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8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匪石之心

 
匪石之心(비석지심)
선거는 끝났지만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늘 그렇듯 승자는 승리감에 젖어 세상의 절반이라도 얻은 양 들떠있고 패자는 낙선의 충격을 보듬을 염도 없이 주변에서 불거지는 책임공방과 이합집산에 정신없어 하는 모습이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며 우리 국민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마음을 실어주는데 사용한 ‘51%’가 무릎을 치게 만든다.
더도 덜도 아닌 51%의 지지율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한 그 균형감각이 놀랍다.
언제든 마음에 안 들면 투표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다. 무조건적인 지지보다는 여차하면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견제구를 통해 정치권으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도록 복병을 배치한 지혜로움이라니.
덕분에 정치권력의 진정한 소유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불안한 절반의 승리에 안주하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그 경고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싶다.

대단한 반전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선거 결과에 대한 논평이 넘친다.
정치 당사자들도 더 이상 선거가 정치인만의 리그가 아니게 된 현실을 깨닫는 이를 새로운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김해에서의 한나라당 후보 당선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관전평을 남기자면 김해 결과는 유시민에 대한 견제와 단죄의 의미가 담긴 선택이라는 판단이다. 국민 참여당이 국회의원 교두보를 확보하는 기회를 차단함으로 해서 유시민에게 어떤 형태로든 기회를 주는 걸 동의하지 않겠다는, 민주당 중심으로 뭉치겠다는 유권자의 의지가 표출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강원도 지사 선거에서 선거기간 내내 앞서가던 엄기영 후보의 탈락도 되짚어 볼 가치가 있다. 그의 최대 실책은 높은 지지율에 기댄 ‘방심’이라는 생각이다. 강원도민은 정당 선택 과정에서부터 무리수로 시작하고 선거 내내 악수를 두는 그를 외면해 버렸다.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떤 이유로든 한나라당 후보가 된 경위를 진정성으로 설득하고 ‘이광재 싸고돌기’를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시종일관 겸손한 모습으로 이 전지사가 강원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달라고 정부를 향해 호소하고 또 도지사가 된다면 고향 후배인 이광재에게 강원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자문 받겠다며 주민 마음 공략에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적어도 이광재 전지사가 최문순 후보에게 적극적으로 올인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광재를 낙마시킨 한나라당 후보라는 낙인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경기 분당은 많은 사람들이 앞서 전망했듯 미래와 과거가 부딪히는 선거구였다.
그야말로 선거 포스터만 붙이면 무조건 당선이 보장되던 분당에서의 승리는 그동안 산전수전을 겪으며 대권의 꿈을 키우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많은 선물을 안겨준 선거가 됐다. 그의 성공은 과거 한나라당 출신 도지사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그가 어느 당 후보인지 유권자는 물론 뉴스 앵커까지 혼란스러워하는 해프닝이 목격되기도 했으니 하는 말이다.
오랜 동안 절치부심하며 준비해 왔던 강재섭 후보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정부 여당 실정에 대한 국민 불만이 팽배해 있었던 만큼 중앙당을 배제하고 철저히 로컬 중심의 선거를 펼쳐야 했는데 야당 대표를 상대로 하다 보니 전국적인 이슈 지역으로 부각돼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을 것이다. 또 30%대까지 추락한 정당 심판에 표심이 작용하다보니 덤터기를 쓴 국면도 있다.
 
이제 선거는 끝나고 누구는 해외특사로, 누구는 국회의원 뱃지로 또 누군가는 풍찬노숙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지금이다.
무엇보다 낙담과 좌절로 신음하고 있을 얼굴들이 눈에 밟힌다.
지나간 일은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지만 앞으로의 일에서만큼은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이 있기에 우리에게 늘 ‘새로운 출발’이 존재할 수 있는 거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선 당장은 진로를 고민하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도 아닐 터다.
돌멩이처럼 함부로 살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기에  비석지심(匪石之心)의 자존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다.  더 이상 지나간 일에 매달리지 말고 내년 총선과 대선 가도에 저마다의 꿈을 싣고 힘찬 발걸음을 떼어 볼 일이다. 더 멋진 플레이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치판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우리 모두 함께 경쟁해 보자.
                                                   (2011. 4.28)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27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봄비가


봄비가

                                   
                                       -홍문종-



서럽다
함은
누구몰래 내림이야


시리다
함은
뼈속까지 내림이야


야속다
함은
흩뿌리며 내림이야


흐리다
함은
눈물함께 내림이야


아쉽다
함은
빈가슴에 내림이야


손꼽다
함은
너와나의 내림이야


기쁘다
함은
가이없는 내림이야.


