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3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


미국 외교의 ‘불편한 진실’을 온라인에 폭로하고 나선 위키리크스의 이번 ‘한방’은 간단치 않은 듯하다.
이번만큼은 단순히 미국의 체면을 구기는 선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조짐이 역력하다.
이들이 입수한 ‘최근 3년 동안 대한민국을 포함한 270여개국에 주재하고 있는 해외 공관과 주고 받은 미 국무부의 외교 전문 25만 여건을 통한 ‘생생한 역사(?)’ 전달 작업은 당분간 멈춰지지 않을 듯하다. 각종 압력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창업자 줄리언 어샌지는 폭로작업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은 죽을 맛이겠지만 역사의 현장을 날 것 그대로 접하게 된 입장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비밀의 성찬 - 역사가의 꿈이고 외교관의 악몽이다. 앞으로 몇 주간 독자들은 현재진행형인 역사를 코스요리로 즐기게 될 것“이라고 평하며 위키리크스의 행보를 두둔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폭로를 통해 반기문 유엔총장을 비롯한 유엔고위 관계자에 대한 일상적 사찰과 해킹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려는 힐러리 클린턴의 지시가 드러나 국제사회의 이목을 모았다. 특히 반기문 총장과 관련해서는 의사결정 방식과 유엔사무국에 대한 영향력 파악은 물론 DNA, 지문, 홍채 스캔 등 생물학적인 신체정보들, 그리고 신용카드 번호, 이메일 주소, 전화 등 각종 통신 번호 등도 파악하라는 지시가 포함됐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사무총장 사찰은 불법’임을 분명히 한 유엔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지침을 지시한 미국의 이중성이 국제사회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 셈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로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 생명이 문제시되고 있고 미국이 숨겨진 치부의 실상을 드러냈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각국에 대한 미국 외교적 시각이 적나라하게 표출돼 있는 문건 공개로 인해 전 세계 외교가가 술렁이면서 일부에서는 심각한 외교분쟁이 염려되는 상황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버린 후유증으로 미국이 입게 될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놀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런 일들은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관행적이거나 전략적이거나-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범주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이번 일로 스타일이 구겨지긴 하겠지만 국익을 위한 업무 수행이라는 대명제임을 내세워 그다지 자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가끔 미국인들과 다른 미국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대체로 술수도 잘 모르고 규율과 규범을 잘 지키는 순박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같은 미국인의 모습으로 미국을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 미국을, 미국인들이 모인 공동체 개념 보다는 외부의 환경과 무관하게 스스로를 위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독특한 캐릭터의 거대한 집단 개념으로 파악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미국의 몇 개 얼굴만으로도 알 수 있다.
1905년 가즈라 태프트 조약으로 필리핀과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었고 6.25 때는 한국전쟁을 도맡아 해결사를 자처했고 1945년 이후엔 일본과 한국의 국방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우방국으로서 양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월남전, 한국전, 이라크 전쟁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현장이 미국의 아젠다에 따라 운명이 엇갈린 희비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주도하에서 한국이건 필리핀이건 일본이건 월남이건 이라크건 그 때 그 때 주어진 조연의 역할에 충실했고 어쩌다 타이밍이 잘 맞으면 서로가 최대의 이익을 나눈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 역사가들도 많이 있다. 오직 미국의 관심사는 그들의 행복과 번영이라고 혹평하면서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위키 리크스 폭로 파동을 충격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고 우리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본 명제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수 많은 변수들 중에서 과연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이고 그 길이 어디에 있는건지 하는 것들을 우리 나름대로 알아내고 판단해서 결정짓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있어야겠다.
존경하는 반기문 총장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소 내가 알고 있는 반 총장의 (외교적 역량 등)‘내공’ 대로라면 그는 이번 사건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이 도청하고 있다면 그 상황을 이용해서 역으로 도움이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어차피 점점 단조로워지는 ‘정의’ 보다는 정글의 법칙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시점이다.
고정된 틀에 갇혀 옛노래로 권리 주장에 매몰되다간 밥 굶기 딱 좋은 시대적 상황에 우리가 살고 있다. 세계적 조류를 질서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면서 살 궁리를 잘 해야 그나마 자기 밥그릇을 챙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전시 상황임에랴.

(2010.11.24)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뭐하고 있었는가

뭐하고 있었는가


연평도 참사에 희생된 두 젊은 병사의 영결식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과연 우리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국가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헝클었기 때문이다.

시중 민심을 보면 결코 가벼운 상황이 아니다.

북 한 도발 당시 정부의 미온적 대응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한 국민 불만이 팽배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엊그제 청와대를 다녀간 중국의 다이빙궈도 국민의 불편한 심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오만한 중국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다는 불만이 정부불신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국민 마음이 떠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공 자는 나라를 지킬 수 있는 3대 요소로 식량, 국방,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꼽고 그 중에서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신뢰 부분이 문제시 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국가를 위해서나 이 정부를 위해서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 한명의 자국민이라도 위기에 처하면 전직 대통령이 직접 움직일 만큼 자국민 보호에 투철한 미국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70년 대 북한군 도끼만행으로 미군병사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이례적으로 김일성이 사과를 하고 나선 배경에도 분노를 감추지 않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북을 압박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폴 케네디 교수는 오래 전 자신의 명저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상대적 쇠퇴기에 직면하게 될 미국 등 당시 일등국가의 미래를 경고해 주목 받은 바 있는 세계적 석학이다. 일등국가가 패권국 역할 유지를 위해 투입한 막대한 군비가 종국에는 경제적 도전에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거라는 주장이었는데 20여년이 지난 현재를 보면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 책에서 군대의전과 의식 등 외형을 중시하면 효율성이 저하되고 로 전투력을 치중하는 중시로 을 중시하는 군대는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군대는 전투력을 상실하고 군은 물론 국가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골치덩어리로 전락하고 해당 국가 역시 퇴조의 길을 걷게 된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지금 우리 현실에 필요한 조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차원에서 신임 국방부장관의 역할이 중차대한 시점이다.

과 거 합참의장 취임식에서 강군론을 폈고 행정조직처럼 보고위주로 움직이거나 진급에만 신경쓰는 무기력한 군의 모습에 일침을 가했다는 등의 김관진 신임 국방부장관 내정자 행적이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와 5억원 정도의 금융자산, 15년 된 크레도스 승용차가 재산의 전부이고 무엇보다 위장전입 경력이 없는 ‘청백리’라고 한다.

우선은 다행스럽다. 그 정도의 가치관을 가진 분이라면 앞으로 달라질 수 있으려나 기대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미 항모 조지 워싱턴함이 서해에 진입하는 등 사상 최대의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된 지 이틀째인 현재 북한은 서해 전방 지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실시하거나 미사일을 비롯한 전력을 전진 배치하는 대응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솔직히 국민 중에는 이렇게 막강한 미국의 전력이 우리를 받쳐주고 있으니 국방걱정 덜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으로 이번 합동훈련을 바라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속셈을 간파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미국이건 중국이건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정책도 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갈수록 자국 이익에 충실한 모드가 세계 정의로 재편되는 추세다.

더구나 미국, 북한. 중국, 일본 등의 노림수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우리의 특수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합동훈련 과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 의존하기보다 실속있는 합동훈련이 되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는 얘기다.

우리의 안보를 남의 손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선 안된다.

그 때 그 때 상황마다 우리 국익에 맞게 이끌어야 한다는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더 이상 국민의 무고한 죽음을 무위한 희생으로 만들어서는 안되겠다.

국가는 뭐하고 있었느냐는 힐난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추태를 보여서는 안되겠다.

