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몇 번의 이별로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 중 초등학교 시절 내 생애 최초로 이별의 아픔을 느끼게 했던 혜숙이가 떠오른다.
혜숙이는 어머니의 여고(이북의 경기여고라는 평양 서문여고) 동창의 딸인데 나와는 동갑내기로 단짝으로 지내던 사이였다. 그 혜숙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만 서울로 전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땐 왜 그리 슬프고 섭섭했는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이별을 아파하는 유난을 떨었다. 그러다 급기야 열이 올라 병원을 찾는 바람에 어머니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다른 이별도 있다. 집에 유학와 있던 동갑내기 여학생이 있었는데 일정한 기간이 지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이별이었다.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기며 내 시야에서 멀어져가던 그 여학생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을 정도다. 그날 하필 비가 왔는데 여학생이 떠나고 난 뒤 뒷동산에 올라가 비를 맞으며 무슨 시인이나 된 것처럼 폼을 잡기도 했다.
이후의 이별은 대학교 때 교제하던 아가씨와 헤어졌던 일이다.
정초가 되어 집에 세배 온 아가씨에게 아버지께서는 ‘우리 집은 세배 안하는 집’이라는 말씀으로 거부의사를 밝히셨다.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가씨는 한없이 울면서 떠나갔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나는 한동안 심마니라도 된 양 설악산이다 지리산이다 하며 미친 듯 산을 찾는 것으로 이별의 아픔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잘해주지 못했던 동생의 죽음이나 누구보다 나를 친자식 이상으로 아꼈던 이모부, 백부를 비롯한 장인장모와의 사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게 엄청난 슬픔이었다. 하지만 앞서 서술한 이별들은 또 다른 이유로 내 기억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함께 하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힘겨운 슬픔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못할 짓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 겪게 되는 이별은 훨씬 더 날카로운 충격과 오래가는 슬픔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요 근래 정말 가까이 마음을 주던 사람으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았다.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다며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그의 말이 지금도 가슴의 통증으로 남아있다. 너무나 뜻밖이고 이유 또한 석연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원인이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내게 있다는 자책감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혼란의 정도는 심해지기만 한다.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생각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가 내 마음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어야 할 것만 같다. 버선목 뒤집듯 내 속내를 다 드러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돌아선 그의 발길을 다시 되돌려놓을 수 있는 거라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나이에 웬 이별이며 가슴 아픔인지 그저 어리둥절 하기만 하다.
그러나 현실 속의 나는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속절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별이 너무나 싫은데 다른 한편에선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선택을 받아들여 존중할 수 밖에 없다는......
포기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지만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마음을 곧추세워 본다.
내 인연이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면 내게 닥쳐올 이별의 아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두렵다.

인생 자체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긴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너무 쉽게 받아들여지는 풍토가 된 것 같다. 실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되는 등 몰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요즘 세태가 지나치게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통상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의 본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풍토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탓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없지 않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섬세한 나의 성정을 문제시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 새로운 만남 못지않게 기존의 인연에 대해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니 만큼 더 이상 소중한 인연과의 이별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PS: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유가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빈다.
그리고 한 송이 꽃으로 산화해 버린 젊은 영혼들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한다.
(2010.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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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5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그럼에도 봄은 온다

그럼에도 봄은 온다



때 늦은 꽃샘추위에 어깨를 움츠리게 되는 요즈음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제법 매운 맛이다. 4월 중순에 눈발이 날리거나 얼음이 어는 영하권 날씨가 되기는 몇 십 년 만에 처음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그렇더라도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꽃샘추위가 소생하는 봄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승을 부릴수록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와 있는 봄의 존재를 인식하게 해 주는 전령의 임무를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얼어붙은 산야를 보면서 봄이 언제 올까 근심할 것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떤 위세도 서서히 깨어나는 봄의 소생을 막을 수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봄이 오고 있지만 이를 가장 못 믿고 불안해하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는 것 같다.

긴 겨울 동안 동면에 들어갔던 동물들이 채근하지 않아도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고, 잿빛으로 널브러져 있던 초목이 연초록의 움으로 새 생명으로 틔우느라 분주한 것도 모두가 봄의 소생을 신뢰하기 때문이리라.

반면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어리석은 음모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가 자연의 법칙을 능가할 수 있는 존재라도 된 양 계절의 순리를 저버리고 사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십년을 채 넘기지 못한 승자의 기록을 숱하게 만나게 된다. 그것도 길어야 10년이고 대게는 2,3년을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3일 천하에 그친 역사 기록도 존재한다.

