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막내의 입대


막내의 입대


막내 순범이는 원래 계획에 없어 고민하다가 얻은 아이다.
그러나 만약 그 때 엉뚱한 생각을 했더라면 천추의 한이 될 뻔 했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게 할 만큼 우리 부부를 흐믓하게 해주는 소중한 아이다.
그런 순범이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하는 날.
만사를 제치고 37사단 훈련소가 있는 증평까지 아내와 함께 녀석을 배웅하기로 했다.
촘촘한 스케줄 형편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오늘 따라 유난히 불나는 전화벨 소리에 식구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선거 때 녀석을 부려먹은 미안함을 그런 식으로라도 되갚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큰 절로 원행을 고할 때에도 전화로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눌 때에도 녀석은 내내 의연했다. 언제 이렇게 남자가 됐나 싶게 훌쩍 커 버린 모습이 무척이나 듬직해보였다.
그런 아들과는 달리 아내의 표정은 무거웠다. 집 떠나는 아들에 대한 서운함으로 허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침부터 출발을 재촉했는데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애잔한 모정이 헤아려져서 이르다 싶으면서도 군말 없이 따라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입소 시간은 2시인데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12시도 안된 시각이었다.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아들과 함께 세수대야 냉면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증평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훈련소를 찾으니 우리와 다르지 않게 혈육과의 작별이 아쉬워 서성거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 걱정스럽고 심란한 표정들이었다.
아이들의 입영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남은 가족들은 병영생활의 모든 것을 영상물까지 준비해서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훈련소 측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우리 때와는 많이 달라진 군 환경에 그나마 안심하는 눈치들이었다.
 
드디어 입영식이 끝나고 아들의 경례를 받으면서 비로소 군에 간 아들과의 간격을 실감하고 있는데 문득 오래 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쁜 일상에 쫓겨 매 번 가족 행사를 챙기지 못했는데 대학원 다니다 뒤늦게 입대한 나를 부대까지 데려다주시는 파격(?)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그 때의 아버지 모습 말이다.
그 때 아버지의 심정이 지금의 나와 같았을 것이다. 무뚝뚝한 표정 속에 뜨거운 눈물을 숨기고 가슴으로 삭혔을 아버지의 속울음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아들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다시 내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의 타래를 몇 번씩 되풀어 감다보니 그동안 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부피였는지, 또 순범이가 내 가슴 속에 얼마나 큰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지 등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사람의 적응력은 놀랍다는 생각이다.
6주 동안 훈련을 거쳐 자대로 배치될 무렵이면 사나이 중에 사나이가 되어 있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라는 대대장의 훈시에 너무도 큰 위안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연히 발밑에서 발견한 네 잎 클로버 한 장에 뛸 듯이 기뻐지는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접했는지 기억조차 아물거릴 만큼 오래 전 추억 말고는 처음으로 네잎클로버가 내 손에 들어왔는데 아들의 행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믿어버리자 금방 행복해지는 단순함이라니.
아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면서 위안을 나누니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도 바쁜 오후 일과가 더 이어졌다.
부친상을 당한 중학교 동창 조문을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치고 나서야 오늘 일과의 메인 이벤트였던 아들을 떠올리고 있다.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을 향하는 시간이다)
순범이가 벌써 많이 그립다.
아들의 부재가 주는 공허감이 생각보다 큰 인생의 복병이 될 거라는 예감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대한의 건전한 남아가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웃으며 만날 때까지 함께 이겨내도록 하자.
마음의 편지를 써서 아들 곁으로 달려가 보지만 큰 약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2012. 5. 30)
...홍문종 생각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저, 국회에 들어갑니다


저, 국회에 들어갑니다


드디어 19대 국회 임기 시작입니다.
등원을 앞두고 19대 국회의원으로서의 소명을 되새기는 이 순간, 만감이 교차합니다. 년 만에 복귀한 정치 무대인만큼 의욕과 기대감도 남다릅니다.
돌아보면 결코 짧지 않은 유배의 시간이었습니다.
언제 다 지날까 싶어 고민도 많았는데 저로 하여금 유배의 무게를 벗고 당당히 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준 게 바로 그 세월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청년의 열정으로 가슴 뛰는 비전을 품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저를 단련시킨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큰 비밀 한 장을 열어 제친 기분입니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요.