고맙다
함은
우리함께 내림이야


예쁘다
함은
사랑함께 내림이야
(2011.4.27)

2011년 4월 2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돌아온 장고

돌아온 장고
드디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공식적인 4.27 재보궐 선거전이 끝났다. 
유난히 치열했고 한 치 앞도 예상 못할 혼전의 연속이었던 ‘13일’ 이었다.  특히나 선거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한계치를 시험하는  극한의  시간대였을 것이다. 같은 경험(선거 출마)이 있는 나로서도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유난히 판세 분석을 위해 고려해야 할 선거판 변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세월이 흐르고 선거에 나선 후보의 면면은 달라졌어도 표심을 잡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선거 행태만큼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흑색전선, 선거법 위반 시비 그리고 쌍방 고소고발전 등의 단골메뉴가 돌아온 장고의 기개(?)로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선거법 위반 논란이 유난히 극심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임기 말의 레임덕 방지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정부 여당의 방어심리와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대선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기세를 세우고자 하는 야당의 파상공세가 충돌한 선거인 만큼 오히려 과열되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라 하겠다.
언론 보도대로라면 치명적 상황으로 적발된 선거법 위반 사례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말고 식의 흑색선전이나 비방은 고전에 속하는 것이고 교묘한 심리전까지 동원된 신기법(?) 선거전략도 등장했다. 심지어 ‘(예배참석한 후보에게}기름을 부어달라’고 축복기도한 교회 목사님까지도 선거법 위반 구설에 오를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정이 이런 만큼 막상 선거의 승패가 결정된다 해도 ‘선거법 재판’이라는 2라운드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이럴 경우 당선되더라도   전임자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재보궐 선거의 원천적 원인 제공자로 등극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처럼  선거법 위반이 어떤 식으로 처리되는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는 순전히 실전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의 결과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가 끝나기만 하면(이기는 선거든 지는 선거든) 선거법 시비에 휘말려 재판을 한두 번 받아본 게 아니니 오죽할까 싶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너무나 강한 초강력 변신 기제- 내게 고착된 선거법 위반 재판부에 대한 느낌이다.
특히 지난 17대 당시 총선에 낙선하고 섰던 선거법 위반 재판정은  유난히 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1심에서는 선고유예 판결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재판결과가 뒤집혀버렸다.  그리고 2심과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250만원 벌금형으로 최종 판결되는 과정까지 온갖 ‘일’들이 있었지만 새삼 거론하기조차 싫어서 생략하겠다.
그 중 압권은 당시 여권 실세였던 고소인의 '의견서‘라 하겠다.  어떤 불안감이 선거에 이긴 그로 하여금  나의 처벌에 집착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압력성 ‘의견서’(나를 엄히 다스려 달라는 내용의)를  각각의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지역에서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그나마 끈질기게 변호사라도 구하고 상고 행위라도 할 수 있었던 내가 그 정도였다.  
 일반인의 경우였다면 어땠을까.
 
선거법을 지키는 일은 당선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사범을 관장하는 사법부의 공정성이라 할 것이다. 선거법 위반에 대한 법원의 공정한 판결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중추적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요원한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양형기준을 비웃기라도 하듯 판사마다 들쭉날쭉한 판결이 문제다.
실제로 선거법이라는 게 힘 있는 쪽에는 한없이 만만하지만 힘없는 쪽에는 엄청나게 무서운 족쇄가 되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선거법 자체를 경시하게 되고 또 선거법 위반 사범 스스로도 죄의식은 커녕 무슨 독립운동이나 한 것처럼 왜곡하는 현살까지 나타나고 있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되겠지만 특히 선거법은 더더군다나 그 평등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국가가 지켜내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이 있어야겠다.
평등해야 할 사법부가 ‘힘’의 입맛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삼권분립의 훼손 뿐 아니라 기형적인 정부를 방조한다는 현실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과 양심에 입각해 스스로의 공정성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해졌다 할 것이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조만간 선거법 위반의 광풍이 몰아칠  것 같은 예감이다. 
어떤 식으로 정의로운 사회가 자리매김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2011. 4. 26)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25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봄비

봄비
                                            -홍문종-
하얀 목련
흐트러지고
화려한 벗님마저
나동구는데
무심한 봄비는
세월을
재촉하는구려

