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막내의 입대


막내의 입대


막내 순범이는 원래 계획에 없어 고민하다가 얻은 아이다.
그러나 만약 그 때 엉뚱한 생각을 했더라면 천추의 한이 될 뻔 했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게 할 만큼 우리 부부를 흐믓하게 해주는 소중한 아이다.
그런 순범이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하는 날.
만사를 제치고 37사단 훈련소가 있는 증평까지 아내와 함께 녀석을 배웅하기로 했다.
촘촘한 스케줄 형편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오늘 따라 유난히 불나는 전화벨 소리에 식구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선거 때 녀석을 부려먹은 미안함을 그런 식으로라도 되갚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큰 절로 원행을 고할 때에도 전화로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눌 때에도 녀석은 내내 의연했다. 언제 이렇게 남자가 됐나 싶게 훌쩍 커 버린 모습이 무척이나 듬직해보였다.
그런 아들과는 달리 아내의 표정은 무거웠다. 집 떠나는 아들에 대한 서운함으로 허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침부터 출발을 재촉했는데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애잔한 모정이 헤아려져서 이르다 싶으면서도 군말 없이 따라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입소 시간은 2시인데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12시도 안된 시각이었다.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아들과 함께 세수대야 냉면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증평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훈련소를 찾으니 우리와 다르지 않게 혈육과의 작별이 아쉬워 서성거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 걱정스럽고 심란한 표정들이었다.
아이들의 입영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남은 가족들은 병영생활의 모든 것을 영상물까지 준비해서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훈련소 측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우리 때와는 많이 달라진 군 환경에 그나마 안심하는 눈치들이었다.
 
드디어 입영식이 끝나고 아들의 경례를 받으면서 비로소 군에 간 아들과의 간격을 실감하고 있는데 문득 오래 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쁜 일상에 쫓겨 매 번 가족 행사를 챙기지 못했는데 대학원 다니다 뒤늦게 입대한 나를 부대까지 데려다주시는 파격(?)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그 때의 아버지 모습 말이다.
그 때 아버지의 심정이 지금의 나와 같았을 것이다. 무뚝뚝한 표정 속에 뜨거운 눈물을 숨기고 가슴으로 삭혔을 아버지의 속울음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아들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다시 내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의 타래를 몇 번씩 되풀어 감다보니 그동안 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부피였는지, 또 순범이가 내 가슴 속에 얼마나 큰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지 등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사람의 적응력은 놀랍다는 생각이다.
6주 동안 훈련을 거쳐 자대로 배치될 무렵이면 사나이 중에 사나이가 되어 있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라는 대대장의 훈시에 너무도 큰 위안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연히 발밑에서 발견한 네 잎 클로버 한 장에 뛸 듯이 기뻐지는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접했는지 기억조차 아물거릴 만큼 오래 전 추억 말고는 처음으로 네잎클로버가 내 손에 들어왔는데 아들의 행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믿어버리자 금방 행복해지는 단순함이라니.
아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면서 위안을 나누니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도 바쁜 오후 일과가 더 이어졌다.
부친상을 당한 중학교 동창 조문을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치고 나서야 오늘 일과의 메인 이벤트였던 아들을 떠올리고 있다.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을 향하는 시간이다)
순범이가 벌써 많이 그립다.
아들의 부재가 주는 공허감이 생각보다 큰 인생의 복병이 될 거라는 예감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대한의 건전한 남아가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웃으며 만날 때까지 함께 이겨내도록 하자.
마음의 편지를 써서 아들 곁으로 달려가 보지만 큰 약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2012. 5. 3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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