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이상한 빈소


이상한 빈소


 
이래저래 인연이 깊은 분이 별세 하셔서 상가를 찾았다.
고인의 장남과는 국회 교육위원 때부터 친분이 있었고 사위와는 하버드 동문회장으로서 예를 갖춰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상가에서 상주인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빈소가 두 곳이었다.  가족 간 다툼으로 사이가 틀어진  아들과 유가족(사위를 포함한)이 각각 다른 곳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 보도로 이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겪고 있자니 황당했다. 다른 문상객들도 이 웃지못할 정경 앞에서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불화를 겪는 가족 공동체를 접하는 게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닌 세상이 됐다.
얼마 전에도 한 상가에서   고인의 아들 딸이  유산을 놓고 조문객은 안중에도 없이 소유권을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씁쓸했었다. 
이른 바 성공한 집안일수록 불화의 정도가 더 심하고  지독하고 비정한 상황으로 전개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서로의 입장을 챙겨 듣다보면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섭섭함이 깊은 골을 만들다 보면 회복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역사에서도 백제 견훤 부자,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들, 조선 개국 초기 이성계 이방원 부자와 형제 등 골육상쟁 흔적을 남긴 선인이 많다. 크고 작은 사화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재산이 많고 권력이 클수록 가족 간 다툼의 형태도 한결 살벌하고 치열해지는 것 같다. 근래 들어 수습 국면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왕자의 난으로 대변되는 현대가의 오랜 내분도 비슷한 케이스라 할 것이다.

이번 일로 상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고 돌아가지만 개인적 사정을 들여다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인간의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일상을 통해 확인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 스스로가 갖는 선민적 자긍심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인간의 나약한 실체를  인정하게  된다.  권력이나 재물 앞에서 천륜의 정이 무너지는 것도 인간의 무기력 수치의 한계를 드러내는 반증으로 보인다. 살아가면서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나 지침을 정하고 추구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모든 사람이 바라기는 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잣대를 다 충족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이다.
 
좀 더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선과 악의 기준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차원의 고민을 통해 걸러진 잣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 각 구성원들을 좀 더 전향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사회 각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찾아야 할 이데아를 제시하고 그 방향을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기준이 있다. 인간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가치나 이익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우리의 법이나 도덕, 생활지침 등에 포함시켜야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실례로 현대 사회에서 가족 분쟁의 단골 메뉴가 되다시피 한 유산만 해도 그렇다.
합리적인 배분이 보장된다면  유산다툼으로 인한 가족분열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있다면 생전에 미리 재산 배분을 하는 거다.  대신 일정한 분배나 이양이 끝난 이후에는  절대로 간섭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모자식 간이건 형제 간이건 재물이나 권력을 가지고 다투게 되는  인지상정을 인정하는 선에서 출발점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 일이 참 그렇다.
가족 간 분쟁으로 생전에도 편치 않으셨을 텐데 고인이 되어서까지 볼썽사나운 분열의 중심에 서게 됐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다.   저 세상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내시길 빈다.
                                                                (2011. 4.  1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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