그리운 님이여
사랑하는 님이여
이내 몸이 섧다한들
그대 설움만 하겠소만

어찌밉다
버리겠소
어찌섧다
잊히겠소

돌리소서
돌리소서
사랑하소서
어여삐 여기소서
  (2011. 4. 26) 

2011년 4월 24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고용세습



고용세습
역시 인간의 욕심이 문
제다. 
탐욕 때문에 매번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면서도 흔쾌히 놓을 수 없어  한계에 노출되는 딜레마가 반복되는 것 같다.
탐욕은 패착을 초래하게 돼 있는데  이는  우선  당장  현대자동차  노조의 자가당착으로  현실에서 확인하고 있는 바다.
노조는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가 원하면 정규직 신분을 보장해 달라는, 이른 바 고용세습 단협안을 사측에 요구했다는  소식에 비난 여론이 봇물을 이룬다. 자기 배만 부르면 된다는 식의 탐욕을 부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귀족 노조’라는 곱지 않은 별칭을 달고 있는 처지다.
더구나 그동안 경영권 세습을 비난하던 행보 때문에라도 노조의 고용세습 요구는 명분도 설득력도 없다.
도대체 이들의 이기적인 요구가 외교통상부의 장관 딸 특채 사건이나 내로라하는 재벌가의 2,3세 경영 세습과 무엇이 다른 지 묻고 싶다. 자신들이 그토록 입에 거품을 물고 반사회적 이슈로 몰아세우던 사안들과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이중적 행태였던  것이다. 
 
현대 자동차가 누구나 적을 두고 싶어 하는 좋은 직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고용세습이 기업은 물론 당사자들에게 생산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기회가 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정당한 경쟁 구도는 구성원 저마다의 개인적 기량을 활성화 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거치지 않고 특혜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양산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 소양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현대자동차가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기까지는 구성원의 역할이  지대했다. 
구성원의 뛰어난 경쟁력이 현대 자동차를 세계 시장 반열에 우뚝 설 수 있게 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앞으로 국제사회의 경쟁 가도는 점점 더 거세지고 한국에  대한 압박 역시  더 심해지는  추세인데  능력과 상관없이 고용세습이 이뤄진다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돼 있다.
노조의  집단 이기심이  심각한 국가적 손실 차원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배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식이 고우면 떡보다 매를 들어야하고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자식 훈육의 기본이다.  그런 측면에서  고용세습을 해석하자면  기업의 안녕 뿐 아니라 자식들의 미래에도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  될 게 분명하다.  노조는  자식의 취업을 걱정하면서도 특별 채용이 자식들의 경쟁력을 퇴화시키게 될 가능성은 간과하는 우를 범했다.   쇠를 부식시키는 ‘녹’처럼 생존의 치열함을 알지 못하는 무사안일함이 어떤 식으로 기업은 물론 자식들을 망가뜨리게 될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부모의 과잉 애정이 자식들의  앞날에 장애가 되는  부작용이 속출하는 요즈음이다.  
더구나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저 내 자식의 안위만 챙기려드는 천박한 이기심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마비된 양심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직난에 방황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저버려서는 안되겠다.
그들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최소한 우리 사회가 정의의 질서아래 공정하게 순환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그것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우리들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고용세습.
탐욕의 자화상 앞에서  문득  할 말을 잃게 된다.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화끈 거린다. 
코미디도 아니고...단순한 해프닝으로  그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많은 이들이 격분하고 거센 비난을 퍼부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2011.  4.  23)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2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진정성의 힘

