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8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죽음의 문턱

죽음의 문턱



대여섯 살 무렵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다.

독감인지 감기인지에 된통 걸려 죽을 것처럼 심하게 아팠던 상황을 말하는 거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어린 내가 “엄마,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까지 했다고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가끔 회상하신다.

나 역시 그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세상의 와중에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내던져진 막막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눈 앞을 어지럽히는 별들의 군무(?)와 제멋대로 오르내리는 심장박동 그리고 깨질 듯 머리를 조여대는 두통 때문에 이대로 쓰러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순간들이 어린 나를 압박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기세를 꺾지 않는 아픔에 겁을 먹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다 막바지 쯤 목울대를 성가시게 하던 가래가 기침과 함께 튀어나와서야 그제서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세상이 갑자기 평온하고 고요히 느껴지던 그 때의 감회가 지금도 기억난다.

이후로도 몇 번쯤 심하게 앓아눕기는 했지만 그 때 만큼 확실히 죽음을 몸으로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하루 온 나절을 앓아 누웠다.

일주일 전부터 온 몸이 쑤시고 약간의 열과 한기 등으로 몸의 이상을 감지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바쁜 스케줄에 쫓겨 별거 아니겠거니 지나쳤던 게 화근이 됐다. 그리고 강제로 할당된 휴식을 이행하라는 처벌(?)이 내게 떨어졌다. 급기야 감당을 못해 링겔을 꼽고 자리에 드러눕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호되게 아프기는 했지만 무위의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세상사나 죽음의 문제 등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고민해 보는 계기를 얻게 됐으니 말이다.

'내가 죽으면 누가 가장 섭섭해 할까? 가슴 아파할까? 내게 주어진 삶이 짧은 시간 밖에 없다면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까? 하늘에 가서 심판관을 만난다면 나는 무슨 포토폴리오로 내 생을 설명하게 될까? '

그렇게 머리 속을 오가는 갖가지 상념에 젖어 있다가 잠이 들었다. 깊은 수면에 빠졌는데 머릿 속에 담았던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인 영상의 형태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천사와 악마가 출몰하는 천당과 지옥이 양쪽 스크린에서 동시상영되기도 했다. 불마차와 아비규환의 채찍질과 월계관 등 수많은 영상들이 교차되는 꿈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다 왔구나...’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지난 밤에 비해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목에서 가래가 튀어나왔다. 덩달아 갑갑하던 목안이 자유를 얻었다. 살았구나 싶으면서 살긴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군살처럼 따라 붙었다.

인간의 출생과 사망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1일 24시간 동안 32만명이 태어나고 16만명이 유명을 달리한다고 한다. 매시간 7000명, 매분 120명, 매초 2명씩 세상을 등지게 된다고 한다.

그런 죽음의 행렬에 누구도 예외는 없다. 단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개인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영역에 속해 있을 뿐이다.

인간이 가장 진실해 지는 순간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죽음의 순간을 향한 항해일 수 밖에 없다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깨달음,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그래서 인생을 함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각성 등에서 얻어낸 부연 설명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죽음이 알려주는 가르침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이론의 여지가 낄 틈새조차 없다는 것이다.



1박 2일의 짧은 ‘와병’의 순간이 오히려 기회가 된 것 같다. 아직 감기가 완전히 장악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자문을 통해 내 인생을 중간점검 하는 계기를 얻은 것 같아 고맙기 조차 하다.

(2010 .4.29)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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