국회는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못 보던 건물도 눈에 띄고 건물 내부의 동선도 많이 달라져 생소했습니다.
함께 의정활동을 꾸려나갈 동료의원들도 생각보다 모르는 얼굴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선배 정치인들에 둘러싸였던 예전과는 달리 3선 이름표를 달고 있는 지금은 후배 정치인들이 더 많아져 선배로서의 책임의식이 요구되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라 하겠습니다.
두리번거림이나 조바심으로 낯선 환경에 대한 관심사를 표출하는 초선의원들에게서 오래 전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 국회에 와서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끙끙거리며 무겁게 받아들이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만 지나면 그런 것들이 실제 정치활동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아무것도 아닌 사안이라는 걸 깨닫게 될 텐데 선뜻 얘기해 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선 어떤 형태든 선 경험자의 조언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입니다. 뭐라고 얘기해줘도 실체가 없으니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기민하게 적응력을 보이는 제 모습이 놀랍고 신기합니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스며드는 걸 보면 역시 내 안에는 예사롭지 않은 정치적 유전자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법안이나 지역구 현안에 대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움츠렸던 다리를 펴고 힘껏 튕겨 오르는 동력으로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패의 경험들이 농익은 경륜으로 재생되어 저의 이 다짐들을 도와줄 것입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수월해진 부분이 있는 반면 약속들을 온전히 잘 실천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압박이 되어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멋모르던 초선 때는 패기 하나만으로도 뭐든 해낼 것 같았는데 어느 정도 정치적 연륜을 쌓은 지금은 헤아림을 앞세우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내 놓은 공약들을 성실하게 이행해야겠다는 다짐이 천근만근 무게로 다가오는 현실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누군가 국회의원은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난 사람들이니까 일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취지로 쓴 사설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비난 보다는 칭찬으로 저희들을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끔씩 색소폰 연주로 지역에서 봉사할 기회가 있는데 이런 실력을 갖추기까지 저의 개인적 노력보다는 언제나 아낌없는 칭찬으로 지도해주신 선생님의 공이 더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정치 현실을 위해선 국민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설혹 그들의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희망과 용기의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반드시 좋은 정치적 토대를 구축해 낼 것으로 확신합니다. 조금 밉고 못미더워도 언제든 등 두드려 용기를 주시고 조금 잘한 일이라도 아주 크게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결국 여러분이 정치인으로부터 가장 빠르고 후회없이 회수할 수 있는 안정적 투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대로 일하라고 뽑아주신 그 처음 마음을 에너지 삼아 19대 국회에서 좋은 정치의 선봉이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 5.30)
...홍문종 생각

2012년 5월 2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사월초파일(축사)

사월초파일(축사)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면서 파란 잎들로 바뀌어갔고 화려한 벚꽃이 만발하던 봄의 향연이 끝나갈 무렵, 너무도 화창하고 좋은 날에 부처님이 오셨습니다.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지혜와 자비의 등불을 밝혀 행복과 평화가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불기 2556년 전 인류의 대각이신 거룩하신 부처님이 미혹한 중생을 위해 사바세계에 오신 뜻 깊은 날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며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그를 통해 붓다, 각자 라는 부류가 종교사(宗敎史)에 들어왔습니다. 그만큼 의미 깊은 일대사 인연입니다. 깨달음의 경험은 부처님의 생애에서 중심적 사건으로 간주됩니다. 불교경전들은 이 사건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행자 고타마가 수행생활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7년간의 수행 끝에 그는 전생에 관한 지식, 업과 연기설, 그리고 사성제를 얻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중요한 교설을 시작으로 깨달음의 세계를 설하였습니다. 자기와 우주와 붓다가 하나가 되는 것을 체험하는 깨달음의 상태는 인간의 사바세계에서도 중요한 마음가짐으로 자리합니다.