진정성의 힘 
살아가면서 진정성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조용필의 소록도 공연도 그랬다. 진정성에는 반드시 감동이 따르기 마련인 법칙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작은 약속을 잊지 않았던 슈퍼스타의 진정성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다.
그런 점에서 불발에 그친  ‘4.19 사과 파동’은 아쉬움이 남는다.
사과를 전하려던 이승만 전 대통령 측의 뜻이 4·19혁명 관련 단체의 공식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다. 
참배를 위해 묘역을 찾은 이 전 대통령 측 일행과 이를 저지하려는 희생자 유가족들 사이에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반백년 세월에도 엇갈린 갈등의 고리를 풀어내지 못하고  등을 지는 돌아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얼마나 깊은 원한이기에 오랜 세월에도 앙금이 남은 걸까 싶지만 ‘진정성'을 항변하는  희생자 측의 입장을  떠올리니  생각이  많아졌다.  진심을 담아   절박한 심정을  덧붙였다면  상황은 분명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찾았던 강남의 한 공연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부제로, 좋은 소비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 소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삶을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를 담아 진행된 음악회(Social Responsonsibility Concert)였다.
이날의 출연진은 김현철, 이치헌과 벗님들, 김세환, 변진섭씨 등 네 명의 가수들이었는데 저마다의 히트곡을 부르며 무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무대  분위기가  제일 좋았던 가수는 뜻밖에도 최고령(?)인 김세환씨였다. 48년생이라는 적지 않은  연륜의  그가 그 날의 출연진 중에서  군계일학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통기타 붐을 일으킨 세시봉 멤버라는 후광 효과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진정성이 관객에게 어필한  점이 주효했던 건 아닐까 싶다.  단순한 매뉴얼이나 테크닉 위주의 프로세스를 넘어 진심을 담은 공연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케이스라고나 할까.
 어차피 좋은 취지의 프로모션과 참여하는 사람들이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더 확실하고 분명한 결과를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에 혼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가수가 됐건 선생이 됐건 정치인이 됐건- 그 작업은 얄팍한 테크닉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최선이 함께 어우러진 진정성은 최고의 가치창출의 보고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기계의 출연을 허용했다. 머지않아 가정용 로봇이 인간의 가사노동을 대체하게 된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테크닉만으로 우리 사회에 진정한 감동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승복- 우리 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를 지켜내고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감동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감동이 없고 재벌이 근로자들에게 주는 감동이 없다.
카이스트 재원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거나 남편을 죽이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피할 수 없었던 여인의 비극적인 삶도  감동의 부재로 인한 막막함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의 경우, 빈곤국을 위한 기금이나 에이즈 퇴치, 반전 운동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를 개진하고 확산시키데 앞장서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효과도 큰 것 같다.  점차 그런 문화들이 만들어지고 사회적 참여와 호응이  커지는 분위기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단순한 돈벌이보다 사회적 취지에 확신을 갖고 관심을 갖는 연예인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기는 싫다
어렵지만   이 세상을  진정이  넘치는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로 거듭나는 사회를 꿈꾼다면  지나친 이상주의일까?
묻고 있지만  진정성에 대한  확신이 더 크다.
                                                           (2011 . 4. 20)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1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우리 한복이 어떻다고?

우리 한복이 어떻다고?

신라호텔이 대형사고를 쳤다.
한복과 트레이닝복의 입장을 제한하는 드레스 코드를 내세워 20년째 한복을 입어 온 한 한복연구가의 뷔페식당 입장을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 공분을 사게 된 것이다. 이부진 사장이 당사자를 찾아가 사과하는 등 사태 수습에 적극 나서는 모양이지만 문화 사대주의라며 쏟아지는 비난을 수습하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대한민국 땅에 우리의 전통의상인 한복이 대형호텔 식당 입장을 거부당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니, 그것도 트레이닝복과 동격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이 그저 놀랍다.
 
아니, 우리 한복이 어떻다고?
경위야 어떻든 신라호텔에 쏟아지는 여론의 뭇매는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한복은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만큼은 어떤 이유로도 외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존중받을 이유가 충분한 우리 전통 문화의 대명사다.
그런데 우리를 지배한 문화 사대주의가 문제다. 근거도 없이 무조건 우리 문화를 경시하는 풍조를 조장하고 있어 큰일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카이스트 영어 강의도 우리 것이면 무조건 하수로 치부하려 드는 우리의 고질적 현실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전통문화로 국격의 한축을 세우고 있는 유럽을 견주지 않더라도 자국의 문화를 홀대해서는 결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문화 사대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회적 반성이 필요한 이유도 되겠다.
사람마다 각자의 특질을 갖고 있듯 국가 역시 그 안에 배어있는 역사와 전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나름대로의 한 획을 그을 수 있게 하는 저력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자기 것을 사랑하지 않거나 경시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결국 자기 것도 모르고 남의 것도 알 수 없게 될 테니까 말이다.
 
