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기적이 별건가

기적이 별건가



‘경제 기적을 낳는 전략은 수명을 다했고 새 전략은 채택이 쉽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가 우리경제 현실을 향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G20 특집 지면을 통해서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도약해 온 대한민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재도약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비관적인 전망이었다.

미국 일방의 관점이어서 왜곡된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WSJ의 경고들이 대체로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과 과도한 음주문화, 관료사회의 경직성,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 등을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요소로 꼽았는데 특별히 피부에 와 닿는 지적들도 있었다. 또 인기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도 출연한 외국여성들도 비슷한 내용으로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돌아보니 개인적으로도 술 문화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충이 많았다.

소신 때문에 어느 자리에서도 금주가 원칙인 나 같은 사람에겐 막무가내 식 음주관행이 적지 않은 스트래스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활동할 때 어려움의 강도가 심했던 것 같다. 술잔을 피하다가 본의 아니게 인간관계까지 위협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 몇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나라당 대선 출정식에서 당시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를 위한 파티자리에서 폭탄주를 안마시고 버틴 일이나 지금은 일본 대사로 가 있는 권철현 의원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자꾸 술을 거부하니까)술 안 마시려면 먼저 들어가라는 말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차라리 먹는 척 융통성이라도 발휘할 것을.)

고건 전 총리의 술잔을 몰래 버린 적도 있다. 하버드 시절 테니스 파트너로 나를 많이 아껴주셨는데 죄송하다. 현역 의원 시절 정치부 기자들 앞에서 우롱차를 양주인 양 취한 척했는데 미안하다.

지금도 여전히 술을 마시진 않지만 나름대로 쌓아올린 ‘내공’에 힘입어 술친구도 엄청나게 많이 늘린 나다. 본인이 안마신다고 다른 사람의 음주를 탓한 적이 없고 또 술자리 뒤처리는 늘 멀쩡한 내 몫이니 함께 하는 술꾼들로선 편한 측면도 있을 터다.

(부시 전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잘했는지의 여부는 역사에 맡길 일이지만 와인 한잔 안마시고 8년의 재임기를 무난히 마친 일 만큼은 별도로 평가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음주문화에 대한 개선의 여지는 여전하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술자리가 2차, 3차까지 진행돼야 남성미 넘치는 것으로 간주되는 비민주적인 음주관행이 걱정이다. 폭탄주와 여자의 오버랩으로 턱없이 비싼 대가가 요구되는 룸싸롱 문화 역시 짚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의미로 즐길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음주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은 대한민국 균형 발전을 어그러뜨리는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 상태다.

남성의 평균수입 50%를 밑도는 대우로 버텨야 하는 여성의 현실은 짐작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다.

경쟁구도는 그렇다 쳐도 애초부터 재벌가 유착으로 얼렁뚱땅 넘겨보려던 꼼수는 이제 약발이 다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 여성들이 우수하다는 결론에는 한 표 더하고 싶은 생각이다.

처음에는 후보군으로 나서기조차 어려웠던 여성그룹의 정계진출은 상당히 고무적으로 진척되는 것 같다.

조심스럽지만 모계중심 사회로의 회귀가 역력한 세상이 됐다. 모계의 득실은 편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떠돌던 우리들의 사회적 정의이기도 하다.

세계가 여성 대통령은 물론 적재적소에 반드시 필요한 인력을 아이콘으로 여성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교사의 화두를 던지는 지난 역사를 통해 적당히 자기 주장을 싣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어느 사회건 단점과 장점의 적합한 조정에 힘입어 더 큰 상상을 실현시키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일 인권이 지상최대의 과제물로 생각했던 킹 목사였다면 남자냐 여자냐, 또는 피부빛으로 판가름하기보다 개별적으로 주어진 달란트에 의해 평가받는 사회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게 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여성 고용을 늘리는 수준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관료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기존사회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WSJ의 분석에 동의한다.

연공서열에 앞서 능력을 적절하게 보상하는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여성들로 하여금 선뜻 문호를 열 수 있도록 하자는 그의 제안이 옳다는 생각이다. 노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음주문화가 마음에 안들면 거절해야 하는데도 자칫 룸살롱에서의 '사회 생활'이 여성들로 하여금 비즈니스와 네트워킹의 기회를 박탈하는 새로운 장애물로 작용되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오래 전, 戰後의 한국상황을 보고 간 외신 기자들은 오늘 날의 한국을 꿈에라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불가능의 범주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해냄으로써 국민적 저력을 과시한 셈이다.

반만년의 역사가 우리의 끈질긴 생명력과 불굴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음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게 됐다. 지금의 이 위기가 머지않아 기회의 꽃이 되어 피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모쪼록 잘 이겨내 한민족의 시대를 여는 꽃이 되느냐의 여부는 21세기를 앞둔 우리의 숙제이자 지향점 아닐까 싶다.



기적? 그거 별거 아니다.

그 모든 것이 내 뜻, 내 안에 들어있음을 확신하자.


(2010. 11. 1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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