국민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

그것이 21세기를 주도할 대한민국 정부의 최우선적인 당면 과제임을 잊지 말자.

자립, 자조, 자결의 정신 무장으로 온 국민이 결집했던 그 때의 결기를 되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2010.11.29 )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눈이 오네







눈이 오네

- 홍문종 -







까만 하늘에
텅빈 가슴에
하얀눈이 내리네


별도 달도 숨은 까만 하늘에
숨도 힘도 쉬는 텅빈 마음에
하얀 눈이 내리네


아스라히 춤추는
밝그레한 불빛조차
외로워 잠 못이루는 밤에


내가 거기에 있고
그대가 또한 여기에 있음을
알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눈부시게 까만 하늘에
더 커져버린 텅빈 가슴에
하얀 눈은 계속 내리 앉을뿐


텅빈 가슴을 연다
그리고 기도한다
까만 하늘을 하얗게 수 놓으라고


까만 하늘을 연다
그리고 무릎을 꿇는다
텅빈 가슴 까맣게 채우라고


태양의 따스함도
사랑의 즐거움도
잊은 듯한 새벽에


까만 하늘의 찬 공기에
텅비어 아쉬워하는 가슴에
하얀 눈이 내려 주시니


야속하지도
슬프지도
아니한


춥지도
아프지도
아니한


하얀 눈이 내리네
까만 하늘에서
텅빈 가슴에....


(2010.11.29)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행복하지?

행복하지?


동생 원종이의 5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눈물로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동생의 몇 몇 친구들이 모여 생전의 그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강건했지만 건강을 잃고 유난히 힘든 삶을 살다가 떠난 동생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던 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부모님께는 물론이겠지만 내게도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동생이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애잔한 울림이 가슴 한 켠을 적신다.

동생과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나눌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는 스스로에 대한 회한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요양 중이던 동생에게 찾아간다고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게 그만 마지막 기회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치의 중심에서 공인으로 활동하던 그 때, 나의 일상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무 분주했다. 동생이 보고 싶어 만나러 가다가 1시간 거리를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그 때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

동생이 그 때 출장 이발사까지 동원해 머리를 깎는 등 몸단장을 하며 형을 만난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는 얘기를 동생 사후에 전해 듣고 가슴 찢어지는 통증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사랑으로 형을 기꺼워하던 동생에 비하면 나는 참 무심한 형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를 온전히 동생에게 할애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동생은 연년생의 박한 나이터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타박없이 깍듯이 형으로 예우하고 정성을 다했다. 그런 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추도식을 마치고 동생 친구들과 식사 자리를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생전의 ‘동생’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위해 나서기를 즐겨했던 동생에 관한 추억담들이 그들의 기억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또 동생이 생전에 형인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동생과 내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잘 생긴 동생이 지하에서 노여워한다’는 농으로 넘기기는 했지만 한참동안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래도 동생이 친구들에게 상당히 괜찮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건재하게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우정을 나누고 있는 듯 했다. 실제로 그들은 매 기일마다 빠지지 않고 동생을 찾아와 주었다.

문득 나의 사후에는 동생처럼 생전의 정을 잊지 못하고 찾아줄 지인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줄 걸, 세심하게 살펴줄 걸...

나날이 연로해지시는 부모님과 형제, 친지들, 그리고 지인들, 또 지금 당장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부질없이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고 누구도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는 이 엄연한 현실이 나로 하여금 인생의 각오를 숙연하게 간구하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특히 인간관계에서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세우게 됐다. 혹시 내가, 혹시 그들이 세상을 떠나 만나게 되지 못하게 된다면 그 때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 있을 때 잘해야겠다.
더불어 저 세상에서는 원종이가 자신의 꿈을 활짝 펼치며 살고 있길 바란다.

원종아, 행복하지? 부디 행복해라.


(2010. 11. 26.)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4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연평도 비극

연평도 비극


북한이 그동안 단골메뉴로 읊조리던 불바다 협박을 실전에 옮겼다.

연평도 일대의 민간이나 군사 시설물을 170여 발의 무차별 포격으로 아수라장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처참하게 유린된 시가지 전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온 종일 만나는 사람마다 불바다가 된 연평도 걱정이지만 속수무책이어서 안타까웠다.

그 와중에 두 젊은 병사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2명의 민간인 희생도 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글로벌 시대, 국제적 협력체계를 주도할 만큼의 성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 내내 이어지고 있는 낡은 이념과 체제의 대립으로 아까운 청춘들이 산화한 어처구니없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단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소임을 다하거나 묵묵히 삶의 터전을 지켜오던 평범하고 무고한 생명들이었을 뿐이다. 그런 이들이 백주 대 낮 날벼락에 속절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대한민국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가장을 잃어버린 유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이번 일로 당국의 미숙한 행보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북한의 공격을 받고도 교전수칙 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늑장대응 등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확전 방지’ 초기 지시 발언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종국에는 그런 발언읗 했느니 안했느니 진실게임 국면으로까지 접어드는 양상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지난 1976년, 휴전선 비무장지대 판문점에서 미류나무를 절단 중이던 미군중위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카투사 4명에게 부상을 입힌, 북한의 도끼만행 사건 당시 초강경 대응으로 김일성에게 사과를 받아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래 전 행적이 새삼스럽게 회자되고 있다. 그 때의 박 대통령은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며 즉각적인 보복은 물론 휴전선 일대를 전시체제로 돌입하는 등의 압박으로 김일성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었다.

현재의 미온적인 군 대응과 비교하면 분통이 터질 만하다.

거기다 작전통제권 소재를 놓고 뒤늦은 갑론을박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불난 집에서 불을 끌 생각은 안하고 누가 불질렀는지 범인 색출에만 열을 올리는 꼴이다. 이렇게 하다간 언제 이 심란한 ‘도발 정국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루종일 국방부장관이 국회 국방위에 불려나가 매섭게 추궁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자꾸만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보는 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이 연상된다. 사후 약방문이다. 당하고 나서 경계를 강화하고 초강력 대응 운운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고한 생명이 , 무너진 마을이 재건되기라도 하면 모를까.

사안이 간단치 않은 만큼 책임의 소재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이 그 때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북한과 대치국면인데 내부의 갑론을박으로 에너지를 낭비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은 당면한 과제부터 풀어나가는 게 시급하다. 그 다음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시시콜콜 따져볼 일이다. 신상필벌 역시 한 점 의혹 없이 깨끗한 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6.25 이후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하다. 당일 하루 요동을 치던 주식시장도 제자리를 찾으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매시간 속보형태로 긴박하게 상황을 보고하는 국내 언론이나 외신 보도, 그리고 정치권과 정부만 떠들썩하고 다급한 분위기다.

내가 만난 청년 A는 “매일 벌어지는 일 아니냐”며 심드렁한 표정이었고 중년주부 B씨는 “사재기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어차피 전쟁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사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특별히 피난할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라고 일갈하는 무심함을 보였다.

동요가 없으니 다행으로 여기기보다 오히려 전쟁 불감증이 우려되는 건 기우일까?

하긴 지난 60년 동안 무려 800여차례나 북한의 위협이 반복돼 왔으니 만성이 될 만하다. 문득 우리의 현실이 마치 재미삼아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일삼다가 정작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땐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양떼를 모두 잃어야했던 양치기 소년의 불운과 닮게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이러다가 또 다시 우리 역사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 기록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말도 안되는 일인데 명백한 현실로 전개되고 있으니 외면만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념이나 체제 유지의 기 싸움을 위해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 구태가 존재하는 우리의 특수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다. 더구나 대한민국 미래의 소중한 자원인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있는 국면이다. 그 어떤 큰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사수해야 할 우리의 자원을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각오와 다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사태를 놓고 신나게 주판알을 굴리고 있을지도 모를 국제사회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 솔직히 우리에게 질시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주변국이 노리는 먹이감이 될까봐 늘 불안한 게 사실이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놀림감이 되거나 타국의 이익을 위해 국운을 함몰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대한민국 국운의 융성 가능성이 실기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할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말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특히 책임있는 위치의 위정자 발언은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나 청와대 각료들의 정제되지 않은 코멘트 남발이 걱정이다.