우리들은 인연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 미움과 원망, 그리고 대립과 분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길고 긴 무명의 굴레를 끊고 나와 더불어 이웃이 지혜롭고 평화로우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탐욕과 미움과 어리석음을 수행으로 극복하고 청정하고 평등한 삶을 위해 지혜의 등불을 각각의 마음에 환하게 밝혀지기를 기원합니다. 깨달음의 마음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대립의 개념을 초월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세상은 상호의존으로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면서 모두가 한 몸이고 모두가 한 생명임을 알도록 연기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갈등과 대립을 종식시키고 행복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음을 불제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모든 존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양, 별, 달, 동물, 식물, 바람, 공기 등 모든 삼라만상은 소중합니다. 남을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행복이 곧 나와 내 가족, 사회, 국가, 세계의 행복입니다.

우리는 자기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개개인이 모두 중요하며 차이를 만들 기회와 의무는 모두에게 있습니다. 고요히 자신을 비추어야 하며 나아가 열정적으로 행동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치장하고 성취하려고 노력하더라도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이 비워버리는 것이 불교철학입니다. 우리는 창조적이며 세상을 선도하면서도 모두 함께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즐기길 원합니다. 불법의 가치가 꽃피는 환경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12. 5.28)
....홍문종 생각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파토스(pathos)

파토스(pathos)

슬픔은 인간생존의 근본이라고 할 만큼 인간 심리에서 가장 원초적 부분이다.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숨겨져야 하는 아이러니 때문인지 대부분의 인간이 비극적 서사에 이끌리는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다. 가슴 애려하면서도 은근히 슬픔을 즐기는 이중성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 무한에너지 자원의 동기로 승화되기도 하니 슬픔의 특성을 일정한 영역으로 규정짓기도 애매한 점이 있다.

오랜만의 블로깅에서 슬픔을 언급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슬픔과는 약간 다른 파동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파토스’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나의 낙천적 성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어딘가에는 '파토스' 인자가 원죄처럼 떠돌고 있는 것 같다. 특정한 자극을 받으면 때와 장소 구분없이 내 정서의 심연을 마구 흔들어대는데 그럴 때마다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막내의 군 입대를 앞두고 의기투합해서 큰 아들을 만나러 온 어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리 삼부자는 모처럼 남자들끼리 만의 시간이 제공하는 색다른 신명에 들떠 있었고 부자지간, 형제지간의 정을 확인하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유난히 빛나 보이는 자식들은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고 (탤런트 뺨치게 잘 생긴 큰 아들과 건장한 체구로 남성미 넘치는 막내아들을 양쪽에 두고 있는 그 뿌듯함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리) 두 아들 역시 최근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모든 것이 충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두 아들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서면서부터 근원 모를 슬픔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헛기침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조금 전 삼부자 회동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아무래도 '부모가 된다는 건 천형인 것 같다'는 지인의 카톡이 반전의 배경이지 싶다. 카톡을 읽는 순간, ‘천형’이라는 단어에 눈을 떼지 못하게 되면서 내 안의 무엇인가가 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비애감이었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의 희열은 어머니 산고와 탯줄을 자르는 고통이 함께 했을 때 완성될 수 있다. 또 수레바퀴의 운명처럼 더불어 공존하고 공명할 때만이 비로소 그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는 불가분의 결합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신성한 인연이 천형으로 표현되다니 순간적으로 내 안의 파토스가 장치를 풀고 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생의 본원적 비애감이 물 밀 듯 내 안으로 밀려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은 정도의 자극이었다.
어떻게 보면 파토스의 작동은 내 안의 것을 지키려는 소심한 자구책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아닌가 아니라 어느 시인은 목이 길어 슬픈 사슴의 파토스를 원혀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거기에 비하면 고작 낯선 거리를 방황하는 퍼포먼스일 뿐인 나는 소극적인 몸짓으로나마 내안의 슬픔을 다스리고자 했던 건 아닐지.