3년만 지나면 레임덕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는 역대 대통령의 육성 고백이나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왕조시절에도 화무십일홍의 아쉬움을 달래는 회한이 있었다.

역사가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망각의 속성 때문인지 거듭되는 역사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주 착각에 빠진다. 그 덕분에 천년만년 권력을 손에 쥐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자가당착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없이 사라진다.

참으로 불행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꽃샘 추위에 봄 기운이 한층 더 선명해진 느낌이다.

이상화 시인은 일제 강점 당시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며 나라잃은 암울한 현실을 비관했었다.

오늘 그의 질문을 다시 받게 된다면 누구든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빼앗긴 들에도 분명 봄은 오게 돼 있습니다’라고.



ps: ...그럼에도 봄은 온다.

일희일비 하지 않는 묵묵한 자연의 순리를 통해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됐으면 좋겠다.

행동에 옮기기 전에 좀 더 성숙하고 신중하게 심사숙고 할 수 있었으면.
(20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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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3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선거와 공천

선거와 공천



그 옛날 이만섭 국회의장이 말했었다. 공천이나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당적을 옮겨본 경험도 없이 정치를 잘 할 수 있다는 건 순전히 거짓말이라고. 그 말에 당시 승승장구하던 의원들이 수근수근 하기도 하고 머쓱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의 ‘정치론’은 초선의원으로 정치 초년병에 불과했던 내가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섭렵한 정치 대선배가 주장하는 ‘지론’이었기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 때의 상황이 상세히 적혀 있는 걸 보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건 사실이다) 어쨌든 그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때의 참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마다 지역 후보를 선출하는 공천심사위원회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또 공천 결과가 나올 때마다 공천자와 낙천자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정황이다.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하는 일은 대상자의 장점에 주목하는 개인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지독한 외로움을 남기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A는 이래서 좋고 B는 저래서 좋다는 식의 딜레마 때문에 A와 B의 우열을 가리기란 실질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심위원장을 비롯한 공천심사에 관여한 경험자로서, 공천과정은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처럼 원천적으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대상을 상대로 한 ‘억지 서열’ 결정에 불과하다고 본다.

실상 공천에 탈락한 사람이 공천에 탈락하지 않은 사람보다 부족한 점이 노출돼 공천되지 않은 건 아니다. 정말 비교가 안될 만큼 자질이 월등하다는 등의 이유보다는 어쩌다보니 누군가는 탈락하고 누군가는 선택되는 과정에 불과했음을 고백한다. 비단 선거에서의 공천 과정 뿐 아니라 입사시험에서 낙방이나 맞선에서 퇴짜 맞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지금 공천에서 떨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심정이 헤아려진다.

모르긴 몰라도 분노와 낙담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한 좌절감에 괴로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왕년엔 나 역시 선수였지만 지금은 링 밖에서 관전 중인 입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조언해 주고 싶다.

누군가에 의해 낙천됐다 해도 그것이 철저한 객관적 판단을 담보하는 게 아닌 이상, 스스로를 낙천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자기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해 볼 기회로 삼는 건 몰라도 자기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 건 목표를 가지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한 이상, 공천 받지 못했다고 스스로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낙천은 자신이 바라고 꿈꾸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점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는 희망의 과정임을 알아야한다. 굳이 링컨 대통령이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직 대통령 등 낙선, 낙천의 쓰라린 과정을 통해 자신의 큰 목표를 달성한 분들의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낙천한 그 즉시 가족이나 지지자 앞에 활짝 웃을 수 있는 자신감과 과감한 배포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낙천은 이제부터 정당을 매개체로 통하지 않고도 국민 앞에 더 확실하고 분명한 정치인으로 살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출발점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귀뜸해 주는 여유를 갖자.

특히 얼마 전 일본의 지자체 선거에서 무소속이 대거 당선으로 돌풍을 몰고 왔듯, 굴절된 정당현실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우리에게도 일본 사례가 재현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번 기회에 초심으로 돌아가 더 크고 넓은 마음으로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자는 말이다.

