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몸값

몸값

가축들도 서로 다른 몸값으로 서열이 갈린다.
가치의 우열 구분이 존재하는 건  인간 사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소의 가치는 살아서는 하루 동안 경작할 수 있는 논밭의 크기로, 죽어서는 몸무게로 산정된다. 개의 경우는 집을 지키거나 주인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값이 매겨지고 죽어서는 이 역시 몸무게가 가치측정의 기준이 된다.
반면, 돼지는 살아있건 죽어있건 구분 없이 몸무게만큼의 가격이 붙는다. 같은 짐승이라도 부수적 능력이 없는 돼지는 오로지 고기 덩어리로만의 가치로 반영된 결과다.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흔히 듣는 말이지만 선뜻 공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스펙에 따라 극심한 개인차를 보이는 몸값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값의 개인  편차가 새로운 경쟁구도로 설정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직장에서의 연봉 협상 역시 치열한 경쟁 체제에 접어든 ‘몸값’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현장이다.
물론 인간의 가치를   짐승의 세계와  단순 비교하는 식의 평가는  무리이긴 하다.
종교나 인본주의적 관점으로는  더구나 말도 안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몸값’의 존재가 엄연한 현실인  이상 외면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스개겠지만 영혼이 빠져나간 인간의 몸값을 화학물질 구성 기준으로만 산정한다면 1200원 정도의 견적이란다.  또 중국 후베이(湖北) 성의 한 법원에서는 ‘도시인과 농촌인의 몸값을 차별하는 판결을 해서 논란을 야기했고 일본 정부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군수물품 제조를 위해 착취한 조선인 근로정신대의 노동 가치를 ‘99엔’으로 산정해서 국제사회의 힐난을 자처한 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천차만별의 몸값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몸값은 콕 집어서 단일 데이터로 정리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우리 사회를 위해 얼마만큼의 기여했느냐를 따지는 정도면 몰라도.
오래 전 고인이 됐어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 등은 후손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몸값이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케이스다. 그분들 외에도 오랫동안 겨레의 얼로 추앙하고 있는 선열이 적지 않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김연아나 박지성 등 스포츠 스타의 몸값도 그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기여도에 대한 답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몸값 경쟁이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해지고 선명해지는 곳은 선거 현장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4.27 재보궐 선거 현장도 ‘몸값 과시’에 나선 사람들로 어김없이 북적거리고 있다.  저마다 자신의 몸값을 상당히 후하게 치고 있는 풍경도 다르지 않다.  자기 몸값을 후하게 많이 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일일이 검증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자신의 호가와 타인의 평가에 있어 정도의 차이가 많을수록 대부분 당사자 인생에 허수가 많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이는 김수환 추기경, 옥한흠 목사님, 법정 스님 같은 종교인들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현상이다. 저마다 훌륭한 삶의 궤적으로 사후까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생전의 그들은 단 한번도 스스로의 삶을 내세우지 않으셨다. 스스로를 낮추는 겸허함 만으로도 몸값이 세게 매겨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기왕이면 우리도 남들로부터 고평가되는 ‘몸값’의 주인이 돼 보자.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한   적은 삶에 연연해하지 말고  이참에 한번 거듭나 보자.
선동하는 것이다.
물론 흠도 많고 부족함 투성이라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은  우리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가와 민족의 긍정적 역사를 기록하는데 한 점 보탬이 되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밑천 삼아  기도와 성찰로 매달리면 못할 바  없다는 생각이다.  자잘한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지 않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보잘 것 없던 삶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고귀하고 가치있는 삶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자. 


리 모두 그렇게 개인의 몸값을 올려보도록 하자.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그 기폭제임을 잊지 말자.
생전의 법정스님은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라는 가르치셨다.  그 말씀으로 용기를 내자. 
                                                        (2011. 4. 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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