의도하지 않은 간단한 말실수 하나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고 목숨을 건질 만큼 희망을 주는 빛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뜻이어도 국민과 유리된 정책은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자. 자칫 국민의 싸늘한 시선 속에 고립될 수도 있음이다.

그나저나 오는 28일부터 서해상에서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참가한 가운데 한미간 연합훈련을 실시한다고 소식인데 더 사후약방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2010.11.24)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후회없는 그리고 아름다운

후회없는 그리고 아름다운

상가 두 곳을 다녀왔다.

현역 시절 많게는 하루에 열세 군데까지 조문을 다닌 경험으로 치자면 의례적인 일과로 치부할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오늘의 조문은 평소 때와는 다르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다. 조문을 마치고 난 이후 꽤나 긴 시간 동안 나의 생각을 이끄는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측면에서 대조적이었던 양쪽 상가 분위기가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찾은 상가는 대한민국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고위 공직자 집안이었는데 근래 보기 드문 규모의 조화 행렬과 장사진을 이루는 조문객들로 북적였다.

그에 비해 나중에 조문한 곳은 앞서의 상가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격조있는 분위기에서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있는 대부분의 조문객들이 서로 친밀한 사이인 듯 했고 진심어린 애도로 상주를 위로했다. 상주 측 역시 각별하고 성의있는 응대로 각각의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염을 전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는 상가 풍경이 됐다.



상가에 가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유난해 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장 모호해지는 상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이렇게 문상을 왔거나 조문을 받는 입장이지만 언제 어떤 형태로 서로의 운명이 갈리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정말 아무리 잘났어도 또는 못났어도 언젠가는 칠성판에 누운 채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하는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급기야 앞자리에 앉은 지긋한 연배의 조문객에게 삶과 죽음에 관한 견해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귀찮은 표정을 짓던 그 분은 이내 나름의 ‘가치관’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삶과 죽음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을 뭐라고 단정짓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삶 자체가 언젠가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한계점이 분명한데도 인간이 스스로의 죽음을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죽음에 대한 경험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봉쇄된 환경 때문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누구도 죽음에 대한 체험을 주위와 나눈 적이 없으니까”

평소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백 번 공감이 가고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홀로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고독한 인간의 숙명.

그것을 생각하면 늘 뜨거운 무엇인가가 뭉클 치솟는 기분이 든다.

어느 누구도 삶과 죽음에 대해 수학 문제 풀어내듯 정교한 답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되돌아보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삶에 대해서는 ‘후회없는’을, 죽음에 대해서는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덕분에 ‘후회없는 삶’과 ‘아름다운 죽음’이 거의 내 인생의 모토가 되다시피 했다.

후회없는 삶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별히 사회적 공간에 삶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놓고 살아야 하는 나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클수록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해야 할 분량이 많을수록 구조적으로 후회할 일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후회없는 삶의 영역을 어떤 기준으로 국한시켜야 할지도 문제다. 공적 영역으로 제한할지 아니면 사적 영역까지 포함할지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후회하지 않는 삶의 가치 판단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단기적인 삶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장기전에서는 성공의 결과로 도출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는 만큼 후회 여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안목이어야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 수 있을지 면밀한 관찰과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겠다.

문제는 인간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멀리 내다보기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어린아이 같은 속성이 발달돼 있다는 점이다. 그 같은 속성이 후회없는 삶의 진행과정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다른 명제인 아름다운 죽음은 생전에 당사자 확인이 불가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내가 죽고 난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아쉬움으로 기억되는지가 아름다운 죽음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설혹 화려하고 멋있고 호쾌한 삶을 살지는 못했더라도 배려깊은 말 한마디나 행동거지가 주위의 평온을 주도하는 의미있는 삶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판단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말은 쉽지만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다.

이탈된 치아, 어두워진 시력 등의 상황이 오래 누적된 삶의 시간을 입증하는 요즘이다.

하루 종일 토해내는 열변에 혹사당한 목구멍은 따끔거림으로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제 그만 점검 대열로 들어가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순응이 미덕임을 알아야겠다.

'후회없는 삶', '아름다운 죽음'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나의 소망이 남아있는 시간을 통해 더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블로그 독자 여러분들도 화두로 삼아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다.


(2010. 11. 21)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잔추단가

잔 추 단 가
 - 홍 문 종-



서글픈 마음이야
어쩔수 없다해도
달래는 마음만은
어찌좀 해보시오
야속한 그대일세
머언길 가는동안
손잡고 가잔길을
이처럼 야속하게
서럽다 사래치면
속울음 참는가슴
그무엇 싸매려고
삭풍이 모아치고
낙엽도 떨구는데
그대여 어루만져
주소서 주우소서

(2010.11.21)

홍문종 생각 - 弔齒文

弔齒文

오호, 통재라.
나의 앞니들과의 별리를 애통해하노라.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을 환송하노라
부디 저 세상에 가서
나와의 인연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기를.

근 오십 여년을 동고동락했던 앞니 두 개를 떠나보냈다.
오래 전부터 유난히 부실해서 치근만 남은 상태로나마 간신히 지탱되던 인연이 끊겨 버린 것이다. 지난 번 광릉 내 입구에서 발생했던 자전거 사고가 원인이었다. 넘어질 때만 해도 별 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잇몸에 입은 타격이 앞니의 상태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웬만하면 그 연을 이어보려고 점점 심하게 흔들리는 앞니를 달래가며 석 달을 버텼다.
그러다 끝내 사망선고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래된 인연의 부재는 우선 당장 현실의 불편함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엊저녁, 예술의 전당에서 의정부 혼성 합창단 공연에 찬조출연 차 색소폰을 연주할 때도 절실히 아쉬웠다.
앞니를 대신한 의치에도 불구하고 색소폰 공연 내내 잇몸에 피가 날 정도로 고통이 심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야채와 과일을 좋아하는 식성인데도 제대로 씹지 못해서 소화가 안되고 위가 더부룩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심지어 발음이 자꾸 새는 것 같다는 딸아이의 놀림에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게 앞니의 부재로 인한 비극(?)이라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곁에 있을 때는 모르고 살았는데 없어지니까 비로소 앞니의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실감난다.
살아가면서 곁에서 사라져서야 새삼 소중했던 그 역할을 되새기게 되는 게 어디 앞니의 경우뿐이랴. 부모님이나 친구 등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고 물이나 공기를 비롯한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 역시 사소한 일상이라는 생각 때문에 지나치기 쉽지만 사실은 모두 다 우리에게 있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잃고 난 다음에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공통점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날로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아무리 애달프고 속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좀 더 잘 해 드릴 걸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자연환경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비슷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뜨거운 공방으로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한번 훼손된 자연은 되돌릴 수 없는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자연을 망가뜨리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렇지만 후대에게도 씻을 수 없는 해악을 끼치는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어차피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자연과 더불어 개발하고 개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얕은 판단이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져 역사와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결과로 남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평소 세심한 양치질로 치아보호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자전거 탈 때 다른 사이클 선수들처럼 마우스피스 등의 안전장비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이런 저런 아쉬움과 후회가 있다.
그렇다고 한들 지금에 와서 떠나버린 앞니들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연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현실의 편익만 내세운 결과라면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기우로 단정짓고 외면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지금 이익이 된다 해도 후대에 망가진 국토를 물려줄 수도 있다는 우려는 피아로 나뉘어 힘겨루기로 어물쩡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의 공동 관심사로서 의혹이나 우려가 해소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내 앞니만 해도 지금은 기술이 좋아 인플란트를 하면 오히려 원래 치아보다 모양도 좋고 불편하지 않게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본래 치아만은 못하다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 보다는 치아가 그렇게 망가지는 게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이 더 중요하게 들렸다.