갈수록 세계무대에서 아시아와 더불어 우리의 가치들이 각광받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이나 전통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이 때, 우리 스스로 우리의 것을 백안시하다 세계 언론에까지 웃음거리로 등장하게 된 상황이 당혹스럽다.
그것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그룹인 삼성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말이다.
한복을 입으면 식당 입장이 불가하다는 결정이 설마 최고 CEO의 생각에서 비롯되진 않았을 터다. 모르긴 몰라도 중간 관리자인 뷔페 레스토랑 CEO 정도의 선에서 결정된 사안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론 최고 CEO의 판단과 다를 바 없는 효력을 발생시켰다. 그 판단이 호텔은 물론 기업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결정타로 대두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번 사태로 이른 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부디 대통령이 됐건 재벌이 됐건 최고 CEO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중간 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신중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젹을 몰라도 나를 알면 일전일승, 적도 알고 나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자기나라 문화도 이해 못하는 기업이 절대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다. 오히려 망신을 자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남을 알기 전에 스스로에 대해 먼저 알고자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스스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엇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주도면밀한 사전 계획이 성공의 발판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한복 연구가 이혜순 선생께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사과드리며 아름다운 한복 개발을 위해 더욱 더 정진해주길 부탁드린다.   저부터라도 한복 사랑에 힘을 보태겠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겨울, 어머니 강권에 못 이겨 한복을 맞춰 입을 기회가 있었는데 일단 입으면 따뜻하고 편안한 것은 물론 기분까지 좋아져서 이제는 겨울에 한복을 자주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차였다. 갈수록 한복을 입는 사람이 줄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이참에 한복입기 운동이라도 벌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신라호텔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비난보다는 이번 사태가 세계무대로 나가는데 타산지석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국익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다. 정말이다.               (2011 . 4. 18)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1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4.27 선거 관전법

4.27  선거 관전법
공식일정에 돌입한 재보궐 선거전으로 정국이 들떠있다.
그러나 달아오른 건 표심경쟁에 조급증을 내고 있는 후보군뿐이다. 
세상에 더 없는 ‘일꾼’임을 자처하는  구애에도 불구하고 정작 유권자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각 선거 캠프마다 표심을 읽어낼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 넘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어느 때보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야 할 것 없이 그만큼 국민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은 정당이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유권자의 선택이 어떤 식으로 표출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12년 대선 지형의 변수를 미리 탐색해볼 수 있는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정당 정치는 선거 때마다 영남이면 영남, 호남이면 호남 등 지역에 따라 ‘텃밭’이라는 이름으로 고착돼 있었다.  대체적으로 그 지역의 투표 성향이 일정한 틀을 유지함에 따라 투표 결과에 대한 예측 또한 가능했다.
어떤 의미에서 유권자들을 지역갈등의 볼모로 만들어 권리행사를 제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선거가 될 것 같다.
재보궐 선거의 특수성 때문에 일반적인 정치이론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예상치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의 결론이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럴 만한 징후와 조짐들이 눈에 많이 뜨이고  있다. 
이른 바 텃밭으로 믿고 있던 곳에서의 ‘이변’이 일어난다면?
여야 구분없이 특정 정당의 일방적인 승리 개념보다는 엄청나게 큰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질서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동인으로, 구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메시지로서 존재하는 중차대한 역할로 말이다.

변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거센 물결이 기존의 정치 질서나 사회 구조를 허물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어떤 의미에서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비전과 그 가능성에 대해 이미 결론이 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내게 선거 판세를 예측할 수 있는 전문적 감각이 있거나 해당 지역 분위기를 세밀하게 연구한 결과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지켜 온 묵은 가치나 질서를 외면하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미 그것들을 지켜야겠다는 사람들의 각오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한 사인들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며칠 전 여당 초선의원으로서 몸싸움 거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법안심사소위에서 기권표를 던져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부결시킨 홍정욱 의원의 경우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결과론 적으로 허를 찔린 셈이 됐지만 누구도 당론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왔던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의원 개인의 소신을 선택한 홍의원을 제지하지 못했다. 그의 행보에 대해 당 내부의 복잡한 셈법과는 별개로 여당내 기류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거라는 관측도 있고 용기와 소신의 주역이 되어 민심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선거가 여야에 보내고 있는 시그널은 그 어느 때보다 독특한 것 같다. 
조금만 관찰하면 양 진영 모두 이기는 선거를 치룰 수도 있고 동시에 패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 결과가 특정 정당에만 유리한 국면을 제공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어느 편에 속해있건 선거판 징후들을 잘 분석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를 재보궐이라는 한정된 틀에 가둬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번 선거를 통해 총선과 대선을 볼 수 있는 진영이야말로 더 큰 의미의 선거를 예비할 수 있음이다. 
그나 저나 유권자의 권리행사는 투표 참여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자.                                              (2011 . 4. 17)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15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수락에 오르니