그렇게 위기를 기회로 삼는 현자가 되길 바란다.
(20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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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봄의 소리

봄 의 소 리

-홍문종-




바람은 살랑살랑

대지는 아른아른

시집 못간 아가씨는 싱숭생숭

어느새 다가온 봄의 소리



종다리는 높이 지지배배

시냇물도 더불어 조잘조잘

더벅머리 총각 가슴은 두근두근

손꼽아 기다렸던 봄의 소리



개나리 진달래 방긋방긋

앞마을 망아지 움매움매

아낙네의 걸음걸이 성큼성큼

아득히 잊고있던 봄의 소리



뒷동산 어이 어이

동구 밖 강아지 끼잉 끼잉

동네 녀석들 휘익 휘익

동장군은 물럿거라 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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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생각-채소가 금값이네

채소가 금값이네



채소 값 폭등으로 난리다.

실제로 배추 한 포기에 5000원을 호가하는 형편이고 보니 차라리 사 먹겠다는 가정이 늘고 있다. 덕분에 김치가 아니라 ‘금치’가 됐고 작년 김장김치가 때 아니게 ‘귀하신 몸’대접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음식점마다 이렇게 야채 값이 폭등한 적은 처음이라고 아우성들이다.

유례없는 채소가격의 고공행진은 불안정한 이상기후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겨울 유난히 잦았던 눈비가 문제였다. 과다한 강수량과 현격히 감소된 일조량, 그리고 극심한 황사 현상 등이 채소의 작황이 나쁘게 한 원흉이 된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 기후의 징후가 아열대 지역화의 증거가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다. 심지어 사막화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자연 환경의 오염으로 부터 비롯된 폐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정도의 후유증으로 다가온 자연의 역습이 아닐까 싶다.



오래 전, 국가 끼리 공기와 물 확보로 다투다가 세계 3차 대전을 일으키게 되는 내용의 공상과학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황당하게만 느껴지던 소설 속 얘기가 이제는 더 이상 가상 세계의 허황된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이 그만큼 굉장히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경제에서 환경을 돈으로 환산하는 문제가 관건으로 대두되는 현실도 같은 상황이다.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낭비했던 환경 자원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해결능력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선진국형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어진 환경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정책적 판단이 중요한 바로미터로 작용하게 됐다. 환경은 후대로부터 빌려 쓴다는 심정으로 미래사회를 염두에 둔 치밀함을 정책 전반에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의 현실화는 환경보존을 위해 지구촌 전체가 책임분담의 형태로 참여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 발효에 따라 기후변화의 대응 차원으로 시작된 구속력 있는 제도다) 탄소배출권 거래의 본격화로 각 국가마다 탄소경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정황이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기업 경영에 있어 중요한 고려 요인으로 작용하는 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에너지비용 비중에 따라 주식 가치가 출렁이고 기업의 수익률 역시 탄소경영 상황에 따라 부침이 결정되는 등 탄소가 돈의 가치로 환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회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이어지는 4대강 이슈에 관한 여야의 날선 공방을 지켜보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특정 정당에 기울어 있는 나로선 ‘4대강 홍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강에 대한) 어떤 논리가 21세기 대한민국 미래에 맞는 것인지 선뜻 판단이 서질 않아 머뭇거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만약에 잘못된 선택이라면, 반대론자의 주장처럼 크나 큰 재앙을 초래할 소지가 있는 거라면 어쩌나 하는 마음 속 근심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개발을 반대하는 쪽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지나친 과장인지 그것도 아니면 정운찬 총리의 말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홍보 부족으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건지 보다 명확한 판단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4대강 개발이 대대손손 우리에게 미칠 파장을 생각한다면 정말 이 문제만큼은 여야간 정파나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은 대승적 차원의 결단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국정 현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 요즈음이다.

그렇다고 의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럴수록 정신을 차려 스스로의 확신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선거야말로 우리의 안목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우리 미래를 스스로의 판단으로 운용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2010.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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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생각- 한명숙 재판

