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7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이별

이별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자식을, 그리고 남편을 부등켜안고 통곡하는 천안함 유가족들의 모습이 비친다. 안녕의 말조차 나누지 못하고 생사의 공간으로 엇갈려야 하는 이별의 모습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슬픔과 절망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과거의 경험들이 감정이입을 부축이는 탓이다. 덩달아 울컥해지며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이별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몇 번의 이별로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 중 초등학교 시절 내 생애 최초로 이별의 아픔을 느끼게 했던 혜숙이가 떠오른다.
혜숙이는 어머니의 여고(이북의 경기여고라는 평양 서문여고) 동창의 딸인데 나와는 동갑내기로 단짝으로 지내던 사이였다. 그 혜숙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만 서울로 전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땐 왜 그리 슬프고 섭섭했는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이별을 아파하는 유난을 떨었다. 그러다 급기야 열이 올라 병원을 찾는 바람에 어머니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다른 이별도 있다. 집에 유학와 있던 동갑내기 여학생이 있었는데 일정한 기간이 지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이별이었다.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기며 내 시야에서 멀어져가던 그 여학생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을 정도다. 그날 하필 비가 왔는데 여학생이 떠나고 난 뒤 뒷동산에 올라가 비를 맞으며 무슨 시인이나 된 것처럼 폼을 잡기도 했다.
이후의 이별은 대학교 때 교제하던 아가씨와 헤어졌던 일이다.
정초가 되어 집에 세배 온 아가씨에게 아버지께서는 ‘우리 집은 세배 안하는 집’이라는 말씀으로 거부의사를 밝히셨다.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가씨는 한없이 울면서 떠나갔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나는 한동안 심마니라도 된 양 설악산이다 지리산이다 하며 미친 듯 산을 찾는 것으로 이별의 아픔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잘해주지 못했던 동생의 죽음이나 누구보다 나를 친자식 이상으로 아꼈던 이모부, 백부를 비롯한 장인장모와의 사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게 엄청난 슬픔이었다. 하지만 앞서 서술한 이별들은 또 다른 이유로 내 기억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함께 하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힘겨운 슬픔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못할 짓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 겪게 되는 이별은 훨씬 더 날카로운 충격과 오래가는 슬픔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요 근래 정말 가까이 마음을 주던 사람으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았다.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다며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그의 말이 지금도 가슴의 통증으로 남아있다. 너무나 뜻밖이고 이유 또한 석연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원인이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내게 있다는 자책감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혼란의 정도는 심해지기만 한다.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생각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가 내 마음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어야 할 것만 같다. 버선목 뒤집듯 내 속내를 다 드러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돌아선 그의 발길을 다시 되돌려놓을 수 있는 거라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나이에 웬 이별이며 가슴 아픔인지 그저 어리둥절 하기만 하다.
그러나 현실 속의 나는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속절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별이 너무나 싫은데 다른 한편에선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선택을 받아들여 존중할 수 밖에 없다는......
포기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지만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마음을 곧추세워 본다.
내 인연이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면 내게 닥쳐올 이별의 아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두렵다.

인생 자체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긴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너무 쉽게 받아들여지는 풍토가 된 것 같다. 실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되는 등 몰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요즘 세태가 지나치게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통상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의 본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풍토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탓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없지 않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섬세한 나의 성정을 문제시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 새로운 만남 못지않게 기존의 인연에 대해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니 만큼 더 이상 소중한 인연과의 이별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PS: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유가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빈다.
그리고 한 송이 꽃으로 산화해 버린 젊은 영혼들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한다.
(2010. 4.16)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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