수락에 오르니

                                           -홍문종-
봄의향기 손짓하나
하루이틀 차일피일
붉은달을 친구삼아
물떠는산 야심한밤

오랫만에 만남이라
기쁘기도 긴장되도
조심조심 살피면서
깔딱고개 숨채우고


안개향연 불빛노래
무릉도원 영겁세월
흥겨워서 노래하니
어깨춤을 덩실덩실


바위산을 곧추올라
바위줄을 도움쇠줄
이리죄고 저리죄고
지난세월 움켜쥐고


수락산에 올랐어라
천지신명 하늘나라
붉은달로 반겨주니
벅찬가슴 복받치고


수락산을 내리는네
이슬소리 소리없이
우박소리 소리있이
내갈길을 재촉하네

미끌리듯 이끌리듯
허위허위 내려앉아
수락산을 돌아보며
웃음지며 이별이여

천년세월 만년세월
이곳에서 굽어보며
오욕칠정 수락산에
고이고이 맏겨뒀네


(2011.4.16) 




2011년 4월 1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청와대

청와대
대통령이 배려한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 헌정회 일원으로 다녀왔다.
올해 백수를 맞으신 송방용 원로회의 의장님을 비롯해서 양정규 헌정회장 등 많은 전직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는데 나보다 젊은 연배는 한 둘에 그칠 정도로 연륜이 넘치는 자리였다.
덕분에 오래도록 뵙지 못했던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구나 싶었다. 그 옛날 한 시절을 풍미했던 선배님들이 세월에 순응하고 있는 모습이 남다른 감회를 불러왔다. (그나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형편이 나은 분들이 참석했다는데)
대통령과 청와대 모든 수석의 깍듯한 예우 속에 화기애애한 덕담이 녹아든 점심은 그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을 만족시키는 분위기였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정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삶의 편린을 통해 인생에 대한 깨달음 몇 가지를 건지는 수확이 있었다.
가장 먼저, 살면서 남들하고 척을 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 인연이 대부분인 자리에서조차 이전에 어떤 관계였는지에 따라 조우하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좋은 관계에 있던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찾아와 안부를 물으며 옛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반면 과거 도당 위원장 시절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공천 과정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고(나로선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에도) 생각하는 분은 끝까지 나를 외면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불편한 인연이 되지 않도록 사람들을 더 많은 신중함으로 대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들었다.
 
다들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참석자 중 상당수가 영어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세상사가 다 그렇듯 일을 하다가 정치적 대립 관계로 야기된 불가피한 어려움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실제로 정치현장에서 ‘높이 나는 새’가 표적이 되어 뜻을 펴지 못하고 ‘제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살벌한 정치현장 논리가 존재하는 한 아마도 동서고금을 막론한 불변의 현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독이 된 결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힘이 없었다면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시도 자체도 시작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힘이 있을 때 몸가짐, 마음가짐을 더 잘해야 하는 이유를 새삼 확인하게 됐다.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용비어천가’도 부담스러웠다.
물론 대통령을 예우하고 존중하는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예의다.
그러나 대통령 입맛에 맞추려는 의도로 도가 넘치는 용비어천가는 이제 그만 둘 때도 됐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헌정회 회원만큼은 대통령께 도움이 되는 바른말을 전해야 할텐데 수사 수준을 넘는 용비어천가가 남발되는 풍경은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이래서 권력을 잡고 싶어 하고 한번 잡은 권력은 놓고 싶지 않은 건가 싶기도 하지만 당사자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옛날 초선 의원 시절,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을 때도 그런 풍경이었다.
당시 신출내기인 나와 함께 건배사에 간택(?)된 거물급 중진의원이 대통령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술잔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어 거물로 그를 우러러보던 우리들의 눈높이를 한단계 낮추게 만들었던 쓴 기억이 있다.

(다른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민심과 격리된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안타까웠다. 대통령이 자신감을 갖고 국정에 임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일방통행식일 때는 누구보다 대통령 자신부터 불행해진다는 사실은 역대정권의 대동소이한 시행착오를 통해 입증된 바다.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청와대 수석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겠다. 대통령께서 국정운영의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길 바라는 건 그들 행보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명운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현실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노력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모름지기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제갈공명의 묘책은 아니더라도 진정성 있게 고언하는 참모진들의 역할을 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불행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2011. 4. 15)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1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이상한 빈소