치아 간수에 공을 들여야겠다는 이 다짐을 앞으로 얼마나 잘 지켜나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염불에 끝나지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제발이지 살아가면서 그 때 더 잘할 걸 그랬다며 후회할 일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0. 11. 20)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8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수능이 끝났다.

지금은 ‘수학능력평가’지만 우리 때는 ‘예비고사’라는 이름으로 대학입시를 치렀다.

이름은 다르지만 인생을 걸고 올인한 시험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시험이 한 사람의 미래에 결정타로 작용하는 현행 수능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따른 희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일 아침의 악운 때문에-몸이 아프거나 늦는 경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수험생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리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니지 싶다. 실제로 돌발적인 상황 때문에 그동안 쌓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불운이 전체 인생 의 멍에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통한은 당사자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도 시험 보는 날 아침 갑자기 몸이 아파서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가 이후의 인생이 계속 꼬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를 지켜봤는데 여간 딱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인생 전체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현재의 수능제도는 개선해야 마땅하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의 중요한 진로를 결정짓는 것은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다. 여러 번에 걸쳐 제대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매번 말하는 바지만 학생들에게 몇 번의 실력 점검 기회를 주고 그 가운데 가장 유리한 성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수능 비율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대학 입학의 여러 평가기준 중 하나여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를 근거로 해서 전공의 적합성 여부 등을 면밀하게 진단하는 과정이 선행된다면 당사자의 미래는 물론 대학과 국가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정원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소수점 한자리에까지 수백명의 동점자들이 몰리는 치열한 경쟁상황을 감안해서 대학정원에 융통성이 적용돼야 한다.

1점 차이의 당락 결정이 학생 선발에 있어 어떤 타당성으로 작용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대학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선택이 어려울 때 한두명 정도의 범주에서 입학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대학에 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수능이 대학을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생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겠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일 뿐 인생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고 결정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잘 치렀으면 잘 치른대로 잘못 치렀으면 잘못 치른대로 다음 인생을 준비하겠다는 현명함과 자신감으로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는 미래를 밝혀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미래의 목표를 구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지나친 자만이나 좌절은 정답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한 것으로 됐다.

일희일비도 금물이다. 낮은 자세로 자기 주변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매사에 일희일비하면서 끌려다니는 사람의 인생은 실패하게 돼 있다.



학교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했던 에디슨, 시험 성적이 안 좋다고 대학입학이 거부됐던 아인슈타인, 명문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레이건 대통령, 무엇보다 변변한 졸업장 하나 없이도 굴지의 재벌가를 이룬 삼성이나 현대 창업주들의 성공한 인생을 보라.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은 성적순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혹여 주위에 이번 시험으로 마음을 다친 수험생이 있다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말고 따뜻하고 큰 애정으로 품어주자. 그리고 말해주자.

인생에는 시험 말고도 그들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잡이'들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음을.


(2010. 11.19)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지뢰밭이 된 여의도

지뢰밭이 된 여의도


여의도가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소액 후원금’ 후유증이 여의도 정가에 태풍의 눈이 됐기 때문이다. 청목회 암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농협중앙회가 10만원 소액 후원금을 쪼개는 식의 수법으로 해당 상임위 의원들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펼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가 지뢰밭이 됐다는 언론보도가 줄을 잇고 있는 걸 보면 사안의 정도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닌 것 같다.


실제로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조짐이다. 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모 국회의원의 지역 사무국장이 긴급체포 됐고 농협중앙회 불법 로비와 관련해 특정 지역 농협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어 해당 기관장들이 소환돼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흔히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거라고 하더니 괜한 말이 아니지 싶다. 현실적으로도 눈 깜짝하는 순간, 영어의 신분으로 전락된 정치인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의 정치구조와 정치자금법대로라면 교도소 담장 안으로 떨어지지 않을 정치인이 별로 없을 거라는 불합리한 현실에 있는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소액 후원금 제도’가 입방아에 올랐다. 지역 정가에서도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온통 이 얘기 뿐이다.

불합리한 후원제도를 바꿔야 한다는데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야 정치권도 도입 당시 취지가 변형돼 음성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소액후원금제도 개선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체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국회의원들에게 돈 거둘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실제로 돈 사용에 있어서는 너무나 많은 제약이 가동되는 불합리성이 지목되고 있다.

소액 후원금 제도는 ’국회의원 후원제도는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공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지난 2004년 이른 바 '오세훈 선거법‘이 제정되면서 도입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취지에 급급한 나머지 법 집행의 실질적인 과정과 목적달성에는 미흡한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소액 후원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개혁성에만 주목한 나머지 돈과의 관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 현실에 대해서는 통찰력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지역의 애경사 장소에서조차 성의를 표시하지 못하도록 막는 바람에 민망한 상황이 연출돼도 불법의 굴레를 기꺼이 수용했던 건 깨끗한 정치 실현에 대한 취지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이웃들과의 한 끼 식사조차도 선거법 위반 여부를 꼼꼼히 따진 이후 결정해야 하는 ‘투명정치 실현’를 위해 불법의 굴레를 기꺼이 수용하는 것으로 동참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일단의 노력들이 무참하게 유린된 것 같아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이번 기회에 정치인 후원금 제도를 좀 더 합리적으로 손질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일본에는 국회의원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애경사에는 축의금이 됐건 조의금이 됐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었다. 또 지역 주민들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상황이 되었을 때 상식선 내에서 (정치인이)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 있었다.

우리의 정치 현장에도 후원금 범주 정도에서 이웃 간의 정을 잇는 고유의 미풍양속은 허용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노인복지관이나 장애인 복지관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기관에도 정치인의 성의가 닿을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선택을 남겨놓는 것이 성숙한 정치 문화 정착을 위해 나쁘지 않은 발상이 될 듯하다.

후원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순수 후원금만으로 왜 정치가 안되는지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지만 후원금(평년 1억5천만원, 선거 시 3억원이)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고비용 정치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상황을 더 우선적인 해결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후원금 등에 관련된 사안도 강압적으로 제한하기보다는 신뢰를 기본 양식으로 자리잡도록 분위기를 잡아간다면 사회적 간접비용도 엄청나게 절약될 수 있을 것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이 때 적지 않은 인원의 국회의원들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되어 노심초사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곤혹스럽다.

죄의 유무를 떠나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일이다.

모두 함께 더 깊은 반성과 고민으로 대한민국 미래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도록 하자.

그것이 현재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거푸 주장하는 바이지만 로비스트 제도 도입도 그 해결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2010.11.16)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지난 일을 추억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무엇을 준다.

오늘 하버드 동창회 회장단 일원이 되어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바다.

