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8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카이스트

카이스트
지난 2006년 '공부하는 학생, 연구하는 교수'라는 핵심구호를 앞세우고 화려하게 등장한 서남표 총장이 사실상 위기국면에 접어든 모양새다. 최근 스트래스를 이기지 못한 카이스트 재학생들의 연이은(이번이 4번째) 자살이 보도되면서 서총장의 카이스트 개혁카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서남표 총장이 카이스트에 취임하면서 맨처음 도입한 성적 차등 등록금제와 100% 영어 수업 등 무한 경쟁체제에 따른 압박감이 학생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모는 주범이라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그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될 조짐이다.
특히 ‘행복하지 않다’며 이번 자살사태에 대한 서총장의 책임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선 카이스트 재학생들의 반발 기류가 주위의 동조를 얻으며 심상치 않은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급기야 여론에 밀린 서청장이 개혁정책 폐지 등 백기를 든 모양새지만 사퇴의사는 없어 보이니 갈등의 소지는 여전한 셈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무렵 인근 MIT 에서 교수로 명성을 날리던 서남표 총장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당시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서남표 교수처럼 살아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이로운 존재감을 발하던 그다.
지난 2006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카이스트 총장으로 취임하던 그를 본 이후 11년 뒤인 지금 그를 다시 보고 있다. 
한 때는 미국식 무한 경쟁 틀로 카이스트의 경쟁력을 제고시킨  성과를 낸 주역으로 그에 대한 언론의 찬사가 줄을 잇던 시절 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방에서  그를 비난하며 물어뜯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형국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그의  고독한 초상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카이스트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 동감한다. 늦은 밤까지 무한 경쟁의 희생물로 전락해가며 자신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젖은 채 살아가는 영재들의 두려움이 역력하다.  천재들의 창의성이 틀에 박힌 학점 계산기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답답한 부조화라니.  
물론 서 총장을 몰아치는 초조함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경쟁력을 갖춘 카이스트의 미래르 향한  집념으로  학생들을 혹독하게 스파르타식으로 담금질하고 있는  그의 의도까지도.
그러나 학생들을 죽이면서까지 더 크게 내세울 수 있는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가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이유 아닐까 싶다.
 
아이러니한 건 스파르타가 그렇게 혹독한 훈련으로 강성을 추구했어도 결국 그리이스에 패하고 만 역사적  사실이다.
막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의사의 판단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이고  누구든 7살만 되면  군대에 보내 노숙하거나 옷을 짓는 법 또는 도둑질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을 가르쳐  강한 국민을  양성시키기 위해  용을 쓴 스파르타가 힘보다는 정신력을 중시하는 그리스에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대단한 '명운의 조화'가 아닐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이 사고하는 존재임을 알겠다.  
트레이닝만으로 절대 인간이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겠다.   인간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인간 됨됨이부터 준비돼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들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멀쩡한, 아니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영재들이 무엇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을까.  죽어야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아이들이 죽음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가슴 속 외침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해가 지고나면 음습한 그림자가 던지는 파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지나치게 유약한 양육환경이 문제가 되는 걸까?

곤경에 처한 서남표 총장에게  한 말씀 드리자면 지나치게 강한 것은 부러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싶다.  
이상도 좋지만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 이상은 인생에  참 의미를  부여할 길이 없다.
지나친 경쟁심만 조장하는 교육은 자칫    협력할 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에 찌든 괴물을 양산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인재로 성장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렇다.
경쟁도 좋고 실력도 좋지만 지금은 참다운 인간성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다.  최소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식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만  알아도 절반은  이미 성공한 삶이 된다. 
인생의 오묘함이다.                                  (2011. 4. 9)                      
                                                             ......홍문종 생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