한명숙 재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명숙 전총리 뇌물수수 사건'의 1심 재판이 무죄로 끝났다.
어찌됐든 이번 무죄 선고로 한명숙 전 총리에게는 더 큰 힘이 실리게 됐고 검찰로서는 ‘무능하다’는 치욕의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전직 총리가 연관된 탓에 시작 때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미 양 진영으로 첨예하게 엇갈린 상태에서 지켜본 재판이었다.
그래서일까? 너 나 없이 할 말이 참 많은 것 같다. 무죄 선고를 두고 제각각의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의 관전평이 어지럽게 쏟아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2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92년 대선판을 발칵 뒤집었던 ‘부산 초원복집 사건’과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였던 'OJ 심슨 무죄판결'이 그것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대선을 사흘 앞두고 당시 법무장관을 비롯, 부산 지역 검찰 경찰 안기부 등 '사정기관 수장'들이 복집에서 모여 특정후보의 득표를 위해 논의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다. 파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이가’ 구호 덕분에 반전에 성공, 그들이 지원했던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인사들에게도 ‘영화’의 혜택이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회의원으로 부산경찰청장은 경찰청장을 거쳐 안기부1차장으로, 지검장은 헌법 재판관으로 영전하는 제각각 행복한 마무리가 됐다는 후문이 역사의 뒤안길에 기록돼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 평결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O.J 심슨 재판.
심슨은 자신의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막대한 재산을 이용한 드림팀 변호인단의 활약(?)으로 대부분의 유죄 심증을 뒤엎고 무죄판결을 이끌어 낸 바 있다.
그야말로 유전무죄 케이스의 전형으로 자리를 굳힌 사건이다.
무죄 받는 대가로 전 재산을 다 날린 심슨이 지난 2007년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가 급기야 33년형을 언도받고 네바다 주의 러브락 교정 센터에서 형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식축구선수와 영화배우로서의 명성, 그리고 막대한 부조차 다 잃어버리고 인생의 말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있는 그의 인생유전이 새삼스런 감회를 불러온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통용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폐해가 아닐까 싶다. 재력이 되면 아무리 중죄를 지어도 실력좋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무죄로 빠져나가고 보석으로 풀려날 수도 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공부하던 당시만 해도 미국의 유능한 변호사들은 자기의 의뢰인을 절대로 감옥에 보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공언하는 분위기였다.
자본의 논리가 우선 적용되는 건 우리나라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돈을 벌고자 하는 변호사 집단이 있고 범죄자를 색출해 벌하려는 검찰이 있는 한 우리 역시 인간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 영원한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측면에서 ‘한명숙 재판’은 검찰에게 결코 녹록한 상대는 아니었다.
적어도 무시되거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진행된 재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검찰수사와 공판과정에서의 묵비권 행사나 검찰 질문도 변호인의 ‘사전 감수’를 통해 결정되는 등 피의자 새로운 권리 행사와 대응 방법으로 눈길을 끌었던 점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1심 승소는 쟁쟁한 변호인단의 활약이 거둔 쾌거로 평가되기도 한다.

검찰이 전례없는 불공정한 재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검찰로서는 ‘자중’이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심증만으로 범죄혐의를 입증할 수 없는’ 수사의 기본원칙을 외면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너무 급하게 서둘러서인지 아니면 지나친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깊은 내막이야 알 도리 없지만 범죄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확보를 위한 노력을 지나치게 등한시 한 정황이 역력하다. 검찰을 향해 쏟아지는 이런 저런 비난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인 만큼 반발하기보다 오히려 자기성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번 판결이 자칫 사법부와 검찰의 대립 양상으로 치달아서는 안될 일이다.
정치권 역시 이번 판결을 성급하게 예단하며 혹여 이번 선거에 정치적으로 개입시키려는 ‘흑심’을 버려야 한다. 법은 법대로 흘러가도록 두고 자기들 맡은 정치나 제대로 운영하면 된다.
매번 말하지만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착각해서는 안된다. 저마다를 위한 법이나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법집행이어야 하고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의 외면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멸문지화를 자초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관한 사필귀정의 진실이 어떤 그림으로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늘만이 알 일이다.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자. 판단은 그 때까지 유보하도록 하자.
이번 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2010.4.1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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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7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말을 풀어라

말을 풀어라



해외 뉴스 시청은 나의 주요 아침 일과 중 하나다. 해외 뉴스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나름의 방편으로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사가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해외 뉴스를 시청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사란 게 수많은 현실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동시에 기억 뒤편으로 사라지는 순간의 반복에 불과한 것 같다. 언젠가 국내 유수의 대형교회 각각의 장소에서 결혼식, 장례식, 칠순잔치 등의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목격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결국 인간은 자기의 관심사나 기억하고 싶은 일 중심으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 이해하려는데 있어 비슷한 속성에 매여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제 아침 뉴스에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는 강진 발생으로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고 중국 어디에선가는 탄광 붕괴로 다수의 인명이 희생됐다는 소식으로 세상을 전해 들었다.