모처럼 만의 해후가 모두를 28년 전으로 되돌려 놓기라도 한 듯 꽃처럼 피어나는 추억담들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그 바람에 촘촘하게 짜인 반총장의 뒷 일정이 30분 지연되게 돼 다음 일정 분들께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하버드 재학시절부터 확실히 반 총장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실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그의 ‘오늘’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 광장에는 조그만 은행이 있었는데 그 은행 안에는 늘 만국기가 펄럭였다. 어느 날 우연히 그 곳에 갔다가 우리 태극기가 만국기 대오에서 빠져있는(82년 당시의 미약한 대한민국 국력을 말해주던 정황이었는지 모르겠다) 상황을 발견한 나는 그 즉시 외교부 과장 신분이었던 반 총장님을 학교에서 만났다. 그리고는 농반 진반으로 외교를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태극기의 부재를 告했다.

아무리 찾아도 태극기를 구할수 없다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에 태극기를 등장시켰다.

아무래도 그때 그 태극기는 그가 손수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우리들에게 이번 G20 정상회의이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특별히 그동안 G20이 아프리카 등 빈곤국을 위한 배려하는 부분이 없었는데 경제회복이 가난한 나라의 등을 밟고 일어서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유엔과 한국이 개도국을 위한 아젠다를 삽입한 점이 돋보인다는 설명이었다. 개도국과 기후문제를 위한 아젠다는 대한민국이 의장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가점을 줬다.

그는 또 자신의 대통령 출마설에 대해서도 출마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입장을 전했다.

대선 출마설이 현재 유엔 사무총장 재임이 유력시 되는 자신에게 자칫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헛소문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게 해 달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어쨌든 반기문 총장의 부지런함과 끈질긴 인내심이 그를 유엔 총장으로 만들었고 재선가도에 파란불을 켜준 일등공신 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남북문제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르는 이 때 반총장이 유엔을 지키고 있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든든한 일이겠는가 하는 기대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28년 전, 반총장이 우리 모두에게 해주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아무 때나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 있지만 앞으로 서로가 바빠지게 되면 쉽게 만날 수 없게 될 테니 싼 값으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지금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지금 현실을 보니 예언처럼 딱 들어맞는 말이 됐다.

그래도 그가 외교안보수석, 오스트리아 대사, 유엔총영사 등 요직을 거칠 때만 해도 해당 국가를 찾아가거나 청와대를 방문해서 정을 다지며 28년 전의 유쾌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UN 사무총장이 되면서부터는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된 것만 봐도 그의 예언은 정확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배는 다르지만 반듯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반총장이 한없는 애정과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당시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 날의 추억도 못지않게 소중한 나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만남은 이국 땅에서 하버드 교정을 터전 삼아 저마다의 꿈을 키우던 사람들이 28년 만에 저마다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는 UN 사무총장으로, 누구는 국회의원으로, 또 누구는 대학 총장으로, 누구는 기업가로...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시점에선가 다시 만나게 될 때 모두의 모습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내 마음 속에도 오래 전부터 갈무리 해 놓은 ‘ 꿈’ 하나가 있다.

언제나 현재 진행 중인 너무도 소중한 나와의 약속이다.

꺼내보니 여전히 펄떡거리며 살아있어 다행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2010. 11. 13)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잔치는 끝났다

잔치는 끝났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우리로서는 역시 미국과의 FTA 협상이나 북한을 의제로 한 중국과의 대화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환율 줄다리기가 어떤 결과로 매듭짓게 될 지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별 다른 이슈없이 끝나버린 것 같다.

확실히 ‘뜨는’ 후진타오와 ‘지는’ 오바마였다.
1년 전만 해도 환심사기 경쟁이 벌어지던 오바마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고 자신만만한 후진타오는 기세 등등한 모습으로 뉴스의 중심이 됐다.
그들의 비교되는 행보가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 했다.
새로운 경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민첩한 움직임이 거기 있었다.
미국을 흔들어대며 명실상부한 G2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은 더 이상 우리의 만만한 ‘이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단순히 언제 저렇게 컸나 싶어 부러웠는데 그런 중국을 옆에 두어야 하는 우리의 운명을 생각하니 그마저도 사치스러운 현실이 자각됐다.
반면에 호기로었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화가 언제인가 싶게 영향력을 잃어가는 미국의 퇴락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우리와의 FTA 협상 과정에서도 선진강국의 너그러운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기 발등의 불이 다급해서인지 지나치게 옹색하고 옹졸한 모습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역시 이처럼 냉혹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구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우선은 외교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미국와 일본 위주로 고정됐던 외교채널을 바꾸는 시도가 있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외교상대를 찾아내고 다양한 아젠다를 발굴해서 교류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이어져야겠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척박하다. 유럽이나 브라질, 러시아 등 새롭게 관계를 구축해야할 나라들과의 외교 물꼬를 틀 수 있는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들 나라들과의 인연을 시작할 인적자원 양성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북한문제 역시 우리의 당면과제 중 하나다.
현재 북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는 중국, 미국, 일본 정도다. 특히 북한에 보이는 중국의 관심도는 날로 증가하는 형국이어서 우리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인 대응책이 있어야 겠다.

서울 G20 정상회의 평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데 지나치게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이미 파장한 잔치상 메뉴 가지고 뒤늦게 갑론을박 해봤자 뭐가 달라지겠나.
지금 우리 처지가 쓸데없는 논란에 에너지를 소모할, 그렇게 한가한 상황도 아니지 않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그나마 제자리를 차지하려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우리도 세계무대를 주도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사회통합이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화두가 아닐까 싶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일단의 노력들이 화두를 푸는 정답일 것이고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은 정치권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사회통합의 기수로 나서길 바란다.
대신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는 안된다.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으려면 지금보다 한참은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
거의 개과천선 차원 쯤은 돼야 할 듯 싶다.


(2010. 11. 13)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기적이 별건가

기적이 별건가



‘경제 기적을 낳는 전략은 수명을 다했고 새 전략은 채택이 쉽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가 우리경제 현실을 향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G20 특집 지면을 통해서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도약해 온 대한민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재도약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비관적인 전망이었다.

미국 일방의 관점이어서 왜곡된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WSJ의 경고들이 대체로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과 과도한 음주문화, 관료사회의 경직성,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등을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요소로 꼽았는데 특별히 피부에 와 닿는 지적들도 있었다. 또 인기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도 출연한 외국여성들도 비슷한 내용으로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돌아보니 개인적으로도 술 문화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충이 많았다.

소신 때문에 어느 자리에서도 금주가 원칙인 나 같은 사람에겐 막무가내 식 음주관행이 적지 않은 스트래스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활동할 때 어려움의 강도가 심했던 것 같다. 술잔을 피하다가 본의 아니게 인간관계까지 위협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 몇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나라당 대선 출정식에서 당시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를 위한 파티자리에서 폭탄주를 안마시고 버틴 일이나 지금은 일본 대사로 가 있는 권철현 의원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자꾸 술을 거부하니까)술 안 마시려면 먼저 들어가라는 말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차라리 먹는 척 융통성이라도 발휘할 것을.)

고건 전 총리의 술잔을 몰래 버린 적도 있다. 하버드 시절 테니스 파트너로 나를 많이 아껴주셨는데 죄송하다. 현역 의원 시절 정치부 기자들 앞에서 우롱차를 양주인 양 취한 척했는데 미안하다.

지금도 여전히 술을 마시진 않지만 나름대로 쌓아올린 ‘내공’에 힘입어 술친구도 엄청나게 많이 늘린 나다. 본인이 안마신다고 다른 사람의 음주를 탓한 적이 없고 또 술자리 뒤처리는 늘 멀쩡한 내 몫이니 함께 하는 술꾼들로선 편한 측면도 있을 터다.