말해주고 싶다.
오늘의 슬픔에 지나치게 오래 빠져있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오늘의 기쁨에 도취돼 밤새워 축가를 부르는 일 역시 경계해야 마땅하다고.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기쁨도 존재하지 않는 인생의 비밀을 눈치채야 한다고.
기쁨과 슬픔은 일란성 쌍둥이로 우리 안에 동거하는 존재이며 그 중 슬픔은 필경 머잖아 위대한 기쁨으로 승화될 자원이라는 사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정에 오른 기쁨의 순간조차도 애끓는 슬픔의 방문을 받을 가능성이 늘 열려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도.
감당할 수 있는 슬픔과 탐욕스럽지 않은 기쁨으로 언제나 주어진 상황에 감사할 줄 아는, 균형잡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길 기도 제목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도.
(2012. 5.21)
....홍문종 생각

2012년 5월 17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낙방 인사 올립니다.

낙방 인사 올립니다.


오랜 공백기 끝에 정치일선에 복귀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지도부 일원이 되고자 했던 건 그 누구보다 당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좀 더 세밀히 표현하자면 당을 향한 우직한 충정이 근자감을 부축인 결과)
현장에서 3,4위를 기록한 당원과 대의원 선거 개표결과를 전달받을 때만 해도 솔직히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여론조사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당 지도부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여전했습니다. 그만큼 근자감의 뿌리가 견고했던 겁니다.

그러나 결과는 여러분 아시는 대로 낙방거사가 되어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습니다.

막상 6위라는 결과가 현실로 다가오자 짧은 순간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헌신과 열정으로 저를 위해 뛰어 다니시던 많은 분들의 노고가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성원해주셨는데 좋은 결과 못 드려 어떡하나 염치없고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오히려 저를 위로하기 바쁘신 모습으로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오랜만에 출전한 선수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고, 쟁쟁한 선수들 틈새에서 선전한 거라고, 당원들에게는 최고위원으로 인정받은 결과라는 등의 위로로 제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여전히 신뢰한다며 저의 등을 토닥이고 품어주시던 여러분의 큰 사랑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선거기간 내내 행복한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15대부터 출마해서 3번 당선하는 동안의 선거 과정과 도당위원장 3회 연속 당선 경험도 있지만 이번 전대출마는 또 다른 인생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의미하다는 생각입니다. 잠깐의 대화로 저를 인정해주셨던 적지 않은 분들 덕분에 앞으로의 정치일정에 자신감을 갖게 된 점도 이번 선거에서 얻은 수확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교훈도 얻었습니다.
근자감으로 인한 낙관이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각성이 그것입니다.
주변의 수선스런 부축임을 분별하는 정치적 내공도 필요하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무모한 확신이야말로 정치인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고 각별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는 삶의 이치를 확실히 알게 해 준 선거였습니다.
최고위원 선거도 이 정도인데 대선 국면은 오죽할까 솔직히 걱정됩니다. 특히 유력 후보는 정치적 비중 때문에 근자감에 빠지기 쉽고 그로인해 판세분석에 오류가 가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주도면밀한 민심읽기를 통해 새누리당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낙동강 전투에서 40%를 잃었고 수도권 열세에도 불구하고 과반이라는 실적에 현혹돼 대선 판도를 치밀하게 계산하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저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낙방거사 홍문종, 이제 그만 낙선의 변을 접고 대선 승리의 불쏘시개가 되기 위해 나서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계시기에 이번만큼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근자감은 경계하겠습니다.
반드시 승자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뛰어 주시기 바랍니다.