다음 달 6일 선거일을 앞두고 여당인 노동당(고든 브라운 총리)을 비롯한 보수당(캐머런 당수)과 자유민주당(닉 클레그 당수) 등 주요 정당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영국 총선 관련 소식도 아침 ‘해외 뉴스 시청’을 통해 얻은 정보다.

13년을 집권해 온 노동당의 재신임인지 보수당 정권의 탄생인지 여부에 급격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나의 정치적 DNA 탓이다.

특히 보수당의 힘겨운 신승을 예상하면서도 미국의 오바마식 선거운동을 도입해 적극 활용하는 노동당 선거진영에 주목하고 있는 미국의 한 정치 컨설턴트의 분석이 내 눈길을 끌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성공적인 ‘SNS 정치’의 표본으로 인정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운동기간 일거수일투족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유권자들과 실시간 소통을 통해 공약의 완성도를 높였고 선거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UCC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공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유권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오바마 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 또한 당시 3D 가상현실 게임인 ‘세컨드 라이프’에 선거홍보물을 게시하기도 했다.

-언론 보도 인용)


인터넷 선거전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가 기존의 선거운동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 앞으로 전 세계 선거의 메인 메카니즘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평소 나의 생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프랑스, 영국 등 해외에서는 인너텟이나 SNS 공간에서 정치인이나 유권자의 의견표현이 자유롭게 말할 권리와 정치참여 등의 의미로 적극 장려되는 분위기다. 선거기간 동안 후보들은 언론 등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한 공약이나 가치관 등을 보충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유권자들은 자유로운 댓글로 지지·비판 의사를 표현하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의 인터넷이나 SNS 현실은 인터넷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할 정도로 경직돼 있다.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벌써 선거법 위반 혐의로 트위터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너무 후진적이고 세계적인 선거 방식에 역행하고 있는 우리의 인터넷, 트위터 등의 관치통제의 변은 옹색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인터넷 강국답게 인터넷과 SNS가 활용된 새로운 방식의 소통구조로 선거운동 방식을 선도해도 모자랄 판인데 규제와 금지 일색의 구시대적 사고로 통제하려고 한다.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발상 자체가 무리다.

차라리 인터넷과 트위터 등을 활용한 선거운동 방식을 모든 후보가 적극 활용하게 하는 식의 업그레이드 된 선거풍토 정착을 관이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규제를 하더라도 일방통행식이 아닌 소통을 전제로 한 규제여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돈은 풀고 말은 막는다’라는 불합리한 선거법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돈 안드는 선거와 국민의 선거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굳이 별도로 애쓸 거 없다. 인터넷 규제만 제대로 풀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고도 남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인터넷과 트위터에 물린 재갈을 풀고 표현의 자유를 달라. 말을 풀어달라.

촉구한다.

촉구한다.



PS: 영국 수상 후보의 선거운동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식당에서나 공공장소에서 유권자를 대하는 그들의 당당한 모습이 (유권자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거나 책상 같은데 걸터앉아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았다. 90도 각도로 고개 숙여 악수하는 우리의 경직된 후보 모습과 극도로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유권자들도 일터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후보들을 맞이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너무 머리를 서로가 조아리는 것은 21C형과는 괴리가 있다는 생각. (2010.4.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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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공천

공천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지자체 후보 공천 작업으로 분주한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정치권에 몸 담은 인연 때문인지 예사로이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천안함 비보로 경황없는 정국이긴 하지만 지자체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의 끈을 늦출 수 없다는 다급함 마저 있다.

무엇보다 인재선발이 중요하다.

정당 공천 작업의 긍극적인 목표는 지역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제대로 선발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한 인재 선택이 지역 발전은 물론 주민 삶의 질 향상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천 과정에 끼어드는 잡다한 ‘욕망’에 있다.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각 지역 위원장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지명 공천이 관행으로 남아있는 정치 풍토가 화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출마자들이 지역을 담당하는 위원장 의중에 따라 결정되는 게 다반사다. 그 결과 후보 개인의 역량이 우선 고려 되지 못하고 ‘사천’이 이뤄지기 일쑤다.

청탁과 유혹이 명징한 판단을 농단하는 결말이 되고 만다.

‘공천장사’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다. 한 자리 공천에 깜짝 놀랄 액수의 검은 돈들이 오가다 법망에 걸려 신세를 망치는 일도 종종 목격하게 되는 것도 이 판의 특징이다.

