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청와대

청와대
대통령이 배려한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 헌정회 일원으로 다녀왔다.
올해 백수를 맞으신 송방용 원로회의 의장님을 비롯해서 양정규 헌정회장 등 많은 전직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는데 나보다 젊은 연배는 한 둘에 그칠 정도로 연륜이 넘치는 자리였다.
덕분에 오래도록 뵙지 못했던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구나 싶었다. 그 옛날 한 시절을 풍미했던 선배님들이 세월에 순응하고 있는 모습이 남다른 감회를 불러왔다. (그나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형편이 나은 분들이 참석했다는데)
대통령과 청와대 모든 수석의 깍듯한 예우 속에 화기애애한 덕담이 녹아든 점심은 그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을 만족시키는 분위기였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정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삶의 편린을 통해 인생에 대한 깨달음 몇 가지를 건지는 수확이 있었다.
가장 먼저, 살면서 남들하고 척을 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 인연이 대부분인 자리에서조차 이전에 어떤 관계였는지에 따라 조우하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좋은 관계에 있던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찾아와 안부를 물으며 옛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반면 과거 도당 위원장 시절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공천 과정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고(나로선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에도) 생각하는 분은 끝까지 나를 외면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불편한 인연이 되지 않도록 사람들을 더 많은 신중함으로 대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들었다.
 
다들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참석자 중 상당수가 영어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세상사가 다 그렇듯 일을 하다가 정치적 대립 관계로 야기된 불가피한 어려움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실제로 정치현장에서 ‘높이 나는 새’가 표적이 되어 뜻을 펴지 못하고 ‘제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살벌한 정치현장 논리가 존재하는 한 아마도 동서고금을 막론한 불변의 현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독이 된 결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힘이 없었다면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시도 자체도 시작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힘이 있을 때 몸가짐, 마음가짐을 더 잘해야 하는 이유를 새삼 확인하게 됐다.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용비어천가’도 부담스러웠다.
물론 대통령을 예우하고 존중하는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예의다.
그러나 대통령 입맛에 맞추려는 의도로 도가 넘치는 용비어천가는 이제 그만 둘 때도 됐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헌정회 회원만큼은 대통령께 도움이 되는 바른말을 전해야 할텐데 수사 수준을 넘는 용비어천가가 남발되는 풍경은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이래서 권력을 잡고 싶어 하고 한번 잡은 권력은 놓고 싶지 않은 건가 싶기도 하지만 당사자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옛날 초선 의원 시절,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을 때도 그런 풍경이었다.
당시 신출내기인 나와 함께 건배사에 간택(?)된 거물급 중진의원이 대통령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술잔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어 거물로 그를 우러러보던 우리들의 눈높이를 한단계 낮추게 만들었던 쓴 기억이 있다.

(다른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민심과 격리된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안타까웠다. 대통령이 자신감을 갖고 국정에 임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일방통행식일 때는 누구보다 대통령 자신부터 불행해진다는 사실은 역대정권의 대동소이한 시행착오를 통해 입증된 바다.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청와대 수석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겠다. 대통령께서 국정운영의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길 바라는 건 그들 행보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명운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현실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노력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모름지기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제갈공명의 묘책은 아니더라도 진정성 있게 고언하는 참모진들의 역할을 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불행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2011. 4. 1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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