이상한 빈소


 
이래저래 인연이 깊은 분이 별세 하셔서 상가를 찾았다.
고인의 장남과는 국회 교육위원 때부터 친분이 있었고 사위와는 하버드 동문회장으로서 예를 갖춰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상가에서 상주인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빈소가 두 곳이었다.  가족 간 다툼으로 사이가 틀어진  아들과 유가족(사위를 포함한)이 각각 다른 곳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 보도로 이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겪고 있자니 황당했다. 다른 문상객들도 이 웃지못할 정경 앞에서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불화를 겪는 가족 공동체를 접하는 게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닌 세상이 됐다.
얼마 전에도 한 상가에서   고인의 아들 딸이  유산을 놓고 조문객은 안중에도 없이 소유권을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씁쓸했었다. 
이른 바 성공한 집안일수록 불화의 정도가 더 심하고  지독하고 비정한 상황으로 전개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서로의 입장을 챙겨 듣다보면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섭섭함이 깊은 골을 만들다 보면 회복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역사에서도 백제 견훤 부자,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들, 조선 개국 초기 이성계 이방원 부자와 형제 등 골육상쟁 흔적을 남긴 선인이 많다. 크고 작은 사화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재산이 많고 권력이 클수록 가족 간 다툼의 형태도 한결 살벌하고 치열해지는 것 같다. 근래 들어 수습 국면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왕자의 난으로 대변되는 현대가의 오랜 내분도 비슷한 케이스라 할 것이다.

이번 일로 상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고 돌아가지만 개인적 사정을 들여다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인간의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일상을 통해 확인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 스스로가 갖는 선민적 자긍심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인간의 나약한 실체를  인정하게  된다.  권력이나 재물 앞에서 천륜의 정이 무너지는 것도 인간의 무기력 수치의 한계를 드러내는 반증으로 보인다. 살아가면서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나 지침을 정하고 추구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모든 사람이 바라기는 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잣대를 다 충족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이다.
 
좀 더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선과 악의 기준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차원의 고민을 통해 걸러진 잣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 각 구성원들을 좀 더 전향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사회 각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찾아야 할 이데아를 제시하고 그 방향을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기준이 있다. 인간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가치나 이익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우리의 법이나 도덕, 생활지침 등에 포함시켜야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실례로 현대 사회에서 가족 분쟁의 단골 메뉴가 되다시피 한 유산만 해도 그렇다.
합리적인 배분이 보장된다면  유산다툼으로 인한 가족분열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있다면 생전에 미리 재산 배분을 하는 거다.  대신 일정한 분배나 이양이 끝난 이후에는  절대로 간섭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모자식 간이건 형제 간이건 재물이나 권력을 가지고 다투게 되는  인지상정을 인정하는 선에서 출발점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 일이 참 그렇다.
가족 간 분쟁으로 생전에도 편치 않으셨을 텐데 고인이 되어서까지 볼썽사나운 분열의 중심에 서게 됐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다.   저 세상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내시길 빈다.
                                                                (2011. 4.  13)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11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분당대첩

분당대첩 
적도 없고 동지도 없는 곳, 정치판이 알 수 없는 곳이라는 건 맞는 말인 것 같다.
상상 못할 일들과 조우하는 상황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기 일쑤이니 말이다.
과거를 돌이키자면 YS는 최고로 올라봐야 총리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됐고 호남 지분밖에 없는  DJ는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장담이 난무했지만 그 역시 대통령이 됐다. 이명박, 노무현 두 분의 전 현직 대통령의 경우도 15대 국회에서 동료의원으로 함께 활동할 때만 해도 그들의   '대통령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4.27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격전지 '경기 분당을' 상황만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 강재섭 전대표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분당대첩' 상황을 예견했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몇 번의 엎치락뒤치락 과정을 거치더니  두 사람의 결전이 전격 결정됐다. 
건곤일척의 전운이 감도는 싸움터도 싸움터지만 두 후보 측근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이 무슨 인연인가 싶기도 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당대표를 뽑는 당내 선거에  나란히 출전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여야 후보로 엇갈려 자웅을 겨룬다며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두 후보와 개인적으로 깊은 연을 나눈 적이 있는 나로서는 분당을 보궐선거를 지켜보는 심정이 특별하다.
손 대표로 말하자면 과거 내가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경기도지사를 지낸 분이다.  해외여행을 함께 다니는 것은 물론 당 단합대회나 출판 기념식장 단골 게스트로 참석해 자리를 함께 하는 일 등으로 정치판 인연을 나눈 사이다.
강 전 대표와의 관계도 이에 못지않다. 지난 2006년 당내 선거에서 그를 대표로 만들기 위해 힘쓴 사람 중 하나로 머리를 맞대고 정치적 미래를 함께 논의하기도 했고 새벽길을 달려가 부친상을 당한 그를 위로한 기억도 있으니 보통은 넘는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두 사람이 지금  정치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으니  정치가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람이 살다보면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걔 중에는 좋은 인연도 있고 악연도 있다.
조선의 킹메이커로 훗날 영의정까지 올라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한명회의 원래 직업은 경덕궁 문지기였다. 
당시 그 누구도 한명회의 앞날을 예견했던 인물이 없었다. 심지어 동네 모임에서조차 한명회를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한마디로 그는 왕따였던 것이다. 그러다 한명회의  시대가 되자  그 때 한명회를 무시하고 따돌렸던 무리들이 크게 후회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출세의 도구로 삼기 위해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건 아니다.
다만 하나하나의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습관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특히 학교 교육에 있어 서로 돕는 협동정신이나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심은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주 가끔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획기적인 '활로'나 '치명타'의  인연을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꼬이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고 그나마 온통 헝크러지기도 하고....
그런 인연들이 모이다 보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때 그때 구미에 맞게 편리함만 앞세우면 안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그런 인생은 너무 뻔하다.  큰 낭패를 초래하게 되기 일쑤인  결과가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라면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하려드는 모습을 도처에서 보게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통된 문제점인 것 같아   편치 않은 마음이다. 
                                                           (2011.  4.  11)                      
                                                           ....홍문종  생각                       