그래서 공천 때만 되면 누구한테 공천헌금 얼마를 바쳤다, 누구 라인이다. 윗선(그것도 큰 집)의 관심사안이다 등등의 ‘아리송한 은어’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춰 공천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억지가 난무한다. 그 결과 비민주적 공천에 승복할 수 없다는 반발이 야기되기도 한다.



솔직히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역 위원장도 ‘을'의 처지에서 공천에 매달리던 때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 때는 중앙당 입김을 배제돼야 한다며 지역 유권자에 의한 공천을 그리도 주장하더니 막상 기득권이 되어 처지가 달라지면 예전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린 모습들이다.

공정한 공천 기준과 룰 적용에 따른 정당한 경쟁이 보장된다면 더 할 나위없을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적인 그림은 영 그렇지 못하다.

선거 과정을 이용해 ‘잇속’을 채우려는 의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선거 개혁의 실현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흔히 정당에서는 금권선거나 유력계층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폐단을 들어 유권자 선택에 의한 공천의 문제점을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그런 개연성이 높은 지역이나 그런 문제가 야기된 지역에 대해서는 전략공천 특히 여성 전략 공천 지역으로 분류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대한민국 비리 정치의 본판을 주도하는 모순의 실체다.

모든 공천서류를 쥐어틀고 앉아 밀실에서 결정하는 공천은 받은 사람이나 못받은 사람이나 정당성 확보가 여의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당선이 된 사람들은 공천 본류를 따라 ‘헌금’하고 또 다른 줄에서는 돈벌이를 위한 충성 대오를 형성하는 데 혈안이 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결국은 조롱거리로 전락될 개연성이 큰 도박같은 운명이 펼쳐지게 돼 있다.




‘투명한 공천’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공천’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이요 소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대한민국 공천제도를 개혁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을 뛰게 한다.

다시 정치를 시작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공천제도 만큼은 바꿔야 하고 여기에 반드시 일조를 하고 싶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최대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공천이 되도록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공천 작업이 개인권력이나 집단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화 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거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가 지금처럼 냉소적 대상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선거 때마다 ' 이번 선거만큼은 깨끗하고 공정하고 원칙이 있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서 모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공천과정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헛구호로 끝나지 않도록 하자.

공천 권한을 유권자에게 돌려주고 선거 선진화를 이루면 된다
.(2010. 4.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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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4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고위공직자의 재산증가

고위공직자의 재산증가



공직자 재산공개 결과 고위 공직자 10명에 6명꼴로 재산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몇 몇 공직자의 경우 재산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대부분 부동산의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변동이다.


중소기업의 연이은 도산과 OECD 국가 중 최고의 실업률, 그리고 지난 10년 중 최악의 국민실질 소득 현황을 기록하고 있는 침체된 경기 불황 속에서도 재산을 증식한 고위공직자들의 ‘확실한’ 재테크 실력이 세간의 큰 관심 속에서 ‘회자’되고 있다.


솔직히 고위공직자들의 ‘재화 늘리기’를 지켜보는 대중의 심기는 불편하다. 정상적인 재산증식 과정으로 인정하기보다 뇌물이나 접대, 또는 불법정보 취득, 정보통제, 자금원 도피 등의 편법이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의혹에 더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몇 몇 현직 국회의원의 경우 주식이나 펀드 투자가 재산 증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반면에 ‘기부’로 재산이 감소된 고위 공직자의 훈훈한 사연도 전해지고 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박한철 서울동부지검장은 용화사 법보선원이 인천 강화도에 추진하고 있는 노인요양시설 건립을 돕기 위해 시가 9억여원의 아파트를 기부했다. 이로 인해 지난 해 15억여원이던 그의 재산은 6억여원으로 줄어든 상태다.








고위 공직자들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재산을 늘릴 수 있는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수한 두뇌로 그 자리에 까지 오를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거나 다양한 분야의 능력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재산 증식 기회를 갖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이 밖에도 낮은 은행문턱이나 돈이 돈을 벌게 돼 있는 사회적 구조 등에서도 합당한 이유를 찾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렇더라도 공직자, 특히 고위공직자의 경우엔 더욱 더 투명한 자기관리가 요구되는 신분이다. 어떠한 직권을 매개로 뇌물이 오간다면 그 뇌물은 반드시 이권과 얽히게 돼 있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상적인 공적 궤도에서 벗어나 비리나 불법 그리고 부정 고리에 코가 꿰이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일찍이 공직의 중요성을 간파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 등의 저술을 통해 공직자의 바른 처신을 수시로 강조한 바 있다. 그 기준으로 보면 공직자는 개인적인 사안보다는 국민의 복지와 안위를 우선시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그러한 공직자를 육성하는 길이 대한민국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직자 재산 증가 소식 앞에서 하나같이 부정적 관점을 담은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는 현실은 공직자가 저마다의 마음에 담아야 할 의미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재산 증식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은 공직자 보다는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을 택하는 게 맞다.