(부시 전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잘했는지의 여부는 역사에 맡길 일이지만 와인 한잔 안마시고 8년의 재임기를 무난히 마친 일 만큼은 별도로 평가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음주문화에 대한 개선의 여지는 여전하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술자리가 2차, 3차까지 진행돼야 남성미 넘치는 것으로 간주되는 비민주적인 음주관행이 걱정이다. 폭탄주와 여자의 오버랩으로 턱없이 비싼 대가가 요구되는 룸싸롱 문화 역시 짚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의미로 즐길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음주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은 대한민국 균형 발전을 어그러뜨리는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 상태다.

남성의 평균수입 50%를 밑도는 대우로 버텨야 하는 여성의 현실은 짐작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다.

경쟁구도는 그렇다 쳐도 애초부터 재벌가 유착으로 얼렁뚱땅 넘겨보려던 꼼수는 이제 약발이 다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 여성들이 우수하다는 결론에는 한 표 더하고 싶은 생각이다.

처음에는 후보군으로 나서기조차 어려웠던 여성그룹의 정계진출은 상당히 고무적으로 진척되는 것 같다.

조심스럽지만 모계중심 사회로의 회귀가 역력한 세상이 됐다. 모계의 득실은 편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떠돌던 우리들의 사회적 정의이기도 하다.

세계가 여성 대통령은 물론 적재적소에 반드시 필요한 인력을 아이콘으로 여성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교사의 화두를 던지는 지난 역사를 통해 적당히 자기 주장을 싣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어느 사회건 단점과 장점의 적합한 조정에 힘입어 더 큰 상상을 실현시키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일 인권이 지상최대의 과제물로 생각했던 킹 목사였다면 남자냐 여자냐, 또는 피부빛으로 판가름하기보다 개별적으로 주어진 달란트에 의해 평가받는 사회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게 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여성 고용을 늘리는 수준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관료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기존사회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WSJ의 분석에 동의한다.

연공서열에 앞서 능력을 적절하게 보상하는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여성들로 하여금 선뜻 문호를 열 수 있도록 하자는 그의 제안이 옳다는 생각이다. 노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음주문화가 마음에 안들면 거절해야 하는데도 자칫 룸살롱에서의 '사회 생활'이 여성들로 하여금 비즈니스와 네트워킹의 기회를 박탈하는 새로운 장애물로 작용되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오래 전, 戰後의 한국상황을 보고 간 외신 기자들은 오늘 날의 한국을 꿈에라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불가능의 범주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해냄으로써 국민적 저력을 과시한 셈이다.

반만년의 역사가 우리의 끈질긴 생명력과 불굴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음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게 됐다. 지금의 이 위기가 머지않아 기회의 꽃이 되어 피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모쪼록 잘 이겨내 한민족의 시대를 여는 꽃이 되느냐의 여부는 21세기를 앞둔 우리의 숙제이자 지향점 아닐까 싶다.



기적? 그거 별거 아니다.

그 모든 것이 내 뜻, 내 안에 들어있음을 확신하자.


(2010. 11. 10)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봉은사 대첩 관전기

봉은사 대첩 관전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강남 봉은사가 조계종 직영사찰로 결정되면서 일단락되는 듯하다. 명진스님은 선방수행 쪽으로 가닥을 잡고 오늘 오후 봉은사를 떠났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조계종과 명진스님과의 갈등은 불교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이슈거리였다. 실제로 관전평을 쏟아내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눈길이 적지 않았다.

결과는 명진스님의 ‘脫봉은사’로 마감됐다.

그러나 이번 봉은사 대첩(?)의 최고 승자는 누가 뭐래도 명진스님이 아닐까 싶다.

패자의 상처는 고스란히 조계종 총무원장의 몫으로 남게 됐다는 판단이다. 이 싸움의 성패는 '누가 옳으냐' 가 아니라 '누가 이슈를 선점 했느냐'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사 순리가 다 그렇겠지만 돈과 권력이 모이면 부패하게 되고 특히 종교단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수 있다.

중세가 암흑기로 규정된 것도 종교권력의 폐해 때문이었다. 면죄부나 팔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타락을 일삼던 종교계의 파행이 초래한 어두운 흔적인 셈이다.

맨 처음 종교 개혁의 나팔수를 자처하고 나선 이는 루터다. 확신하는 진실 하나로 천년 부패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고 덤벼든 그의 모습은 무모함 그 자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이후 장로교의 캘빈이나 감리교의 웨슬리 등 많은 개혁자들이 그의 뒤를 이어 종교의 본모습 찾기에 주력했고 그렇게 형성된 믿음의 새 해석들이 기독교계를 신교와 구교로 양분하면서 종교의 또 다른 가능성과 미래를 얘기해 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성공적인 목회로 교회 부흥을 이룬 순복음교회 케이스가 있다. 야전 텐트에서 시작한 조용기 목사님의 목회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단 시비를 비롯한 각종 시험들이 그의 발목을 잡아당기며 방해했다. 하지만 그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펼쳤고 오늘 날 한국 기독교의 본류라고 자부하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등의 경직성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교세를 떨치고 있는 순복음교회를 일궈냈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슈 선점 측면만으로도 명진스님의 勝氣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주장’이 불교계에 국한되지 않고 대한민국 전역을 불같이 달군 정황만으로도 의심의 여지 없는 승리다.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사로 부각됐고 봉은사 신도 규모를 훨씬 능가하는 추종자를 확보했다. 비록 조계종의 봉은사 직영 계획을 막지는 못했지만 선명한 대립 구도를 통해 더 많은 대중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공표할 수 있었던 것도 명진스님이 거둬들인 수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명진스님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도 이번 봉은사 대첩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가 대승 불교적 차원으로 갈 것인지 소승 불교적 차원으로 갈 것인지 더 나아가 조계종과 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것인지 선택적인 조계종의 한 분파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결과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을까 싶다.



결국 종교는 새로운 외침에 의해서 재생되고 부활되게끔 돼 있다. 더 이상 감동을 줄 수 없는 구조직은 밀려나고 말았던 역사적 정황을 보더라도 명진스님의 목소리는 의미를 더 해 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지와 그것을 실행하는 용기의 역할이 더 없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때론 돌출행동으로 오인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야말로 기존의 고인 물을 정화시키고 존속시키는 활약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그것이 권력의 달콤함으로 변질되었을 때 제대로 감당할 강단이 없으면 독성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묘하게 얽혀 있는 권력과 종교 사이를 정교한 이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서로 무시하거나 군림의 상대로 삼고자 하면 대번에 탈이 나게 돼 있다. 서로가 긴장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면 종교가 권력의 악세사리로 전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고려시대 당시 국가의 도움을 받아 크게 성장한 불교가 결국 권력과의 밀착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도 있음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되겠다.

어차피 새로운 이슈와 국민적 호응에 시대를 관통하는 소명의식이 가미되면 크게 부흥할 수 있는 계기는 저절로 형성되기 마련이니까.

이번 해프닝이 부디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의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순기능으로 작용됐으면 좋겠다.


(2010. 11. 9)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로비스트

로비스트


청목회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구속 수사’나 ‘뇌물죄’ 등이 언급될 정도이고 보면 사태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보도된 대로라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어렵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문득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로비스트 역할이 허용되는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합법화된 제도 하에서 입법 로비가 이뤄졌다면 분명 지금 같은 혼돈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이 우리 정치권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사회가 복잡다기해지면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종류의 일자리들이 출몰하고 있다.

물론 걔 중에는 인기 있는 직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직종이 있다. 반드시 첨단 산업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현 시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각광을 받는 직종들 중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분야가 많다.