2011년 4월 1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편견없는 소통을


편견없는 소통을




막내의 생일 축하를 겸해 가족이 모여 영화를 관람했다.
'내 이름은 칸’이라는 인도영화였는데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특별히 내가 젊음을 보냈던 Sanfrancisco를 배경으로해서 즐거움이 더했다.
2시간 30여분의 상영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영화였다.
모처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난 기쁨이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듯 했다.
 
영화의 긴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폐 증후군 환자지만 천재적인 지적 능력과 따뜻한 감성을 소유한 주인공 칸의 세상 바라보기라고 할 수 있다.   911로 세상이 바뀌면서 궁지에 몰리게 된 선량한 무슬림이 편견에 가득찬 미국사회를 향해 외치는  일갈이라고나 할까.
칸은  911 테러로 세상이 바뀌면서 행복했던 가정이 풍비박산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교도라는 이유만으로 테러리스트라는 오해와 편견에 내몰리게 된다. 운명적 사랑이었던 아내로부터 버림받고 범법자로 추궁받는 신세로까지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숱한 역경을 극복한 끝에 대통령을 만나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밝히라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다.  
대통령을 만나 “My name is Khan, I am not  terrorist"라고 외치며 자신의 결백을 밝히는 칸의 미션 수행 장면은 개인적으로 영화의 백미로 꼽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관객 역시 이 대목에서 나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향한 칸의 순수한 열정이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감동의 여파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칸의 청정무구한 심성을 통해 정화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잣대를 갖는 것도 이 영화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덤이라 하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편견 없는 소통’을 떠올리게 되는 건 아마도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편견을 향한  일갈, 그리고 갈구.
인간의  편견은 무섭고 그  해악은  말로 미처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다.  
특히 종교적 편견은 그 정도가 심하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를 파멸시키는  독성을 품고 있다는  측면에서 아무리 경계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편견을 부축여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조심해야겠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갈등도 모자라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서로를 향해 더 깊은 골을 파고 있는 배경도 따지고 보면 911이 초래한 편견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근본 취지로 내세우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갈등과 반목을 불식시키지 못하는 배경도 따지고 보면  편견의 역할이  있다.  종교 간 갈등을 부축이고 있는 것이다.
종교 뿐 아니다.
지방색이나 학력, 금력 등을 뒤집어쓰고 있는 편견의 굴레  역시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파생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음습하게 전하고자  하는 편견의  메시지에 대해  옥석을 구분하는 혜안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겠다.

칼날을 이기는 부드러움.
별 기대도 안했는데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통쾌한 영화를 만나 반가웠다.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표피적   영화들이 쾌락 용도의   주가를 높여가는 요즈음  영화판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드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종교적  편견으로 사분오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한 복판에서  만난 수작이라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 
섬짓한 루머가 지배하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고찰은 개인적으로도  오래  추적해 온  테마이기도 하다.
능력만 된다면 편견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  오랜 생각이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11. 4.10)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