바야흐로 공직자 선출을 위한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요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강점을 앞세우며 선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무엇보다도 출마자들의 공적 소양부터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마자들도 이번 선거를 입신양명이나 재산 증식의 토대로 삼기보다 자신의 역량을 공공의 발전에 활용될 수 있는 기회 차원으로 출마 의지를 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 뜻을 두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국민의 안위나 복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지 부터 점검해보라는 당부를 전하고 싶다.
(2010. 4.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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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일 목요일

홍문종생각-故 한주호 준위님의 영전에....


故 한주호 준위님의 영전에....




지금 대한민국은 살신성인을 실천한 한 영웅의 숭고한 열정 앞에 고개를 숙이고 추모하고 있다.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망망대해의 악조건 속에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력을 다하며 진정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줬던 군 특수전여단 (UDT/SEAL) 故 한주호 준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군인으로 산 노병의 투철한 군인정신의 발로였을 것이다. 지난 30일 오후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 실종 장병 수색 중에 순직한 고인의 운명을 굳이 해석하자면 말이다.

그렇게 한 진짜 사나이가 뜨거운 인간애와 전설로 남은 영웅담을 남기고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남을 위한 희생이 흔치않은 요즈음 그의 거룩한 ‘실천’은 우리 사회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공명의 근원이 되고 있다.



고인이 이 시대의 사표가 될 만큼 더 없이 훌륭한 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렇더라도 문제점투성이인 해군의 구조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리한 잠수작업과 허술한 구조시스템이 이대로 방치되다간 제2, 제3의 ‘희생’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모열기가 사태의 본질을 오해 하는 들러리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행여 보이지 않는 손이 국민 감정에 편승해 엉뚱한 방향으로 호도하는 도구로 쓰이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다.

생명을 구해야한다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아까운 목숨을 잃게 되는 건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이유야 어떻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이 인위적인 작용에 의해 또 다른 목적으로 이용됨으로 해서 그 의미가 퇴색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혹여 영웅만들기 열풍에 본질이 가려져 또 다른 희생을 야기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무작정 영웅 만들기가 야기할 수 있는 또 다른 폐해의 심각성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특히 계속해서 이어지는 해군 당국의 의혹 투성이 대응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잠수병 예방과 회복을 돕는 이동식 감압 챔버만 해도 그동안 1대 밖에 없다던 해군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보유하고 있는 민간 업체와 기관이 적지 않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좀 더 일찍 손을 썼더라면 한 준위의 참사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고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계속 구조대원의 희생만 강조하는 현행방식이 계속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군이 살인을 방조했다는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오죽하면 해난 구조 베테랑 대원들이 나서서 “입수가 곧 죽음과의 싸움”이라며 “더 이상 순직을 막기 위해 제발 다섯 가지 -▶해저 수색 도중 한 명이라도 이상 있을 시 잠수 철회 ▶대원들상대로 한 심리적 부담감 금지 ▶잠수에서 나온 뒤 곧바로 피로 누적 검사 실시 ▶10분 이내 잠수 시간 엄수 ▶현장 지휘관에게 모든 권한 부여-만 지켜 달라”는 읍소까지 하게 됐을까 싶다.



일계급 특진을 추서했다가 고인의 유가족으로부터 거절당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마자 ‘준위’ 계급의 특별한 영예를 제대로 모르는 ‘군대 문외한’의 일천한 식견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저 유구무언일 뿐이다.

정말 나라가 어려울 때 지도자의 신뢰가 더 없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백번 공감하게 된다. 대충 국민을 속이는 식의 임시변통 땜질로 넘어가거나 '시간이 약'이라는 주문에 기대려는 국민 얕보기는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정말로 깊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고인과 그의 유가족들에게 삼가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이제 안타까운 죽음을 향해 그리운 노래를 부르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2010.4.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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