로비스트도 그런 직업군 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동선’ ‘린다 김’도 (미국에 적을 두고 있는) 로비스트를 직업으로 했던 사람들이다. 스캔들 형태로 다가온 인물들이어서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우리사회에 전반적으로 로비스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이로 인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뿐만 아니라 로비스트 활동이 대기업이나 이익단체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게 하는 빌미를 제공, 부익부 빈익빈의 부작용을 심화시킨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사회가 다양해짐에 따라 갈수록 ‘로비스트’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를 보다 더 안정적으로 가동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직업군이라는 생각이 그 순기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비스트 도입에 관한 한 우리는 지금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그 길 만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적극성을 발휘하는 쪽은 어떨까 싶다.

로비스트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현행 로비스트 법을 벤치마킹하는 접근법도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살피고 단점을 보완한다면 충분히 활용가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국회나 관청 주변을 둘러보면 불법 브로커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드러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 역시 적지 않다.

기업이 됐건 관청이 됐건 또 입법부가 됐건 저마다의 입장에만 매몰되려는 관성이 문제다. 첨예한 대립각으로 갈등을 키우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상생의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좋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후로도 더 이상 제2, 제3의 청목회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 때마다 우리 사회가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로비스트 법 제정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로비스트를 허용하는 법 제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불법 브로커나 무분별한 이윤 추구, 로비의 독과점 등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마련하는 선에서 순리적인 로비스트 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둘러야 할 일이다.


(2010. 11. 8)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예술문화는 힘이 세다

예술문화는 힘이 세다



토요일 오후 경민대학 예술문화 아카데미 회원들과 특별한 나들이를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불화대전 - 700년 만의 해후’ 특별전 관람이 그것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 총 108점 중에서 고려불화는 일본의 27점, 미국 유럽의 15점, 그리고 국내 소장품 19점 등 총 61점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술로 손꼽히지만 작품이 워낙 귀하다보니 이번처럼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가히 특별한 전시회로 칭할 만 하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일본은 물론 미국 유럽 등 44개 소장처에 각각이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은 것이니만큼 이번 전시회가 우리 일생에서 다시 만나기 힘들 수도 있다는 박물관 측 설명이 영 과장만은 아니리라 본다.

특히 유물들을 한 곳에 모으기까지 관계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번 특별전은 고려 불화 뿐만이 아니라 같은 시대인 중국의 남송~원대의 불화와 일본의 가마쿠라시대의 불화도 함께 하고 있는데 동아시아 불교미술 가운데 고려불화의 뛰어난 예술성을 폭넓은 시야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해설자 말마따나 초등학생과 대학생 작품 차이처럼 한눈에 봐도 우리 작품의 우수성이 두드러진다.

그 중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을 가진 ‘수월관음도’는 은은한 녹색 물방울 모양의 광배 속에 서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작품으로 일본 센소지라는 절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어서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했다.

관음보살의 늘씬하고 우아한 곡선미와 7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또렷한 이목구비가 현란한 색채에 힘입어 당시 고려 미인을 연상케 하는데 깊숙이 은익(?)돼 있던 이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데는 우리 측 학예사의 진정성 있는 ‘정성’ 덕분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감동적이었다.








동행한 한 교수님은 조선 시대를 미술의 ‘암흑기’로 표현했다. 고려의 불화 등 몇몇 작품에 견줄 때 조선 시대 작품은 유독 깊이도 없고 상당히 뒤떨어지는 수준이라는 것인데 유교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처음엔 선뜻 공감할 수 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유교가 형식적이고 도식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자유롭게 펼쳐져야 할 예술혼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서 그랬는지, 고려 불화들은 큰 틀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자유롭고 호탕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문화 예술 분야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오늘 날 우리의 IT 기술이 세계를 리드하거나 디자인 등의 작품들이 세계를 쥐고 흔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면면이 이어지며 뛰어남을 잃지 않는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 혼 덕분이 아닐까 싶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겠지만 한 민족의 문화예술은 단시일 내에 판가름 될 대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얼마나 깊이 있는 역사성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관점도 작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주요 기준이라고 하겠다.

연전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기술력으로 시장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미래사회는 국가와 개인이 문화 경쟁력을 필수 항목으로 갖춰야 할 시대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문화 예술의 힘이 정말로 막강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겠다.



바쁜 일정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작품설명으로 우리를 환대해 주신 의정부 여고 전 동창회장 최영희 선생님, 또 이 분을 연결해 주신 지역사회교육협의회 안희정 선생님, 전공 실력을 살려 미술사적 측면에서 상세히 도움말을 주신 김명규 선생님, 그리고 참여해 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모두들 즐거워하셔서 기쁨이 배가되는 듯 했다.

이 여세를 몰아 이번 기회에 그림 감상 동호회를 발족시킬까 하는 생각도 있다.

전시회 일정이 오는 21일까지라고 하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필히 감상의 기회를 가져보시길 권한다.

(2010. 11. 6)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아니면 말고?

아니면 말고?



70년대 당시 대학을 다니던 우리세대에게는 사실상 학교 교육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만 해도 대학에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사실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라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미국에 가서야 정신을 차리고 체계적인 공부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굴종을 감내해야 했던 현실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심지어 스스로를 길 잃은 세대로까지 자조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기도 했다.

당시의 미국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이른 바 입학 사정회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한국학생들의 처지를 언급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 역시 우리 세대가 느껴야 했던 시대적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능력이 되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은 희망자들이 장사진을 쳤던 그 시절 풍경을 아마도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바마가 미 공화당 교육예산 삭감을 비판하면서 한국교육의 우수성을 예찬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오바마의 지적대로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교육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데 100% 동의한다. 게다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대한민국 학부모의 교육열이 끼친 영향력 또한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 위상은 그러한 동력들이 모여 이뤄낸 공동작품인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386 세대에 대한 부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나가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대학을 다닌 그들 세대가 우리들 보다는 우수하고 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자기주관이 뚜렷하지 않거나 세대간의 질서의식이 결여 되어 있다는 우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름의 장점도 없지 않아 큰 걱정거리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386 세대인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영부인을 직접 지목, 남정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로비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뉴스메이커가 됐다. 이로 인해 여야 간은 물론 정부와 청와대까지 진흙탕 싸움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결론으로 말하면 강의원의 이번 발언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도 사려깊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그가 정황으로 제시한 1000불짜리 AMEX 수표가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뇌물로 이용될 수 없다는 여당 측 반박에 ‘후속 액션’ 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점도 스스로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정황이라 하겠다.

대통령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386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허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만약 이번 파란이 치고 빠지기 식으로 의도적으로 전형적인 구태 정치를 답습한 형태였다면 386 정치인에 대한 가중된 '냉소'는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앞서 간 그 어느 세대보다 여러모로 교육의 혜택을 받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일테면 교육받은 값어치를 해야 하는 책무를 진 세대라고나 할까.



정치공세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건에서 한나라당도 과거 지사 떄문에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의 과거 발언 몇 가지만 들추더라도 영부인에 대한 도를 넘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강의원 비난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강의원을 공박하기 전에 스스로를 향한 자성의 목소리부터 내는 것이 필요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야 국민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이번 강의원 파장이 정략적인 정쟁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 우리 정치의 진일보를 위한 교두보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사실 대한민국에서의 낙후된 정치 수준은 심각한 상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쟁 현장이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이제 정치만 제자리를 찾으면 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겠는가.

나 역시도 초선의원 시절 DJ에 대한 폭로성 발언을 중진의원들로부터 주문 받았던 경험이 있다. 조금은 지나치다 싶어 어물어물하다가 넘어가기는 했는데 누구도 '문제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결과적으로는 잘 한 일인 것 같다.


무분별한 정치공세가 우리 정치현장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조성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우선 정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야 할 대상이라는 관념부터 바뀌어야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정쟁을 바라보며 불안해하는 국민 입장을 생각하자.