(2012. 5.17)
....홍문종 생각

2012년 5월 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출마의 변

출마의 변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그리고 당원 동지 여러분.
이번 5. 15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나서게 된 새누리당 홍문종 인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총선에서 저희 새누리당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으시고 특별히 저 홍문종에게도 정치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정치 밖에서 지낸 시간이 적지 않기에 그렇게 주신 신뢰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 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신 그 사랑, 날마다 가슴에 새기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라는 지상명령으로 삼아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더 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전당대회에 나설 생각을 했던 건 아닙니다.
저 아니어도 당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훌륭한 분들이 많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저 좋은 후보를 선택해서 열심히 박수나 쳐 줄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척간두 절대 절명 위기에 허덕이던 우리의 현실은 이미 안중에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을 향한 심상치 않은 국민질타에 화들짝 놀라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당명을 바꾸면서까지 환골탈태 의지를 보인 덕에 그저 한숨 돌릴 여유를 얻었을 뿐인데 여기 저기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가 당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었습니다. 절박했던 순간은 벌써 다 잊은 듯 근거없는 자신감에 차 흐트러져 있는 모습들이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고 막막했습니다.
대선 경쟁에 나선 당 후보군들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들 당 위기를 거드는 양상이었습니다. 연일 아군을 향해 날리는 독한 말화살로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벌리며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현실을 외면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결과가 뻔할 거라는 조급함이 저로 하여금 무모한 용기를 내도록 부추겼습니다.

어느 날인들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겠습니까마는 특별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 2012년은 특별히 더 유의미합니다. 대한민국 국운을 결정하는 데 있어 새누리당의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해졌기 때문입니다. 저희 새누리당이 대선 승리를 통해서 대한민국 국운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중흥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으로 보답해야 할 때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 국민여러분과 당원동지들이 힘을 모아 새누리당을 소생시켜 준 은혜에 반드시 보답할 길은 정권 재창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소기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것이 제가 이번 경선에 나서게 된 가장 기본적인 이유입니다.

정치를 떠나 있는 동안 정치적 키가 부쩍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여의도에 있었으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았을 민생현장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기회가 정치 방학 중 거둔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국민의 아픔과 눈물, 그리고 그 안타까운 눈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거리의 고달픈 서민의 발걸음에서, 지하철 바닥을 거처로 삼을 수 밖에 없는 노숙자의 삶에서, 갈수록 가벼워지는 시장 상인의 주머니에서, 고독한 독거노인의 허망한 눈빛에서 정치일선에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주된 관심사로 삼아야 하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며 국민께 드렸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을 실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낮고 겸허한 자세로 민생을 챙기는 새누리당을 만들겠습니다.
실천은 물론 정치가 국민 마음을 상하게 하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저 홍문종이 앞장서겠습니다.
대한민국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갈등과 분열입니다.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빠짐없이 포진해서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이 화근덩어리를 소멸시켜 국민화합을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야 간에도 고함과 몸싸움 없이도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정당 문화를 정착시키겠습니다. 당내 계파 문제로 인한 소모전으로 시간 낭비가 되지 않도록 모두 다 품을 수 있는 맏형의 덕목을 갖춘 새누리당을 만들겠습니다.
뺄셈이 아닌 덧셈의 정치로 기존 정치권의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당과 당원께 엄청난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 번씩이나 국회의원으로 선택해 주셨고 세 번씩이나 경기도당 위원장직 수행을 허락해주셨습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여러 면에서 불민한 저를 받아주시고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국민과 당원을 위해 일하려 나섰습니다.
솔직히 이번 출마는 개인의 영달이나 정치적 이해득실을 가리는 행보가 아닙니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고달픈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나선 건 그동안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국가와 민족, 당과 당원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보은해보겠다는 충정이었습니다.

부디 저에게 기회를 주시고 봉사와 헌신을 명령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정한 정의와 책임지는 희생을 통해 보수의 본래 가치를 실천하는 정치로 여러분 앞에 자신있게 나서고 싶습니다.
기꺼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위해 국가와 민족에 이 한 몸 다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2012. 4. 30)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