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8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수능이 끝났다.

지금은 ‘수학능력평가’지만 우리 때는 ‘예비고사’라는 이름으로 대학입시를 치렀다.

이름은 다르지만 인생을 걸고 올인한 시험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시험이 한 사람의 미래에 결정타로 작용하는 현행 수능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따른 희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일 아침의 악운 때문에-몸이 아프거나 늦는 경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수험생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리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니지 싶다. 실제로 돌발적인 상황 때문에 그동안 쌓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불운이 전체 인생 의 멍에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통한은 당사자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도 시험 보는 날 아침 갑자기 몸이 아파서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가 이후의 인생이 계속 꼬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를 지켜봤는데 여간 딱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인생 전체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현재의 수능제도는 개선해야 마땅하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의 중요한 진로를 결정짓는 것은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다. 여러 번에 걸쳐 제대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매번 말하는 바지만 학생들에게 몇 번의 실력 점검 기회를 주고 그 가운데 가장 유리한 성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수능 비율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대학 입학의 여러 평가기준 중 하나여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를 근거로 해서 전공의 적합성 여부 등을 면밀하게 진단하는 과정이 선행된다면 당사자의 미래는 물론 대학과 국가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정원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소수점 한자리에까지 수백명의 동점자들이 몰리는 치열한 경쟁상황을 감안해서 대학정원에 융통성이 적용돼야 한다.

1점 차이의 당락 결정이 학생 선발에 있어 어떤 타당성으로 작용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대학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선택이 어려울 때 한두명 정도의 범주에서 입학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대학에 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수능이 대학을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생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겠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일 뿐 인생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고 결정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잘 치렀으면 잘 치른대로 잘못 치렀으면 잘못 치른대로 다음 인생을 준비하겠다는 현명함과 자신감으로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는 미래를 밝혀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미래의 목표를 구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지나친 자만이나 좌절은 정답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한 것으로 됐다.

일희일비도 금물이다. 낮은 자세로 자기 주변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매사에 일희일비하면서 끌려다니는 사람의 인생은 실패하게 돼 있다.



학교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했던 에디슨, 시험 성적이 안 좋다고 대학입학이 거부됐던 아인슈타인, 명문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레이건 대통령, 무엇보다 변변한 졸업장 하나 없이도 굴지의 재벌가를 이룬 삼성이나 현대 창업주들의 성공한 인생을 보라.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은 성적순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혹여 주위에 이번 시험으로 마음을 다친 수험생이 있다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말고 따뜻하고 큰 애정으로 품어주자. 그리고 말해주자.

인생에는 시험 말고도 그들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잡이'들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음을.


(2010. 11.1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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