이번 사건도 진실게임 수준이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진실의 향방보다 국민적 자존심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국익에도,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제로섬 게임으로 정치일정을 낭비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치인들이 최소한 선거 때 유권자에게 표를 구하는 초심으로 정치마당에 나선다면 지금처럼 동네북처럼 욕을 먹는 풍토도 개선될 수 있다.

모쪼록 미국도 부러워하는 우리의 교육수준이 정치권의 구태까지 정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으면 싶다.


(2010. 11. 5)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신뢰의 리더십에 주목하자


신뢰의 리더십에 주목하자



누군가의 호의로 ‘신뢰의 속도’ 저자, 스티븐 MR 코비의 조찬 강연회에 참석했다.

신뢰 전문가로 국제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는 초베스트셀러 '7-habits'로 우리에게 익숙한 스티븐 코비의 아들이기도 해서 친근감이 더해지는 인물이었다.

이른 새벽시간인데도 참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낯익은 정관계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코비는 신뢰가 있으면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이 절감되는데 이것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다는 내용을 기조로 신뢰의 핵심 개념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신뢰는 도덕이 아니라 경제적 동력이고 리더십의 으뜸 요인이다. 또 배움을 통해 개선이 가능한 기술이기도 하다.

그는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5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워렌 버핏의 어록이나 ‘식량, 군대, 신뢰 등을 핵심요소로 하는 정치에서 군대나 식량은 경우에 따라 포기할 수 있지만 지도자의 신뢰 만큼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을 인용해가며 신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신뢰지수가 낮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성품과 역량으로 볼 때 고신뢰 사회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유효하다는 덕담으로 희망의 여지를 남겨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조직과 리더가 신뢰를 쌓기 위한 기회를 실기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충분히 신뢰회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요지였다.




여러 면에서 유익했던 그의 강연은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내가 누구를 신뢰하느냐 보다 누가 나를 신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덕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이 하루 종일 화두가 되어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교육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 나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신뢰의 빛나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지수가 저조한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가 신뢰임을 감안한다면 아이러니한 현상이기도 하다.

형성과정은 물론 증명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점도 문제라면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의 가치가 정금처럼 빛날 수 있게 됐는지 모르지만.

사회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완성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신뢰의 가치관 정립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노력들이 있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막연히 개인의 가치나 사회의 도덕적 규범으로 판단하기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겠다.



신뢰를 주제로 한 코비의 강연에 청중이 몰리는 현상도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신뢰의 리더십을 갈구하는 대중의 갈증이 반영된 현상은 아닐까 싶다.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낮게 평가되고 있는 신뢰 관련 수치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신뢰 상실의 후유증을 깊이 실감하고 있다.

도처에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한숨소리다.

서로를 향한 불신의 ‘독’이 저마다의 부메랑이 되어 상처를 헤집고 있지만 속수무책일 정도로 빠르게 황폐화 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심지어 일종의 성역이었던 부모 자식 사이조차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부모자식 간 불화가 참사로 이어져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대한민국을 구명하고 치유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신뢰회복 뿐인 것 같다.



우리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진단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게 될 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국가 지도자의 진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도자 한사람의 노력에만 기대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의 공동 관심으로 신뢰를 키우고 우리사회를 도약시키고자 합심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일에 대한 분명한 목표와 책임의식 그리고 반드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신뢰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의 21세기를 견인해 줄 지도자를 갈망한다.

모두가 거의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2010. 11. 3)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가을 밤에

가을 밤에



寒雨夜鳴竹 (한우야명죽) 차가운 밤비가 대를 두드리고

草蟲秋近床 (초충추근상) 가을 풀벌레는 평상 가까이에서 운다.

流年那可住 (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을 어찌 멈출 수 있으리오

白髮不禁長 (백발불금장) 자라나는 흰머리를 막을 길이 없구나

-송강 정철, 우추(雨秋)





세월 참 빠르다.

싸늘한 찬바람에 돌아보니 2010년이 이제 두 달도 채 못 남았다.

침침해지는 눈과 무성해지는 흰머리가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한다.

송강 정철의 넋두리에 마음을 실었더니 쓸쓸함만 더 키우는 꼴이 됐다.



오늘도 정신없이 분주하게 하루 일과를 마쳤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은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면서도 돌이켜보면 아쉬움 투성이다.

보람되면서도 아쉽고, 속이 꽉 찬 듯 싶으면서도 공허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영악하게 대처한다 해도 빠른 세월을 통해 인간이 감지하게 되는 건 역시 아쉬움이다. 사람이 죽으면 남는 다섯 가지 ‘~걸’에 대한 농담에서도 인간의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 같다. ‘좀 더 베풀 걸, 좀 더 들을 걸, 좀 더 노력할 걸, 좀 더 다가갈 걸 (한가지는 생각이 안 난다)라고 하며 지난 삶을 후회하게 된다는 농담이다. (썰렁했나?)



역시 인간은 누구도 완벽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게 맞다.

피라미드, 타지마할 묘, 중국의 명 십삼릉 등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곳은 인간이 얼마나 버둥거리다 갔는지 짐작 할 수 있게 해주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불로초를 구하지 못한 진시황처럼 죽을 수 밖에 없다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까지도 연습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은 간다. 우리도 간다.

가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 우리가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활용하기에 따라 삶이 지혜의 보고가 될 수도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추운 날씨 탓인지 한 장 남은 달력이 주는 스산함이 깊다.

발길에 차이고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게 되는 가을밤이다.


(2010. 11. 2)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공천 개혁

공천 개혁


다시 또 정치의 계절이구나 싶다.

귀에 익은 구호의 출몰이 부쩍 잦아졌다.

정당마다 개혁 공천을 화두로 들고 나와 온통 난리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공천혁명을 경험할 수 있으려나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선수를 친 건 여당이다. 제한적 국민경선제 도입 등의 ‘변신’을 통해 민심을 선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도 최근 공천개혁을 위한 당 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정권 탈환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데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공천개혁을 하겠다니 정치하는 입장에서 반갑다.

국민도 모두가 박수치고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공천혁명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거 승리다. 그러나 자칫 변죽만 올리다 끝나게 될 수도 있어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체크해 봐야 할 관전포인트 몇 가지를 정리해봤다.

첫째, 당 지도부의 사심없고 지속적인 개혁공천 의지,

둘째, 개혁공천 틀의 자의적 해석 금물,

셋째, 국민으로부터 적극적인 호응과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제도로서의 가치성

넷째, 국민 참여 상태 등이 그것이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기득권 다툼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할 것이다. 서로 목숨 걸고 덤비는 형국이기 때문에 공천혁명의 틀을 지켜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리라 본다. 웬만한 정도의 결심 아니고는 지켜내기 어려운 국면이라 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정당이고 선거의 승패는 공천 혁명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천 혁명을 이루고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에서 성공한 정당은 보수가 됐건 중도가 됐건 미국의 공화당 같은 나름의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대로 미완의 혁명으로 그친다면 정당의 운명은 풍비박산 나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처음부터 당을 새로 꾸려야 할 처지에 처하게 될 지 모른다.



한나라당이 됐건 민주당이 됐건 공천개혁은 과감한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공천권을 쥐고 있는 기득권 설득과정이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권 획득은 공천혁명으로 국민에게 먼저 다가설 수 있는 정당의 몫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지는 공천혁명으로 우리 정치 역사에 큰 획이 그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1세기가 참 정치의 시너지 효과로 욱일승천 할 수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설레임 가득한 신나는 일이다.


(2010. 11. 1)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