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한명숙 재판

한명숙 재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명숙 전총리 뇌물수수 사건'의 1심 재판이 무죄로 끝났다.
어찌됐든 이번 무죄 선고로 한명숙 전 총리에게는 더 큰 힘이 실리게 됐고 검찰로서는 ‘무능하다’는 치욕의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전직 총리가 연관된 탓에 시작 때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미 양 진영으로 첨예하게 엇갈린 상태에서 지켜본 재판이었다.
그래서일까? 너 나 없이 할 말이 참 많은 것 같다. 무죄 선고를 두고 제각각의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의 관전평이 어지럽게 쏟아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2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92년 대선판을 발칵 뒤집었던 ‘부산 초원복집 사건’과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였던 'OJ 심슨 무죄판결'이 그것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대선을 사흘 앞두고 당시 법무장관을 비롯, 부산 지역 검찰 경찰 안기부 등 '사정기관 수장'들이 복집에서 모여 특정후보의 득표를 위해 논의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다. 파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이가’ 구호 덕분에 반전에 성공, 그들이 지원했던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인사들에게도 ‘영화’의 혜택이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회의원으로 부산경찰청장은 경찰청장을 거쳐 안기부1차장으로, 지검장은 헌법 재판관으로 영전하는 제각각 행복한 마무리가 됐다는 후문이 역사의 뒤안길에 기록돼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 평결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O.J 심슨 재판.
심슨은 자신의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막대한 재산을 이용한 드림팀 변호인단의 활약(?)으로 대부분의 유죄 심증을 뒤엎고 무죄판결을 이끌어 낸 바 있다.
그야말로 유전무죄 케이스의 전형으로 자리를 굳힌 사건이다.
무죄 받는 대가로 전 재산을 다 날린 심슨이 지난 2007년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가 급기야 33년형을 언도받고 네바다 주의 러브락 교정 센터에서 형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식축구선수와 영화배우로서의 명성, 그리고 막대한 부조차 다 잃어버리고 인생의 말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있는 그의 인생유전이 새삼스런 감회를 불러온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통용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폐해가 아닐까 싶다. 재력이 되면 아무리 중죄를 지어도 실력좋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무죄로 빠져나가고 보석으로 풀려날 수도 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공부하던 당시만 해도 미국의 유능한 변호사들은 자기의 의뢰인을 절대로 감옥에 보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공언하는 분위기였다.
자본의 논리가 우선 적용되는 건 우리나라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돈을 벌고자 하는 변호사 집단이 있고 범죄자를 색출해 벌하려는 검찰이 있는 한 우리 역시 인간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 영원한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측면에서 ‘한명숙 재판’은 검찰에게 결코 녹록한 상대는 아니었다.
적어도 무시되거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진행된 재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검찰수사와 공판과정에서의 묵비권 행사나 검찰 질문도 변호인의 ‘사전 감수’를 통해 결정되는 등 피의자 새로운 권리 행사와 대응 방법으로 눈길을 끌었던 점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1심 승소는 쟁쟁한 변호인단의 활약이 거둔 쾌거로 평가되기도 한다.

검찰이 전례없는 불공정한 재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검찰로서는 ‘자중’이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심증만으로 범죄혐의를 입증할 수 없는’ 수사의 기본원칙을 외면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너무 급하게 서둘러서인지 아니면 지나친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깊은 내막이야 알 도리 없지만 범죄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확보를 위한 노력을 지나치게 등한시 한 정황이 역력하다. 검찰을 향해 쏟아지는 이런 저런 비난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인 만큼 반발하기보다 오히려 자기성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번 판결이 자칫 사법부와 검찰의 대립 양상으로 치달아서는 안될 일이다.
정치권 역시 이번 판결을 성급하게 예단하며 혹여 이번 선거에 정치적으로 개입시키려는 ‘흑심’을 버려야 한다. 법은 법대로 흘러가도록 두고 자기들 맡은 정치나 제대로 운영하면 된다.
매번 말하지만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착각해서는 안된다. 저마다를 위한 법이나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법집행이어야 하고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의 외면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멸문지화를 자초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관한 사필귀정의 진실이 어떤 그림으로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늘만이 알 일이다.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자. 판단은 그 때까지 유보하도록 하자.
이번 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2010.4.10)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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